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리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최고기부책임자
(Chief Philanthropy Officer at the Asian
Art Museum in San Francisco)

노재민 기자

3월 특집기사 ②

유니스 리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최고기부책임자
(Chief Philanthropy Officer at the Asian Art Museum in San Francisco)

2011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기업 펀드레이징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휘트니미술관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및 이벤트 디렉터를 맡아 13년간 다섯 개 직무를 거치며 미술관 후원·협력 프로그램을 총괄했다. 15년 이상 미술관 피칭과 기업 파트너십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오고 있다.
인터뷰 노재민 기자


미술관 펀드레이징의 관점에서 ‘피칭’은 무엇인가?
피칭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제시하는 행위가 아니다. 나에게 피칭은 미술관의 스토리와 미션, 목적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제안하는 대상에 따라, 그것이 왜 미술관에 필수적인 프로젝트인지, 동시에 기업에는 어떤 의미와 이익을 지니는지를 서사적으로 구축한다. 나는 언제나 이를 파트너십으로 제안해 왔으며 진정으로 기업들을 협력자로 인식해 왔다.

기업이나 재단과의 협업에서 협력 파트너를 설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 사람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내가 존중하는 인물일수록 협업에 대해 더 깊이 고려하게 된다. 파트너십은 지속적인 소통을 전제로 하기에, 상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필수적이다. 대개 이러한 경우 가치관이 맞닿아 있으며 미션의 출발점 또한 공유된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어떻게 협력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강화하고 상호 지지하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주요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예로 들어, 제안서의 구조와 프로젝트 실현을 이끈 핵심 전략을 설명해달라.
그동안 많은 사례가 있었으나,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협업은 휘트니 미술관의 ‘현대 테라스 커미션(Hyundai Terrace Commission)’이다. 이 파트너십이 중요한 점은 현대자동차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전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창출했다는 점이다. 휘트니에는 훌륭한 테라스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특별한 예술 프로젝트를 구현하려는 비전을 공유할 파트너가 필요했다.

제안서에서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파트너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확장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끌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 파트너십 안에는 휘트니비엔날레 후원을 함께 구성했는데, 이는 지원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성과가 검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2년마다 새롭게 열리는 비엔날레가 현대 측에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동시에 이는 휘트니의 대표 전시이기도 하므로, 새로운 커미션의 관객 기반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휘트니미술관 현대 테라스 커미션 전시 전경 202

기업은 미술관 제안서를 검토할 때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가? 콘셉트, 사회적 영향, 예산, 측정 가능한 성과 등의 요소 가운데 무엇이 가장 설득력을 지니는가?
영향력과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것이 최우선 요소라고 보지는 않는다. 결국 큰 아이디어가 큰 자금과 지원을 끌어온다. 단순하게 말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빅(big) 아이디어’이다.

강력한 제안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 피치덱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하나 꼽는다면?
좋은 제안서는 메세지가 명확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페이지다. 우리가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독자가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도록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제시해야 한다. 나는 요청 금액 역시 제안서 초반에 제시하는 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좋은 이미지들을 충분히 배치한다. 다만 제안서는 길어져서는 안 된다.

조 피아노 빌딩 워크숍이 설계한 휘트니미술관 신관(2015) 개관을 기념해 패션 브랜드 막스마라와 협업한 ‘휘트니 백’은 건축을 패션 오브제로 번역한 사례다. 건물 외벽의 리브 구조와 청회색 금속 패널에서 착안한 가죽 스트립 디자인을 통해 미술관 건축의 형태적 정체성을 가방에 구현했다. 미술관·건축·패션이 결합된 문화 협업 프로젝트로, 건축가가 직접 패션 제품 디자인에 참여한 사례다

기업이 예술 프로젝트에서 가장 자주 오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기업 후원이 프로그램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미술관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미술관의 결정 영역과 파트너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예술적 영역에까지 발언권을 갖기를 기대하는 파트너는 대개 파트너십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경우에는 협업 자체에 큰 오해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대화를 더 이어가지 않는다.

물론 파트너에게는 투자 수익률(ROI, Return on Investment)과 결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한다. 따라서 미술관에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 부분을 함께 설계하려 한다. 예컨대 행사를 기획하거나, 적절한 인물을 초청하거나, 파트너십을 확장할 기회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은 직접적이고 솔직한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나 역시 언제나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책임자로서 기업 협업을 이끌 때 내부 팀과 외부 파트너의 기대를 어떻게 조율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미술관 사람이다. 팀에도 늘 우리가 미술관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외부 파트너와 협업할 때에도 미술관의 가치를 항상 최우선에 둔다.

또한 나는 동료와 파트너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번역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소통 방식은 언제나 직접적이고 정직하다. 이러한 태도가 있어야 진솔한 대화의 공간이 형성되고, 더 빠른 타협과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

향후 미술계에서 피칭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피칭 역시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시도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남아 있는가? 더 창의적으로, 그리고 끈질기게 접근하는 일이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그 점을 상기시킨다.

2026년 3월호 (VOL.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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