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미술제

《깜빡이는 해안,상상하는 바다》

일광해수욕장 일원, (구)일광교회, 2023 바다미술제 실험실, 신당 옆 창고
2023. 10. 14 – 11.19

사진: 박홍순

이념을 넘어선 예술을 통한 실천적 행위로서의 미술제를 위해

부산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바다미술제가 개막했다. 작년에 이어서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리스 바닷가 출신인 전시감독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Papadimitriou)는 바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바다와 인간은 수분과 염분으로 구성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바다와 인간은 함께 살아가면서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바다미술제인 만큼 바다를 통한 사고와 경험의 확장, 무형과 유형의 자원이자 장소로서 상생할 수 있는 바다를 고려했다”고 전시 주제와 의미에 대해 밝혔다. 특히 이번 미술제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관계를 상기시키는 추상적 작품이 아닌 기후변화와 토지개발, 해수면 상승과 같은 실제 생활에서 직면하는 환경과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구성됐다는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작년에 이어 지역주민과의 어울림을 고려해 지역민들의 터전으로서 삶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실내 전시 장소로 선정했다.

영상작품과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실내 공간인 바다미술제 실험실에서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감독과 함께 바다미술제 참여작가, 연구자, 저자들이 참여한 매니페스토를 확인할 수 있다. ‘왜 바다가 당신에게 중요한가요?’와 같은, 미래 인간 활동이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미술제에 출품된 작품 곳곳에 녹아든다. 또 다른 실내 전시 공간은 마을의 오랜 신당 옆에 자리한 창고로 작가의 아틀리에로 꾸며졌다. 이 전시 공간에서는 지역에서 채취한 다시마를 이용해 소품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전시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율리아 로만과 김가영은 다시마와 같은 해양식물이 식재료를 넘어선 대체 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주민들이 인식하게 하고자 이번 전시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이야기했다.

바다미술제 개막과 함께 시작된 심포지엄 ‘바다의 목소리(Ocean Voices)’를 통해서는 인간과 해양 생태계 간의 영향을 좀 더 심도 있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남윤경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좌장으로 강종진 (사)한국해양학회장과 페트라 린하르토바(Petra Linhartova) TBA21 아카데미 디렉터 외 2명이 참여하는 심포지엄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행되는 무분별한 바다 자원 채굴 방식의 문제점을 예술을 통해 인식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별한 점을 꼽자면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환경 훼손과 전시 이후 작품 처리 과정에서의 오염 문제에 대한 실천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바다를 둘러싼 환경과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예술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미술제를 관통하는 메인 주제인 만큼 작품 제작 과정에서 전시 종료 이후의 작품 처리 과정까지 환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감독과 작가들 간의 많은 협의가 있었다. 감독은 “탄소배출과 사후 처리 과정에서의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작품을 현지 지역 재료와 리사이클 재료를 사용해 제작했다”고 자신있게 밝혔다. 또한 작품 구상 할 때부터 미술제 종료 이후에도 작품 재료를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음을 이야기했다.

이번 바다미술제는 스펙터클한 작품 사이즈로 관객을 압도하거나 스타 작가를 내세워 이목을 끄는 홍보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시 작품의 설명 없이 접하게 되면 작품의 난해함과 추상적 조형에 난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을 논하는 많은 공공미술과 비엔날레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작품 제작과 전시 이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문제를 고려하여 전시 제작 과정 전체를 하나의 환경운동으로 인식하게 했다. 결국은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문제에 관한 예술의 역할과 접근 방식을 논하는 이번 미술제는 때로는 바닷가를 산책하듯 가볍지만 그 안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실천적 행위로서의 감상이 필요해 보인다.

로아리 바유아지 〈파도의 흔적〉
플라스틱 실, 플라스틱 조각, 나무,
300×2100×185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인도네시아 발리와 부산 해안 등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조각을 이용한 장소 특정적 작품으로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제공: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

게리 젝시 장 〈오션 브리핑〉
LED 패널, 각파이프, 608×32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일광 해변을 배경으로 자막을 생성한 작품이다. 날씨 환경에 따라 매일 바뀌는 자막은 자연 환경이라는 작품의 직접적인 메시지이자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인 셈이다

야스아키 오나시 〈경계의 레이어〉
펜스 외 혼합매체 250×1100×1100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구분을 위해 세워놓은 경계의 표시인 펜스를 통해 인간이 억지로 설정한 경계와 바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레나타 파도반 〈맹그로브 시리즈〉
마환봉, 페인트, 가변크기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아열대 지방에서 강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서 자라는 맹그로브는 폭풍과 침식을 막는 천연 장벽이자 여러 생명체가 살아가는 서식지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가는 맹그로브 보호를 상징하는 작품은 바다와 천이 만나는 일광천의 자연 습지 앞에 위치한다

율리안 로만 & 김가영 〈해조공예와 스튜디오〉
기장 다시마, 라탄, 목재, 워크숍 재료, 드로잉, 현지
해조류 문화 리서치 자료 가변 크기 2023 신당 옆 창고

작가의 아틀리에로 구성된 공간에 지역에서 직접 채취한 다시마를 이용한 소품을 전시했다.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대체 자원으로서 해조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스튜디오 1750 〈수생정원〉
연못 필터 브러시, 파이프, LED, 감지 센서
300×250×1000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기후변화로 사라진 해양생물을 대체해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산호초는 돌연변이적 형태의 작품을 유영하듯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체험형 작품이다

손몽주 〈일광 스윙〉
금속파이프, PVC, 목재, 섬유, 기계장치, 오브제
400×700×400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작가의 스윙 파빌리온 시리즈 중 하나로 작가가 바다에서 떠내려온 부유물을 모아 거대한 인체의 조직 일부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에 손을 대면 뛰는 심장과 같은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파도의 일렁임과 함께 작품에 연결된 그네를 통해 바람을 느끼며 자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양자주〈바다로부터〉
해초와 흙을 섞어 구워 만든 벽돌, 유약,
시멘트 벽돌, 유리 벽돌, 해초, 벽돌 크기 각
5.79×9×19cm 2023 일광해수욕장 일원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린 피난민들이 실제 바닷가에서 구하기 쉬운 해초와 흙을 엮어 만든 집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유리에 갇힌 듯한 말린 해초는 도시 발전으로 잃어버린 자연과 공생했던 과거이자 현재에 대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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