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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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근 Kelvin Kyungk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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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경 근
Kelvin Kyungkun Park
1978년 태어났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디자인/ 미디어 아트과, 동대학원에서 필름&비디오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최고 아시아영화상)을,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스펙트럼전〉에서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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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내장: 환유쇼”

이 작품의 영감은 군 입대 훈련소 첫날에 왔다. 나는 그날 동기 수백 명과 5~6시간 동안 경례 연습을 했다. 수백 명이 0.1초의 오차 없이 동시에 경례를 함으로써 군기를 잡는 것이 훈련의 목적이었다. 처음엔 조교들이 무서워 긴장했지만, 날 더욱 각성시킨 것은 내 앞, 옆, 뒤에서 느껴지는 동기 수백 명의 따가운 시선들이었다.

경례 연습을 할 때 내 각성은 온몸을 얼얼하게 마비시켰지만 돌이키면 특정한 느낌이 내장 근처에서 맴도는 듯했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의례가 온 몸을 마비시켜 그 때 느꼈던 공포는 감각적으로 인지되지 못한 채 내 속에 머물러 있었다. 가슴의 떨림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몸 속 창자와 아랫배로 전달 된다고 느껴졌던 공포감의 실제 순서를 생각해보자면 애초에 감각의 마비/차단으로 인해 충격 받은 아랫배의 내장에서부터 가슴의 떨림으로 전달된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내장에서 느낀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 뒷덜미와 어깨 근육을 꽉 조여주고, 또 다른 날카로운 전율이 정수리를 파고들어 뇌에 확실한 자국을 남기는 듯 느껴지는 감각의 경로는 작업을 구상하며 내게 더 명확하게 보이게 됐다. 내 시선은 앞 사람의 빡빡 깎은 머리에 고정되고, 청각과 촉각이 뻗어 나아가 수백 명의 옷깃 스치는 소리, 숨소리까지 내 몸 동작과 자동 연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부의 “경례!” 소리를 예감하며 수백 명의 호흡이 동기화되고 수백 명의 들숨이 내 몸과 동기화되었다. 동기화되어 수백 명과 하나가 될 때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표현의 억압은 뒤바뀐 감각적 순서를 만들어 쾌와 불쾌를 거꾸로 인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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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내장: 환유쇼〉 2채널 인터렉티브 영상, 알루미늄, 모터, 철, 플라스틱 가변크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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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작을 위해 기계를 설계하며 안 쓰던 머리를 쓰기 시작하자 두통이 몰려왔고, 기계를 통제하는 회로를 짜면서 극도로 예민해져서 융통성 없는 청계천 사장님을 보며 답답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난 이미 군인이 되고, 로봇이 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카메라의 시선이 되는 듯, 또는 그렇게 되고 싶은 듯했다. 그래야만 작업 시간을 단축시키기 때문이다. 난 전시 공간에 로봇배우, 비디오 조명 / 배경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대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내 작품은 관객의 스마트폰 카메라와 인스타그램으로 완성된다. 감시 카메라에 비쳐 비디오 환영이 되어 확대되는 관객의 몸은 셀카를 하고 있는 보여주기 위한 몸이다. 나에게 컨트롤 박스 회로판에 부착된 타이머, 리미터, 릴레이를 연결하는 전선들은 뇌와 중추 신경이다. 신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외부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기능적 물체들은 로봇들은 몸통 없는 내장 같다. 설치를 마친 후 작품을 다시 보니 13미터 천장의 무대 공간 자체가 거대한 집단적 남성의 신체 내부 같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 계획에서 어긋난 우연과 실수에서 항상 작품의 핵심적인 감정이 배어났다. 예컨대, 난 처음 케이블의 색을 화려한 무지개 색으로 결정했지만, 아주정밀 송 사장님은 거래 업체의 재고 부족을 이유로 적색 케이블을 선택했고, 자칫하면 “게이군대” ^^ 가 될 뻔한 작품에 “핏줄” 이라는 중요한 레이어를 만들어 주었다. 작가로서 아마추어적 실수가 오히려 감정적인 정확성을 확보했고 허접해 보이는 청계천 생산 시스템이 내 작품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계획이 없으면 계획에 벗어난 것이 없듯, 각을 잡으려는 총기들 사이에 각에서 벗어난 한 총기가 에러를 만들 때 그 총만의 단독성이 생기고 그 에러를 보며 특정한 감정을 일으킨다. 나의 개인성이란 각에서 벗어나 삐딱하게 멈추어 있는 K2 소총 정도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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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