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들 북 컬처 | 매직 온 페이퍼》

그라운드시소 서촌
2024.9.14~2.23

Sight&Issue

《슈타이들 북 컬처 l 매직 온 페이퍼》 전시 포스터

앤디 워홀〈인터뷰: 팝 컬처의 수정구슬〉2024 ©2024 Steidl
제공: AIRT

슈타이들 북 컬처 | 매직 온 페이퍼
심지언 편집장

완벽히 아날로그적으로 제작하는 명품 아트북, 슈타이들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은 출판계의 전설이자 아트북의 거장이다. 아트북에 관심이 있거나 미술계 종사자라면 ‘슈타이들(Steidl)’ 로고가 보장하는 최고의 품질과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독일의 작은 마을 괴팅겐(Göttingen)에 자리 잡은 출판사 슈타이들은 앤디 워홀, 에드 루샤, 짐 다인, 데미안 허스트 등 아티스트, 구겐하임미술관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 귄터 그라스와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출판물을 제작할 때 찾는 곳이다. 완벽주의자들이 만나 집요하고 고집스럽게 최고 퀄리티의 출판물을 제작하는 곳, 그곳이 슈타이들 출판사이다.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개최 중인 《슈타이들 북 컬처 l 매직 온 페이퍼》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이 직접 디렉팅과 콘텐츠 큐레이팅을 맡은 최대 규모의 전시로, 출판사 슈타이들이 추구하는 책에 대한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멀티플(아트북 오브제) 작품과 아티스트 존, 스크리닝, 라이브러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술가, 기업 등과 협업하며 출판물을 제작하는 과정과 원칙, 책을 구성하는 재료와 과정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의 역할 등 책의 기획에서 독자의 손에 다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인쇄기가 돌아가는 낮고 반복적인 소리와 함께 출판사 슈타이들 외부와 내부 사진으로 구성된 작은 방에서 시작한다. 슈타이들은 기획부터 디자인, 인쇄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자체 인쇄기와 제본 공정을 바탕으로 한 지붕 아래에서 완성하는 보기 드문 형태의 출판사이다. 마치 출판사로 초대되어 전설의 공간을 둘러보는 듯한 분위기에서 출발하는 전시는 하얀 가운을 작업복으로 입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건물의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출판의 전 과정을 지휘하는 게르하르트를 상상하며 ‘출판소’라는 공간에서 ‘책’이 만들어지는 물리적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짐 다인 〈Hot Dream〉 2019 ©2024 Steidl

《슈타이들 북 컬처 l 매직 온 페이퍼》 그라운드시소 전시 전경 2024

두 번째 공간에서는 역사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제작한 합리적인 가격의 예술품인 멀티플을 선보인다. 멀티플은 예술가의 콘셉트나 의도를 바탕으로 산업적으로 제작된 한정판 예술품으로, 작가의 서명과 함께 에디션이 관리되어 예술성은 유지하되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한다. 슈타이들은 마르셀 뒤샹의 이동식 미술관인 〈여행 가방 속 상자〉의 소형 에디션과 조지 마키나우스의 ‘플럭서스 박스’의 전통을 계승하여 상자, 슬립케이스, 나무 상자나 여행 가방에 담긴 여러 권의 책을 꾸준히 제작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앤디 워홀, 에드 루샤, 칼 라거펠트 등과 함께 제작한 25점 이상의 멀티플 작품을 선보인다. 이중 데미언 허스트와 슈타이들이 10년간 제작한〈런던 약국(Pharmacy London)〉은 2024년 12월에 완성된 작품으로, 전 세계 최초로 실물이 공개되었다. 예술가의 작품이 한 권의 책이자 “가장 민주적인 예술품”으로 구현되는 과정과 작가별 콘셉트가 최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슈타이들은 그와 함께 작업해온 3명의 작가, 짐 다인(Jim Dine), 테세우스 찬(Theseus Chan),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세 명의 작가에게 아티스트 존을 제공했다. 작가들이 직접 전시 공간을 구성해 세 작가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아트북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의 아트 디렉팅을 맡은 테세우스 찬은 슈타이들과 함께 작업한『베르크』 매거진의 인쇄 과정에서의 오류를 ‘우연의 예술’로 제시하며, 다양한 종이와 인쇄 방법을 통한 과감한 실험을 선보였다.

전시의 백미는 스크리닝 프로그램이다. 특히 다큐멘터리 〈How to Make Book with Steidl〉은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아트북 출판의 과정, 작가들과 나누는 우정과 책의 콘셉트에 대한 소통과 조율의 과정 등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작가들과 주고받은 다양한 종류의 대화로 구성된 영상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예술가와 출판인의 대화를 면밀히 아트북으로 구성된 서가와 테이블을 실제 출판사 공간을 참고하여 구현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게르하르트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을 대기하며 남긴 영상과 함께 500여 권에 달하는 슈타이들 출판물의 질감을 느끼고, 향을 감각하며 전시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

《슈타이들 북 컬처 l 매직 온 페이퍼》 그라운드시소 전시 전경 2024

전시는 디지털의 시대, 아날로그적인 책을 제작하는 의미와 제작자의 철학을 제시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정신과 예술가와 협업하는 출판업자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티스트의 비전을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퍼트리는 것”을 본인의 성공으로 정의하며,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의 이상이 실현되는 책을 만드는 것이 슈타이들의 파트너십이다. 그리고 그는 프린팅이 기술적 과정일 뿐 아니라 예술 그 자체임을 책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살펴볼 수 있다.

“햇살이 좋은 날, 공원이나 테라스에 앉아 잘 만들어진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이야말로 진정 럭셔리한 일이다.
종이의 질감, 냄새, 아름다운 폰트, 잘 인쇄된 색상과 이미지가 주는
즐거움 등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채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감성은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채워질 수 없다.”
–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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