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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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동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술교육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1989~2015)에 25년 11개월간 재직하며 학예연구실장, 보존관리실장, 덕수궁미술관장, 서울관 운영부장 등을 지냈다. 경기도미술관 관장(2015~2019), 대구미술관 관장 (2019~2023.3)을 역임했다. 국무총리표창(2002), 대통령표창(2012), 석남미술상(2015),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2016), 서울특별시장표창 (2021)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미술학의 지평에 서서』 (공저, 학고재, 1999) 등이 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8월 23일 2023년 상반기 주요 사업의 운영 성과와 최은주 관장 취임 후 미술관 운영 점검을 통해 마련한 사업 내용과 2024년 미술관 운영 및 전시 계획을 발표했다. 35주년을 맞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제7대 관장을 만나 성장기를 넘어 청년기에 접어든 미술관의 비전과 향후 계획을 들어보았다.

취임 이후 운영 계획 발표까지 약 5개월 동안의 준비 과정과 그간의 소회를 말씀해 달라.
다양한 규모의 기관 경험이 많은 편인데, 서울시립미술관(이하 SeMA)에 오니 인력도 상당히 많고, 분관 체제로 구조가 복잡한 등 밖에서 보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그동안 직원을 한 명 한 명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SeMA라는 조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SeMA는 네트워크형 미술관의 방대한 조직으로, 하고 있는 일과 더불어 해야 할 일도 많은 곳이다. 또한 장점도 많은데, 이를 잘 살려 나가려고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안과시스템의 변화 등을 통해 SeMA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기존의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것들을 보완해 나가려고 한다.

위 2024년 10월 개관 예정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진영상특화 미술관으로 도봉구 마들로에 개관한다
아래 2024년 11월 금천구에 개관 예정인 서서울미술관. 서울 서남 지역 특성에 맞춰 뉴미디어, 융·복합 예술을 포괄하는 프로그램과 청소년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특화할 예정이다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을 대표하는 네트워크형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까지 굵직한 국공립미술관을 경험하셨다. 서울시의 공립미술관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서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그동안 세계의 여러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어떤 미술관도 그 나라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하더라. 그래서 결국 지역성 기반이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에서도 지역 기반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지만, SeMA도 서울 기반의 공공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서울은 인구가 천만에 가까운 거대 도시이고, 조선시대부터 도읍지였으며 전쟁과 빈곤, 경제개발과 뒤이은 도시화, IT 혁명 그리고 현재 문화의 중심지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을 가진 도시이다. 그리고 SeMA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유일한 현대미술관으로 그 중요성이 크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SeMA의 활동을 통해서 서울시의 잠재력과 상징성을 꽃 피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서울시민께 사랑받는 기관, 서울에 오면 꼭 방문하는 미술관이자 서울시의 대표적 문화기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하려 한다.

SeMA는 본관과 10개의 분관으로 구성된 거대한 네트워크형 미술관으로 현재 구축 과정에 있다. 과제가 많은 시기에 총괄을 맡았는데, 본인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또 ‘최은주 관장표 네트워크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네트워크형 미술관’이 단어로는 매력적이고 자유롭게 보이나 각각 움직이다 보니 통합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래서 소장품 전시를 통해 전체를 엮어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자유롭게 운영하되 계기가 있을 때 한 번씩 통합된 연구 의제와 기획력을 보여줄 수 있는, 따로 또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네트워크 미술관의 특성을 극대화할 생각이다. 또한 네트워크형 미술관은 유기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쪽만 커지거나 다른 한쪽이 부족한 등 불균형이 생기면 조직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총괄 디렉터로서 전체를 통합해 SeMA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건강하게 성장시켜나갈 고민을 하고 있다. 기존에 5개년으로 설정한 의제가 내년이면 종결되는데, 이제 2025년부터 2029년까지 향후 5년을 우리가 현대미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래서 어떤 의제를 도출해 낼 것인가? 또 그 도출된 의제에 따라 분관과 본관의 체계를 조화롭게 구성해 나갈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 =SeMA”, “서울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서울에는 국현과 리움미술관과 같은 국제적인 현대미술관이 여럿 있는데, 그들과 차별화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SeMA는 국현과 리움미술관과 같이 대단위의 예산 투입은 어렵지만, 네트워크형 분관이 모이면 예산과 별개로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을 SeMA의 잠재력과 독창성, 기획력을 바탕으로 해석해 제시한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 탐험가가 되어 남이 들춰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해 낼 수 있는 큐레이터의 안목과 기획력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발굴과 실현의 역할은 너무 무겁지 않은 규모의 SeMA와 같은 분관 체계와 규모의 기관에 적합한 것 같다. 꼭 봐야 하는 전시로 평가받는 기획을 선보이고자 한다.

서소문 본관의 리모델링 작업이 하반기부터 진행된다. 서소문 본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축 구조물을 제외한 전반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해 2026년 5월 완료할 계획이다
아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023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시스템 정비와 방향성

학예인력의 연구와 전시기획 역량 강화를 위해 전시 기획회의를 도입했는데, 그 배경과 추진내용에 대해 말씀해 달라.
전시 기획회의는 국현에서 시작된 시스템이다.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학예직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회의 체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테이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문의해가며 한국형 시스템을 고안했다. 기존에 학예직이 기획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관장 지시에 의해 전시가 좌지우지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전시기획 회의가 생기면서 큐레이터가 본인의 전시기획안을 발표하고 학예실이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계획을 숙성시켜서 전시 개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건강하게 밟아가게 됐다. 국현에서 시도했을 때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해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에 이식하고 그 기관에 맞게 연구회의 체계 등 새로운 단계를 추가했다. SeMA에 와서 보니 유사한 체계가 있었고 그것을 더 명료하게 정리해서 공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제안을 함께 검토하고 필터링할 수 있게 정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술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 체계가 정착되면 갑자기 요청되는 무리한 전시를 세팅하거나 자체적인 실수 등을 줄여갈 것이라 생각한다.

기획회의의 참석 범위는 어떻게 되나?
분관별로 진행하는가, 아니면 전체가 함께 하는가?
기획회의에는 본관과 모든 분관의 학예인력이 다 참석한다. 그러다 보니 회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분기별로 한 번씩은 꼭 하려고 한다. 기획회의는 공유 및 발전의 역할이 크며, 전시 외에도 소장품 수집의 방향성, 기관의 의제 개발 등 여러 가지에 영향을 주는 순기능이 있다.

해외 소장품 걸작전에 대한 자체평가가 긍정적이다. 이러한 블록버스터 전시는 SeMA의 정체성 구축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해외 소장품전을 비롯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많은 관람객을 동원했지만 공립미술관의 역할 등에 대해 많은 비난도 받아왔다. 그러나 그동안 SeMA의 역할은 달라졌다. 특히 이번 에드워드 호퍼전은 휘트니미술관과 SeMA가 공동으로 기획, 진행하며 주제 및 작품 선정까지 전 과정을 두 미술관 학예실이 긴밀하게 협력했다. 학예실에서 3년 이상을 연구해서 펼쳐낸 전시로 내용이 충실했다고 평가한다. 세계적 규모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경험하며 SeMA의 학예사도 성장하기에 이런 경험의 기회가 필요하다.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대규모 예산의 투입이 요구되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건전한 방식으로 진행하며 시민들의 관람 욕구도 충족시키고, 또한 공립미술관에 적합한 방식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비롯한 다양한 검토가 진행 중이다. 내년에 다음 5년에 대한 의제를 설정할 텐데, 다음 의제에 따른 블록버스터 전시는 무엇을 할 것인지, 또한 본관 리모델링 후 재개관 시 보여줄 대규모 전시 등 다양한 부분을 연결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해온 부분이 있다면 이번 검토를 통해 개선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미술관의 세계화,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SeMA발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국제화는 현대미술의 본성 중 하나이기에 강조하게 된다. 현대미술 작가들의 이동, 국제적 활동과 더불어 미술관의 국제화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SeMA는 여러 번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기관 간의 연대와 협력은 진행되었으나, 자체적인 프로그램이 해외에 나가는 실적은 저조했다. 싱가포르미술관, 호주 퀸즈랜드주립미술관, SeMA가 3개년 협약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는데, 오는 12월 소장품을 비롯하여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는 비/물질적인 자원과 경험을 나누는 프로젝트를 서소문 본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난지 스튜디오의 작가들을 해외에 내보내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고, 미술관이 세계적인 작품이 완성되는 플랫폼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

미술관의 뇌, 소장품

소장품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구입, 연구, 전시 등 미술관의 장기적인 소장품 정책을 말씀해 달라.
뛰어난 큐레이터란 전시가 하나 펑크 났을 때 소장품을 꿰고 있어 한 달 만에라도 전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큐레이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장품 연구에 큐레이터의 투입을 늘리고, 연구를 바탕으로 그 영역의 최고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게 하려 한다. 소장품이 미술관의 뇌이니, 그 뇌를 활성화시키는 큐레이터들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장품 전시를 계획하고 있고, 전시를 위해 소장품을 연구하는 등 장기적인 노력을 투입하면 미술관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뇌의 주름을 예쁘게 잡기 위해 소장품 연구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킬 것이다.

2024년 아트위크 기간에 SeMA의 주요 전시로 전관에 걸친 《소장품 주제 기획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 방문객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함인가?
소장품만큼 미술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없다고 본다. SeMA에는 좋은 소장품이 많은데 온전히 드러내 보여준 적이 없어 내년에 제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본관과 분관, 평창 아카이브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소장품 전시를 아트위크 기간에 선보인다면 SeMA를 알리기에 최적의 소재라 생각했다.

SeMA는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주요 작가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2002년 SeMA가 서소문으로 옮겨오며 미술관 활동이 본격화되었는데, 그 시기가 동시대 작가들의 활동에 주목했던 시기였고, 후발주자 미술관의 선택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사의 맥락을 짚어보고 또 필요한 경우 신규 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신작을 소장품화할 계획이다. 공간적으로 본관, 분관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시기적으로도 아트위크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SeMA의 소장품을 가지고 축제를 벌일 예정이다. 이런 계기로 소장품 연구를 본격화 하고 우리
소장품의 가능성을 스스로 탐색해보고, 분관을 연결하며 연대의식도 강화하는 프로젝트를 만들려 한다.

미술관 종사자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

미술관 종사자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이력 또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그동안 큰 프로젝트의 일선에서 일해왔다. 첫 번째는 국현 덕수궁관을 근대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미술관의 개관부터 방향성 설정까지 10년간 몰입해서 진행했다. 덕수궁미술관에 근무한 10년 동안 근대 미술가와 그 유족을 찾아 벽장을 뒤져가며 작품을 하나하나 발굴하면서 한국 근대미술을 배우고 정리했다. 그다음 프로젝트가 국현 서울관을 개관한 것이다. 서울관 개관을 위해 5년간 학예실장과 운영부장을 겸직하며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그 기반을 다지고, 건립과 개관전까지 진행했다. 이런 큰 프로젝트들을 수행했기에 경기도와 대구에서 관장직 수행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배 큐레이터로서 후배 기획자, 미술관 종사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항상 연구하라고 한다. 퍼 올리고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갖고 있어라. 퍼 올려도 계속 새로운 연구가 나올 수 있는 본인만의 영역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니 길게 생존하려면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이 필요하다.

여러 계획을 발표했는데, 신임 관장으로서 가장 주요하게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은?
본관의 리모델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술관이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한 이후 22년이 지났다. 그간 진행된 건물의 노화와 전시 및 수장시설 부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미술관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로 리모델링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상 공간 증축 없이 광장 지하 공간 증축과 전시동 리모델링을 추진한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미술관의 새로운 10년을 열고 더 길게 새로운 30년, 50년, 100년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성공적인 리모델링과 함께 SeMA의 기획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재개관 전시도 선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내년에 개관하는 2개의 분관, 서서울미술관과 사진미술관을 SeMA 네트워크 체계에 잘 안착시키고 싶다. SeMA를 뉴욕의 모마와 같은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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