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규철 –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안규철 –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하이트컬렉션 8.29~12.13

실패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사는 세상에 실패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들로 이루어진 전시가 열렸다. 안규철의 개인전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All and but Nothing >은 목표가 없는 온갖 헛수고를 텍스트와 오브제, 그리고 영상작업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로에게 물을 분사하는 <세 개의 분수>, 바람으로 구슬을 굴리는 <바보웅덩이>, 시곗바늘과 시계 자체가 같이 돌아가 시간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두 개의 시간>이 정겹게 우리를 맞이하며 먼저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컴컴한 비디오 방으로 들어가 맞딱드리는 <실패하는 법>은 실패자들의 정곡을 찌르는 10개의 지침으로 1번과 10번이 압권이다. 계획은 세우지 말고 그냥 포기해버리라고 한다. (10. No plan, 1. Give up) 본격적인 헛고생은 프로젝트와 모니터로 보여주는 영상작업인데, 총 10편을 다 보는 데에 100분 가까이 걸린다. 비디오 속 작가는 나무가 되어 아주 천천히 숲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중력을 이기려고 벽 옆면 걷기를 시도하고, 쓸데없이 탱고를 익히기도 한다. 익숙해지면 이내 그만 두는 것은 악기연주도 마찬가지이다. 딸이 좋아하는 음악을 간신히 연주하고 난 후 아코디언을 분해하여 조각들을 마을의 곳곳에 버린다. 한 번의 연주는 다시 재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지만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된다.
헛수고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상 작업은 본격적으로 비디오 방에서 계속된다. 마치 노동으로 참선을 하듯 벽돌을 쌓아 완성되지도 않을 건축물을 짓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사다리에 오르고, 목적 없이 나선형으로 걷고,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삽질도 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사람의 등에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쓸데없는 노동을 한다. 보고 있으면 한심하고 미련해서 답답함과 지루함이 일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무엇이 더 있을까 하는 보는 이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며 끝을 내버린다. 시간과 수고는 아무 소용없이 소비되고, 목적 없는 갖가지 행위를 장시간에 걸쳐 본 관객은 어이가 없다.
그러나 안규철은 헛수고의 과정만을 보여주며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실패를 기억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현 시대에 목적과 성과에 피로한 우리를 위해 손을 내밀고 따뜻한 말을 건네듯 다양한 장치로 관객을 위로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거울을 한곳으로 반사해 전시장에서도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달을 그리는 법>이 마치 시구와 같이 우리를 맞이하였다면,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수많은 비즈를 천장에 매달아 마치 보석으로 만든 커튼과 같은 형상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감을 나타내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가는 관객들을 위로한다. 유리잔 연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나는 너를 위해> 역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사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작이 연속되는 비디오작업에서도  잔잔하고 포근하게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적인 사운드가 배경에 있었다. 반복되는 실패를 보는 것이 답답하고 미련해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 사운드 덕이다.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나는 괜찮아요. I am OK.”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아 보이지만 이러한 사운드는 진정으로 실패를 아름답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작가는 매일 아침 한 장의 노트에 글을 쓰거나 드로잉을 하며 하루를 연다고 한다. 실패에 대한 안규철의 작업노트는 담담하면서도 절절하다. 매번 실패를 주는 사회에 대해 최대의 복수로 자행되는 작가의 의도적인 실패는 이미 성공한 실패이다. 작정하고 시작한 소소한 실패는 성공을 꿈꾸다 매번 좌절한 현실의 뼈저린 기억을 치유해준다. <두 벌의 스웨터>는 한쪽에서는 스웨터를 짜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웨터를 풀어 결국은 제로가 되는 작업이다. 성과가 없음은 무의미한 것이고 보잘것 없는 것이고 그렇게 행한 사람은 바보이고 미련퉁이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이러한 무의미한 일들을 반복하며 실패를 안고 살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당연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두려워하며 성공과 목표에 집착한다. 자신이 찾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없으면서 마구 달려가려고만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숨은 상처와 우울감은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이번에도 안규철의 작업은 살며시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의도된 실패를 위해, 무의미한 헛수고를 위해, 작가 자신은 엄청난 노동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괜찮아. 달라지는 것은 없어. 아무 일도 없을거야.”
가슴이 따뜻해진다.
한금현・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