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 2024

주연화 홍익대 교수

Special Feature

지난 10월에 발간된 아트바젤&UBS 리포트, 글로벌 컬렉팅 조사 2024에 따르면, 2023년 평균 86만 4천 940달러를 미술품 구매에 지출했던 밀레니얼 고액 자산가들이 2024년에는 평균 39만 5천 달러만을 지출하여 54%의 구매 감소율을 보였다. 리포트는 시장 침체로 인한 심리적 이유로 지출이 축소됐지만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는 특히 부모의 부를 대물림하며 20년 내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2022년 하락세로 접어든 전반적 경기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여전히 침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미술시장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아트넷이 2024년 상반기 발행한 Artnet Intelligence Report에 따르면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옥션의 2024년 상반기 매출은 2023년 같은 시기 대비 30% 가까이 감소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가 시장의 매출은 줄었으나 가격대가 높지 않은 작품들에 대한 수요 및 시장은 여전히 견고하고, 특히 젊은 작가들에 대한 수요가 유지되며 일부 시장은 활성화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2024년 옥션 및 고가 미술품 시장은 침체 분위기이지만 젊은 작가를 다루는 갤러리 및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 중심으로는 수요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언급이 상당하다. 또한 작품 판매가 왕성하지는 않지만, 키아프와 프리즈 협업 3년 차인 아트페어 업계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고, 2025년에는 새로운 아트페어도 예고되어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2024년 한국 미술시장의 유통 매개자들은 각각의 상황에 맞추어 불황과 경쟁 심화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고 미래를 대비할 전략을 수립 실행해왔다.



2024년 갤러리

2024년 갤러리 업계는 한국 미술시장의 글로벌화와 이것이 가져온 경쟁 심화, 동시에 지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 “생존을 위한 질적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갤러리의 역사, 소속 작가, 글로벌화 정도에 따라 현재 시장에서 처해있는 입장은 각기 다르다.

우선 국내 메이저 갤러리들은 프리즈 서울을 통해 진입한 대형 해외 갤러리들과 작가 및 고객을 두고 경쟁하고, 특히 글로벌 미술계에서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특히 갤러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국내 작가의 라인업과 그들의 글로벌 프로모션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활동들은 키아프와 프리즈 시즌 동안 대표 국내 작가를 내세운 전시 개최, 베니스비엔날레를 활용한 전속 작가들의 해외 프로모션,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의 소속 작가 프로젝트 지원 등으로 이루어졌다. 중소규모 갤러리들 또한 글로벌화된 한국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이 모든 노력은 작가와 전시 프로그램 강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갤러리 신라의 서울 진출 및 확장은 프리즈 서울까지 이어지며 그 성장이 눈에 띄는데, 작가 콘텐츠는 기존 갤러리신라에서 다루던 대구 출신의 원로 및 중견 작가를 유지하되 여기에 해외 콘텐츠를 추가하고 갤러리 브랜딩과 작가를 마케팅하는 플랫폼 전략을 변화시킴으로써 변화하는 미술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이슨 함의 경우에는 공간을 확장하고 우르스 피셔(Urs Fischer) 전시를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선보임으로써, 국제적 프로그램을 보유한 갤러리라는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프리즈 서울에 한국 갤러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확보되며 기존에 글로벌 아트페어에 참여할 수 없었던 국내 갤러리들이 해외 아트페어에 진입하는, 그리고 그 시스템을 경험해볼 기회를 가졌는데, 이는 이들 갤러리에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갤러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차별화된 작가 및 작품 구성의 필요성을 가장 크게 느꼈다는 일부 참여 갤러리의 언급이 있었다. 이 외, 아직까지 해외 아트페어나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혹은 조금은 다른 고객군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 국내 갤러리들 또한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 같은 코엑스 무대에서 활동하며 차별화된 작가 콘텐츠 및 전시 프로그램의 필요성, 부스 디자인의 업그레이드 필요성 등을 느끼며 자기 성장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역동적인 성장의 기회는 신규 갤러리들에게 돌아갔다. 프리즈 런던 등 해외 아트페어 진출은 국내 갤러리들에게는 오랜 염원이었지만 오랜 업력을 쌓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야만 진출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국내 미술계에 대한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 고조와 해외 진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소규모 갤러리의 해외 진출 기회가 커졌다. 예를 들어,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프리즈 아트페어가 프리즈 런던의 부대 공간으로 운영하는 코크 9(Cork 9 ) 건물에 한국의 젊은 갤러리들이 공간을 운영하고 한국 작가의 국제적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갤러리 선택은 프리즈 측에서 진행했는데 디스위켄드룸과 캡슐 갤러리가 부스비와 운송비를 지원받고 런던에서 한국 작가를 선보이는 기회를 가졌다.

이외 국내 진출한 해외 갤러리들은 2024년 전속 글로벌 작가들을 전시하고 프로모션하는 동시에, 한국 작가 영입 및 이들의 전시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페이스 갤러리에서는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Mark Rothko ) 작품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 이외에도 일반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프리즈 런던 기간에 런던 지점에서 젊은 작가 정희민의 개인전을 설치와 대형 회화 중심으로 진행하며 젊은 한국 작가의 해외 지점 전시 스타트를 과감히 끊었다.

2024년 아트페어
2024년 키아프와 프리즈의 3년 차 협업은 한국 미술시장의 글로벌화를 이끈 큰 동력 중 하나로 그 의미를 확고히 했다.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의 규모 및 해외 작품의 금액대 등은 2022년 및 2023년에 미치지 못했지만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같은 시기 개막하며 유례없이 많은 글로벌 미술 전문가들이 키아프와 프리즈 시기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화랑협회 정현경 국장에 따르면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 두 아트페어 행사를 방문한 국제 미술계 관계자는 테이트 미술관(런던 ), 뉴뮤지엄(뉴욕 ), LA MOCA, 모리아트 미술관(도쿄 ), 싱가포르 아트뮤지엄, 샤르자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총 64개 기관에 달했다. 방문객의 국제화 및 전문화 외에도 키아프의 갤러리 구성, 부스 및 페어 동선 디자인, 홍보 마케팅 등이 이전보다 향상되었다. 2024년 현재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주최 3년 차, 이 두 아트페어의 협업은 키아프의 국제화와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해외 대형 아트페어의 공동 주최로 인해 당면할 수 있는 키아프의 위기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해외 갤러리들의 프리즈 서울 참여가 일부 줄었는데, 이 빈자리를 국내 중견 갤러리들이 채우며 프리즈의 한국 갤러리 비중이 커졌다. 이는 프리즈에 참여할 기회를 가진 한국 갤러리들 입장에서는 같은 시기 비용과 인력 부담이 큰 키아프와 프리즈 대형 아트페어를 두 개나 동시 준비해야 하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2025년 키아프에 참여하는 한국 갤러리 리스트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는 키아프 입장에서는 색깔있는 주요 갤러리들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키아프와 프리즈를 중심으로 신규 아트페어들의 움직임도 분주한 한 해였다. 더 프리뷰(The Preview )는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에 맞추어 오픈 일정을 8월 말로 옮겼는데, 일정의 변경이 득보다는 실이 되지 않았나 싶다. 고객들이 대형 아트페어에 앞서 지갑을 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판매가 좋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초반의 신선함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기획과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 문제점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5월에 문을 연 아트 오앤오(ART OnO )는 젊은 컬렉터 노재명 씨가 자신의 취향에 기반하여 엄선한 갤러리들을 초대해 운영한 아트페어로 성격이 강한 만큼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질 셀렉션 서울(Selection Seoul )은 올해 오픈을 예상했지만 무산되고 2025년 아트 오앤오와 같은 시기(4월 11~13일 ) 오픈 예정이다. 이름에서도 그 지향점이 드러나듯, 작품 퀄리티를 중심으로 ‘선택적인’ 갤러리와 작가,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방향성인데, 이와 같은 신규 아트페어의 지속적 등장은 키아프가 지닌 태생적 한계, 즉 화랑협회에 의해 운영되기에 키아프에 참여할 갤러리를 ‘선택적’으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한계에 기인한다. 결국, 키아프가 국내 최대 아트페어임에도 글로벌 아트페어의 운영 시스템과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힘들고, 이는 키아프의 성장과 발전에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이 신규 아트페어들이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키아프와 해외에서 진입한 프리즈 서울이 뭉친 9월 시즌과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독자적 포지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문제는 갤러리 및 컬렉터들의 호응과 참여, 작품의 높은 판매율과 구매율일 텐데, 국내 미술시장의 규모 대비 현재 지나치게 많은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는 점은 쉽지만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엄선된 갤러리, 더 엄선된 작품, 더 나은 고객군을 제공하는 페어가 있다면, 갤러리와 컬렉터들은 지나치게 많은 아트페어에서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가장 나은 아트페어만을 방문할 것이다.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트페어의 공급 과잉은 지방 아트페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아트부산에 참여한 해외 및 국내 주요 갤러리 수가 줄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아트부산은 작년부터 디파인 서울(DEFINE SEOUL )을 개최, 예술과 디자인이 만난 차별화된 젊은 아트페어를 성수동에서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도 이어지며 사업 다각화 및 서울 무대로의 진출 출사표를 내밀고 있다. 내년에는 국내 아트페어의 해외 진출도 예상되어 있는데, 프리즈 아트페어에 매입된 시카고 아트페어에 키아프가 일부 섹션으로 한국 갤러리를 구성해 들어갈 예정이며 더 프리뷰 성수가 방콕 아트페어에 특별전 형식으로 일부 한국 갤러리를 구성해 참여 예정이다. 아트 바젤과 프리즈와 같은 글로벌 아트페어들의 해외 진출, 국내 갤러리 및 작가의 해외 진출에 자극받아 국내 아트페어까지도 해외로 진출하는 모습인데, 이는 특히 한국 갤러리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있기에 가능한 시작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는 프로젝트는 그만큼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방증이기에, 정부는 철저한 시장 조사와 장기적 전략에 기반한 해외 진출만을 지원함으로써 질적으로 떨어지는 국제전 양산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2024년 옥션
앞서 언급했듯,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분야가 미술시장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미술시장이 위축된 것은 고가의 질 높은 작품 출품이 저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 또한 해볼 수 있다. 즉, 현재 미술시장의 침체가 어떤 작품이 나와도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구매세는 있지만 가격이 높이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고가의 질 높은 작품을 소유한 컬렉터들이 굳이 작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경기가 호전되고 미술시장에 구매세가 이어진다면 언제든 옥션 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옥션 업계도 다양한 세일즈를 기획하며 럭셔리 아이템, 부동산, 고미술 등으로 판매 아이템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서울옥션은 6월 제179회 미술품 경매에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 참여한 하이엔드 부동산, 더 팰리스73의 분양권을 경매에 부쳤는데, 160억 원에 시작되어 216억 원에 낙찰되었다. 서울옥션의 2024년 3분기 매출총액, 624억(전년대비 51%로 상승 ) 중 약 30%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이처럼 옥션들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경기 침체에 맞서고, 매출과 수익 증대를 꾀하고 있다.

이상 한국 미술시장 2024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역동적으로 변하는 국내 미술시장은 분명 성장의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양적 성장으로 이끌어서는 절대 장기적으로 생존하거나 지속할 수 없다. 미술시장은 질적 성장 속에서 생존하고 경쟁력을 지니는 속성을 지녔음을 명심하며,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고, 더 가치 있는 미래를 제공하는 미술시장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는 2025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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