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민애 – 검은, 분홍 공

김민애 – 검은, 분홍

두산갤러리 9.3~10.4

전시제목은 ‘검은, 분홍 공’이다. 전시 안내문에 의하면 이번 전시는 ‘습관에 관한 소고(Thoughts on Habit)’라는 작가의 지난해 개인전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때 김민애는 전시장 벽을 기준으로 14도 튼 펜스를 전시장에 추가함으로써 관객의 이동을 제한했고, 영어로 번역한 윤동주의 <자화상>을 설치하여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였다. 그런데 전시 개막 몇 시간 전, 김민애는 검은 풍선 3개와 분홍 풍선 1개를 펜스와 벽 사이 등에 끼워놓았다. 미리 계획된 바에 따라 작품을 제작·설치하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의 스타일이 좀 답답했다고 한다. 긴장이 있으면 이완이 있어야 하는 법. 가볍고 소프트하며 부수적이었던 풍선들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되었다.
두산갤러리의 전시장은 네모나다. 김민애는 불투명한 천으로 벽을 세워 방을 조성했다. 그 결과 네모난 전시장 안에 네모난 방이 생겼고, ‘ㅁ’자 형태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통로에서 관객은 불투명한 벽에 비친 사물의 실루엣들과 움직이는 2개의 분홍색 동그라미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통로를 따라 세 번째 모퉁이에 다다르면 문을 마주하게 된다.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면, 작가가 대학 때부터 제작했던 작업들이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수행하지 않은 채, 또 장소특정적이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다. 즉 실루엣의 주인공은 작가의 과거 작업이고, 분홍색 동그라미는 조명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더불어 설치 때 사용한 사다리가 있고, 작업을 포장하고 남은 것을 공처럼 둘둘 말아놓은 것도 있다.
그리고 이 문 옆에 ‘들어가지 마시오’란 말이 반전되어 적혀 있다.(방 안에서 봐야 글자가 똑바로 보임) 방 안에서 밖으로 가지 말라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밖의 관객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 텍스트 때문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게 된다. 동시에 그는 전시제목, 작가명, 전시기간도 반전된 형태로 벽에 적었다. 이 방에 들어가야만 작품과 텍스트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관객은 주변을 맴돌며 작품의 실루엣과 반전된 글자만 보게 된다. 김민애는 이렇게 작품으로부터 관객을 소외시켜버렸다. 게다가 작품으로부터 기존 전시장도 소외시켜버렸다. 그는 기존 전시장 벽과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민애는 관객이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도 관객에게 보일 준비가 덜 되게 함으로써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은 관객과의 관계를 통해서, 또 전시장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만약 소설의 2인칭 시점이 미술에도 있다면, 김민애의 이번 작품이 2인칭이 아닐까. 나아가 그런 2인칭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반성하는 게 아닐까.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