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7: 박보나
글 박보나
The Artist’s Bookshelf

박보나 / 1977년생.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텍스트를 결합해 예술과 노동, 역사와 개인의 서사에 대한 상황을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후 한예종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영국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을 석사 졸업했다. 2019년 아시아태평양 트리엔날레, 2016년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5년 제15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태도가 작품이 될 때』(2019),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2021),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2023)이 있다.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지음·강명희 옮김·하서출판사 2014
먼저, 나는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쥐고 내가 왜 미술 작업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구토』의 주인공은 프랑스 지방 소도시에서 18세기 정치인 롤르봉 후작에 대한 전기를 쓰기 위해 연구를 하는 앙투안 로캉탱이다. 소설은 그가 쓴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캉탱은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 조약돌을 던지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다. 그날 이후 그는 문고리, 초콜릿 색 벽 위에 걸려 있는 푸른 무명 셔츠, 의자 등과 같은 주위의 물체들에 비슷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이 증상을 시큼한 구토감이라고 묘사한다. 로캉탱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이 모호하고 낯선 상태를 시도 때도 없이 경험한다. 이제는 물체뿐 아니라, 박물관에 걸려 있는 중요 인물들의 초상이나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봐도 구역질이 하고 싶다. 그런데 주인공의 구토증은 신체 내부에서 생기는 질병의 증상이나 심리적 역겨움이 아니다. 로캉탱은 외부 세계의 존재 방식을 깨달을 때 불편해진다. 사물과 사람, 자연물 등 모든 존재가 본질적인 이유 없이 그저 우연히 불필요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구역감을 느낀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실존주의적 관점으로『구토』를 썼다. 그래서 그의 소설 속 주인공 로캉탱은 모든 것이‘무엇이어야 하는지’(본질)에 대한 정의 없이 ‘단지 있다’(실존)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구토』의 말미에 로캉탱은 카페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재즈를 듣다가 더 이상 남의 일생을 정리하는 일이 아닌, 진짜 자신의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아름다운 본질을 만들어 내는 음악처럼 주체적인 창작을 통해 스스로의 본질과 가치를 만들어 내겠다는 실존적 결단을 내린다. 나는 로캉탱이 그랬던 것처럼 내 존재가 시무룩해질 때마다 작업을 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저 잉여적 존재로 세상의 자리를 채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본질을 열망하며 계속 만들고 쉬지 않고 쓴다.

『파도』
버지니아 울프 지음·박희진 옮김·솔출판사 2019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와 거품으로 흩어지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것이 언제 생겼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 시간과 거리를 함부로짐작할 수는 없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파도』에서의 파도도 금세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덧없는 작은 파동을 의미할 수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꿈틀거림을 창조해 내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삶의 커다란 물결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파도』는 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강렬하게 밀려오고 다시 아득하게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눈부신 소설이다.
『파도』는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소설가 지망생 버나드와 그의 친구들인 네빌, 루이스, 로우다, 수잔, 지니의 유년기부터 삶의 후반부까지를 가로지른다. 그렇지만 『파도』는 전통적인 서사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라고 딱딱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 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여섯 인물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공유하며 발화하는데, 이는 대화라기보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독백에 가깝다. 약간씩 다른 파동을 만들며 서로 교차하는 이들의 독백은 매우 서정적이고 시적이다. 여섯 인물의 독백은 사건을 서술하거나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충분히 부드러운 쪽빛 물결에 올라탈 수 있다. 책의 어디를펴서 읽기 시작해도 울프의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이 만드는 곡선의 물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파도』는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에는 여섯 명의 인물들의 삶이 시간별로 담겨 있는데, 각 챕터 사이마다 작가가 간주라고 부르는 아홉 편의 짧은 산문이 들어있다. 간주에서 흐르는 글은 주로 바닷가나 정원 같은 자연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일출의 시간부터 태양이 서서히 뜨거워지다 식어서 결국에는 지고 마는 시간의 흐름이 드러난다. 이 간주는 점점 노년기로 가는 인물들의 삶을 담고 있는 주요 챕터와 번갈아 병치되면서 파도가 서서히 밀려왔다 사라지는 것 같은 유연한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소설은 결국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는 문구로 끝난다. 버지니아 울프는 『파도』를 통해 유한한 시간의 무상함을 아름다운 글쓰기(예술)로 잡아 보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파도』에 손을 담그고 울프가 쓴 보석 같은 언어를 어루만질 때마다 나도 나의 찰나의 삶을 매혹적인 예술 창작과 함께 끌고 가고 싶다는 열망을 느낀다. 시라고 부를 수도 있고 희곡이라 볼 수도 있는 그의 소설처럼 나도 기존의 예술 형식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는 날 선 작업을 하고 싶다.

『한때 유로파에서: 그들의 노동에 2』
존 버거 지음·김현우 옮김·열화당 2019
『한때 유로파에서』는 존 버거의 『끈질긴 땅』과 『라일락과 깃발』을 포함하는 ‘그들의 노동에’ 3부작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본다는 것의 의미』, 『다른 방식으로 보기』와 같은 미술비평 에세이로 주로 알려진 존 버거는 1974년 프랑스 오트사부아 지역의 시골 마을 퀸시로 이주하여 50년 가까이 살면서 글을 썼다. ‘그들의 노동에’ 시리즈는 존 버거가 퀸시에 살면서 농민 공동체와 교류하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관찰하며 쓴 소설이다. 버거는 점점 도시화되고 자본주의에 지배되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지는 농민들의 삶과 존엄성을 기록하고자 했다. 1부 ‘끈질긴 땅’은 산악 마을의 농촌 생활을 그리고 있고, 3부 ‘라일락과 깃발’은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사랑과 삶을 얘기한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2부 ‘한때 유로파에서’는 현대화로 전통적인 마을의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변화를 온 삶으로 통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노동에’ 시리즈는 3부작 모두 소중하지만, 『한때 유로파에서』를 선택한 이유는 책에 실린 단편 「우주비행사의 시간」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의 시간」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고원에서 머물며 가축을 키우던 사람들이 거의 떠나고 남겨진 두 사람, 노인 마리우스와 젊은 여성 다니엘레의 우정을 다룬다. 나는 다니엘레가 벌목을 하러 온 남자를 만나 고원을 떠날 것을 감지한 노인 마리우스가 산에 소리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연신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던 마리우스는 평생 노동을 이어온 자신의 강인한 신체가 있었음을 크게 외친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고요한 산에서는 대답 대신 메아리만 쓸쓸하게 돌아오고, 숨어서 그런 마리우스를 지켜보던 다니엘레는 눈에 보이는 색색의 꽃잎을 모두 으깨 버린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평생 묵묵히 일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늙고 홀로 남겨진 노인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울컥 울리는 장면이다.
존 버거의 『한때 유로파에서』는 이처럼 문학적으로 섬세한 장면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예술 밖 세계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다. 존 버거의 소설은 단지 예술적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민자나 노동자, 농촌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난민, 노숙자, 전쟁의 상흔을 겪은 사람들을 포함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읽는 『글로 쓴 사진』이나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제7의 인간』 같은 그의 다른 수필집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일관성 있게 드러난다. 버거는 주변부의 사람들을 전형적이 분류에 가둬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낮게 소비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늘 곁에서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예술은 존 버거의 글처럼 단지 예술 안에서만 미학적 관점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세상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그들과의 우정을 담은 작업을 만들고 글을 쓰며, 존 버거의 따뜻한 책 『한때 유로파에서』를 소중히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