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 YELLOW》
일민미술관
2024.2.28~4.20
Exhibition

〈솔라리스〉코르크 LED 조명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5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1전시실 전시 전경 2025
사진: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제공: 일민미술관
《하이퍼 옐로우》 관광기
백지숙 미술비평, 큐레이터
〈동해사〉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9분 2025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2전시실 전시 전경 2025
일민미술관 정문을 열고 광화문 사거리로 나설 때, 되돌아온 우편적 다중은 “어리석음이 뿜어내는 매혹 한복판에서 호흡하면서, 거기로부터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테러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한 표현을 낚아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관광객 되기
임민욱의 여러 작업이 도시를 무대로 하지만, 특별히 일민미술관 전 층에서 열리고 있는 《하이퍼 옐로우》는 도시 너머와 그 아래, 이전과 이후 세계까지를 관광객의 시선으로 떠돌아다닌다. 마침, 필자는 지난 2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관광객으로 살았다. 방랑의 규칙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경을 넘어 여러 도시와 자연을 방문하면서 저절로 습득한 나만의 원리가 있다. 관광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최소화하는 대신 현지에서 습득한 정보를 참고해 그때그때 경험을 채워 나가자는 것이 그중 하나다. 임민욱의 이번 전시는 언제나처럼 풍부한 문화적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신작 28점으로 구성된 《하이퍼 옐로우》는 철학, 인문학 이론과 비평서는 물론이고 시, 영화, 만화, 대중가요 등을 종횡무진하며 관(광)객의 기존 정보를 간단히 업데이트한다. 입구 서점에 배치한 전시 참고문헌 중에서 『관광객의 철학』1은 방문객에게 개괄적인 가이드북이 된다. 책 서문을 읽으며 여행 규칙 하나가 더 떠오른다 – 오랜 세월 ‘습합’되어 있던 비평가적 시선을 떼어내고, 산책자처럼 들뜬 마음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객의 보폭을 따르자는 것. 그래서 “윈도 쇼핑을 하는 소비자처럼 우연히 만난 물건에 매료되고 어쩌다 만난 사람과 교류”하다 보면 “방문한 곳의 주민이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발견하리라 내심 기대하면서.
《하이퍼 옐로우》 아이티너러리: 솔라리스, 두 개의 태양
일민미술관이 있는 광화문 사거리는 언제부턴가 상반된 정치적 주장과 행동이 모이고 부딪치고 흘러가는 장소로 자리 잡았지만,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흐름이 막히고 거의 정체되어, 예컨대 임민욱의 〈두두물물〉(2021)처럼 아나크로니즘의 경지에 이르렀다. 뜨거운 함성과 고통스러운 소음 한가운데서 전시를 준비했을 작가와 미술관 스태프들의 지친 육신과 마음 상태를 생각하며 전시장 1층에 들어서자, 언뜻 사막처럼 보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전시 리플릿에 따르면 바다였던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설치작품은 봉분, 사막, 강호, 분지 같은 환경 위로 일본 나라의 사찰 도다이지 법당 도면을 겹쳐 놓은 것이라 한다. 사막이라기엔 비균질적이고 폐허라기엔 풍성해 보이고 법당의 표지라기엔 외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관광객의 시선을 잡아채는 것은 40분이 넘도록 느리게(?) 공전하는 두 개의 태양이다. 직립보행하는 인간 방문자의 눈에 겹쳐 보이는 드론 높이 시야를 포기하고, 봉우리 어디엔가 앉아서 두 원반이 가까워지다 중첩하고 다시 멀어지는 궤도를 한참 동안 ‘불멍’한다. 그러다 보면 시야 사이로 빛과 그림자의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있는 듯한 유기적 건축 구조가 솟아오른다. 작품 제목인 솔라리스는 두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2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전시에서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유기체 구조 또는 인간의 기억과 무의식에 반응해서 바다가 토해내는 비인간 방문객 대신, 두 태양이 관광객의 여정을 인도한다.
〈거울 오미코시〉 철, 수퍼미러, LED 라이트, 스모그 발생기, 조각된 지팡이 머리, 바퀴, 혼합매체 275×70×280cm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2전시실 전시 전경 2025
: 동해
솔라리스의 쌍성은 2층 전시장 한가운데 있는 4분의1 원형 파티션 안〈동해사〉에서 두 태양으로 릴레이 된다. 9분짜리 영상은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인 사슴 이미지로 시작해서, 1층 도다이지 법당 깊숙이 숨겨져 있던 십일면관음상의 현대적 변형태와 관광객들이 대면하게 한다. 3채널 화면에서 요즘 젊은이 복장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분한 십일면관음이 도시의 길과 물 그리고 절 사이를 힘껏 달리고 있다. 십일면관음상은 동북아 불교문화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신인이형(神人異形)으로서 하이퍼 옐로우3 프로젝트 전체의 상징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캐릭터다. 서로 다른 열한 개 얼굴을 통해 여러 형편과 상황에 놓인 인간들에게 자비와 구원을 평등하게 베푼다는 십일면관음이 영상 마무리 부분에서 열두 번째 얼굴을 하나 더 뱉어내며 무한 증식을 예언한다. 이때 관광객은 참고문헌으로 제시된 만화책의 저자,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다른 고전, 『무면목』4을 ‘외전’으로 당겨 읽는다. 무면목은 눈코입이 없는 얼굴을 한 신이자 요괴로 인간 세상에서 살았던 또 다른 신인이형이다. 만화에서 그는 나무를 깎아 만든 얼굴 없는 인형 수백 개를 원한과 저주의 부적 삼아 여러 장소에 숨겨놓아서 사람들을 고난과 도탄에 빠트리는 악행을 저지른다. 〈동해사〉의 십일면관음이 중생의 무면목까지 타자의 얼굴로 “환영 – 이랏샤이!” 하기 위해선, 핵심은 결국 달려야 한다는 거 아닐까. 그것도 아주 큰불을 백팩에 지고서.
1,300여 년 동안 이어온 불의 축제에서 도다이지의 렌교슈 승려들은 커다란 불덩이를 들고 사찰 회랑을 달려가는 장관을 연출한다.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이 이벤트가 격렬함과 큰 발소리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는 주술을 상기시키고, 임민욱의 퍼포먼스 작품이 그렇듯이, “일면식도 없는 관광객들이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 기억과 감성을 가지고 여태까지 없던 새로운 집단적 경험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공간을 연다”라고 적는다.5 그런데 2025년 봄, 《하이퍼 옐로우》가 황해를 건너 “상속의 원근법”이 멸종될 위기에 처한 한국에 오는 순간, 도래인(渡來人) 관광객의 공간은 급격히 현재화되고 시간은 급속하게 미래화된다.〈동해사〉에서 돌진해 나갔던 거대한 대나무 횃불과 사방으로 튀는 불똥,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의 이미지가,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또는 다른 장소에서 창공 높이 치솟았던 광대한 탄핵 깃발들과 크고 작은 기원의 파도가 부딪쳐 생기는 격한 함성으로 ‘디졸브’ 되니 말이다. “정치와 문학 어느 쪽에도 없는 동시에 어느 쪽에나 있”는 이들 관광객은6, 시위와 축제를 결합하고 진지함과 경박함을 교차하며 외상과 무의식이 뭉쳐 있는 임시 공동체의 미래를 파시즘의 압력에 맞서 간신히 열어젖힌다.
화이트큐브와 광장을 연결하는 미로들을 끈질기게 탐색해온 임민욱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2층 전시장 초입에는 〈거울 오미코시〉가 영업 중을 알리는 입간판 모양으로 서 있다. 민간인 학살 생존자 고(故) 채의진(1936~2016)의 나무 지팡이 손잡이 부분과 가마 본체를 결합하고 배달 컨테이너와 인력거의 기능을 뒤섞은 이 미학적 조립품이 붉은 LED 조명을 내뿜을 때, 표면 위 거울로 관광객의 얼굴이 반영된다. 이원의 시 〈얼굴이 달린다〉를 이 작품에 바치는 헌사로 ‘오독’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의 컨테이너인 얼굴에서 공기가 빠져나간다 눈 코 입이 다 번진다 시간의 소용돌이가 된다 얼굴을 삼키지도 토하지도 않는 거울이 점점 새파래진다 거울 속의 얼굴이 멈춰 있는 것은 너무 빠른 속도로 얼굴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7 미니멀리즘 조각과 가구 디자인, 그래픽과 오브제, 영상과 퍼포먼스를 조탁하는 작가의 실력이 가감 없이 드러난 〈거울 오미코시〉는 이렇게 해서 〈동해사〉에 등장하는 도쿄 오다이바의 자유 여신상을 추월하며 임시 공동체의 관광 모뉴먼트로 등극한다.
〈정원과 작업장〉(사진 왼쪽)
개인 소장품, 유리, 나무 240×300×40cm 2025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3전시실 전시 전경 2025
: 스미다강 혹은 한강
3층 전시장 맨 끝 방에서 상영 중인 싱글 채널 영상 〈S.O.S-달려라 신신〉은 다다미방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풍광과 공연을 감상하는 도쿄의 패키지 관광상품, 야카타부네를 탈것으로 한다. 2024년 3월 어느 날 황혼 무렵, 스미다강을 유람하는 에도선과 동해선에 올라탄 관광객들은 바쇼 정원 지킴이가 낭독하는 바쇼의 시, 한국인과 프랑스인 커플이 원격으로 부르는 샹송, 중국인 선장 슈에의 자전적 스토리 등을 듣는다. 여기서 달리는 것은 강물이기도 하고 강 위를 유람하는 배이기도 또 배에서 바라보는 마천루의 불빛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배 두 척의 안팎, 승객과 승무원의 자세와 표정 그리고 도심 강변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부감으로, 광각으로, 혹은 클로즈업으로 따라잡는 카메라야말로 30분 동안 가장 빠르게 달리고 또 달린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임민욱은 2009년 서울 한강에서도 〈S.O.S-채택된 불일치〉라는 ‘선상 관람 종합 퍼포먼스’를 조직한 바 있다. 90분에 걸친 퍼포먼스를 43분으로 편집한 퍼포먼스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강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알파호 선장의 해설을 기조로 강변 현장의 사건들을 동반한 일련의 서사가 헬기 소음과 탐조등의 방해 공작을 통해 파편화된다. 선장이 한강 르네상스 개발 계획을 “하늘이 노래지는 프로젝트”로 호명했던 그 시기의 옐로우를 초과하는 하이퍼 옐로우 시대답게, 2025년 새 다큐에서는 국경과 인종, 시대와 계층, 팩트와 설화가 훨씬 더 웅변적으로 콜라주된다.
신작은 구작의 시퀄이라기보다는 스핀오프에 가깝겠지만, 두 작품 모두 동요와 가요, 샹송 등 관광객들에게 흔히 알려진 노래를 강물 리듬을 따라 흘려보낸다. 강 위로 마블링되는 기름 자국처럼 임시 공동체의 연주곡은 어떤 감정의 구조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선장이 독창하는〈목포의 눈물〉에는 승무원들이 함께 부르는 〈친구〉가 응답한다. 〈S.O.S 달려라 신신〉의 프리퀄로도 볼 수 있는 〈동해사〉에서 선창했던 김민기의 곡이, 야카타부네 승무원들의 일본어 악센트가 남아있는 한국어 가사로 울려 퍼지면 현장에 부재했던 관광객들의 심금마저 울린다. 때맞춰 해 떨어진 강변을 따라 〈거울 오미코시〉 앞뒤에서 가마를 호위하며 전진하는 두 무용수의 동작과 가마를 끌고 가는 인물의 신중한 걸음에서 이 정동은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극장이자 도시이고 행성이었던 하이퍼 옐로우의 관광 여정을 끝마칠 즈음, 방문 기념 굿즈를 고르는 태도로 작품들을 되짚어 봤다. 2층, 3층에 전시된 다섯 점의 〈포터블 키퍼〉는 사라지는 현재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하려는 운송 수단이라고 하니, 관광객이 타임캡슐로 간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작가가 2009년부터 만들어온 연작 성격의 이동식 지킴이가 이번에는 프로펠러와 부표, 대나무와 금속, 유리, 낚싯줄, 테라코타 파우더 등을 재료로 제작됐다. 퍼포머가 어깨에 메고 시장을 활보하던 최초의 막대로부터 훨씬 무겁고 더욱 정교하고 긴 형태로 진화한 〈포터블 키퍼〉들은 이제 이동하려면 물의 부력이 있어야 한다. 땅과 물을 오가는 양서류 지킴이처럼 “기본적으로 특정 공동체에 속하면서 때때로 다른 공동체에도 들르는” 관광객으로서 나는, 〈독산 스튜디오–물속의 시금석〉을 마음속 굿즈로 최종 선정한다. 3층 전시장 정면 벽에 걸려 있는 푸른 색조의 대형 작품은 나무 패널 위에 작가가 한동안 머물렀던 지식산업센터 사무실을 3D 스캐닝한 이미지와 에폭시 레진, 아크릴 페인트로 겹겹이 쌓아 올린 ‘평면 설치’다. 요철 텍스처와 불규칙한 패턴 그리고 작품의 스케일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8에서 고도의 지능을 가진 바다가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거대한 형상들을 연상시키는 한편, 주인공 크리스 캘빈이 시종일관 흘리는 땀방울을 인덱싱한다. 영화에서 땀은 해양 지성체가 인간 무의식에 반응하여 생성해낸 방문객 타자를 행성 거주 인간이 적대시하면서 느꼈던 수치심의 부산물일지 모른다. 과학자 스나우트의 말대로 수치심은 누군가를 죽이기도 구원하기도 하는 양심의 시금석이다.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3전시실 전시 전경 2025
〈S.O.S-달려라 신신〉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2024~2025 《하이퍼 옐로우》 일민미술관 3전시실 전시 전경 2025
국제호출주파수를 쏘아 올리기
우리의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관광객들은 잘못 배달되었으나 우연한 사건과 일시적 경험을 통해 정치적 공동체로 구성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우편적 다중으로 재정의된다.9 잘못 배달되었던 관광객이 원주소로 반송되면 혹시 그는 남아있는 들뜬 마음과 새로운 열심으로 거주지를 잠시라도 낯설게 방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일민미술관 정문을 열고 광화문 사거리로 나설 때, 되돌아온 우편적 다중은 “어리석음이 뿜어내는 매혹 한복판에서 호흡하면서, 거기로부터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테러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한 표현을 낚아채는 방법에 대해 고민”10한다. 그는 2011년 작성되었던 임민욱의 〈국제호출주파수를 위한 행동 지침〉을 다시 쏘아 올리며 영상 속 방문객처럼 홀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라도 “마음속에 이 노랫소리가 들리면 서로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고 있다는 신호이다.”
1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관광객의 철학』 리시울 2020
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솔라리스』 민음사 2022
3 일민미술관 학예실(윤율리, 백지수) 「하이퍼 옐로우: 태양과 바다와 몽상」2025 p5 참고
4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 『무면목/태공망전』 AK커뮤니케이션즈 2012
5 우카이 사토시 「축제와 약속, 그리고 이름 없는 바다로」 『하이퍼 옐로우 기록집』 2024 p119~120
6 아즈마 히로키 지음 위의 책
7 이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 지성사 2014
8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솔라리스〉 1972 모스필름 166분
9 아즈마 히로키 지음 위의 책
10 아즈마 히로키 지음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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