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겹의 미학 1,2부
6.1~7.15/7.18~8.31 복합문화공간 에무
김영종 | 복합문화공간 에무 대표
바그다드의 알무타나비로(路)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 거리다. 고서를 파는 상인이 음유시인처럼 책 속의 구절을 읊고 있는 모습이 <페이퍼로드> 영상에 나온다.
“나는 장님조차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행실이 바른 자이며 귀머거리조차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질책하지 말지어다. 그런 나도 이미 잊고 있었다.
내 유년의 고향 바그다드, 너의 눈은 마치 잠든 태양과 같구나.”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동서로 전파되면서 지역적 특색을 띠게 되는데, 한편으로 그 지역의 문명 역시 지역화된 종이에 반응한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전통적으로 한국화가들은 닥종이의 하나인 장지에 그림을 그렸다. 장지에 제대로 색을 내려면 수십 번의 덧칠이 필수적이다. 많게는 30~50번 정도 칠함으로써 밑에 칠한 색들이 우러나와 색감의 깊이를 자아낸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색상의 어우러짐이 생겨난다. 이 아름다움이 ‘겹의 미학’이다. 바탕 재료인 종이가 질기고 단단하지 않으면 이 기법(장지기법)을 수용할 수 없다. 장지는 가재수건으로 심하게 닦아내는 것까지 모두 포용하고 견디는 종이다.” 〈겹의 미학전〉을 6회째 이끌어온 작가 김선두의 말이다. 그런데 겹은 물질의 특성이긴 하지만 미학은 아니다. ‘겹의 미학’과 ‘장지’는 한국화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예술론’과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형식적 특성을 갖춰야만 한다. 이와 관련한 고민이 위의 아포리즘을 되뇌게 한다.
“내 유년의 고향 바그다드, 너의 눈은 마치 잠든 태양과 같구나.” 바그다드 시인은 왜 고향을 잊고 있었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의 영혼이 서구 지식과 문화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아마 바그다드 시인의 회한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내친김에 이런 가정을 해본다. 그는 중세의 어느 대학에서 유학하고 수도원에서 정진한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플라톤의 이데아에 깊은 영향을 받고, 교부철학 혹은 스콜라철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이 가정은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구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한 말에 신세지고 있다.
‘겹의 미학’의 특성을 생각할 때, ‘미의 본질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순간 미로에 빠지게 된다. 미뿐만이 아니라 진이든 선이든 그 무엇의 본질을 묻는 자는 이데아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데아 세계는 질문자의 영혼을 잠식한다. 질문자의 전두엽에 내려앉은 비둘기의 부리에는 ‘본질은 영원불변하며 사유 속에만 있다’는 메시지가 물려있다. 이제 그는 ‘미의 본질’을 오직 사유 속에서만 탐구할 준비를 갖춘 것이다. 특히, 식민지 지식인에게 플라톤의 이데아는 두 눈 뜨고 꿈꾸게 하는 마약과 같다. 먼저 고향(고국)의 현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은 환영’임을 밝혀서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했던 철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왔다. 이때의 본질은 자연과학의 대상이 아닌 사랑, 미, 자유 같은 정신적 대상에 대한 것이다. 정신적 본질은 누군가 묻지 않으면 알지만 그것을 설명해야 할 때는 더 이상 알지 못해서 우리가 상기해내야 하는 어떤 것인 까닭에 환영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사례를 관통하는 ‘공통된 무엇’을 추출할 수 없으므로 결국 미의 본질을 말하려면 눈을 감고 조용히 상기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본질을 순수하게 상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환영에 붙잡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짜장면은 맛있다는 경험을 상기하는 것과 그 짜장면은 맛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기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미의 본질을 설명하려 할 때 실은 그것에 대한 믿음을 상기하려 애쓰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환영이 나타난다. 질문자가 일단 이데아의 망상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 많은 것이 해결된다. ‘미의 본질’을 찾아 헤맨 서양예술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예술론은 ‘모더니즘 회화’와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로 구성되는데, 전자는 마네의 인상파부터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까지, 후자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 이후(1964~)를 가리킨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주창자인 아서 단토가 앤디 워홀의 〈브릴로박스(비누상자)〉를 가리키며 ‘예술의 종말’을 선언했을 때, 그 대상은 팝아트 이전의 모든 재현예술이었지만, 사실상은 ’모더니즘 회화론’을 펼친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린버그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모더니즘 이론가다. 아서 단토는 그를 단번에 사형장으로 보내버렸다. 모더니즘과의 전쟁에서 단토는 부친인 크로노스(그린버그)를 살해한 제우스가 된다.
그러나 이 세력교체는 어디까지나 올림푸스 세계의 쟁패전에 불과하다. 이데아의 늪에서 빠져나오면, 현란하기 그지없는 두 신의 이론이 실제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을 알 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이데아’의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겹의 미학’은 이런 서구 미학세계에 더 이상 주눅 들어 있을 수 없다는 변방인의 자각이다. 가장 반인공적인 예술, 예컨대 숲의 예술이기 때문에 현대예술의 대안으로 모색될 수 있다.
르네상스의 사실주의, 근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컨템퍼러리의 다원주의를 일관하는 정체를 말하라면, 숲(자연)을 지배하기 위한 도시의 예술이다. 이것은 휴머니즘에 연원을 둔다. 휴머니즘은 사전의 정의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인종,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를 초월한 사상이 아니다. 휴머니즘은 인간이 인간을 적대시해서 나온 사상이다.1
휴머니즘에 입각한 미학은 오감 중에서 시각을 가장 중시하는데, 그것은 이성을 중시한 결과다. 이를 반증하듯, 그린버그는 공간을 이해하는 데 촉감보다는 시각이 훨씬 용이하다고 했다. 모더니즘 미술의 완성인 추상미술은 통일성과 완전성에서 시각이 촉각적 자연을 대신함으로써 자연의 본질과 미술의 본질의 일치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추상미술이 이 시각성 우위를 전달하는 데 실패할 때, 그래서 한낱 장식이 되어버릴 때 ‘인간성을 말살한’(dehumanized) 미술로 변질된다고 했다.2
그러나 나에겐 그 역이 성립한다. 시각이 촉각적 자연을 대신하기 때문에 되레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이 역관점을 대담하게 회화로 표현한 화가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눈(시각)이 있는 얼굴을 붓으로 뭉개버렸다.
그린버그는 형식주의 미학을 펴기 위해 칸트를 들고 나왔다. 그가 칸트를 내세우며 ‘내재적 비판’ 내지 ‘자기비판’을 이론적 무기로 삼았지만, 이는 칸트의 ‘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이 논의를 길게 할 수는 없다. 칸트 미학의 ‘형식’이 형식주의 미학의 ‘형식’과 다를 뿐 아니라 상반된다는 점을 살피기에도 지면이 부족하다. 칸트 미학의 ‘형식’은 주체가 대상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주관에 의해 대상에 부여된 것(형식)이다. 이때 대상은 물자체의 표상이다. 대부분 그렇듯이 물자체와 이데아를 혼동하는 순간 형식주의의 미혹에 빠져들고 만다. 칸트 미학의 ‘형식’이 형식주의 미학의 ‘형식’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예를 드는 게 가장 빠를 것이다. 같은 나무를 보지만 고양이가 보는 나무와 인간이 보는 나무는 전혀 다르다. 고양이는 일단 컬러를 볼 수 없고 형체도 다르게 본다. 실제로 이 나무가 어떤 존재인지는 각자(고양이와 인간)의 주관적인 지각 외에 ‘본체로서의 나무 그 자체’(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그것(물자체)을 가정하고 사유할 수는 있다. 따라서 물자체는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현실의 모든 사물에 실재한다.
반면, 이데아는 관념 속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물자체와 다르게 그 본질을 아는 게 가능한 개념이다. 우리가 다 아는 이데아를 부언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므로, 20세기의 형식주의를 설명함으로써, 이데아가 형식주의에서 추구하는 바로 그 형식(형상)임을 밝히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20세기 전반기를 휩쓴 형식주의는 수학에서 시작하였고 수학에서 좌절했다. 러셀과 힐베르트는 자연수에 의존하지 않는, 오직 수학적 형식으로만 구성된 수학의 체계를 완성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더 이상 자연수라는 기초를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수학적 실재도 존재하지 않음을 괴델이 증명함으로써 형식주의의 이상은 파산했다. 우리의 논의에서 자연수는 자연/구체/실재에 대입된다. 자연에 의지하지 않은, ‘추상’으로만 된 ‘형식’에 대한 욕망이 형식주의를 만들었다. 휴머니즘이 나아가는 종국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칸트 철학은 형식(=형상)/이데아에 대한 탐구가 오류를 낳는다고 해서 그것을 형이상학으로 부정했다. 칸트는 인식 가능성의 한계를 철저히 설정했다. 칸트 철학의 ‘형식’은 초월계가 아닌, 자연에 속해 있는 물자체의 탐구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사실, 칸트는 이성의 시대(휴머니즘)에 자연사적 관점(반휴머니즘적 관점)을 정립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이에 반해 그린버그의 ‘형식’은 자연(촉감)을 정복하기 위해 이성(시각)이 추구한 이데아(형상)였다. 따라서 형식주의 미학의 형식은 실재하지 않은 환영을 좇기 위해 추상에 매달린 것이다. 그런데 추상으로 향하던 지난 예술계를 돌아봤을 때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큐비즘, 추상표현주의에 속하는 작품들이 과연 형식주의 이론으로 묶일 공통점을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단지 믿음일 뿐이 아닌가? 그린버그가 형식주의예술의 혁명으로 선언했던 피카소의 큐비즘이 정치성이 없는 순수한 자기지시적인 작품인가? 대답은 간단하게 “No.”
2차대전 후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모든 논리를 환영했다. 여기에 부응한 것이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적 모더니즘론이다. 그 자신이 발굴한 잭슨 폴록을 등장시켜 그의 작품을 큐비즘의 한계를 돌파한 ‘열린 회화적 추상’이라고 극찬함으로써, 문화 종주국으로서 프랑스, 파리의 영예를 역사화하고, 그 역사의 계승자로서 미국, 뉴욕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3 그린버그는 ‘추상미술’을 수호하고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더니즘 예술론의 계보를 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생명으로 삼는 예술의 순수성(형식주의)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1960년대 초, 비평가로서 절정에 오른 그린버그에게 황제의 자리는 영원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제국도 분열이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미술양식이 백가쟁명처럼 쏟아져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단토가 ‘예술의 종말’(1984년)을 들고 나와서 불안한 모더니즘의 토대를 파괴해버렸다. 붕괴된 토대는 ‘예술의 본질에 관한 내러티브4 ’ 였다. 그것은 20세기의 2/3를 지배한 형식주의 이념이었다. 단토의 문제제기는 본질주의의 거부란 점에서 일견 우리의 비판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단토의 논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겹의 미학’은 훨씬 명확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단토는 ‘새 시대 예술’(컨템퍼러리 아트)의 양대 축으로 ‘의미’와 ‘해석’을 제시했다. 1964년 앤디 워홀 이전의 구시대를 ‘내러티브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모더니즘 시대를 이데올로기의 독단이 강요되고 내러티브에 의해 통제, 검열되는 시대로 혹평했다. 단토의 동시대 예술에서는 모든 예술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예술이 종말 이후에 맞는 해방의 현상이라고 했다. “똑같은 상품상자가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단토는 이 물음이 새로운 철학을 요구한다고 믿었다. 예술작품이 어떤 외관을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 외관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진정하게 해석되기 위해서 ‘철학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철학’을 즉, 작품에 대한 전제 없는 철학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철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단토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참된 철학적 발견은 다른 것보다 더 참된 예술은 없다는 것, 그리고 예술이 반드시 그래야 할 단 한 하나의 방식과 같은 것은 없으며, 모든 예술은 동등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진술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지 새로운 예술철학에 대한 정의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술론이 모더니즘론에 대한 반동 이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단토는 자신이 동시대에 대해 예언한 탈헤게모니(또는 아나키즘) 문화가 얼마나 긍정적인지를 마치 천국이라도 도래한 양 찬양한다. 그러나 탈헤게모니는 전혀 민주적이 아닐뿐더러 신정(神政)에 가까운 정치적 이념이다. 현대자본주의하에서 자유방임 상태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작가가 예술의 경계에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이 작품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면, 철학자가 해석을 맡고, 대중은 철학자의 해석에 인도된다. 의미는 해석에 의해 결정되는데, 철학자는 비평가이므로, ‘보이지 않는 손’은 비평가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는다. 이 구조를 확대하면 철학자가 통치하는, 플라톤의 국가가 모델인 제국5 이 등장한다.
이것은 모더니즘을 독재로 비판했던, 또 다른 독재다. 모더니즘 비평가든 컨템퍼러리아트 비평가든 사실상 모두 이데아를 이념으로 하는 것이다. 전자는 구조 안에서, 후자는 구조 밖에서 이데아 세계를 구현하려는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단토 예술론의 핵심은 ‘내러티브’를 일소함으로써 재현을 ‘의미’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는 그가 비판한 ‘형식주의’에 대해, 스스로가 그 쌍생아임을 입증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때 ‘의미’는 본질에 대한 또 다른 내러티브일 뿐이기 때문이다. 단지 ‘의미’가 절대적 본질에서 그 본질의 파편으로 분산돼 마치 자유, 해방인 양 위장한 것이다. 수잔 손탁은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의미)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라면서 해석(의미)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 했다. 바그다드 시인의 고향은 사람, 삶, 자연이 교직된 곳이다. 그곳이 현대적 도시로 개발되면 이데아와 형식만 남고 ‘생’은 사라진다. 그 시인과 마친가지로 내가 고향을 찾는 것은 ‘생’에 눈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치며 ‘생’의 ‘굿’! 문화와 ‘겹의 미학’의 관련성을 일견해 보겠다. ‘굿’은 진동 속에서 대상과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대상을 주체화’한다. 전통적인 장지기법이 우리 민화(民畫)에 연원을 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민화는 샤머니즘의 우주관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굿’ 문화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민화의 ‘역원근법’은 ‘굿’에서처럼 ‘대상을 주체화’한다. 원근법이 이성주의의 산물인 데 반해, 이것은 반휴머니즘과 반이성주의의 산물이다. 역원근법은 ‘겹’의 진동성과 더불어 한국화가 계승해서 탐구해야 할 테마일 것이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는 ‘<겹의 미학> 1부 넓게 읽기(6.1~7.15), 2부 깊게 읽기’(7.18~ 8.31)를 전시하고 있다.
1 휴머니즘은 타자(신 혹은 자연)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인간 내 관점 즉, 신분적 관점에서 출현했다. ‘인간’(시민)과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정하지 않은 인간’(귀족, 성직자) 혹은 ‘인간일 수 없는 인간’(하층민, 미개인)을 구별할 필요에 의해 생겨난 시대적 산물이다. 이를 출발로 ‘인간’의 정치사회적 요구를 철학화하면서 ‘이성’이 절대적 가치로 등장하고 만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가 설정되었다. (졸저, 《너희들의 유토피아》 참조)
2 《예술과 문화》(그린버그 지음/조주연 엮음, 경성대 출판부)에서 인용.
3 위 책의 역자 조주연의 서평에서 인용.
4 내러티브의 제거는 아서 단토의 예술비평에서 핵심이다. 내러티브 문제는 ‘겹의 미학’과 관련해서 다음 기회에 다룰 것이다.
5 조지 오웰 《1984년》의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