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그리는 달콤씁쓸한 아트월드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동시대 미술인들이 SNS로 소통하는 것은 이미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20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내가 사는 피드》에 이미 예술가들의 SNS 활용법이 여러 작가의 작품과 함께 상세히 소개됐다. 4년 전엔 팬데믹이 만들어 낸 특수한 상황의 생존방식으로 주목받았다면, 지금은 작가에겐 작업의 오랜 소재이자 큐레이터에겐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창구가 됐다. 그러나 글로벌 아트마켓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팬데믹 이후 미술작품을 실제로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행위는 금기가 아닌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아트 바젤과 가고시안 갤러리는 새로운 작가 발굴에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반면에 뱅크시 같은 작가는 수백 -수천만 팔로워를 기반으로 갤러리 없이 수익을 창출하고 경력을 이어간다. 작가에게, 큐레이터에게, 마케터에게, 또 다른 미술계 종사자들과 애호가들에게 SNS는 더는 현실세계의 대안이 아니다.
분명 욕망과 취향으로 점철된 정보 혹은 트렌드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미술계 소통 창구 혹은 정보 플랫폼, 전통적인 미술계를 극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론장, 화려하고 피상적이고 편협한 정보에 휩싸이기 쉬운 편향과 혼돈의 공간, 데이타임 디지털 미술관이자, 포트폴리오, 개인적인 이미지 아카이브, 동시대 미술계를 엮는 SNS는 달콤씁쓸한 디지털 아트월드다.
이런 면에서 이번 설문은 미술계 생존에 필수적인 매체로 떠오른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과 활용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다. 본 설문조사는 2024년 3월 4일부터 3월 18일까지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작가,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이론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 방식은 SNS와 동시대 미술에 관한 네 가지 질문에 대해 서술형으로 응답하도록 했으며, 총 26인의 미술계 종사자가 응답에 참여했다.
응답자 3분의 1이 작가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큐레이터가 다음을 잇는다. 인플루언서와 미술비평 -이론가도 20% 비율로 골고루 참여했다. 이론가 중 2명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SNS와 아트월드의 관계를 다루는 담론 활동을 활발히 하는 이들이다.
전해 받은 응답에 담긴 키워드를 분석하고, 이를 중심으로 SNS에 대한 미술인들의 인식과 그 경향성이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응답이 서술형으로 진행된 만큼, 최빈출 키워드를 파악하는 빈도분석 및 응답의 성격 등을 파악하는 정성적 분석과 함께, 미술계에서 이미 변화한 SNS 생태계의 위상에 관해 정리했다. 통계적 분석 방식의 활용은 동시대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실눈 뜨고 다르게 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엄밀한 수준으로 통계적 분석을 할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며, 표본의 양이 적어서 이번 설문이 SNS를 이용하는 미술계 종사자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나 인식의 방향성을 정리하는 가운데 동시대 미술인이 SNS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SNS와 미술계의 관계에 관한 생각
SNS는 정보통신기술이 내려준 요술봉일까, 인간을 감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감옥일까. 26인의 답변에서 언급된 SNS와 미술계의 관계를 ‘긍정/부정/양가적’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미술계에서 SNS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이가 14명(53.8%)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11명(42.3%)은 긍정적인 지점과 부정적인 지점을 모두 언급했다. SNS보다 현실세계가 더욱 소중하다는 부정적 견해도 1명(3.8%) 있었다.
SNS 계정 사용의 방향성
미술인에게 자신의 SNS는 공적인 영역일까, 사적인 영역일까? 응답에서 나타나는 사용 용도를 집계해보았다. 전시 홍보나, 작품 아카이빙을 위한 공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는 응답이 19명(73.1%)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작업이나 전시와 관련된 내용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고, 일상 등 개인적인 내용은 스토리에 올린다는 등 두 용도에 모두 사용하는 사람은 6명(23.1%)이었다. 동료들과의 교류를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주로 올리는 사람도 1명(3.8%) 있었다. SNS 초기에는 개인적인 일상을 공유하다 점차 포트폴리오를 공유하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일부 있었다. 인스타그램 활용방식이 인스타그램의 노출도와 영향력에 따라 변화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직군에 따라서 사용방식이 달라지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의 대부분은 SNS를 온라인 포트폴리오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작업을 위한 리서치 공간이자 미술계 소식을 접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많이 언급했다. SNS를 직접적으로 작업의 소재로 다루는 작가(노상호, 박보마 )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해 동료들과 교우하는 작가(얄루 )도 있었다. 한편 나머지 직군에선 인스타그램을 작가와 전시를 탐색하는 데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활용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피드를 꾸준히 업로드해야 한다는 것. 노출도와 빈도가 중요한 SNS 생태계임이 이런 응답 경향에서 드러난다.
많이 언급된 키워드
먼저 26명의 응답을 요약 정리하고, 이를 다시 한번 읽어내려가며 키워드 단위로 묶었다. 특정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만큼 SNS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중복 언급된 횟수가 많은 순서대로 키워드를 나열하고 그 의미를 짚어보았다.
키워드 : 소통, 홍보 (각 21회 언급 )
직군을 막론하고 모든 응답자에게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등장한 키워드는 소통, 홍보였다. SNS의 기능과 그 영향력의 중심에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결과지만, SNS가 동시대 소통 창구의 주류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더는 SNS가 기존 미디어의 대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키워드 : 이미지 ( 11회 언급 )
‘인스타그램은 21세기의 디지털 전시장이다’, 이미지에 대한 응답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과 모바일 디스플레이의결합이 만들어낸 초연 결시대에 미술은 이미지로 ‘아주 빠른 속도로’ 치환됐다. 인스타그램엔 언제 어디서나 미술이 빠르고 저렴한 값에 쏟아진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나는 물리적 체험을 이 비물질 인터페이스가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시공을 창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키워드 : 공적, 자기, 공간 (9회, 9회, 8회 언급 )
인스타그램, 혹은 다른 서비스의 경우에도 더는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기록해내는 매체로 사용되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사건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SNS는 자기를 표현해내는 매체다. 생각을 공유하고, 뜻이 맞는 이들을 찾고,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소환당하는 공간이다. 한마디로, ‘공적 자기 공간’인 것이다.
워드클라우드 기법으로 시각화한 키워드들. 출현 빈도가 높을수록 크게 그려져 있다.
워드클라우드 글꼴 : 도스명조체(leedbeo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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