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표지

청춘미술 불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런데 우리 미술계는 지난 10년 동안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정체됐다. 특히 젊은 세대의 창작활동 성과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나는 당사자인 젊은 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에선 진지한 역사인식이나 치열한 창작태도를 감지할 수 없다. 그러니 유의미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도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Continue reading »

COLUMN

IMG_1470

포스트 뮤지엄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미술계의 국외자인,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인 사람이 미술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즉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지드래곤 현대미술 전시회-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전>이라면 좀 다르다. 워낙 말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워낙 말이 안되는 일은 특정한 ‘계’를 넘어 사회 성원들의 보편적 문제가 된다. 지드래곤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자격이

Continue reading »

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6

press-perf. #14

세대 특정적 미술? 오늘의 미술 동시대 미술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젊어 보인다. 굳이 연령이나 생물학적 젊음을 따져서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음악계에서처럼 현대미술 분야에서도 ‘신동(神童)’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나이보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적 취향, 미술제도 및 시스템의 작용 주기와 교체 속도, 예술적 역학구도나 영향관계의 양상 등을 두루 고려해보니, 동시대 미술계에서 젊음을 한 특성으로 꼽을 수

Continue reading »

SIGHT & ISSUE

DF2B4176

〈헨릭 빕스코프-Fabricate〉 대림미술관 7.9~12.31 ‘아티스트’로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 1972~)는 우리에겐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한 지 불과 2년 만에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할 만큼 디자이너로서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현재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작가이다. 그는 단순히 패션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순수미술, 사진, 영상, 퍼포먼스와 음악까지 다양한 형식의 예술적

Continue reading »

HOT ART SPACE

이미지 사용 시 (photo by 박민경) 기재 요망

망치질한 그대, 쉬어라 하루 660번 주 5일 쉬지않고 망치질을 해온 망치질의 달인,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 12년 만에 2달간의 장기 휴식에 들어간다. 지난 6월부터 〈해머링 맨〉은 노후한 부품 교체와 도색 작업을 위해 잠시 멈춰진 상태다. 조각가 조너던 브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인 〈해머링 맨〉은 2002년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흥국생명 건물 앞에 세워진 이후 광화문 지역의 랜드마크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Continue reading »

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IMG_2823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본격적으로 국가체제를 수립했으나 시간에 맞서야 했다. 국가는 물론 사람이 모였던 사회 각계의 모든 분야가 그러했다. 그 과정은 말 그대로 ‘굴곡(屈曲)’이었다. 때론 꺾이고 때론 굽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흐름은 지금으로 이어졌다.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간미술》이 바라보는 우리 미술 70년은 단절의 역사가 아닌 연속성을 갖고 흘러왔다. 그래서 10년 전 광복 60주년의 성대한 기억을

Continue reading »

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시대 미술의 제도적 변천 2005년 이후 우리 미술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2007년과 2008년 전반기 미술시장의 유례없는 활황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가 하반기 닥친 국제적인 금융위기로 허망하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연관하여 미술계 분위기는 어땠으며 어떤 상황 등이 펼쳐졌을까? 필자는 이를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제도 및 공간 변천을 중심으로” 풀었다고 말한다. 미술계의 지난 10년을 돌아본다.

Continue reading »

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 노형석 《한겨레》 기자 10년 전 필자가 쓴 《월간미술》 특집 기고글의 서두는 이런 코멘트로 시작했었다. 당시 제도권 미술에 냉소하며 대안세력임을 자부했던 청년 미술인들의 구호를 집약한 말이었다. 2015년, 지금 글의 서두는 “이젠 우리끼리 터 잡고 놀거야!”로 바꿔야할 듯싶다. 10년 전 선배들은 대안공간과 비엔날레의 든든한 후원, 새 블루칩 작가군을 확보하려는 화랑업자들의 추파 속에서 도발과

Continue reading »

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미술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대립의 시기 오세권 대진대 교수, 비술비평 1980년대는 한국 미술문화의 양상에서 크게 ‘모더니즘’ 부류와 ‘리얼리즘’ 부류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대립의 시기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 부류는 1980년대 후반기에 형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한 이들을 포함시킨 것이며, ‘리얼리즘’ 부류는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미술문화를 추구한 이들을 말한다. 1980년대 전반기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1970년대에 형성된 미니멀리즘

Continue reading »

SPECIAL FEATURE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 좌절되는 우리미술의 정체성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비평 식민지를 거쳐 6·25전쟁을 막 치러낸 1954년은 전쟁의 상흔과 공포, 가난 그리고 분단 속에서 신음하던 시기였다. 당시 남한의 미술계는 식민미술의 청산, 민족미술의 수립, 전통미술의 계승, 그리고 서구미술의 수용이라는 여러 과제를 동시에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우선 광복 이후 정권을 잡은 이승만 정부는 친일 청산과는 거리가

Continue reading »
Pages: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