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세계 미술현장의 새 지형도 서울
미술시장 변화가 인사동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황석권 본지 수석기자
최근 10년 동안 서울의 미술현장은 지리적으로 이합집산 현상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다양화되었다. 그간 우리 미술판의 터줏대감으로 인정받았던 인사동은 주축을 이루던 갤러리가 주변 사간동이나 통의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지위를 잃었다. 반면 여타 신생 갤러리와 대안공간 등이 홍대 주변 그리고 청담동과 신사동 등 강남지역에서 개관해 예술 거리가 형성됐다. 따라서 미술현장의 중심은 와해되고 분화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인사동은 근래까지 100여 년간 서울의 갤러리가를 대표하던 곳이다. 최열 인물미술사학회 회장은 “인사동은 1930년대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서화골동을 아우르는 미술시장의 중심지였다. 대한제국기인 1897년 이래 1910년대 식민지 시절 북촌 양반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화골동품을 광통교나 19세기에 성행하던 남대문 밖 자기전磁器廛에 보내지 않고 별도의 거간居間을 통해 안국동이나 관인방(인사동)에서 매매하였던 까닭이 바로 그 장소의 차별화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차별화된 신분 계급에 맞춰 예술품에도 가치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인사동 갤러리가의 역사는 짧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서울의 갤러리가는 점차 분화되고 주변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최근 가장 각광 받는 미술거리라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선 사간동과 삼청동 등 북촌 일대다. 서울관은 2008년 건립계획이 발표됐고 2013년 11월에 개관했는데 이를 계기로 이 일대의 유동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갤러리도 속속 들어섰다. 그중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갤러리 스케이프 등이다. 또한 이곳과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있는 통의동에도 갤러리가 꾸준히 들어섰다. 팔레 드 서울을 비롯해 인사동에 있던 아트사이드, 신사동에 있던 갤러리 시몬이 이곳으로 이전했다. 대구의 유력 갤러리인 리안갤러리도 이곳에 분점을 냈다. 소규모 공간도 들어섰다. 사진 전문 갤러리 류가헌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또한 이와 가까운 곳에 복합문화공간에무도 개관했다.
강남지역은 2008년 우리 미술시장이 정점을 찍을 무렵을 전후해 갤러리가 들어서기 시작해 그 수가 증가했다. 2005년 청담동에 건립된 네이처포엠 빌딩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갤러리가 이곳에 입점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외에 신사동도 가로수길과 도산공원 등을 중심으로 갤러리가가 형성됐다. 또한 스페이스 K, 송은아트센터, 갤러리 로얄,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등 기업체가 설립한 갤러리와 미술관이 속속 들어섰다. 이제 서울의 미술거리는 인사동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 미술시장과 미술문화를 수용하는 태도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미술품을 매매하는, 이른바 미술품 유통시장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인사동과 황학동과 신흥시장인 강남 지역을 들 수 있다. 전자는 공급자가 다수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도시 재개발로 인해 구매력 있는 수요자가 몰려있는 강남지역 등으로 중심이 다변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서울은 인사동을 중심으로 주로 강북에 갤러리가가 형성되었다가 강남의 신수요층, 즉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부자 동네에 갤러리가 생겨나면서 지역적 분화가 시작됐다.
그렇다면 인사동이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미술품 거래에서 한발 밀려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시장의 속성과 연결된다. 서 교수는 “갤러리가 밀집해 있으면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또한 그곳을 방문한 고객이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근래 인사동은 입지여건이 변화했다. 전통적인 미술거리나 갤러리가라기 보다는 관광지로 변한 것이다”라며 “입지조건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업종에 유리하게 변화한 것이 지금의 인사동 쇠락을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의 798예술구도 마찬가지라고.
편익을 중요시하는 고객의 성향도 한 원인이다. 서 교수는 “인사동은 현재 주차문제를 비롯해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고객의 편익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객은 편하게 전시를 관람하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지역을 선호하게 마련”이라며 갤러리가가 분화된 원인을 분석했다. 고객의 편익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입지의 패러다임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비슷한 업종이 몰려있을 때 작용하는 ‘집적의 경제’ 효과가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작품의 생산자인 작가를 프로모션하여 판매로 연결하는 갤러리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도 인사동의 쇠락을 가져온 계기라고 서 교수는 지적한다. “대관전이라는 기형적인 갤러리 문화가 부동산 임대업과 무엇이 다른가?” 반문하는 서 교수는 “수없이 많은 비평, 자본의 투입, 마케팅을 동원해 궁극적으로 미술사에 남게 하여 리세일을 할 능력을 가진 곳이라야 온전한 갤러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갤러리 운영 패러다임의 변화는 개인화된 삶의 패턴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최근 활발한 1인 창업은 우리 사회가 시스템이 개인을 움직이던 시대를 벗어나 역전이 시작됐다는 방증이라고. 이전에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꽤 많은 자본과 인력이 소요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아웃소싱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이 구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운영과 관리 등은 비용을 지불하면 얼마든지 외부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서 교수는 “현재 젊은 세대는 IT와 컬처테크놀로지가 결합한 이른바 ICT분야에 매우 관심이 많다. 공학에 문화를 합쳐놓으니 즐거움과 품위는 물론 경제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운영 방식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 셈”이라며 현상를 분석했다. 또한 서 교수는 젊은 컬렉터들에 대해 “정보력을 갖추고 교육받은 안목으로 작품 구매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층”이라며 “이들은 갤러리의 위치에 대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 여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변화한 시장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는 특정한 장소에 모여 집단을 이루던 과거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비상업 공간도 생겨나고 있다. 상봉동의 반지하, 교역소, 영등포의 커먼센터, 통의동의 시청각 등이 그곳이다. 이들에게 전시를 보려 찾아오는 관람객의 접근성이나 번듯한 시설이 주는 안락함 등은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 공간은 현실적인 문제로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 공간들은 대부분 지향하는 목표를 강한 어조로 공표하고 있지 않다. 다만 개인의 만족감에 더 집중하는 듯 보인다. 함영준 커먼센터 멤버는 “이전에도 담론을 생산하는 공간은 집결해 있지 않았다”며 “그저 형편에 맞춰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기존 논리에 포섭되는 활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상봉동의 반지하 돈선필 ‘관리자’는 “젊은 작가들이 접근할 공간이 부재하다는 점이 이곳에 온 이유”라며 “이곳은 내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가 제안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또한 “특정한 사명감은 없다”며 “소비되는 공간이라면 폐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이 어떻게 전개될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젊은 기획자와 작가들의 열정과 실험은 중요하지만, 결국 제도와 자본에 대한 또 다른 신자유의적 연착륙 전략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공간의 역량은 기획만큼 운영의 대안이 없다면 결국 국가자본과 개인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라는 항간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