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로니 혼(Roni Horn) 개인전, 《Remembered Words》

자연, 정체성, 이원성에 천착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가, 로니 혼(Roni Horn)의 국내 4번째 개인전이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ART BOOK] 통섭 시대의 예술적 사유

통섭 시대의 예술적 사유


에릭 캔델 지음 / 이한음 옮김 《통찰의 시대(The Age of Insight)》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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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캔델은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지금껏 생존해있는 신경과학자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캔델은 역사와 문학, 정신분석, 그리고 신경과학을 두루 연구한다. 이것이 《통찰의 시대》가 뇌과학과 예술사, 심리학, 인문학을 통섭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우리는 캔델의 통섭 시도 기저에 환원주의(reductionism) 에 대한 지향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환원주의는 근대적 과학과 학문의 기본적 방법이다. 그것은 연구대상을 그 구성성분들로 나누어 그 각각을 – 캔델이 말한 것처럼 – 한 번에 하나씩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점진적으로 넓히고, 그렇게 부분들에 대한 지식의 양적 축적이 언젠가 전체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가정 하에 환원주의자 캔델은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실레로 구성된 20세기 초 빈 모더니스트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과학적 환원론은 이렇게 연구대상으로서의 전체를 그 부분들로 나누기를 전제하지만, 그 이상의 함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정적으로, 각 부분들의 연구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특정한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환원될 수 있다. 빈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모더니스트들이 보여준 예술적 활동을 신경과학적/ 뇌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다. 빈 모더니스트들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뇌의 활동에서 나오기에, 그 활동을 관찰함으로써만 그 활동의 결과인 미술작품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정신활동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뇌와 그 작동 결과인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뇌과학자들에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 빈에서 활동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호의적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한때 정신분석을 공부한 의사 캔델에 따르면 1890년에서 1918년에 이르는 기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하던 프로이트를 비롯한 의사들은 인간 마음의 모더니즘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 관점을 그림을 통해 제시한 화가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과 함께 말이다. 이 모더니즘 관점은 인간의 행동 결정에서 무의식적 본능이 맡은 역할을 강조한다. 이 관점을 이론적으로 잘 고안한 빈 의대의 의사들은 인간의 모든 정신 과정은 – 모든 정신 질환도 포함하여 – 뇌의 생물학에 토대를 둔다고 주장했으며, 그 의사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의 상당수가 비합리적이며 무의식적인 정신 과정에 토대를 둔다고 제안했다. 캔델은 이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의 책에서 빈 모더니스트들의 무의식에 집중한다.

캔델의 이러한 연구는 그가 생각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터 잡은 것이다. 캔델은 세기말의 빈에서 기원하여 지금도 계속되는 예술과 과학 사이의 대화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왔다고 말한다. 첫 단계는 모더니스트 예술가들과 빈 의대 연구자들이 마음의 무의식 과정에 관해 깨달은 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30년대에 빈 미술사학파가 도입한 미술과 인지심리학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된 시기다.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인지심리학이 생물학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정서적 신경미학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다. 캔델이 한 것은 이 세 번째 단계의 작업이었다.

캔델의 연구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의 기저에 꼭 무의식과 정서만 있다고 봐야 할까. 의식적 사유는 어떨까. 20세기 중후반의 예술 중에는 보다 명시적인 지식, 특히 과학적 지식 같은 합리적이며 의식적인 정신활동의 결과물도 많이 있다. 캔델의 연구를 공부하고 나서 캔델을 또 다른 거인으로 여기고 그 어깨 위에 올라야 할 필요가 있다.

손영실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예술매체이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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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OPIC <격자적서신>중국에 상륙한 예술혁명가들

백남준 〈푸른 부다(Blue Buddha)〉 150-2x205x250cm 1992-1998(Gallery Artlink 소장)

Lettres du Voyant

Joseph Beuys × Nam June Paik

요세프 보이스 〈We are the Revolution〉 191x100cm 1972

중국 상하이 하우아트 뮤지엄에서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월 20일 개막해 5월 13일까지 〈견자적 서신(LETTRES DU VOYANT: Joseph Beuys × Nam June Paik 见者的书信:约瑟夫 · 博伊斯×白南准)〉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역임한 하우아트 뮤지엄 윤재갑 관장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로 하우아트 뮤지엄 공식 개관전이다. 독일을 무대로 실험적인 전위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두 주역의 작품을 직접 경험한 상하이 현지 미술 관계자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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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상륙한 예술 혁명가들

유정아 | 미술사

19세기 말 상하이는 중국이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일차적인 통로였다. 중국인들이 사실상 외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계지로 몰려들면서 중국인과 서양인이 만나는 공간으로서 근대 상하이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푸둥 지역은 황푸강의 동쪽으로, ‘서양 귀신들’이 들어와 놀던 상하이 와이탄 조계지와는 달리 오랫동안 변두리로 남아 있다가 1990년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경제를 담당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경제 특구로 거듭났다. 푸둥 지역에는 현재 외국계 은행과 투자회사, 물류회사, 유수 기업의 연구개발센터, 고급 호텔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화려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하오미술관(昊美术馆)에서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전시 ‘투시자의 편지’(Lettres Du Voyant, 见者的书信, 2018. 1.20~5.13)가 열리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랭보(Arthur Rimbaud)의 편지를 인용한 이 전시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960~80년대 백남준의 행위미술, 비디오, 멀티미디어 작품들과,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협업작품들, 그리고 보이스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다수의 사진과 영상자료, 실물자료, 다큐멘터리 등의 아카이브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중국 상하이 광동구에 위치한 하우아트 뮤지엄은 원홈 아트호텔(One Home Art Hotel)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사진은 한국작가 이용백의 작품이 설치된 원홈호텔 외관. 하우아트 뮤지엄은 이 호텔내에 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들
모든 대상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 다르게 관찰할 수 있는, 곧 미지의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투시력을 지닌 예술가, 시인 랭보는 1871년 5월 13일과 15일, 각각 스승과 친구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자신을 ‘투시자(voyant)’라고 불렀다. 투시자는 선지자 혹은 예언자와는 다르다. 랭보의 ‘투시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천부적 능력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구성요소를 찾아나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랭보의 편지 속 구절처럼,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전적인 인식”을 토대로, “자신의 영혼을 탐색하고, 이를 조사하며 시험하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로서, “자기가 발명한 것이 느끼고 팔딱거리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자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자”이다.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시인 랭보가 제시한 투시자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유쾌하게 선언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1층 전시장에서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백남준이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준 선물인 비디오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프레임 속에 네온과 각종 오브제들을 구성하여 인간의 얼굴을 형상화한 <네온 TV: 버튼>(1990), 오래된 모니터 속에서 촛불이 은은히 빛나고 있고 붓다가 그것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붓다>(1996), 고깔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온몸 곳곳에 모니터와 전자장치, 금속 등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 <로봇 피에로>(2000) 등의 작품들이, 아직은 백남준의 이름이 생소한 중국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이어 어둡고 캄캄한 방에 들어서면 여러 대의 스크린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 투사하는 빛과 환영적인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중첩된 스크린들이 쏟아내는 영상 이미지에 매료된 관객들은 신기한 듯 여러 번 멈춰 서서 화면을 바라본다. 다중 모니터와 카메라, 폐쇄회로들의 복잡다단한 배치 속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바이바이 키플링>(1986)의 유쾌한 음악과 춤들이, 주파수를 변형시켜 생성해낸 전자영상 신호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영상화면들과 함께 경쾌하게 다가온다.      

요제프 보이스의 오브제 작품과 각종 포스터 등이 전시된 아우아트 뮤지엄 2층 전시장 광경. 요제프 보이스 전시는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장 그레고르 얀센이 큐레이팅 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우정의 기록들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독립된 공간에서 큰 화면으로 다시 보게 된 <코요테 Ⅲ> (1984) 퍼포먼스에서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만남과 교감은 전시 주제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설정이었다. 도쿄의 소게쓰 홀에서 벌어진 이 퍼포먼스에서 두 예술가는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의 피아노를 맞대고 서양 고전음과 동물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언뜻 들으면 두 사람이 각각 서로 다른, 그래서 결코 어울리지 않을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서로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파이엘(Andreas Veiel)의 다큐멘터리 <보이스(Beuys)>(2016)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요제프 보이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명성답게, 영화는 보이스에 관한 푸티지 장면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가 자신의 말과 표정을 직접 듣고 보게 만든다. 영화 속에는 평상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자 벗은’ 보이스의 모습도 등장하고, 그가 다른 이들과 날선 논쟁을 벌이거나 혹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어딘가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는 표정들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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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곧 혁명이다.

1984년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을 비롯해 백남준의 초기작부터 각종 자료가 출품된 이 전시장은 김남수가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층에서 만나게 되는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는 1층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들이 온갖 시청각적인 감각을 자극하면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면, 보이스의 전시는 관람객 자신이 적극적으로 대상에 다가가 꼼꼼히 읽고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동안 미술관 측에서 소장해 온 작품들을 기반으로 세심하게 조사하고 연구해 온 노력을 실감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문헌과 시각자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마치 고대 박물관처럼 체계적으로 배치된 아카이빙 자료들 앞에서, 우리는 보호 유리 상자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대상을 일일이 세밀하게 조사하는 고고학자가 되어야 한다.

전시 주제는 ‘모든 이는 예술가이다’, ‘예술의 확장 개념’, ‘사회조각’, ‘플럭서스와 해프닝’ 등 보이스가 제시했던 주요 개념 혹은 활동별로 구분되어 있고, 관련된 각종 사진, 회화, 선언문 같은 시각자료들이 벽을 따라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며, 전시장의 내부공간은 <비트린(Vitrine)> 시리즈로 알려진 유리 진열장이 다수 배치돼 있고 그 안에 그가 사용했던 일련의 오브제들, 안내 책자, 선언문, 엽서, 가방, 상자, 장미꽃, 펠트 등이 보관되어 있다. 예술과 삶의 일치를 꿈꾸며, 개인 각자가 지닌 에너지와 창조력을 통해 보다 이상적인 휴머니즘을 실현하고자 했던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세계가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 장르와는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에 선뜻 다가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아보였다. 전시는 이를 충분히 고려한 듯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문서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 현장이 다소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것에 비해, 전시 개막일 하루 전에 상하이의 괴테하우스에서 열린 강연회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뒤셀도르프 미술관 관장 그레고르 얀센(Gregor Jansen)은 요제프 보이스의 주요 개념들을 자세히 소개했고, 중국의 예술청년들은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혁명의 시기에 중국 미술계가 부르주아 예술을 배격하고 예술의 공공성, 혁명성, 사회성을 추구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현재 중국 청년들이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세계에 보이는 깊은 관심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통한 대중교육, 사회혁명, 공공토론과 사회참여 등은 개혁개방 이후 여러 모순에 당면한 중국 미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그날의 뜨거웠던 토론과 논쟁을 떠올리면서, 나는 2층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장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자료 제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강연과 토론이 열리는 ‘사건의 현장’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조용했던 미술관은 어느 순간 요제프 보이스가 꿈꾼, 예술과 일상이 만날 수 있는, 나아가 그 힘이 혁명으로 전화하는 현장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 박제가 된 미술작품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개인의 창조력을 이끌어내고, 이를 새로운 사회구성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싶어 했던 그의 예술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전시에서 만난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들을, 우리가 지나치게 현실의 삶과 유리된 것으로, 혹은 다가서기 힘든 신비주의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랭보는 ‘투시자’로서 시인의 길이 초현실적이거나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일하는 자’로서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세 예술가가 보여주고 있는 공통분모, 즉, 일상과 예술이 맞닿아 있는 곳,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 현재 상하이 푸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투시자의 편지’가 미지의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 것일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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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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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WIEN 브루노 지론콜리

〈Ohne Titel(Untitled)〉1975–1976, Sammlung Sigmund, Niederösterreich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Bruno Gironcoli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은 작가가 세상을 등진다. 2010년 74세로 타계한 원로 조각가 고(故) 브루노 지론콜리 (Bruno Gironcoli, 1936~2010)도 그랬다.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조각을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이름은 세계 미술계에서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그의 회고전(2.3~5.27, Wein MUMOK 루드비히 근현대미술관) 부제가 ‘쑥스러운 조각가’였던가!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가이면서도 드로잉을 독립된 작업으로 병행한 그의 유작이 소개됐다. ‘은둔형 작가’였던 그는 세상에 없어도 그의 사색의 흔적은 이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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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는 조형한다

박진아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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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조각가 브루노 지론콜리는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오스트리아 미술계 인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국제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앙망하며 베니스비엔날레 대표작가 선정이라는 영광을 애타게 기대하던 당시 유망 신세대 작가들은 실망했다. 발칙・도발적인 콘셉트와 충격적인 비주얼의 설치작업과 퍼포먼스 작업에 경도된 젊은 콘셉추얼 작가들에게 주목하던 당시의 미술계와 언론도 의외라고 평했다. 그해 나는 영국의 한 미술 잡지에 기고할 기사를 쓰기 위하여 브론콜리의 작업실에서 작가를 인터뷰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대표 작가 선정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아프리카 원시조각과 가면 컬렉션으로 빼곡한 아틀리에서 앉아있던 그는 “나의 자르디니 전시는 우연(Zufall)일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2010년 74세로 타계한 원로 조각가 고(故) 브루노 지론콜리(Bruno Gironcoli, 1936~2010)는 20세기 오스트리아의 대표 조각가 중 한 사람이지만 국제 미술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리츠 보트루바(Fritz Wotruba, 1907~1975) 교수의 뒤를 이어 1977년부터 30년 넘게 빈 미술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Wien)의 조각학과를 이끌었지만, 그는 빈 프라터 공원 뒤 뵈클린슈트라세에 자리한 커다란 아틀리에에서 두문불출 작업에만 몰두한 은둔의 예술가였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 특유의 육중한 대형 금은도금 조각은 때론 폭과 높이가 7-8m에 달할 정도로 초대형이어서 운반이 어렵기로 악명 높았는데, 그 점 또한 여간해서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해외 미술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 한 한 이유였다.

〈Ohne Titel(Untitled)〉 1997,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Wien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지론콜리는 양차 대전 사이 격동의 시기인 1936년에 오스트리아 남부 소도시 빌라흐(Villach)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금속 공방에서 금은세공을 배웠다. 청년 금속세공 장인 지론콜리는 1957년 빈 응용미술대학(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unst Wien) 회화과에 진학하며 순수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가 지망생들이 그러했듯 장래 화가가 될 꿈을 지니고 있던 젊은 지론콜리는 미친 듯이 스케치와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캔버스 스트레칭, 틀 짜기, 프라이머 밑칠 작업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회화를 위해 실은 조각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는 잠시 회화과 수업을 멈추고 파리로 건너가 1년 동안 당시 프랑스 예술계와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접했다. 특히 이 파리 체류기는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을 직접 보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분야가 조각임을 깨닫게 해준 분수령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인체 조각의 부피를 2차원에 가까울 정도로 납작하고 가늘게 깎고 제거했다가 다시 부피를 가하여 조형하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3차원 조각의 ‘변신(transformation)’ 콘셉트에 깊이 감명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지론콜리는 1960년대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30년 동안 철사와 폴리에스터를 주재료로 삼아 조각과 설치물을 꾸준히 제작하면서 그가 말한 이른바 ‘소외된 인생 속의 파편들을 공간 속에 펼치고 배열한, 세심히 고려된 표면들 (surfaces of considerations)’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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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

〈Entwurf zur Veränderung von Säule mit Totenkopf(해골로 기둥을 바꾸기 위한 디자인)〉 철분 페인트, 종이에 잉크와 과슈 61.8×89cm 1971 Courtesy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und Kunstbau München ©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GMBH / ESTATE BRUNO GIRONCOLI / GESCHÄFTSFÜHRERIN CHRISTINE GIRONC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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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60~70년대 빈에서는 아르눌프 라이너와 귄터 브루스가 거리와 공공 장소에서 스스로의 몸을 자해하는 극도로 격렬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는 사이, 전설적인 갤러리 네히크스트 상크트 슈테판(Galerie nächst St. Stephan)을 주축으로 한 빈 제1구역 화랑가에서는 조각가 발터 피힐러와 건축가 한스 홀라인이 반(反)미학주의 팝 댄디파를 이끌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을 싹틔우고 있었다. 지론콜리는 빈 악쇼니스무스(Wiener Aktionismus) 정신으로부터 영향은 받았지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고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유입된 개념주의 국제 사조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20세기 후반기, 과거에 대한 향수가 채 가시지 않은 오스트리아에서도 나치정권의 잔재와 가톨릭 문화를 뒤로한 채 경제
재건을 위한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쟁 원리, 대량생산과 대량소비형 경제, 대중적 팝 문화가 일상을 적셔들어 갔다. 지론콜리는 가볍고 경쾌하지만 깊이 없는 대중소비재와 플라스틱 신소재에 담긴 팝 미학에 매료됐고, 그래서 조각의 형태를 잡는 주소재로써 폴리에스터를 주저없이 포용했다. 폴리에스터 합성 폴리머나 유리섬유로 조각의 기초 골조와 모델을 만드는 작업은 본래 20세기 산업디자이너들이 모크업(mock up)이나 제품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작할 때 쓰던 기법이다. 이렇게 폴리에스터와 금속광택제를 다룬 것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지병으로 오래 고생했음에도 그는 이 20세기 기적과 편의의 신소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Entwurf zu Polyesterfigur(폴리에스터 형상을 위한 디자인)〉 철분 페인트, 종이에 잉크와 과슈 87×110cm 1965 개인소장 Photo: © Galerie Elisabeth & Klaus Thoman/Jorit Aust ©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GMBH / ESTATE BRUNO GIRONCOLI / GESCHÄFTSFÜHRERIN CHRISTINE GIRONCOL

지론콜리가 본래 금은세공 장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던 만큼 그의 조각 양식은 지극히 디자인적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겸 디자인 이론가인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는 디자인적 요소가 짙은 그의 작품을 3차원으로 펼쳐 놓은 미래주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interactive storytelling) 조각화라고 해석한다. 관객의 시야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래 비전 내러티브가 달리 전개되며 마치 조각으로 된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감흥을 자아낸다. 공상과학 영화나 악몽에 나올 법한 미래 디스토피아 속 괴물 기계에 에델바이스 꽃, 포크와 숟가락, 옥수수, 갓난아기, 개, 원숭이 형상 같은 지극히 진부한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배열해 놓았다. 인간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을 가진 외계인이 만든 듯 금은으로 말끔히 마감된 폴리에스터 조각 몸체는 어쩌면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은의 케이스 속에 플라스틱 부속과 금속 회로를 채워넣은 ‘겉 다르고 속 다른’ 각종 21세기 모바일 스마트 디바이스에 대한 은유는 아닐까.

처음부터 지론콜리의 드로잉은 조각을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다. 흔히 조각가에게 스케치와 드로잉은 최종 조각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착상 또는 창작 프로세스를 위한 준비 과정이지만, 그는 조각과 드로잉을 각기 독립된 창조적 결과물로 보고 평행으로 작업했다. 조각과 대조적으로 드로잉의 장점은 비현실적이고 때론 초현실적인 그의 상상력과 착상을 종이 위에서 맘껏 발휘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조각은 동역학, 정역학, 중력, 균형 등 온갖 물리적 조건을 절충해야만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종이 위 드로잉의 세계란 실현 불가능한 물리적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롭고 제약 없는 ‘사색의 장소(areas of reflection)’였던 것이다.

전시전경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 mumok, Photo: Stephan Wyckoff

지론콜리가 새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의 문학에서 깊이 영향 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각 <유리관 속의 모형(Modell in Vitrine)>에
‘머피(Murphy)’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는 동명의 새뮤얼 베케트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체로 흔들의자에 앉아 무사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며 은둔하는 소설 속 반(反)영웅 머피는 어찌 보면 예술이라는 보호장치 덕분에 바깥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던, 민감하고 섬세했던 조각가 자신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론콜리는 소설 속 주인공 ‘머피(Murphy)’로 화하여 조각을 ‘조형(morph)’하고 정해진 형상과 심볼 언어를 반복해 사용하여 조각에 등장시킨다.

고통이라는 ‘인간적 조건(human condition)’에 대한 그의 사색은 과슈 드로잉 작품 <체육 시간(Turnstunde)>(1970)에서 체육 교사의 구령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런가 하면 <푸른색의 개 디자인(Entwurf, blauer Fluschi)>처럼 인간에게 시달리거나 유린당하는 동물이나 고문당하는 인간이 폭력적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가 매 조각작품에 반복해 사용한 이른바 ‘백설공주 모티프’ – 에델바이스 꽃, 개, 옥수수, 웅크린 아기, 전구, 하트, 스와스티카, 마돈나 등등 – 는 죽은 듯 얼어붙어 보이지만 공상과학 연재 드라마에 고정 배우들이 재출연하듯 죽었다 되살아오는 망령들이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음과 다름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백설공주(Snow White)란 ‘저승에서 돌아온 자(revenant)’, 눈만 감으면 보이는 악몽에 대한 은유다.

〈Figur mit ovalförmigen Hängeteilen(정지된 타원형의 조각 형상)〉(사진 가운데), 1984–1990, Bruno Gironcoli Werk Verwaltung, Wien © mumok, Photo: Stephan WyckoffBruno Gironcoli. In der Arbeit schüchtern bleiben (Shy at Work), mumok, 3. Februar – 27. Mai 2018 / February 3 to May 27, 2018

지론콜리는 자신의 작품 속에 담긴 상징이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훌륭한 미술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관객의 심기를 건드리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전자세계(Elektronische Welt)>(제작년도 미상)는 개인 모바일 기기의 보편화와 네트워크 사회, 4차 산업혁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가상현실 같은 신유행어가 만연하는 21세기 현대인에게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 보라고 재촉하는 것은 아닐까? 기이하고 압도적인 조각작업 만큼이나 방대하고 아리송한 브루노 지론콜리를 드로잉 도제사로서 재점검하는 전시 <브루노 지론콜리-쑥스러운 조각가(Bruno Gironcoli, Shy at Work)>는 빈 루드비히 근현대미술관(MUMOK –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에서 2월 3일부터 5월 27일까지 진행된다. ●

브루노 지론콜리는 1936년 오스트리아 남부 빌라흐(Villach)에서 태어났다. 인스부르크에서 금세공을 배웠으며 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ünste Wien(빈 응용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빈 미술아카데미 조각과의 수장이 됐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Grand Austrian State Prize(1993), Austrian Decoration for Science and Art(1997), Prize of the city of Vienna for Visual Arts(1976) 등을 수상했다. 2010년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Wiener Zentralfriedhof(빈 중앙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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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FOCUS 감각과 지식사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위력 사이

이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피어스 바르네크&매튜 비더만 〈퍼스펙션〉 컴퓨터, 프로젝터, 스피커 2015 패턴을 맞추려 시선을 움직여야 하는 관람객에게 사운드를 들려줘 공간인지에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공간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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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에 있어 테크놀로지는 양면의 성격을 지닌다. 인류의 지금을 최신의 문법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적절하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보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과 지식 사이전〉(3.2~25,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바로 그러한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라 할만하다. 경외와 반성, 낙관과 부정 혹은 비판의식이 뒤섞여 있으니 말이다. 이는 미디어아트가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리트머스지(紙)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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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비더만&마르코 펠리한 〈우린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경각심과 지성을 갖춘 시민사회 건립에 대해〉 컴퓨터, 전파발생기, 안테나, 프로젝터, 사운드 2016~ 글로벌통신을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 악용 일면을 드러낸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군산업복합체 구조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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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전당 전시협력감독으로 <감각과 지식사이전>을 기획한 아베 카즈나오는 시카타 유키코와 함께 1990년대 초부터 2001년 폐관 때까지 캐논 아트랩에서 캐논 사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아트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야마구치시의 문화 교류 플라자 설립을 준비하는 연구자 그룹인 Soft Study Group을 이끈 일본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전문가이다. 10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문화 교류를 위한 플라자’는 2003년 ‘야마구치 시립예술정보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 and Media, YCAM)로 개관했고, 아베 카즈나오는 YCAM의 학예실장과 예술감독을 맡아 지난해까지 국제적인 미디어 아트센터로서 YCAM의 활동을 이끌어왔다. 개관 기념 프로젝트인 라파엘 로자노 헤머의 <Amodal Suspension>(2003),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미디어 아티스트 시로 다카타니의 협업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2007), 세상을 떠난 세이코 미카미의 <Desire of Codes>(2010) 등 수많은 작품이 아베 감독과 interlab의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 2000년을 전후해 영국 리버풀의 FACT, 일본 도쿄의 NTT ICC, 센다이 미디어테크, 한국의 아트센터 나비, 독일 카를스루에의 ZKM 등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예술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적 실험이 진행되고 전담 연구 기관이 탄생했다. 캐논 아트랩과 YCAM은 선두 기관으로 새로운 기술의 예술적 수용과 접목을 이끌어왔다. 특히 야마구치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YCAM은 국제적인 예술가와의 협업뿐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특히 아이들이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뉴미디어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 마련에도 집중해왔다. 즉,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실제 삶에 연결할지, 예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고민이 그 속에 담겨 있다. 2014년 8월에 YCAM에서 열린 <Localizing Media Practice>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달라진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 날 아베 감독의 발언은 대재난 앞에 제기된 근원적인 질문을 담고 있었다. 혁신성과 실험성, 즉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실험보다 지역 커뮤니티, 그리고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이날 세미나의 주요한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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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다이토 마나베 〈세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컴퓨터, 센서보드,전자파, 사운드 2014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미디어아티스트 다이토 마나베의 협업. 비가시적인 신호를 가시적, 청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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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지식 사이전>은 1990년 초부터 30여 년 동안 공적 기관에서 새로운 기술과 여러 분야의 예술가, 창작자를 연결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도록 지원해온 아베 감독의 그 깊은 반성과 고민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보여주었다. 참여 작가들은 캐논 아트랩에서 함께 작업했던 마르코 펠리한부터 2014년 YCAM에서 <Promise Park Project>를 통해 인연을 맺은 문경원까지 대부분 아베 감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던 작가들이다. 신기술에 대한 경외감이나 낙관주의는 사라졌고, 기술과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과 인문학적 분석, 인류의 삶의 조건에 대한 고민과 비전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의 주를 이루었다.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인 오픈프레임웍스 커뮤니티 매니저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카일 맥도날드의 작품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는 런던 버밍엄 빅토리아 광장, 광주 폴리, 네덜란드 담 광장 등 여러 지역의 영상에 대해 사이트 접속자들이 직접 특정 인물을 지정하여 묘사하고, 웹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시실 입구에서뿐 아니라 웹(www.exhaustingacrowd.com)으로 접속할 수 있다. 역, 광장, 분수대처럼 촬영된 장소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 영상에 대한 타인의 묘사가 웹으로 공유된다는 사실도 미처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감각과 지식사이>를 통해 광주의 지역이 추가되어 확장되었다. 도시 풍경과 인간 군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와 달리, 류이치 사카모토와 다이토  마나베의 <센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은 일견 추상적으로만 보인다. 사운드와 추상적인 선과 파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실 ‘전자파’라는 비가시적인 매체를 시각화한 것이다. 작품 주변에서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할 경우 실시간으로 영상과 사운드가 변화한다.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지만 우리 주위에 전자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방심하게 되는데, <센싱 스트림-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은 비가시적인 존재를 시각화하고, 사운드의 변화로 감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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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하르셰 아르라왈〈비행하는 팬터그래프〉드론, 화이트보드 2016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시각적 표현을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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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비더만과 마르코 펠리한의 <이니셔티브 API-피닉스 선언과 이니셔티브 API 북극권 지도>는 남극과 북극 지역 거주민들과 오픈 소스 테크놀로지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하고 그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 아티스트가 설립한 비영리 기구이다. 극지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와 과학, 테크놀로지와 교육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오픈 소스를 활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연결한다. 정보 자체가 자본이 되는 정보화사회에서 ‘오픈 소스’는 자본과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소외 문제를 해소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한 주요한 전략이자 비전이다. 안보를 위해 정부가 공공연히 개인의 정보를 통제하고 사찰하는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우린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와 병치하여 전시된다. 즉,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의 통제와 공유가 각각 사회를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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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맥도날드,조나스 존게한 〈군중 완벽하게 묘사하기(광주)〉 소셜미디어와 연동하는 영상, 컴퓨터 2017 공공의 장소에 설치된 CCTV를 매개로 해 미래 감시체계의 자동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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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원 볼트에 전시된 로렌 매카시와 카일 맥도날드의 <사회적인 영혼>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만 서늘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참여자의 트위터 계정을 입력하고 사방이 유리로 된 공간 속에 들어가면, 맞춤형 알고리즘이 기존 방문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눈) 계정을 소개해준다. 서로 반사되는 유리 상자 속에서 증폭되는 이미지를 바라보다 보면 그 천문학적인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 이미 입력한 정보를 통해 우리를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 속으로 이끌어가는 SNS는 ‘뜻밖의 인간관계’로 확장해주는 순기능을 갖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유한한 생명의 존재인 우리를 계획하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도록 끌어간다. <사회적인 영혼>은 우리가 처한 위험, 오히려 더 고립되고 공허해지는 빈곤한 인간관계의 처연한 초상이다.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키는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 속에서 하르쉐 아그라왈의 <탠덤 v2>는 일견 밝고 유쾌해 보인다. 웹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된 드로잉 프로그램은 대부분 규칙에 따라 기존 작품과 유사한 형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탠덤 v2>는 반대로 인간이 소프트웨어로 그린 그림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변화시킨다. 기쁨, 슬픔, 분노, 몽상 등 성격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이미지를 조합해나간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우월성, 인간만의 독창성을 기계가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어쩌면 그러한 믿음 자체가 허구일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칠 때 밝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가장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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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원&전준호〈자유의 마을〉〈자유의 마을_부재〉단채널비디오(각, 총2면) 2017 마을의 오랜 역사와 6·25전쟁 이후 조성된 마을 모습을 각각의 영상으로 대비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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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작품들을 통해 <감각과 지식 사이전>은 우리의 감각과 지식 사이에 여러 층위로 존재하는 미디어 환경과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가시화한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상황들을 대면하게 한다. 기존 현대미술계의 어휘와 맥락에서 벗어나 종횡무진하던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기획자가 사회와 인간에 대해 날카롭게 되짚어보고,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의 비전을 고민하고 있다. 혁신과 실험을 상징하던 한 세대가 책임감 있는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담았다. 따라서 <감각과 지식 사이>는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일상 속 깊이 침투해 있는’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주목해야 할 주제를 짚어준 전시인 동시에 아시아문화전당, 특히 ‘창제작센터’에 건네는 일종의 제언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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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RTIST] 박재철

 
동양화가 박재철의 그림에 담긴 시선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해서 사회로 확장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박재철의 사유는 특유의 회화적 형식을 거쳐 독보적인 형상회화로 완성된다. 박재철은 광주은행에서 제정한 〈제2회 광주화루〉에서 대상작가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작가 박재철의 과거 작품세계와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4월 11일부터 5월 7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창조원 복합6관)에서 열리는 〈제2회 광주화루〉10인의 작가전에서 박재철의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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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의 서사회화

김최은영 | 미학, 경희대 겸임교수

박재철 〈비천한 길Ⅰ, Ⅱ〉 한지에 먹, 채색 162×130cm(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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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엇이냐?’ 물었다. 원론을 묻는 것 외에 ‘당신, 동화작가이기도 하지요?’ 라는 속내가 포함된 질문이다.

박재철의 시각예술작품과 동화책 양쪽 모두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작가론을 쓰는 것은 내심 부담스러운 일이다. ‘좋아한다.’라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객관성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점도 적지 않은 고민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감정을 무장 해제시키는 박재철의 글쓰기를 익히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시각예술을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로 옮기면서 미학적 살을 붙이는 것이 필자의 직업이다. 간혹 이론으로 중무장한 작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당혹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작정하지 않은 진솔함으로, 허술한 말솜씨로 전달되는 진심을 목격할 때 곤혹스러운 글쓰기가 되리라 직감하게 된다.

요즘 미술계에 흔한 단어인 ‘일상’이란 낱말 없이 그려진 박재철의 1998년 작품 〈박이야〉, 〈마셔〉, 〈난 나비야〉를 다시 본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박재철 개인전, 서남미술전시관, 1999) 회화적 장식 없이 그려진 수묵의 손 위에 작은 박이 심어진 화분이 놓였다. 화면 위에 흐릿하게 글을 적었다. ‘박이야’, ‘고마워’. 뻗은 두 손 위엔 소박한 박 바가지에 수묵과 대조적으로 파란색 물이 시원하게 담겼다. 화면 귀퉁이, 말풍선에 작은 글이 적혔다. ‘마셔’. 활짝 핀 박꽃의 수분을 돕는 붓질을 하는 작가는 ‘난 나비야’라는 상상과 현실을 화면에 동시에 담았다. 동양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현대적 계승으로 미술계에 온갖 실험이 득실거릴 때 박재철은 화면에 달랑 손 하나, 화분 하나,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이데올로기도 없고 시대적 담론도 없다. 화자(話者)의 시선은 온전히 일상 안에 있었고, 그 일상의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존에 학습한 필법과 각종 규칙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박재철이다. 방법을 버린 후 남는 감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 작가는 서양철학과 미학, 사회학 등의 강좌를 돌다 가장 하찮은 행위의 하나인 그림을 소박하게 하기로 마음먹고 일상을 마주했다. 각각의 화면으로도 읽히는 이야기는 작품을 연이어 보면 서사구조가 더욱 도드라진다. 먹과 물(水墨)만으로 그려낸 박과 인물은 화려하고 윤기 나는 장식 없이도 감정이 살아 있고, 새싹인 박과 꽃을 피우는 박, 바가지가 된 모습까지 연속성을 담고 있지만 소박한 구성이 억지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동아시아 미학 중 의경(意境)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직접적이면서도 간접적이고, 확정적이면서도 불확정적이며, 형상적이면서도 상상적이라는 데에 있다. 1 박재철의 작품은 특정한 형상의 직접성, 확정성, 감수성을 지니면서도, 상상의 유동성,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사물의 의미를 빌려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의문을 얘기해보는 방식을 취한다.” – 박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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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 《봄이의 동네 관찰일기》와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길벗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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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은 회화뿐 아니라 동화작가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풀어간다. 구전동화를 재해석한 〈팥이 영감과 우르르 토끼〉는 읽는 이에 따라 선악의 구조가 바뀔 수 있다. 나쁘고 좋은 것으로 양분된 흑백논리가 아닌 나쁜 것과 더 나쁜 것을 고르거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행복한 봉숭아〉는 관찰이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보고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연습을 하는 일로 풀어내준다. 생각하게 하는 글과 그림인 셈이다. 작가는 고백처럼 생계형(?) 동화작가라 말하지만 필자는 동화 역시 그림과 마찬가지로 박재철의 생각을 담아내는 하나의 채널로 보인다. 그림으로 표현한 문학은 그의 그림 속 서사와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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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나비 물을 만나다〉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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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의 그림 속 서사는 〈15년 만에 숨을 쉬는 남자〉와 〈울지 못하는 남자 1, 2〉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아물지 않은상처〉 박재철 개인전, 갤러리 H, 2016) 이제 그는 일상을 소재로 그리고 있지만 단순히 일상 자체가 주제인 작품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비교될 만한 작품은 〈울지 못하는 남자 1, 2〉와 첫 번째 개인전의 〈스위티를 맛있게 먹다〉이다. 공원의 벤치 위에 앉은 남성은 화면 구조에서 다분히 유사성을 갖는다. 젊은 그는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스위티를 맛있게 먹다〉) 여백이라 불릴 만한 화면처리는 주변보다 인물 자체에 집중한 표현으로 읽힌다. 밝은 표정과 손과 옷의 꼼꼼한 붓질은 작가가 주목하여 공들인 대상이 그 자신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년의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고, 벌거벗은 몸은 허술하기만 하다.(〈울지 못하는 남자〉) 남자와 벤치 주변에는 공원용 꽃나무가 잘 정리되어 있고, 보도블록마저 장식으로 꼼꼼하게 채워졌다. 콜라주처럼 구성된 화면 곳곳에는 깨진 액자 속 결혼사진, 움켜쥔 천 원짜리 지폐 등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 가능한 요소들이 산재한다. 이 요소들은 특정한 감정과 연상을 유도하며 줄거리를 엿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몇몇은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퍼뜨리고 성격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공원의 벤치, 남성, 꽃나무 등의 형상은 그대로인데 작가의 마음에 따라 화면에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화면 요소는 대부분 함축적 의미가 포함된 환경과 줄거리, 세부 묘사, 표정, 눈빛, 손짓 등 언어를 갖추고 있다. 형상은 뜻에 따라 변하고 뜻은 감정의 발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는 동아시아 화론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2 여기서 박재철 회화의 간단한 표현 방식을 아이처럼 그리기로 읽어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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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울지 못하는 남자Ⅰ〉 화선지에 먹, 채색 130×162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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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철 〈15년 만에 숨을 쉬는 남자〉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스위티를 맛있게 먹다〉의 청년에서 〈울지 못하는 남자〉가 되어버린 중년 작가의 시선은 개인에서 사회로, 개별에서 보편으로 확장된다. 특히 〈비천한 길〉 연작은 상징과 서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국면의 채널을 동시에 보여주는 박재철의 신작들이다. 공공의 공원, 아파트 단지 내의 그곳은 여전하다. 이제 주인공은 울지 못하는 남자가 아닌, 공원을 장식하는 나무들과 환경들이다.
아파트 단지에 조경해놓은 나무는 가지와 뿌리가 절단되고 심어진다. 아마도 운반의 편리와 아름답게 보일 목적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상처 낸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하려고 천을 감고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지지하고 영양제를 꽂아 놓는 일이다. 아이러니로 서있는 이런 나무에서 작가는 강요된 삶을 살을 살아온 자신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3 박재철은 이 연작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한 해석도 서슴지 않는다. 의자는 쉬는 것, 지폐는 자본, 보도블록은 길 등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들을 잘리고, 꺾이고, 상처 입은 후의 모습으로 재현하면서 전혀 다른 감상과 생각을 제시한다. 일상이 모아지고 축적되어 형성되는 삶의 태도나 관념에 대해 서술한다. 사회적 약속과 규범들, 공공(혹은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 등 시각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각이 깊이로 인해 추상화된 사유의 작용들을 말이다.

 

박재철 〈이 나비는 무엇을 쫓는 걸까?〉 화선지에 먹, 채색 91×11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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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붓질은 작가가 긴 세월 숙련을 통해 얻은 동양화 필법을 버리기 위해 시작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복잡해진 화면은 서사적 구조로 풀어야 할 작가의 목소리다. 복잡해진 화면은 아주 많은 대상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미 여러 겹과 여러 가지의 표상이 서로 짜여서 하나로 엮이게 된다. 대상들은 화면에 직접 병치되거나 대비되면서 시각적으로 공간성과 예술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사색을 제공하기도 한다.

박재철의 이러한 서사공간이 회화이든 글이든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창작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우월한 경우의 수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박재철의 시각예술은 창작의 공간을 마련하고 동화라 불리는 그의 글들은 두 가지 이상의 장면을 연결해서 깊은 생각을 일으킨다. 시각적 공간과 깊은 생각은 사실 글과 그림 양쪽 모두에 해당하니 필자의 창작 폭은 박재철의 그것보다 작음에 틀림없다.

‘그림은 무엇이냐?’ 물었다. 필자의 우문에 박재철 작가는 현답을 준다. ‘나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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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재 철

1968년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첫 개인전은 1999년 서남미술전시관에서 열었고, 두 번째 개인전은 2016년 갤러리 H에서 열었다. 쓰고 그린 어린이 책으로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행복한 봉숭아》가 있고, 그린책으로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연습학교》, 《옛날에 여우가 메추리를 잡았는데》 등이 있다. 현재 경기도 김포에서 작업하고있다.


1 푸전위안,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 의경》,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p.117.
2 形勢豈有窮相, 觸則無窮. 심종건, 《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권1.
〈산수山水〉 중 〈용필用筆〉
3 박재철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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