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재단발 정책 겨루기-
지역 문화정책, 의제는 어디로 향하나?
강재영 기자
Theme Feature

2025년 8월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9회 서울문화예술포럼에서는
예술인의 국제 창작거점으로서 서울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제공: 서울문화재단
2026년 6월 3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지역문화재단은 공모를 집행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역할을 넘어서 각 지역의 현안을 해석하고, 지역이 무엇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 제안하며, 때로는 중앙의 정책과 색깔을 달리하는 질문을 던지는 의제 생산자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단의 정책 수립을 위한 의견 수렴의 장이자 앞으로 각 문화재단 정책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포럼’, ‘정책 세미나’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광역·지역문화재단발 문화예술 정책 제안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지금, 지역문화재단 시대의 도래를 중앙-광역-기초라는 행정 위계의 레이어로 짚어보고, 포럼·세미나 갈무리를 통해 지역문화 의제를 검토한다. 그 과정에서 바람직한 지역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제언한다.
지역문화재단 시대의 도래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2025년 6월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타운홀 미팅, SNS 등을 통해 담론을 주도하는 정책실험 속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정책만큼은 예외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 3월 15일 창원에서 지역문화예술인을 만난 대통령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을 빌려 불투명한 문화예술 지원제도와 그 취약성을 에둘러 지적한 것은 현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원제도의 취약성을 문화예술계의 자정 문제로만 국한해 봐야 할까? 문화행정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최근 각 지역문화재단은 정책 세미나 및 포럼을 활발하게 개최하며 문화예술 창작생태계·유통·국제교류 등 다방면의 정책 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포럼과 세미나는 지역의 정책 수립을 위한 의견 수렴과 분야별 전문가 발제 등을 통해 각 지역에 산재하는 문제를 정책 의제로 다듬고구체적 사업으로 실행해 나가는데 필요한 과정이다. 포럼으로 떠올려진 의제들이 바로 정책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정책을 재검토하고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에 그 경향을 점검하는 것은 앞으로의 문화정책을 읽어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배된 예산을 집행하는 기구를 넘어서 정책 의제를 발굴하는 지역문화재단발 정책 겨루기가 본격화하는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1년 기초의원 선거와 지방의회 구성, 1995년 광역 기초 단체장과 광역 기초의회 선거로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되고 1997년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열린 지역문화재단 시대는 2014년「지역문화진흥법」 제정과 함께 시작됐다.1 이는 예술가의 창작활동 지원과 문화예술시설 건립·운영 등 인프라의 도약으로 이어지며, 지역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문화예술 생태계의 체질을 바꾸는 뒷받침이 되었다. 전국 기초·광역문화재단의 수는 2016년 68개에서 2025년 142개로 9년간 208% 증가했다. 국내 지자체 243곳 중 58.4%에 달한다. 현재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곳도 10곳이 넘는다.2 지역문화재단 수의 증가는 그 역할과 영향력의 확장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경향은 일회적 유행이 아니라 지역문화재단 체계가 본격적인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이다.
이 글은 지역문화재단 시대의 현주소를 짚고, 그 방향성을 점검하기 위한 시론이다. 먼저 한국의 문화정책 체계를 중앙-광역-기초 정부와 문화재단 사이의 위계 구조라는 프레임으로 다시 읽으며 각각에 부여된 역할이 지역분권 의제에 얼마나 부합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고찰한다. 이어 주로 광역문화재단 주도로 열린 정책 세미나, 포럼 등의 내용을 갈무리하여 지역의 문화정책 방향의 흐름을 파악한다. 최근 몇몇 지역문화재단과 자치단체에서 부는 ‘해외 문화콘텐츠 유치’ 바람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각 지역문화재단이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소통하고 의견 수렴을 거치는 과정에서 도출된 의제들이 이러한 정책 레이어 안에서 어떻게 소화되어야 할지 제언을 담고자 한다.
중앙-광역-기초로 나뉘는 문화정책의 레이어
먼저 문화정책의 레이어를 간략히 살펴보자.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은 다양한 단위와 구분이 있지만, 중앙-광역-기초로 나뉘는 위계 구조로 독해해볼 수 있다. 먼저 중앙정부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국가 단위, 전국 단위의 비전, 법제, 재원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광역자치단체 문화재단은 이를 도시와 권역의 현실에 맞게 번역하고 조정한다. 마지막으로 기초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은 생활권 안에서 주민과 예술 현장을 직접 만나는 실행의 층위를 담당한다. 각 재단의 시행령과 조례 등으로 설정된 이러한 역할의 위계는 명확하게 작동하기보다는 지역 내 필요 등에 의해 그 경계를 넘나든다. 이렇듯 지역분권의 언어는 오래 축적되었지만, 중앙-광역 기초라는 위계 구조 안에서 거버넌스 수립 등 유기적인 역할 분담 설계는 해외에 비해 느슨한 편이다.3
예컨대 영국, 프랑스, 미국 등 해외의 문화예술 행정체계는 역할 분담이 분명한 편이다. 중앙은 대체로 국가를 대표하는 창작 지원과 접근성 제도에 집중하고, 지역정부는 주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문화경험, 지역 커뮤니티 기반 사업, 문화기반 조성을 맡는다.4 국내에서도 광역문화재단을 문예진흥기금과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지원재단’, 기초문화재단을 위탁시설과 생활밀착형 사업을 수행하는 ‘운영재단’으로 분류하는 등 그 역할이 분화되는 경향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역문화재단은 예외적인 조직이 아니라 지역 문화행정의 기본 장치이다.
하나의 조직 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최근의 지역문화재단 양상에서 드러나듯, 지역자치제의 대전제인 ‘지역분권’, 즉 권한의 이양을 통한 자율적인 정책 수립과 운영은 보장되어야 하고 일정 수준 제도를 통해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광역문화재단이라도 조직 구조와 규모, 외부 거버넌스 환경, 지방의회와의 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어, 말 그대로의 ‘지역분권’이 제도적으로 각 문화재단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광역문화재단에 문화시설 위탁업무가 늘고 있고, 일부 기초재단은 광역이 맡아오던 지원 기능을 수행하면서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5
그렇다면 각 레이어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어야 할까. 연구들은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먼저 중앙은 법·제도와 기금, 평가체계를 설계하고, 전국 단위의 예술진흥과 문화복지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동시에 지역이 자율적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도록 협의체와 지원 네트워크를 촘촘히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2011년 연구에서 제안한 중앙-광역-기초 단위의 협력 체계 구축은 여전히 유효한 출발점이다. 광역은 권역 전략과 조사연구, 광역 네트워크, 국제교류, 기초 간 조정 역할을 맡고, 기초는 생활권 문화서비스, 지역 예술인의 활동 기반, 시설과 자원의 운용을 담당하는 방식이다.6 한편 역할 분담은 칸막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규모의 정책을 맞물리게 하는 설계여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 소멸위기 대응 문화적 지역활성화 사업을 기록한 『소멸 너머 예술』은 중앙과 지역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사업은 중앙이 정책 방향과 재원을 마련하고, 지역 현장이 각자의 조건에 맞는 문화적 실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지역소멸과 관계인구, 정주 여건 같은 문제는 단일 기관이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이 사례는 중앙의 제도 설계와 지역의 실행 역량이 맞물릴 때 지역문화정책이 보다 입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이 커지는 지금, 중요한 것은 중앙과 지역이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역량을 어떻게 접속시키느냐에 있다.7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또 다른 고려사항을 쟁점화한다. 2026년 3월 제정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통합을 제도화했다. 3월 19일 광주문화재단은 특별법 내 문화 관련 18개 조항을 공유하고 제안을 모으는 세미나를 여는 등 통합 준비에 분주하다. 이러한 논의는 행정통합과 함께 주어지는 신규 문화시설 유치 등의 특혜에 집중된 것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앞으로 기능이 겹쳐지게 될 시설, 조직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광주문화재단, 전라남도문화재단 등의 통합 혹은 기능과 역할 분화 등 세부적인 논의 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행정통합으로 벌어질 이러한 이슈는 앞으로 다른 권역 개편에서도 되풀이될 쟁점이다.
광역·지역문화재단의 정책 의제 갈라보기
이제 2025년 하반기부터 2026년 현재까지 지역문화재단들이 포럼과 세미나로 도출하려는 의제를 하나씩 본격적으로 갈라보자. 개별 문화재단의 정책 의제를 살펴보기 전에, 지역문화재단들이 꺼내는 의제를 정리하면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높아진 K-컬쳐의 위상에 걸맞는 국제 교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둘째는 예술을 담는 정책의 틀거리를 예술인의 관점에서 아래로부터 다시 짜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셋째는 접근성, 문화다양성 관점에서 새로운 문화생산의 주체를 탐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넷째는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와 기술 전환에 대한 대응이다. 다섯째는 로컬리즘, 아카이브, 도시 브랜딩처럼 지역의 역사와 자산을 정책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2025년 11월 7일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열린 ‘2025 예술로 문화정책 베짜기’는
예술정책을 현장의 창작자의 시선으로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는 시도였다.
아래 사진은 ‘여섯 몸짓말: 문화정책의 벼릿줄 펼치기’ 중 ‘생활문화/춤 베짜기’ 시간에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가 직접 춤을 추며 어우러지는 장면.
사진: 씨드앤그로우 제공: 한국지역문화정책연구소
① 서울 – 국제적 예술 창작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한 방향 탐색
서울문화재단은 매해 ‘서울문화예술포럼’을 열고 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성을 점검한다. 2025년 8월 열린 제9회 서울문화예술포럼은 ‘Seoul Mix_세계인이 예술하기 좋은 도시로’를 주제로 내세우며 국제교류 정책을 다각도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참여한 암스테르담시 예술문화국장 아라프 아흐마딜리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핵심기조로 삼는 암스테르담시의 문화정책을 소개했다. 이어서 토론에 참가한 외국인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외국인 예술인의 비자 문제,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 등은 내국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장벽을 확인하고 제도적 대책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포럼을 기록한 정책 리포트에서 연구자들이 이들 외국인 창작자의 의견을 계기로 후속 연구를 결의하는 대목은 정책 포럼의 순기능을 확인시켜준다.8
② 경기 – 예술 담는 정책틀을 위한 파격(破格)
2025년 11월 경기문화재단이 사단법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부설 한국지역문화정책연구소와 공동 주최한 《2025 예술로 문화정책 베짜기 – “끼니와 나들이를 위한 베틀어미”》는 지금까지의 한국 문화정책을 전면 재검토하자는 파격적인 주장이 담겨있다. 문화교육, 생활문화, 문화기획, 지역문화, 문화도시 사업 등등 광역문화재단이 안고 있는 폭넓은 정책 범위에 대해 격의 없는 제안들이 오갔다. 그중에서도 현장과 정책이 만나는 새로운 제도적 언어와 틀이 필요하다는 의견(허난영), 성과 중심 체제를 넘어 감성언어로서 예술정책 평가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라도삼), 지금의 예술정책이 사업단위 안에서 관료주의에 고립되어 있다고 보고, 거버넌스, 탈성장, 재야생화 등의 전술로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원재)은 포럼의 제목처럼 예술 중심의 문화정책 구조를 상상케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논의의 장을 기대하게 한다.9
③ 광명·부천 – 접근성과 시민 참여
광명문화재단은 2025년 10월 ‘모두가 즐기는 문화예술: 문화접근성과 공공의 역할’을 주제로 정책포럼을 열었다. 여기서 문화다양성은 선언적 가치가 아니라, 누가 접근할 수 있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따지는 공공성의 문제로 다뤄졌다. 부천문화재단은 2025년 11월 ‘부천시 문화의 미래, 새로운 가능성과 확장성’을 주제로 시민 네트워크 기반 정책 제안형 포럼을 열었다. 문화정책협의체와 시민회의 라운드테이블을 후속 통합포럼으로 엮은 구조는 지역문화재단이 단순히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 시민과 함께 정책 의제를 조립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최근 지역문화정책이 ‘더 많은 행사’보다 ‘누가 문화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④ 노원·인천 – AI 전환 시대와 아카이빙
노원문화재단과 인천문화재단은 기술 전환과 지역자산을 각각 밀도 있게 다뤘다. 2025년 12월 열린 노원문화공회 포럼 ‘문화도시 노원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는 AI 전환과 도시 변화 속에서 지역문화의 방향을 묻는 자리였다. 인천은 더 다층적이다. 2025년 5월 열린 제2회 인천문화정책포럼에서는 ‘문화예술 기록이 도시를 바꾼다’는 주제로 도시 브랜딩과 정체성 정책을 아카이브의 문제로 끌어왔고, 이어 같은 해 11월 열린 문화정책 세미나 ‘창작의 재구성: AI 시대, 예술의 질문들’에서는 기술과 창작의 협업 모델을 논의했다. 원도심, 기록, 청년, AI 등으로 이어지는 고민은 인천이 도시의 역사성과 미래 산업 전환을 동시에 정책 의제로 삼고 있음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⑤ 부산·대구 북구 – 지역성
부산문화재단과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은 ‘지역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끌어올렸다. 부산문화재단은 2025년 11월 부산 문화정책이슈포럼 ‘2026년 문화지형의 변화와 부산의 대응’을 열어 제3차 지역문화 진흥계획 실행기관으로서 부산문화재단의 방향성을 진단한 데 이어, 2026년 1월부터는 문화정책 네트워크 세미나 ‘궁리정담’을 정례화하고 첫 번째 세미나 주제로 ‘글로컬 해양도시와 문화’를 선정했다. 개항 150주년, 해양문화산업, 부산문화재단 2035 전략이 함께 논의된 것은 부산이 서울과의 단순 경쟁이 아니라 해양도시라는 장기적 정체성으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 역시 2025년 11월 ‘문화예술과 로컬리즘’을 내걸고 지역성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보자고 제안했다. 지역문화재단들이 더 이상 ‘지역 특성화’라는 추상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정책 세미나 행정을 통해 해양도시, 로컬리즘, 원도심, 문화접근성, AI처럼 더 구체적인 언어로 자기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지역문화재단 시대 정책 겨루기의 한 장면이라 말할 수 있다.
해외 문화콘텐츠 유치와 지역문화정책의 혼선
이러한 장면과 함께 보아야 하는 최근의 사례가 있다. 바로 일부 지역자치단체가 추진중인 해외 유명 문화기관 유치와 대형 전시의 수입이다. 서울 동작구는 2026년 1월 영국 V&A박물관 분관 유치를 위한 MOU(양해각서) 체결 사실을 알렸고, 노원구는 인상파 거장 전시를 유치해 노원아트뮤지엄에서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그리고 세잔》을 2025년 12월 개막하여 2026년 5월까지 계속된다. 이 사업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생활권에서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대외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추진되었다.
지방분권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지역문화재단 혹은 지자체의 이러한 사업 추진을 단순한 위계 구조로 소급하여 비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과연 이런 사업이 기초단위 문화정책의 우선순위인지, 혹은 광역 혹은 중앙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국제 협상과 재정·운영 리스크의 문제인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시각도 필요하다. 문제는 해외 유명 기관이나 대형 전시의 유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정책 층위에서 어떤 책임 구조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되느냐에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면 대형 해외 전시 수입의 경제적 효과를 계산하는 것보다는 지역문화예술 생태계의 요구 수렴을 통한 지자체만의 독창적이고 수요자 중심의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데 대한 고민이 먼저일 것이다.
한편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사례처럼 지역문화재단이 지자체의 정책 결정의 수행자 역할로 밀려나는 경우도 여전하다. 부산은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을 2027년 착공, 2031년 개관 목표로 추진 중이다. 부산시는 공식적으로 MOU 체결과 지역재정 투자심사 협의 면제를 알리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 예술인들은 비공개 협약, 공론화 과정 결여, 막대한 예산 지출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부산문화재단은 문화정책 전문 조직으로서 입장을 내거나 시민사회와 지자체를 잇는 정책 논의를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이 문화정책의 수립과 실행을 위한 정책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연구는 민관 거버넌스의 구축 등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정책 설계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언급한다.10
나가며 – 따로 또 같이, 중앙과 지역의 역할 분화 필요성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발 정책 겨루기’의 일면을 사례를 중심으로 살폈다. 지역문화재단 정책 수립의 본질은 예산 규모의 경쟁이 아니다. 첫째,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중앙과 지역의 올바른 거버넌스 전략이다. 중앙은 원칙과 제도, 광역은 조정과 전략, 기초는 실행과 생활권 접점을 맡는다는 최소한의 질서가 분명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 기관 유치와 생활문화 지원, 국제교류와 동네 기반 사업이 같은 잣대로 섞여 평가되는 혼선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지역문화재단이 안고 있는 고민은 생각보다 다층적이다. 광역은 국제성, 권역 네트워크, 평가체계 전환을 고민하고, 기초는 접근성, 시민 참여, 시설 운영, 지역 예술인의 생존 조건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기술 전환, 기록과 자산화, 지역소멸 대응까지 더해지면서 재단은 사실상 지역 문화정책의 실험실이 됐다.
정책 포럼이 진짜 힘을 가지려면 예술인의 말과 지역 실무자의 경험이 실제 사업 설계와 예산 구조, 심의 기준, 인력 배치에 스며들어야 한다. 서울 포럼이 외국인 창작자의 제도 접근성을, 경기의 베짜기가 현장 발화를, 부천이 시민회의를, 광명이 접근 가능한 문화를, 인천과 부산이 지역의 미래 서사를 말했듯, 다음 단계는 이 언어들이 행정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다. 지역문화재단 시대는 이미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위에서 아래로, 혹은 정해진 제도대로 수동적으로 따르는 태도가 아니다. 예술가와 시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문화 주체들의 입장과 상황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떠오르는 의제를 정책 입안 단위에서 예민하게 감지하고 날카롭게 다듬어 다시 정책으로 되돌리는 선순환의 모델을 따로 또 같이 그려야 할 시점이다.
1 서준하 박나라「지역문화재단 조직 유형 비교 연구: 전국 광역문화재단 퍼지셋 이상형 분석」『한국행정연구』34권 1호 한국행정연구원 2025 p.56
2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문화체육관광부, 2025) 참고
3 양혜원『지역분권 관점에서의 주요국가 예술지원정책 분석 연구: 영국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8 p.5~6, p.79 참고
4 양혜원 위의 글 p.257 참고
5 서준하 박나라 앞의 글 p.60
6 박신의 외『지역문화재단의 운영성과 분석 및 역할 재정립 방안 연구』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1 p.176
7 『소멸 너머 예술-2024 소멸위기 대응 문화적 지역활성화 사업 아카이브』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참고
8 김해보「세계인이 예술하고 싶은 도시– 내가 나로서 공감받을 수 있는 서울?」『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 이슈페이퍼』2025년 8월호 서울문화재단 참조
9 (사)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재)경기문화재단『2025 예술로 문화정책 베짜기 “끼니와 나들이를 위한 베틀어미”』참조
10 서준하 박나라 앞의 글 p.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