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이미지 전쟁, 누구의 것도 아닌 태극기

세상 모든 나라는 저마다 특색있는 국기(國旗)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태극기가 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다. 2017년 3월, 과거 어느 때보다 태극기의 의미가 각별히 여겨지는 요즘이다. 모든 국민이 익히 알고 있듯이, 그 이유는 올해가 3·1만세운동 98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로 인해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까닭이 더 크다. 그래서 태극기를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은 복잡 미묘하고 착잡할 수밖에 없다.
1919년 3·1만세운동을 필두로 그동안 태극기는 소용돌이치듯 급변해온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결정적이고 역사적인 현장에서 어김없이 펄럭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진보진영 중심으로 항쟁과 투쟁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최근 ‘박사모’나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성향 단체세력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처럼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태극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된다. 그러나 이런 갈등 속에서도 ‘애국의 상징’이라는 공통분모로서 태극기 본연의 의미와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배경에서 《월간미술》은 냉철한 현실 인식을 전제로 태극기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맥락을 되짚어 보고 진단하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특정 대상을 모티프로 설정하고 그것을 시각이미지 문화연구라는 측면에서 심층 분석한 이번 특집은 2016년 12월호 ‘시대의 얼굴, 동상의 진실을 파헤치다’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후속 기사인 셈이다. 부디 이 두 특집을 통해 ‘미술과 함께’ 그리고 ‘사회와 함께’하고자 하는 《월간미술》의 의도와 진정성이 읽히고 전달되길 바란다. 기획 · 진행=이준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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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1전시장.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O.N.Denny ) 태극기’(1890년 추정)를 비롯해 김구 서명문 태극기(사진 오른쪽 위), 광복군 태극기(오른쪽 아래) 등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태극기가 전시되고 있다.

태극기의 등장부터 오늘까지

김권정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학박사

국기(國旗)가 오늘날처럼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근대국가 성립 이후의 일이다. 근대 시민사회와 근대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국적(國籍)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국기가 발전하였다. 근대 시민사회 출발의 계기가 된 프랑스혁명 때 3색기(三色旗)가 사용된 이후 하나의 깃발이 국가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속속 등장한 유럽의 근대 시민국가들에서는 자유 · 평등 ·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3색기를 모방해 나름의 국기를 제작 · 사용하였고, 현대 유럽 국가의 국기 대부분이 이때 제정되었다.

태극기가 대한민국 국기로 등장한 것도 이런 세계사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개항 이후 외국과 통상을 시작하며 국가 정체성을 상징할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 미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때 사용된 태극기 모습이 그 해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제작한 《해상국가들의 깃발》이란 책자에 ‘Ensign’기란 이름으로 실렸다. 또한 1882년 9월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배 위에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의 4괘를 그려 넣은 ‘태극 · 4괘 도안’의 기(旗)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전한다.

국기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한 고종은 1883년 3월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 · 공포하였고, 이후 태극기가 공식적인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83년 박정양 일행이 외교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에 갔을 때 호텔 숙소에 태극기를 공식 게양하였고, 1888년에는 미국 주재 조선공사관을 워싱턴에 개설하여 태극기를 국가의 국기로 사용하였다. 1893년 우리나라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여했을 때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며,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참여하여 한국관을 개설하고 태극기를 사용한 것이 당시 책자에 표현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기 제작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리지 않은 까닭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1942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기 형태를 일치시키기 위해 국기제작법을 제정한 적도 있으나, 한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태극기 제작법 통일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49년 10월 국기 제작법 고시를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후 여러 규정이 제정 시행되어 오다가 최근 국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완비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는 흰색 바탕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 개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기의 흰 바탕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순수성을 상징하며,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뜻이 있다. 태극문양은 우주 만물이 음과 양의 상호 작용으로 생성되고 궁극적으로 발전한다는 우주 자연의 생성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붉은색은 존귀와 양을, 파란색은 희망과 음을 나타낸다. 4괘는 음양이 생성, 발전한 모습을 표현하며, 천지일월, 춘하추동, 동서남북, 인의예지 4가지를 각각 조합한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는 우주 만물이 생겨난 근본 원리인 태극의 원리를 따라 제작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창조성과 궁극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태극기가 단순한 상징 차원에 그치지 않고 역사 현장에서 우리의 열망을 담아내는 통합과 공존의 상징으로 오늘까지 함께 해왔다는 점이다.

국기 제정 이후 태극기는 공식 행사에 국가적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1896년 11월 독립문 기공식에 대형 태극기가 등장하였고, 독립협회 활동에 태극기가 게양되며 국기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국기가 국가의 권위 및 국가 자체를 대표한다는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태극기가 국권 회복과 독립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자, 안중근 등 12명의 동지는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한 후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자 무명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고 쓰며 항전을 다짐하였다.

태극기의 의미가 독립운동사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이다. 3·1운동이 곧 태극기와 함께 준비되고 진행된 것이다. 수많은 학생 및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위해 각자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만세운동의 시위가 시작되면 맨 선두에는 대형 태극기가 앞장섰다. 태극기에는 독립에 대한 수많은 한국인의 열망이 글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독립선언서 및 시위 격문 등과 같이 태극기가 만들어져 전국으로 배포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제는 한국인이 태극기를 만들거나 지니고만 있어도 독립운동으로 간주하여 탄압하였다.

국권 상실 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태극기는 민족, 국권 회복 의식을 일깨우는 상징이었다. 국외 민족교육 현장에서 국기가(國旗歌)를 지어 부르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3·1운동 기념식에는 태극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상해의 한국인들은 매년 3월 1일 독립만세기념일 축하식을 거행한 후 태극기를 들고 시내를 행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설립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큰길에 세워 놓기도 하였다. 6·10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때도 태극기는 독립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에서도 태극기는 독립운동의 얼굴이 되었다. 이봉창은 1932년 의거 이전 한인애국단 입단 때 태극기 앞에서 한인애국단 선서문을 가슴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같은 해 4월 윤봉길도 거사 직전 자신의 집에서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양손엔 폭탄을 들고 가슴에 선서문을 걸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처럼 태극기는 국권을 상실한 국가를 의미하며 독립사명을 고취하는 상징이 되어 독립을 외치는 이들과 함께 하였다.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각종 기념식에 태극기가 등장하였고, 태극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였다. 태극기가 한국인이 있는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 현장에서 휘날렸다. 독립운동을 거치며 태극기가 국가 민족 독립의 상징으로 한국인의 뇌리에 깊이 인식되었다.

광복 이후 그 역사적 의미는 더욱 깊어져갔다. 광복 직후 개최된 3·1운동 기념식에서 태극기가 가장 높이 배치되었고, 전면에 내세워졌다. 각종 모임마다 태극기는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축하식에서도 태극기가 기념식장 가장 높은 곳에 전면으로 배치되었다. 국민은 태극기 밑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태극기는 6·25전쟁과 같은 민족적 비극의 현장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쟁 이후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재건하고 경제개발을 통해 땀을 흘려야 했던 그자리에도 국민과 함께 하였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의 근로자 등이 일터 현장에서 태극기를 보며 대한민국 국민임을 확인하고 자랑스러워하였다.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인 세일즈맨이 팔던 상품에도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열망을 담은 4·19혁명, 유신반대운동,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등에서도 태극기가 휘날리며 민주주의의 정신과 민주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감동적인 스포츠 현장인 올림픽에서, 2002년 한일공동 월드컵 현장에서도 태극기가 선수와 국민을 대한민국이란 울타리에서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태극기는 단순히 추상화된 국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다. 태극기에는 한국인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새로운 국가와 가치를 향해 함께 달려온 역사적 경험이 그대로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빈번히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넘어 역사의 현장에서 통합과 포용의 상징이 된 태극기를 보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찾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남상락 자수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86호 독립기념관 소장 견직물에 자수 1919 1919년 4월 4일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부인과 함께 명주천에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86호 독립기념관 소장 견직물에 자수 1919 1919년 4월 4일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부인과 함께 명주천에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88호 독립기념관 소장 견직물에 바느질 1941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1941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의 친필 묵서가 쓰여 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88호 독립기념관 소장 견직물에 바느질 1941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1941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의 친필 묵서가 쓰여 있다.

1-003722-000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89호 독립기념관 소장 면직물에 바느질 1945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이 1945년 2월경 동료 이정수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1946년 1월 문웅명이 다른 부대로 이임하자 동료 대원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을 남긴 태극기다.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94호 고영준(전남 담양) 소유 면직물에 바느질 1907 조선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不遠復’글씨가 수놓아져 있다.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94호 고영준(전남 담양) 소유 면직물에 바느질 1907 조선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不遠復’글씨가 수놓아져 있다.

SPECIAL FEATURE Artificial Intelligence & Art

정문열, 황세진 〈생명의 탄생〉 디지털 회화 2013

정문열, 황세진 〈생명의 탄생〉 디지털 회화 2013

인간과 기계의 창의력

정문열 |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최근 화제가 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는 기계가 인간과 같이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에 본 글에서는 인공지능 기계의 ‘창의력’과 인공지능 기계가 ‘미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직관력과 창의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며, 기계는 근본적으로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인공지능 바둑 기계 알파고가 세계적인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자 이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즉 기계도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지도록 설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입장이 가능해졌다 : 인간은 뛰어난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인간 고유의 능력만은 아니다. 기계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직관력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 바둑이 가능하다면, 인공지능 예술도 가능한가 하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인공지능 바둑보다는 어렵겠지만, 가능한 길이 있는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알파고의 영향과 평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자도 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전 대국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이 경기 결과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JTBC 방송에 나와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에서 “바둑이 아무리 복잡하다고해도 착점의 수가 유한하므로 빠른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파고는 프로그램일 뿐 지능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변호사는 알파고가 엄청난 컴퓨터 연산 능력을 이용하여 모든 수를 미리 다 두어보고 승리로 이끄는 수들을 미리 확인한 다음 착수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둘 수 있는 모든 수와 상대가 둘 수 있는 모든 수의 조합을 다 시도해 본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두는 것은 바둑의 원리를 마스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알파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둑을 둔 것이 아니며 이번 경기는 구글이 벌인 사기극이라 했다.

반면에 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에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란 글을 기고했는데 알파고 작동방식에 대한 그의 설명을 토대로 알파고의 착수 추정능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는 한 수에 평균 1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썼다. 바둑의 승패가 결정되려면 보통 200수 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는 현재 상황을 토대로 다음에 두고자 하는 수의 효과, 즉 이 수가 경기를 승리로 이끌 가능성을 추정해야 한다. 자신의 수와 상대의 수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시도해보는 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둑기사는 오랜 경험과 이에 근거한 직관을 이용하여 착수의 효과를 추정한다. 물론 알파고도 예외는 아니다. 알파고도 수많은 기보를 학습 데이타로 이용하여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을 학습하며, 다른 알파고와 많은 경기를 함으로써 그 능력을 개선한다. 각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으로 보았을 때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보다 못하지만, 수많은 컴퓨터를 동시에 이용하는 막강한 계산능력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전체적으로 프로 바둑 기사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착수의 효과를 추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추정능력이 없으면 계산능력을 아무리 보강하더라도 평균 1 분 안에 착수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알파고의 착수효과 추정능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관력과 창의력과 유사한 능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직관력과 창의력이 그렇게 신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인공지능의 한계

알파고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입장은 알파고의 작동 방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아주 빗나간 평가라 하기는 어렵다. 알파고의 지능이 동물이나 인간보다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몇 가지 점에서 살펴보면, 첫째, 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식이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를 잘 하는 인공지능 기계가 있다고 했을 때 자기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을 해설한 프로기사들은 알파고가 두는 어떤 수들이 파격적이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며 그런 수를 두게 된 알파고의 생각을 알고 싶어 했으나 알파고는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둘째, 현재 인공지능 기계는 외부 환경에서 발생되는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이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우리는 보통 정보라는 것이 외부 환경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유기체가 이를 단순히 집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기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외부의 신호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생성되고 분류되므로 그 전까지 외부 신호는 의미 없는 잡음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인공지능에서는 기계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생성하고 분류해준다. 사실 이 과정이 제일 어렵고, 이것이 해결되면 고급 지능을 구현하는 작업이 간단해진다. 셋째, 현재 인공지능 기계는 주어진 과업은 잘 수행하지만, 주변 환경이 조그만 달라져도 이에 대응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한계와 연관이 있다. 이것은 인공지능 기계가 주변 상황에 따라 외부의 신호를 자기에게 적합한 정보로 바꾸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계는 이 세상에서 생존하면서 진화할 수 없다. 특수한 과업은 거의 인간에 못지않게 수행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생존하는 능력은 원시적인 벌레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공생명

현재의 인공지능 기계는 프로그래머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특정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학습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생명체처럼 이 세계에서 생존하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유기체와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 이를 보완하고자 원시적이지만 생명 현상 자체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려는 연구 분야가 있다. 바로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이다. 인공지능의 한 지류로 볼 수 있지만 주류 인공지능 연구의 패러다임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인공지능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원시적인 기능만을 갖고 있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 가능한 벌레 로봇을 구현하거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생명체를 진화시킨다. 인공생명체의 진화는 유전체(genotype)가 돌연변이와 결합해 새로운 유전체로 변화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표현체(phenotype)가 가상공간에서 적자생존을 통해 선택되는 과정을 거친다. 인공생명 기술은 당장 실용적인 기계를 구현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

바둑처럼 정의된 문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면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되는 예술은 어떠할까? 이 분야는 아직 논쟁거리가 많이 있다. 대표적 이슈는 “기계가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가”, “인간의 미학이 형식화(절차화)될 수 있는가” “작품이 기계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예술작품이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술 창작에 정형화된 문제해결 방식인 전통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점이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예술을 시도하는 작가들은 보다 유연하고 생명체의 능력을 더 잘 반영하는 듯이 보이는 인공생명 기술을 이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생성예술이다. 생성예술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인공생명예술, 알고리듬 예술, 시스템 예술 등으로도 불린다. 생성예술에서는 이미지나 형태를 만드는 과정과 시스템 자체를 구현하는데, 이 과정과 시스템 자체를 예술작품이라고 보고 이것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나 형태는 예술 작품의 내면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과 시스템은 자율적인 변화를 나타낼 수 있도록 생물 진화 및 발생 과정과 비슷한 방법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수정란이 세포분열과 이동, 그리고 세포간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유기체로 발생되는 과정을 모방한 이미지 자동 생성 시스템을 구현한 바 있다. 생성예술은 아직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부모가 자식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의미가 반감되지 않듯이 작가가 스스로 작품을 생성하는 과정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신기함을 제공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각예술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표현했으나 점차 운동이나 움직임 자체에 관심을 가쳐 ‘키네틱아트’가 등장했다. 더 확장하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과 시스템 자체도 예술창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정과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인공지능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예술 창작의 대상이 이렇게 확장되면 인공지능기술이 예술가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

 

SPECIAL FEATURE Artificial Intelligence & Art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Davos Forum)에서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내뱉은 한 단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큰 변혁을 앞두고 있는지를 가늠케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4차 산업혁명”. 인류는 이미 빠르고 편리한 자동화 기기로 무장된 삶을 살고 있지만 더 나아가 가까운 미래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등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지능정보기술을 통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사회 전 분야에서 융합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분명 삶의 근본적인 체제와 사회적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이 모든 변화와 그에 따른 수많은 논의의 화살은 모두 ‘인간(人)’을 향한다는 것.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윤리, 철학, 법학과 같은 인간을 다루는 학문에 관심을 두며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과학과 미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전시, 교육, 포럼 등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
이런 상황 인식을 전제로 《월간미술》은 인간의 영역으로 간주해온, 이른바 ‘창의성, 감정적 교감, 직관적 판단’ 등에 주목해 “인공지능과 인간 그리고 창의성의 정수 ‘미술’의 관계”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전망하고자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공지능의 결과값을 창의성의 범주에 넣어야 할까? 창조행위의 정수는 미술인 것인가? 미술과 창의성의 개념적 재정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자칫 무모하고 답이 없는 논쟁처럼 비칠 수 있는 주제에 의견을 들어보고자 이 분야 전문가를 지면에 초대해 미술과 과학의 융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나름의 방향성으로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 및 인공지능 기술을 비롯해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한 작가들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금껏 우리가 예술이라 여겨온 영역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진행=곽세원 기자

하싯 아그라왈 〈탄뎀(Tandem)〉 구글 딥드림 라이브러리, pc(Ubuntu Linux OS), 터치모니터 2016 ⓒ Art Center Nabi

하싯 아그라왈 〈탄뎀(Tandem)〉 구글 딥드림 라이브러리, pc(Ubuntu Linux OS), 터치모니터 2016 ⓒ Art Center Nabi

머신러닝과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

최두은 | 아트센터 나비 겸임 큐레이터,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 예술 감독

이제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사가 새롭지 않다. 이러한 인공지능 창작물의 배경에는 빅데이터와 프로세싱 능력(processing power)에 힘입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및 딥러닝이라 하는 인공지능 분야의 혁신적인 도약이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다양한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 분류, 추론, 예측, 회귀의 과정을 반복하며 스스로 학습하고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게 되었다. 딥러닝의 최고 권위자 앤드류 응(Andrew Ng) 박사는 “인공지능은 마치 전기,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던 때처럼 지금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존의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넘어 서서 ‘예측 불가능한’ 공동의 창작자로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이제 막 시작된 인공지능 창작물에 대해 성급한 예술적 가치 평가를 하기보다는, 다양한 예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싯 아그라왈(Harshit Agrawal)의 〈탄뎀(Tandem)〉은 인간이 인공지능과 함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그림판이다. 구글의 머신러닝 기반 이미지 소프트웨어인 딥드림(DeepDream) 알고리즘의 일부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인간이 터치스크린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기쁨, 슬픔 같은 개인화된 감정 키워드를 선택한 후 구상화인지 추상화인지를 정해 ‘상상’ 버튼을 누르면 이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이 그림을 완성한다. 제목에서 시사하듯 인간과 기계가 짝이 되어 서로 다른 언어를 가르쳐주며 하나의 예측 불가능한 그림을 만들어간다.

만약 인간이 그린 그림에 인공지능이 음악으로 답을 한다면? 안드레아스 레프스가르트(Andreas Refsgaard)와 진 코건(Gene Kogan)의 〈두들 튠즈(Doodle Tunes)〉에서는 낙서가 악보가 된다. 참여자들이 종이 위에 악기를 그리면 이미지 데이터 베이스인 이미지넷(ImageNet)을 기반으로 훈련된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이 어떤 악기인지 분류해내고 라이브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 소프트웨어인 에이블톤 라이브(Ableton Live)와 연결하여 키보드, 베이스 기타, 색소폰, 키보드, 드럼 등 각 악기에 해당하는 음악 시퀀스를 가져와 실시간으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한다.

또한 딥 합성곱 신경망(DCNN: Deep 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이 도시의 패턴을 읽어내는 작업도 있다. 골란 레빈(Golan Levin), 카일 맥도날드(Kyle McDonald), 데이비드 뉴버리(David Newbury)가 제작한 〈테라패턴(Terrapattern)〉은 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이라는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후 구글의 위성 지도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한 도시 내 다른 지역의 지형들을 찾아주는 일종의 위성 이미지 검색엔진이다. 현재까지 뉴욕, 샌프란시스코, 피츠버그, 디트로이트, 마이애미, 오스틴 그리고 베를린까지 총 7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일반인에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의 흔적들을 인공지능의 시각을 통해 새롭게 보여주고 잘 드러나지 않던 특정 패턴에 관심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더해 현재 급속히 상업화 및 군사화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대안으로, 인도주의 단체, 사회운동가, 시민 연구자, 저널리스트 등이 지도상에서 인간적 · 사회적 · 과학적 · 문화적 의미를 갖는 유사 패턴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오픈 소스로 제공한다.

〈테라패턴〉이 지도가 예술이 되는 작품이었다면, 예술작품을 재료로 새로운 가상 지도를 만들어내는 작업들도 있다. 시릴 디안(Cyril Diagne)의 〈티-스니 맵(T-SNE MAP)〉은 수천 점이 넘는 예술작품을 티-스니 알고리듬(t-SNE algorithm)을 활용해 다른 메타 정보와 상관없이 시각적 유사성에 따라서만 분류하고 비슷한 이미지들이 가까이 있도록 배치한다. 관객들은 이 새롭게 생성된 무리 안에서 다른 시각으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며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마리오 클링에만(Mario Klingemann)의 〈엑스 디그리오브 세퍼레이션(X Degree of Separation)〉은 관객이 두 점의 작품을 선택하면 두 작품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단계별로 다른 작품과 이어가며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에 이르는 관계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렇게 이어진 관계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재미(serendipity)’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편,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현재의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들도 있다. 신승백, 김용훈의 〈동물 분류기(Animal Classifier)〉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The Analytical Language of John Wilkins)’에 기술된 독특한 동물 분류법을 이용하여 머신러닝에서의 분류의 모호함에 대해 말한다. 어떠한 기준점도 찾을 수 없는 총 14가지로 동물을 구분한다. 각각의 모호한 분류 항목에 맞추어 작가들이 다시 한 번 임의로 선택해서 분류한 초기 이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가 학습하고 찾아낸 이미지들이 14개의 모니터에 나타난다. 인공지능 분야 중 비교적 정확도가 높다는 이미지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최초의 자의적 분류법에 작가적 임의성이 더해져 모호한 결론에 이른다. 분류의 문제와 더불어 인간의 개입에 의한 데이터의 왜곡성과 편향성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양민하의 〈해체된 사유(思惟)와 나열된 언어(The Listed Words and the Fragmented Meanings)〉는 인공지능 분야 중 가장 불완전하다고 하는 언어 학습(language learning)의 문제를 다룬다. 장단기억 순환신경망(LSTM RNN: Long Short-Term Memory Recurrent Neural Network)을 사용하여 기계가 자아를 지니면 어떤 행동을 할지 탐구하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텍스트를 학습시킨 후 ‘사유의 언어’를 생성해내는 작업이다.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 등이 저술한 총 9권의 책에서 약 35만 문장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생성해낸 언어는, 문장으로서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의미적으로는 해체되어 있다. 저자들의 각기 다른 글쓰기 방식과 아직 충분하지 않은 데이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공지능 중에서도 최신 상급 신경망 중 하나인 장단기억 순환신경망을 쓰는 이 작업을 위해 작가는 기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를 정렬하는 매우 단순한 노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활발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 아직까지는 인간의 초기 데이터 입력, 분류, 감독, 평가 등의 도움 또는 개입이 필요한 것 또한 현실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예술의 존속 가능성은 인간의 도움 또는 개입이 얼마나 진정하고 창의적이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여기에 예시된 작품 대부분을 소개한 아트센터 나비의 전시 제목이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현재 인공지능 예술의 한계 원인이 인공지능이 학습할 양질의 관련 데이터 부족 혹은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인공지능이 예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숙련되기 위한 절대 시간 부족에 있다면 근미래에 예술이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티-스니 맵〉과 〈엑스 디그리오브 세퍼레이션〉 모두 구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구글은 현재 전 세계 문화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방대한 양질의 예술 관련 데이터를 축적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가들과 구글 엔지니어들이 함께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알파고처럼 한 가지 특별한 분야가 아닌 인간처럼 종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 강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완성을 위해 지금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돌파구를 예술가의 특별한 상상력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예술가의 창의력은 도전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시대적 필요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만약 인공지능 예술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예술가들을 위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for Artists)’이라는 사이트를 추천한다. ●

 

SPECIAL FEATURE Cody Choi + Lee Wan & Lee Daehyung

의외의 연속이었다.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도, 또한 그곳을 장식할 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이 선정됐을 때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장소에서 최고의 화학반응을 일으켜야할 큐레이터와 두 작가를 엮을만한 요소가 언뜻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간미술》이 그들을 만났다. 그 자리는 의외의 시간이 아닌 그들은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으로 이어졌다. 그 필연은 올해 한국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지.

그들이 만나다

황석권 | 수석기자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되고 참여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발표했을 때 국내 미술계의 반응은 대부분 ‘의외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는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 이미 절반은 그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와의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관을 책임질 큐레이터 후보군이 발표되고, 그들이 최종 선정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에 포함시킬 작가는 현장 전문가라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대형 큐레이터가 최종 선정됐을 때, 미술계는 이 세 사람이 어떤 인연이었을까 검색하기에 바빴을 터인데 그 단서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월간미술》은 2017년 한국미술계가 가장 주목할 이들 3인을 만났다.

우선 시점을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당시로 되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6인의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작가 선정에 앞서 꼬박 일주일 동안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의 지난 20년간의 큐레토리얼 계보를 연구했어요. 본전시라는 큰 물줄기를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거리 두기를 해나간다면 한국관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이대형) 크리스틴 마셀이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내세운 주제는 〈Viva Arte Viva!〉다. 말 그대로 “예술 만세”다. 이에 현대미술 창작활동의 주제인 미술가, 미술가의 작업과정, 미술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역할이라는 인문적 측면을 재주목해 보겠다는 의미다. 이 큐레이터는 이런 질문에 질문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저자의 문제’, ‘몸 그리고 개인의 역사’,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거대한 물리적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된 형식’으로 작품을 표현해왔는가?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실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사실과 픽션이 혼재’하는 시대적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가? 재료와 의미의 ‘혼성교합’을 통해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가? 사회, 정치적 맥락과 역사적 이벤트를 비평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다양한 의미의 레이어’를 부여해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가? 특히 서구 비평가들, 큐레이터들이 시도하지 않은 ‘한국과 아시아 모더니즘의 문제’를  실증적인 태도로 보여줄 수 있는가?” 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 먼저 포착된 작가가 바로 이완이다. “비엔날레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메이드인(Made in)〉 연작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있었어요. 놀랐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작업이 세계 미술계에 선보이는 점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완)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모더니즘을 보여주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총감독이 아시아의 역사를 재방문하려는 기획의도를 내세운 방향성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작가가 만난 수많은 아시아 사람의 삶을 통해 이론이 아닌 현실로서 모더니즘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원래 전시는 2인전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아시아의 모더니즘과 더불어 한국의 모더니즘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 여기서 이완 작가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100여 년 전 살았던 한 실존인물(‘Mr.K’로 명명했다)의 사진이 담긴 나무상자를 황학동에서 5만 원에 구한 이완 작가가 이로 상징되는 ‘귀신(鬼神)’을 끌어들이자는 내용이었다. “일제시대?한국전쟁?산업화 과정을 관통하는 실존인물의 삶을 단돈 5만원에 길거리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에피소드가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의 역사와 근대화가 얼마나 쉽게 버려지고, ‘헐값’에 거래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하지만 곧 아시아와 한국의 100년이라는 극한 속도감을 묘사하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 그래서 하나의 가족 계보를 만들기로 했고, Mr.K로 대변되는 ‘할아버지’, 이완 작가로 상징되는 ‘손자’ 사이에 ‘아버지’ 격으로 코디 최 작가가 전격 합류하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문화적 불균형의 문제를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탐구해왔고 2015년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에서 시작된 대규모 회고전을 유럽 여러 국가 미술관에서 순회하고 있는”(이대형) 그다. “전혀 모르던 이 큐레이터의 전화를 받고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죠. 30년 넘게 해외에서 활동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미대를 나오지도 않은 (인맥도 소소한) 나에게 왜? 이제 곧 환갑을 맞는 나에게 왜? 또 함께 전시에 참여할 이완 작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말 그대로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었죠. 하하“(코디 최) “코디 최 작가에 대한 한국 주요 큐레이터, 작가들의 평가와 해외 비평가나 저널리스트, 큐레이터들의 평가가 상반되었어요. 1990년대부터 낸시 스펙터(Nancy Spector), 앤 패스터낵(Anne Pasternak), 그레고리 얀센(Gregor Jansen), 존 웰치만(John Welchman), 필립 베르네(Philippe Vergne)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온 코디 최를 한국에서는 잘 모르거나, 평가절하하거나, 심지어 터부시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됐죠.”(이대형) 편협한 인식에 일종의 오기도 일었으리라. 이런 과정을 거쳐 짜여진 진용으로 2017년 자르디니 공원 한국관을 접수할 수 있었다.

전열이 갖춰졌다. 이에 큐레이터와 참여작가 2인의 생각이 펼쳐졌다.

이완이 말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4〉에서 수상을 계기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긴 했지만 이완 작가의 작업은 자본주의와 노동이라는 문제에 천착한 맥락성이 매우 견고하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출품될 작품도 〈메이드인〉 연작에서 비롯된다. 이미 작업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그 단서는 던져졌다. “〈고유시(Proper time)/부제: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김수영〉을 위한 자료로 쓰입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메이드인〉 시리즈와 연결되는 본 작품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됩니다.”(설문조사를 위한 서문 중)
〈메이드인〉 연작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2005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게 됐지?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지? 내가 왜 태어났지? 꼬리를 무는 질문은 점차 본질적 내용으로 채워지더군요. 〈메이드인〉 연작도 마찬가지예요. 마트(mart)라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 역사에 대한 관심,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구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질문이 작업을 낳았죠.” 이 작가는 일상생활의 동선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임을 인식했을 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메이드인〉 연작은 이와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소비자이니까 구매만 하면 끝이잖아? 이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최후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최초의 생산자가 될 방법을 생각했고 닭고기를 사서 야구공으로 만든 작업을 선보인 거죠.” 작가는 일전에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개인의 무모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대 경제체제에 반하는 행위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기 위해 그가 택한 방식은 ‘비효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타이완에서 2달, 태국에서 1달 반,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 1달간 생활했다. 미얀마에서는 순금 3g을 얻기 위해 도심에서 1000km 떨어진 탄광에서 일했다. 그 금은 서울에서 15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동네 마트에서 몇 천 원이면 구할 수 있는 설탕을 위해 대만에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결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하려면 공부가 필요했다. 실제 경제학, 마르크시즘 등을 공부했고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메이드인〉 연작 이후 〈뱅크〉 연작을 하게 됐죠. 앞서 말한 제조사는 결국 주식으로 구성된 것이 실체가 아닌가 싶었어요.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다 보니 실제 주식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죠.” 모두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고 파악하기 위해 시행되는 프로젝트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시한 〈고유시〉는 제목에 이미 작품의 복선이 깔려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전 세계의 ‘개인’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노동에 쓰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라는 말이 작품의 내용이 될 것이다. “고유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개념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두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의 차이가 생기지만 두 대상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각자의 노동시간과 불균형에 대해 누구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작업은 전 세계인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시간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이뤄진다고. 이를 설명하며 공개한 그의 노트는 마치 수학연습 노트 같았다. 그리고 이완 작가는 작품에 대해 여기까지 말했다.

코디 최가 말하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코디 최 작가의 일상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곳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가치만 선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학생과 달리 자신은 이곳에서 정착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결과는? 미국인이 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도 그가 기대한 바대로 흘러가진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가 큰 갈등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최근에 생각해보니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이런 라이프 프로그램이 진행됐구나 싶었어요. 제안을 받고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내 삶이니깐 충돌의 지점을 작품화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양상의 갈등과 충돌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 강의를 하면서 꼭 비엔날레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했었어요. 비엔날레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었죠. 비엔날레 시스템부터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비엔날레에 출품을 한다?” 난처한 시간이 흘렀고 코디 최는 예전에 그가 들었던 존 발데사리와 한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렸다. “발데사리가 ‘작가의 삶은 3가지가 필요하다’라고 합디다. 첫째는 작가적 기질, 즉 재능, 둘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작가라는 믿음, 세 번째가 바로 타이밍. 이건 언제 올지 모른다더라고요. 그러니 이 기회가 그가 말한 타이밍이 온 것이라면 내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 타이밍(베니스 비엔날레)을 둘러싼 충돌과 갈등이었죠.” 그리고 결정했고 작품에 대해 고민했다. 바로 지금의 베니스를 만든 여러 역학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베니스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격년제로 진행하며 관광객을 모으고 돈을 버는 도시예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마디로 미술(예술)이 자본(돈)과 관광(대중의 눈요기)과 결합하는 곳이죠. 이 결합은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데 베니스라는 물리적 공간은 지형정치적(geo-political) 역학관계가 만든 모순을 안고서 이 시대 미술의 한계와 혼란을 몸소 보여주고 있어요.” 이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작가 대부분이 보여주는, 그리고 코디 최 스스로도 느꼈던 예술적 모순과 한계점을 건드려볼 참이다. 사회정치적으로 기여하려는 작업을 하면서 예술의 본질을 파괴하는 그 모순 말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나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해 총을 쏘고 싶은 거죠. 하하.”
그러면서 코디 최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예술가가 인식하는 베니스의 메커니즘’ ‘이중교배의 모순이 만든 거대한 지형정치’ ‘모든 예술가가 식민화된 글로벌 예술의 모순과 한계.’ 코디 최가 제시한 키워드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보면 우선 작가는 미술의 진보와 예술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기여에 대해 강박을 갖게 되는데 그에 비해 관람객은 관광객의 마인드와 유사하다. 이 독특하고 상반된 메커니즘의 매개체는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과 ‘관광’, ‘자본’이 만나 독특한 지형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는 경제전체주의 강화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은 글로벌 예술시장에 걸맞은(거래가 되는) 작품을 예술의 파괴를 주창하며 만들어내는데 여기에서 얻어지는 화상(?商)들의 극찬은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경제가치에 부합하는 작업에 종착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시 모여 이야기하면

“코디 최가 실제 자신의 경험(아픔, 상실, 분노 등등)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집요한 학술적 연구와 분석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문화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근원을 찾는다면, 이완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원에 접근한다. 코디 최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를 제시한다면, 이완은 다양한 파편을 긁어모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보인다.”(이대형) 이러한 차이를 간략히 말하면 집중하는 지점이 작가의 개인사냐 시스템이냐이다. 코디 최는 “이번 전시는 ‘자본주의’라는 큰 틀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 큰 틀만 맞으면 우리는 서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몰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완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1990년대 초기 제가 벌인 작업을 보면 이완 작가의 작업과 프로세스나 표현에서 다른 시점이긴 하지만 비슷한 점이 보여요. 한국에 발표되지 않은 작업이 좀 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중력과 하이힐(서구 여성의 신발)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박사와 공식을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코디 최)
서로 다른 양상을 띠는 작가의 작업이 한곳에 전시된다. 그곳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케미가 만들어질지, 아니면 불협화음을 내며 파국을 맞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인터뷰 내내 큐레이터와 작가, 작가와 작가 사이는 그 분위기가 요즘말로 너무나 ‘달달’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장소를 양보하고, 상대 작가에게 작품 제작에 드는 비용을 더 얹어주려 배려했단다. 작가로서 욕망이 우선 아니냐며 몇 가지 이간질(?)을 유도하는 질문을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서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두 작가였다. 코디 최는 인터뷰 중간에 이완에게 “아 맞다. 고마워. 좋은 작업해줘서. 이 말을 꼭하고 싶었다”고 깜짝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관을 작은 통로로 연결된 3개의 어항으로 생각했다는 이대형 큐레이터. 자신의 공간은 지키지만 같이 호흡하는 3명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번에 모이는 회의도 열지만 각 작가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회의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들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두 분 작가는 서로의 작업을 꼭 50%만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견고한 작품이 구축됐을 때, 나머지 50%를 알 수 있게 칸막이를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그 칸막이는 아무래도 5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일에 치워질 것 같다. ●

SPECIAL FEATURE The Grand Tour 2017 of Europe Big 5

미리보는 2017 유럽 그랜드 투어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전 세계 미술인의 시선이 다시 유럽으로 모아지기까지 말이다. 올해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57th Venice Biennale, 5.13~11.26)를 필두로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4, 4.8~7.16(그리스 아테네)/6.10~9.17(카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6.10~10.1), 터키의 이스탄불 비엔날레 (15th Istanbul Biennial, 9.16~11.12) 그리고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14th Lyon Biennale, 9.20~12.31)가 열린다.
그 이름으로도 세계의 미술작가는 물론 미술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빅 이벤트들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2017년 신년호 특집기사를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 5건에 대한 프리뷰로 꾸몄다. 각 대회의 전반적인 내용과 전시주제에 대해 소개한다. 카셀 도쿠멘타와 이스탄불 비엔날레 총감독 인터뷰도 성사시켰다. 보다 심도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은 출품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선정하고 현재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가 한국관의 청사진을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10년 만에 동시에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를 통해 동시대미술 변화의 양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올해 미술계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 미술 빅 이벤트를 한 해에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한 인간의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행=황석권 수석기자

문화전쟁의 또 다른 차원

유진상 | 계원예대 교수

문화전쟁이라는 표현은 종종 정부의 대외 문화 콘텐츠 정책이나 기업/관광분야의 국제적 콘텐츠 마케팅 및 프로모션 같은 내용을 다룰 때 튀어나오는 표현이다. 국가 차원의 홍보 비즈니스에 초점을 둔 이 표현은 동시대예술과 관련해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첫째 문화전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사회, 역사 이슈들에 대한 철학적 조망을 포함한 가장 상위의 논쟁과 도전들을 가리킨다. 둘째로 문화전쟁은 이러한 상위의 전장에서 지식인과 예술가 집단이 가장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세계 내에 투영하고 관철시키는 ‘가치의 전쟁’이자 ‘정신적 수월성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세 번째는 문화전쟁은 이러한 논의의 전장에서 각각의 국가나 이해 집단들이 자신들의 명분을 드러내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투여하는 사건이 되었다.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영역들 가운데 가장 ‘심화’ 단계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동시대미술은 이미 가장 비대중적(non-popular)이고 철학적인 기여들로 채워진 지적인 역동성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향을 분명하게 반영해온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같은 초국가적 거대 전시다. 2년이나 5년 간격으로 벌어지는 이 행사들은 약 20년 전부터는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당대의 모든 이슈와 쟁점에 대한 토론과 미학적 전위, 교육과 출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들로 발전했다. 여기에 10년 간격의 독일 뮌스터 공공조각프로젝트가 같은 시기에 열리면서 우리는 동시대미술에서 일어나는 문화전쟁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을 접하고 있다.

베니스-카셀-뮌스터로 이어지는 ‘그랜드 투어’(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의 귀족들이 반드시 치러야 했던 통과의례와도 같은, 유럽을 가로질러 이태리로 가는 여행)에 금년에도 수많은 한국인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바젤아트페어를 비롯한 여름 시즌의 주요 전시들까지 포함하면 동선과 일정은 더욱 길어진다.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한국인들이 거의 해외에 나서지 못했지만, 2007년 ‘그랜드 투어’ 때에는 오프닝에 맞춰 베니스, 카셀, 뮌스터를 잇는 여정으로 한국 방문객이 300백 명 가까이 찾았다. 상당수가 국내 미술관 아카데미 회원이거나 현대미술 테마투어에 참여하는 애호가들이었는데 이들이 버스로 이동하면서 카셀이나 뮌스터 같은 소도시에서는 호텔 방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국인들이 붐볐다. 오프닝 기간의 호텔 예약은 1년 전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년에도 이미 상당수 호텔의 예약이 마감되었을 공산이 크다. 유감인 것은 2007년에는 중국과 일본 작가 수십 명이 이들 전시에 초대받았음에도 한국 작가는 베니스 한국관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이 대규모 전시들에 참가하지 못했던 점이다. 오프닝의 수많은 한국인은 다른 나라 작가들의 전시 오프닝을 빛내주러 그 먼 여행을 한 셈이다. 도쿠멘타 경우에는 1977년부터 참가한 백남준과 1992년의 육근병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2년 20년 만에 양혜규와 문경원/전준호가 초대를 받았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얼마나 초대되었는지는 참여작가 리스트가 공개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번 ‘그랜드 투어’까지 한국 미술계는 이 최상위 무대에서 구경꾼 신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작가의 존재를 알릴 전문가의 활동이 부재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제적 ‘문화전쟁’의 수준에서 쟁점들을 드러내고 발화시킬 작업을 보여줄 작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카셀 도쿠멘타의 예술감독은 2014년까지 10여 년간 바젤 쿤스트할레 관장을 역임한 폴란드 출신의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다. 그는 이번 도쿠멘타의 주제를 ‘아테네로부터 배운다’로 정했으며 행사도 아테네와 카셀에서 함께 열린다. 유럽과 세계가 출구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에 빠졌다는 전제하에 이를 헤쳐 나가는 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으로서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인 아테네를 다시 소환한 것이다. 2012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로저 브뤼겔(Roger Buergel)과 루스 노악(Ruth Noack)이 총감독을 한 2007년의 12회 전시에서는 〈형태의 이주(Migration of Forms)〉라는 주제로 총감독의 주관적인 미학 관점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카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arolyn Christov-Bakargiev)가 총감독을 맡은 13회 전시는 〈붕괴와 회복(Collapse and Recovery)〉이라는 주제로 글로벌한 시대적 이슈들을 다루었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몇 개의 주문형 상주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카셀 현지에서 진행한다던가, 이제까지 다루어진 적 없는 급진적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연출하면서 전시 규모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도쿠멘타 특유의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퐁피두센터 내 현대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해 온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예술감독을 맡는다. 아직 전시 주제가 발표되지 않아 구체적인 방향을 알 수 없지만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인종, 난민, 테러, 극우, 유럽의 분열, 전쟁의 공포와 같은 시의적 이슈들이 함께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2015년에는 오쿠이 엔위저가 〈세상의 모든 미래들(All the World’s Futures)〉이라는 주제 안에서 발터 벤야민과 마르크스가 미래를 향해 투사했던,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세계관을 다루었으며, 2013년에는 마시밀리아노 지아니가 〈백과사전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이라는 주제로 지식과 꿈의 실현, 유토피아에 투영된 인류의 열정에 대해 다루었다. 이 두 예술감독은 모두 근래에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만큼 한국 작가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크리스틴 마셀은 지금까지는 한국과 협업한 적이 없는 만큼 어떤 한국 작가들이 참가하게 될지 궁금하다.

1977년에 시작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카스퍼 쾨니히(Kasper Konig)가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으며 10년마다 열리는 전시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뮌스터는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바 있고 아테네, 로마 등과 함께 ‘유럽 역사유산(European Heritage Label)’에 오를만큼 유서 깊은 도시이며, 대학생 수가 6만 명에 달하는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공공조각을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실현에 옮기면서 뮌스터는 일본의 에치고 쓰마리를 위시하여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공공조각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에서도 안양조각축제를 비롯하여 뮌스터를 모델로 한 공공조각 프로젝트가 다수 이루어져 왔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멋있게 낡은, 신나게 젊은(Enchantingly Old, Excitingly Young)〉이다. 40년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통해 설치된 지 오래된 작품들과 새롭게 설치된 작품들의 조화와 역사적 공존이 강조된 표어라고 하겠다.

바젤아트페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아트페어라기보다는 바젤이라는 도시 전체가 만들어내는 예술적 프로그램들의 오케스트라가 방문의 내용이다. 바이엘러 미술관, 샤우라거, 쿤스트할레, 비트라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수준 높은 전시프로그램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리스테, 볼타, 스코프 등의 중소 아트페어들까지 보자면 며칠이 걸리는 일정이 된다. 게다가 바젤아트페어 부대행사인 언리미티드와 매번 새롭게 제안되는 프로젝트 및 강연들은 가히 매년 열리는 중소 비엔날레급 행사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다. 개막 시기로 보았을 때 프리뷰/오프닝 행사는 베니스 비엔날레 5월 10~12일, 도쿠멘타 6월 8~9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6월 10일, 아트바젤 6월 15~18일 순서로 열린다.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영역의 역할이 커져가는 동시대미술의 장에서는 유럽의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미술관과 이러한 초국가적 거대 전시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예술제도의 틀이 어느 때보다 공공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고급문화예술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주도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권 내부에서 그러한 역량과 자원을 쌓아야 한다. ‘문화전쟁’을 콘텐츠와 시장의 주도권 싸움으로 국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준 낮은 생각이다. ●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8

옛날 음악을 들으러 갔다

집에 있던 J의 오래된 턴테이블을 작업실로 옮겼다. 뽀얗게 먼지가 앉은 LP판들도 박스에 담아왔다. 오랫동안 내버려둔 물건이라 제대로 소리가 날까 모르겠다. 망가진 바늘칩을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 카트리지를 이리저리 움직이니 플래터가 뱅글뱅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무 판이나 꺼내서 얹었다. 존 덴버가 희생양이 되기로 했다. ‘퍼햅스 러브’. 존 덴버의 미성이 매끄럽게 뻗어나가면 플라시도 도밍고가 바이브레이션 바리톤으로 중후하게 이어가는 그 노래.
판이 돌아가자 클래식 전주부터 울렁울렁하더니 존 덴버의 미성은 어디 가고 테이프 늘어진 노랫소리를 뱉어낸다. 존 덴버가 머쓱해할 만큼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벨트가 늘어진 모양이다.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버튼을 눌러보고 카트리지의 이음새를 살펴보고 여러번 돌려보니 본래의 속도를 찾아간다. 존 덴버의 울렁증도 줄어들었다. 그제야 나는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종이재킷에 든 LP들을 박스에서 꺼낸다.
“세상에! 이게 언젯적 물건이야!”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 폴 모리아 앙상블의 추억의 영화음악, 1980~1990년대 유행했던 음악들이 뛰쳐 나온다. 들국화, 015B, 이문세, 팻 매스니, 비틀스 베스트, 퀸, 조지 마이클, 그리고 유재하.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서 영면에 든 유재하. 그 빛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뭉클한 시간이 흘렀다. CD의 선명한 음질과 다른,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하면서 조금은 느린 사운드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나 ‘여행스케치’처럼 낭만이 풀풀 쏟아지는 이름들 앞에서는 그만 머쓱해진다. 직경 30cm짜리 재킷을 더듬어보니 엉성한 레이아웃과 강렬하지만 빛바랜 컬러가 눈에 안긴다. 지금의 산뜻함, 세련됨과는 다른 손맛 나는 물건이라고 해두자.
1990년대의 풋풋한 대학생 밴드인 ‘015B’는 혜성처럼 등장했었지. 보컬 윤종신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없이 맑고 곱다. 나는 무한궤도의 신해철을 더 멋진 아티스트라 여겼지만 윤종신의 감미로움을 멀리할 수는 없었던 기억이 난다. 20년 전에 말소된 소리들이 기억처럼 퍼져나온다. 음악은 기억과 접목되어 있다. 지금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 내 몸이 떠오른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나, 혹은 우리. 영화 <더티 댄싱>의 사운드 트랙은 영화보다 아름다웠다. ‘헝그리 아이즈’의 신나는 리듬, ‘쉬 라이크 더 윈드’의 나긋한 발라드. 리듬이 분명하고 흥겨운 가사가 명쾌하다. 그땐 음악이란 들으면서 몸을 흔드는 거였다. 어쩌면 온몸을 관통하는 감미로운 ‘음악의 시대’였다. 지금과는 다른 음악의 시대를 살아왔던 것 같다.
턴테이블을 가져다두었다고 하니 친구들이 구경하러 왔다. LP를 모으고 듣던 세대들이라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책장 어딘가에 꽁꽁 싸인 채 꽂혀 있던 LP들, 그러나 아무렇게나 처분할 수 없는 것들을 작업실에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나하나 꺼내서 먼지를 닦아내고 플래터에 올리면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 잠깐의 무음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영화가 시작된 직전의 암전에서 느끼는 기대감과 같다고 할까? 아날로그 시대의 음악이란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검은 비닐을 고르고, 먼지를 닦고, 바늘을 제자리에 두기 위해 움직이고 바늘이 검은 홈 사이의 굴곡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 굴곡의 신호가 모여 음악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되기 전 약간의 쉼표, 두어 마디 정도 튀거나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감수하는 것. 수고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들은 더 큰 아름다운 무언가를 돌려준다.
한번은 J가 LP가 한가득 담긴 상자를 들고 왔다. 오래 알고 지내던 선배의 LP라고 했다. 그는 하던 일이 잘 안 되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야 할 상황이었다. 오죽했으면 낡은 LP까지 모두 꺼냈을까. J는 LP 상자를 홍대 앞 중고 LP가게에 가져갔다. 가게에서는 이유를 대며 선배의 LP를 구입하지 않았다. J는 미안한 얼굴로 묵직한 상자를 선배에게 도로 가져갔다.
“차라리 다행이래.”
그날 저녁 J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옛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데 그것마저 모두 팔렸다면 얼마나 쓸쓸했겠냐며.”
LP 상자를 다시 받아들고 안심했을 선배를 생각하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버릴 수 없는 추억이 있음을 알겠다. 먼지가 자욱한 다락 한 켠에 놓여있더라도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어서 우리의 슬픔은 줄어드는 지도. 무용해 보이지만 간절한 물건들이 있다. 이 물건들은 삶의 드라마를 하나씩 품고 있다. ●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The Soul of Money DOX. Foto Jan Slavik 08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돈의 영혼> 전시 광경 2016 ⓒ DOX. Photo: Jan Slavik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맨 왼쪽) 캔버스에 납화 187×532cm 2013

자본주의 돈의 민낯

박진아 미술사

지난 2011~2012년 피렌체 팔라초 스트로치에서는 <돈과 아름다움-은행가, 보티첼리, 허영의 모닥불>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창조된 미술과 아름다운 도시와 문명의 뒤엔 돈과 권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독일 드레스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죽은 자들의 슈퍼마켓전전>(2015.3.14~2015.6.14)은 상품을 향한 현대인의 열망을 물신주의라 꼬집었다. 최근에는 독일 바덴 시립 쿤스트할레에서 <좋고도 나쁜 돈-그림역사로 본 경제(Gutes boses Geld)전>(3.5~6.19)이 개막해 고대부터 현재까지 돈이 미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같은 추세를 몰아 올 초 체코공화국의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DOX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개막한 <돈의 영혼(The Soul of Money)전>(2.19~6.6)은 현대인에게 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주제로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한다.
체코인들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웅장한 이데올로기와 거창한 구호는 매번 외부 침략자들이 지배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쓴 거대한 속임수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현대미술센터의 설립자 겸 관장인 레오쉬 발카(Leo? Valka)는 미술관 이름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어휘인 독사(doxa)-또는 억견(臆見) 즉, 아무도 반문하지 않고 맹종되는 여론이나 신념-에서 따와 독스(DOX)라 짓고 미술전시회를 통해 우리 안의 억견을 뒤흔들고자 한다. ‘돈의 영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에서는 돈이라는 억견을 현대미술 작품들을 통해 조명한다.
과거 유럽의 교권과 궁정 권력자들을 위한 미술에서 나치, 공산주의를 위한 구호와 프로파간다로서의 미술은 모두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이었다. 근대가 동트던 1903년 빈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중유럽권 최초의 공공 미술관인 근대갤러리(Moderne Galerie)를 프라하에 설립했다. 오랜 절대주의 통치에 반발하며 유럽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불거지던 당시, 신세계의 신시대를 준비하며 근대적 개념의 미술관과 화랑을 설립해 문화로 여러 민족과 국가를 달래고 아우르려는 소프트파워 정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건대, 인생의 당연지사이자 만능 해결사인 돈을 주제로 한 도전적인 미술전시가 등장한 배경에는, 체코가 지난 한 세기 지구상에서 벌어진 온갖 이데올로기, 정치 체제, 국경 변화의 격동과 수난을 겪으며 헤쳐온 저력이 지탱하고 있는지 모른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이 붕괴되자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해 그 공백을 메우면서 나치가 침략한 1938년까지 20년 동안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로 다시 편입됐다. 1989년 동서독의 통일과 함께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후 다시금 중유럽권 독립국가로서 서방세계로 진입한다. 이렇듯 숨 가쁜 근현대 역사를 경험한 체코 공화국은 근대기 공산주의 체제의 유산을 안은 채 2004년부터 유럽연합 정치체제 및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사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미술은 창조되고 존재한다. 하지만 그 미술이 교환의 일부분이 되려면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신념, 협상 그리고 어느 정도의 조작의 결과이며 그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미술전문가, 딜러, 화랑업자, 큐레이터, 경매인 같은 중개인이 활동한다. 여전히, 아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미술관 기관과 화랑업계 대다수는 미술시장에 참여하거나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며 돈에 대한 억견에 힘입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덩달아 문화계에서도 돈은 막강한 권력으로 세도를 부린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와 더불어 교권과 궁정 귀족에 봉사해 오던 유럽 미술은 드디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새 기치 아래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미술을 접고 미술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적인 창조력을 주창했지만, 여전히 미술가들은 돈을 가진 후원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이 그 누구도 의문시하지 않는 만능 수단이 된 오늘날, 미술 역시 많은 돈을 가진 자에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한 게 아닐까? 미술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미술작품에 매겨진 가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권력자 후원의 수혜자였던 근대기 이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던 미술가의 위상은 달라졌나? 미술작품에 붙을 가격표는 미술가가 아닌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 않은가?
2008년 10월 공식 개장하여 대중관객에게 문을 연 DOX 현대미술센터는 프라하 남동쪽을 끼고 흐르는 블타바 강가 홀레소비체(Hole?ovice)라는 교외에 위치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지어졌다 폐허가 된 옛 공장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이 미술관 근처에는 프라하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프라하 국립미술관(Narodni galerie v Praze)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DOX는 벌써 지난 몇 년 홀레소비체 구역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추세를 이끌며 특히 문화와 영미권 신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오가는 새로운 힙스터 구역으로 탈바꿈했다. 글로벌 표준형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에서는 커피체인 스타벅스와 진배없는 미국풍 커피와 분위기를 팔고, 거리 매장에는 세련된 패션 부티크, 서점, 작은 공연장,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속속 들어서며 문화 소비욕구에 맛들인 젊은이들과 해외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황량히 버려졌던 과거 제국시대의 허름한 공장 건물들은 냉전기 공산주의 시대엔 노동자들의 일터가 되었다가 이제 21세기 미술문화가 기획되고 전시되는 미국식 글로벌리즘 ‘문화 공장’으로 다시 한 번 재탄생하며 호불황이 교체하는 불변의 경제 순환(boom and bust cycle) 원칙과 교훈을 상기시킨다.
<돈의 영혼전>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정의한 돈에 대한 세 가지 시점을 빌려, 즉 첫째 돈을 상업적 용도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실리적 시각, 둘째 돈이란 노동의 양을 환산한 심볼이라 여기는 고전 정치경제학적 시각, 셋째 상품의 가격은 장내 공급과 수요의 반영이라 여기는 신고전주의적 시각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작가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는 캔버스에 왁스를 발라 제작한 초대형 10파운드짜리 영국 지폐 속에 묘사된 영국 여왕의 두상은 환상적으로 반짝이며 비록 한 장의 종이로 보일지 언정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숭배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동독 출신의 큐레이터 겸 컬렉터인 볼프강 셰페(Wolfgang Scheppe)가 직접 기획하고 전시한 설치작 <죽은 자의 슈퍼마켓(Supermarket of the Dead)>은 돈과 럭셔리 상품을 향한 중국인들의 못말리는 물신주의(fetishism)와 무분별한 소비주의를 꼬집는다. 동경하는 물건 모양새를 금은종이로 만들어 태워 날리며 죽은 조상들에게 부와 태평을 빌던 고대 중국문화를 조상숭배와 물신주의의 결합이라 해석한다. 원래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한 채 조악해 보이는 프라다 구두, 삼성 텔레비전, 애플 컴퓨터, 말보로 담배갑, 현금 꾸러미 종이 모형들을 진열해 놓은 싸구려 슈퍼마켓 설치에 마르크스주의 물신론을 적용해 타문화의 제례 문화를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산물에 불과하다고 손쉽게 결론내린 것은 아닐까?
한 장의 종이 위에 미술과 돈의 관계도를 그린다 치자. 그 두 요소 간의 관계선은 흔히 깔끔한 직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정치판에서 회자되는 고전적인 농담도 있듯이, 정파란 모름지기 아무도 모르는 제일 복잡한 선이라고 했다. 미술과 돈을 잇는 선도 그에 못지 않게 꼬불꼬불하고 복잡하다. 미술과 돈의 연계는 바로 권력과 정치를 재료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메커니즘을 일찍이 깨닫고 어떤 미술가들은 일찍부터 미술시장의 원리를 이용했다. 바로크 시대 거장 피터 폴 루벤스는 일찍이 공장형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그림을 대량 생산했고, 이후 앤디 워홀은 팩토리에서 미술품을 대량 생산해내며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지 않았던가. yBA 데미언 허스트는 2008년부터 화랑업자의 중개매매 단계를 끊고 컬렉터와 직접 거래를 시도해 화재를 모았다.
이번 전시에서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표지 로고를 크게 확대한 그림을 선보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카노는 이미 지난 2008년 <자본주의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Capitalism!)> 제하의 DOX 창립 기념 전시회에 초대되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왁스 엔코스틱 기법으로 그린 회화로 주목받았다. 때마침 바클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국빈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카노의 오바마 초상화를 선사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카노는 별안간 작품 당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인기화가가 되었다.
카노는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초상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대로 도용해 자기가 그린 초상인 양 전시하고 이 초상화를 그린 <월스트리트저널> 소속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인용한 사실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 신문이나 화폐 속의 시각 콘텐츠는 공유물인가? 그렇다면 표절과 인용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미술작품에 대한 가격 책정은 정치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 기관은 현대미술가의 직업적?경제적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제도권임을 재입증한 미술계 뒷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단 페르조브스키(Dan Perjovschi)는 사소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세상사나 고정관념을 만화풍 드로잉으로 풍자하는 화가로서 특히 최근 유럽 미술계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내 흰색 벽면을 스케치북 삼아 글로벌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뒷받침된 금융 체제의 부조리를 꼬집은 수많은 드로잉을 선보인다.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변형(morph)되는 드로잉 속 형상들을 통해서 페르조브스키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칙과 법안을 바꾸는 것도 마다않는 무자비한 국제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페루 출신 설치작가 호타 카스트로(Jota Castro)에 따르면 그러한 금융시장의 조작 결과는 죽음뿐이라고 암울한 결론을 내린다. 예컨대 그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설치물 <모기지(Mortgage)>는 달러 지폐를 꼬아 만든 참수대와 밧줄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던 무고한 대중이 싼 이자의 대출 유혹에 홀려 갚기 어려운 빚의 늪 속으로 빠지고 급기야 목숨으로나 되갚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영단어 모기지의 ‘mort’는 죽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기원했다. 그런가 하면 페르디난도 몰레레스(Ferdinando Moleres)는 비트코인 환전기를 전시장 한구석에 설치하고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머니의 시대가 멀지 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논평한다.
만사의 금융화 추세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억압 속에서, 오늘날 과거 어느 시기보다 많은 억만장자가 탄생했고 또 제3세계 수많은 빈곤층도 절대극빈 상태를 벗어났다. 하지만 돈과 노동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빚어진 금전적 대가의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는데, 아프리카, 홍콩, 인도 노동자들의 고난과 빈곤상을 고발하는 리사 크리스틴, 이언 베리, 페르디난도 몰레레스, 파울로 파트리치의 사진작품들을 통해서 이 쟁점을 보도한다. 끝으로 이 전시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브래버리의 <파렌하이트 151>을 인용해 3개의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를 예견한 3편의 설치작으로 암울한 전망을 내리며 마감한다.
미술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이다. 미술은 권력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말해줄 수도 있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미술시장이 결정하지만 바로 그 미술시장에 의문을 가할 수도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이 기업의 후원과 금융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체코공화국의 수도 프라하에 자리한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오는 6월6일까지 계속될 <돈의 영혼전>은 돈-권력-문화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고 재고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

P.S. 이 원고는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관 관장과의 인터뷰를 주선해주고 동유럽 문화사에 대한 깊은 식견으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 준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음을 밝힌다.
마리오 갈리아르디는 오스트리아 태생 디자이너, 문화정책자문가, 문필가, 디자인 교육자로 현재 빈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 및 집필 활동은 그의 블로그 www.mariogagliardi.co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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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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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21세기 패러독스”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센터 관장

돈을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나?
이 세상에는 미술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많다.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들이 돈을 다루는 방식과 그 변천상을 보면서 늘 매력을 느꼈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 공장에서는 현금을 봉투에 넣어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주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돈의 거래 흔적을 남기는데 나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돈은 15세기의 산물이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일종의 패러독스가 되었다. 세상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다. 과거 나는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시장들끼리 경쟁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조차 상품(commodity)에 불과하다.

당신은 이 미술관의 관장인 동시에 전시회 기획도 직접 진행한다. 한 편의 전시를 기획하고 개막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야로슬라브 얀델(Jaroslav And?l) 전 예술디렉터가 자리를 떠난 후 내가 직접 기획한다. 전시 준비하는 데 약 1년 정도 소요된다. 나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성장했다. 학문으로 성공하고 싶은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대학에서 전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회를 기획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미술을 활용해 메시지를 알리는 사회운동가라고 여긴다. 결국 모든 미술은 정치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당신의 철학이나 견해가 궁금하다.
미술은 우월하다는 지위감이나 미술을 둘러싼 신화는 모두 허튼소리다.
(이 말과 함께 발카 관장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쓴 책 《예술의 음모(The Conspiracy of Art)》를 집어 보여주며 이 책은 자신의 바이블과도 같다고 말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 생각하며 나에게 미술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물론 그 목표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 전시 기획만 할 뿐 미술작품을 모으고 소장하는 미술컬렉터가 아니다.

현재 체코의 현대미술계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현재 체코에서 몇몇 소규모의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활동이나 성과는 대체로 미미한 편이다. 서구미술계처럼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는 개별 미술가도 별로 없다. 체코 미술가들은 대체로 서구와 동구 서방세계 양쪽 모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곳 미술인들은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맞게 서로서로 도우면서 대체로 눈에 띄지 않게 소규모 단위로 활동한다.
프라하=박진아

레오쉬 발카(Leo? Valka)
1981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호주로 건너갔다가 1996년에 귀향해 현재 프라하에 살고 있다. 호주에서 건설업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 사업가로 활동하며 성공했지만 그의 진정한 평생 열정은 건축과 현대미술이라고 한다. 2008년 로버트 아페스(Robert Aafjes)와 함께 DOX 현대미술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년 그는 시각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코 정부로부터 문화부상을 받았다.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예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창의성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2016년 3월 초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에서 침묵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이 글의 화두로 삼고자 한다. 시위대는 ‘인문사범대학’, ‘지식서비스공과대학’, ‘창의예술대학’, ‘뷰티산업국제대학’, ‘휴먼웰니스대학’, ‘교육부’라는 글귀를 쓴 패널에 검은 리본을 달아 ‘조의(弔意)’를 표했다. 교육부가 ‘권장’하고 학교 당국이 ‘실행’하는 ‘통폐합’에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구체적인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뷰티산업대학이나 휴먼웰니스대학 같은 해괴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부터 의외였다. 이른바, ‘돈이 되는’ 학과를 만들어서 ‘취업률’을 올리려는 시도라는 점에도 큰 의문이 없다. 후문으로는 지식서비스공과대학이라는 것도 기존의 자연계를 개편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그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이 가는 학과의 명칭은 ‘창의예술대학’이다. 아마도 기존의 음악대학이나 미술대학을 통폐합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명칭 자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창의’와 ‘예술’은 오랫동안 긴밀하게 연관되어 왔고, 그 연관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 단어들의 어감이 ‘뷰티’나 ‘웰니스’처럼 그 저의가 노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혹시 창의와 예술 사이의 연관성이 이제 더 이상 자명하지 않고, 두 단어가 오랫동안 표상해왔던 어의가 심각하게 변환되고 있는 것일까. 창의라는 단어와 창조라는 단어를 혼용할 수 있다면, 언뜻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이 정책 용어에 대해 냉소적으로 반응하기에 앞서 ‘창조’라는 단어가 ‘경제’라는 단어와 결합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예술적 창조성과 자본주의 경제의 이분법
‘예술과 자본주의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해 보인다. ‘아무 관계 없다’라는 답이나 ‘적대적 관계다’라는 답이나 그 실제적 뜻은 다르지 않다. 고상한 예술과 통속적 자본주의를 대비시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미학과 경제학은 인간 세계의 전혀 다른 영역이고, 그 화신들인 창조적 예술가와 범속한 경제인은 전혀 다른, 그리고 상극적인 인간 부류일 것이다. 이상의 발상은 예술과 자본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고정관념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그 고정관념은 매우 강력해서 하루아침에 변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어휘 중에서, 예술은 예술이고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이다. 그 이분법을 허물어뜨리는 일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예술가와 자본주의의 경계가 더 이상 또렷하지 않다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우선 예술과 연관되던 창조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하는 과정을 훑어본 다음 이 지점으로 돌아오자.
내가 알고 있는 한 창조는 근대 이전까지는 신의 영역에 속했고 인간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았다. 인간은 창조의 주체가 아니라 창조의 대상으로 이른바 피조물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가 급격하게 바뀐 것은 근대 초기,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의 창조성이 인정되면서부터다. 인간이 신의 섭리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문화와 지식의 주체가 된 것이다. 즉, 창의성 혹은 창조성은 특별한 인간의 일부 속성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지 매우 오래된 것 같지만 실상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인류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이상의 이야기도 서양 역사에 기반을 둔 것이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그 역사는 더 짧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논점은 일단 덮어두기로 하자.
근대가 인간의 창조성이 개화한 시대라는 것은 또 하나의 환상이다. 인류의 극소수는 그랬을지 몰라도 대다수 인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하는 존재로 삶을 보냈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상가들은 테일러주의(Taylorism)나 포드주의(Fordism)라는 용어를 고안해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서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공장노동자는 창조적인 예술가와 정반대의 존재였다. 경제적 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예술적 창조를 수행하는 예술가들은 낭만적이고, 보헤미안적인 그리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본주의 경제 및 노동과 대립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예술은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서 내가 말한 이분법이란 이런 시대에서 형성된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이런 이분법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예술과 자본주의, 미학과 경제학, 예술적 창조와 자본주의적 노동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에서 언제는 흔히들 신자유주의나 포스트포디즘이라는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실현된 시점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이지만,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와 무언가 다르다.
이런 말이 아직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애플의 광고를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처음 그 광고를 접할 때 거기서 구래의 자본주의 경제나 노동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광고에서 재현되는 영상이나 문구는 매우 힙(hip)하고 쿨(cool)해서 하마터면 광고야말로 현대의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낄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피라이터는 현대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실제로 ‘creative’라는 말을 가장 먼저 흡수한 산업부문은 광고산업이다.
예전에 예술가의 배타적 속성으로 언급되던 창의성, 독립성, 혁신 등의 단어들은 최신 경영학 서적에 너무 많이 등장해서 멀미가 날 정도다. 마치 ‘노동을 예술적·창의적으로 하지 않으면, 직장 그만둘 각오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만약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래리 페이지(Larry Page)를 그저 경영인이나 기업가로 취급한다면, 예술적 감성이 한참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저런 인물들을 지칭할 때 구루(guru)라는 종교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창의적 기업가는 이제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처럼 창의성·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의 예술 분야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해온 나는 좁은 의미의 예술에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창의성이나 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한다. 특히 ‘도회적 창의성(urban creativity)’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연관짓는 이론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들려온다. 이른바 창조도시에 관한 이론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독립적 예술창작자와 상업적 비즈니스의 결합에 의해 혁신적 경제가 나온다는 이론이다. 즉, 양자는 외주나 하도급 같은 복잡한 관계에 의해 얽혀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경제에서 예술과 창의성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기업 조직의 경영뿐만 아니라 공간 경제를 통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의성으로 어떤 장소의 문화적 가치를 상승시키고 예술적 환경(millieu)이 조성되면, 이를 타깃으로 하는 부동산 경제가 작동하여 정작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장소에서 쫓겨난다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론에서도 예술가라는 행위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본주의를 인식하는 방법
방금 소개한 이론들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글로벌 도시’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앞서 덮어두었던 아시아나 한국이라는 상황을 불러와야 할 것 같다. 추상적 논의를 피하기 위해 서울의 한남동을 찾아가 보자. 이곳에는 삼성이라는 한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직영하는 미술관부터 카페 경영과 예술 전시를 결합하여 자가발전하려는 공간, 예술가 3명이 월세를 분담하는 작업실을 겸한 갤러리가 공존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관찰할 때 ‘셋 사이에 유기적이지는 않더라도 상호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직은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2010년대 초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예술가들의 대안공간 몇몇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앞서 말한 카페는 연예인이 새 건물주가 된 뒤 자리를 비워야 할 형편이다. 한때 이곳을 감돌던 예술적이고 ‘보헤미안’적인 환경은 점차 사라지고 의식주라는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업소들만 ‘힙’한 외양으로 발흥하고 있다. 이 장소는 ‘한국식’ 창조경제의 담론과 실천에서, 대기업과 연예인은 찾아보기 쉬워도 예술가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공간적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 현상을 관찰하다 보니 몇 년 전 ‘작가 사례비’ 혹은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생각한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 미묘하고 복잡한 주제에 대해 훈수를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단지, 어떤 래디컬한 교수이자 평론가가 “노동이란 경제이고 예술이란 자본제적 경제의 타자”라고 말하면서, 예술을 노동이라고 인식하는 주장을 비판하던 글이 기억난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주장에 대해 한 예술가가 “답답하다”라는 소회를 밝힌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답답함에 동의한다. 그 답답한 감정은 ‘예술은 노동이 아니므로 경제적 보상을 바라면 안 된다’는 논리도, ‘예술도 노동이니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자본주의 경제에 이용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이용당하는 게 단지 예술만은 아니라는 점이 예술가에게 위안의 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예술과 자본주의가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서로 혼융되면서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이 답답함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추상적 논리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에서 지배의 새로운 양태를 지각하는 일이다. ●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금융자본주의의 시대

노동력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는 갔다. 동시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다. 투자 열풍은 과열되고 사람들의 불안감을 담보로 보험 상품은 쏟아진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화폐의 가치는 끝없이 하락하고 있다.

이완 판화

이완 < Bank of Leewan > 2015~

이완은 판화를 제작해 판매하고 이를 1wan=10,000원 단위의 화폐로 쓴다. 작가는 판매한 금액을 다른 곳에 투자해 이익을 내고, 이익에 따라 판매된 판화는 실제로 주식 증권, 채권과 흡사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작업은 홈페이지(www.bankofleewan.com)에 과정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실물 경제시스템을 주목한 <made in>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위가 커지면 작가는 부동산 및 회사를 직접 차리는 방식 등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Installation view Sarah Meyohas 303 Gallery, New York 507 W 24 S

사라 메요하스는 뉴욕 303갤러리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1.9~2.6)에서 <주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라 메요하스(Sarah Meyohas)는 전시 기간 직접 주식 거래에 참여하고 주가 변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선은 시간의 가치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움직임과 소유권을 나타내는 지표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작업 이전에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사진작업을 유통에 쓰일 가상의 화폐 개념인 ‘Bitchcoin’을 만들었다.

갈유라_7. 지상의 양식(The Fruits of the Earth)_김창명선생님의 근현대사적유물, 가치측정 되#8AE5

갈유라 <지상의 양식> 수집된 오브제 가변설치 2015

고물상인(지역 전문가)과 함께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들이 현재 생산하는 물품을 고(古) 화폐로 교환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다. 고 화폐는 정해진 가치가 아닌 변동되는 (매년 오르거나 떨어지는) 매개체로 작가는 비물질적인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시키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화폐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환기시킨다.

장지아_원더플 행복보험

장지아 <원더풀 행복 보험> 인터랙티브 설치 200×400×400cm 2002

미래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행복의 보증수표인 보험은 역설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전제로 하는데, <원더풀 행복 보험>은 불행의 정도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되는 이 보험 규칙을 응용해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전구의 마지막 단계까지 속도를 내어 불을 켜면 보험에 가입시켜주는 작업이다. 당시 이 작품은 흥국생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80여 명의 관람객이 실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1년간 보장되는 이 보험은 1급 장애 발생 및 사망시에 1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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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 자본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돈만 많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요하며 자본주의적 ‘구원’을 약속한다. 식량이 남아서 썩어나가도 이 종교의 구원을 받지 못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유비호 (3)

유비호 <두 개의 탑> 레디메이드 상품, 이동형 수레, 팔레트, 포장지, 노끈 (각) 74×45×227cm 2010

마트에서 구입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고정된 받침대에 쌓아 올려 탑을 만들고 이동형 짐수레 위에 동일한 높이와 사이즈로 쌓아 올린 상품을 포장지로 싸고 노끈으로 동여맨 또 다른 탑을 제작했다. 작가는 욕망과 소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물질 사회와 지식, 정보, 윤리와 같은 비물질적이고 유동적인 가치마저 교환 논리로 환원시키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김원화 P1120334 (3)

김원화 <최대 성당>(모형) 아크릴 시트, 3D print, 에나멜 컬러 45.3×89.5×150cm 2015 <보이지 않는 손>(영상 설치) 프로젝터, 포그 머신 2015

9·11테러로 파괴된 월드트레이드 센터는 자본주의의 적대 세력의 공격으로 파괴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김원화는 이를 모티프로 고딕 양식의 자본주의의 성당을 제작했다. 디지털화된 스테인드글라스 <보이지 않는 손>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광선을 신의 손길로 해석하는 것과 대비하여 종교적 자본주의의 손길을 표현했다.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경제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개념 ‘보이지 않는 손’ 기저에는 신에 의해 세상의 만물이 조율된다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깔려있다.

주재환 19_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8,601 Diamonds versus Stone Rice, 2010,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A pot, stone, photograph co#8AD6

주재환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2010

작품가 918억5000만 원을 기록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해> 복사 이미지와 이 작품에 영감을 준 브라질 빈민촌 돌밥이 캔버스 위에 부착되어 있다. 작품 하단 오른쪽에는 장 지글러의 저서 《탐욕의 시대》의 인용구가 노랗게 표시되어 있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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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를 바탕으로 한 사회

한때 인간의 노동은 최고의 가치로 평가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다뤄진지 오래다.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다.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을 항상 안고 산다. 그리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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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 캔버스에 아크릴 162×692cm 2012~2014

076-097 특집_자본주의7

박영균 <뉴스 그리기 1, 2> 캔버스에 아크릴 각 163×112cm 2013

박영균은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에서 예술 노동자로서 작업물을 생산하는 화가의 작업실과 자신의 작업환경까지 포함해 노동환경 전반을 지배하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 전개되는 현장을 연결했다. <뉴스 그리기>는 한겨레 신문 박종식 기자의 기사 <둘 중 한 명은 비정규직, 누구일까요>(2013)에서 착안했다. 이 기사는 홈플러스, 현대차, 서울메트로 등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5회에 걸쳐 나란히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076-097 특집_자본주의8

차재민 <미궁과 크로마키> HD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15초 2013

이 영상은 케이블을 설치하는 손과 설치 동작은 같지만 노동가치가 거세된 손을 병치하고 있다. ‘손’이라는 은유는 전문가, 장인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을 신성화하며 동시에 노동 소외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때로 손노동은 숙련된 기술이자 자아를 실현하는 활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양쪽으로 찢어진 극단의 추상성은 노동을 인격으로부터 분리하고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업은 우리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노동’을 제대로 감각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차재민은 이 작업과 함께 케이블 설치 노동조합원 인터뷰를 담은 핸드북 《노는 땅 위에서 파업 중》을 제작해 5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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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에 희망이 있는가?

자유방임을 모토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독식하는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이분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끝을 달린다. 특히 지금의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오포 세대’, 추가로 꿈과 희망을 포기한 ‘칠포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을 품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윤성지  각목, 사운드, 벽면 페인팅, 조명 설치 2014

윤성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각목, 사운드, 벽면 페인팅, 조명 설치 2014

쏟아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각목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 주변으로 난 통로로 겨우 지나다닐 수 있다. 전시장 양쪽 벽면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이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고, 바리케이드 끝 어딘가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막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윤동천  시트지, 신문, 폐지, 병, 캐리어 272×436×140cm 2014

윤동천 <삶의 무게> 시트지, 신문, 폐지, 병, 캐리어 272×436×140cm 2014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문구 너머 쇼 윈도 안에는 고물상에서 5000원으로 교환할 수 있는 폐휴지, 신문지, 빈 소주병이 쌓여 있다. 고단한 삶의 무게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식사값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이양정아  콘크리트 가변설치 2011~2012

이양정아 < Concrete Seoul > 콘크리트 가변설치 2011~2012

(오른쪽) 종이에 물리적 드로잉1100×790cm 2011

< Cutting Out Seou l >(오른쪽) 종이에 물리적 드로잉1100×790cm 2011

<Cutting Out Seoul>은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관점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서울 지도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 조건으로 거주 가능한 동(洞)은 남기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칼로 오려냈다. <Concrete Seoul>은 거주할 수 있는 동네를 그 모양의 시멘트 블록으로 제작했다. 매물이 많은 동네일수록 시멘트 블록은 높이 쌓이고 매물이 없는 동네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그냥 비어있게 된다. 작가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과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헬조선의 예술가

박은선 작가, 리슨투더시티 멤버

동료 작가들을 만나면 다들 밥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아르바이트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월세는 얼마 내는지, 어느 동네의 작업실 임대료가 가장 싼지, 이제 생존 자체가 어떤 작업을 할지보다 더 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미술계가 비교적 호황이었다는 10년 전쯤에도 나는 가난했고, 아마 앞으로 10년 후에도 가난하게 살 개연이 높다.
아무리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리슨투더시티 활동을 한다면 아마 10년 후에도 나는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가, 디자이너 모임인 리슨투더시티는 보통 구체적인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예술로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팔 수 있는 물질적 형태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작업 방법을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와 예술주체
2008년 이전 한창 미술품이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주식과 같이 여겨졌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예술품 경기도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심상용은 《아트버블》(2016)에서 ‘결국 사람들은 시장이 예술화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결국 예술의 시장화로 결말났다’고 말한다. 미술시장의 활기는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아트바젤(Art Basel)과 같은 주요 아트페어와 경매는 전 세계 미술시장과 예술에서 ‘가치’를 가늠하는 거의 절대적인 척도가 되었다. 바젤이 만들어내는 가격=가치의 등식이 이제는 고착되어 상관관계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그 세계적 가격=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갤러리나 작가들이 해외 아트페어에 활발히 참여 할 수 있게 돕는 길을 선택했다. 2015년부터 “미술품 해외시장 개척지원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는 곧 미술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극소수의 작가를 배양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기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가격이 곧 가치가 되는 문제는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거니와 자본주의 초기부터 늘 문제되던 가치체계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모든 사회적 관계마저 자본으로 인식한다는 점에 있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했던 가족관계마저 미국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치환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모든 비물질적인 것을 경제로 환원시키는 것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생명 관리 장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을 짚어냈다. “생명정치(Vitalpoitik)는 각 개인이 다름 아닌 기업의 형식을 가진 골격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시장이라는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기업(enterprise)적 주체로 만드는 셈이다. 경쟁이 내재된 개인들의 집합, 그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본질이다. 예술가도 예외일수는 없다. 미술가가 하나의 기업체적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시장에서 관리하려는 행위는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며, 아트바젤에서 고가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작가들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적통자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그 적통자는 1% 미만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예술 교육과 정책은 왜 늘 1%만을 장려하는가? 예술 정책은 1%의 스타 작가군을 2~3%로 늘리자가 아니라, 99%가 각기 다른 가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행위를 보조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 사회의 예술가들이 단일한 가치를 상상할 때 그 예술계는 부패한다(1950년대 이후 소비에트미술을 보라). 그러한 장면들을 미술에서 수없이 보았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가난한 것은 기본 복지 시스템이 엉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원인은 해외 아트페어에서 팔릴 법한 작품들로 미술계의 취향을 단일화하는 데 있다. 권력 기관의 취향에 대해 질문하고, 다른 형식과 통치방법을 상상하는 일이 그나마 헬조선에서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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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미술계 핫이슈

“예술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

지난 3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시행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2015년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술 분야 응답자 총 39,393명 가운데 창작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가 54.4%, 혹은 있다 하더라도 연 500만원 미만인 경우가 15%에 달해 지난 1년간 예술활동 평균 수입이 614만 원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월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50만 원 정도로 2015년 기준 1인가구 한 달 최저생계비 61만7,281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예술 경력이 단절되는 사유로 56.4%가 예술활동 수입 부족을 꼽았다. 이처럼 미술계에서는 현재 부업 없이 창작활동만으로는 기본적인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 정도로 작가들의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이 실태 조사는 조사 대상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한 예술인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 수혜 예술인, 문화예술 관련 협회·단체 회원으로 가입된 예술인으로 한정되어 미술계 실태 전체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이 조사는 구조적인 문제상 예술가가 왜 빈곤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본질적인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예술가 개인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는 차원에서 한계가 있다.(물론 미술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는 표본조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증진시키기 위해 예술가를 위한 복지 정책의 중요성이 끊임없이 부각되었으며, 이와 관련해 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를 비롯해 아티스트 피 관련 이슈들이 화두가 되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2015년 시각예술 분야의 매매, 전시, 대여, 신작 제작 등 5종의 표준계약서(안)를 개발했으며, 지난해 12월 공개 토론회를 통해 시각예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정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 상반기 공정거래위원회 협의를 거쳐서 최종 확정하고 이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서 홍보, 보급할 예정이다. 이와는 별개로 오는 5월부터 개정 예술인복지법이 발표되면서 문화ㆍ예술활동과 관련된 계약의 당사자는 서면계약 체결이 의무화된다. 법 시행일에 맞춰 예술인복지법 시행령 개정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는 실효성 담보를 위해 과태료 부과 등의 제재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아티스트 피의 경우 2014년 12월 아티스트 피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착수보고회가 열렸고, 지난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국내외 실태 및 현황 관련 연구보고서가 발간된 상태다. 현재 현장의 의견 수렴을 거치는 과정에 있으며, 올해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와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모사업’ 중 전시지원, 공간지원에 시범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아티스트 피와 표준계약서는 예술가의 창작 행위 자체에 대한 보상과 예술가의 권익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지만 이러한 제도적 정착이 오히려 제약이 될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미학적 사회학적 논의 없이 권리와 의무로만 다뤄진다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미술계 내부의 우려가 있다. 관련 전문가들도 이 같은 제도 정착은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봐야 할 일이기 때문에 단숨에 해결 가능한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안에서 ‘지성의 산실’을 추구하던 대학은 원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경쟁과 수치적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는 취업 준비장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 정부의 대학평가(부실대학 선정) 및 구조조정에서 부실대학 선정 낙인이 뜨거운 감자로 불거진 데 이어 지난해부터 정부는 학사 구조를 대규모로 개편하고 정원을 조정하면 각 학교당 최대 300억 원을 3년간 지원하는 ‘프라임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 반대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프라임 사업의 본질은 취업 시장에서 ‘먹히는’ 학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쟁력이 낮은 학과, 비인기 학과가 통폐합 대상이 되고 있는데 특히, 취업률이 저조한 예술관련 학과와 인문관련 학과가 제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중앙대, 동의대 등은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예술대학을 포함한 일부 학과의 통폐합 구조 개편을 추진하기로 발표했으며, 몇몇 대학에서는 폐과를 검토했다가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를 표명하기도 했다.
대학구조조정 (2)이에 맞서 해당 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대학연합 학생 단체 측은 “대학은 기업의 하청업체가 아니다” 등의 문구를 내걸고 대규모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부가 청년세대의 저조한 취업률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기존 대학 교육의 문제로 떠넘기는 식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또한 일단 재정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교직원 및 학생들과 제대로 된 소통 없이 학과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