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의 공간이전에 따른
예술기관의 이전과
지역 책임을 둘러싼 논쟁

정소영 기자

Sight&Issue

리슨투더시티의 〈지역소멸과 부동산 공화국〉(2025)은 지역 간 부동산 불평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인터렉티브 설치작업으로 서울 강남 3구와 부산 해운대구 지역의 아파트 실 거래가를 보여주는 2채널 영상이다. 관객이 화면에 손을 가까이하면 부동산 가격이 제시된다.
《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_나의 집이 나》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리슨투더시티

작년 12월,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안공간 루프(이하 루프)의 을지로 이전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점화되었다. 이번 사안이 기관의 공간 이전을 넘어 예술계의 화두로 부상한 배경에는 16년 전 홍대 앞 문화예술 생태계를 뒤흔들었던 ‘두리반 사태’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홍대역 인근 식당 ‘두리반’의 강제 철거 반대 농성은 예술가들이 지역의 생존권 문제와 전면적으로 결합했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1 당시 홍대 앞은 상업 자본의 유입으로 지가가 급등하며 영세 상인과 예술가들이 밀려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예술가들이 일궈놓은 문화적 가치가 자본을 끌어들여 주체들을 다시 내쫓는 ‘유목적 실천’의 굴레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했던 예술 주체들이 이제는 을지로라는 또 다른 생태계의 ‘외부 유입자’가 되어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논쟁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다.

쟁점과 입장
루프는 작년 12월, 서울 중구 청계천로 172-1 산림동으로 이전을 완료했다. 루프의 이전에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다. 이들은 2025년 12월 15일 리슨투더시티의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루프의 을지로 이주가 지역 산업 생태계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의했다. 이에 대해 루프는 같은 달 22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질의에 답변을 했고, 이후 양측 논의는 예술기관의 이전과 지역 책임 문제로 확장됐다.

리슨투더시티가 제기한 질문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루프가 홍대를 떠나 을지로를 선택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지역 선택의 이유는 무엇인지. 둘째, 을지로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오랜 갈등을 겪어온 지역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영향에 대해 어떤 인식과 대응 방안을 갖고 있는지. 셋째, 이전 과정에서 을지로의 도시 개발과 연관된 외부 자본이나 투자 주체가 개입됐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루프는 해당 을지로 공간이 40여 년간 동일 가족이 소유·관리해 온 사유 건물의 일부이며 임대차 계약 기간은 2027년 말까지 총 2년이라고 밝혔다. 또한 루프의 운영 재원은 공공 지원금과 회원 후원금으로만 구성된 비영리 구조로 이번 이전 과정에서도 외부 자본이나 투자 자본의 개입은 전혀 없었음을 밝혔다. 공간 이전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기존 홍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안전 및 구조상의 문제와 더불어 한국예술문화위원회에서 받은 공간지원금 지속을 위한 이전 시기와 규모에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루프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으며 약 2년간 공실 상태였던 해당 공간이 임대료 수준과 구조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대안이었다고 덧붙였다.

을지로 지역의 맥락에 대해서도 루프는 일정 수준의 인지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운재정비촉진지구 해제 이후 논의돼 온 산업특화골목 구상과 강제퇴거금지협약의 체결 배경 등은 알고 있으나 자신들이 입주한 건물이 해당 협약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루프는 재개발을 미화하는 문화지구 조성이나 도시재생 사업, 그리고 외부 자본과 결탁한 문화 전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루프는 이전 결정과 계약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면서 지역 당사자들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점은 인정했다. 다만 그간 루프가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를 기반으로 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구조적 불평등과 사회적 위계 부조리를 다뤄왔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도시 차원의 문제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을지로에서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예술기관, 도시,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이번 사안이 던지는 핵심은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이 남는다. 우선 비영리 예술기관이라 할지라도 그 기관이 축적해 온 상징 자본과 인지도는 지역의 부동산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영향에 대해 ‘예술기관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함께 제기된다. 이번 사안에 대해 본지는 루프의 을지로 입주 이전에 지역과의 사전 공유나 논의가 없었다는 점을 비판한 리슨투더시티에 외부 기관이나 개인이 해당 지역에 들어올 때 요구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의 구체적 모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만약 루프가 사전에 논의를 요청했다면 어떤 조건에서 이를 수용하거나 다른 선택을 권했을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리슨투더시티는 루프가 입주한 골목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억제하고 금속 제조 및 공구 유통 중심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 주민과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산업특화골목’ 조성을 추진해 온 구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갤러리나 카페와 같은 특정 업종의 유입이 지가와 임대료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으나, 관련 제도나 정책 차원에서는 사실상 묵인돼 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개발 시행사보다도 문화·예술 주체의 유입이 장기적으로 불러올 지가 상승과 임대료 상승의 연쇄 효과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리슨투더시티는 “이 문제가 특정 기관을 겨냥한 비난이나 ‘마녀사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술가와 예술 주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이기 쉽지만, 동시에 의도와 무관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의 계기를 제공하는 모순적인 조건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개별 기관의 판단에만 있지 않으며 “을지로처럼 지역 산업의 생존이 걸린 취약 지역으로의 이전을 고려하는 모든 예술 주체가 해당 지역에 미칠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리슨투더시티의 답변처럼 루프의 을지로 이전이 루프라는 기관 하나의 선택만으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루프 역시 공공 지원금과 후원금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공간 이전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쟁점
루프의 을지로 이전을 둘러싼 논쟁은 특정 기관의 판단을 넘어 오늘날 예술기관이 도시 안에서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본지는 리슨투더시티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예술이 산업을 기록하거나 미화하는 도구를 넘어 을지로의 제조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도심형 생산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보존 활동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질문했다. 이에 리슨투더시티는 “최근 ‘호모 파베르: 만드는 사람들’2이라는 웹페이지를 개설해 재개발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놓인 기술자, 상인, 제작자, 창작자들을 상호 연결하고 있다. 아직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을지로4가·산림동, 중부시장, 을지로 인쇄소 골목이 건설 자본과 투기 논리에 의해 소멸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예술은 오랫동안 비판적 위치를 자임했지만 동시에 도시의 구조 속에서 하나의 행위자로 작동해 왔다. 이번 사안이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술계 내부에서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양측 모두가 공론화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을지로라는 장소에서 그리고또 다른 도시의 취약한 지역들에서 유사한 선택을 앞둔 예술인과 기관들이 이 논의를 참고 삼아 보다 신중한 판단과 상호 존중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앞으로의 실천에 달려 있다.

* 논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본지는 공정한 정보 전달과 상황 파악을 위해 루프와 리슨투더시티 양측 모두에게 추가 질의서를 전달했다. 리슨투더시티는 예술기관이 특정 지역으로 유입될 때 요구되는 민주적 절차의 가능성 그리고 예술과 지역 산업이 결합할 수 있는 방식 등 보다 구조적인 질문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반면 루프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답변한 바와 같이 공개 질의와 공개 답변이라는 형식이 가장 왜곡 없이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 판단하고 월간미술의 편집이 가해지는 서술형 기사 취재에는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 리슨투더시티(@listentothecity)와 루프(@alternativespaceloop)의 입장문 전문은 각각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신혜영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 자립적 미술 신생공간 주체들의 생활 경험과 예술 실천 연구」 한국정보언론학보 2016 p.188
2 호모 파베르 홈페이지 https://homo-faber.vercel.app/

2026년 2월호 (VOL.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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