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미술잡지와 미술비평의 변화
김정현 미술비평
11월 특집기사 ③
11월 특집기사 ② 읽기
월간미술이 기록한
한국미술의 주요 이슈와 사건

『월간미술』 1997년 4월호 「한국의 미술비평가 이론가 74명의 앙케트 조사분석」
장소 설정
이 주제를 논하기 위하여 글 쓰는 사람의 위치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미술비평가 또는 미술평론가로서 내가 미술잡지에 처음 글을 기고한 것은 2011년도의 일이다. 『아트인컬처』에서 기획한 신진 작가 그룹전 《동방의 요괴들》의 작가 한 명과 매칭되어 서문 성격의 짧은 글을 쓴 것이 ‘현장 비평’의 첫 경험이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심상용 미술비평가가 발행하는 계간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의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비교적 정기적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필자 소개 정보로 전공인 ‘미술사’ 대신 ‘비평가’라는 역할을 표기하게 된 것은 2015년 연말에 세마–하나 평론상을 수상한 이후부터다. 이듬해부터 평론상 수상자로 주목받으며 『월간미술』, 『미술세계』, 『퍼블릭아트』, 『아트인컬처』와 같은 주요 월간지의 필자로 글을 쓰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등단한 이후 매체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예전보다 많은 글을 쓰게 되었는데, 계간지 고정 필진 시절과 달리 글쓰기 소재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평론상 시상식과 함께 열린 ‘2015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에서 문혜진 비평가가 글쓰기의 노동 환경을 공론화하며 미술 전문지의 원고료 미지급을 언급했다. 『월간미술』의 2016년 새해 첫 호에도 집담회 발표문과 동일한 제목의 기사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가 실렸다.1 약속한 원고료도 제때 받지 못하거나 떼이는 일이 많(았다)던 약 1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현재의 노동 환경은 꽤 안정된 편에 속한다. 미술 잡지의 원고료 상승폭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것 없이 미미하나, 적어도 계약 이행에 관한 인식은 개선되었다. 같은 글에서 문혜진은 비평가에게 있어 미술잡지의 의미를 이렇게 피력한다.
“미술 전문지의 지면은 비평가의 등용문이자 공식적인 발언대다. 잡지의 지면은 의뢰 주체와 비평 대상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전시나 현안에 대한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다. 또한 잡지의 필진은 편집부로부터 해당 주제에 가장 적합한 필자로 선택된 대상이다. 그런 까닭에 비평가에게 잡지의 지면은 가장 권위 있는 공인 장치로, 글을 쓰는 자라는 스스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증명받는 공간이다.”2
신진 평론가로 등단하여 10여 년간 미술 제도 안에서 다양한 지면을 경험하는 동안 미술잡지의 의미는 정말로 그러했다. 전문지의 편집 윤리에서 벗어난 행태로 인해 종종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작업 주체와 긴밀하게 대화하며 협업해야 하는 작가 연구서나 전시 도록 등의 지면과 비교해서 미술잡지는 글 쓰는 사람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사고를 최대한 보장하는 귀중한 매체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글을 작가론이나 전시 주제에 집중하도록 하는 미술 제도 내 대부분의 지면과 다분히 의식적으로 구분해서 구상했다. 『월간미술』이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미술 비평지원’ 사업을 통해 마련한 지면을 각각의 비평가가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비평가에 대한 편집부의 기대와 미술잡지에 대한 비평가의 비전을 엿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축약한 경험의 사례를 통해 한 사람의 바람을 드러내었으니, 이제 서로 다른 비평가들의 관점을 살펴보자.
비평의 기후
『월간미술』의 비평 및 저널리즘 관련 기사 아카이브를 돌아보니, 202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평의 기후는 대략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비평과 매체 환경의 역사적 변화를 약술하자면, 작가가 작업과 평론을 병행하던 시대에 이경성, 이일과 같은 전업 미술평론가의 시대가 열리고(1960~1970년대), 『월간미술』과 같은 잡지와 신문 등 미술 저널리즘의 지면이 늘어나고(1970~1980년대), 일간지 신춘문예라는 전통적인 등단 통로가 월간미술대상(1996~2012, 2022~)과 같은 미술 전문지의 공모전과 전문가의 추천 등으로 확장되었다(1990년대 이후).3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미술평론가와 미술잡지는 팽창한 미술시장과 제도에 걸맞게 양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특히, 미술 저널리즘의 양 축 중 하나인 일간지에서 미술 보도가 축소되고, 주요 등용문이었던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 부문이 폐지(2002)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미술 전문지로서 미술잡지에 대한 기대가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월간미술』의 창간 30주년 기념 기획 좌담 「한국미술, 언론과의 불편한 동거」(2006)에서 웹진 ‘미술과 담론’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이선영 미술비평가는 “일간지는 비평적인 안목을 지닌 전문 필자를 위한 지면 할애에 인색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노형석 『한겨레』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는 “나름의 트렌드를 언론은 여러모로 반영하고 있다. […] 취향이나 관심 등에 따라 다양한 장르 혹은 다양한 관심 영역의 층위로 세분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 미술판은 […] 장르적 인프라가 매우 부실하다. 깊은 장기적 예측과 성찰이 없는 상업적 변화만이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실정이다. 전반적으로 신문 지면에서 전문 필진이 사라진다거나 리뷰, 전문 비평이 박대당하는 이유는 그런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4 2000년대 전후 한국 미술 비평의 현장성과 전문성에 관한 요구는 수많은 비평가의 목소리에 담긴다. “체계적인 미술사의 확립이나 비평의 방법론 등에 대한 연구가 아직” 없으며(강태희, 1997), “오늘날처럼 세분화 해가는 시대에는 비평도 전문화되고, 세분화해야 한다 […] 이런 경우라도 비평이 회화 또는 조각, 서양화 또는 한국화 등 장르별로 비평의 전문화를 추구해서는 안 될 것”(오광수, 2003). “대다수 비평문이 미술 잡지를 통해 발표되고 있지만 단평 시평에 머무르고 있다. 단문에 길들인 미술비평을 극복하기 위해 지면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며, 비평가들이 학술 논문을 발표할 기회(잡지, 세미나)가 제공되어야 한다.”(최병식, 정헌이, 강선학, 김상철, 1997). “비평은 학(學, science)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장비평 혹은 강단비평은 용어의 차이일 뿐이다.”(강수미, 2006)5
심층적 연구와 적절한 지면에 대한 필요는 쉽게 충족되지 못했던 듯하다. 『월간미술』 기자 출신의 안인기 비평가는 「미술잡지 저널리즘의 어제와 오늘」(2006)에서 미술잡지의 ‘카탈로그 저널리즘’을 직격한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미술잡지는 월간지화, 컬러화, 판형 대형화 추세와 함께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의 전환이 두드러졌다. […] 잡지는 계몽과 교육의 기능으로부터 점차 다양한 정보의 전달과 홍보 기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대표적으로 작품보다 작가에 주목하는 양상을 지목한다. “작가는 잡지가 구성해야 할 새로운 볼거리와 신화의 총체여야 하고, 잡지는 작가에게 스타덤과 명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내일의 ‘반 고흐’를 예언하는 것도 월간지의 중요한 사명이 되었다.” 이와 함께 미술잡지의 초점이 세계 미술의 현장으로 옮겨가며 작가와 전시 정보에 집중함으로써 “학술, 논단, 심층취재, 논평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점진적으로 ‘카탈로그 저널리즘’ 양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6

『월간미술』 2012년 3월호 「안녕하세요, 비평가씨!」
전시 담론과 국제화 중심으로 변화하는 미술계를 반영한 21세기 미술잡지의 지면에서 비평은 각종 앙케트와 좌담에서 털어놓은 기대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이 잡지의 변절 때문은 아니다. 시대와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미술비평의 구심력과 영향력이 축소된 요인도 있다. 미술비평의 독자가 소수화되는 가운데, 미술 저널리즘의 대안으로 비평가가 직접 무크지나 계간지를 만드는 독립적인 움직임이 부상한다. “지금까지는 투덜거리는 입장이었다. ‘판’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7 이대범은 소규모 출판모임 ‘roundabout’을 운영하고, 무크지 『debut』를 발행했다. 심상용은 광고 없는 계간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의 편집장이 되었다. 2012년 월간미술에서 특별기획한 「안녕하세요, 비평가씨!」는 중견 비평가 8인의 “잡다한 모습”을 드러내고 “내밀한 고백을 들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8 개별 인물 화보와 함께 각자의 비평관뿐 아니라 성격과 취향에 관한 내용을 질의한 독특한 기획이다. 비평가를 그의 글 너머 개성적 인물로 조명한 것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비평가 그룹전 《비평의 지평》(2009)과 관련 전시9의 계승으로 보인다. 이렇게 미술잡지에서 미술비평의 희미한 응집력은 미술 비평가의 흥미로운 매력으로 대체된다.
미술잡지와 미술비평의 관계에 집중한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 지대에서 비평의 매체는 언제나처럼 조용한 흥망성쇠를 겪고 있다.10 비평도 그러한가? 『월간미술』에서 한동안 메타 비평을 도맡던 강수미 미술비평가는 ‘비평의 위기’ 담론의 함정을 지목했다. “비평의 위기라는 진부한 담론을 등에 업고 정체 없는 수다가, 가짜 판단이, 대상의 외양만 훑는 묘사가 의미의 겉옷을 걸친 채 비평으로 들어”선다. 비평의 사유 능력을 강력하게 신뢰하는 그에 따르면 비평적 글쓰기의 “의미는 그 집합체의 실체로서 풀려나오기 때문에 만약 대중매체가 이것저것 뜯어가고, 시장이 이리저리 갖다 쓰더라도 비평은 쉽게 고갈되거나 취약해지지 않을 것이다.”11 미술잡지를 비롯한 비평 매체의 위기가 곧 미술비평의 위기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물론, 비평가의 위기감은 주로 미술비평의 수용과 수요의 차원에서 비롯된다. 가령, ‘미술잡지는 미술비평을 원하는가?’
미술비평에 있어 미술잡지의 중요성은 의외의 계기로 연장되었다. 2019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비평 인력 전문화와 원고료 현실화를 목표로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사업을 시작하면서, 1997년도의 『월간미술』 편집부가 기대했던 “원고지 40매 이상 […] 비평적 시각을 긴 호흡으로 펼쳐낼 수 있는 글”을12 일부 비평가나마 한 해에 한두 편 더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진평론가들을 위한 균등한 기회의 분배에는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문정현, 2019), “결국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문혜진, 2020)13 염려했던 사업은 조금씩 변형되어 매체의 역량과 윤리를 요구하고 지지하는 상태로 현재(2025)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술비평가가 [비판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 많”은데 “지금의 비평 지형은 작가 아카이브를 위한 글로 쏠려 있는 건 아닐까”(안진국, 2024)하는 우려를 참고할 만하다.14
이 글에서는 미술잡지와 미술비평의 관계 속에 비평의 기후를 논하며 제목에서 ‘일기예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월간미술』의 또 다른 특집기획에서 차용한 것이다. 미술 저널리즘에 관한 지면에서 프랑스 미술잡지 『보자르』의 편집장은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잡지가 “미적 ‘일기예보’ 같은 존재”이며 “미학적 개념은 이렇게 전파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15 일상적으로 확인하는 유용한 정보임을 강조한 비유적 표현을 미술잡지와 미술비평의 현재와 미래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본다. 미술잡지 아카이브와 미술비평가들의 경험을 분석하면 그럴싸한 예측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대단히 맑은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미술잡지가 미술비평을 정말 원한다면, 기후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1 『2015 SeMA-하나 평론상,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5 pp.198~213 『월간미술』 2016년 1월호 p.48
2 문혜진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비평은 왜 부재할 수밖에 없는가」 『월간미술』 2016년 1월호 p.48 88
3「한국의 미술비평가 이론가 74명의 앙케트 조사분석」 『월간미술』 1997년 4월호 pp.48~66 참조
4 최금수, 이선영, 노형석 「한국미술, 언론과의 불편한 동거」『월간미술』 2006년 4월호 p.179
5 인용문 정보에 표시한 1997년, 2003년, 2006년의 기사는 각각 다음을 가리킨다 「한국의 미술비평가 이론가 74명의 앙케트 조사분석」 『월간미술』 1997년 4월호 pp.48~66, 「한국현대미술비평의 해부」 『월간미술』 2003년 2월호 pp.50~87 「한국 미술비평의 지금을 말한다」 『월간미술』 2006년 3월호 p.159
6 안인기 「미술잡지 저널리즘의 어제와 오늘」 『월간미술』 2006년 4월호 p.176
7 「안녕하세요, 비평가씨!」 『월간미술』 2012년 3월호 p.81, p.101
8 화보 및 개별 기사 게재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고충환, 반이정, 이대범, 강수미, 심상용, 임근준, 박영택, 이선영
9 김학량의 리뷰 「비평(가)(들)의 무덤」 및 참여 비평가별 전시 소개 『월간미술』 2009년 5월호 pp.138~145
10 미술잡지 바깥의 미술비평의 환경 변화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문혜진 「비평이 목도한 21세기」 (주제기획 「21세기에서 21세기를 돌아보다」) 『월간미술』 2020년 1월호 pp.97~99
11 강수미 「비평의 위기는 왜 두려운가」 (특별기획 「9인의 논객, 한국미술의 현장을 말하다」) 『월간미술』 2013년 12월호 p. 89
12 「한국의 미술비평가 이론가 74명의 앙케트 조사분석」 『월간미술』 1997년 4월호 p.52
13 문정현 「미술비평의 의자놀이」 『월간미술』 2019년 5월호 p. 58, 문혜진 「비평이 목도한 21세기」 (주제기획 「21세기에서 21세기를 돌아보다」) 『월간미술』 2020년 1월호 p.99
14 안진국 「비비평(非批評)의 시대: 이른 도착, 공백, 숲속의 빈터」『월간미술』 2024년 12월호 p.83
15 파브리스 부스토 「많은 잡지의 실패는 지루함에서 온다」 (특집기획「이 시대 아트저널리즘에 관하여」) 『월간미술』 2010년 1월호 p.104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