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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New Museum Triennial 2018

 New Museum Triennial 2018 Songs for Sabotage

Haroon Gunn-Salie(남아프리카공화국) 〈벽〉(바닥 설치작업) Clan Dayrit (필리핀)&Violet Dennison(미국) 〈M.O.O.P〉(사진 뒤 벽면 설치작업) 2018 Seagrass collected in the Florida Keys, resin and electrical metallic tubing conduit, Dimensions variable ㅑ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저항과 프로파간다

서상숙 | 미술사

 

Wilmer Wilson IV(미국) 〈Nev〉 나무에 스테이플과 피그먼트프린트 243.8×122×3.8cm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CONNERSMITH, Washington D.C.

 

최근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중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람(백인)을 기다리던 젊은 흑인청년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매장 직원은 그들이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렀다. 두 청년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백인여성에 의해 그대로 촬영되었고 배포되어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필자는 그중 한 명이 남편이 가르치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영대학을 졸업한 재원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이것이 피부색이 검은 그들이 미국에서 처한 절대적인 운명이다.

Manuel Solano(멕시코) 〈I Donʼt Know Love〉 캔버스에 아크릴 171×202cm 2017 Courtesy the artist

이 같은 일은 인종 및 여성 차별주의자로 극우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정권하에서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추방되고 합법이민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편하며 흑인은 범죄자로, 여성은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그들의 위치를 재점검당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뉴뮤지엄에서 한창 진행 중인 트리엔날레 <저항의 노래들>에 출품된 흑인 작가 윌머 윌슨 4세(Wilmer Wilson IV, 1989~)의 작품들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작가가 사는 필라델피아 거리의 자동차 윈드쉴드에 끼워놓은 광고지, 거리의 벽이나 전봇대에 스테이플로 찍어 고정시켜 놓은 전단지들을 거두어 확대,  합판 위에 붙인 후 공업용 스테이플을 촘촘히 박았다. 은빛의 철로 만들어진 수천수만 개의 스테이플은 조명 아래에서 물결 같은 그림자를 만들며 그 뒤에 숨은 흑인 형상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부분만 그대로 노출된다.


Zhenya Machneva(러시아) 〈CHP-14〉 면, 리넨, 합성섬유 135×190cm 2016 Courtesy the artist

<Nev>(2017)에는 흑인남자의 늘어진 두 손과 샴페인 병만이 드러나며 <Afr>(2017)에는 한 손엔 총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은 총을 쏘는 듯한 제스처를 한 흑인의 손이 노출되었다. 죄 없는 흑인청년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뉴스를 본 후 이 작품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벽에 세워진 윌슨의 스테이플 작업 바로 앞에는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놀이터의 그네 세트가 설치되었다. 위에는 빨간 벽돌 한 장이 놓여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순간 벽돌은 떨어져 아이의 머리를 칠 것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흑인 여성작가 다이아몬드 스팅리(Diamond Stingly, 1990~)의 작품 <E.L.G.>이다. 그 작업 옆에는 태풍이 지나간 후의 잔재를 보는 듯한 노르웨이 작가, 티릴 하셀크니페(Tiril Hasselknippe, 1984~)의 미니멀한 메탈작업 <발코니(Balconies)>(2018) 시리즈가 전시장의 침묵 속에서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를 언급한다.


Tomm El-Saieh(아이티) 캔버스에 아크릴 243.8×365.7cm 2017~2018 Courtesy the artist and CENTRAL FINE, Miami Beach

이번이 4회째인 뉴뮤지엄의 트리엔날레는 2011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만든 용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급과 그들의저항(sabotage)을 주제로 한다. 정규직을 가질 수 없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노동계층,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희망을 버린 사람들, 여성(가정주부, 미혼모 등), 노숙자, 실업자, 임시직장인을 비롯 고학력의 예술인, 작가, 프리랜서, 대학의 시간강사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밀려난 숙련공 등이 프레카리아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극대화에 따른 이 같은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스며들며 전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불안을 이용한 신국수주의의 등장마저 부추기고 있다.

알렉스 가텐필드(Alex Gartenfeld,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와 함께 이번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은 게리 캐리온-무라야리(Gary Carrion– Murayari)는 전시 카탈로그에서 스탠딩의 이론을 인용하며 이번 트리엔날레가 “자본주의의 특성인 착취와 지배의 구조에 대한 저항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두 큐레이터는 지난 3년 동안 24회에 걸쳐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포함,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방문했다.

페루 작가 다니엘라 오르티즈 (Daniela Ortiz)의 50×30×30cm 크기의 세라믹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관람객들. 벽에 설치된 브라질 달톤 파울라(Dalton Paula)의 작품도 보인다(사진: 서상숙

6명의 미국작가를 비롯 전 세계 19개국에서 선정된 25세부터 35세까지의 참여작가, 컬렉티브, 그룹 등 26명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에서 실제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하다. 전시작의 80% 이상이 이번 트리엔날레를 위해 만들어진 신작이며 참여작가 대부분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갖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하룬 군-살리 (Haroon Gunn-Salie, 1989~)는 머리가 없는(혹은 잘린) 남성 17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조각을 광산에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설치한 작품 <센제니나(Senzenina, 남아공의 반인종격리정책 노래)>(2018)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17명씩 두 곳에서 파업을 하던 34명의 광부가 경찰에게 총살당한 마리카나 참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미술,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다

컬렉티브 KERNEL(그리스) 〈As you said, things resist and things are resistant〉(사진 왼쪽 바닥설치작업) 알루미늄, 구리, 철, 혼합재료 500×200×170cm 2018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근 미국의 주요 전시에 수직, 도자기, 태피스트리 등 노동집약적 핸드메이드 작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이번 트리엔날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 작가 제냐 마치네바(Zhenya Machneva, 1988~)는 하나 둘 사라지는 소련의 공장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흰색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의 수직 작품(<CHP–14>(2016)) 등 태피스트리 시리즈로 소련의 몰락을 조용히 증언한다. 필리핀의 시안 데이릿(Cian Daylit, 1989~) 역시 태피스트리로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되새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공예적 작업과정을 택함으로써 신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더불어 미술작품까지 대량생산,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상황에 저항한다.

다니엘라 오티즈 (Daniela Ortiz, 1985~)는 페루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들은 오티즈에게 페루로 돌아가 출품작을 만들도록 요청했다. 오티즈는 뉴욕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모형에서 머리를 없앤 <콜럼버스>(2018) 등 스페인 식민정치에 망가진 페루의 과거와 현재를 50cm 높이의 실내장식용 작은 도자기 시리즈로 고발하고 있다.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거침없는 붓질과 화려한 색조로 그려낸 작가들의 페인팅도 아름답다. 아이티 출신으로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톰 엘-사이아(Tomm El-Saieh, 1984~)의 환상적인 추상, 트랜스젠더로 의료 조치를 거부당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눈이 먼 멕시코 작가 마누엘 솔라노(Manuel Solano, 1987~)가 기억으로 그린 인물화, 미국 흑인여성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표현한 하와이 출신의 제니바 엘리스(Jenniva Ellis, 1987~)의 오일 페인팅, 축출된 독재자 무가베의 얼굴을 그린 짐바브웨의 그레샴 타피와 냔데(Gresham Tapiwa Nyande, 1988~), 케냐의 체무 녹(Chemu Ng’ok, 1989~) 등의 작품들이다.

뉴뮤지엄 트링엔날레 전시 광경 Photo: Maris Hutchinson/ EPW Studio

비디오작업으로는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는 쉔신(Shen Xin, 1990~)의 한국어로 상영되는 비디오 <나이팅게일의 도발(Provocation of Nightingale)>(2017~2018)이 1층 로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이밖에 홍콩의 왕핑(Wong Ping, 1984~), 중국의 쑹타(Song Ta, 1988~) 등 중국작가 세 명의 비디오가 선정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진단하는 정기전인 뉴뮤지엄의 올 트리엔날레는 전통적 방법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선호함으로써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시대를 주제로 한 지난 2015년 트리엔날레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뉴뮤지엄의 외진 계단 한쪽에는 알제리아 작가, 리디아 오라만(Lydia Ourahmane, 1992~)의 작업 <유한성(Finitude)>(2018)이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소리의 울림으로 벽에 칠해진 석회가 서서히 떨어져 바닥에 가루가 쌓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한 작가들의 저항과 프로파간다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잘못된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하는 힘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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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숙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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