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물성을 넘어, 여백의 세계를 찾아서
가나아트센터 8.14~9.29

1970년대 이후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일견할 수 있는 전시.
이승조 박석원 이강소 김인겸 오수환 김태호 박영남의 평면과 조각작품을 선보였다. 김복영 전 홍익대 교수가 기획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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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아르코미술관 7.15~9.6

문학에 기반을 둔 창작물에서 영감을 받은 사운드, 장르융합형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선보인 전시.
7월에는 퍼포먼스가, 8월에는 싱글채널 비디오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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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나_갤러리엠 (2)

박미나 개인전
갤러리 엠 7.29~8.29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24&36 Grays>로 명명됐다.
24색 색연필을 이용, 색칠공부 도안을 채워 넣은 드로잉과 36가지 혼합색으로 다이어그램을 채우는 등의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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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전_서울대미술관 (6)

흔적에서 작품으로
서울대학교미술관 8.12~9.20

미술관 소장품 기획전으로 회화와 조각, 사진 등 30여 점이 출품됐다. 작가의 노동의 흔적과 그것의 결과물로서 작품의 과정에 주목했다. 전시는 ‘물감’, ‘물질’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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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 (2)

구성균 개인전
한원미술관 8.18~28

작가의 11회 개인전. 작가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 에 참여했으며, 이번 전시는 당시 작품에 근작을 더해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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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리

이매리 개인전
갤러리 GMA 8.6~9.6

2015 베니스비엔날레 광주아티스트 리뷰전 형식의 전시로 작가가 당시 병행전시에 출품했던 <시(詩) 배달>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그간 하이힐에 천착했던 작가의 설치작업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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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1)

Metaphysics
한미갤러리 서울 7.22~9.12

윤성필 홍정욱의 2인전. 두 작가의 공통 관심사인 우주의 원리와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에 대한 각각의 해석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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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해

박건해 개인전
A1갤러리 7.21~8.3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대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수묵화 외에 골판지화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표현의 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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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거울 (2)

역사의 거울
아라아트센터 8.22~31

광복 7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하는 전시. 110명의 작가가 출품한 대규모 전시로, 왜곡된 역사를 미술로 재정립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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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최수정 개인전
아마도 예술공간 7.30~8.25

개인전 타이틀을 <無間>으로 명명한 작가는 “하나의 사건이자 가능성의 기호로서 예술적 공간을 관계성의 미학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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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박은하_미메시스 (4)

강석호 개인전
미메시스아트뮤지엄 8.8~9.29

<토르소> 연작으로 알려진 작가는 인체의 특정 부위가 트리밍된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작품은 옷의 질감, 행위 등을 담아내게 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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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연2

강부언 개인전
여행문화카페 낯선 눈으로 보다 8.4~23

작가는 그간 무채색으로 캔버스를 채웠으나 이번 전시에는 밝고 화사한 색채를 쓴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묵직한 선을 과감히 탈피, 경쾌한 필선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다.

PRIVIEW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최종태〉〈황용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9.1~11.8, 7.25~10.11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정립하고 새롭게 고찰하기 위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시각예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각기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거장들을 초대해 선보이는 자리로 9월에는 한국 현대조각계의 거장이자 우리나라 교회조각의 대표적 인물인 최종태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의 작품을 총망라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녹아있는 구도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조각 영역뿐 아니라, 평면 작업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온 작가의 50여 년에 걸친 역작들을 한자리에서 감상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같은 시리즈의 전시로 황용엽의 개인전 <황용엽:인간의 길>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을 화두삼아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상회화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간상’을 현재의 시선과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인생이라는 굴곡진 삶의 여정을 지나는 인간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선보인다.
황용엽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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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이불
pkm갤러리 8.26~9.25

현대미술계를 선도하는 대표작가 이불이 5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파격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양면 거울과 LED 조명이 부착된 크리스털 구조물로 거대한 공간감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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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o_Rondinone_Rockefeller_Center_2013_install_view

우고 론디노네
국제갤러리 9.1~10.11

탁월한 감각적 미학과 동시에 철학적인 작업 태도로 주목받아온 스위스 출신 작가 우고 론 디노네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영역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작품 형식과 미디어를 통해 시적인 심상의 대규모 신작 조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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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Jinks(대전시립)

21C 하이퍼리얼리즘 : 숨 쉬다
대전시립미술관 9.4~12.20

시각의 한계를 넘어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미술의 경향인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해 시대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하이퍼리얼리즘 중에서도 인간이 중심이 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하는 전시로 최근 중요시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기획되었다. 전시의 부제인 ‘숨쉬다’를 대상의 차이로 나눠 ‘대중과 숨쉬다’, ‘현실과 숨쉬다’, ‘이상과 숨쉬다’ 세 파트로 나누어 구성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사회와 시대를 그려온 15명 작가의 작품 105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핵심을 보여주는 극사실주의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과 경이감을 유발시키며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이 아닌 작품을 통해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다.
샘 징크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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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김정희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
학고재갤러리 9.11~10.14

한국미술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시기에 그 조형성의 뿌리가 되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를 마련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추사 김정희의 서예 30여 점과 우성 김종영의 드로잉, 서예, 조각 30여 점을 통해 창조의 발판을 마련한다.
김정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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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이승택
갤러리 현대 9.16~10.18

전위적인 작업을 통해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가로 불리는 이승택의 개인전 <이승택:드로잉>. 작가는 바람, 불, 물, 연기 등 시각화하기 어려운 ‘비물질’을 소재로 존재와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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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아르나우트믹

아르나우트 믹
아트선재센터 8.29~11.29

시스템 안의 개인과 집단을 모습을 보여주는 네덜란드 작가 아르나우트 믹의 개인전 <평행성>.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국가, 민족,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계들과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회심리적 현상에 주목한 영상 설치작품 4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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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lta DSC

김동규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9.9~10.11

김동규는 우연히 구입한 추상화 한 점을 소재로, “정념의 연대”라는 주제를 내걸고 영상과 출판, 드로잉, 도해 등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비정형 특강>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천착해 온 ‘정념’을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파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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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9.15~2016.2.14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중진 작가를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인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에서 <안규철_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전을 개최한다. 초대작가로 선정된 안규철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인 〈1,000명의 책〉을 비롯해 총 8점의 신작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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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Perjovschi, emoji, 2015

지식박물관, 의문과 논평
토탈미술관 8.28~10.25

루마니아 출신 댄 퍼잡스키와 리아 퍼잡스키가 서로 보완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2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단순하면서 예리한 드로잉과 오브제를 활용해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현재의 사건들과 과거의 담론들을 투사하는 반사 표면으로 변형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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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그냥 지금 하자
OCI미술관 9.4~10.25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 김구림과 극사실주의를 구사하는 젊은 작가 김영성의 2인전 <그냥 지금 하자>. 시대의 유행, 조건 등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두 작가의 거침없는 작가정신을 펼쳐 보인다.
김구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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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부산2

김태호
부산시립미술관 9.5~11.15

<김태호 공간구조를 조작하다>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김태호의 개인전. 최근 새롭게 재평가되는 단색화에 대해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로 30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개괄할 수 있도록 초기작 <형상> 시리즈부터 최신작 <내재율> 시리즈까지 80여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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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남신_덫2

곽남신
아트파크 8.27~9.25

다양한 형식과 기법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곽남신의 개인전. 오랜 세월 작가의 작업실을 지켜온 오브제들이 ‘덫’ 이란 제목으로 전시된다. 푸른 동록(銅綠)을 뒤집어쓴 잡다한 형상의 작은 오브제들은 마치 영겁의 시간을 견디어 온 부장품처럼 우리가 살아온 세상을 박제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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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호

옥정호
갤러리 조선 8.28~9.16

사회적으로 쟁점이 될 수 있을 만한 사안들을 개인적 창조의 영역으로 끌어와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온 옥정호의 개인전 <하마르티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회적 죄의식이 개인의 죄의식으로 전가되는 방식, 그리고 그 죄의식을 감내해야만 하는 개인의 감정적 투쟁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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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킴2

씨킴 / 공성훈
아라리오미술관 천안 9.1~11.1/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9.4~11.8

씨킴의 여덟 번째 개인전 을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개최한다. 다양한 소재로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러 갤러리를 개관, 운영하며 그 과정에서 친숙해진 소재인 시멘트와 콘크리트 등의 건축재료를 이용한 조각과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같은 갤러리의 서울지점에서는 <어스름>이라는 타이틀로 공성훈의 개인전이 개최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6미터에 달하는 대형 버드나무 연작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회화의 힘을 새롭게 보여준다.
씨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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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정은영
아트스페이스 풀 8.20~9.20

정은영의 개인전 <전환극장>. 이번 개인전에서는 정은영이 7년 남짓 진행한 여성국극 프로젝트의 일부 작품과 작품을 구상, 실현하면서 수집하거나 참조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수집된 자료 사이에서 작업을 구상하고 실천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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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지(하이트)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하이트 컬렉션 9.11~12.12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감성과 작품의 감각적 측면을 최우선적으로 감각하기를 강조한다. 강서경 김영은 로와정 박형지 이은우 정희승이 참여해 현대미술이 현학적인 언사로 무장하지 않았을 때 우리들에게 어떻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살핀다.
박형지 작

EXHIBITION TOPIC 세밀가귀 細密可貴:한국미술의 품격

한국미술은 ‘여백의 미’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열린 <세밀가귀細密可貴 : 한국미술의 품격전>(7.2~9.13)은 한국미술사에서 최고의 섬세함과 완성도를 추구한 작품을 총망라해 한국미술의 또 다른 면모를 집중 조명한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속공예, 나전, 도자, 회화 등 전 분야의 국보・보물급 작품들이 세밀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려 나전 17점 중 8점이 공개되는 등 그동안 국내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미술의 화려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11 불상 (8)

<금동 천수관음보살 좌상> 71.5cm(높이) 고려~조선 초 (대한불교조계종 홍천사 소장)

2 금관 (4)

국보 138호 <금관> 11.5cm(높이) 가야 5~6세기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세밀의 미, 한국미의 또 다른 아름다움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전시 제목,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에 등장한 ‘세밀가귀’란 표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세밀함이 가히 귀한 경지에 이르렀다”라는 뜻으로 1120년대 초 한국을 다녀간 중국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남긴 그의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나전에 대해 남긴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한국미술의 품격을 세밀함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전시기획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제목이다.
전시는 “文문양: 정교함의 극치, 화려함의 정수,” “形형태: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아름다움,” 그리고 “描묘사: 붓으로 이룬 세밀함”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이 세 특징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과 도자공예, 나전칠기공예, 불교미술, 회화작품 등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전시품들은 국보와 국보급 미술품들로서 자체 소장품에서는 50점만 엄선하고 국내 16곳, 해외 21곳에서 대여받은 80점을 합한 총 130점이 기획전시실 2개층을 메우고 있다. 전시 주제도 만만치 않은데다 해외 대여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또 막대한 예산이 들어 “과연 리움만이 가능한 전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낼 만하다.
1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 2부에서는 고려옻칠나전경함, 3부에서는 조선시대 초상화가 단연 돋보인다. 이 전시에서 풀기에 가장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되고 실상 비교적 취약한 부분이 3부, “描묘사: 붓으로 이룬 세밀함”이다. 유교국가 조선은, 세밀과 장엄의 미학이 일관성을 보인 불교국가 고려와 달리, 소박·담백의 유가적 미학이 부상하면서 기교미와 세밀미를 추구한 장인예술전통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중국은 9세기 말 이후부터 이미 철학, 사상, 종교 그리고 예술사조에서 이론적 사고가 직관적 사고로, 인위에서 무위자연으로, 기교에서 무기교로 점차 확산해 나갔다. 그 결과 정밀함이 지성사회에서나 순수예술세계에서 이탈하고 급기야는 퇴출되는 위기를 맞는다. 중국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서서히 두 가치의 공존과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미학적 이중구조 속에서 세밀가귀의 기획의도를 관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3부 전시공간을 들어서면서 데자뷔(기시감)가 몰려왔다. 20여 년 전 미국 순회전 <18세기 한국미술>(1993년 뉴욕 Asia Society에서 시작) 준비과정에서 고민했던 일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전시의 영문제목, “Korean Arts of 18th Century: Simplicity and Splendor”는 고심 끝에 두 가치의 공존을 인정하고 정면 돌파하는 해법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미술에 단순·소박미와 더불어 화려의 미가 산발적이 아닌 일관성을 띠고 민간, 궁궐, 종교미술(전시의 세 부분)에 보이며 이 예술혼을 살리고 주도해 온 궁궐미술이 조선시대미술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전시이다. <세밀가귀전>은, 깊은 곳에서 18세기전과 강렬한 연속성을 느끼게 하면서, 나아가 조선시대 필의 힘을 휘두른 유림 미학에 떠밀리고 폄하된 장인 예술과 그 공묘함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따라서 초상화와 궁중기록화는 물론이고 두 가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묵화도 세부묘사가 출중한 작품들을 끌어들였다.

6 나전 (6)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왼쪽) 24.8×47.2×25.8cm(높이) 고려 13세기 (보스턴미술관 소장)

16 일반 회화 (8) - 원본

보물 1493호 이명기 <오재순 초상>(오른쪽) 비단에 채색 152×88.9cm 조선 18세기 말~19세기 초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한국미의 새로운 기준
지난 몇 년간 리움이 기획한 전시들, <조선화원대전> (2011)과 <금은보화: 한국전통공예의 미전> (2013), 그리고 올해의 <세밀가귀전>의 기획 의도에는 근대한국예술론과 미술사 서술의 편향성과 왜곡에 대한 질타와 수정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편향성은 근대일본의 미학자이며 조선민예연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가 펼친 “질박과 무기교의 기교”야말로 한국미의 본질이라는 예술론은 오랫동안 “한국적인 것”을 규정하는 잣대로 적용되고 현대 한국인들마저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양 이 ‘잠언’을 되뇌곤 한다. 그 결과 조선시대 예술의 총체적 이해는 물론이고 그 이전 시대 예술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방향감과 균형감을 잃어버렸다.
이들 리움 전시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기교와 ‘순수예술’의 분리현상이 빚어낸 사태, 바로 근대 이전 중국·한국미술의 불완전성을 직시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 분리 현상은 기교와 사실주의로 꽃피울 수 있었던 예술혼의 잠재성과 창의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가는 서양미술의 발전사를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문제는 한중 양국이 이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분리된 예술언어의 재통일을 시도하지도 못한 채 20세기 들어 세상이 바뀌고 서양문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문화사적, 미술사적 사고의 틀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들은 이토록 오랜 세월 기교와 무기교로 분리된 예술언어를 중개하고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가리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의를 전시기획자 조지윤의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이 우리 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의 기준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지금껏 주목받지 못하였던 한국미술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전시가 “한국미술을 더욱 다각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삼성미술관 Leeum의 시각을 집대성한 전시이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낼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전시에 들어 있는 미래의 잠재성이 아닐까 생각하며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좋은 전시는 “놀랄 줄 아는 능력”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느끼는 법을 되살리고 경이감을 되찾아준다. <세밀가귀전>이 주는 “아 우리에게도 이러한 섬세함이 있었구나!”하는 경이감은 자각과 반성을 유도한다. 한국인이 놓아버린 듯한 세밀의 정서와 기교의 미를 찾고 기억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는 설치기술에 세심하게 배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디지털 영상의 세부확대기능은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이 전시는 느리게 움직여야 하는 전시이다. 작품 한 점 한 점에 집중하고 작은 세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한 전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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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8 나전 (14)

<나전대모 국당초문 삼엽형합>10.2cm (지름), 4.1cm(높이)고려 12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해외소재 고려나전 8점 한자리에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특별공간이 주어진 고려나전은 이 전시의 화중왕(花中王)이다. ‘세밀가귀’가 고려나전을 향한 찬사였던 만큼 제목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개 사진으로만 접하던 해외 소재 고려경함이 일본뿐 아니라 구미 각국의 소장품까지 포함해서 총 6점이나 집결했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고려경함은 고려불화와 함께 세계적인 미술품 반열에 들어있고 세계미술시장에서 그 부문의 동아시아미술품 중 가장 고가로 거래된다. 2006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나전칠기, 천년을 이어온 빛전>이 고려경함에 한해서는 일본 소장처에만 의존하여 관장으로서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 전시가 그때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아 감회가 깊다.
서긍은 중세중국의 문화최성기 북송 말의 예술가황제 휘종(徽宗, 재위 1100~1125)의 신하로 시·서·화에 능한 인물이었다. 휘종은 세밀화의 대가였고 그가 이끌던 한림도화원은 화조화, 영모화 등 세밀화 부문에서 걸출한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황실 관요는 청자와 백자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골동수집 열기도 뜨거웠던 때로 감식안이 고도로 발전하였다. 궁궐 밖에서는 소식(蘇軾)일파의 평담천진(平淡天眞)과 불속(不俗)의 사인(士人) 예술론이 중국예술의 미래 방향을 예견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나 궁궐과 화원의 기조는 정교한 기교의 장식성이었고 세밀함을 귀히 여긴 시대였다. 서긍이 휘종황제에게 올리는 보고서인 <고려도경>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찰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특히 공예에 대해 예리한 감식력을 보인다. 전시에 나온 경함 6점은 제작 시기가 모두 나전문양의 도안화가 가속된 13세기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정교하고 화려하다. 그러하니 서긍이 보았던 12세기 초의 고려나전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이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주는 유물이 소품이긴 하나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에서 온 삼엽형합(三葉形盒)과 화형합(花形盒) 2점이다. 이들 12세기 사례에서는 뛰어난 기형 제작은 물론이고 재료사용은 현미경으로나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약 0.3mm 정도의 얇은 자개절단기법과 석황과 진사로 뒷면을 채색한 대모복채기법 및 극세의 황동금속 꼬기기법 등을 혼합사용하여 화려하고 섬세한 결과를 낳았다. 12세기의 나전경함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류수금문 나전향상이 있다. 이 시기의 명품 중 명품이나 현재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상태가 심하다. 재현이라도 되어 세상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11세기에 고려왕실이 중국황실에 나전칠기를 선물했다는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으로 보아 12세기 전부터 이미 고려나전공예가 자신감과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휘종황제 재임기까지 고려왕실의 화가와 공예가가 파견되어 휘종의 칭찬을 받기도 하고, 화원에 들어가 기예를 닦을 정도로 북송황실과 긴밀한 문화예술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13~14세기 몽골이 지배하던 원대에는 화원이 쇠락하고 궁중예술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자 원황실은 고려조정에 불화와 경함을 공물로 요구할 정도였다. 실로 동아시아에서 고려의 불화와 나전칠기공예의 수준을 따라갈 나라는 없었다. ●

EXHIBITION FOCUS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

선명하고 화려한 원색으로 상상 속의 자연을 표현하는 작가 김종학은 우리 옛 물건에 대한 수집벽으로 유명하다. 1989년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80여 점의 목가구만으로도 그의 열정을 알 수 있다. 그의 컬렉션 중 전통 목기, 석물, 농기구 등 일상생활용물품을 한데 모은 〈김종학 컬렉션-창작의 열쇠전〉(6.9~8.16)이 구 벨기에영사관을 리모델링한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계속된다. 김종학의 작품과 우리 옛 물건에 나타난 질박하고 구수한 맛과 심플하고 시크한 현대적 조형미를 동시에 느껴보자.

수집과 창착의 관계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한국 현대미술가들 중에는 손꼽히는 고미술 수집가들이 있다. 도상봉, 김환기, 김영학, 권옥연, 김종학, 이우환, 박대성 등은 알아주는 골동수집가이자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작가들이다. 자연스레 이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통해 미의식과 조형감각을 익혔을 것이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작품에 자연스레 수렴되었을 것이다. 김환기와 김종학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공들여 수집한 ‘옛 물건’을 통해 미와 조형의 의미와 격을 깨달은 김환기와 김종학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심플’하기 그지없는 목가구, 백자 그리고 자연스러움과 해학미가 넘치는 다양한 공예품들에서 아름다움의 비밀을 알아차린 이들이다.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가공해 자신의 개성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물론 이 두 작가 외에도(수집가는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미술을 보는 안목, 이해하는 안목이 대단히 높은 이도 많고 그것을 작품에 원용하는 경우도 무척 많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김종영이 그렇다. 김종영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돌이 있으면 그 돌의 생김새대로 하고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모양이 파악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불필요한 부분만 떼어낸다. 본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내는데 어떤 것은 전혀 만들었다는 흔적이 없어서 조각인지 물건인지 몰라보겠다는 것들이 있다.”
많은 작가가 소박미를 한국미의 원형으로 보았고 따라서 “자연으로의 끝없는 동화, 문명 이미지의 자연 회귀, 민족의 문화적 원형과 시원성의 탐구”(이영학)는 한국 작가 대부분의 공통된 과제였다. 그래서 한국 작가들은 물질을 생명체로 다루고자 한다. 이 물활론적이며 자연을 영성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는 여전히 한국미술의 독특하고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학 컬렉션-창작의 열쇠전〉은 나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시간만큼이나 골동품 가게를 헤매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수집에 열을 올리는 형편에서 그의 수준 높은 안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가 구입한 옛것들은 기가 막히게 좋은 것들이라, 그가 부러운 안목과 빼어난 눈썰미, 탁월한 심미관의 소유자임을 새삼 느낀다. 특히 남서울시립미술관 공간 전체에 적절히 배치된 유물들은 그 존재 가치가 한층 높아 보였다. 그만큼 공간 연출이 뛰어났다. 입구에 늘어놓은 석물에서 시작해 전시장 방마다 절묘하게 배치된 고미술품들은 김종학이 평생 수집한 목가구, 목안, 조각보, 베갯모, 등잔, 농기구, 토기 그리고 온갖 연장들이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의 기증품들을 익히 보아왔지만 이번에 선보인 ‘물건’들은 그야말로 무심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비로소 그의 천진난만한 풍경화가 이것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김종학 (7)

김종학의 그림과 항아리가 함께 놓여있다

김종학 (23)

다양한 색채의 보자기가 있는 전시장 전경

질박한 미의 재구성
앞서 언급했듯이 김종학은 골동품 컬렉터로서 유명하다. 목기를 비롯하여 자수, 석상 등을 수집하는 그의 빼어난 안목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골동품에 대한 애정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은 그의 작업에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소화하여 표현한 질박하면서도 화려하고, 엉성한 듯하면서도 섬세한 작품들로부터 작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그 결과 서툰 듯, 혹은 과장된 그의 표현방식은 오히려 좀 더 자유롭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림 보는 즐거움을 안긴다. 그가 우리 전통미술로부터 깨달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기운생동의 세계이자, 신명(神明)의 세계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것들은 모두 옛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선비들의 사랑방, 아녀자들의 규방, 그리고 농부들이 노동 현장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공간을 치장해주던 소박한 도구들이자 일상에서 쓰이던 연장이자 우리의 체취에 친밀하게 와 닿는 것들이다. 또한 그것들은 기억이 간직된 형태의 생명물질이다. 너무나도 자연에 가깝고 또 단순한 오브제이기에 소박하고 투박하면서도 우리에게 그 어떤 원초적인 삶을 일깨워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이름 없는 한 농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든 연장이나 도구들은 한국인의 전통문화 속에 간직된 사물관, 자연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 조상들의 그러한 미감과 재료에 대한 태도는 현대미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러한 매력을 깨달은 자들의 경우에만 말이다. 따라서 한국 미술가들은 재료에 대한 인위적인 가공과 기교를 극도로 제한하고 물질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형성된 삶’을 드러내고자 했다. 특정 물질에 일련의 행위를 가함으로써 작가와 사물의 관계를 시각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게 하는 일이 작업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모종의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무엇을 표현하기보다는 물질 그 자체를 최대한 활성화하려 한다.
김종학은 자신이 수집한 목가구, 민화, 농기구와 연장, 보자기 등에서 그림의 묘미를 응용해낸 자다. 여기에 설악산의 자연이 덧붙여졌다. 설악산으로 들어간 이후에 그가 그린 그림은 대부분 자연에서 받은 감흥을 표현주의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물에 내재하는 생명의 힘과 에너지를 구상과 추상, 감정의 표출과 절제, 대상의 생략과 강조 등 이중적이면서도 다층적인 언어로 표현해왔다. 또한 대상에 대한 감정의 절박함을 이른바 구상적인 묘사와 표현주의적인 색채, 서예적 제스처로 전달하고 있다. 모두 그가 수집한 물건들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상상해서 그린다. 눈을 통해 전달된 시각정보를 그만의 감성으로 거른 후 재구성한다. 작품의 소재 자체는 구상적이지만 작품의 의도는 대상의 재현에 있는 게 아니라 ‘실제 대상이 갖고 있는 형태 중 비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을 추상화해서 대상을 양식화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작가의 정신 자체를 그 추상화된 구체적 대상의 양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는 회화를 일반적으로 표현주의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작가가 그리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손끝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된 풍경이며 이는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생명력이 느껴지는 선명하고 화려한 원색으로 재현된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체화한 후 이를 자신의 심상 속에서 형상화한다. 속도감 넘치는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자신의 작업을 두고 그는 “추상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회화”라고 정의한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화려한 색채와 민화적인 구성으로 자연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 비기교적인 그의 회화적 방법은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민화의 아마추어리즘과 닮아 있다. 멋대로의 형태미와 화려한 색채미, 그리고 자연의 순리와 조화를 보여주는 민화에서 큰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특히나 원색의 색상은 탁월한데 따라서 그는 민족 고유의 색채정서를 현대에 재창조하고 발현해 놓았다고 평가된다. 사실 민화를 직접적으로 원용하거나 차용한다기보다는 ‘회화에 대한 옛사람들의 순후한 사유의 방식을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하여간 그는 민화를 비롯해 우리 선조들의 온갖 유물이 지닌 빼어난 조형미로부터 자기 그림의 구도와 색채, 해학과 생동감을 견인해온 이다. 목가구와 농기구의 조형성, 전통자수의 생생한 색감 등을 자신의 의식과 몸 안에 녹여서 자연풍경을 그려내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자연을 열심히 보지 않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고미술이 지닌 조형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

EXHIBITION FOCUS Aéroport Mille Plateaux

이 자리는 당신 것일 수 없다

실제와 상상,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천개의 플라토 공항〉 (7.23~10.18)에서 이들은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공항 터미널로 탈바꿈시켰다.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모호해진 〈천개의 플라토 공항〉에서 작가들을 직접 만나 ‘미지의 여행’을 함께했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업은 시적이고 은유적이다. 이들의 작업은 전시장에 놓인 개별 오브제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공간의 정체성을 흔들어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미술관을 병원으로 만들고(〈Please keep quite!〉 2003), 사막 한가운데에 명품 매장을 세우고(〈Prada Marfa〉 2005), 수영장에 익사한 모형으로 컬렉터의 죽음을 알리고(〈The Collectors〉 2009) 미술관을 한 개인의 주택으로 전환(〈Tomorrow〉 2013)하는 등 장소의 규범을 깨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을 공항 터미널로 치환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그들이 해석한 공항은 ‘장소에서 장소로 이어지는’ 비-장소적인 공간이며 누구의 소유일 수 없다.

전시장 (4)

〈 Departure 〉(오른쪽) 혼합재료 200×300×15cm 2015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 준비기간은 어느정도 였는가. 그동안 홍콩 도쿄 등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적은 있지만 미술관 전시로는 이번 개인전이 아시아 최초다. 준비기간만 2년 이상 걸렸다. 2013년과 2014년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사전 답사했다. 공간을 둘러보자마자 공항을 떠올렸다.
무엇이 공항을 떠올리게 했나. 비행기 엔진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전면유리로 지은 공항 터미널처럼 투명유리로 된 건물, 비행기 동체의 포물선 같은 곡면 공간, 중앙이 비어있어 안쪽 전시장에서 반대편이 보이는 구조, 일반 전시장처럼 가벽으로 구획되지 않은 점이 신선했다. 갤러리 바로 앞에 위치한 공항버스 정류장도 공항을 떠올리는 데 한몫했다. 미술관과 공항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찾아가는 장소라는 유사점이 있다. 관객/여행자가 공간을 스쳐가며 ‘이행(transition)’이 일어나는 일종의 ‘비구역’이다. 또한 공항은 가지 못하는 곳, 허락되지 않는 행동 등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미술관 역시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공간인 척해도 실상 많은 영역에서 통제를 가한다.
들뢰즈&가타리가 서술한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Mille plateaux : capitalisme et schizophrenie)》과 이번 엘름그린&드라그셋이 꾸민 〈천개의 플라토 공항(Aéroport Mille Plateaux)〉 사이의 언어유희가 돋보인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보충설명 부탁한다. 언어유희로 완벽히 맞아떨어질 뿐 아니라,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 전달을 배가했다고 본다. 물질적인 생각에 기반을 두면서 그 속의 생각이 모여 한층 더 깊은 차원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천개의 고원》을 읽었다. 들뢰즈&가타리가 이 책에 대해 “결론을 제외하고 각 고원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 작업도 논리로부터 벗어나있다. 각 작업은 수많은 레퍼런스의 중첩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시장에 있는 관객, 장소, 사물이 때로는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때로는 교집합을 이루며 리좀(rhizome)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무엇보다 공항의 기반시설과 미술관은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리좀적 성격을 지닌다.
로댕의 〈지옥의 문〉이 중앙에 있어 전시 디자인하는 데 어렵지 않았나? 공간을 꾸미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로댕의 〈지옥의 문〉이 있는 공항 터미널로부터 커미션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전시장을 채워나갔다. 전시를 준비하며 ‘물리적 특성(physical feature)’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우리는 전시환경에 맞게 기존에 선보였던 작업을 다시 설치함으로써 그 의미를 재맥락화해 매번 다른 감각을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에 설치된 〈모던 모세〉(2006), 〈미수취 수하물〉(2005) 등이 그 예로 건축과 상황에 대한 ‘혼동’을 표현했다. 여행가방을 X-ray로 투과해 내용물을 보인 〈2010년 1월 1일로서〉를 보면 생활용품 사이에 2010년 반입이 허가된 HIV(에이즈 바이러스)약이 있다. 세부적인 디테일에 정치적 표현을 담아 전시장 밖의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결국 건축을 통해 물리적, 가상적 패쇄성의 환경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규제하는지를 고찰한 셈이다.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동선을 만들어냈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탄탄한 스토리 보드가 있는 것 같다. 실제 공항 터미널의 동선에 따르도록 했고, 전시장에는 공항에서 들리는 안내방송도 나온다. 그럼에도 공항의 리얼리티는 없다. ‘1960년대에 상상한 2015년의 공항’을 전제로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판타지즘’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1960년대와 현대의 디자인이 혼재하도록 꾸몄다. 대표적인 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콩고드 여객기 의자다. 다양한 기다림이 존재하는 공항처럼 1960년대의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게 했다.
관객이 전시의 구성요소처럼 느껴진다. 관객의 역할은 무엇인가. 관객 없이는 어떤 작업도 성립할 수 없다. 때때로 관객이 작가보다 더 뛰어난 해석을 부여할 때도 있다. 결국 작업은 우리 둘(엘름그린과 드라그셋)사이, 관객과 작가의 대화를 통해 존재한다. 물리적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현대인의 사회활동은 노트북 앞에서 이뤄진다. 현대미술가가 사람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지금 여기’ 와 ‘물리적 감각’이다.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작업 내부에 은유적으로 숨기는 방식을 취하는것 같다. 숨겨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파괴적이고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 작업에 있어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의 작업은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격한 감정으로 표출한 편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 비해 우리는 열린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복잡한 문제를 끌어들일 때는 의도적으로 작품에 풍자와 유머를 더해 숨기거나 가리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는 거대담론, 진정한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왜?”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왜”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는가. 모든 과정은 우연이었다. 시각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엘름그린은 시를 썼고, 나(드라그셋)는 연극을 하며 감정을 예술형식으로 표현해왔다. 1990년대 초반 코펜하겐의 미술계에선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자유로운 실험과 표현이 가능한 점이 좋았다. 우리는 다른 장르간의 협업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관객을 위한 관람팁을 부탁한다. 많은 관객이 전시를 관람할 때 오독 혹은 오판할까봐 두려워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 않길 바란다. 개개인의 이야기와 감각을 곤두세우고 즐기는 것이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임승현 본지기자 사진 박홍순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은 1961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1969년 노르웨이 트론드하임에서 태어났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1995년부터 듀오로 협업하고 있다. 1997년 덴마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영국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2012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4번째 좌대 〈Powerless Structures Fig 101〉를 설치하는 등 작업, 큐레이팅, 공공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베를린과 런던을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초 베이징의 UCC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CRITIC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

일민미술관 7.3~8.9

안소연 미술비평

한동안 느슨했던 스크린이 다시 팽팽해졌다. 화려하고 매끈한 이미지 뒤에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실재가 봉인되어 있다고 하는 응시에 대한 신화가 스펙터클한 현실을 다소 평평하게 정의해온 터라, 시각적인 이미지 표면에 대한 긴장감이 줄어든 지도 오래다. 인간의 시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매개하는 상징적 의미의 스크린은, 사실 그 프레임 안에 투사된 이미지로만 실제 세계에 대한 재현이 가능하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우화에서부터 라캉의 시각철학으로 이어진 주체의 시각 경험에서 얻어낸 결론이다. 스펙터클한 현실의 이미지도 결국 스크린 위에 투사된 하나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비로소 볼 수 있음에 대한 희망보다는 끝내 볼 수 없음에 대한 실망감으로 더욱 무색해진다. 그래서 뒤샹과 워홀은 화려한 스크린 위에 거친 흠집이라도 내보려는 심산으로 그처럼 불안한 유희를 즐겼나보다. 때때로 파열될 것처럼 팽팽해진 스크린에서는 어떤 의심쩍은 실체가 곧 뚫고 나올 것 같았지만, 상징적 언어들로 재무장한 환영의 스크린은 어느 순간부터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시나리오처럼 단순해졌다.
그렇게 힘 빠진 스크린이 요즘 다시 팽팽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민미술관에서 함영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이하 <뉴 스킨전>)를 보고난 느낌이 그랬다. 이 전시는 최근 주목을 받은 몇 개의 전시와 일부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근래에 개최된 전시로 <필름몽타주>(코리아나미술관, 배명지 기획)와 <김실비: 어긋난 신(들)>(인사미술공간, 이단지 기획)을 들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디지털 영상매체를 기반으로 한 무빙이미지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이목을 끈다. 수많은 영화적 요소에서 비롯된 디지털 무빙이미지는, 그야말로 잡다한 동영상까지 아우르며 그에 대한 오늘날의 경계 없는 시청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그들은 대부분 진부해진 주체의 시각 구조를 새삼 환기시키면서, 무엇보다 물질로서의 스크린 그 자체에 몰두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뉴 스킨전>은 특정 시점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스널 스크린”이 확산되면서 겪게 된 시각 메커니즘의 적나라한 변화를 소개하며,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일군의 세대적 특성으로 묶는다.
총 6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 <뉴 스킨>은 세계화와 자본주의 전략으로 가속화된 일약 디지털 세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2010년대에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미술가들”로 소개된 그들은 대다수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체질을 타고난 세대로, 1990년대식 표현이긴 하지만 소위 “신인류”라 부를만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딛고 새로운 환경, 즉 새로운 영토로 언제든 탈주 가능한 이들은, 환영으로 물든 현실세계 보다 오히려 가상의 미디어 환경을 더욱 크게 체감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미디어 환경은 내부에 무한한 인터페이스들이 잠재해 있기에 이질적인 것들의 손쉬운 결합과 현실에 대한 비선형적 역사기술의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박민하의 경우만 보더라도, 약 5분 분량의 2채널 영상으로 제작한 <전략적 오퍼레이션-비즈니스 카드 A/B>(2015)를 통해 현실에서 모의되는 가상 체험의 실체를 흥미롭게 다룬다. 서로 마주보게 놓인 두 개의 화면 위로 편집된 일종의 몽타주 영상이 흐른다. 박민하는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에 있는 NTC(National Training Center) 군사훈련센터를 배경으로 한 이 영상에서, 한때 스펙터클한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으로 조성되었던 장소가 전쟁 시뮬레이션에 이용되는 현실의 모습을 무질서하게 합성해 놓았다. 영화 특수효과와 군사 훈련을 일련의 산업 시스템으로 엮어놓은 기이한 현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광고 영상과 시뮬레이션 기록 영상, CG 영상 등 각각의 상이한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재배치되면서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작가는 두 개의 영상 스크린 뒷면에 초기 텔레비전 박물관에서 그가 직접 열람한 이미지 아카이브의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가짜 같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강정석은 그들 세대가 공유하는 디지털 화법에 훨씬 노련하다. <시뮬레이팅 서피스 A>(2014)는 게임회사에 출근하는 친구를 그가 몇 개월간 지하철역까지 배웅하면서 그 과정을 아마추어 홈비디오 형식으로 기록한 영상이다. 그는 게임 산업 구조의 허술한 단면을 애써 폭로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는 친구의 표피적인 일상에 따라붙어 수없이 열렸다 닫히는 현실의 출구를 상상하는 일에 동참한다. 그렇게 현실에 스며든 불순한 상상은 인터넷 “합필” 영상처럼 <시뮬레이팅 서피스 B>(2014)로 제작되어 구체화된다. 강정석은 <시뮬레이팅 서피스 A>에서 추출한 영상 소스를 인터넷 공간에서 소비되는 “합성 필수요소”로 사용했다. 불법 복제, 저급한 편집, 불완전한 전개 등이 빚어낸 허술한 합성 이미지들은 현실을 스크린 위에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대신 현실에 기생하는 가짜 같은 현실을 본떠서 급속히 유포한다.
한편 김희천의 영상작업 <바벨>(2015)을 한참 몰입해서 보고 있으면, 마치 신체의 모든 감각이 가상의 디지털 표면 위에서 시각적으로 분석되고 일시에 전환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영상은 아버지의 실제 죽음을 몇 가지 데이터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몇 가지 기록을 인터넷 데이터와 지도 같은 가상의 공간 위에 가시화했고, 동시에 쉽게 체감할 수 없었던 현실의 커다란 문제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화면 위에 재구성했다. 김희천의 영상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는 현실을 직접 체험할 능력을 이미 소진한 상황에서 어쩌면 가상의 세계를 경유하여 우리가 처한 모든 현실을 새롭게 경험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김영수의 보드게임 <우주시민 A씨의 데카드>(2015), 달의 움직임을 좌표로 전환시킨 강동주의 <달은 어디에 떠있나>(2015), 그리고 개별 작품들의 보이지 않는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김동희의 공간 구조물들처럼, 적어도 <뉴 스킨전>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가상의 미디어 환경은 수많은 이미지 스크린의 병치와 그 행간에 스며들어간 잠재적인 서사를 이용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기술(記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위 박민하 <Robert Television Bomber>(가운데) 2015

CRITIC 옅은 공기 속으로

금호미술관 5.27~8.23

조성지 미술비평

금호미술관의 <옅은 공기 속으로>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동시대적 풍경의 한 단면을 조망해볼 수 있는 전시다. 권기범, 김상진, 김수영, 김은주, 박기원, 이기봉, 카입+김정현, 하지훈, 홍범 등은 깨어있는 눈과 치열한 작가정신, 예술의 개념으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상담론을 추구해온 이들이다. 국내 국공립, 사립미술관과 갤러리, 문화예술기관들이 해외 블록버스터급 근현대 유명작가들로 운영과 소통 성과 올리기에 급급한 가운데,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진득한 관심이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미술관 전시다. 또한 참여 작가군 역시, 현란하고 속 시끄러운 세태를 향해 난해한 개념의 날덩이들로 맞대응하는 집단혈기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공력의 시간을 거쳐 정련된 개념형상을 추구하는 차별성이 눈에 띈다. 흑백을 기조로 한 이들의 특징적인 드로잉, 영상, 사운드 설치는 무채색의 시각적 비움을 연출한다. 어느덧 국내 중진・중견작가로 자리매김한 이들의 작품은 현대미술이라는 콤플렉스로부터 해방된 듯 한결 무난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하지만, 일견 시각적 비움으로의 초대는 편치 않다. ‘옅은 공기 속으로’란 제목이 말하듯, 미술관도 전시도 투명한 곳이 아니다. 옅은 공기 속에 지엽적으로 개별 작가의 개념과 의도, 정신성이라는 환영 짙은 공기들이 정체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견물생심”이라 했거늘, “보고 온몸으로 느끼며 소통하고픈 마음”을 일으키기에는 볼 것이 없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영의 미끄러짐과 동일한 환영의 반복에 식상하고 무료함을 느낄 법하다.
난해한 것은 난해한대로 무난한 것은 무난한대로 현대미술이라는 헛것을 따라다니다가 헛것 된 듯 관객의 입장은 무안하다. 관객이 좌절하지 않을 방법은 황망하니 잊어버리거나, 휑뎅그렁 남겨짐에 대해 해명하는 일이다. 전시입장료와 상관없이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 착한 관객이거나, 전시입장료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악착 같은 관객이 후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감과 휑뎅그렁 남겨짐은 비단 현대미술을 대하는 관객의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참여 작가를 포함한 동시대 국내외 현대미술이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금호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 전시다.
금호미술관 <옅은 공기 속으로>는 분명 작가 선별과 전시일정상, 서구 미니멀리즘 이후 개념미술, 공감각적 환영과 상호작용성 등에 관한 다양한 양태의 국내작가 일파를 집중 조명하고 검증하는 프로그램들로 뜻 깊은 전시기획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관객의 경험은 오히려 작가와 관람객, 예술세계와 현실세계를 만나게 하고 특별한 사물로서 현대예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평적 견해들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기대해봄직한 전시였다. 그런 만큼 상당 부분을 관객의 능동적 참여와 학습에 맡겨버린 작가와 미술관의 방만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 전시와 작가와의 대화가 모든 검증이 끝난 작가의 팬 미팅 자리가 아닌 이상, 참여 작가는 일반인에게나 미술인에게나 대체로 낯선 무명이다. 굳이 반세기 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회고전에서 한 작가가 미술관으로의 역사화, 제도화에 반기를 들었던 해프닝까지는 아니어도, 이번 전시는 흑백의 다채로운 색감과 독특한 개성을 남기지 못하고 무채색 옅은 공기 속에 묻힌 인상을 준다. 미술관의 무난한 관성범위 망 안으로 너무나 온순하게 들어온 거 아니냐고 작가에게 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작가들과 함께 꾸준히 시대적 감수성과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해온 금호미술관의 이번 전시를 눈여겨본다. 현대미술의 크고 작은 집단 혈기와 돌풍이 끊임없이 소진되고 지나간 자리, 그 위로 감도는 살아있는 무언가를 품었으리라. 이번 전시 <옅은 공기 속으로>를 뚫고 나올 참여 작가들의 그 무언가를 기다려본다.

위 권기범 <Jumble Painting 15-1 Gravity> 벽면 회화에 고무줄 설치, 혼합매체 2015

CRITIC 도윤희 Night Blossom

갤러리 현대 6.12~7.12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

밤이 피어오르다. 밤의 개화. ‘Night Blossom’은 도윤희의 열여섯 번째 개인전 제목이다. 갤러리 현대, 4년 만의 개인전, 독일 작업실, 새로운 기법, 색의 출현과 같은 정보를 제치고. 엄습해온 것은 ‘Night’와 ‘Blossom’의 오묘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파장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영문에서 국문 번역 과정을 점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외래어가 가지고 있는 이국적인 느낌 때문이거나 그것이 차용된 명제이거나 혹은 ‘Night Blossom’과 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질서에 존재하지 않은, 번역 불가능한 어떤 순간을 드러내기 위함일 수도 있다. ‘Night Blossom’은 언어로 번역되기 이전에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무엇이다. 그 무엇은 예측하지 못한 어떤 것이 저 문 너머에 있을 것 같은 설렘을 만들었고, 동시에 언어의 역할 그 자체를 의심하게 했다. 그 문 너머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색들은 여럿이자 하나가 되어 색이 아닌 무엇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몸의 한 기관을 자극한다기보다는 온몸에 내재하는 혹은 온몸 밖으로 벗어나는 무엇이었다. 그것을 울림이라고 해야 할지. 떨림이라고 해야 할지. 열림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애매모호한 것이 되어 오히려 보는 이의 눈을 감게 했다. 나는 그 무엇을 그림도 음악도 언어도 아닌 일종의 ‘포에지(poésie, 시: 영혼의 기반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 (Novalis, L’Encyclopédia))’라고 부르고 싶다.
그녀는 매일 아침 무엇을 읽을까. 그녀의 식탁 위에는 어떤 꽃이 꽂혀 있을까. 그녀의 창문 너머로 무엇이 보일까. 무엇이 그녀의 손가락 끝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그것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존재하게 하는 주체로서 에너지이다. 그것이 신문의 한 칼럼을 장식한 익명의 자살일 수도. 유리병에 꽂힌 작약일 수도.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색 캐딜락일 수도 있다. 그 주체들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나름의 생존방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 존재 방식이 도윤희의 손가락 끝으로 전이된 것일까. 손가락 끝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선, 색 그리고 형은 보는 이의 시각을 자극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감각체계를 통해 음악의 리듬 혹은 춤의 움직임과 같은 공명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 움직임은 즉흥적이면서도 의도적이며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도윤희는 붓이라는 회화의 전통도구를 내려놓음으로써 회화 밖의 언어를 습득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언어조차 거부하고 마치 언어 이전의 존재를 마주하려는 듯 오로지 손가락의 움직임에 도취했음에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 계산되지 않는 것, 말로 전달되지 않는 것, 그리고 해석되지 않는 것에 유난히 무감각해진 오늘날. 매일 아침 쏟아지는 전쟁과 부패, 분쟁과 대립 그리고 재앙과 질병 따위의 뉴스에 자괴감마저 드는 오늘날. 우리는 감히 무엇에 도취해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이라는 고독의 섬을 떠도는 한 예술가가 부조리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정의구현도 아니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자유의지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비굴한 삶을 존속하게 하는 생명의 담론, 카오스 그 자체이다. 너무 낭만적이거나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이상적이거나. 그것은 공유를 통해서 공감을 통해서 공명을 통해서 ‘포에지’의 중심에서 우리를 호출한다. 그 호출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타자를 존재하게 하고 타자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비로소 자아의 현전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2층에 주르륵 나열된 캔버스들 앞에서. 초라한 벽, 빈약한 조명, 시크한 관람자들, 세속적인 대화가 공간에 울리면서 돌연 색의 향연은 예술(자본)의 틀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일까. 틀에 갇히기 이전에. 번역되기 이전에. 의미로 전달되기 이전에. 문장으로 완성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혼돈의 상태.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Night Blossom 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

위 도윤희 <무제> 캔버스에 유채 2014

CRITIC 임자혁 조금 이상한 날

누크갤러리 6.25~7.23

정신영 서울대학교미술관 책임학예사

2002년 뉴욕 MoMA에서 개최된 <Drawing Now>은 드로잉을 주된 표현방법으로 사용하는 작가들만을 모은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개최를 전후하여 최소한 현대미술에서는 드로잉을 하나의 독립적인 매체로 인정하는 의식이 자리잡았다. 캔버스를 짜고 밑칠을 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선적 요소만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에 비한다면 드로잉은 보다 일상적이고 친밀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변적인 표현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밑그림이나 설계도처럼 타 매체에 연관지으며 의지하거나 도전하지 않는 새로운 드로잉이라는 장르는, 일상을 영위하며 수용하는 개개인의 시점을 반영하는 데 있어 최적의 매체로 보인다. 임자혁의 경우 다양한 현실의 단편들은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정보로 다가오는 듯하다. 삼청동 누크갤러리의 2개층에 걸쳐 전시된 총 108점 중 ‘오렌지 드로잉’으로 분류되는 54점의 드로잉은 임자혁이 지난 3~4년에 걸쳐 경험한 일상의 순간이나 사건들의 축적임과 동시에 색, 선, 형상, 구도 등으로 재구축된 현실의 기록들이다. <깃털>은 마치 참빗으로 긁은 듯 등고선이나 기압골처럼 촘촘한 줄문양으로 처리된 거대한 인물의 뒷모습에 흰 오리털이 한 조각 붙어있는 모습이다. <사죄>는 뉴스나 신문에서 접하는 전형화된 광경으로, 무릎 꿇고 깊숙이 고개 숙인 양복차림의 남성들이 줄줄이 열을 이루는 모습이 상하로 반전되어 마치 서로에게 사과하는 듯 코믹하게 배치되어 있다. 짙고 옅은 오렌지색의 유산지에 묘사된 이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작가가 경험한 현실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단독 작품인 1층의 콜라주 역시 시각중심적(ocular-centric)이면서도 어떤 상황에 대한 비일상적인 면모를 감지해내 사건화하는 작가 특유의 예민함이 드러나 있다. <야유회>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인 중장년층의 등산복 애호에 대한 언급이다. 광활한 초록빛을 배경으로 울긋불긋 모자와 재킷이 일렬로 늘어서 나들이 풍경을 연출한다. <그룹 미팅>은 실내에 설치되어 있어야 할 소화기 여러 대가 야외로 옮겨져 붉은 펭귄처럼 옹기종기 한곳에 모여있는 모습이며, <어떤 덩이>는 지방도로의 목가적 풍경 속에 우뚝 솟은 장승 같은 거대한 비닐묶음들의 특수한 존재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1층의 작품들의 서술적 요소와 제목의 결합은 때로는 동화처럼, 때로는 난센스한 코믹삽화처럼 해석하는 즐거움을 주는데, 이뿐만 아니라 화면에 펼쳐지는 색, 선, 패턴이 주는 리듬감이나 장식성이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적 감수성을 제시하고 있다.
깨알 같은 잎사귀의 표현이나 원색과 중간색을 미묘하게 섞은 대담한 색면의 배치는 2층에 이어지는 <돋보기> 연작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돋보기> 연작은 1층에 전시된 작품의 한 부분을 원형이나 길쭉한 타원, 평행사변형 등으로 도려낸 후 거대하게 확대하여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작업들이다. 원작의 서술적 맥락에서 격리되어 새로운 화면으로 옮겨진 조형요소들은 급격히 추상화되어 있다. 대비되는 색상이나 불안정한 듯하면서도 숙련된 선들의 교차는 이미 북유럽의 패턴화된 디자인과도, 일본 디자인의 절제된 양식과도 또 다른 작가양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위 임자혁 <주홍색 드로잉>(왼쪽) 종이에 잉크, 총 54장 2015

CRITIC 김미경 서 있는 시간

갤러리 비원 6.1~30

정현 미술비평

저마다의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의 소란스러움은 ‘사색’의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명상과 사색마저 자기 개발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성공만능주의 시대에서는 예술도 현실만큼 뒤틀리고 소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사색마저 생활의 지혜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 셈이다. 김미경의 전시 <서 있는 시간>은 전속력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에 길든 사람들에게 시간에 끌려가지 말고 시간을 마주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녀의 회화는 작은 화폭 위에 미디엄을 이용해 여러 겹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전 작업에서는 이 겹들의 층이 두드러졌다. 반투명한 평면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각 층의 색들은 서로 겹치는데, 이러한 겹침으로 나타나는 색은 광채를 띠기까지 했다. 이전 작업이 일련의 물리적 과정에 의해 겹침의 효과를 극대화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겹침보다는 스며듦을 강조하는 듯하다. <My heart is bleeding>(2013)은 흰 바탕 위에 강렬한 붉은색 직사각형이 화면을 분할한다. 두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I write a letter(diptych)>(2014)는 마음의 상처를 써내려간 것처럼 붉은색 직사각형이 화면 상부에 수평으로 위치하고, 다른 화면은 빈 종이처럼 다음의 문장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사실 한국 미술계에서 추상회화는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최근 단색화 붐이 일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색화에 대한 관심은 추상회화에 대한 관심과는 다른 것 같다. 헬 포스터의 말을 빌리면 “시뮬레이션의 시대에 추상화를 부흥시키려는 시도는 ‘자본의 추상화 과정’을 흉내 내려는 기회주의적 시도라고 생각한다.” 미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웅장하고 영웅적인 해석을 강요당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으며,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보려는 여러 입장 덕분이었다. 추상을 개인적 차원의 감정이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관습을 파괴한 혁명적 실천으로 볼 것인지는 결국 미학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W. J. T.미첼은 추상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거창한 회화론이나 주체성을 운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는 작품에 다가가는 관객의 자율성과 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친밀감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교조적인 추상미술의 강령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화적 영웅을 알현하기 위해 추상미술을 관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작품에 대한 친밀감이 샘처럼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모방과 재현의 패러다임을 벗어나기 위해 형상을 지운 추상미술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미학적 강령 대신 작품 자체에 집중하라는 조언과 더불어 추상적 이미지는 이미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김미경의 회화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작품은 관객에게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명상하라고 주문을 걸지도 않는다. 물론 전시장의 상태와 작품의 배치에 따라 이러한 느낌은 달라지겠지만, 내게 이번 전시는 내가 굳이 작품에게 말을 건네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건 마치 편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드는 기분에 가까웠다. 친밀감은 소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운 상태일 것이다.

위 갤러리 비원에서 열린 김미경 개인전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