부산시립미술관이 1999년 지역의 청년 작가를 발굴해 지원하고자 기획한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전>이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이같은 시도는 단순히 청년 작가를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역미술의 잠재력을 확산시키고 부산 미술의 풍부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다. 올해 선정 작가인 박상은 송기철 송진희 이은영 4인의 인터뷰와 함께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를 짚어보고 향방을 모색하는 글을 통해 부산미술의 가능성을 주목해보자.
미래의 지역미술과 부산시립미술관의 행보
김만석 미술비평
반복된다는 것은 아직 이 세계가 완전한 파국으로 끝장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가 되돌아온다는 감각은 삶의 지속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바로 그 때문에 불투명하지만 모종의 희망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반복은 일종의 미래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이미 시작했지만, 항상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르게 시작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반복은 형식적으로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출발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이 도착하는 지점 역시 같은 장소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연되고 연기될 따름이다. 설령, 어떤 존재가 같은 장소에 동일한 방식으로 도착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기왕의 영토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도착한 그 장소를 낯설게 만들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요청하고 촉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술 장 내에서 정기적인 반복을 정기전이라고 명명할 때, 그것은 그 단체가 지향하는 규범화된 의미나 고착화된 질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복이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조형언어의 자리를 내부에 함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사정이 정기전을 통해서 미래와 희망을 예감하게 하는 밑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지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가 2015년을 기준으로 13회째를 맞이했다. 1999년 출발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16년간 지역미술의 ‘저변’에 대해 탐문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사고하는 데에 기여해왔다고 하겠다. 특히 미술관이 지역미술의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1998년 이듬해부터 바로 청년 작가들 지원에 나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시립미술관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역미술에 대한 상상은 ‘불모’ 담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왔는데, 이는 ‘지방’을 통치의 대상으로 구조화하려는 다종다양한 역사적 전략에 따른 내부 식민화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지역 인력풀이 왜소화되는 구조를 피하기가 어려웠으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부정이나 배타적 지역주의가 나타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시립미술관의 등장은 이러한 대립적 구도를 비켜서 청년 작가들에게 지역미술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중심과의 매개 없이 다양한 조형적 실천 현장과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이 IMF라는 전대미문의 ‘환란’으로 규정된 시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환란’이라는 수사적 표현은 결코 과장일 수 없지만, ‘불모’ 담론이 횡행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축소된 것을 떠올리면, 그 한가운데서 탄생한 시립미술관과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젊은 작가 새로운 시선>과 같은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은 지역미술의 미래와 희망을 가늠하게 하는 표지라고 해도 과언일 수 없다. ‘작가’ 생산 자체가 위축되는 시기였고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일 자체가 힘겨운 상황에서 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의 작업을 연구하고 이를 지역사회와 한국 사회 전체에 알리는 과정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작가로 활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뼈대의 하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을 현장으로 한 대안공간들의 활동 역시 청년 작가들에게 중요한 기반과 자산으로 받아들여졌음은 물론이다. 대안공간과 미술관 각자가 지향하는 활동과 역할이 일치할 수 없지만, 시립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지역의 청년 작가들에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극과 힘을 준 것은 분명하다.
미술관의 도약을 기대하며
그렇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의 이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기획을 단순히 지역 시립미술관의 기능 가운데 하나로 간주해선 안된다. 정치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립미술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이상, 이 기획은 단순히 새로운 조형언어를 소개 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그 이상의 차원을 함의한다. 이 전시가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을 경유함으로써 반복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반복 자체가 거꾸로 미술관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청년 작가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반복이 미술관의 지속과 미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작가 배출의 중요한 제도인 ‘미술대학’의 위축은 미술관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구조를 뛰어넘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교육부의 예술대학에 대한 압박이 꾸준히 이루어져, 통폐합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역 미술대학은 실질적으로 미술학과의 ‘폐지’를 선고한 상황이어서 청년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연구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일은 이전보다 그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기획 자체가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밑받침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창조경제의 광범위한 도입 역시 지역 청년 작가들의 창조적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지역 미술의 근간에 중요한 사안이다. ‘굴뚝 산업’에서 ‘굴뚝 없는 산업’으로의 전환에 예술의 창조성이 널리 요구되는 실정이고 지역의 산업이 ‘환란’을 통해서 ‘재구조화’된 이후 문화예술이 지역 산업의 한 뼈대로 구성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치경제적 동학의 핵심이 바로 청년 작가들의 인프라와 생산에 연결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창조경제가 예술가들에게 신뢰할 만한 산업의 형식일 수는 없다. 다만 국가 차원의 이러한 요구가 왜곡된 방식(창조산업은 독려하되 창조적 인력을 생산하는 학문과 실천은 폐지)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기왕의 청년 작가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은 요식적인 차원을 넘어 심화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청년 작가들의 예술적 창조성을 지역과 한국사회 그리고 글로벌한 맥락에서 구성하고 논의하고 알리는 작업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지역미술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수행되어온 ‘부산학’의 성과와 시립미술관의 독자적인 연구 성과 축적을 통해서 지역미술이 주체화될 수 있는 새로운 맥락들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결코 짧은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국적 차원의 미학 생산 방식을 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의 수준을 포괄하는 미학이나 문화연구는 시립미술관의 체제와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할뿐더러 활동 반경 역시 기존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식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맥락만 살펴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왜관에서부터 식민지, 광복, 6?25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서 부산이 항상 가시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교류와 만남의 장이었다는 사실 역시 부산시립미술관에 이러한 기반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기반의 중추가 예술을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청년 작가들이고 이들이 부산 문화 전체의 미래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귀가 없을 것이다.
혹여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들을 호출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다만 기왕의 미술 장이 갖는 폐쇄성이나 한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차원의 용법 정도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기할 필요가 있다. 청년 작가에 대한 지지와 응원은 그들의 작업이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15>에 참여한 송진희의 작업은 ‘아카이빙’ 작업이 갖는 형식을 전유하면서도 그것을 작가라는 위상으로 독점하고 편집하여 제시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성매매 경험 여성’과 ‘일반시민’, ‘예술가’, ‘활동가’를 수신인으로 이들이 다시 완월동 ‘성매매 경험 여성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녀들로부터 발신된 편지들을 받아 전시장에 펼쳐 놓았지만,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그녀들 스스로가 누구나가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자신을 일종의 ‘문서고’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가시화되거나 왜곡된 형상화를 통해서만 드러났던 그녀들의 삶과 목소리가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거나 대변되는 대신 능동적으로 문서고를 구축하도록 요청됨으로써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의 자리를 그녀들과 나누는 데에 이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들이 두런두런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을 작품화할 수 있는 것은 송진희 작가가 청년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에 없던, ‘작가’의 영역을 진정한 의미에서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바로 문서고(형상화의 가능성과 가시성의 자리)라면, 미술대학의 위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은 자명하다. 송진희 작가가 취한 전략들이야말로 다른 의미에서의 동료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문가 체제나 탁월함의 기예는 그것대로, 이와 달리 시민들의 삶의 탁월함을 생산하는 작업은 또 다른 방식을 통해서 모두 응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동일한 도착점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는 청년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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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 방범창살 철제대문 가변설치 2015 <자유를 위한 최소 소건>(왼쪽) 벚나무 설치 2015
송 기 철
1982년 태어났다. 동의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의대학교 효민갤러리에서 석사학위 청구전을 열었으며 (구)백제병원에서 열린 해체둔벙전에 참여했다.
주로 개념적인 작업을 선보였는데, 최근 강조하고 있는 대립적/모순적 상황에서 ‘빼기’의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계선 흐리기>는 물고문을 하는 장면과 심폐 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각각 A3용지 앞뒤에 인쇄된 작업이다. 소생 기술의 발달이 장기이식 기술의 발전과 동일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소생 기술은 장기 보존 기술이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술이다. 마찬가지로 전쟁포로를 잔혹하게 고문해 얻은 정보는 많은 수의 아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술로 작용한다. 따라서 전혀 다르게만 보이던 두 행동 이면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하나의 기저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 대면하게 되는 대립적 상황에서의 선택은 거짓 선택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빼기’는 어떠한 선택을 하든 결과가 같을 것이라는, 거짓 선택의 종속에서 과감히 우리의 선택을 빼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설치, 영상, 사진작업을 한 공간에 선보였는데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는 창살이라는 오브제를 공중에 매단 작업으로,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계급적 아파르트 헤이트의 유령은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며 사회-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를 무수히 생산한다. <자유를 위한 최소 조건>에서는 나무로 비유된 배제된 자들이 자신을 구속하는 내장으로써의 뿌리를 불태운다. 이것은 배제된 자에서 사회-정치적인 주체로 이행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벌거벗기는 공간>은 버스터 키튼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그 사회-정치적 주체가 계급적 아파르트 헤이트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세계를 창출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창살 사이에 있는 철제 대문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벌거벗기는 공간>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작업들 또한 각자 다르게 작동하면서도 이러한 주제 맥락 안에서 이야기들을 채우며 이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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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없다> 캔버스 위에 흑연 가변설치 2015
이 은 영
1982년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 국립고등미술원에서 학사, 석사 과정과 스위스 제네바고등미술원(HEAD) CERCCO 석사 연구과정을 마쳤다. 제네바 Milkshake Agency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징성이 강한 드로잉 작업은 어떤 배경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이미지들은 대부분 내가 일상생활에서 수집한 것들인데 나의 기억과 상상을 합친 결과물이다. 상징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한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중의적인 알레고리의 특성을 가지는 작업들이다. 개념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소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작가가 제시하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전시되는 장소에 따라 관람객은 이미지의 개념을 자신이 가진 복합적인 지식과 상황에 맞춰 변화시킨다. 나는 그 개념에 대한 정의의 자의적이고도 타의적인 변화 혹은 변질이 흥미롭다. 그것은 비단 작업의 해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지금 보고 믿는 것들의 근본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면 한다.
산과 물결의 일부를 표현한 작업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2015년 4월 개인전을 준비하며 제네바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가 세월호 1주기 였다. 그리고 그 즈음 유럽으로 넘어오려던 수많은 난민선이 지중해에서 전복되었다.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나 8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나는 어떠한 것을 할 수 있을까. 오랜 생각 끝에 내가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로 사람들과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다만 단면적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하고 생각하게 하며 토의하게 하고 나누게 하는 것이 민주사회구성원이자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넘쳐나는 비극에 담담해진 사람들의 감정을 조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자극하고 예민하게 하는 것. 그 사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5년 5월 제네바 개인전 때 원래 하려고 했던 벽화 대신 그려넣은 작업이 <+4038m> 이다. 스위스인들에게 산이란 오직 스위스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스위스사람들은 내가 만약 그들의 공간 속에 산을 그려 놓는다면 당연히 스위스산이며 내가 그들의 자연에 심취하여 산을 그려놓다고 생각할 것이라 예상했다. 에베레스트 8,848m-몽블랑 4,810m=4,038m. 지구 반대편 네팔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없이 각자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 우리에겐 멀고 낯선 것에 대한 차이, 그리고 눈앞에 놓인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에 취해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과의 간극에 대해, 스스로 믿고 정의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세라믹으로 바다의 수면들을 재현한 연작은, 각기 하나하나의 작품에 붙여진 이 숫자들은 세월호와 난민선이 전복된 날짜들이다. 네모난 블록형태는 분절된, 그러나 결국 모두 연결되어 공공의 기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마치 이 세상 모든 바다가 이어져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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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xiety-아스팔트 > 디지털 프린트 80×145cm 2014 아래 <누군가의 상처 1>(오른쪽) 비디오 3분30초 2015
박 상 은
1988년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2012년 효원문화회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 <Blue Whale>을 열었으며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립미술관 금련산갤러리,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14 <무빙트리엔날레-메이드인 부산>에 출품했다. 제7회 국제비디오페스티벌 우수상을 수상했다.
피부묘기증(피부를 긁거나 스치는 등의 경미한 외부 자극에도 붉게 부풀어 오르는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독특한 증상은 남과는 다른 특이점이다.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몸에 새기거나, 아스팔트, 매립지의 균열 현상과 개인의 상처를 교차시키기도 했다. 작가 자신과 외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설명해 달라.
작품을 봤다면 느껴지겠지만, 피부묘기증이 있다 해도 이렇게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물리적인 아픔이 수반된다. 내 작품은 이 아픔을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껴지는 촉각적인 아픔이 그들의 상처가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한낱 이런 행위를 통해 나와 관람자가 공감하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겪는 복합적인 상처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Anxiety>는 성과사회 속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매립지의 균열 이미지와 연결한 이야기다. 이전 작품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의 몸을 빌려 보여주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대인의 불안과 매립지의 균열 그리고 나의 몸 이렇게 새 개를 연결시킨 것이다. 갈라지는 땅과 부어오르는 내 몸, 그리고 현대인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영상작업과 사진 작업에는 특별한 내러티브가 엿보이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작품의 주제는 ‘세 젊은 여성의 상처’다. 이 세 명의 여성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주위에서 ‘걸레’, ‘남자 이용해먹는 나쁜 년’ 소리를 듣거나 혹은 ‘처지에 맞게 살라’는 얘기를 들으며 상처받는 여성들이다. 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중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적인 사정을 발견했다. 비록 남과 공유되지 않는 특수한 경험, 즉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패턴이지만 그 아버지란 존재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여 생각하면 이 문제는 단순히 이들만의 어떤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돌아가는 패턴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 작업과의 연장선에서 이들의 상처를 공유하며 치유해 나가는 것도 작업의 과정으로 보고 싶었다. 이전엔 촉각적인 아픔이 느껴지는 불편함이었던 데 반해 이번에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은 이 패턴을 보여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몸을 통해 발언하는 방식, 특히 피부묘기증이라는 신체적 특징이 지금까지 작가로서 차별화된 지점이라 하겠다. 한편 이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고 불합리한 지점들에 저항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어려움이 컸다. 개인적으로는 신체작업을 하면서 신체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었고 해체할 수 없었다. 노출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아마도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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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동 편지> 종이, 봉투, 테이블, 의자 등 설치 2015
송 진 희
1982년 태어났다. 대안공간 반디, 요코하마 AAA갤러리, 아르코미술관, 김해 문화의전당, 미부아트센터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생활예술모임 ‘곳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은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이다.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을 말해 달라.
작년 5월 완월동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곳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완월동의 보이지 않는 역사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성매매 경험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성산업과 여성의 삶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 이곳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바깥으로 매개하는 통로, 사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완월동 편지>이다. 완월동이 성매매 집결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배제되는 것, 사라지는 것, 기록에 남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갈증이 늘 있었고, 완월동이라는 장소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일반인이 성매매 경험 여성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인 참여자들이 그들에 대해 발언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완월동 편지>에 참여자 과반수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언어를 담아서 답장을 보낸 것이라. 그 내용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성산업에 관해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은 추측, 낙인, 이슈화하기에서 끝나버린다. 추측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깐 성산업에 관해서 ‘생각’하는게 어렵다는 말과 같다.
왜 생각하지 않냐고 다그치기보다는 그 문제를 일상적인 차원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자들의 편지에서 ‘부담’이 느껴졌다면 ‘생각’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을 스스로가 수행해야 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 주변의 성매매장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편지,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 보는 편지, 재개발 풍경과 완월동을 연결하는 편지, 그 자체가 그 부담을 뚫고 나온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작업은 작가 개인의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다. 완월동을 포함한 성산업,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응답하는 ‘공동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작가는 공동의 기록이 가능한 사이-공간을 가꾸는 매개자이자 안내자이다. 없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