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 윤 상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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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윤 | Yoon Sangyoon
윤상윤은 1978년 태어났다. 추계예대를 졸업하고 영국 첼시예술대 대학원에서 순수예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표갤러리, 갤러리 조선, 갤러리 세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린 전시 〈Mean old world〉에서 왼손으로만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 2012년 제1회 종근당 예술지상, 2019년 호반 남도문화재단 전국청년미술공모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에서 10년째 작업 중이다. 6월 26일부터 7월 14일까지 아터테인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낯설지 않은 현실을 기묘한 방식으로 나열하고 3개 층위의 자아를 중첩시키는 윤상윤 작가. 왼손 쓰기를 강제적으로 금지당한 작가는 오른손으로 줄곧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이따금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던 왼손으로 2년 전부터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왼손의 실력은 점점 향상되고 있다. 물론 자유와 흥을 견지한 채로. 작가는 현재 두 손의 작업 균형을 맞춰가고 있으며 50세쯤 되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의 경지가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 왼손의 드로잉이 오른손 회화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침윤해나갈지 기대하며 윤상윤의 회화 작품을 소개한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의미
박겸숙 | 아트노이드178 대표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쩌면 이 세상에는 없을지도 모를 이국적인 풍경이다. 거기에 낯익은듯 낯선 이들이 모여 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의 기묘한 회합은 언젠가 내가 보았던 것만 같다. 눈을 감아도 잔상으로 남아서 자꾸 떠오른다. 기시감인가.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아련하면서도 이질적인 기묘한 분위기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 윤상윤이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화면에는 기억 속 빛바랜 사진 같은 풍경이 한껏 빛을 머금고있다. 작품 앞에선 누군가의 욕망 그 밑바닥에 자리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기어이 끄집어 올리려는 듯, 공명한다.
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윤상윤은 낯설고, 예상치 못한 그 무엇, 그리고 기이한 분위기를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다른 무언가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마크 피셔)이다. 그는 실재를 환기하는 도발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 체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곤한다. 사회가 정한 틀과 무한경쟁에서 낙오하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간다. 내재화된 불안을 해소하기는커녕, 조장하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고유성은 접어둔 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우리는 “지배적인 현실에서 평생 빠져나올 수 없다. 영역 안에서 수정 당하고 길들어 자신의 본질을 잃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작가노트).” 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우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라볼 계기가 필요하다. 윤상윤은 10대 학창시절 홀로 병원에 입원하여 3달 넘게 매일 바라보던 풍경과 30대에 영국 유학 시절 어떤 그룹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살며 6년간 매일 바라보던 풍경은 비슷했다고 회상한다. 어떤 그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었던 시간은 그에게 불안과 분노, 억울함, 외로움을 느끼게 했지만, 일종의 일탈과 같은 자유도 경험케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틈을 포착하는 예술가의 시선이야말로, 어떠한 탈출구도 없어 보이는 현실의 장막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계기(마크 피셔)이자 가능성이다. 모든 가능성을 무화시켜버리는 견고한 체제 속에도 전복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언제나 미끄러져 달아나곤 했던 현실의 장막을 움켜잡아 보는 것이다. 예술가들도 이제 현실을 마주하고. 그 기저에 자리한 욕망의 일렁임과 그보다 더 깊은 바닥에 자리한 텅 빈 공백을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장막을 들어올려야 한다.
구조화된 세계
윤상윤의 작업실 창문 옆에는 수채화가 한 점 걸려 있다.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누구든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액자 속에는 다리 끝부분이 찰랑거리는 물에 잠긴 테이블 위에 의자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런던 유학 시절 밤늦게 학교 작업실에 들어갔을 때 였다. 아직 청소가 덜 끝난 상태라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테이블 위에는 의자들이 올려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선생님의 호통에 마지못해 올라가 벌을 서던 그 책상이었고, 또 그것은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에 가서 보던 거장들의 작품 속 모델들이 포즈를 취한 그 단상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내려다 보는 단 위의 공간은 어린 시절 윤상윤의 기억 속의 소외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유의 자리이자 도덕적 판단 기제처럼 옳고 그름, 이상적인 상황을 판단하는 초자아의 자리이다. 그는 정신분석학뿐 아니라, 푸코, 히치콕 영화와 동양적 사유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이것을 3단으로, 지금-여기의 현실을 그려낼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구조를 완성해냈다. 단상 위의 초자아(Super ego)의 아래에는, 주변인들이 있었다. 그곳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본능을 조절하는자아(Ego)의 자리이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와 결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군중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은 물에 잠겨 있다. 무의식적인 욕구, 우리의 본능(Id)들, 우리의 인식과 통제를 벗어난 무의식적 욕망들이 수면 아래에, 가장 하단부에 가라앉아 있다.
세 가지 차원을 수직으로 구조화한 윤상윤의 3단 구조 작품은 이렇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왼손과 오른손
윤상윤은 3단 구조 작품에 사용할 모델을 주변에서 찾고, 그들에게 연극적인 포즈를 요청하여 사진을 찍는다. 적합한 풍경도 찾아내서 직접 카메라에 담는다. 수많은 이미지를 조합하여 화면에 재배열한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명도를 극대화시켜서 세밀하게 그려내고 그 위에 기름에 엷게 탄 안료로 채색을 마무리하는 작품의 완성도는 실로 놀랍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영국 유학 시절 튜터의 조언을 잊지 않는다. “자네의 작품 앞에 카메라가 아니라, 자네가 있어야 하네.” 카메라의 시선에 의존하기보다,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 작가가 직관적으로 파악한 일체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오른손 페인팅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구조가 공고해질수록, 이 체계에 담아낼 수 없는 또 다른 표현 욕구들은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어야 했다. 그 탈출구가 바로 왼손이었다. 그의 왼손 드로잉을 근래의 작업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이미 대학원 시절부터 오른손 페인팅과 왼손 드로잉을 발전시켜왔다.
그것은 길든 오른손의 체계화된 유화 페인팅 작업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왼손 드로잉은 날것,다듬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유희로 완성된다. 그는 오른손과 왼손의 특징을 이분법적으로 설명한다. 단숨에 그리되, 산점투시처럼 화폭 안을 거닐 수 있도록 그려내는 동양적인 작풍이 고맥락 페인팅인데 이런 방식을 왼손 드로잉에 적용했다. 그와 반대로 그림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아 수정을 거듭하며 다듬어 완성하는 서양적인 체계가 저 맥락 페인팅으로 이것이 그의 오른손 페인팅에 해당한다.
윤상윤의 왼손 드로잉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춤 없이 이어가는 선과 면, 그리고 이국적인 유쾌하고다채로운 색감이 매력적이다. 작가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무의식적인 선들과 마치 자동연상기법을 떠오르게 하는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내러티브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마치 오른손으로 그린 3단 구성의 하단부, 물속에 잠겨 있는 잠재욕망들, 그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분출(작가와의 대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그가 감춰왔던 이미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윤상윤은 왼손 드로잉을 위한 소재를 자신의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다. 어떤 순간, 자꾸 맴돌게 되는 기억 속의 사건들을 소급하며 찾아 나선다. 알 수 없는 감정의 끌림에 내맡긴다. 그는 그 시절 느꼈던 주변의 분위기와 정서, 지금은 알 듯도 한 무의식적 충동들까지 현재로 소환한다. 무심하지만 흥미로운, ‘심오한 그 무엇’을 채집하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기억의 편린들을 관찰한다. 왼손 드로잉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심상이 보는 것’(작가노트)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완성의 순간까지 작가가 진지하게 마주하고 기록해낸 신체의 흔적이자, 비로소 도래한 의미이다.
과거는 미래에 완성된다. 윤상윤은 올여름 열릴 왼손 드로잉 개인전을 위해 또 자신의 기억 깊숙이 침잠해 있던 이미지들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번에도 어린 시절 본 영화 속에 등장해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들이 주인공이다. 이런 이미지들을 소환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도 자신의 심층에 자리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의미를 탐색 중이다.
그의 기억 속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물질처럼 겉돌곤 했다.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롭고 소외된 상황에 체념하듯 살았다. 하지만 지구에 위기가 닥쳐오자, 그들은 각성했다. 스스로 억압했던 ‘그것’을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리고 지구를 위기로부터 구해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외계로부터 온 자, 이방인이었던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지금 이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불가능한 세상이라고 모두가 체념하더라도,어느날 ‘불현듯’ 다시 한 번 ‘무엇이든 가능케 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할 수 있다. 그것은 전혀 다른 현실로부터 올지도 모른다. 이 사회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귀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갑작스레 도래할지 모를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윤상윤의 회화 작품 속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의미들이 도래할 순간이 기대된다. 그렇게, 그의 과거는 완성될 것이다. ●
< 월간미술 > vol.426 | 2020.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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