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편되는 홍콩 아트씬의 현재

노재민 기자

World Report | Hong Kong

국제갤러리는 엔카운터스 섹션에 강서경의 작품을 전시했다
제공 : 아트바젤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한 이후, 우리는 홍콩을 경쟁 구도로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해 왔다. ‘아시아 미술의 중심은 어디인가’ 혹은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매년 반복되고, 그 답을 특정 도시의 승패로 환원하려는 경향도 강화되었다. 여기에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2020년 중국 전인대의 일방적인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팬데믹 이후의 시장 침체 등 홍콩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조건은 이러한 경쟁 서사를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과연 적절한가? 탈위계화하려는 각종 담론이 미술계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도시를 위계화하고 중심을 선별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의 아트신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 역시 그러한 시선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의 비교선상에서 생각하지 않는 홍콩의 미술 현장은 어떠한가?


2025 홍콩의 아트페어 : 아트바젤과 아트센트럴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수치상으로 분명 회복 신호를 보여주었다. 약 240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관람객 수는 약 9만1500명으로 집계되며 팬데믹 이전 규모에 근접했다. 피카소, 게르하르트 리히터, 루이즈 부르주아, 조지 콘도 등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이 수백만 달러 단위로 판매되었고, 일부 갤러리는 첫날 수십억 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는 이전과 같은 방식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속도였다. 과거에는 VIP 프리뷰 첫날 거래가 집중되는 구조였다면, 올해는 페어 기간 내내 거래가 분산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컬렉터들은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여러 부스를 비교한 뒤 다시 돌아오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메가 갤러리 부스들은 검증된 작가 중심의 구성을 보였다. 파블로 피카소, 루이즈 부르주아, 조지 콘도, 키스 해링과 같은 안정적인 작가풀이 전면에 배치되었고, 신작이나 실험적 작업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한 보수화라기보다,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불안과 경제적 변동성 속에서 나타나는 자산 선택의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 규모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보다 안전한 작가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근 페어에서 가장 분명하게 감지된 변화는 관람객 구성이다. 서구권 컬렉터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중국 본토와 아시아 컬렉터의 비중은 크게 증가했다. 일부 유럽 컬렉터는 “VIP 프리뷰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반면 미국 서부 지역 기관 관계자나 아시아 디아스포라 기반 컬렉터들은 일정 수준 참여를 유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편중이 아니라, 홍콩의 역할 자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홍콩이 서구 자본과 아시아 시장을 연결하는 글로벌한 중개지였다면, 현재는 동남아시아 화교 자본, 중국 본토 컬렉터, 한국과 일본 컬렉터 등 아시아 내부 네트워크가 교차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로10 섹션에 참여했던 펠로십 × 아트 엑스코드(Fellowship×Artxcode )는 수그웬 청(Sougwen Chung )의 작업을 선보였다
제공 : 아트바젤

컬렉터의 성격 역시 변화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부의 대이동’은 밀레니얼과 Z세대 컬렉터의 유입을 의미한다. 이들은 기술 · 핀테크 산업 기반의 자산가로, 물리적 작품과 디지털 에디션을 함께 수집하는 하이브리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디지털 소유권, 인터랙티브 요소, 알고리즘 기반 작업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지표다.

이러한 흐름은 작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 선보인 디지털 섹션 ‘제로 10(Zero 10 )’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홍콩의 제로 10 섹션은 3층 공간에서 높은 가시성을 확보했으며, 디케이(DeeKay ), 팀 입(Tim Yip ), 수그웬 청(Sougwen Chung ) 등의 작업이 소개되었다. NFT 열풍 이후 잠시 주춤했던 디지털 작업은, 이제 제도권 플랫폼 안으로 편입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이는 시장이 새로운 매체를 투기 대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형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아트센트럴은 아트바젤과 유사한 방향성을 보이면서도, 신진 작가 중심의 구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층위를 형성한다. 참가 갤러리의 약 75%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기반으로 하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갤러리의 참여가 증가한 점 역시 특징적이다. 이는 홍콩이 점차 아시아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현장의 분위기는 보다 복합적이었다. 다수의 갤러리가 판매 부진을 호소하는 가운데, 컬렉터들은 가격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격을 묻고 난 뒤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한 갤러리 대표의 말은 현재 시장의 신중한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갤러리 대표는 “홍콩 거주 컬렉터의 특성상 실질적인 구매가 주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메인 페어인 바젤이 밤 8시까지 운영되는 날에 센트럴 나잇이 동시에 진행되는 등 일정 운영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현장에서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터치 갤러리는 아트센트럴에서 라이브 워크숍 형태로 제시된 설치작을 소개했다.
실베스터 목(Silvester Mok )
〈디지털 화석화 장치〉 3D 프린터,
3D 스캐너, 레진, 세라믹, 금속 가구 400 × 300 × 200cm 2026
제공 : 아트센트럴

도시의 변화 : 페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

올해 홍콩에서의 흥미로운 변화는 완차이구 바깥에서 감지된다. 센트럴 지역의 에이치 퀸즈(H Queen’s ) 빌딩 7층에 자리 잡고 출범한 Knotting Space(KNOT )는 짐스 람(Jims Lam )이 큐레이션하고 에이치 퀸즈가 기획 · 지원한 순환형 큐레토리얼 플랫폼이다. 이는 전시를 하나의 고정된 형식이 아닌 ‘노트(knot)’라는 사이클 단위로 구성하며 갤러리, 기관, 비영리 공간 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낸다. 만남과 교환을 핵심에 두는 이 구조는 홍콩을 경유지이자 연결의 통로라는 도시적 맥락 위에서 외부 지역의 갤러리와 조직이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로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각 사이클은 전시에 그치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며 서로 다른 지역성과 맥락을 지닌 주체들을 인접하게 배치함으로써 기존 상업 갤러리 중심의 유통 구조를 넘어서는 교차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높은 임대료로 인해 페이스 갤러리를 비롯한 메가 갤러리가 홍콩에서 철수한 이후, 이 건물은 보다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한 듯 보였다.

한편 왕척항 지역에서는 글로벌 메가 갤러리가 위치한 센트럴 지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홍콩섬 남부에 자리한 왕척항은 20세기 중반까지 공업 시설이 밀집했던 대표적인 제조업 지역이었으나,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비어 있던 공장 건물을 중심으로 갤러리와 예술가들이 유입되며 새로운 예술지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임대료와 넓은 공간을 기반으로 2010년대 초부터 일부 갤러리가 입주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드 사르트(De Sarthe ), 블라인드스폿(Blindspot), 로시 & 로시(Rossi & Rossi ) 등 다양한 갤러리가 모여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홍콩 정부 또한 상업 개발과 병행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 강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3월 중국의 안테나 스페이스(Antenna Space )가 왕척항에 새로운 지점을 개설했고, 살롱형 공간 ‘GOLD’가 개관했다. ‘GOLD’는 미술을 중심으로 패션, 음악, 디자인, 기술을 교차시키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과거 은행과 보석상이 있던 장소를 활용한 이 공간은 세라카이 스튜디오의 문화 실험실로 기능하며, 출판 프로젝트 ‘CONG’과 연동된 담론의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CERTAINLY》 GOLD 전시 전경 2026
제공 : 세라카이 스튜디오

기관과 인프라 : 제한과 확장 사이

미술관 인프라는 홍콩 미술계의 약점으로 자주 지적되는 문제였다. 서구룡 문화지구에 위치한 M+가 여전히 핵심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홍콩예술관과 고궁박물관을 제외하면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올해 M+에서 열린 이불 개인전 《Lee Bul : From 1998 to Now》는 리움미술관 전시의 순회라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나, 보다 확장된 전시 공간에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이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체크리스트의 약 20%가 새롭게 구성되었고, 전체 200여 점 가운데 약 50점이 추가되었으며, 일부 중복 출품작 역시 리움미술관의 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여기에 작년 11월 동구룡문화센터(East Kowloon Cultural Centre, 이하 EKCC) 개관은 시각예술을 넘어 문화 인프라 전반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KCC는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 인프라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연예술 중심 복합 문화시설로, 구룡 동부 카이탁(Kai Tak ) 개발지구 인근에 위치한다. 서구룡 문화지구가 미술관과 시각예술 중심의 거점이라면, EKCC는 연극, 무용, 음악 등 공연예술에 특화된 지역 문화 허브다.

EKCC는 대형 공연을 위한 첨단 극장부터 창작을 위한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시설이다. 전면 프로젝션이 가능한 공연장, 전문 음향 시스템을 갖춘 음악 공간, 유연한 좌석 구성을 지닌 예술기술 실험실을 비롯해 리허설과 연구를 위한 스튜디오, 4K프로젝션과 몰입형 음향 시스템을 갖춘 대형 공연장, 관객과의 밀도를 높이는 돌출형 무대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제작 · 실험 · 공연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최신 공연예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신진 예술가와 지역 단체에 제작 · 연습 환경을 제공하고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문화 생태계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특히 카이탁 공항 이전 이후 재개발이 진행 중인 동구룡 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EKCC는 도시 재생과 문화 인프라 확장을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EKCC는 M+와 같은 대형 미술기관이 위치한 서구룡과는 다른 축에서, 홍콩 문화 지형을 다층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하며,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관객층과 창작 환경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홍콩이 미술시장 중심 도시에서, 보다 복합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샤지아 시칸더(Shahzia Sikander)의 M+ 파사드 커미션
제공 : 아트바젤

회복이 아닌 재편

2026년의 홍콩 아트신은 더 이상 회복이라는 단일한 서사로 설명되기 어렵다. 홍콩 미술시장의 거래 규모는 분명 침체기 반등의 초입임을 시사하지만, 홍콩의 구조 자체는 이미 변화를 겪고 있고, 흐름의 방향 역시 이전과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외신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생태계에 주목하는 것에 반해, 국내 보도는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홍콩의 위상 약화를 지적해 왔다. 특히 과도한 글로벌 연결성에 비해, 지역 예술의 역사와 충분히 접속할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졌던 것은 메인 페어의 판매 성과보다, 그 주변에서 감지되는 다양한 실험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의 움직임이었다

2026년 5월호 (VOL.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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