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몸–예술을
탐구한 작업들

강재영, 노재민 기자

Special Feature

예술가에게 몸, 그리고 스포츠는 매혹적인 재현/비재현의 대상이다. 이번 특집에선 스포츠를 소재로 다룬 국내외 작가 8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각각의 작품은 작가 개인의 경험과 정체성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평소 가졌던 몸과 스포츠에 대한 관심에서 발현하기도 한다. 그들의 작품은 단순히 몸과, 몸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관조하고 고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행위와 태도가 구성하는 우리 사회를 반추하고 그 사이에 놓치는 것들을 잡아 알리고 확장한다.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스포츠와 몸을 교차시키며 확장 혹은 수렴하는 시각예술의 풍경을 살펴보자.

1.이형구 Hyungkoo Lee
@hyungkoolee.kr http://hyungkoolee.kr/

〈Measure〉(스틸)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8초 2014 제공 : 작가

이형구는 해부학, 생물학, 고고학 등을 기반으로 인간, 동물, 상상 속 캐릭터 등 다양한 신체의 형태를 연구해 왔다. 그가 재연하는 마장마술은 말과 기수가 교감하며 아름다운 기술을 선보이는 경기이다. 이형구는 말의 시각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말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마장마술 그랑프리 경기를 재연한다. 그는 말의 뒷다리 골격 형태를 본뜬 알루미늄 튜브 기구 〈Instrument 01〉(2014)를 제작하여 장착한 후, 기수이자 말이 되어 마장마술을 재연한다. 그는 익숙한 이족보행의 리듬을 낯선 말의 움직임으로 바꾸고, 이 부자연스러움은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된다. 긴 훈련 끝에 그는 말의 움직임과 율동의 패턴을 발견해나가며 영상작품 〈Measure〉를 제작했다. 이형구는 인류가 더 잘 달리기 위해 선택할 생물학적 변화를 상상하며 〈호모 푸각스〉(2024)를 구상했다. 이 작업을 통해 진화를 위한 가설로 뇌, 두개골, 모발, 땀구멍, 눈, 코, 귀, 입, 흉곽, 관절, 아킬레스건, 햄스트링, 발, 엔도르핀 등이 어떻게 변화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2.매튜 바니 Matthew Barney
@pacecarforthehubrispill http://matthewbarney.net/

〈구속의 드로잉 2〉기록 사진 1988
제공 : 작가 사진 : 마이클 리스
Courtesy Gladstone Gallery, New York © Matthew Barney 1988

〈구속의 드로잉 2〉단면도

〈구속의 드로잉〉로고(오른쪽)가 그려진 홈페이지
출처 : 구속의 드로잉 웹사이트

〈구속의 드로잉(The Drawing Restraint)〉시리즈는 매튜 바니가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1987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창조의 근원은 구속’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한국에서도 2005년과 2022년 두 차례 이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초기작인 〈구속의 드로잉 1-6〉(1987~1989)은 주로 예일대 교내 체육관에서 작업과 촬영이 이루어졌는데, 매튜 바니는 2010년 SFMOMA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그가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어떻게 〈구속의 드로잉〉 시리즈에 반영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훈련 과정에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 몸을 묶는 훈련, 즉 근비대 운동 방식에서 구속의 드로잉 초기 작업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초기 작업 노트에 그가 적은 문구 “THE ATHLETH IS THE ARTIST(운동선수는 예술가다)”는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업 영상에 등장하는 바세린과 같은 기호나, 미식축구 그라운드 등의 이미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세워진 알약을 가로지르는 막대기가 겹쳐진 로고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그만의 고유한 시각 언어이다.

5분 분량의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 〈구속의 드로잉 2〉(1988)를 보면, 공간 중앙과 자신의 몸에 길이가 조절되는 라텍스 라인의 양 끝을 묶고, 벽 상단부에 부착된 칠판, 종이 등에 하키채 등으로 만든 드로잉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 고통과 속박의 드로잉은 흔적을 남기려는 그의 욕망과 그에 도달하기 위한 명상적 수행을 암시하는 것으로, 주제와 방식은 변화하지만 새로운 시리즈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모티프이다.

3.최수앙 Xooang Choi
@xooang

 〈공을 피하는 남자〉아르쉬지에 수채 57 × 39.5cm 2017

〈프래그먼츠 15〉아르쉬지에 수채 57 × 39.5cm 2024
제공 : 작가, 피크닉

최수앙은 극사실적인 표현 방식의 인체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단지 극사실적 조각이라고 하기엔 그가 묘사하는 인체의 형태와 구성이 암시하는 메시지가 간단치 않다. 초점을 잃은 눈, 손으로 이루어진 날개, 서로의 입과 성기를 가리고 있는 남성 이인상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도시 사회를 구성하는 개체이자, 그 가운데에서 주체성을 소멸당할 위기에 놓인 인간이다. 이렇듯 정교한 기술로 동시대인의 얽힌 모양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온 그의 작업은 최근 평면 탐구와 신체 내부의 해부학적 묘사로 방향을 선회해 그 재현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공을 피하는 남자〉(2017)는 작업 매체가 평면으로 옮겨오는 시점의 작품으로, 작가는 인체를 파악하는 방식을 평면에 해석적으로 펼쳐낸다. 인체의 요소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면에 일률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요소는 색만 유사할 뿐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프래그먼츠 (2021~) 연작은 이러한 접근에서 더 나아가 각각의 요소를 몸의 구성요소와 유비하여 겹쳐 그리며 그 작동 양상까지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드로잉에서 인체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근육과 뼈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각 기능별로 색을 달리해 구분하여 ‘인체의 신비’를 떠올리게 하는〈어셈블리지〉시리즈는 실제로 ‘에코르셰(Écorché)’라는 해부학 교재로 사용되는 모형을 모티프로 한 작업이다. 정제된 지식과 현실존재의 감각이라는 두 정보 사이의 틈을 주제로 한 이 작업은 기존의 작업과 비교하여 다소 건조한 톤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신체 탐구의 시작을 위한 내공이 응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전명은 Eun Chun
@meun.chun http://www.chuneun.com/

〈플로어 #10〉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108 × 144cm 2019

《전명은 : Glider》갤러리2 전시 전경 2020

〈글라이더-PB I〉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88 × 66cm 2019
제공 : 작가, 피비갤러리

전명은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사진으로 표현해 왔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에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찰하면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함께 완성해 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작가의 접근 방식은 윤원화의 해석에 따르면 “움직임 속에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전형적인 사진가보다 “지속되는 시간을 형태로 응축”하고자 하는 화가나 조각가에 더 가깝다.

전명은은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체조선수를 주제로 작업했다.〈Floor〉시리즈는 운동의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순간에 포착한 초등학교 여자 체조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연작이다.〈Floor〉에서 전명은이 주목하는 것은 인물 자체가 아닌 인물이 지나고 있는 ‘시간’이다. 그의 관심은 버저가 울리기 직전까지만 지속된다. 뛰기 직전 몰아쉬는 숨, 마루를 응시하는 눈빛, 도약을 준비하는 손짓 등의 순간들을 잡아챘다.

〈Glider〉시리즈는 〈Floor〉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작업으로, 다양한 종목의 남자 체조선수들의 손과 팔, 등과 다리의 형태를 관찰한다. 전명은은 체조 기구와 체조선수가 교감하는 순간을 기록하며, 기구와 인체의 조형성을 표현하고, 곧이어 펼쳐질 운동의 모든 단계가 압축된 순간을 붙잡았다. 운동하는 순간보다는 운동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사진에 담겨있다.

5.김예슬 Yesul Kim
@kim_yesul_ https://www.kimyesul.com/

〈Tab〉퍼포먼스 약 5분 2019
제공 : 작가

〈추진력 연습기〉(사진 왼쪽) 스케이드보드 혼합매체 300 × 300 × 120cm 2023,
〈협동 킥 연습기〉 (사진 오른쪽) 킥보드 혼합매체 240 × 34 × 98cm 2023
《stocker》 SeMA 창고 전시 전경 2023
제공 : 작가

김예슬은 작가이자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디자인과 미술 사이에 놓여 있는 회색 지대에서 발견한 시각적 문법에 따라 작업한다. 동시대 미술과 디자인의 실천과 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갈래로 분화하는 이야기와 그 층위에서 발생하는 상호 참조적 텍스트 및 담론을 연결하는 지점을 제시한다.

2019년 김예슬은 퍼포먼스 단체전에서〈tab〉을 발표했다. 이 작업에서 그는 아마추어 주짓수 선수 2인과 심판 역할을 맡을 배우 1인을 섭외하여 약 6분간의 주짓수 스파링을 연출했다. 주짓수 경기는 두 사람이 맞서 서로 상대의 몸을 조르거나 빠져나오는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선수 둘은 언뜻 정지 상태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몸을 조일 때 그 상대방은 빠져나가려 애쓰며 내부에서는 힘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김예슬은 이러한 힘의 상호작용이 오고 가는 주짓수를 조각으로 제시했다.

2023년에는 전시 《스토커》(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에 참여해서 원형판 위에 네 대의 스케이드보드를 결합시킨〈추진력 연습기〉(2023)를 설치했다. 이는 킥보드 세 대를 결합한〈협동 킥 연습기〉(2023)에서 발전한 작품으로, 김예슬은 공간상 제약이 있거나 안전상 금기인 형태를 전시 공간 내로 도입했다. 그는 도심에서 발전한 이동 수단인 동시에 이웃에게는 큰 불편을 주는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운동 시설물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밝혔다.

6.에스마 모하무드 Esmaa Mohamoud
@esmaamohamoud https://esmaamohamoud.com/

〈Blood & Tears Instead of Milk and Honey〉럭비공 가변 크기 2018
출처 : 작가 웹사이트 사진 : Museum London

〈Glorious Bones〉 재사용된 럭비 헬맷, 켄테 무늬 천, 철, 재활용 타이어 가변 크기 2019
출처 : 작가 웹사이트

캐나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에스마 모하무드는 현대 문화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정형화해 단순화하는 것과 실제 흑인의 복잡한 심리 경험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다. 구체, 금속, 의류, 파운드 오브제 등 재료를 가리지 않고 활용하며, 사진, 영상, 설치 등 여러 매체로 발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흑인 신체 정치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흑인 경험에 대한 보다 다층적인 이해를 촉진한다.

〈The Dark Knight (No Fields )〉(2019)는 여전히 미국 미식축구 문화에서 차별받는 존재인 흑인 선수에 대한 여러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영미권 사회에서 흑인이 여전히 느끼고 있는 인종차별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스포츠에 뛰어난 남성으로 대상화되는 흑인 신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Glorious Bones〉(2019)는 스포츠에서 쓰고 버려지는 존재로 드러나는 흑인 신체가 맞닥뜨린 상황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작업이다.

7.김효재 Hyojae Kim
@cxxion_cxxion www.kimhyojae.com

〈Parkour〉(스틸) 영상 33분 21초 2021
제공 : 작가

캐나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에스마 모하무드는 현대 문화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정형화해 단순화하는 것과 실제 흑인의 복잡한 심리 경험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다. 구체, 금속, 의류, 파운드 오브제 등 재료를 가리지 않고 활용하며, 사진, 영상, 설치 등 여러 매체로 발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흑인 신체 정치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흑인 경험에 대한 보다 다층적인 이해를 촉진한다.

〈The Dark Knight (No Fields )〉(2019)는 여전히 미국 미식축구 문화에서 차별받는 존재인 흑인 선수에 대한 여러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영미권 사회에서 흑인이 여전히 느끼고 있는 인종차별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스포츠에 뛰어난 남성으로 대상화되는 흑인 신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Glorious Bones〉(2019)는 스포츠에서 쓰고 버려지는 존재로 드러나는 흑인 신체가 맞닥뜨린 상황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작업이다.

8.김온 On Kim
@own.npc

〈Open Fall〉퍼포먼스 스틸 2023
제공 : 작가

김온은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여러 형식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화이트큐브를 공간 배경으로 두고, 오브제와 신체를 타임라인 위에서 조합-중첩시키는 일종의 무대-공간 연출은 현재의 김온을 다른 작가와 구별 짓게 하는 지점이다. 이를테면 모델의 일은 인물의 배경이나 성격보다는 오로지 외적 요소들(몸, 얼굴, 움직임,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는 작가에 따르면 “특정성, 캐릭터성, 정체성이 없거나 흐릿해진 익명의 출연들”이다. 무용수, 모델 등 다른 공간 혹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경험들은 화이트 큐브에서는 무관심적 만족을 향한 미학적 탐구로 응축하여 귀결된다.

김온의〈열린 추락(Open Fall)〉은 공간 윈드밀에서 2023년 8월 4일부터 6일까지 하루 6시간 동안 진행된 퍼포먼스이다. 공간에는 같은 상태를 반복하거나 지속하는 몸이 등장해 가로이동, 세로이동, 회전 등의 특정 동작을 어떤 루틴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비정형의 루프(loop)는 수직과 수평으로 이어진 폴, 포개어진 거울과 스크린 빛, 문이 열리는 천장창과 바닥, 그리고 다시 그 사이에 갇혀 무언가를 반복하는 몸을 존재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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