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

일민미술관 7.3~8.9

안소연 미술비평

한동안 느슨했던 스크린이 다시 팽팽해졌다. 화려하고 매끈한 이미지 뒤에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실재가 봉인되어 있다고 하는 응시에 대한 신화가 스펙터클한 현실을 다소 평평하게 정의해온 터라, 시각적인 이미지 표면에 대한 긴장감이 줄어든 지도 오래다. 인간의 시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매개하는 상징적 의미의 스크린은, 사실 그 프레임 안에 투사된 이미지로만 실제 세계에 대한 재현이 가능하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우화에서부터 라캉의 시각철학으로 이어진 주체의 시각 경험에서 얻어낸 결론이다. 스펙터클한 현실의 이미지도 결국 스크린 위에 투사된 하나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비로소 볼 수 있음에 대한 희망보다는 끝내 볼 수 없음에 대한 실망감으로 더욱 무색해진다. 그래서 뒤샹과 워홀은 화려한 스크린 위에 거친 흠집이라도 내보려는 심산으로 그처럼 불안한 유희를 즐겼나보다. 때때로 파열될 것처럼 팽팽해진 스크린에서는 어떤 의심쩍은 실체가 곧 뚫고 나올 것 같았지만, 상징적 언어들로 재무장한 환영의 스크린은 어느 순간부터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시나리오처럼 단순해졌다.
그렇게 힘 빠진 스크린이 요즘 다시 팽팽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민미술관에서 함영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뉴 스킨: 본뜨고 연결하기>(이하 <뉴 스킨전>)를 보고난 느낌이 그랬다. 이 전시는 최근 주목을 받은 몇 개의 전시와 일부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근래에 개최된 전시로 <필름몽타주>(코리아나미술관, 배명지 기획)와 <김실비: 어긋난 신(들)>(인사미술공간, 이단지 기획)을 들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디지털 영상매체를 기반으로 한 무빙이미지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이목을 끈다. 수많은 영화적 요소에서 비롯된 디지털 무빙이미지는, 그야말로 잡다한 동영상까지 아우르며 그에 대한 오늘날의 경계 없는 시청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그들은 대부분 진부해진 주체의 시각 구조를 새삼 환기시키면서, 무엇보다 물질로서의 스크린 그 자체에 몰두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뉴 스킨전>은 특정 시점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스널 스크린”이 확산되면서 겪게 된 시각 메커니즘의 적나라한 변화를 소개하며,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일군의 세대적 특성으로 묶는다.
총 6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 <뉴 스킨>은 세계화와 자본주의 전략으로 가속화된 일약 디지털 세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2010년대에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미술가들”로 소개된 그들은 대다수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체질을 타고난 세대로, 1990년대식 표현이긴 하지만 소위 “신인류”라 부를만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딛고 새로운 환경, 즉 새로운 영토로 언제든 탈주 가능한 이들은, 환영으로 물든 현실세계 보다 오히려 가상의 미디어 환경을 더욱 크게 체감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미디어 환경은 내부에 무한한 인터페이스들이 잠재해 있기에 이질적인 것들의 손쉬운 결합과 현실에 대한 비선형적 역사기술의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박민하의 경우만 보더라도, 약 5분 분량의 2채널 영상으로 제작한 <전략적 오퍼레이션-비즈니스 카드 A/B>(2015)를 통해 현실에서 모의되는 가상 체험의 실체를 흥미롭게 다룬다. 서로 마주보게 놓인 두 개의 화면 위로 편집된 일종의 몽타주 영상이 흐른다. 박민하는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에 있는 NTC(National Training Center) 군사훈련센터를 배경으로 한 이 영상에서, 한때 스펙터클한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으로 조성되었던 장소가 전쟁 시뮬레이션에 이용되는 현실의 모습을 무질서하게 합성해 놓았다. 영화 특수효과와 군사 훈련을 일련의 산업 시스템으로 엮어놓은 기이한 현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광고 영상과 시뮬레이션 기록 영상, CG 영상 등 각각의 상이한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재배치되면서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작가는 두 개의 영상 스크린 뒷면에 초기 텔레비전 박물관에서 그가 직접 열람한 이미지 아카이브의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가짜 같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강정석은 그들 세대가 공유하는 디지털 화법에 훨씬 노련하다. <시뮬레이팅 서피스 A>(2014)는 게임회사에 출근하는 친구를 그가 몇 개월간 지하철역까지 배웅하면서 그 과정을 아마추어 홈비디오 형식으로 기록한 영상이다. 그는 게임 산업 구조의 허술한 단면을 애써 폭로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는 친구의 표피적인 일상에 따라붙어 수없이 열렸다 닫히는 현실의 출구를 상상하는 일에 동참한다. 그렇게 현실에 스며든 불순한 상상은 인터넷 “합필” 영상처럼 <시뮬레이팅 서피스 B>(2014)로 제작되어 구체화된다. 강정석은 <시뮬레이팅 서피스 A>에서 추출한 영상 소스를 인터넷 공간에서 소비되는 “합성 필수요소”로 사용했다. 불법 복제, 저급한 편집, 불완전한 전개 등이 빚어낸 허술한 합성 이미지들은 현실을 스크린 위에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대신 현실에 기생하는 가짜 같은 현실을 본떠서 급속히 유포한다.
한편 김희천의 영상작업 <바벨>(2015)을 한참 몰입해서 보고 있으면, 마치 신체의 모든 감각이 가상의 디지털 표면 위에서 시각적으로 분석되고 일시에 전환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영상은 아버지의 실제 죽음을 몇 가지 데이터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몇 가지 기록을 인터넷 데이터와 지도 같은 가상의 공간 위에 가시화했고, 동시에 쉽게 체감할 수 없었던 현실의 커다란 문제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화면 위에 재구성했다. 김희천의 영상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는 현실을 직접 체험할 능력을 이미 소진한 상황에서 어쩌면 가상의 세계를 경유하여 우리가 처한 모든 현실을 새롭게 경험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김영수의 보드게임 <우주시민 A씨의 데카드>(2015), 달의 움직임을 좌표로 전환시킨 강동주의 <달은 어디에 떠있나>(2015), 그리고 개별 작품들의 보이지 않는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김동희의 공간 구조물들처럼, 적어도 <뉴 스킨전>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가상의 미디어 환경은 수많은 이미지 스크린의 병치와 그 행간에 스며들어간 잠재적인 서사를 이용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기술(記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위 박민하 <Robert Television Bomber>(가운데)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