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김형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형대 회고전〉 전시광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형대 회고전〉 전시광경

회화와 판화를 50여 년간 탐구해 온 작가 김형대의 화업을 총망라한 전시가 4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다색 목판화와 채색 부조 회화로 나뉘는 그의 작품은 크게 물성(物性)과 환원(還元)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 미술이 걸어온 역사 한편에 현재까지도 활발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김형대의 작품세계를 면밀히 들여다 본다.

김형대의 ‘환원 B’, 정박되지 않은 한국 모더니즘의 기표

김미정 | 미술사

김형대의 50년 화업을 결산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사 정립을 위해 한국 현대미술가들을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전시는 ‘격정과 도전의 시기’, ‘탐구와 체화의 시기’, ‘후광 그리고 새로운 시작’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앵포르멜 시기의 〈환원 B〉부터 2012년 제작한 대작 아크릴 부조 회화 〈후광 12-303〉까지 일람할 기회였다.
1936년생인 김형대는 소위 ‘단색화’ 세대의 화가이다. 그러나 회고전에서 살펴본 김형대의 작품세계는 앵포르멜 세대의 집단 미술운동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었다. 1960년대의 <씨족>과 <생성시대>, 다색 목판화와 <후광> 연작에서 보듯이 작가는 1960년대 말부터 한국 화단에 몰아친 이우환식 모노하 설치나 퍼포먼스를 시도하지 않았다. 〈에꼴 드 서울전〉과 같은 단체전에 초대는 되었지만, 김형대의 활동은 1970~1980년대 단색 모노크롬 평면화의 대열에서도 반 발자국 정도 빠져나와 있는 듯하다.
김형대의 회화는 본질적으로 개념이기보다 표상이다. “수행과 행위”보다는 “소재”로서의 한국적 미술을 추구한 것인데, 그래서인지 김형대의 그림에서는 모티프와 장식, 색채와 같은 조형 요소들이 중요하다. 전시장에서 영상으로 제공되는 작가의 말에서, 혹은 회고담에서 거듭 드러나듯이 김형대는 자신의 추상화 기원이 사적인 추억과 주변의 자연물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통학 길에 보았던 여의도 샛강 여울의 소용돌이, 조계사의 목조장식과 불상, 나무의 나이테 등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들이다. ‘생성’ 연작의 유기체적인 프랙탈 구조는 쉼 없이 역류하는 물의 이미지였다. 화사한 채색은 그가 진솔하게 털어놓듯이 동대문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추억에서 비롯하였다. 차곡차곡 쌓여 정리되어 있다가 좍 펼쳐지는 옷감들의 휘황함에 자극받은 유년기의 미적 체험은 화가 미의식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러한 낭만적 회고담은 전위미술의 대열에 섰던 동년배 한국 미술가로서는 다소 특이한 고백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196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과 연이은 국전 서양화부 최고상으로 출발한 김형대 미술의 범주는 제도권에서 장려(?)한 한국적 추상화라고 할 수 있다. 단색화 시대로 기억되는 한국적 모더니즘 양상은 저마다 몸담고 있는 단체나 주력하는 전시에 따라, 지역과 연배에 따라 기법, 형식, 주제가 다양하게 갈라져 있는데, 김형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화사한 색채와 민예적 소재는 1970년대 국전 비구상 부문 수상작들, 예를 들면 이준(1919~), 유희영(1940~) 박길웅(1941~1977) 등의 작품과 유사한 장르적 특징이었다.
<국전>과 김형대의 화업은 그 시작부터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김형대의 미술은 1961년 수상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 이라는 이름에 결박되어 있는 듯하다. 이 수상이 명예로운 이력인지, 올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김형대의 미술이 이후 회화에서 판화, 아크릴 부조로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었음에도 이 한 줄의 이력은 화인(火印)처럼 화가를 따라다녔다. 이 이력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 현대미술 전위로서의 면모를 상쇄시키며, 김형대가 1960년 10월에 덕수궁 담에서 동료들과 감행했던 <벽전>과도 논리적으로 충돌하였다. 무엇보다 이 상의 낯설고 긴 명칭은 어쩔 수 없이 1961년의 역사적 상황을 상기시킨다.
1960년과 1961년에 연이어 발발한 4·19와 5·16 두 사건에 대한 해석이 곧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사관(史觀)을 형성하듯, 미학적 전위와 관전 진입이 동시에 가능했던 당시의 미술계 상황은 전후 한국 모더니즘에 대한 어떤 비평적, 혹은 미술사적 해석보다 상징적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김형대의 〈환원 B〉가 전후 한국 모더니즘의 ‘증후’ 적 작품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필자는 이 작품과 사건을 증거 삼아, 앵포르멜 세대의 전위에서 주류로의 전환이 군정(軍政)기에 이루어졌음을 논증하며 한국적 모더니즘에 관한 정치·사회적 해석을 시도한 바가 있다. 그러나 미술사가 정치·사회사의 결과물이 아니라 결국은 미술가들의 실천의 역사라는 사실에 더 큰 방점을 두는 지금, 중요한 것은 <국전> 최고상 이력이 김형대의 이후 50여 년 예술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김형대의 미술은 단색화의 수행적 담론이나 이우환(1936~)의 신체와 장소성과 같은 현학적 수사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고 진행되었다. 물론 장인적 노력과 다색 채색판화를 통해 관전 추상화라는 좁은 장르적 울타리도 뚫고 나왔다. 기성세대로 몰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감상적인 회상을 늘어놓는 김형대의 미학적 취향은 윤명로(1936~), 김봉태(1937~) 등 동료 세대의 단체인 ‘60년 미술가협회’의 논조보다 오히려 김환기(1913~1974)나 유영국(1916~2002)과 같은 근대기 모더니스트의 서정주의와 유사하다. 1960년대 실존주의 미학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가 느긋하게 감상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첫 번째 빛나는 이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이 허용한 미학적 자유의 결과였을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형대가 회화의 물성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다색 목판화 제작의 여파였다. 1960년대 김형대의 색채에 대한 탐닉은 다색 목판화 시대로 이어졌다. 그가 다색 목판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은 주목되어야 한다. 사실 다색 목판화는 한국 현대판화에서는 희귀한 것으로 유강렬(1920~1976), 정규(1923~1971)의 초기 판화는 물론이고, 1960년대 이후 많은 미술가가 조형실험으로 혹은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목판화를 제작했으나 주로 단색의 민예적인 투박함을 선호하였다. 그가 판본을 여러 개 만들어 색채를 거듭 찍고 종이에 색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게 했던 것은 판화에 섬세한 회화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었다. 요지는 기름기를 빼서 담백한 느낌을 주는 잉크 제조, 원하는 배색을 위한 종이의 선택이 까다롭게 이루어지면서 화가는 자연스럽게 질료의 문제에 집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김형대의 색채와 빛에 대한 집착도 사실은 서구의 물질성에 대한 저항이었다. 결국, 담론의 구조는 ‘무위(無爲)’의 수행으로 서구의 물질성을 상쇄하려 했던 한국 단색화 미술가들의 논법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김형대 회화가 단색화의 울타리 바깥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단색화 미술운동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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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후광 85〉 캔버스에 아크릴 100×155cm 1985 왼쪽에서 두 번째 〈후광 84-6〉 캔버스에 아크릴 96.5×124.5cm 1984

‘환원(還元)’ 정박되지 않은 한국 모더니즘의 기표
김형대의 미술은 근대 주정주의와 현대 물질주의 미학의 접경지대에 있을 뿐 아니라 국전 추상화라는 ‘장르’ 미술과 ‘단색화’ 미술 그 중간에 걸쳐 있다. 이를 절충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경계의 확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미학적 자기 완결, 평면의 매체 담론으로 “환원” 하고자 했던 1970년대 동시대 모더니즘의 다른 영토에도 많은 한국의 미술가가 군집하고 있었으며, 김형대는 그중에서 확연한 성취를 이룬 미술가라는 사실이다.
논박할 여지없이 앵포르멜 추상미술의 제도적 승인의 징표가 된 <환원 B>는 한국 현대미술사 전후 추상미술의 챕터에서는 빠지지 않는 대표작이다. 한국적 모더니즘 시대를 동고동락했던 비평가 이일(1932~1997)의 유명한 평문 “환원과 확산”에서 거듭 반복되고 있듯이 환원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용어이다. 그러나 오래전 국전 출품작 〈환원〉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필자의 전화 인터뷰에 화가가 돌려준 대답은, 기억하건대 미니멀리즘의 미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화가가 설명하는 ‘환원’은 추억으로의 회귀라는 대단히 낭만적 시어였다. 기대했던 “표면으로의 환원”이라거나 “매제의 물성”이라는 형식주의 이론과 상관도 없는 이야기라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생각해보면 김형대의 〈환원 B〉의 붉은 색조는 미묘하고, 수평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요철은 ‘켜켜이 쌓여 있는 옷감’ 같이 섬세하다. 당시 앵포르멜 작가들의 미학적 퍼포먼스가 부조리극에 가까웠다면 김형대의 지향은 대상에서 환기되는 시적 정서였다. 그래서인지 1960년 ‘벽동인’과 같은 전위 미술가로서의 분명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김형대의 미술은 이후 한국 현대미술사 서술에서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미술을 전위와 보수의 역학적 좌표로만 파악하려는 미술사가의 성긴 그물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서구적 모더니즘 담론으로 무장했던 현대 비평가들의 맹점(盲點)에 그의 작업이 포섭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형대의 이번 회고전은 그가 서정주의와 물질성이라는 근대와 현대미술의 두 논제를 규합하려 분투해왔음을 증명한다. 그의 목판화는 국전 추상화 장르의 진부함을 깨고, 조선시대 회화의 은은한 배채법(背彩法)과 다색 목판화 기법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이었다. 화가는 지금도 어엿한 현역 작가로서 다색 목판화와 채색 부조 회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기억은 반복적 해석의 행위라 했다. 김형대의 긴 화업의 첫 줄에 선명한 화인을 남긴 ‘환원’이 정박되지 않은 기표인 것처럼 말이다. ●

김 형 대 Kim Hyungdae
1936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를 지냈다. 1965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여 회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1982년 제2회 공간국제판화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작업한다.

ARTIST REVIEW 이숙자

 순지에 암채130.3×162cm 2010

<푸른 보리밭 – 황소> 순지에 암채130.3×162cm 2010

작가 이숙자는 채색화의 뿌리가 우리의 전통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채색화의 정통성에 대한 강한 신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채색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숙자의 작품에 드러나는 화려한 색채와 선명한 주제는 한국적 정서와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양식의 상징으로 굳건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채색화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요기로운 초록빛 환영과 자아

류철하 |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3.25~7.1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은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한국화부문 세 번째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사 정립을 위해 진행하는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작가 이숙자는 수묵화 중심의 한국화단에서 전통 채색화의 명맥을 유지해온 독보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숙자의 회화적 연혁을 약술하면,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천경자(千鏡子, 1924~2015), 박생광(朴生光, 1904~1985)과 김기창(金基昶, 1923~2001) 같은 근대기 한국 채색화의 맥을 이은 대표적인 스승들에게 지도를 받았고,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을 통해 데뷔한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바 있다.
이숙자는 전통채색화에 대한 탄탄한 기초와 현대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 지속적인 전시를 통해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이숙자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은 <보리밭과 이브>다. 이 작품을 통해 강렬한 대비를 통한 인상이 대중에게 오래 깊이 각인되었다. 보리를 통한 추억과 향수, 보리 잎이 주는 꺼칠꺼칠함, 일렁이는 눈부신 푸른빛과 추수기의 황금빛 등은 전쟁과 재건, 경제개발 시기를 살아온 세대에게는 하나의 기호가 되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숙자의 ‘보리밭과 이브’는 화면 전면을 가득 채운 보리밭과 함께 누드의 이브라는 강렬한 파격과 도발을 동반한 것이었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푸르고 거친 보리의 생동하는 색과 압도적인 군집의 힘, 낱알과 수염의 세밀한 묘사라는 공력(功力) 위에 체모를 과감히 드러낸 채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용감히 누운 근육질의 육체미 여인은 <이브의 보리밭> 시리즈로 탄생했다. 꽃과 나비, 고독과 환상의 누드 여인상은 <이브의 보리밭>에 와서 ‘생명에 대한 직설적 예찬’과 숙명을 거부한 당당한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여인의 자화상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는 ‘벌거벗은 이브’에 대해 “살아오면서 갈등했던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의식이 형상화된 나의 내면”이라고 하였다. 보리밭과 여체라는 두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창조물로서 여인의 몸이라는 찬미와 함께 낙원 추방과 원죄의식이라는 태곳적 풍경을 자극한다.
이숙자가 구성한 보리밭과 이브는 한국적 정서와 미의식이라는 자연의 재현적 풍경(보리)과 함께 강렬한 누드상을 통한 초현실의 감정(이브)을 자극함으로써 현대, 여성, 전통, 채색이라는 미술적 시각 틀을 깨뜨려 나간다. 이숙자는 풍부한 자의식과 강렬한 주관, 깊고 다양한 색감으로 구성된 화면으로 대상을 끌어들여 간략하고 요체화된 풍경(보리밭과 이브)으로 완성시켜 나간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조형성과 색감을 지닌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은 한국화와 채색화가로서 작가의 도정, 한국화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미술사에서의 채색화의 정통성 수립이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 작가가 도전했던 과제들을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이숙자는 첫 개인전인 1973년 <이숙자 한국화전>에서부터 한국화라는 명확한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전통과 우리 정서의 추구에 집중하였다.

3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광경

3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3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초록빛 환영 _ 이숙자전> 전시광경

한국 채색화의 정통성
이숙자의 초기작엔 색지함, 목안(기러기), 태극선, 족두리, 댕기, 십장생도, 고가구 등 전통 민예품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민속적 소재의 독특한 색채감각은 규방과 여인의 다감한 정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달래색, 배추색, 옥색, 자주색 등 깊게 가라앉은 애환의 색감들은 조선시대 여인의 시름과 한숨, 애환 어린 정서를 상기하게 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애환 어린 정서가 이후 보리밭 작품을 하면서도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숙자는 원색의 오방색이라는 민속적 기물에서 꽃으로 소재와 관심이 추이되면서 간결하고 극명한 묘사와 환상적인 톤의 색채가 많아졌고, 색감이 풍부하고 다양한 꽃은 색채의 발견이라는 문맥 속에 더없는 소재가 되어 주었다. 한국미의 정체성을 색채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이숙자에게 꽃과 여인이라는 소재는 최상의 것이었다.
이후 이숙자는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보리밭이라는 주제를 택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민속품을 통해 한국미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작가가 추구한 한국적 정서와 미의식은 보리밭에 이르러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숙자에게 있어 보리밭으로 상징되는 초록빛 색채에 대한 경험, 보리밭에서 만난 초록빛 환영의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것이었다.
이숙자는 “포천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지막한 언덕 등성이에 넓게 펼쳐진 보리밭을 보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보리수염은 초록빛 안개처럼 자욱하게 느껴졌다. 밝은 회청색의 보릿대와 연둣빛 보리이삭 그리고 옆으로 힘차게 뻗은 잎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전생에서나 들어본 듯 느껴지는 뻐꾹새와 종달새 소리가 환상적이었다. … 잠시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음향도 바람도 정지된 한 폭의 짙은 녹색 보리밭은 요기스러운 초록의 공기로 싸여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제비나비가 펄럭펄럭 그 초록빛 대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가슴속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가 한여름철 소나기로 씻긴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고 밝히며 “보리밭이 슬픈 빛 정서를 띠면서도 기氣가 살아 요요한 초록빛을 띠는 것은 그러한(민중의 양식이 여물어가는) 희망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보리밭을 만나면서 민족적이고 민중적 양식의 상징, 고난과 좌절을 넘어선 굳건한 생명력의 발아와 힘을 발견한다. 그리고 보리밭과 함께 여자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습과 문명에 도전하는 여인의 모습을 상징화했다.
하나의 전형과 양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공력을 고스란히 담을 대상이 필요하고 강인한 탐구욕과 견고한 자기세계 그리고 의지가 요구된다. 이숙자에게 있어 보리밭과 이브는 한국적 정서와 함께 열정과 공력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이브는 강렬한 주체의 상징이 되었다. 채색에 대한 온갖 왜곡을 딛고 석채를 통한 채색의 고유한 색감과 깊이, 그리고 자기세계의 전개는 ‘다이내믹’한 현대사 속에 또 다른 정체성이 되어 새로운 공감을 제시하고 있다. ●

이 숙 자 Lee Sookja
1942년 태어났다. 홍익대학교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교수로 재직(1993~2007)하다 정년퇴임했다. 1973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6회 개인전을 열었다. 제5회 석주미술상(1994), 제5회 대한민국미술인상 – 여성작가상(2011), 제13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 미술진흥부문(2013) 등을 수상했다.

NEW FACE 2016 김선영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집중해 관찰하지 않아도 익숙한 주변 풍경이 ‘문득 발견’ 될 때가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일상에 무심해지지만 때론 어쩌다 발견하는 변화에 유난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난스러움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여기 김선영의 회화가 있다. 거기에는 그녀가 늦은 밤 귀가를 위해 걷는 길, 서너 정거장 남짓의 거리를 일부러 걸으며 발견한 풍경이 담겨있다. 특별히 별스러운 대상도 아니다. 공터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토사, 폐수영장, 빛이 바랜 회색 벽, 넝쿨 등이 보인다. 평소에는 그 존재조차 의식되지 않을 그것들이 작가의 관찰과 붓질을 거치자 이상하리만큼 큰 불안감을 표출한다. 불안을 야기하는 대상이 아닌데도 편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김선영 작업의 특징인듯 하다. “불안과 불안정함은 누구나 감추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단념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나는 미완의 땅에서, 개척의 변두리에서, 현재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닮은 풍경을 만난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나의 감정, 나의 역할, 나의 자리를 낯선 땅으로부터 느낀다.”(작가노트 중)
작가와의 대화 중 가장 확신에 찬 말은 “저는 어떤 상황, 대상에 제 감정을 잘 이입시켜요”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내면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일 수도 있겠고, 어두운 밤일 수도 있겠다. 모두 그 세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가득한 대상이다. 그 불완전하고 어두운 공간의 작업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에게서 측은함을 느꼈다는 작가다. “완전한 객관화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것은 또 다른 주관의 생성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김 작가는 스스로 더 강해지거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객관화하여 혹독하게 다그치기보다는 자기연민의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닐까? 집단에 의해 버려진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추스르고 싶은 것은 아닐까?
“몇 번의 휴학을 거치면서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석사 청구전을 앞두고 고민이 극에 달했죠. 그 당시 6개월이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그 직전 시기에 작가는 사실 사진을 긁어 표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다만 그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었다. 이는 지금의 작업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포기는 다른 선택을 의미한다. 작가는 그러한 전환에 결코 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김선영은 파주 헤이리로 작업실을 옮겼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그곳에서 부유하는 자신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떤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그저 괜찮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릴지도 모르겠다. “고민이 없어지는 것이 고민”이라는 작가의 고백을 들어보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황석권 수석기자

김선영
1984년 태어났다. 성신여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총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과 광주, 부산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제7회 겸재 내일의 작가 대상’(겸재정선미술관, 2016)을 수상했다. 현재 파주 헤이리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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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리> 종이에 채색 162×130cm 2013

 

NEW FACE 2016 김이박

물끄러미 식물을 바라본다

김이박(본명 김현영)은 작가보다 소장으로 불릴 때가 잦다. 그는 미술과 생업의 영역이 뒤엉킨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활동 영역을 잇는 매개는 단 하나. ‘식물’이다. 스스로를 ‘식덕후’라 칭할 만큼 작가의 식물 사랑은 유별나다. 식물은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주요 소재이자 본인을 투영하는 대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코스모스다. 그는 식물을 통해 각박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매뉴얼을 만들면서 사회적 관계 형성에 미학적으로 접근한다.
2015년부터 계속되온 프로젝트 〈이사하는 정원〉은 작가이자 활동가로서 그의 창작물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김이박은 의뢰인으로부터 시름시름 앓는 식물을 위탁받아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보살핀다. 그의 작업실은 식물이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는 일종의 식물병원이자 요양원이다. 일련의 과정은 화훼디자인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쌓인 식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수반되었기에 가능했다. 이 프로젝트는 식물에게서 느낀 동병상련에서 시작했다. 도시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반려식물은 ‘화분’이라는 부자연스러운 거처에서 인공적으로 생활한다. 화분 속 식물은 분갈이 혹은 주인의 이사에 따라 함께 터를 잡지 못하고 이주한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수없이 이사를 다닌 김이박의 모습과 닮았다. 자신을 투영한 그의 시선은 차츰 약하고 여린 식물을 바라보는 보호자이자 관찰자로 이동한다. ‘식물을 기른다,’ ‘키운다’는 표현에서 나타나듯 식물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위치는 상대적 우위에 있다. 말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연약한 보호 대상으로 설정하고 보살피려 한다.
한편 작가의 관찰자적 시선은 감시카메라를 활용한 작업 〈정원 cctv〉에 잘 드러난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정원이 훼손되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촬영된 영상을 관찰하며 작가의 시선은 식물의 신변보호에서 점차 식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행태로 번져갔다. 그러나 식물을 둘러싼 그의 작업이 관음증적이거나 판옵티콘의 권위적 시선과 구별되는 점은 상호적 관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관계성’은 김이박의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된다. 〈이사하는 정원〉에서 식물의 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의뢰자의 태도 변화다. 그는 의뢰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뢰자의 환경과 상태를 이해하고 식물과 의뢰자를 함께 바라본다. 이를 통해 의뢰자-식물-작가의 정서적 유대를 도출한다. 또 다른 작업 〈사물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이 작업은 관객이 지닌, 사물과 그에 얽힌 간단한 사연을 작가가 준비한 화분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끊임없는 관계맺기는 정서적 거리감을 줄인다. 한편 모든 관계의 설정은 작가의 설계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속에는 타자적 시선도 있다.
식물의 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조건은 ‘사람’이다. 작가의 작업에는 늘 식물과 사람이 공존한다. 김이박의 상호 관계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따뜻한 보호자의 감성과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이 겹치며 오묘한 감성적 변이를 일으킨다. 모든 생물은 참 복잡한 존재다.
임승현 기자

김이박
1982년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대 화훼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서울 성균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Twists and Turn〉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6월 17일부터 8월 28일까지 헬로우뮤지움 동네미술관에서 열리는 〈김데몬전〉(6.17~8.28)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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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정원〉 혼합재료, 관객의 물건 가변설치 2016

 

NEW FACE 2016 송수영

손으로 보고 눈으로 만지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 혹은 동/식물에게 작가 송수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것 같다.
“너는 어디서 왔니?”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어디서’다. 작가의 작업은 비닐봉지, 면봉, 이쑤시개 등 집 안 어딘가에 꼭 있을 법한 물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물이 기억하는 과거와 대면하여 불현듯 스치는 또 하나의 사물을 소환하고 병치시킨다. 〈향-나무〉, 〈면봉-꽃〉, 〈비닐봉지-고양이〉 등 하이픈(-)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두 사물의 관계가 다소 의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앞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연결된 것이다. 작가가 생각한 두 사물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평소 시를 즐겨 읽고 한때는 시인을 꿈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그는 ‘은유적 관계’, 다시 말해 논리적으론 설명할 수 없지만 서로를 환기시키는 관계에 주목한다.
재료에 대한 관심은 학부 때부터 있던 습성이었다. “석조 시간에 두상을 열심히 깎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저는 나무의 결이나 벌레 먹어 생겨난 자국 등에 눈길이 갔어요. 그래서 그걸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두상을 재료에 맞춰 깎았어요.” 그렇다고 작가가 재료의 물성(物性)에 집착한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재료가 머금은 과거의 흔적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 두 개를 연결하는 그의 행위가 단순히 직관과 상상력에 따른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여기엔 그가 이전부터 꾸준히 천착해온 문제의식이 배어 있다. “인간이 동물에 가하는 폭력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아요.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지금은 유해동물로 취급받고 있어요. 사실은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비둘기를 수입해서 불러온 결과인 데 말이죠.” 현재 셔틀콕과 새의 깃털로 하고 있는 작업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평범한 사물에 미세한 변화를 주어 인간의 폭력성을 환기시켰다. 이는 작가가 너무도 익숙한 일상의 물건을 주재료로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목으로 규격화된 나무, 의류로 제작된 모피, 식용을 위해 도축된 가축 등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 외의 것에 폭력을 가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물질, 색채, 형태로 환원되는 과정”이며 “너무 시각적”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차가운 감각이다. 시각의 이러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재폭력, 낯선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얗게 표백된 모피를 다시 한 번 비닐봉지 안에 넣어 밀봉하거나 셔틀콕을 마트 상품처럼 패킹하는 식이다. 즉 익숙한 폭력으로 살해된 생명을 낯선 방법으로 ‘다시’ 살해함으로써 폭력성을 강조한다.
이렇듯 인간과 사물, 인간과 주변의 관계를 다루는 그의 작업을 통해 잠시나마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잊을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직면하 인간과의 관계에서 숨 돌릴 그 ‘틈’ 말이다. 문득 사람하고도 잘 지낸다고 말하는 그의 장난어린 농담이 떠오른다.
곽세원 기자

송수영
1984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2011년 신한갤러리 광화문에서 열린 〈○-△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가졌다. 2015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다.

송수영

〈캘리포니아 삼나무 숲에 살았던 나무 – 연필로 그린 캘리포니아 삼나무 숲〉 종이에 연필 21×27.9cm 2012

 

SPECIAL ARTIST 최 병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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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모란미술관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 <응시> 전시광경

조각가 최병민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다. 해부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제작된 그의 인체조각은 정적(靜的)인 동시에 동적(動的)인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전통조각어법으로 몰두해 온 그의 작품은 그만의 독특한 조각적 형식과 함축적인 상징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넓고 광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인체에 축약해내는 침묵의 음유(吟遊)와 은유(隱喩)의 발성법과 표현법이다. 작가 최병민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최병민의 천문?인문?지문 그리고 한국 구상조각의 현실에 대한 한 소회

성완경 인하대 명예교수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게 됐는지 어안이 좀 벙벙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한 일인데 좀 늦게 일어난 것뿐이다. 좀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2년 전 그의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 그와 나눈 대화 중 ‘포기 각서’란 말에 잠시 생각이 머물렀다.(이 얘기 나중에 더 하기로 하겠다). 읽는 분들을 위해 소식부터 적는 게 순서일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이 2018년 금년에 개원 40주년을 맞아 천문과 인문, 우주와 인간의 행복한 융합을 기원하는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그 틀 속에서 소백산 연화봉 소백산천문대에 최병민의 작품 <구름을 훔친 사람>(1991)을 구입 설치하기로 했다는 기사다. 좋은 소식은 그 밖에도 더 있다. 파주의 임진각 근처 평화공원이 최병민의 작품 <평화 2>(1996)와 <해바라기>(1995)를 매입했다는 소식이다. 이 공원은 방문객들이 자연 속에서 에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테마파크형 산택로를 이미 조성해놓았으며 인간과 우주, 자연과 전통, 평화와 문화에 대한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여러 점을 앞으로 추가 매입하거나 제작 발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병민은 진지한 인식론적 자각과 뚜렷한 개성과 장인적 공력의 인체조각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과 문화에 대한 깊은 사색과 명상을 표현해온 작가다. “수천 년에 걸친 신화·토템·설화 등을 알고 상상하고 내가 추구하는 인간형의 문화를 형상화하는 게 바로 내 작업의 궤적”이라고 최병민은 말한 적 있다. 바로 그렇게 그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가 경력은 40년이 넘는다. 최병민이 1973년 대학 졸업 후 주로 발표의 장으로 삼았던 것은 화단의 경력 쌓기와는 거의 무관한, 독특한 미술공동체인 <혜화동 화실 동인전>과 서울대 미대 출신의 뚝심 좋은 재야 엘리트 예비사단 비슷한 <12월전>의 연례전이었다. 그는 조각가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15년 만인 198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제3갤러리) 첫 개인전부터 고집스러울 만큼의 독특한 개성으로 일관된 특이한 음각부조 작품들로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구름, 해골, 거품, 이무기, 거인, 사신, 눈, 물고기, 새, 철조망 같은 모티프를 등장시켜 본질적으로 죽음과 존재, 인간의 유한함과 현실이 거역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한 명상을, 체관과 허무, 분노와 연민을 표현한 작업들이었다. 능숙한 기량의 그의 음각부조에서 빛과 어둠의 교차가 거꾸로 빚어내는 볼륨의 허상 — 존재의 허공에서 존재의 환영을 읽게 해주는– 은 존재와 비존재, 탄생과 스러짐이 교차점에 불안정하게 붙잡혀 있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또다른 메타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기량과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시였다.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그 4년 후에 있었다. 이 2회전의 내용을 그의 중기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시간적으로는 1회전 이후 4년 만에 열린 전시지만 그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그의 조각작업의 강한 형식적 · 내용적 특징들이 이 전시에서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뼈와 근육만을 남기며 훑어 내려진, 밀도 높은 단순성으로 요약된 강인한 육체들, 마임(Mime)이나 상형문자처럼 거의 기호(記號)에 가깝도록 분명하게 읽히는 갖가지 포우즈나 동작들, 그리고 머리에 이고 있거나 어깨 팔, 등짝, 손끝 등에 걸려있는 구름, 초생달, 번개 따위의 우주적, 설화적 상징물들”이 그것이다(졸고, 위 전시서문. 이하 동일). 이것이 사람들이 비교적 뚜렷이 기억하는 그의 작업의 양식적 표지이다.
초기작의 기질적 색채는 그대로이나 보다 열리고 보편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작업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 이 중기작들의 특징이다. 이제 우화는 하나의 신화로, 보편적 언어와 윤리와 세계관으로 통합된 하나의 문화로 변모해가는 느낌이다. 문화의 ‘원형(原型)’을 느끼게 하는, 원형을 찾아서 그 원형을 통해 얘기하려는 예술적 장치가 다양하게 구사된다.
한국 고대문화의 샤먼적, 제의적 색채나 동양문화권 특유의 약간 기괴하고 마술적인 신비한 에너지 – 이를테면 우리는 그것을 기(氣)철학이나 단학, 18계나 봉술, 염력 등 정신의 집중과 엄격한 육체적 단련에서 나오는 에너지 그리고 바람춤이나 구름춤 달춤 학춤처럼 문화와 자연에 독특하게 어우러진 지점에서 나오는 운률의 에너지 같은 것에 연관시켜 상상할 수 있다 -, 天地人의 조화에 기반을 둔 우주관과 그것의 반영으로서의 윤리, 신화적 설화적 분위기 등 대체로 이런 것들이 그의 작품에서 한국적·동양적 문화전통의 냄새나 운률을 풍기는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상당 부분은 춤, 음악, 민간 전승놀이, 전설, 제의(祭儀) 등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전통문화의 코드들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놀이문화적인 요소의 활용은 이번 전시작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후기 작업은 그가 양평군에 작업장을 마련한 2000년 이후의 작업들이다. 앞의 시기에 비해 차분하고 정관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시회로 치면 2008년 제5회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사이 3회와 4회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들은 2회전의 내용과 양식들을 마케트로 다양하게 변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개인전의 기획자 김진하는 이 시기 작업 속 인물상들이 지닌 고요함과 경건함과 부드러움에 특히 주목하며 이것을 앞선 시기 작업과의 차별성으로 인식한다. “하늘을 경배하듯, 땅을 위무하듯, 해를 마주하듯, 비와 바람을 부르듯, 신을 맞이하듯, 운명을 바라보듯 경건하게 서 있는 사람. 머리와 어깨 팔에는 구름, 해, 달, 번개 등을 이고 두 발은 가지런히 대지를 딛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고도 강인한 육체, 절제되고 고요한 동작, 시대와 공간을 구별하는 의복이나 배경이 없는 나신의 직립. 거기에 부드러운 바람이 일며 스치는 듯, 그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김진하, 투명한 인간, 그 아름다움에의 헌사 – 최병민의 근작 ‘응시’에 대하여, 2008)
특히 눈여겨 볼것은 인체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이다. 농경적 샤먼, 노동, 놀이, 춤, 제의 등의 소재들은 여전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뼈만 남았던 인체는 부드러운 살갗과 강건한 근육으로 덮이고, 움직임과 기울임이 컸던 다채로운 동작의 변화는 직립의 수직으로 고요하게 멈추어 섰다.
팔의 동작만이 있을 뿐인데, 그것도 움직이지 않는 굳건한 하체에 의해 안정적이다. 여전히 신화적인, 그러면서도 경건한 느낌이 극대화된다. 정지(停止). 시간은 흐르되 동작은 멈추어진 상태. 그 멈춤은 스스로의 의지 혹은 의례 때문인 듯 다분히 의도적인 자세다. 사람이 이런 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의전(儀典)·의식(儀式)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동작이라 하겠다. 무거운 분위기의 어떤 중압감, 수도승 같은 비의(秘儀)적 느낌을 불러일으킨다(위 같은 글).
작가들의 경력을 보면 대개 작품 소장처가 몇 개 나열되어 있다. 최병민의 경우에는 그것이 없다. 단지 금호미술관과 모란미술관 이렇게 두 개 미술관이 있을 뿐이다. 두 미술관은 그의 초대전을 열어준 미술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대전이니까 의례적인 인사로 한 점 사줬거나 초대 비용의 정산 차원에서 작품 한 점이 미술관으로 건너간 것일 뿐 순수하고 진정한 구매라고 보긴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는 미술관이나 기업의 구매도 화랑이나 일반 고객 혹은 수집가의 구매도, 비껴간 예술가였다.
앞서 말했듯이 최병민은 1999년 고교 미술교사직 퇴직 후 양평군 서종면에 작업장을 짓고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으로 암중 모색해온 신작 40~50점을 모두어 2008년 개인전에 선보였다. 나무화랑 기획에 모란갤러리(화봉갤러리/종로구 관훈동) 초대로 연 전시였다. 1993년과 1995년에 나무화랑 초대로 연 두 차례(제3회와 4회) 개인전에 이어 13년 만에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이고 ‘응시’라는 타이틀의 주제전이었다.
앞서 1993년과 1994년에 이어 이번에도 이 전시 기획을 맡은 나무화랑의 김진하 대표는 “최병민의 조각은 묵언(默言)을 수행하는 순수한 상태의 인간형 또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직관적인 깨우침을 지향하는 수행자나 예지자로 읽힌다”며 “현자의 침묵이 절제된 조각을 통해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작업의 핵심적 맥을 짚은 말이다. 이 전시는 초대자 쪽에서 작품 한 점을 구매한 것으로 끝났다. 그에 앞선 3회전(1993)과 4회전(1995)의 경우도 작품 판매는 전혀 없이 끝났었다.
나무화랑은 다시 2011년과 2012년에 제6회와 7회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 6회전은 전시장 전경을 찍은 도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깔끔하게 절제된 디스플레이가 최병민 작업의 정신적이고 귀족적인 아우라를 그야말로 금강석처럼 투명하고 단단하게 뿜어내는 전시였다. 별로 크지 않지만 아주 알맞은 크기의 전시공간 전체가 한 작품처럼 통합된 전시였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작은 모두 마케트 크기였다. 제7회전은 ‘인간-우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관훈갤러리와 나무화랑이 공동으로 초대한 전시다. 7회전, 8회전 역시 판매 성과는 전무했다. 다만 한 평론가가 주물 작업비를 대어 한 작품에서 네 개의 멀티플을 떠내어 돈 댄 사람, 작가, 두 갤러리 주인이 각각 한 점씩 나누어 가져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였다.
2013년 서울 평창동 소재 김종영미술관에서 김영원 홍순모 김주호 최병민 배형경 등 삶의 문제를 탐구해온 5인의 조각전이 열렸다. <인간, 그리고 실존>이란 타이틀의 주제전이었다. 최병민은 이 전시에 <하늘 풍경> 과 <벽> 연작을 선보였다.
김종영미술관 최종태 관장은 위 전시서문 말미에 이 전시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사람들을 보라. 예술을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 예술행위란 무엇을 추구하는 일인가. 예술의 목표는 어데인가? 외진 빈터에서 끈질기게도 무슨 신념으로 이들은 왜 이렇게 인간의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런 의문, 그 알 수 없는 함정! 그런 길고 긴 끝없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최병민이 판화가 이상국이 타계했을 때 그 빈소에서 최종태 관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작가로 살기가 너무 힘들고 작업장에 쌓여만 가는 작품들을 보면 근심만 깊어져서 한 말일 것이다. 최병민이 제시한 방도가 폐탄광촌의 지하 공간이나 공장 공간을 손봐서 작품 저장 공간(매장 공간? 저장 후 봉인?)을 만들고 안 팔린 작품들이 쌓여 있는, 죽음을 앞둔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거해서, 작가는 작품의 ‘포기 각서’를 쓰고 국가는 그 작품들을 일단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말하면 타임캡슐 묻듯이 하자는 얘기와 유사해 보이는데)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최 관장이 나라에 건의해주십사고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생존한 동시대에 관중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냥 버리는 것도, 사후에 뿔뿔히 흩어지는 것도 견디기 힘든 심정이 있었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으리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묻어버리라’는 얘기다. 얼마나 부조리하고 웃픈(우습지만 슬픈) 얘기인가.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이며, 기질적 개성과 가치론적 세계관을 함축한 작품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그리고 전통과 자연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들, 민중적인 동시에 귀족적인 깊은 울림을 간직한 정통적인, 정공법적 자세의 작품들이 점점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것은 생물종의 멸종 위기와 유사할 정도의 미술생태계의 위중한 현실이다. 이 문제를 미술의 사회적 인식 문제 차원에서 그리고 미술 수용의 제도적 틀의 차원에서 잘 살펴보고 나아가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차원에서도 대처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서 기술한 2018년 뉴스 이야기는 한 작가의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놓였으면 좋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나의 행복한 상상이었다. 2회전 서문에서 나는 전시작 대부분이 나중에 확대해서 완성하는 것을 전제로 한 소형 작품인 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시작들이 이 같은 ‘완성’을 위한 물적 공간적 조건들을 만날 것인지는 이번 전시 이후의 작가의 행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금 최병민의 양평 작업장을 가 보라. 그리고 거기 쌓여 있는 마케트가 대부분인 100여 점의 작품을 보라. 거기 한 조각가의 비극이 만개해 있다. 이 푸른 오월에. ●

최 병 민 Choe Byoungmin
1949년 태어났다. 휘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8년 제3미술관에서의 첫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1992), 나무화랑(1993, 1995, 2011, 2012), 모란미술관(2008), 관훈갤러리(2012)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경기도 서종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최병민

2011년 나무화랑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 전시광경

왼쪽 페이지 <山> 브론즈 34×19×17cm 2011(maquette)

ARTIST REVIEW 나 점 수

조각가 나점수의 작품은 언뜻 보면 추상회화 같다. 구체적 형상이나 색채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조각엔 수많은 이야기와 섬세한 감성이 깃들어 녹아있다. 절제되고 세련된 형태와 촉각을 자극하는 표면의 질감에서 작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이면엔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대륙 횡단이라는 고된 순례의 체험에서 발현된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다.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되어 6월 17일부터 김종영미술관에서 <표면의 깊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이 열린다.

세상과 더 잘 만나기 위해 詩가 되는 공간

김은영 블루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세상을 만나는 법이 달라지고 있다. VR(가상현실) 체험 기기가 세간의 관심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이 PC와 스마트폰처럼 큰 변화를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리적 이동 없이 특정 공간에 가 있는 것 같은 가상 경험의 핵심은 프레임 없이 세상을 본다는 것에 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캡처된다. 머리를 돌리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설명되는 방식이다. 이로써 실재 세상을 실재같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각가 나점수의 작업은 압축적이다. 설명적이기보다 시적이다. 단어 하나로 정신과 몸과 마음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시처럼 그의 작품은 실재하는 세상을 내 눈앞에 하나하나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정서를, 의식을 움직여 어디론가 데려간다. 채워 보여주기보다 비워내어 맞닥뜨리게 하는 식이다.
나를 중심으로 둘러쳐진 세상을 나열하듯 보여주기보다 더는 시각으로 분석될 수 없는, 인식 밖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크기의, 밀도의 세상이 실제이고, 그 실제를 만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고정된 의식이 목적성 없이 무너지는 ‘경이’와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의식이 설명적인, 분석적인 행로를 따라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장치들을 사용한다.
나점수는 공간을 되도록 비우고 수직적인 또는 수평적인 선으로 남는 형태의 조각들을 만들어왔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나무를 사용해왔는데 이는 그 원래 모습이 위로 성장해가는 수직성을 지니고 있거니와 서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에서 곧 생(生)과 사(死)라는 이성의 범주 밖을 향해 가는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의 형상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과 발의 행위가 없는 나무 기둥의 침묵과도 같은 포즈로 서있는 인간 형상은 시시각각의 현재보다 더 크고 넓은 시공간을 품어내는 듯 보인다. 그가 만들어낸 수직의 인간형상이 그 자체로서 기념비적인 형태 자체에 주목하게 하기보다 지지대나 통로의 역할로써 그것이 서있는 물리적 공간을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그에게 조각은 형태가 아닌 공간과의 관계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나점수는 사막을 찾아다닌다. 숲이 사람을 감싼다면 사막은 통째로 드러낸다. 그에게 사막은 비어있는 거대한 공간으로, 보이는 복잡한 모든 것이 비워지고 그것에 붙어있던 소리들도 비워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모든 감각의 초점이 지평선 위에 숨쉬며 흔들리듯 서있는 자신에게 모아지는 곳이다. 광활한 수평선 그리고 그 위에 침묵하듯 서있는 생명 있는 것들이 자아내는 숭고의 감정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그는 수직과 수평으로 환원되는 공간의 언어를 가져와 관객의 의식이 작동하기 전 그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에너지 장과 같은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나점수의 조각이 이성적인 설명을 이끌기보다 느낌과 정서로 먼저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것이 바라보는 거리를 전제하기보다 거칠거나 단단함 같은 손끝의 감각을 당겨오기 때문이다. 시각적이기보다 촉각적인 그의 공간 안에서 재료들은 가능한 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나무, 철, 흙, 마른 풀, 석고, 유리, FRP 같은 대체로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며 그는 작가가 재료를 손으로 제어하는 방식을 최소화한다. 깎아내기보다 거칠게 쳐내는, 빚어내기보다 한두 번 뭉쳐놓고 끝내는 방식을 통해 재료는 본래의 물질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조각들은 본래 그 재료가 놓인 자리, 그것이 속해있던 장소의 공기까지 머금게 되는 것이다.
굵은 나무 기둥을 턱턱 쳐내 나무의 속살 한 켜를 그대로 세워놓은 듯한 조각, 작업실 주변 마른 풀들을 석고반죽으로 이겨 FRP로 만든 인체형상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작품에서 우리는 한겨울 숲에서 나무의 껍질을 만질 때 전달되는 온기, 풀숲을 흔드는 바람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추상으로 또는 형상적으로 귀결되는 것과 상관없이 나점수가 만들어내는 형태의 의미는 물질적인 표면을 통해 전달된다. 그에게 표면은 표피로 맴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출발점이 되는 끝도 없는 깊이를 지닌 것이다.

13

<식물적 사유-向> 나무 모터 철, 가변크기 2013

17 길위에서다

<~의 방향> FRP(도색) 600×120×120cm 2012

시간성 – 느린 움직임
최근 그의 작품에는 움직임을 만드는 기계장치가 추가되었다. 얇게 쳐낸 나무 기둥에 저속 모터장치를 부착해 나무 조각이 앞뒤 또는 옆으로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일정 각도 안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은 동물의 민첩한, 공격적인 움직임보다 은근하고 고요한 식물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 스스로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의한 흔들림 같은 느낌이다. 왜 이런 움직임일까? 그는 이것이 관객의 정서적 동의에 대한 실험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형태가 느리게, 곧 멈추려는 듯 더딘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것은 그 자체의 행위로 주목되기보다 공기의 움직임으로 같은 공간 안에 서있는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는 찰나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늘여놓은 듯한 느린 움직임 앞에서 유한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행위로 먼저 읽히는 드로잉 기계장치도 마찬가지이다. 검은 석탄으로 흰 종이 위에 선을 긋는 기계장치에서 작가가 무게를 둔 부분은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다. “선의 반복 행위는 표현을 위함이 아니라 의식의 속도를 지연시켜 현존을 깨우기 위함이다.”라는 그의 의도는 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아주 느린 움직임 앞에서 관객이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잊고 걸음을 멈춰 지연된 또는 확장된 시간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완성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결국 나로 돌아오게 하는 공간. 하던 대로의 생각이 잠시 흔들리며 내가 느끼는 것,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더듬어보게 하는 시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점수의 작업이다. 봐야 할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을 더 많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또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멈추고 잠시 떠나 돌아오며 보이지 않던 실재로서의 세상과 내가 더 깊게, 더 실제같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세상을 만나는 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세상과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향해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

나 점 수 Na Jeomsoo
1969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갤러리 보다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종영미술관(2009), 갤러리현대 16번지(2010), 백순실미술관(2013), 갤러리3(201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경기도 양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ARTIST REVIEW 홍 유 영

홍유영의 작품은 현실과 관계 맺고 있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오브제를 채집해서 새롭게 조합하고 재해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물과 공간의 관계는 구조적인 변형을 거치고 확장된 개념으로 탈바꿈된다. 입체미술이라는 영역을 고수하는 작가의 관심은 공간의 정치학 또는 공간의 사회경제학 쪽으로 옮아가면서 심화되고 확장된다.

홍유영의 오브제 설치, 공간, 제도는 삶을 강제 한다

고충환 미술비평

홍유영은 공간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 그 관심은 생활의 편의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덧붙여지고 해체되고 재구조화되는 공간의 생리며 생태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능태로서의 공간개념, 식물처럼 살아있는 공간개념, 이행하는 공간개념,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 전체인 부분이 만들어내는 파편화된 공간개념이 그 생태학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근작에서 그 관심은 공간의 정치학이며 공간의 사회경제학 쪽으로 옮아가면서 심화되고 확장된다. 덩달아 현실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이 더 강조된다. 공간, 장소, 영역, 경계에 스며든 권력문제, 그리고 영토의 기획에 반하는 탈영토의 실천논리(질 들뢰즈)를 가로지르면서 넘나드는 일련의 작업들이 헤테로토피아(미셀 푸코)에 대한 또 다른 한 가능성을 예시한다.
이를테면 한 평 공간 속에 물건들이 잡다하다(한 평 공간에 대한 연구). 팬과 형광등, 컵과 생수통, 반찬용기 등 대개는 플라스틱 소재의 각종 용기들, 폐 의자와 빨래건조대, 간이 사다리와 철재 봉, 투명 플라스틱 슬레이트 등등. 언뜻 보면 잡동사니 같지만, 사실은 하나하나가 쓰임새가 있는 일상 용품들이다. 이 기물들이 한 평 공간이 좁다는 듯 빼곡한데, 특이한 것은 어떤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한 역학만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점이다. 그 균형은 허술한 것 같지만 빈틈이 없고 되는 대로 쌓아놓은 것 같지만 엄밀하다. 이처럼 빈틈이 없고 엄밀한 균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 균형이 빈틈이 없고 엄밀한 만큼 구조물 중 하나만 다르게 놓거나 심지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밀려나 수도권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밀려나다 어렵사리 확보한 한 평 공간마저 대개는 임시방편이기 쉽지만, 여하튼 그나마 그 속에서 자족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공간 활용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그 긴장감의 강도는 너무 팽팽해서 외부로부터의 최소한의 간섭에도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공간이 무너지고, 삶이 붕괴되고, 존재가 내려앉고 만다. 작가의 이 작업은 이런 임시방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공간감, 긴장감, 불안감의 사회심리학적 징후 같다.
그리고 그렇게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에게 잦은 이사는 일상이다(이사). 지금은 이삿짐을 나르는 일도 전문적인 업종이 되었고 제법 번듯한 이삿짐 전문차량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이삿짐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1톤 트럭이다. 작가는 1톤 트럭의 공간 수치 그대로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짠 것을 무슨 액자처럼 벽에 걸고, 그 위에 이삿짐을 싸는 그물망을 드리워 놓았다. 그리고 그물망 안쪽에는 아마도 이삿짐에 해당할 벽돌꾸러미를 비닐과 고무 밴드를 이용해 꽁꽁 싸 놓았다. 작가의 이 작업은 타의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며 변방인의 자의식을 내재화한 사람들, 자본주의 시대의 유목민(?)에 대해서 말해준다. 인격으로부터 한갓 짐짝(자본의 페티시? 물신의 페티시?)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의 존재론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공간에 스며든 권력이며 공간의 정치학을 증언하기 위해 거리의 화분을 호출한다(균형 잡기 혹은 불균형한). 거리 정화를 목적으로 거리에 설치해 놓은 거대화분을 무슨 탑처럼 쌓아놓은 것인데, 기우뚱한 지표면 위에 그렇게 쌓은 두 개의 화분 탑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형국이 외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표면 자체가 기울어져 있어서 불안한 느낌을 준다.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균형은 불균형이 잠재하는 균형이며, 안정은 불안정이 내재된 안정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거리화분이 외적으로 거리 정화를 수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제도적인 장치 구실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인도와 차도를 구별하는 것과 같은. 그리고 그렇게 제도가 그어놓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선을, 금지를, 감시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그렇다고 정색 할 필요는 없다. 그 선은 가변적이고 더욱이 융통성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도에만 그렇지만. 이를테면 포장마차를 철거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노숙자를 밀어내기 위해서라면 그 선은 언제라도 인도 안쪽 깊숙이 침범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의 이 작업은 바로 이런 제도와 공간의 관계, 제도의 유기적인(융통성 있는?) 공간학에 대해서 말해준다.

Water Containers, 2016 (3)

< A Space Made by Thirty Water Containers > 20L통 물, 가변크기, 2016

공간, 자본은 자연을 착취한다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제도가 삶의 질을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자본이 자연(또 다른 공간개념인)을 착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Squeeze). 사람들은 자연을 압착하고, 짜내고, 끼워 넣고, 쑤셔 넣는다. 그리고 때로 강요하고, 갈취한다. 공기 정화를 위해서.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장식을 위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 실체를 결여한, 스펙터클한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그러고도 더 이상 갈취할 게 없다 싶으면, 자연은 구석에 쑤셔 넣어진다. 이를테면 쓱 봐도 불편하겠다 싶은 천장에 바싹 붙은 좁은 선반 위에. 화분보다는 차라리 팬이 있으면 적당하겠다 싶은 구석에. 이 작업은 구석, 변방, 잉여와 같은 자본주의의 타자들의 지점을 예시해준다. 자연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물신에 의해 변방으로 내몰린 것들이며 폐기될 것들의 운명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자본은 일종의 유사 풍경 내지 의사 자연을 그려 보이기도 한다(구축된 풍경, 입체의 경우). 이를테면 낡은 테이블 위에 소주병이며 맥주병 그리고 우유병과 기타 각종 음료수 병들이 첩첩이 쌓여있거나 배열돼 있다. 여기서 테이블은 한 평짜리 공간처럼 현대인의 자기 공간에 대한 자의식 내지 욕망을 상징하며, 낡은 테이블을 지지하고 있는 네 개의 긴 다리는 불안정한 공간인식과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테이블 위에 쌓인 병들이 산이나 숲과 같은 유사 자연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대개는 녹색과 갈색 계열이 어우러진 음료수 병의 색깔이 자연의 그것을 닮아 있는 것에서 착안 했을 터이다. 그리고 음료수 병들이 인공적인 스카이라인을 그려내면서 빌딩숲을 연상시킨다. 병과 숲과 빌딩이 오버랩되는 것을 통해 자연을 흉내 내는 현실(이를테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아파트)을 풍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테이블은 공간이 되고 병은 숲이 된다. 아파트촌이 산이며 자연으로 둔갑한다. 자연을 흉내 내면서 억압적인 현실을 감추는 자본주의적 풍경, 물신적 풍경, 욕망 풍경이 된다.
이처럼 자본주의 물신은 자연을 상품화하고,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인공자연으로 자연을 대체한다(대체자연?). 그리고 현대인은 그렇게 대체된 자연이자 상품화된 자연을 소비한다. 이 소비재들 중에는 유원지나 휴양지와 같은 비교적 자연의 원형에 가까운 것도 있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관광엽서에서 보던 것과 같은 이미지로 환원된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런 자연 이미지야말로 가장 흔하게 소비될 것인데, 그 일면을 공사장 가림막에서 볼 수 있다. 공사장 가림막으로는 여러 이미지가 소용되지만, 그 중 전형적인 경우로 치자면 단연 자연 이미지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공사장 가림막은 공사 현장을 가리기 위한 것이지만, 상징적으로 자본주의 기획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가리기 위해서 자연 이미지가 호출된다. 여기서 재개발 현장에 맞물린 이권의 크기가 클수록,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처지가 심각할수록 자연 이미지는 더 생생해 보이고 더 그럴듯해 보여야 한다. 이미지 정치학이며 꿈의 산업이 더 잘 가동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작업(구축된 풍경, 평면의 경우)은 숲 이미지를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숲의 부분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 콜라주된 풍경이다. 좀 더 들여다 보면 그 속에 건물이 숨어 있는데, 건축 현장에 비치된 조감도 그대로 부분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콜라주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숲 이미지지만, 사실은 그 속에 건물 한 채가 숨어있다. 겉으로 보기엔 자연 같지만, 잘 보면 그 이면에 숨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보인다. 마치 가림막 자체는 자연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자본주의의 치부를 숨겨놓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작가는 공간의 사뭇 다른 해석 내지 용법을 예시해준다. 여기에 물통들이 있다(30개의 물통이 만드는 공간). 각 20리터의 물이 담긴 하얀 플라스틱 물통 30개가 가장자리 선을 따라 삼각형의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물통은 아마도 주차금지와 같은 임시방편의 목적을 위해 급조한 장애물, 일종의 생활미술이며 생활 오브제에 착안한 것일 터이다. 그 자체 자기 공간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이며 자본주의의 욕망을 상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통들이 그려 보이는 삼각형은 모서리 공간이며 자투리 공간을, 잉여 공간 혹은 공간의 잉여를 상징할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 30개의 물통인가. 30이란 숫자에 어떤 상징적 의미라도 있는가. 세월호 현장에서 30명의 아이를 구한 의인? 한 의인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순진무구한 30명의 아이?
이 작업에서 작가는 공간개념을 매개로 모서리와 자투리 그리고 잉여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타자들의 지점들을 전유한다. 조르주 바타유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경제성이 없는 것들을 변방으로 내모는데, 그것들을 잉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잉여는 자본주의의 배타적인 논리와 억압적인 욕망이 만든 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그 외상을 증언하기 위해서 호출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30개의 하얀 물통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주검을, 순진무구한 죽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

홍 유 영 Hong Euyoung
1975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갤러리-윈도우갤러리, 갤러리 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07년 뉴욕 폴록-크라즈너 재단(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후원으로 뉴욕 ISCP 레지던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2010년 영은미술관 7기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NEW FACE 2016 라선영

인간을 말하다

더 이상 ‘조각’이라는 장르 개념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설치, 영상 등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미술계에서 나무로 인체 형상을 제작하는 라선영의 작업은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작업은 아니다. 어쩌면 나무로 만든 인물조각이 전통적이라는 인식은 어디까지나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할 뿐이다.
인간의 다양한 행태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70억 명의 인물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나무를 깎는 행위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가장 잘 맞는 표현방식이다. 나무 특유의 따뜻함도 인물 형상과 잘 어울린다. 그녀가 만든 인물조각은 특별한 기교도 디테일도 없다. 하지만 채색 작업을 통해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여중생 등 조각 하나 하나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작가는 나무 특유의 물성을 압도하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사람 형태라고 인식할 만큼만 깎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모든 작품은 그녀의 평생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은 그 시대의 삶의 풍경을 반영한 거대한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런던>, <서울, 사람> 시리즈가 주변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풍경이라면 <빔(Beam)>, <타워>, <벽(Wall)> 시리즈는 인간의 내면세계, 특히 욕망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인물조각은 당대의 열망 또는 염원을 그대로 담아낸다. 예를 들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석기시대 다산의 상징이었고, 거대한 동상이 다수 제작된 시대에는 이데올로기 전달이 중요한 목표였다. 30cm 남짓한 크기로 바닥에 낮게 배치된 라선영의 목조 군상은 신이 사람을 내려다보듯 관객에게 전지적 시점을 부여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작가에게 조각품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그것들이 연출된 상황도 중요하다.
6월 카이스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반짝이는 것들>에는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모두가 주목받고 싶어하는 동시대 세태를 담아내기 위해 목조로 제작한 신부(新婦) 형상을 도자기로 대량 제작했다. 깨지기 쉬운 재료인 도자기는 현대인의 연약한 자아와도 맞닿아 있다. 도자기로 만든 신부 부대를 바닥에 깔고 천장에는 반짝이는 종이로 만든 낙하산 부대를 매달을 계획이다. 능력이나 자질 없는 낙하산 인사처럼 이들 형태는 반짝여서 눈에 띄지만 옆에서 보면 제대로 안보일 만큼 얄팍하다. 이처럼 동시대 삶의 모순을 담아내다 보니 라선영은 목조각이 아닌 새로운 표현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재료적 특성, 표현방식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슬비 기자

라선영
1987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영국왕립예술학교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대중의 새발견>(문화역서울284), <플라스틱 신화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에 참여했다.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카이스갤러리에서 3번째 개인전 <반짝이는 것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나무에 채색 가변 크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광경

<타워> 나무에 채색 가변 크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플라스틱 신화> 전시광경

NEW FACE 2016 김하나

불안전한 시대의 온화한 풍경

고요한 풍경, 느슨한 움직임. 새하얀 빙하는 세월의 흔적을 겹겹이 담고 이동하며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작가 김하나는 일상과 동떨어진 백색의 빙하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는 빙하가 지닌 수만년의 시간과 하얀 빙하 벽에 흡수되고 산란되는 수많은 빛과 빙하 층의 결, 사이의 틈과 구멍에 집중했다. 그는 실견한 빙하를 캔버스에 옮기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본 빙하 이미지와 영상자료를 통해 그만의 빙하를 상상한다. 실견하지 않은 물질을 그리다 보니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거대한 자연에 억눌리지 않고 재해석할 수 있는 해석의 자유로움을 얻는다.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모습을 접하니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지 않고 미시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각적 미학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빙하의 새하얀 ‘색’은 작가가 빙하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다. 흰색은 빛을 머금고, 내뿜으며 빛의 스펙트럼을 키우는 특징이 있다. 빙하 주변에 빨간 토양이 있으면 빙하는 붉은 빛을 띤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흰색은 다양한 옷을 입는다. 작가에게 빙하는 프리즘과 같다. 빙하가 빛을 흡수해 새로운 색을 뿜어내듯 작가는 순백의 캔버스를 다양한 색의 온도로 채운다. 흰색과 다른 색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그의 작업을 안온한 분위기로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다. 그의 작업에 차가운 빙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빙하가 바다를 부유하듯 안단테로 그어진 붓의 속도감과 봄날의 꽃망울 같은 따뜻한 색이 유독 많이 사용됐다. 차가운 빙하가 아니라 따뜻한 빙하다.
빙하가 지닌 시간성은 작가의 불안감을 표현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는 ‘도구’로 빙하를 선택한 데에는 그것이 지닌 불안한 운동성과 시간성도 한몫 한 듯하다. 빙하풍경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물 위에서 천천히 흐르고 서서히 변화한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내릴때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소멸한다.
작가가 가진 불안감과 빙하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왜 빙하일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질문은 작가 스스로도 자주 던지는 물음이다. 처음 시작은 개인의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졸업 후 작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를 찾고 안정이 되면, 그때 작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작업 속에서 안정을 찾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빙하는 곧 시간의 유한함을 나타낸다. 젊은 작가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작업과 동행하는 숙명과 같다. 어쩌면 작가는 빙하의 가변성에서 그가 느끼는 불안함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에는 2년 반 정도 준비한 작업이 출품됐다. 젊은 작가의 개인전 준비기간으로 꽤 긴 시간이다.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에 불안감은 느끼지만 조급함이 없어 보인다. 느리게 흐르면서 다양한 색을 머금고 풀어내는 빙하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물론 앞으로의 작업에서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도, 작업을 해나가는 속도에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인터뷰 내내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로서 작업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그에게서 그림에 녹아있는 찬찬한 부드러움과 침착함이 느껴졌다. 작업의 소재나 주제가 바뀌더라도 작품을 닮은 그의 모습이 작업에서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임승현 기자

김하나
1986년 태어났다. 첼시 런던예술대학교 순수미술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2015년 커먼센터 그룹전 〈오늘의 살롱 2015〉에 참여했고, ‘2016년 Shinhan Young Artist Festa’에 선정되어 5월 2일부터 6월 8일까지 신한갤러리 광화문에서 개인전이 열린다.

〈 Untitled 〉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16

〈 Untitled 〉 캔버스에 유채 130.3×162.2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