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제언

《월간미술》이 실시한 설문의 마지막 항목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제언이다. 이는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향한 질타와 충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상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미술인들은 신랄한 비판과 제도적 개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미술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론 단호하고 따끔하게, 때론 담담하게 건네는 미술인들의 제언을 가감없이 전한다.

-재공모 자체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와 같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장기 공석 사태에 대한 책임은 따져야 할 것이다. 재공모 결정을 지나치게 시일을 끈 상태에서 발표, 이제 와서 외국인에게도 개방한다니, 한국에는 자국의 국립미술관 수장을 맡을 만한 인물도 없는 것으로 비칠까 심히 걱정스럽다. 공모를 공고할 당시에 처음부터 외국인에게도 개방한다고 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사태는 현 행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 나라의 대표적 미술관의 위상을 위정자들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아가 한국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향후, 작금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현 공모제의 한계를 극복할 만한 정책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배종헌

2년 임기의 관장을 뽑는다며 8개월을 허송세월하고도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은 미술계에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미술계가 그만큼 만만한 것이다. 후보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라며 이번에는 외국인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관료들이 운영해도 미술관이 굴러는 갈 것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없어도 우리 미술에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문화융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부에서 한심한 일인데, 아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게 더 한심한 일이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장기 공석과 임용 무산은 근본적으로 시스템 즉, 제도적 문제에 기인한다. 국제적인 현대미술관의 운영시스템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관장을 맡고, 이들이 집행하는 전시기획, 운영방식, 인력운용 등에서 필연적 파행은 예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관장 선임 방식이 정부기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인사권의 자율성이 없는 게 문제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형식은 책임운영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사나 예산 등에서 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현재로선 이사회를 제대로 구성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하고 이 이사회에서 관장임명추천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이사회에서 추천, 임명을 결의하는 방식이 최선의 방책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기관일 뿐이다. 차제에 서울관 개관을 계기로 관장의 직급도 차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장동광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는 책임기관운영제로 행안부에서 한다고 들었다. 심사위원 구성에서부터 비전문가들이 참여하면 제대로 된 관장을 뽑을 수가 없다. 이 공모 운영 권한을 문체부가 되찾아야 한다. 행안부에서 심의위원을 선정하더라도 문체부에서 추천하는 인사들로 구성하면 현행 공모제도하에서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다. 김정헌

-그동안 미술계가 비판의 목소리에 인색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양은희

한 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기관의 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술계가 납득할 만한 인물이 선출, 임용되는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라면 그 방식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는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경험있는 내부 인력들의 의견을 수렴해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임용방식을 보면 위에서 정해놓고 공무원들이 심사를 조정하는, 주로 ‘짜고 치는’ 식으로 진행돼왔다. 이것도 수정돼야 하지만 누구든지 임용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고쳐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와 관련 외국인 전문가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다. 참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한 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적 방향이 걸린 관장직을 다른 나라 인재로 대체하려 한다는 그 사대주의적 발상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같은 발상을 하는 문체부에 모두 같이 나서서 적극 대응책을 촉구하자. 우리의 미래지향적 방안과 우리의 미래 창의적 계획을, 오늘의 형편에서 우리의 미래를 창출해갈 기획을 창안해내야 할 막중한 자리를 어찌 남의 손에 맡기려 하는가. 대통령을 다른 나라 국민에게 맡겨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과제, 우리들의 고민, 우리가 연구해 나갈 방향은 우리들이 구축해야 한다. 문체부 생각이 참 너무 꼴불견이라 큰 걱정이다.

내국인/외국인, 미술전문가/비전문가의 구분을 떠나, 현 시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필요한 관장은 관료조직화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방대한 조직에 적합한 미션을 정립하고, 이에 맞춰 각 관별의 정체성을 수립하며, 학연 및 지연보다 개개인의 능력에 맞춰 인사를 단행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장 아래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이 각 관별로 부관장 또는 실장으로서 적합한 사업을 기획해 나가야 한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 명의 관장이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현재의 조직구도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울 만큼 방대한 기관이 되었다. 관장 선임과 함께 기관 조직, 인사, 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

-첫째, 만병의 근원으로써 기형화된 책임운영기관 체제로부터 해방시켜 국립기관으로 환원하거나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하나뿐인 국립미술관 관장의 직급이 2급 국장에 해당하여 장관에 굽실대는 하위직급인데 국내는 물론 국제 위상에 적합하도록 최소 장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동시에 그 위상에 적합한 관장을 초빙, 임명해야 한다. 셋째, 형편 없는 소장품 구입예산을 최소한 100억 원대로 증액하고 특히 서구 근현대미술품 소장을 위한 특별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최열

이번 사태는 단순히 관장 개인의 능력에 대한 판단이나, 정치적 코드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계 전체에 대한 국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미술계는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제도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의 안정성과 권위는 내적으로 미술인들 사이의 주관적 신뢰로부터 나오며, 그 주관적 신뢰를 바탕으로 객관적 제도가 만들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제도의 정점이자, 국가와 사회에 대해 미술계를 대표하는 관문이자 거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계의 와해를 보아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수만을 위한 전시, 비평, 미술언론. 미술인 스스로 외면하는 미술계.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는 국가의 시선은 한 단면일 뿐. 김동일

-국립현대미술관을 문화정치의 기초로 삼지 말라. 국립현대미술관을 검열과 통제 그리고 통치의 방식을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지 말라. 미술계 내 이념적 이항대립을 조장하여 갈등을 일으키고 적대와 혐오를 거듭하는 사태를 일으키지 말라. 풍문과 소문 대신에 사실과 진실 앞에 서도록 투명한 제도적 운영과 절차를 실천하라.

한 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기관의 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술계가 납득할 만한 인물이 선출, 임용되는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라면 그 방식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는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경험있는 내부 인력들의 의견을 수렴해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임용방식을 보면 위에서 정해놓고 공무원들이 심사를 조정하는, 주로 ‘짜고 치는’ 식으로 진행돼왔다. 이것도 수정돼야 하지만 누구든지 임용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고쳐야 할 것이다.

정치 권력에 대한 예술인의 자율성 확보 요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현 사태에 관한 미술인들의 반발 또한 자율성 확보를 위한 ‘투정’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문제를 불투명한 이유로 백지화한 행태는 현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낮은 인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예라고 본다. 윤규홍

무엇보다도 개화기 이후 한국근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특히 제국 일본의 식민주의 규율과 2차대전 후 미국/소련이 이식한 냉전적 규율이 20세기 우리 미술에 드리운 부정성을 세계사적 문맥에서 비판하며 해체할 수 있는 그런 문제의식과 안목과 식견을 지닌 전문가를 관장으로 채용해야 함. 그렇게 하려면, 완고한 민족주의 정체성 담론에 물든 이들, 파인아트라는 식민지근대적 유령에게서 놓여나지 못한 이들, 국제적 규준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사대주의자에 불과하거나 자기-식민지화에 앞장서는 이들을 경계해야 함. 김학량

전시기획 운영 등에서 자율적인 조직 정체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무위. 낙하산 관장, 학맥 관장 시비 걷고 리더십의 새 모델 제시해야.

-정치와 미술은 분리되어야 한다. 이 사태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관장직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대해, 그리고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미술관장직은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전문 인력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독려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직이다. 또한 해외의 유명한 관장을 영입하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은 스스로 자유롭게 일어서야 한다. 백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출 논란을 계기로 미술계 내부가 반성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미술(관)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덕망 있는 미술인이 관장으로 선출되기를 바란다. 국내 기관장 선출에서 늘 문제시된 ‘무능’과 ‘부정’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전문성’과 ‘도덕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관장 선출 논란을 계기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미술인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선출제도와 심사제도를 재정비하기를 바란다. 류병학

[장기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며 미술계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촉구한다]
0. 미술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화 전환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라. 미술계는 작금의 사태를 숙의하며 개혁의 향방을 다각적으로 논하라.
1.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어갈 관장을 채용하는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라. (서울대 홍대 미협 민예총 등 파벌과 인맥을 등에 업은 구시대적 인물을 원천 배제하라.)
2. 국민과 미술인 사회는 관료주의적 운영을 극복하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현대적 감각을 갖춘 관장을 바란다. 청년 예술가들을 파트너로 포용하는 미술관을 창출해낼 리더를 널리 구하라.
3. 국립현대미술관장도 (국립중앙박물관장처럼)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직급을 차관급 정무직으로 격상해야 마땅하다.
4. 특수법인화와 함께 전면적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신규 재계약 학예직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라. (관장 이하 학예직의 국적 제한과 장벽을 철폐하라. 유교적 연공 서열에 따른 관리직 진급 시스템을 철폐하라. 학예직을 위한 유연근무제와 연구안식년제를 도입하라.)
5. 신자유주의적 초대형 미술을 지향하는 서울관의 시대착오적 전시공간 구획을 휴먼스케일에 맞게 재조정하라.
6. 서울관에 청년 작가를 위한 (적당한 크기의) 실험적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신설하라.
7. 청년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식의 유기적 프로그램—예컨대 초청 큐레이터/평론가 연구 지원 제도—을 도입하라.
8. 허울 좋은 미술은행제도 당장 폐지하라.
9. 국립현대미술관은 1987년 이후의 한국 컨템포러리미술의 얼개를 총괄하는 소장품/대여품 장기 전시를 서울관에 마련하고, 비평적-역사-쓰기 작업에 나서라.
10. 우수 전시의 여타 지방 국공립미술관 순환 전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라.
11.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주요 다큐먼트를 영역(英譯)하는 작업을 위한 번역기금을 조성하고 자율적 번역사업을 실시하라.
12. 국립현대미술관은 풀서베이 전시와 회고전 실시 과정에서 사실 확인 작업을 위한 엄격한 진실성 검증 단계를 도입하라.
13. 고 임영방 관장의 업적을 기리는 회고전을 실시하고, 그의 이름을 건 큐레이터십 시상 제도를 마련하라.
14. 미술계의 파벌들은 투서와 모함과 음해 공작을 중단하라.
15. 미술관의 운영 방침 논의 과정에서 아트딜러의 상업적 개입과 상업화랑에 긴밀히 연루된 인사의 부정한 개입을 차단하라.
임근준(이정우)

-우리나라 미술계의 역량은 최근 여러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미술계의 전시나 비엔날레 등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를 다루는 공무원 행정은 아직도 처참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 미술관장을 뽑는 인사 과정에 미술전문가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정무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현재 시스템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백기영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직원 개개인이 각자 맡은 업무에서 전문성과 창의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미술관 스스로 업무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 보며 자율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냥 커다란 조직 구조에 의해 굴러가는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 체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김달진

국립현대미술관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 또는 분담하기 위해선 우선 국립근대미술(박물)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근대의 시기 설정이 모호하더라도 이미 진행된 조형예술에 대한 시기적 구분은 가능하다. 창작의 입장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하나의 기관에만 의존하면서 생기는 오해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학예실의 고용 안정화는 물론 그 업무역량을 실제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비대해진 행정 서비스 조직으로 전락하지 않고 예민한 창작의 실험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예실의 권한을 더 키워야 할 것이다. 최금수

-미술관장은 단순한 관료 자리가 아니다.
우리 미술을 통한 우리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이를 윤리적 태도로 보여주기 바란다. 사회적 출세나 자기 과시의 자리가 된 이 시기에 관장은 무엇보다 상업성과 정치적 자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 시대의 사유와 상업화에 대응할 윤리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길 바란다. 국립미술관다운 존재 가치는 그럴 때 인정받을 수 있다. 강선학

이번 최종후보 두 사람이 임명되지 않은 것은 과정은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결과는 잘된 것이다. 관장보다 중요한 직은 학예실(장)이다. 학예실장 임명은 여론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하고 임기를 길게 보장하여 소신껏 일하도록 해야한다. 관장은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와 소양이 있으며 행정과 경영능력이 있는 자 중에서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재공모 사유에 대해 문체부 장관이 미술계 내부의 반목과 인물 부재를 거론한 것은 미술계 전체를 깎아내리는 처사라 사료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화계 수장으로서 반드시 사과와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함.
2. 문체부에서 직접 재공모 대상자를 물색하거나 외국인 관장 영입을 추진하겠다는 식의 언급 역시 국내 미술계를 평가절하하는 처사로서, 국내의 인물을 양성하고 역량을 발전시켜야 할 문체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봄.
3. 따라서, 발상의 전환과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며 국내 미술계가 당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선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임. 유진상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최종 후보자 2명(최효준, 윤진섭)에 대한 탈락 사유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안가는 게 문제입니다. 결격사유가 명확하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게 아니고, 우려하는 것처럼, 청와대 내정설이나, 학연 때문에 배제됐다면, 한국미술계에 엄청난 혼란과 반목을 조장할 것입니다. 미술계는 반드시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투명한 사후 조치를 지켜봐야 합니다. 손성진

-국립기관답게 장기적이고 일관된 관점으로 전시를 기획해, 스쳐 지나가는 전시가 아닌 쌓여나가는 전시, 연구 가치가 있는 전시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동시대 서구미술을 발빠르게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트렌드보다 더 중요한 국립기관의 의무는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서구미술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며, 소장 가치가 있는 도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장 자리가 정치적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장 자리는 기획자의 자리가 아니며 미술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바탕으로 미술관 내부 기획자들의 기획을 서포트하는 등 경영능력이 우선되는 이가 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 2년 계약의 비정규직 기획 인력은 기획력의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이 수반되는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없는 구조다. 학예인력의 고용안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관장 임명 과정은 투명성을 담보해야 하는 만큼 더욱 공개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서준호

바보야,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하는 곳이 아니야! 시각문화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를 통해 유대감을 지님으로써 한 개인이 국가 구성원으로서 국가를 사랑하고 믿고 일체감을 갖도록 하는 정치적 기관이야. 바로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근대국가들이 탄생하면서 모두가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을 설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때문에 이러한 위기가 온 것.(이 답변으로 17번 이하 답변을 대신함)
그리고 《월간미술》이라는 대한민국의 미술 전문지조차 이런 국립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모르고 단지 전시시설의 하나로 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상” 정준모

학예기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법적 장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수용하고 이끌어갈 관장이 선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장의 권한과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모든 대한민국 미술관 관장이 큐레이터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한국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서상호

1. 관장이 있을 때나 지금이나 미술관 운영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음. 오히려 없는 편이 이상한 관장이 재직할 때보다 나은 듯도 함.
2. 미술관 내부 학예연구직에게 기획과 운영의 자율성을 주고, 현 직급의 관장은 학예직에서 임용하는 것이 최선일거라 생각됨.
이태호(명지대 교수)

1. 관장 선임 방식에 따른 폐해성이 가장 큰 문제. 널리 인재를 구해 쓴다는 공모제의 도입 취지와 달리, 진정 덕망 있고 능력 있는 관장들이 응모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 그래서 관장 인선은 추천제와 임명제의 혼합형이 바람직하다고 봄.
2. 학예인력들의 폐쇄성 혁신이 시급. 미술관의 정체성 확립과 콘텐츠 능력은 결국 학예인력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수장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이에 전문성과 책임감을 지니고 미술계를 선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이에 미술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활동 인물의 인프라가 미약한 점을 감안하여, 공모제를 폐지하고 초빙하여 관장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책임과 권한을 함께 주어야 한다. 조은정

1. 관장 심사를 누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투명성이 없다
2.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사나 큐레이터의 기획력이 미흡하다.
3. 장기적 전문성을 확보할 기회가 부족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 홍콩바젤 등을 지원하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를 봤다. 부디 한국현대미술이 나아갈 좌표를 설정하셔서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을 채우는 전시가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해야만 하는 당위성 있는 전시가 많이 개최되었으면 한다.

-현대미술관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 사실상 실종된 채, 지나치게 지엽적인 시각이 난무함. 문제가 있다면 우리 미술계의 총체적인 현실과 직결돼 있음을 직시하고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을 희망한다. 문화 현상이야말로 미래를 내다보는 원거리의 넓은 시야에서 활성화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윤우학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은 미술계 주요 기관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미술계 다수 구성원의 여론과 무관하게 관료와 교수 등 권력 중심부에 있는 소수 관계자만의 리그였다는 데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미약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미술계의 중요 사안에 대해 여론를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미술계 자체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선영

그간 개별 전시 내용이나 수준, 관장 공석 사태 등의 문제가 지적되거나 불거져왔지만 그런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 기관인지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면한 문제들이 풀리기를 기대하는 건 모순된 일이다. 정부나 관계부처에 내맡기거나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모든 미술인의 주체적인 의견 개진과 참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양지윤

-관장을 비롯한 각 직책에 대한 역할과 책무를 정확히 설정해 장기적 비전과 기획의 견고성을 확보해야 한다. 박우홍

국립현대미술관은 늘어난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광부 장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 특별한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사건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공석 문제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미술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술계 외부에 미술의 중요성과 미술 행정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미술계 내부의 연대와 성취를 이루기엔 미술판이 이미 이익지향적 오합지졸의 판이 되어 쉽지 않을 듯. 몇몇 사람에 의해 찻잔 속의 태풍이 되거나, 적당히 포기하고 무관심으로 자기 활동에 몰두하면서 사태가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담론이 미술계 성골, 진골 싸움인 듯하여 관심두지 않는다.

장관은 ‘미술계의 여론이 워낙 나빠 논란을 감수하고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는데(《한겨레》 2015. 6. 11), 장고 끝의 부적격 판단과 관장 장기 공석에 대한 미술계의 여론은 왜 듣지 않는가. 남선우

미술계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엄격한 검정 과정을 통과할 사람이 과연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름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의 결점이라면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전 검정은 필요하겠지만, 후보자에 대한 먼지 털기식 암행은 문제가 있다. 사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는 전제하에 임명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충환

현행 공모제보다는 전문성과 리더십(행정 및 경영능력)을 갖춘 적임자를 발탁해, 임명하는 임명제가 나을 듯하다. 임기는 최소 5년으로 하고, 한 차례 연임가능케 해 깊이있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시행할 수 있다. 관장이 미술관 운영을 책임지되 철저히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술관 전시 및 작품 구입 예산이 너무 적다. 스폰서십과 멤버십 구축에 획기적인 전략이 시급하다. 큐레이터별 전문성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 이영란

1. 다른 방식들은 공모제보다 문제의 소지가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공모제가 능사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론 공모제를 찬성함
2. 8개월간 관장 직무대행이 운영한 것은 그 자체로 관련 부처 장관과 나라의 직무 유기이다.
3. 나라 예산을 줄이기 위한 애국심이 반영된 것은 아닐 텐데 서울관 전체 학예직이 계약직이라는 것은 희대의 코미디이다. 김지원

관장을 비롯하여 학예사는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미술관 운영의 모든 책임을 지는 의무와 소명에 투철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전문인들을 믿고 밀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한다. 여론이나, 정부고위 관료의 압박, 재정적 압박 등등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요인들은 미술관을 망치게 한다. 이는 결국 우리 미술문화를 좀먹는다. 조광석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누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다. 이에 더해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들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몇몇 미술인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들은 겉으로는 미술계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누가 관장이 되면 자신에게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처세꾼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재공모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던 날, 한 미술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실체도 없이 떠도는 소문을 부풀려 퍼뜨리거나 심지어 악의적으로 가공하는 미술인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훼방꾼들이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첩첩산중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창작의 산실이자 비판적 지성의 공론장인 미술계가 실력보다 학연과 인맥 관리에 열중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번 관장 재공모 건을 계기로 미술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내 편 네 편 가르기’, 내 이익만 좇는 ‘줄 세우기’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누가 신임관장으로 가장 적합한가, 즉 관장의 자질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미션, 목표는 일반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다르다. 따라서 특별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관장이 되면 국립미술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미술계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국내 유일한 국립미술관장이라는 대표성 때문인지 덕망과 인품을 갖춘 미술계 원로가 차기 관장감이라고 주장하는 미술인들이 있다. 혹은 빼어난 학식을 가진 미술사학자나 평론가,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받은 기획자, 유명작가, 경영마인드가 뛰어난 스타급 최고경영자(CEO), 문체부 고위관료, 심지어 미술계의 히딩크 같은 외국인을 전격 영입하자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연 누가 책임운영기관으로 법인화를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각종 문제점과 미술관 내부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후보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의 <예술기관 CEO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사례연구>와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의 <책임운영기관장의 리더십 유형이 조직 몰입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관장은 예술기관장을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이들 중 바람직한 리더는 예술 전문성과 행정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첫째 유형은 ‘공무원 기관장’으로 오랜 공직 생활과 관리직 경험으로 조직 관리가 능하지만 예술적 전문성이 부족해 예술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유형은 ‘예술가 기관장’으로 예술가이므로 예술 창조에 관심을 갖고 추진할 것이며, 그 결과 예술적 성과가 기대된다. 반면에 조직관리 경험 부족으로 예술기관 운영에서의 조직 관리는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유형은 ‘일반기업 CEO 기관장’으로 대기업 조직관리 경험으로 조직을 잘 관리할 것이 기대되지만 예술적 가치와 수익성의 충돌로 예술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넷째 유형은 ‘예술경영자 기관장’으로 오랜 예술기관 경험이 조직 관리에 적합할 수 있고, 본인이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 기관에서의 경험은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예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는 ‘변혁적 리더십’을 책임운영기관장의 자질로 꼽았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조직 구성원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하며 적절한 성취 수단을 제공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술전문성과 행정전문성, 변혁적 리더십을 갖춘 최적의 인물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차선책은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의 조언에 담겨 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 강점 영역을 더욱 향상시키되, 약점 부분은 그것이 강점인 구성원들을 찾아 팀을 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관장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인물을 관장으로 뽑고 최고의 미술전문가들을 운영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리더의 주위를 채우는 것이다. ●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많은 사람들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

지난달 초순, 베니스를 거쳐 파리로 가 루이비통재단의 미술관을 찾았다. 100% 전기로 달리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입장을 위해서도 기다려야 했다. 프랭크 게리 건물의 성가(聲價)와 개관 특수 덕이기도 했지만 차가운 전시와 따듯한 전시를 함께 여는 전략적 접근과 디테일을 완벽하게 챙기는 치밀함, 공간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 마케팅 센스 등을 접하며, “앞으로 기업이 작심하고 뛰어들면 공립 공영 미술관은 당해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 전시를 보여주는데도 한산하고 쇠락한 기운이 역력한 파리시립미술관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앞으로 관심 있는 한국의 여러 기업인이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대표 미술관으로 인식되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필두로, 공공 설치미술로 잘 짜여진 프로젝트를 연이어 선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제주시 구도심의 면모를 일신한 아라리오 제주미술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확실하게 특화된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림미술관 등기업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들의 성공적인 행보는 공립 공영 미술관장으로 10년 이상 일한 필자에게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술관 공공 서비스의 불가피성은 절대적일까? 미술관의 공공성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공통적 성격이며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먹고사는 것이 미술관이지만 공영이 불가피한 다른 행정 서비스와는 달리 민영의 효율성과 성과가 세계적으로 갈수록 인정되는 것은 아닌가? 적어도 한국에서 바람직한 미술관 거버넌스의 모델은 무엇일까? 이런 화두(話頭) 같은 것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파리, 나고야 등지에서 같은 작가의 회고전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보다 더 충실한 내용이 놀라워 몇몇 아쉬운 점을 지나가듯 지적해 주었고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조명, 레이블링 여러 면에서, 하나를 말했는데 서너 가지가 개선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후 특정 공간에서 촬영 허용에 따른 감상 방해가 워낙 심해보여 조심스럽게 지적했는데, 즉시 “촬영금지를 했다”는 답이 왔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해서 그것의 주효함을 확인하고 미진하면 계속 보강하기로 작심한 듯 기획 운영의 대표자는 거의 늘 전시장에 있었다. 이런 것이 모두 영리 추구의 힘일까?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립 공영 미술관의 프로그램에서조차 분명하게 전제되지 않는 전시를, 오늘 여기에서 왜 하는지, 타깃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어떻게 소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접근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전시장 입구에 쓰여진 ‘위로, 치유, 화합’이라는 세 단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미국의 유일한 국립미술관의 대대적인 개보수 정보를 국내 유일 국립미술관에서 파악하고 온 노력을 쏟아 부어 이런 전시를 기획 유치할 수는 없었을까? 만일 섭외하여 전시를 개최했다면, 그렇게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내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관람객들의 반응을 적극 수집하고 예민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부단히 개선해 나아갔을까? 도록과 상품을 그렇게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방위적인 프로모션을 할 수 있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경험이 있고, 현재 여건, 조직문화, 분위기를 잘 아는 필자가 낼 수 있는 답은 불행하게도 거의 모두 ‘아니요’였다.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한 관람객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과 큰 조직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우리 국립미술관에 대한 만족도가 그토록 낮아졌을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전 미술인이 합심하여 서울관의 개관을 보았는데 물리적 접근성 말고 내용적, 심리적 접근성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개관전 <시대정신>, 1주년 기념전 <정원>, 이런 것들은 정말 낯 뜨거울 정도였다. 큐레이터들은 그런 미흡함이 관장의 전횡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래서 관장 공석 중에 많은 규정을 개정하여 관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개혁(?)을 단행했는가 보다. 이해는 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은 미궁에 빠졌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는 이즈음, 법인화를 반대했던 이들조차 법인화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과거 연극계 출신의 모 장관 시절 문체부 산하 법인화 대상 기관이 운 나쁘게 국립극장에서 미술관으로 바뀌었다고 하고, 그 이래 법안은 계속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고, 이제는 올려도 상임위 법안소위원회 소속 의원조차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본부 내 담당 부서도 담당자도 없이 으레 결국 폐기되려니 모두 생각하고, 주관부처인 행안부에서조차 “티오를 줄이는 그런 결정을 해당 부처에서 적극 추진할 리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
전문직들은 아직도 극히 취약한 미술계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법인화는 불가하다 하고, 법인화되면 주무 부처와 완전 갑을 관계가 되어 운영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타당한 우려다. 재정자립도 80%라는 믿을 수 없는 수치를 자랑하는 예술의전당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 모습이라면 누군들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예술의전당 팀은 자신만만하다) 법인화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5년간 수천억 원의 국고 출연과 같은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며 30%를 재정자립의 상한선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옳고, 기부를 촉진하도록 세제 등 법제도를 영국 미국 프랑스와 같이 바꾸기 위해 과거 조윤선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류가 다시 심의, 통과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도 옳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드는 생각. 그것은 서울관의 분립 법인화이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모기관과 자기관의 운영체제가 다를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겠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 만든 법(法)인데 길이 없을까? 모기관으로부터 자기관을 제급(除給)내어 버린다면? 듣자하니 지금의 미술관 관장대행 체제에서 방대한 서울관을 과천관의 일개 과로 전락시켰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1년도 안 남은 서울관 직원들이 과천관, 덕수궁관의 전시를 4~5개씩 맡아 한다고 한다. 과천의 정규직들은 그 반도 안 되는 전시 업무를 맡고 있고. 지금의 서울관. 엄청난 덩치의 일꾼이 족쇄를 차고 굼뜨게 움직이며 비능률적으로 실수를 연발하며 일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제 서울관의 분리 법인화를 그려보자. 그래도 포기해야 할 티오가 없으므로 정부조직의 정규 공무원들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5년 정도의 계약기간으로 강호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찾아 전문계약직으로 고용하고 그들이 합심하여 보통의 시민들이 호응할 미술관을 만드는 과업을 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퇴임할 때쯤은 순수 민간부문에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의식과 열정이 있는 기업인으로서 자체 미술관 건립까지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모아 이사회를 구성하고,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철저히 파악하고 세계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 연구하며 국내외 전문가와 전문기관과 연대하고 제휴하여 수년 내에 모마, 퐁피두, 테이트모던과 순회전을 공동 기획하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집단 지성을 결집하여 미술 저변의 확대와 심화에 민관협치 방식으로 온 노력을 기울이고 강도 높은 자체 개혁과 함께 미술 교육, 제(諸) 미술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선도하는 것이다. 과천관은 직원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현 공영체제를 유지하며 연구, 수장, 교육 기능과 참신한 전시 기획에 매진하게 하여 법인화된 서울관과 선의의 경쟁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물론 서울관이 과천의 소장품을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서울관의 성공을 바탕으로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전국 4개 권역에 중앙정부-지자체 협력형 분관을 속속 건립하는 것이다. 공영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민영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모마, 퐁피두, 테이트 모던, 그리고 앞서 예시한 기업 운영의 미술관 프로그램들이 뭘 잘 모르는 내게도 좋게 와 닿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앞에 언급한 일개 기획사의 공들인 전시가 추상화가 전혀 와 닫지 않던 내게도 감동적이라는 것을. 요즈음 같이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 공중의 기대가 강렬하게 모아지고 공공의 지원이 대폭 이루어지는 법인화된 국립서울미술관의 희망적인 비전을 뚜렷하게 그려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문체부의 수장이 결심하고 전방위로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절차가 다시 필요할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취임보다 빠를 것 같은 문체부 새 수장의 취임 이후 말이다. ●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자르디니공원 전경. 전면 조형물은 라크 미디어 컬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의 <Coronaton Park>(2015)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5월 9일 개막, 자르디니공원과 아르세날레, 그리고 베니스 도시 곳곳을 수놓으며 11월 22일까지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창립 120주년을 맞는 경사도 겹쳤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아 한국과도 인연 깊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그가 앞세운 전시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다. 역사적인 프로젝트와 반역사적인 프로젝트를 동시에 탐색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본전시에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국가관 전시에는 89개국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작가와 미술계 인사의 참여가 눈에 띈다. 본전시에는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세 명의 작가가 초청되었으며, 특히 임흥순은 <위로공단>을 출품, 한국작가로서는 사상 최초로 본전시 ‘은사자상’을 수상해 주목 받았다. 국가관에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참여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을 선보였는데, 한국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건물의 내외관을 이용, 역사성과 장소성 모두를 살리는 작업을 구현했다. 또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자 현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은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병행전시(Collateral Events)로 열린 <단색화전> <Human Nature and Society(山水)전> <Jump into the Unknown전> <Frontiers Reimagined전>을 비롯, <개인적인 구축물전>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전> <채집된 풍경전> 등 한국작가가 참여한 전시도 다수 개막했다.
《월간미술》은 베니스를 직접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생생한 전시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현지취재 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박홍순 사진기자

Giardini

자르디니 디 카스텔로공원은 국가관이 모여있는 곳이다. 1907년 벨기에관을 시작으로 현재 29개국 30개 전시관이 세워졌다.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이 되던 해, 이곳에 세워진 마지막 국가관으로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센트럴파빌리온과 야외전시장에서도 본전시가 열린다.

센트럴

Padiglione Centrale
자르디니 센트럴파빌리온에는 본전시 참여작가 44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글렌 리곤(Glenn Ligon) <Untitled(bruise/blues)> 네온 2014

프랑스 (3)

France
셀레스트 부르지에-무그노(Céleste Boursier-Mougenot) <Revolution> 2015 감지하기 힘든 식물의 느릿한 성장이 주는 놀라움이 구현됐다

독일 (2)

Germany
히토 스테예릴(Hito Steyerl) <Factory of the Sun> 2015 공상과학 영화 <Tron>을 연상시키는 공간과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 같은 영상설치 작품

노르웨이 (6)

Norway
카미유 노르멘트(Camille Norment) <Rapture>
하모니와 불협화음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 작품으로 깨어진 유리창과 사운드 설치작업

IMG_0616

Japan
지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 <The Key in the Hand> 2015
기억과 일상에 관련한 물건을 전시장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해 온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억의 층위를 열쇠로 상징해 표현했다

호주 (1)

Australia
피오나 홀(Fiona Hall) <All The King’s Men>군복 와이어 혼합재료 2014~2015
세계 정치상황, 경제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를 다루는 작가는 호주관을 인류생태학적 오브제의 박물관으로 호주관을 꾸몄다

미국 (2)

USA
존 조나스(John Jonas) <Mirrors> 2015
<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로 명명된 미국관은 이번에 비엔날레 특별언급(Special Mention)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 외에 <Bees>, <Fish> 등 5개 방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작가가 1960년대 이후 추구한 삶의 연속성 등을 다뤘다

스페인 (2)

Spain
페포 살라자(Pepo Salazar) <Untitled(La fiesta de los metales)> 2009
4명의 작가가 참여한 스페인관은 <The Subject>로 명명됐다. 참여작가 살라자는 복잡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표현을 전개했다

러시아

Russia
이리나 나코바(Irina Nakhova) <The Green Pavilion> 2015
<The Green Pavilion>으로 명명된 러시아관은 45회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관 참여작가인 슈세프와 카바코프의 <Red Pavilion>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편 러시아관에서는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폴란드

Poland
C.T. 야스퍼(Jasper) & 조안나 말리노브스카(Joanna Malinowska) <Halka/Haiti 18°48’05”N 72°23’01”W
1802년과 1803년 나폴레옹이 노예반란을 진압하라고 아이티에 파견한 폴란드군 일부는 오히려 반란군과 결탁했고 결국 아이티가 독립을 쟁취하자 그곳에 정착한다. 폴란드와 아이티 간 역사적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네덜란드 (2)

Netherlands
헤르만 드 브리에(Herman de Vries) <To be All Ways to be> 2015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서로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가는 108파운드의 꽃, 타버린 나무토막, 농기구 등을 설치했다

이스라엘

Israel
트시비 게바(Tsibi Geva) <Archeology of the Present> 폐타이어 201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주제로 삼은 작품은 아니지만 분쟁문제는 작가의 의식에 이미 깔려 있으며 작가의 경력이 그것을 말해준다” (Hadas Maor, 이스라엘관 큐레이터)

세르비아 (2)

Serbia
이반 그루바노프(Ivan Grubanov) <Untitled Dead Nations> 2015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동유럽 국가의 더럽혀지고 오염된 국기를 통해 집단적 기억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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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문경원 전준호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7채널 영상설치 2015

한국관 (10)

축지법과 비행술 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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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영상과 건축,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다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다. 1995년 자르디니 공원에 한국관이 세워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국가관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당시에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5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이숙경 큐레이터와 문경원 전준호 두 작가도 바로 이런 점을 의식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출품작 <축지법과 비행술>은 한국관의 디테일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실험실로 변한 한국관을 미래 주인공의 하루 일과가 벌어지는 장소로 설정했습니다.” 두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작업의 내용과 형식에 접근했고 그것이 큐레이터와 논의한 주된 내용이었다. “우선 내용에서는 예술이 가진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과 시대성의 접목 그리고 베니스라는 현장성과의 연계에 대한 것이었고, 형식에서는 혼재된 시간과 사건의 파편을 다채널로 표현하되 한국관의 건축적 특징과 부합하는 설치 방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관 전시가 비엔날레라는 큰 맥락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을 ‘한계’가 아닌 ‘특수성’으로 보고 재해석하려 했다. 그래서 한국관의 유리벽이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활용된 것은 아닐까? 실제 현장에서는 외부에 길게 늘어선 관객들이 벽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작업을 미리 한 번 만나고 입장해서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자르디니에 늘어선 국가관 중, 이처럼 외부 벽면을 활용한 작품은 몇 군데 없었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영화 형식이지만 대사가 없다. 작가는 이 점을 광유전학(optogenetic)으로 풀어 작품에 담았다. “시각적 언어를 매개로 하는 미술 표현 방식에 적합한 의사 표현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작품 해석에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운드가 절제된 작품은 그만큼 관객 몰입도를 높인 효과를 낳았다. 관객들은 작가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숨은 장치들을 숨죽이며 찾아내기에 열중하는 듯햇다. “각 채널의 사건들이 서로 싱크가 맞게 연결된다든지, 각 채널을 자세히 보면 다른 시간과 사건에서 그 시각적 장치들이 서로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관이 모여있는 자르디니는 열기에 넘치면서도 각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묘한 경쟁심리가 흐르는 곳이다. 어떤 매체는 이곳을 ‘올림픽’에 빗대어 설명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이 큐레이터는 오히려 <축지법과 비행술>이 이러한 경쟁 구도와 경계를 없애는, 더 큰 국경 설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미에 2015년 자르디니공원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쟁적인 구도로 보는 것은 사실 미술 및 문화사업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고양하려는 여러 정부 기관의 입장”이라면서 이 큐레이터는 “미술의 영역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시각이라는 점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미술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비엔날레 주제전과 국가관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예술적인 것이지 국가적 경계에 대한 것은 아니죠”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가관이 한 국가 미술 전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경쟁구도는 매체에서 “한국관의 역할을 두고 간혹 국가적 긍지를 유지하는 문제와 예술적 경쟁력 확보”라는 두 사안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보도하는 데서 생긴 현상인 셈이다. 이 작업은 프레스 오픈 때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며 ‘흥행’몰이를 이어갔다. 바로 옆 일본관과 독일관에서는 보지 못한 기다림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큐레이터는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디렉터이자 비평가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정말 기뻐했겠다며 ‘영상작품의 진화된 단계를 보여주었다’고 호평했습니다. 이우환 작가 또한 ‘캄캄한 공간에 가두어 놓듯이 하고 보여주는 미디어 작품은 싫은데 이 작품은 정말 잘 구성되었다’고 격려해 줬어요”며 현지의 평가와 코멘트를 전했다.
전시에 참여한 세 사람의 이후 행보도 궁금했다. 먼저 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로 한국미술과 국제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며 “현재 벌어지는 미술의 동향들을 대하면서 어떤 대안들이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도 “그냥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보람되었습니다. 앞으로 8월 말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에서 저희 프로젝트 전시가 열리고, 독일의 ZKM과 프랑스 릴에서 단체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문경원 작가는 일본 YCAM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 전준호 작가는 그 동안 썼던 글을 정리해 책을 펴내려 합니다”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한국관 (2)

왼쪽부터 전준호 이숙경(큐레이터) 문경원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DAS KAPITAL>(1867)
센트럴 파빌리온 아레나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퍼포먼스 장면. 이 퍼포먼스는 현대사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과 차이에 대한 내용이다. 하루에 3번 30분간 진행된다. 이밖에도 아레나에서는 카릴 조레이주와 조안나 하디토마스의 《Latent Images: Diary of a Photographer》(2009~2015)를 낭독하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Photo by Andrea Avezzù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과거들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예술이 특정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큐레이터가 비엔날레 주제에 ‘미래’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쿠이 엔위저는 베니스 전역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설정하고 구현하려 한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국가관과 본전시를 통해 그의 목표는 달성되었을까? 필자의 시선을 따라 이번 비엔날레를 생각해본다.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제목의 클레의 그림은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것으로부터 이제 막 멀어지려고 하는 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눈은 노려보고 있으며, 입은 벌어져 있고,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은 역사의 천사를 묘사한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연쇄적인 사건들이 떠오르는 거기에서 그는 잔해 위에 쌓인 잔해들과 그의 발치에서 비명을 토해내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그곳에 남아 죽은 자를 일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다시 재건하려고 한다. 그러나 낙원으로부터 돌풍이 불어온다. 그것은 그의 날개 안으로 너무나 강력하게 불어와 천사는 더 이상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돌풍이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그를 날려 보내는 동안, 그의 앞에 펼쳐진 잔해의 더미는 하늘 높이 쌓여만 간다. 이 돌풍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논고》, 1940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들’이다. ‘미래’는 동시대미술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다. 이 단어가 지닌 목적론적(teleological) 뉘앙스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결말에 대해 말하는 것이자, 그러한 결말에 이르는 방법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목적론적 이념으로 우리는 성경과 자본론, 그리고 과학적 목적론을 예로 들 수 있다. 목적론은 모든 동시대미술 기획자가 피하려 하는 유일한 주제다. 어떤 큐레이터도 예술이 특정한 결말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념적으로는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오쿠이 엔위저는 미셸 푸코를 인용하면서 “긍정적이고 다중적인 것, 단일한 것이 아닌 차이들, 단위들이 아닌 흐름들, 시스템이 아닌 동적 배치를 선호할 것”을 강조했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의 《안티-외디푸스: 자본과 정신분열증》 서문 중) 그가 주제로 언급한 미래는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1867년에 출판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바라본 미래이거나, 1940년에 폴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을 보면서 위에 인용한 단상을 쓴 발터 벤야민의 미래이기도 하다. 또 다르게 해석하자면, 여기서 언급한 복수의 ‘미래들’은 이제 창설 120주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1895년에 꿈꾸었던 미래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많은 변천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방적 플랫폼들을 구축했던 200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와 달리, 이번 비엔날레에서 엔위저는 일종의 닫힌 공간, 즉 초기 비엔날레 공간이었던 자르디니(Giardini)로부터 현재의 아르세날레(Arsenale)와 베니스 전역으로 퍼진 국가관(pavillion)들의 집합적 공간을 마치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설정했다. ‘모든 세계’란 그러므로 처음부터 일종의 ‘파라다이스’로 꾸며진 이 ‘정원’ 안에 건설되기 시작해 이제 89개(자르디니 29개, 아르세날레 29개, 나머지는 베니스 시내 혹은 주변부에 흩어져 있다)에 이르게 된 국가관의 지정학적 배치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축약된 세계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실제의 세계, 다시 말해 정치-사회적 세계 전체의 현 상황(state of things)을 예술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 전시를 위해 예술감독이 설정한 세 개의 필터 -무질서의 정원, 생동감 : 서사적 지속, 자본론 읽기-는 각각 자르디니, 아르세날레, 그리고 이탈리아관 안에 설치된 ‘아레나’ 등 세 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상호지시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전시뿐 아니라 발표, 토론,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올 11월까지 7개월 가까이 그가 ‘형태들의 의회(Parliament of Forms)’라고 이름 붙인 전 지구적 담론과 이슈들의 공회(公會)를 구현하게 된다. 주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이탈리아관 중심에 커다랗게 설치된 무대-세미나 공간인 ‘아레나’에 녹아들어 있다.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이 2012년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기획했던 <Choreographing Capital>의 후속 프로젝트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의 ‘자본론’ 3부작을 읽는 퍼포먼스-세미나가 진행된다.
오쿠이 엔위저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의 ‘현 상황’, 즉 비극적 전쟁들과 갈등,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양극화, 신자유주의의 전횡, 예술의 사물화와 탐욕적 시장논리, 새로운 유형의 파시즘과 국가주의의 대두 등에 대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대답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 반면, 그가 보여준 ‘전시’의 현 상태는 여전히 그가 선호하는 전시방식이 그러한 원대한 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본전시는 카셀이나 광주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파티션들로 구분된 개별 작가의 독립적 공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치적 마니페스토를 제시하기보다는 여전히 미술관 전시에 가까운 정적 동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89명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평가는 거꾸로 47명이 이미 초대되었던 작가라는 말이어서 빛이 바랜다. 브루스 나우먼, 한스 하케, 게오르그 바셀리츠 등은 기시감 못지않게 구작들과 다름없거나 더 못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 전시의 혁신성을 떨어뜨린다. 앞서 언급한 아이작 줄리언의 <렉처-퍼포먼스> 프로젝트나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2013)과 같은 몇 개의 수행적 프로젝트를 제외하면-사실 그 정도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다른 비엔날레에서도 볼 수 있다-이번 전시는 형식적으로는 이전 전시들과 별반 차별화할 것이 없다. 아드리안 파이퍼가 칠판 위에 ‘Everything will be taken away’라고 적은 <Everything> 연작과, <The End> 연작을 통해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고발해온 파비오 마우리(Fabio Mauri), 동남아에서 만들어져 가나로 수입된, 가나 노동자들의 구조적 빈곤을 상징하는 코코아 포대자루들로 아르세날레 옆 회랑 전체를 뒤덮은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의 작품 <Out of Bounds>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노동착취와 세계화에 따른 지역적 양극화의 심화를 다룬 임흥순의 <위로공단(Factory Complex)> 등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가장 잘 연동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화연의 작품 <Botany of Desire> 역시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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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하케(Hans Haacke) <Blue Sail> 196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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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겐즈켄(Isa Genzken) <Realized and Unrealized Outdoor Projects> 1986~1991

개념적 요소는 가득, 비전의 차별화는 글쎄?
김아영의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는 복잡한 참조들과 그것들의 또 다른 복잡하고도 임의적인 조합이라는 구성이 몰입을 방해했다. 비엔날레 수상자로 황금사자상에 아드리안 파이퍼, 은사자상에 임흥순을 선정, 시상한 것은 ‘정치성’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이슈를 살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오쿠이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개념적 요소들의 구축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전시 자체로는 그러한 비전을 형식적으로 차별화해내지 못했다.
국가관 전시 가운데는 독일관의 ‘Fabrik’에 소개된 히토 스테예릴(Hito Steyerl)의 <Factory of the Sun>(2015)이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지하’에 설치된 ‘사이버 비치’에서 게임 형태로 제시되는 전지구적 저항의 미션을 텍토닉 댄스와 인터뷰 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폴란드관 작가인 C.T 야스퍼(Jasper)와 요안나 말리노스카(Joanna Malinowska)의 <Halka/Haiti>는 18세기에 아이티 독립을 위해 싸웠던 폴란드 탈영병들의 후예에게 스타니슬라브 모니우츠코의 1858년 작 오페라 <Halka>를 들려주기 위해 폴란드 국립 오페라단이 그 후예들의 마을인 Cazale의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영상이다. 덴마크관의 단 보(Danh Vo)는 1861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청년 테오파네 베나르(Théophane Vénard)가 아버지에게 남긴 위로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빈 병 박스, 깨진 조각들, 낡은 테이블 등을 사용하여 죽음과 운명, 기억과 미래 사이에 끼여있는 존재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르데코 화가이자 분리주의 화가였던 알폰세 무하(Alphonse Mucha)의 회화 <Slave for Humanity>(1926)와 카를 마르크스의 <환영(Illusionism)>에 대한 글을 독특한 미장센으로 해석한 체코&슬로바키아관의 지리 다비드(Jiri David)의 <The Apotheosis>, 그리고 아프리카의 인종차별과 극단적인 가난, 사회-정치적 절망감을 강렬하게 풀어낸 <Trans-African Project: Invisible Borders> 등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우루과이, 아르메니아관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이번 국가관의 황금사자상은 20세기 초의 대학살(genocide)로 촉발된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이산)를 다룬 아르메니아관(큐레이터 아델리나 본 휘르스텐베르그(Adelina von Fürstenberg))에 돌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이 국가관은 멀리 리도(Lido) 섬에서도 더 가야 하는 외딴 섬(Isola di San Lazzaro degli Armeni)에서 열리는데다가 수상 선정 결과가 오프닝 이후에 발표되는 바람에 프리뷰에 참석한 많은 이가 볼 수 없었다. 전준호와 문경원은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주제로 ‘매우 다루기 어려운’ 한국관의 외벽과 내부를 모두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야심찬 영상설치 작품을 보여주었다. 임수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작품은 카셀 도쿠멘타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선보인 <News from Nowhere>의 시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디스토피아적 환경에서의 예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많은 이가 국가관 수상 가능성을 점쳤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의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제시한 ‘미래들’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상이한 미래의 비전을 다룬 게 아닌가 싶다.(물론 국가관 전시가 전체 비엔날레의 주제와 반드시 연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병행전시는 아니지만 피노 컬렉션의 ‘Punta della Dogana’에서 열린 <혀의 미끄러짐(말실수, Slip of the Tongue)>은 덴마크관 작가로도 출품한 베트남 출신 작가 단 보가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한 전시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다. 어쩌면 이 전시는 오쿠이 엔위저의 비엔날레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전시’의 강력한 기능을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스토리, 참조, 지식에 대한 의존 대신 작품들에 대한 집중도와 작품들 상호 간의 조응만으로 조용하게 고통과 깊은 공감을 생산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큐레이팅을 보여주었다. 나이리 바흐라미안(Nairy Baghramian)의 작품 <혀의 미끄러짐>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전시에는 단 보를 비롯하여 동시대작가들 (장-뤽 물렌느(Jean-Luc Moulène), 펠릭스-곤잘레스 토레스(Felix-Gonzales Torres), 로니 혼(Roni Horn) 등)의 작품 외에도 16세기 작가인 조바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그리스도의 머리>와 같은 박물관 소장본들도 함께 전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은 2010년 84세로 작고한 낸시 스페로(Nancy Spero)의 <Codex Artaud>(1971~1972)로, 분노와 격정에 가득 찬 앙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의 글들을 34장의 종이 위에 드로잉, 페인팅과 함께 콜라주한 작품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 작가들의 참여전시가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승민이 기획한 <Sleepers in Venice>는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혜영, 강임윤, 장지아, 이현준 등이 참여하여 국제적인 미술행사 시즌을 경험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44개의 병행전시 중 하나로 열린 <단색화전>은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미 80대 중반에 들어선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화백이 직접 오프닝과 리셉션에 참여했으며, 매우 많은 유럽의 주요 미술계 인사가 한국의 1960년대 아방가르드 회화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일본 모노하(物派)가 회화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의 아방가르드 회화로서 단색화의 의미가 더욱 깊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이 엔위저의 표현처럼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지만, 동시에 과거는 현재의 미래인 것이다. 그것은 예술에서나, 세계의 현상태(Etat des choses)에서 모두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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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베니스는 처음이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중 참여한 나라 중 눈길을 끄는 국가관이 있었다.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하기 때문. 그레나다, 모리셔스, 몽골, 모잠비크, 그리고 세이셸 제도다. 또한 에콰도르, 필리핀, 과테말라가 1950~1960년대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참가해 관람자의 이목이 집중됐다.
참가국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레나다는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40여 년에 걸친 독립 투쟁과 혁명 실패, 침략의 역사를 겪어온 그레나다 작가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 섞인 내외부의 시각을 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모리셔스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모리셔스와 유럽 작가 간 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과 교접한 결과물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몽골은 2명의 작가가 참여해 몽골 특유의 유목민 문화를 담은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모잠비크는 예술과 전통의 연계점을 보여주는 작업을, 그리고 세이셸 군도는 그곳을 상징하는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작품 등을 선보였다.
오랜만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국가관도 눈에 띄었다. 1966년 이후 49년 만에 참여한 에콰도르관은 마리아 베로니카 레옹 베인테밀라(Maria Veronica Leon Veintemilla)의 단독 작품으로 꾸며졌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작가는 강렬한 금과 물의 투명성을 주요 요소로 하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51년 만에 다시 참가한 필리핀은 4명의 작가가 빈티지 영상과 설치 등을 선보였다. 과테말라는 1954년 참가한 이후 61년 만에 베니스를 다시 찾았다. 10명의 작가가 책과 영화, 오페라 등에서 영감받은 사진작업 등을 선보였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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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텐체 루이즈, 다닐로 이랑 이랑, 제레미 기압 (Jose Tence Ruiz, Danilo Ilag-Ilag and Jeremy Guiab <et al., Shoa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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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와 권위, 그늘, 경쟁의 현장에 서다

이용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

단색화 (4)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개인적으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받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심사위원 선정에 대해 소감을 부탁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은 예술감독이 추천,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아 임명된다. 상(賞)의 중요성이나 시사성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이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선후배 미술인이 많은데 먼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송구스럽기도 하다.
국가관과 본전시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5명의 심사위원이 합동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94개 국가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 검증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퍼져 있는 국가관을 찾아다니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들끼리 현장에서 하는 뜨거운 토론이 매우 유익했다.
임흥순 작가가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 준다는 시각이 있다.
고통을 나누는 현장성과 시적 감수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라는 것이 임흥순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상은 국가경쟁력과 비례한다는 과거의 지배이론은 많이 소멸됐다. 오히려 얼마나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생산하는지가 더 관건이다. 수상이 마치 미술올림픽에서 메달을 받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예술과 상이라는 다소 미묘한 관계를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는 관람객 입장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어떻게 보았는가?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하는 매우 독특한 구성이었다. 예술의 자본종속을 통렬하게 비판하거나 1867년 발행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을 주제의 전방에 배치하는 등 매우 격렬한 기조를 취했다. 그런가 하면 세계 각 지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억압의 현장을 고발하거나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등 오늘날 예술의 역할이 목격자 수준을 넘어 참여의 길로 나가도록 안내하는 담론들을 주도했다. 베니스의 과거 전시형태와 견주어 훨씬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자주 대하는 시각예술의 미학적 아름다움이나 재미, 정보사회와 과학기술만능주의가 선사하는 디지털 문화론 등의 맥락은 억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로, 큐레이터로 지난 20년 동안 본 어떤 전시보다 한편으로는 숭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이론화된 전시, 이념화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 넘치는 비엔날레였다.
수년간 광주비엔날레를 책임진 당사자로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가 주는 교훈이라면?
광주비엔날레는 그 창설 배경에 ‘광주정신’이라는 깊고 넓은 철학이 있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성공 배경에는 세계 속에 광주를 넓게 열어놓고 광주를 정치, 사회, 문화행동적 플랫폼으로 유도했음을 들 수 있다. 현재 광주비엔날레재단을 구성하고 있는 분들도 이러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베니스는 국가관체제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엔날레다. 그리고 감독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소수의 이사가 무한책임을 지는 체제다. 미술, 건축, 영화, 음악, 연극 등 한 재단에서 장르를 분산시키는 것은 자칫 힘을 빼는 체제가 될 수 있어 경영합리화나 경쟁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베니스 비엔날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참 많다. 그러나 참고할 점이 더 많다.
병행전시의 하나인 <단색화전>을 기획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나는 오히려 늦게 전시기획을 맡은 한 명일 뿐이다. 다만 무대가 베니스여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한국현대미술의 20세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언급 할 두 가지 핵심적 담론이 있다.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을 토대로 한국적 토착화를 시도한 단색화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과 모방을 비판하고 자생적 미학으로서의 정치사회적 비평을 시도한 민중미술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미술사와 비평적 담론을 두텁게 한 중요한 족적이다. 단색화가 뒤늦게 시각적 형식에서 설득력을 획득하고 시장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면, 민중미술은 과거의 과도한 정치성, 이념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과정에 있는 괄목할 만한 시각적 현상들이다. 시장에서 단색화에 빠르게 반응한 것은 미술사적 중요성도 있지만 그 아이템이 소장 가치가 강한 회화라는 점도 반영되었다. 회화는 시장의 영원한 우군이니까. 시장의 시각을 떠나 주제적으로 바라본다면 향후 분단국가, 또는 이념논쟁의 생생한 현장으로서의 한국미술을 담아낼 현실주의 미술이 몰고올 제2의 파장은 폭발적일 수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한국미술사 정립 과정에서 1970-1980년대를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세밀하고도 넓은 시각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운영계획을 알려달라.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했으며, 상하이 푸둥에 있다. 전시면적은 약 4000㎡다.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도 사립미술관이라는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 자율성을 잘 발휘할 생각이다. 중국과 상하이, 아시아와 세계가 어떻게 상생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과 글로벌 프로그램이 반반으로 운영되었는데 더 연구해볼 생각이다. 굳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또 다른 비엔날레도 생각하고 있다. 바탕은 현대미술이지만 영화와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강연시리즈를 담는 비엔날레 같은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외국 일이 많은 편이다. 특히 내년 후반기부터는 도쿄예술대학의 글로벌아트프로그램 교수를 겸하며, 영화와 건축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황석권 기자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Arsenale

이탈리아 국영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에선 본전시를 중심으로 자르디니에 국가관을 건립하지 못한 국가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장 입구부터 마지막 전시관까지 작품이 빼곡히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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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Untitled(Not falling off the wall)> (부분, 총8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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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레이노드 드워(Lili Reynaud Dewar) <My Epidemic(Small Bad Blood Opera)> 2015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에 배너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중국

쉬빙(Xu Bing) <Phoenix> 2010

아르세날레 끝자락에 있는 쉬빙의 작품은 그의 두 번째 베이징 생활의 메인 작품이었다
베니스_Panorama7

카타리나 그로스(Katharina Grosse) <Untitled Trumpet> 벽에 아크릴 660×2100×1300cm 2015
아크릴 물감을 천에 채색하고 부서진 벽 등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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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연 <욕망의 식물학>(왼쪽) 2015
“어떤 사실이나 메시지의 전달보다는 욕망하는 상태를 암시하는 여러 요소들을 연결해가면서 인공적인 생태계를 배양하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싶었다”(남화연)

페루

Peru

질다 만틸라(Gilda Mantilla) & 레이몬드 차베스(Raimond Chaves) <Misplaced Ruins>
우리의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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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류자쿤(Liu Jiakun) <With the Wind> 2015
참여 관객의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낚싯대 끝에 달아 늘어뜨려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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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onesia

헤리 도노(Heri Dono) <Voyage-Trokomod> 2015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을 연상케 하는 작업으로 인류의 역사가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 주민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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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valu

빈센트 J.F. 황(Vincent J.F. Huang) <Crossing the Tide> 2015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9개의 섬 중 2개가 사라진 투발루의 상황이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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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마르자 미글리오라(Marzia Migliora) <Stilleven/Natura in posa> 옥수수 1993
옥수수로 채운 방을 통해 토지 소유권 갈등, 착취 등으로 점철된 인류 농업의 역사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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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비엔날레, 가까이 들여다 보기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이슈는 오쿠이 엔위저가 총감독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120년 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출신 총감독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기획하는 전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여러모로 관심을 모은 것이 사실. 그래서였을까? 참여한 135명의 작가 중 35명이 흑인 작가였으며 이중 절반가량이 아프리카 출신임을 두고 개막 전부터 여러 언론에서 기사를 쏟아냈다. 개막 후 《르몽드》는 “검은 대륙을 위한 비엔날레”라는 제하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서구의 뿌리 깊은 문화패권주의의 열망이 살짝 비치기도 하는 광경이다. 따라서 오쿠이의 개인적인 성향과 결합해 비엔날레가 이러한 관점을 대놓고 드러내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팁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6일 열린 공식기자간담회에서 오쿠이로부터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를 설정한 이유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감사의 말과 함께 오쿠이가 제시한 이번 비엔날레 전시구성의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3개의 ‘필터(Filter)’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그것은 전시공간을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생동: 서사의 지속’, 전 지구적으로 펼쳐진 지정학적, 환경적, 경제적 무질서를 뜻하는 ‘무질서의 정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불안과 무질서를 야기하는 모더니티의 중심인 자본의 픽션과 본성을 이야기하는 ‘《자본론》: 라이브 리딩(A Live Reading)’이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개막일인 5월 9일에는 각 부문별 시상식이 거행됐다. 먼저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아르메니아(Armenia)관이 받았고, 국제전 황금사자상은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을 출품한 미국의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가, 은사자상은 <위로공단>을 출품한 임흥순이 받았다. 특별언급상(Special Mentions)은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독일), 아보우나다라 콜렉티브(Abounaddara collective, 시리아), 마시니사 셀마니(Massinissa Selmani, 알제리) 3명의 작가와 조안 조나스(Joan Jonas)가 참가한 미국관이 수상했다. 이보다 먼저 발표된 황금사자상 특별상(Special Golden Lion)은 미국의 수잔 게즈(Susanne Ghez)가, 황금사자상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은 가나 출신의 알 아나추이(Al Anatsui)에게 돌아갔다. 알 아나추이 역시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인작가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The winners, i premiati, 56.Biennale d'arte Venezia, Venice
오른쪽 수상자 일동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알 아니추이, 수잔 게즈, 오쿠이 엔위저, 파올로 바라타(운영위원장), 아드리안 파이퍼, 조안 조나스, 임흥순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베니스의 한국 작가들

임종은 전시기획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베니스 일대에서 다수의 한국작가가 40여 개에 달하는 병행전시와 기획전에 참여하거나 개인전을 열었다. 이는 세계적인 미술 빅이벤트 현장을 찾은 각국의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및 미술계 관계자와 조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월간미술》은 베니스 현장에서 벌어진 우리 작가들의 활동을 담았다.

올해 베니스는 한국 작가 다수의 비엔날레 본전시 참가, 임흥순의 수상소식 등으로 더욱 매력적인 현대미술의 현장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고조된 비엔날레의 분위기 속에서 국가관과 본전시장 이외에도 베니스 섬 곳곳에서 한국 작가들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었다. 국제전이라는 쉽지 않은 여건 속에, 특히 베니스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연다는 만만치 않은 과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작가들의 전시는 한정된 기간에 다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20대 작가부터 30~40대 작가뿐만 아니라 원로작가들과 유고작가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골고루 볼 수 있었다.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전시도 여러 형태로 구성되었다. 게릴라전을 표방한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전시,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개인전, 베니스의 대학전시장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비엔날레 병행전시의 일환이면서 해외 미술관 기획 특별전 등 이 기간 베니스에서 열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전시 형태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수상버스 정류장과 전시장 등 주요 거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전시홍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전시 <The Light, The Shade, The Depth>의 포스터를 보니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된 작품을 연상케 했다. 잔잔한 이미지 속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영문이름 ‘김민정’이 적혀 있어 밀라노와 파리를 근거로 작업하는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됨을 알 수 있었다.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비엔날레 전시장인 아르세날레 초입의 카 보토(Ca’boto)를 방문했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이용한 김민정의 작품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삶과 역사가 담긴 공간(카보토)과 작품을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미학적 접근방식이 구현된 은은하고 차분한 화면이 잘 어우러졌다. 이번 개인전은 앤 다이안 갤러리를 통해서 전 바젤미술관 관장이자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 커미셔너 등을 지낸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  장 크리스토프 아망이 기획하였다.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박병춘의 전시는 문화예술 기업인 ‘체네 인터내셔널’ 주최, 카포스카리대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대학은 본관 전시장에서 브루스 나우먼 등의 전시가 열리는 등 세계적 예술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곳에서 박병춘 작가를 만나 개인전 준비의 어려움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인 최초로 유서 깊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과 전통매체 작품으로 현장의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에 무척 고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채집된 풍경(Collected Landscape)>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관 전관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알 수 있도록 최근 작업과 신작이 짜임새 있게 설치되었고, 공간에 맞춘 듯 전시된 평면작품뿐만 아니라 검은 비닐봉투를 이용하거나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붉은 전등과 130개의 쇠갈고리에 회화작품을 걸어 연출한 설치작품 등은 박병춘의 실험적인 면모와 역량을 보여주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행사인 병행전시(Collateral Event)에 참여한 한국 작가 이매리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리알토 다리와 산마리코 광장 사이에 있는 팔라조 카 파카논(과거 카사노바의 저택으로 현재 1층은 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다)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이 주최, 주관하고 왕순지 관장이 기획한 이 전시의 제목은 <Humanistic Nature and Society(山水)-An Insight into the Future>이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 13인의 충실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모아 주제가 입체적으로 드러난 전시였다. 전시는 ‘생성-과거의 형상’, ‘진화-현재의 형상’, ‘산수 사회-미래의 형상’으로 나뉘어 작가들의 상상력과 철학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참여 작가 중 유일하게 한국 작가인 이매리도 현대적인 산수 의미에 대한 연구와 동양철학의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작업세계를 펼쳐냈다. 영상 설치 작업인 <Poetry Delivery>는 50여 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민족, 문화, 종교, 역사, 사회 등이 담긴 시를 낭송하는 영상과 이매리 작가의 고향인 강진으로부터 서울에 이르는 과정이 담긴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고, 벽면을 가득 채운 50개의 스피커에서 낭송 시가 흘러나오는 설치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환경 파괴에 대해 동양의 산수정신으로 성찰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민족과 국가의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해 교차 해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항들을 산수화와 불가분의 관계인 시적 세례를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이매리의 의도를 충실히 담아 보여주고 있다.
중견 작가 개인전과 병행전시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의 전시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Sleepers in Venice)>가 흥미로웠다. 베니스라는 현대미술의 현실 속에서 작가들이 취하는 태도와 관점의 진솔함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베니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크 월링거의 <Sleeper>에 영향을 받아 기획되었다. 기획자 김승민은 “이 두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치열한 격전장의 모습이자 대형 자본의 유입으로 예술이 작아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베니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리알토 다리 부근에 마련된 전시공간에서 참여 작가 8명은 8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획에 영감을 준 마크 월링거의 영상작품 <Sleeper>도 상영되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스파이의 도시인 베를린에서 곰으로 변장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점으로 삼아 자신이 만든 틀(작업)에 갇힌 듯 미술관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임윤은 베니스의 안료로 수초와 물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화면을 표현하였는데 자연광이 드리운 전시장과 조화를 이루었다. 구혜영은 <그라핀>이라는 흥미로운 최첨단 소재를 이용하여 영상, 설치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김덕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자 했으나 결국 비판적인 시각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는 모순적인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우디킴은 어두운 방에 앉아 있는 관객의 주위를 돌며 적외선카메라를 쓴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다. 이현준은 일상 속에서 사소한 재미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작품과 사운드가 결합된 영상작품을 풀어냈다. 장지아는 하늘거리는 커튼에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셰익스피어 시 <소네트>를 썼다. 그녀의 불멸의 사랑은 햇빛을 받으면 변색되는 소피로 한 글자씩 찍어 만들어졌다. 리알토 다리 쪽 운하에 걸린 커튼이 햇빛을 받아 불멸을 뜻하는 단어 ‘Immortality’를 만들지만 그림자는 이내 햇빛에 의해 지워졌다가 다시 생겨난다. 듀오 아티스트 MR36(료니, 모즈)는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엄청난 틀 속에서의 보잘것없는 존재인 작가 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천장에서 일정 간격으로 떨어지는 종이가 바닥에 쌓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형상으로 풀어내었다.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함께 마련된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 전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몽골과 필리핀 국가관이 있는 팔라조 벰보와 팔라조 모라에서도 한국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가 열렸다. 이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이우환의 전시가 역시 The European Cultural Centre에 의해 진행된 곳으로 이번 전시 제목도 <Personal Structures-Crossing Borders>이다. 이 전시는 50개에서 100여 명이 참여했으로 유럽 작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팔라조 정원부터 건물 내부 곳곳에서 설치, 조각, 미디어, 비디오, 회화, 드로잉, 사진 등으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친숙함 때문이었는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이이남, 한호, 차수진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팔라조 벰보에 전시된 한호의 작품은 여러 개의 패널을 연결하여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였는데 패널에 함입된 조명색이 서서히 변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패널의 얇은 표면에서 빛이 새어나오며 구한말 혹은 식민시기 한복을 입은 여성, 군복을 입은 남성, 날아가는 새 등의 이미지가 중첩되었다. 팔라조 모라에서 전시하는 차수진은 색실과 오브제 등을 이용하여 공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설치작업을 보여주었다. 층고가 높은 공간에 자연광이 비취며 높고 낮게 드리운 실의 섬세한 연출은 허공에 자수를 한 듯하다. 역시 같은 공간에 전시된 이이남의 작품은 어두운 방에 큰 수조와 물결이 만드는 그림자, 바닥면부터 천장까지 설치되 모니터 등으로 공간을 장악했다. TV가 수조에 담겨졌다 꺼내졌다 하는 기계적인 동작이 반복될 때, TV화면에서는 새가 날갯짓을 한다. 마치 세례식이 거행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디지털이라는 비인간적인 물체를 통해서 가장 인간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기계가 물에 적셔지는 것은 곧 죽음(정지 혹은 고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계가 물을 향해 내려가는 시간이 마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삶을 연상시킨다. 작가에게는 모터의 기계음과 울림이 인간이 삶 속에서 자아내는 고통의 신음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미술관과 관계 기관에서 판을 벌리는 베니스는 이 기간 섬 전체가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전시가 열렸다.(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한국 작가 참여전시도 상당수 있다) 동시에 비엔날레와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기 위해 모여든 문화미술계의 유명 인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엔날레를 계기로 열기(비록 어떤 본질과 깊은 관계가 없더라도)가 감도는 베니스 현장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그들의 활동 연장선에서 보게 된다. 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울여온 노고를 간접적나마 느꼈으며 또한 짐작하기에 생긴 나의 한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 베니스에서 작가들이 보여준 작품들은 또 다른 맥락을 생성할 것이고 그것이 펼쳐질 앞으로의 과정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낼지 기대되며, 또한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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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iers Reimagined
팔라조 그리마니 뮤지엄 Palazzo Grimani Museum
5.9~11.22
병행전시로 열린 이 전시에는 46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전광영과 김준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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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ed Landscape
카 포스카리 대학미술관 (Ca’ Foscari Esposizioni)
5.8~8.30
동양화가 박병춘이 이탈리아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다. 높이가 5m가 넘는 대형 평면작업을 비롯해, 길이가 25m가 넘는 2층 로비 공간에 130여 장의 동양화를 갈고리에 매단 설치작업도 함께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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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풍경-가족> 한지에 먹 130×368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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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Structures-Crossign Boarders
팔라조 벰보/팔라조 모라 Palazzo Bembo/Palazzo Mora
5.9~11.22
50여 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에 한국작가 6명이 출품했다. 이이남 한호 박기웅 이명일 차수진이 바로 그들. 참여 작가 규모로 짐작할 수 있듯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호
한호 <EternalLight-Dong Sang I Mong>(부분) 캔버스에 유채 LED 영상설치 450×400×45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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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stic Nature and Society(Shan-Shui, 山水)-An Insight into the Future
팔라조 카 파카논 Palazzo Ca’ Faccanon
5.7~8.4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최근 관장으로 선임된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이 기획한 이 전시에는 13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병행전시인 이 전시에 이매리가 한국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참여, 영상작업 <Poetry Delivery>(2015)를 출품했다. 고향에서 서울로 가는 여정을 담은 이 영상작업은 산업화에 따른 환경파괴와 인간의 욕망 등을 다뤘다.

이매리 (2)
이매리 <Poetry Delivery> 25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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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ght, The Shade, The Depth.
카 보토(Ca’ Boto)
5.5~9.27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김민정의 개인전. 한국 전통 기법인 먹과 물감, 한지를 이용한 김민정의 작업은 베니스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호응하였다.

김민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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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ers in Venice-The Purgatory of Desires
칼레 델 카르본 Calle del Carbon
5.6~6.7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승민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7명(팀)의 한국작가가 참여한 전시. 강임윤 김덕영 구혜영 우디킴 이현준 장지아 MR36의 신작을 선보였다. 전시명 Sleepers는 마크 월링거의 영상설치 <Sleeper>에서 땄는데 결국 세계미술의 빅이벤트인 베니스 비엔날레로 회귀하려는 작가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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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ers in Venice전> 참여작가. 왼쪽부터 김덕영, MR36(료니), 강임윤, 구혜영, 장지아, 김우디,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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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마치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다”

슬리퍼스 (3)김승민 <Sleepers in Venice전> 큐레이터

세계 최고, 최대의 미술 빅이벤트로 평가받는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고 참여하는 작가도 있지만 이 치열한 각축의 현장에서 자신의 작업세계를 선보이려는 작가도 속속 모여든다. 여기에 7명의 당찬 한국 젊은 작가가 모였다. 이들에게 비엔날레 초대장은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베니스에서 펼쳐보이려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전시를 기획한 김승민 큐레이터를 만나 들어보았다.
<Sleepers in Venice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해달라
10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매번 찾았는데 때마다 그 거대함에 위축되어 의욕을 상실한 채 런던으로 돌아가곤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글로벌 담론 형성의 장이긴 하지만 국가관은 문화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전쟁터 같았다.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모습은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결국 작가는 미술현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작가가 베니스에 다시 돌아오는 현상은 거대한 미술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직결된다. 베니스에 가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에게 베니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나는 자본도 없고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도전정신과 진정한 비평정신을 갖춘 젊은 작가들과 베니스 비엔날레의 심장부로 들어가서 판을 한번 바꿔보자라는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것이 전시를 기획한 계기가 되었다.
처음 기획의도를 어떻게 설정했으며, 작가 선정과 준비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해외와 국내 거주 작가, 미술 비전공자를 비롯 다양한 작가를 혼합하여 이들 각자의 관점과 장점이 모여 이야기가 만들어져 나갈 때 파급될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예상했다. 즉 장소특정적 작업, 퍼포먼스 작업, 회화, 영상작업, 관객참여적 작업 등 주제에 맞게 떠오르는 작가들을 먼저 접촉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 주제는 작업을 왜 하는지, 우리는 베니스에 왜 가는지인데, 장지아의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이라는 영상작업이 떠올랐고 바로 연락을 했다. 세계시장에서 잘나가는 작가들은 진정한 화두를 던지는 이들이다.
마크 월링거의 작품 <Sleeper>(왼쪽 사진)를 본 작가들의 해석이 담긴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구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전시 제목은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크 월링거의 영상작업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소설과 영상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느꼈다. ‘슬리퍼’라는 명칭은 잠자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스파이들이 어떤 사회에 잠입하기 위해서 가면을 쓴 채 지령을 받기 전까지 잠복근무하는 수습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크 월링거가 베를린 국립미술관 전시 초청을 받았을 때 이런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베를린을 상징하는 곰으로 분장하고 열흘 동안 미술관에 갇혀서 지냈다. 작가가 작업이자 자신이 세워놓은 어떠한 룰에 결국 숨을 조이게 되고, 그 안에서 못 벗어나는 고뇌가 담긴 작업이었다. 가장 심각한 내용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풀 수 있는 해학을 아름다우면서 장엄한 베니스와 연결했을 때 작가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세계적인 미술 빅이벤트와 이번에 기획한 전시를 병렬로 보여주면서 의도한 바는 무엇인가?
세계 미술전문가들이 총집합하는 베니스에서 되짚어볼 만한 전시 주제로 큐레이팅을 하여 베니스에 오는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작가들을 전략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래서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기간에 개막했다. 한국작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실험적 전시로 가능성을 제시하고, 국제무대에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크 월링거가 같이 전시한다는 것도 큰 홍보 포인트였다. 또한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데 현대미술 작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해외 유학을 하고 세계를 무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은 작가가 다시 국내로 돌아와 다시 나갈 수 없는 현실과 이유도 짚어보고 싶었다.
ISKAI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소개를 부탁한다.
사회적 목적을 띠는 공공미술과 연계된 전시기획과 문화교류가 ISKAI의 모토다. 2011년에는 경방 타임스퀘어 쇼핑몰에서 모리츠 발데마이어의 공공미술전시를 기획했으며, 리버풀 비엔날레 시티스테이츠 한국도시관에서는 윤석남, 함경아, 샌정 등 한국과 영국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를 기획했다. 한·영수교 130년, 6·25전쟁 종전 60주년을 맞아 <어느 노병의 이야기전>도 기획했다.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런던에서 열었던 미술과 과학이 접목된 전시를 한국에서 할 계획이 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융복합적인 전시로 미술뿐 아니라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작업을 콜라보하는게 꿈이다.
황석권 기자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단색화 Dansaekhwa
팔라조 콘타리니-폴리냑 Palazzo Contarini-Polignac
5.7~8.15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 전시가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열린다. <단색화전>이 바로 그것.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이 기획하고, 1970년대 베니스의 유서 깊은 건물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단색화의 태동기와 중기, 그리고 근작에 이르는 70여 점을 소개한다.

단색화 (6)

김환기 전시광경 사진 왼쪽은 <5-IV-71 #200 Universe> 면에 유채 254×254cm(2점) 1971

베니스에서 만난 단색화의 현재적 의미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열리는 <단색화전>을 기획한 이용우 큐레이터는 서구의 모노크롬과 단색화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신체적 행위가 동원된, 색채의 정신적 승화를 위한 자연 회귀적 사고가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우리 내부에서도 논의가 한창인 단색화에 대한 베니스 전시를 또 하나의 ‘토론장’으로 규정한다.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단색화란 ‘단일 색채의 회화’라는 뜻으로 1970~80년대 격변기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미술형식이다. 단색화는 특정한 미술형식의 미학적 정체성이나 맥락의 특징을 보전하기 위해 발생국가의 어원이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미술사의 전통에 따라 한국어, 또는 한자어로 표기된 용어이다.
단색화는 서구의 모노크롬회화와 유사한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그 역사적 배경이나 미학적 실천, 담론에서 상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구의 모노크롬은 다색에 대한 거부와 반대개념으로서 극단적 색채의 대비에, 그리고 회화의 종말을 예고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의 실천으로서 형식의 단순성에 착상했다. 그러나 단색화는 평면과의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신체적 행위가 동원되며, 색채의 정신적 승화를 위한 자연 회귀적 사고가 본질을 이룬다.
모노크롬은 본질적으로 서구 아방가르드 미학의 바탕 위에서 탄생한 형식주의 예술로서 회화나 디자인, 영화, 사진에서 색채의 감수성을 여과하고 배제해 절제의 미학을 극대화시킨다. 회화의 경우 캔버스 표면에 절대적 긴장상태를 유발하고 도전하며, 예측 가능한 실험적 결과들을 논리적으로 해명한다. 그러나 단색화는 색채의 감수성을 배제하기보다는 단색성을 통해 색채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회화적 친근성(affinity)과 유연성을 유지한다. 특히 평면에 색채를 바르고, 뜯고, 캔버스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고, 긋고 하는 제작 과정의 신체적 행위가 작품의 생산 과정에 중요한 퍼포먼스 요소로 등장함으로써 비예측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단색화는 회화적 전통에 대한 단절이나 배제, 긴장이 아니라 색채의 단순성에 기반을 둔 평면의 진화, 변형을 바탕으로 한 내면적 해석이 강조된다. 모노크롬 회화와는 달리 단색화에서 나타나는 형식적 절충주의는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단색화는 1970년대 당시 반제도권, 반관전(官展)운동에 앞장섰던 이른바 한국모더니즘 1세대 주요 작가들의 의식의 결집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저항성이나 급진적 실험의식에도 불구하고 단색화는 집단주의를 토대로 한 문화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거나 거대한 운동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참여 작가들의 개별적 이해와 해석을 토대로 전개된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단색화 작가들의 배경에는 ‘반국전선언’이나 ‘아방가르드 예술가협회’의 활성화, 시각예술에서 신체와 언어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인식 등 이른바 모더니즘 미학의 전방위적 가치들이 함께 등장한다.
단색화 탄생의 사회정치적 배경은 단색화를 이해하는 미학적 형식뿐만 아니라 단색화의 정신적 문법을 해독하는 열쇠가 된다.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목되는 일제 식민지 40년과 그 수탈, 180만 명의 희생자를 낸 6·25전쟁, 남북 분단, 4·19혁명, 5·16군사정변, 군사독재, 그리고 경제개발 중심주의 등은 한국사가 지나간 자취이자 한국인이 겪은 분절이다. 특히 1960~80년대 군사독재로 인한 사회적 억압현상이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중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형성과 실천의 초기단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가치의 혼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이어진 한국인의 미학적 감수성이나 혼(魂)은 단색화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단서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단색화는 1950~6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운동 등 서구모더니즘의 흐름과 한국의 현대미술이 어떤 영향과 연관관계에 있었는지, 또는 정신적, 형식적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 자주성을 생산했는지를 연구하고 검증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특히 한국현대미술의 독자적 미학형식을 담론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비판적, 또는 긍정적 요소로서 담론 생산의 단서이자 근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학적, 미술사적 기록과 근거들은 작품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나 형식 중심의 판단을 넘어 사회학적 비평과 문맥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 예술과 대중의 접지(earthing)를 위한 그라운드 등에 대한 고려에서 관건이 된다. 단색화예술을 포함한 한국모더니즘, 그리고 리얼리즘 예술 등 지난 세기를 풍미한 다양한 경향들은 그 진지한 실험적 맥락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계보학적 파벌주의나 분파적 속성을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 단색화에 대한 탐색은 단순한 전시가 아닌 글로벌 시각을 통하여 본격적 검증을 시작하는 첫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의 모더니즘형식이나 예술의 사회학적 가치에 대한 검증으로 발생한 1980~90년대 민중미술과 리얼리즘미학 등을 비로소 동일한 구도에서 통합 검증하는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병렬전시(collateral event)로 마련된 단색화 전시는 최근 3년 사이 이뤄진 단색화에 대한 다양한 전시나 출판, 세미나, 그리고 국제사회의 관심들을 종합한 또 다른 토론장이다. 그 이유는 단색화가 그 명칭에서부터 전개 과정에 대한 배경, 미학적 해석, 작가들에 대한 역사적 구분과 선별작업,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 시장의 변화 등에서 아직도 토론되어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시기획자로서 이번 전시가 전시행사가 아니라 단색화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나 관객들의 관심을 배가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단색화가 한국의 미학적 자주성이나 한국미술의 대표성을 갖는 다양한 모멘텀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동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전개된 모노하나 구타이 그룹 등이 일본이나 동양의 대표적인 실험적 시각문화현상으로 미학적, 미술사적 평가를 받아온 것과 유사한 제안이다. ●

하종현 <Conjunction 74-25> 200×100cm 1974

* 이 원고는 베니스 팔라조 콘타리니-폴리냑에서 열린 <단색화전> 브로셔에 실린 필자의 글을 편집한 것임.

 

 

SPECIAL FEATURE 시선의 정치, 동물원을 다시본다

미술관 옆 동물원, 그 시각적 ‘애완(愛玩)’의 역사와 이별하기

박소현 도쿄대 미술관학 박사

미술관과 동물원은 세계에 대한 욕망의 발현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더 큰 세계, 더 큰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인은 뱃길을 통해 미지의 세계와 만나고 유럽 바깥을 상상하게 되었다. 유럽인에게 더 큰 세계는 난생처음 보는 희귀한 물건들과 동식물의 대량 유입으로 체감되었고, 덕분에 공격적인 식민지 확장에 힘입은 탐험과 약탈이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동물원은 이 더 큰 세계를 상상하고 가시화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각국의 지배자들은 자국에 없는 동물들을 포획하고 열정적으로 수집하면서 권력을 교환하고 확장해갔던 셈이다. 1515년 어느 날, 이 대항해시대를 선도한 포르투갈 리스본에 인도코뿔소 한 마리가 출현했다.
당시 포르투갈령 인도에서 포획된 이 코뿔소는 120일간의 긴 항해를 거쳐 리스본에 도착했고,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의 동물원에 잠시 보관되었다가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세에게 선물로 보내지던 길에 선박 난파로 익사하고 말았다. 유럽인에게는 전설의 동물이었던 코뿔소가 잠깐이나마 그 모습을 드러냈던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여러 사람의 기록을 통해 그 실체가 전파되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코뿔소>는 그런 사람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코뿔소의 죽음에 이르는 여행경로는 당시 유럽에서 권력이 교환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 여행의 마지막은 아마도 박제가 되어 누군가의 분더캄머(Wunderkammer, Cabinet of Curiosities)에 소장되는 것이었으리라.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분더캄머 또는 쿤스트캄머(Kunstkammer)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이 둘은 신이 창조한 대우주에 비견되는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에 이러한 의지는 유럽 밖에서 약탈해온 신기하고 희귀한 광물이나 동식물의 박제 등을 수집하고 전시하려는 욕망으로 분출되었다. 유럽 왕실의 쿤스트캄머는 이 탐험과 수집과 권력의 삼위일체를 가장 정치한 형태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희귀동물의 박제 등과 같은 자연사적 유물뿐 아니라, 고대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값진 회화 등이 함께 소장되어, 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 또는 미술작품과 동물 표본이 동거하는 미분화된 상태를 체현하고 있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적 이성에 근거한 분류학이 체계화되면서, 이러한 동거상태는 막을 내리고 비로소 미술품 컬렉션과 동물 컬렉션이 다른 계통과 공간을 확보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미술관과 박물관(죽은 동물의 표본 수집 및 전시), 그리고 동물원(살아있는 동물의 수집 및 전시)이 분리되었음에도, 애초에 그 수집과 전시를 관통하는 욕망은 이후까지도 건재했다.
19세기 들어 만국박람회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에도 이 수집과 전시를 통한 국가권력의 집중과 가시화는 여전히 유효한 전략으로 채택되었다. ‘만국’에서 산출된 ‘만물’을 한자리에 모아서 전시하는 전지구적인 기획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등을 일종의 집합적인 단위로 총체화하는 강력한 기제였다고 하겠다. 뒤늦게 근대화에 착수한 일본에서 이 만국박람회 참여를 중요한 국가적 기획으로 간주하고, 내국권업박람회라는 이름으로 국내 리허설까지 수차 개최했던 일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각종 사물들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일이 근대적 세계 또는 국가를 상상하고 가시적 형태로 실체화하는 데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서 지난한 학습의 과정을 요했던 것이 바로 유럽의 분류학 체계였던 바, 초창기 일본의 박람회 역시 전통적인 박물학의 관점으로부터 이 근대적 분류체계로의 진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그 전해인 1872년에 일본 최초의 박람회를 개최했고, 일본 전국에서 조달한 서화, 골동품, 동식물의 박제 및 표본 등을 유리진열장에 넣어 전시한 다음 이를 대중이 관람하게 했다. 일반 대중을 관람객으로 설정한 근대적인 시각장치가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작동된 기점으로 볼 수 있는 이 박람회는 15만 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후 1877년에 에도막부의 상징공간이었던 우에노에서 제1회 내국권업박람회가 개최되고, 그 전시관을 계승하는 형태로 일본 최초의 미술관(일본 전통미술 소장)이라 할 박물관(현재의 도쿄국립박물관)이 개관하였다. 그리고 1881년에 제2회 내국권업박람회(1882) 전시관 용도로 박물관 건물이 신축되었다. 박람회행정의 일환으로 박물관이 개관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박물관의 소관 관청은 농상무성(農商務省) 박물국이었고, 이 농상무성 소속 박물관의 천산과(天産課) 부속시설로 우에노동물원이 개원하였다(1882). 이른바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익숙한 체제 및 장소성의 직접적 기원은 일본의 내국권업박람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미 1872년 박람회부터 동물표본이나 박제를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유리진열장에 격리시켜 전시함으로써, 전시대상과 거리를 둔 시각적 ‘애완’이라는 감각이 제도화되고, 죽은 동물(표본이나 박제)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살아있는 동물에까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86년에 박물관이 황실 업무를 소관하는 궁내성으로 이관되면서 제국박물관 시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제실박물관체제로 이어졌는데, 동물원 역시 박물관과 함께 궁내성으로 이관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산 동물을 넘어서 호랑이, 코끼리, 하마 등 외국의 진귀한 동물들이 도입되었다. 즉 미술관 및 동물원이 황실 소유로 이관됨으로써, 그 수집품의 예술적·보물적 가치 및 희소가치는 더욱 강화되었고, 미술품 및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거리를 둔 관조, 철저히 시각화된 경험으로서의 감상 역시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에도막부의 상징공간을 박람회 공간으로, 그리고 박물관 및 동물원이 들어선 거대한 근대적 상징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은 머지않아 식민지 조선에서도 재연되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일본 통감부는 고종의 양위를 강제하였고, 순종의 새로운 거처인 창덕궁 수선 공사를 진행하면서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에 박물관·동물원·식물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식기록으로는 순종이 ‘새로운 생활에 취미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으로 밝혀져 있으나,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다른 자료에서는 이미 계획단계부터 순종만의 취미시설이 아닌 일반 공개가 예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09년에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공개가 이루어졌는데, 이와 함께 공표된 것이 ‘어원종람규정’이라는 창경원관람규칙이었다. 이 규정에 따르면, 광질(狂疾)인 자, 만취한 자, 7세 미만으로 보호자가 없는 자는 입장이 금지되었고, 누추한 의복이나 마차 등을 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더해서 원내에서는 정숙하고 전시품을 만져서도 안 되었으며, 가축의 입장도 금지였다. ‘창경원’ 소속의 조선고미술을 전시한 박물관이나 동물원 모두 동일한 관람규칙을 적용받았던 셈인데, 흥미로운 점은 가축 입장 금지라 하겠다. 이는 시선의 주체를 인간으로 한정하고, 살아있는 동물일지라도 어디까지나 시선의 대상으로만 국한시킨 근대적 입장을 대변해준다.
한편 순종을 비롯해 일반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던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은 창경원 개원 이전에 서울에서 사립동물원을 운영하던 유한성(劉漢性)의 동물을 전부 매입하고 그를 직원으로 채용해 설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동물원에는 한국 각지에서 잡아온 호랑이, 늑대, 곰, 학 등과 외국에서 사들인 코끼리, 낙타, 캥거루, 악어 등의 이국적인 동물들이 있었고, 1930년대에 이르면 그 수가 180종 1000여 점을 넘을 정도로 늘어난다. 동물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공감은 각별해서, 1912년에 인도산 암코끼리가 위장병으로 죽은 것을 애도하는 신문기사에는 이 코끼리의 기념물을 제작해 동물원에 영구설치할 계획까지 보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동물원의 특별한 위상은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원 옆 미술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듯하다.
태생적으로 미술관과 동물원은 대상을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즐기는 ‘애완’의 전통이 근대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애완’의 말뜻이 주로 골동품이나 동물에 한정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애완’의 근대화란 다름 아닌 시각적 경험의 절대화이고, 세계에 대한 지배를 기저에 깔고 있는 시선의 욕망과 소유의 욕망이 유착된 수집과 축적, 그리고 이 수집품들의 체계적 분류와 전시 기법의 개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근대적 대중공간과 여가시간의 태동과 함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유통되고 오락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여전히 미술관과 동물원은 하나의 법제적 범주 내에서 규정되고 있다. 우리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동물원, 식물원, 수족관과 같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수집, 보존, 전시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설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족무덤’(아도르노)이라고 죽음과 유비시키는 관점에서 본다면, 동물원을 여전히 같은 범주로 취급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미술관적인 시선을 죽은 동물, 살아있는 동물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장시키는 근대적 기획은 인간 전시라는 획기적인 발명품까지 만들어냈고, 그 생명체에 대한 영구 보존의 욕망에 따라 살아있음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 죽음 이후의 안식까지 시선에 노출시키는 과감함을 마다하지 않았다(미라, 박제, 표본 전시). 최근 동물원 운영에서 동물권 개념이 중요해지고 근대적 시선에 대한 반성이 논의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제 우리도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오래된 역사와 슬슬 우아하게, 인간적으로 이별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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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프랑켄 <쿤스트카머 컬렉션> 나무에 유채 74×78cm 1636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Garry Winogrand Central Park Zoo, New York 1967

게리 위노그랜트(Garry winogrand)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게리 위노그랜트는 1969년 첫 번째 사진집 《동물들(The Animals)》을 선보였다. 1962년부터 7년간 뉴욕동물원에서 촬영한 사진 43점이 수록된 이 사진집은 동물원의 동물과 관람객의 관계에 주목한 그의 사진에는 울타리 안 동물의 무기력한 모습과 구별되는 인간 중심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위 <뉴욕동물원(Central Park Zoo, New York)> 1967  아래<뉴욕>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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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디오라마> 연작은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박제된 동물과 배경 그림으로 구성된 디오라마를 찍은 사진이다. 스기모토는 카메라의 눈과 세심한 조명을 이용해 이 장면을 마치 야생의 모습처럼 보이게끔 전환시켰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즉, 보이는 것에 대한 오류는 사진이 진실을 말한다는 통념을 해체하는 동시에 과학적 역사를 고증하기 위해 전시된 디오라마도 하나의 재현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본질을 깨닫게 만든다.
<큰 사슴(Wapiti)> <디오라마 시리즈>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60cm 1980 ©Hiroshi Sugimoto

ohahn

안옥현
텅 빈 강의실과 철망, 포르말린 병에 담긴 동물의 시신. 작가는 포토몽타주를 이용해 뚜렷하지 않은 이미지 속에서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동물의 이미지와 밀폐된 시공간을 조우시키고 경계를 무화시키고자 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150cm 1997

윤정미_자연사박물관_2

윤정미
<동물원>에서 어둡고 칙칙한 실내우리, 삭막하고 인위적인 공간 구획이 강조된다. 유년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유희적인 공간이자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반영된 동물원의 이중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동물원>이 흑백사진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소유욕을 드러냈다면 컬러사진의 <자연사박물관>은 ‘과학과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한국의 자연사박물관의 체계, 수집, 전시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다소 허술하고 키치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자연사박물관_2마리의 한국 호랑이와 2마리의 미국 늑대> C-Print 70×148cm 2001

SPECIAL FEATURE 시선의 정치, 동물원을 다시본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이지만 자신을 동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동물원을 만들고 그 속에 동물을 넣어 인간과 구분해왔다. 동물원을 만들고 그 속에 동물을 넣어 인간과 구분해왔다. 동물원은 오랫동안 야생 동물을 길들이고 전시함으로써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공간으로 기능해왔다.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박람회장 또는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이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 야만에 해당한다.
근대 동물원은 서구의 발명품이며, 동물원의 역사에는 제국주의 시선이 배어 있다. 한국 최초의 동물원은 일제강점기 설립된 창경원 동물원이다. 왕실 건물 20여 채가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생기면서 박물관도 함께 들어섰다. 동물원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을 유리 진열대 안에 넣고, 작품에 손댈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최근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관람하는 유희적인 공간에서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방향을 수정하며 동물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진화하고 있다. 《월간미술》은 근대적 시각장치이자 제도적인 공간으로서 동물원과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주목함으로써 수집, 분류, 보존, 전시와 교육의 기능에 내재된 인간 중심주의적 시선을 반성하며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동물원의 역사
동물원의 기원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정원에 이국적인 동물을 전시하던 풍습인 미네저리(Menagerie)에서 비롯한다. 근대 이후 동물원은 수집, 보존, 교육의 장소로 변화하지만 한때 동물원, 박물관에서는 식민지 원주민이 이색적인 볼거리로 전시되었다.

Menagerie.hermann.van.aken.1833

<Menagerie Hermann van Aken> 석판화 1833
유럽에서는 16세기 귀족들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19~20세기 무역업자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각각 이국적인 동물을 수집해 전시하는 미네저리(소규모 개인 동물원)가 크게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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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스미소니언 국립동물원에서 학생들이 곰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

하겐베크 동물원 2

Postcard of Carl Hagenbeck’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하겐베크 동물원
유럽 최대의 동물 중개상인 카를 하겐베크가 1907년 세운 사립 동물원으로 창살 대신 해자(垓字)를 설치해 관람객의 눈에 여러 종의 동물이 야생의 상태처럼 어울려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몰입 전시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한편 세계 최초로 인간 동물원을 만든 곳으로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 정문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코끼리, 기둥 위에 북극곰, 사자, 호랑이가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 원주민이 서있다. 한때 이 동물원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전시되었다.

Philippine Exhibition, Madrid, 1887

188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필리핀 원주민 전시광경

런던 동물원 F-Penguins' beach

런던 동물원의 펭귄 풀과 펭귄 비치 광경
러시아 건축가 베르톨드 루베트킨의 설계로 1934년 지어진 펭귄 풀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지만 은신처가 부족해 동물복지를 위해 2011년 펭귄 비치로 대체되었다. 폐쇄된 이후 현재 문화유산으로 전시되고 있다. 1828년 창립된 런던 동물원은 서커스 등의 동물 전시를 제외하고 전문가들이 주도한 세계 최초의 동물원으로 런던동물학회가 경영하고 있다.

창경원의 코끼리 1974년 (국가기록원)

1979년 창경원 동물원 광경
1909년 개원한 창경원 동물원은 한국 최초의 동물원으로 현재 서울동물원의 전신이다.

창경궁_이왕가박물관

창경궁에 세워진 제실박물관 광경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창덕궁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에 해당한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이후 이왕가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human zoo 파리 케 브랑리 박물관

2011년 파리 케 브랑리 박물관에서 열린 <인간 동물원 : 야만인의 발명>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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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여성 사르키 바트만은 사후 박제돼 1974년까지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호텐토트(유럽에서 코이코이족을 비하하는 말)의 비너스’로 불리던 사르키 바트만은 큰 엉덩이와 가슴 등의 특이한 외형 때문에 유럽을 돌면서 구경거리가 된 인물이다.

Black Venus

영화 <블랙 비너스>(2010) 스틸 컷
19세기 인종차별의 상징인 사르키 바트만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