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SeMA 벙커, 스페이스mm,
소공 스페이스, 서울로미디어캔버스
2023. 9.21 – 11.19

사진 :글림워커스 제공:서울시립미술관 

상실된 의미와 변이의 상태에서 연결 짓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비엔날레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작년 첫 외국인 예술감독이었던 융 마에 이어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인 레이첼 레이크스(Rachael Rakes)는 이례적으로 공모를 통해 선발되었다. 레이첼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글로벌 큐레이터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낯선 땅으로 이주한 경험과 그럼에도 백인 여성으로 누릴 수 있었던 서구 중심의 이점을 인식했다. 역으로 소외된 문화와 사회에 관한 연구에 집중한 레이첼은 이번 비엔날레 주제를 서구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난 비영토적 지도 그리기에 대한 실행으로 잡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지도는 삭제된 영토 위에서 수없이 많은 지점을 연결하고 묶는 관점 혹은 형태로서 존재한다. 1648년 서구를 중심으로 맺어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한 영토 인식이 지금의 시대, 더욱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서 상실된 의미와 탈장소성과 변위의 상태로 드러남을 전시로 표현했다.

실질적인 시각적 연결과 경험으로 ‘지도’의 본래 의미에 맞게 서울 곳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번 비엔날레는 메인 전시관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 SeMA 벙커, 스페이스mm, 소공스페이스, 서울로미디어캔버스 5개 전시장에서 전시가 진행된다.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레이크스는 “전 세계적으로 지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각도로 성찰하기 위해 지하에 위치한 SeMA 벙커와 소공지하상가의 두 전시장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하며 “서울이 겪은 침략, 억압과 이후 발전의 역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서울역사박물관을 결합했다”고 전시 장소의 확장과 장소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관인 서소문본관은 1층에서부터 3층까지 대주제를 전제로 나눈 세부 주제별 전시가 진행된다. 본관 마당에서부터 이어지는 1층은 비엔날레 전반을 아우르는 정신적 지도가, 2층은 객관적 정보를 상징하는 지도의 이미지 재현과 실제의 간극, 개별 소통 방식에 따른 새로운 지도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인 3층은 단순한 지역 이동이나 변화를 넘어선 원천적 문화와 존재에 대한 복합적 디아스포라를 질문한다. 이는 환경, 생태적 변화와 함께 기술의 발전, 구조적인 문제 전반을 통한 인식에 기인한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40명의 팀이 68점의 작품을 출품했으며, 그중 5점의 커미션 작품과 23점의 신작 제작을 비엔날레에서 지원했다. 감독은 커미션 작품과 신작 제작을 위해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기존의 디아스포라보다는 가변성을 갖는 장소 또는 위치로서 디아스포라를 해석할 수 있도록 작가들과 의견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의〈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시리즈는 아르헨티나의 한인 이주민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옷을 암스테르담에서 재가공하여 다시 서울에서 소개하는 신작이다. 천의 유연한 촉각만큼이나 부드러운 섬유의 면면에 스며든 경계와 정체성을 엮어 표현했다. 레이크스가 언급한 또 다른 작품들 토크와세 다이슨의 설치〈나는 그 거리에 소속된다 3(힘의 곱셈)〉과 안무가 권령은이 토크와세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동명의 퍼포먼스 역시 이런 소통 과정에서 나온 커미션 작품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토크와세 다이슨의 거대한 건축물 형태로 보이는 작품은 작가의 조각이자 동시에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무대가 된다. 약 6개월간 이어진 두 작가와의 소통을 통해 탄생한 작품은 국가와 문화, 개인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넘어 예술적 실천을 보여준다.

메인 전시관을 나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인 소공지하상가에 위치한 스페이스mm과 소공스페이스에서는 공공과 사적인 공간의 경계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지하상점이 즐비한 복잡한 자리에 위치한 소공스페이스에서는 왕보의 영상작품 〈혁명은 냉방될 수 없다〉를, 스페이스mm에서는 전현선의 벽화 〈이름 없는 산속으로〉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지하 전시 공간인 SeMA 벙커에서는 지하라는 전시장의 위치를 살려 천연자원과 지하 광물자원 같은, 공간에서 상기시킬 수 있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초기 비엔날레는 뉴미디어로 불리우던 미디어아트나 기술과 예술의 협업에 주목했고, 중반 이후부터는 미디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계속해서 변화하는 동시대 미디어를 추적하며 당대 미디어에 관한 사유를 담았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미디어의 개념을 확장해 직물, 사운드,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작품을 전시에 포함했다. 감독은 “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처음 시작된 27년 전만 해도 미디어 작품 자체가 많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미디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가 아닌 예술 자체가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 기능을 하는 관계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비엔날레에서의 미디어에 대한 해석의 확장을 설명했다.

본래 미디어의 어원은 ‘매개’, ‘중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메디우스(medius)’이고 여기에서 유래한 ‘미디엄(medium)’의 복수형이었다. 이런 ‘미디어’를 하나의 장르가 아닌 ‘매개하는 모든 수단이자 세계의 재현’으로 해석한 이번 전시 태도는 단일 전시 담론이 아닌 비엔날레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로 파급렵을 갖는다. 주제와 형식을 떠나 전시를 통한 필요 예술 담론을 논하는 것. 이것이 비엔날레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감독 레이크스의 말처럼 예술이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현 사회를 매개하고 관람자 개인의 올바른 사유로 연결되는 비엔날레가 되기를 바란다.

정소영 기자

이끼바위쿠르르 〈땅탑〉 흙 가변크기 2023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마당에 설치된 〈땅탑〉은 고결, 김중원, 조지은으로 구성된 한국 미술 콜렉티브 이끼바위쿠르르의 작품이다. 한국의 부동산 단위인 ‘평’을 활용해 만든 무명의 기념비로 서울 근교에서 옮겨 온 흙을 빚어 세운 거푸집이다. 지도의 면적이자 소유를 상징하는 땅을 이루는 흙의 이동과 흙을 밟고 두드리며 견고히 쌓아 올린 탑에 깃든 시간은 도심 속 미술관 마당에 펼쳐진 탑의 모습만큼 반어적이다

왕보 〈인테리어 분수〉
철근, LED등, 인테리어용 조화, 거울, 벽지, 사운드
400×450cm 2023
2022년 싱가포르미술관 커미션 작품으로 처음 제작된 〈인테리어 분수〉는 근대화의 빛과 어둠을 이야기하며 싱가포르 열대 자연과 인간이 만든 기후 규제에 대한 설치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형광등 조명을 반추하여 남대문과 을지로 조명거리에서 구입한 형광등으로 재제작했다

최찬숙 〈The Tumble〉
(사진 왼쪽) 아카이브 자료, 가변 크기 (사진 가운데) 4K, 컬러, 사운드 2채널 비디오 설치 12분
(사진 오른쪽) Full HD, 컬러, 사운드 단채널 비디오 설치 9분 2023
이동과 이주, 땅과 몸의 다층적 관계를 연구하는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 커미션 작품으로 직접 애리조나를 방문해 사막에서의 회전초에 관해 연구한다. 뿌리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회전초의 생물학적 특수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림이 무엇인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생명의 여러 층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프랑소아 노체 〈코어 덤프〉
4채널 비디오와 전자 폐기물 46분 반복 재생 가변
크기 2018~2019
폐기된 사물의 생애 주기를 통해 물질과 사회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작가는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의 형태로 작품을 시각화한다. 전자 폐기물로 구성된 조각작품과 함께 네 개의 도시 킨샤사, 선전, 뉴욕과 다카르를 배경으로 광섬유 케이블, 철새의 이동, 상충되는 역사와 하천 시스템, 무역로의 복잡성을 표현한 영상작업을 설치했다

사샤 리트빈체바 & 베니 바그너 〈콘스탄트〉
비디오 설치 40분 2022
측량이라는 행위와 기준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역사를 살펴보는 영상작품과 표준미터를 상징하는 LED 조명 기둥이 설치됐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시트지는 고대 그리스의 ‘제논의 역설’ 중 하나를 참고로 거리를 반으로 나누는 형태를 구현했다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 〈다섯 번의 주문과노래 한 곡Ⅰ〉,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 곡Ⅱ〉,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 곡Ⅲ〉,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 곡Ⅳ〉,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 곡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온 아르헨티나산 의복, 암스테르담에서 온 업사이클링 의류, 작가의 작업실에서 모은 면, 벨벳, 루렉스, 직물조각, 대나무 섬유, 이불솜 한 겹과 면을 재활용한 재료로 만든 퀼트와 패치워크 350×240cm, 340×220cm, 350×210cm, 330×210cm, 340×210cm 2023

찬나 호르비츠 〈오렌지 그리드〉
벽과 바닥면 설치, 격자무늬 벽지와 검은 목재 다각형 373.3×1831×549.3cm 2013~2023
3차원의 공간으로 구현한 작품은 격자 모양의 그리드를 통해 표준화된 지수를 설명한다. 공간에 놓인 검은 정육면체 도형들은 평균 수치가 아닌 작가만의 시스템에 기반해 구성된 형태다. 관객은 직접 도형을 움직이며 정해진 규칙이 아닌 개인의 조건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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