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홍순명 개인전-스펙터클의 여백

회화의 순수성을 탐구하기 위해 주변의 풍경을 그려 온 작가 홍순명의 개인전 <스펙터클의 여백>이 6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도사진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회화작품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와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을 오브제로 만든 신작 <메모리 스케이프> 연작을 선보인다.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인 홍익대 미술대학원 김미진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작가 홍순명의 작업과 삶의 태도를 조명해본다.

주목받지 못한 독립체들의 연대

김미진(이하 ‘김’) 내년이 벌써 우리 결혼 30주년이네. 1979년,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예술과 인생의 동지로 살아왔잖아. 그 시절부터 얘기해볼까.
홍순명(이하 ‘홍’) 학부 때부터 해외 미술전문잡지를 보고 이것저것 실험적인 작업을 했지.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1985년에 이미 스무 번이 넘는 전시에 참여했었지. 당시 부산지역 젊은 작가들이 모인 미술그룹 ‘강패’, ‘황색벌판’ 등에서 활동했고. 사범대학을 나오면 선생님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무조건 외국 가서 공부하고 싶었고, 결혼하자마자 확 떠난 거야.
1985년 결혼하고 곧바로 파리로 유학을 떠나 같이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려고 했는데 나이제한이 있어서, 나는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에 들어갔고 당신은 한국에서 군복무한 것이 인정되어서 원하던 대로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지. 거기서 운명이 갈린 거 같아. 당신은 일찍부터 ‘부분과 전체’라는 개념을 화두로 작업했는데….
파리에 있을 때 서양인들 속에서 한국 사람으로서의 내 위치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가 되었지. 특히 그 무렵 독일의 과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읽은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 과학 분야에 문외한이라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부분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도 부분이 있어서 서로 간에 연결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지. 그 이야기를 나는 내 식으로 받아들였던 거야. 비록 서양 사람이 쓴 책이지만 그 책을 읽고 덩치가 작은 동양인인 내가 서양인에게 이론적으로 꿀리지 않는 당당함이랄까 자신감 같은 걸 갖게 됐어.
그때의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사이드 스케이프(Sidescape)> 시리즈까지 연결된 건가?
파리에 있을 때 했던 작업 중에서 캔버스 옆면에 그림을 그려 책이 꽂혀있는 책장처럼 만든 작업 있잖아. 캔버스 옆면은 앞면을 존재하게 하는 보조 역할을 하지. 나는 일부러 보조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택했어. 센터와 사이드를 와해시키고, 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 모두 동등한 것, 이런 생각과 의도가 파리시절 작업의 주제였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런 맥락에서 작업을 이어갔지.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작업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지만 조금 각도를 달리한 게 뭐냐면, 보도사진을 보고 그렸다는 거야. 원래 보도사진에는 정확한 센터/주제/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사이드/주변/배경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 풍경을 화면의 중심으로 가져와 ‘실존’시키는 것이야. 사이드/주변/배경은 주인공을 보조하고,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데 나는 오히려 이런 역할을 없애버린거지. 뿐만 아니라 그 유용성이나 기능성까지 다 배제하고, 순수한 풍경 그 자체로만 존재하도록 만드는 거지.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야. 그래서 보도사진이 가장 적절한 소재가 된 거야.
우리는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어. 1980년대와 2000년대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심과 주변, 글로벌과 디아스포라라는 두 개의 강렬한 패러다임이 교차되는 시기를 다른 문화권에서 산 경험이 어쩌면 행운일 수 있어. 우리는 몇 십 년간의 시간을 통해 국적·모더니즘·형이상학 같은 거대주제가 해체되고 일상적인 개인의 삶 안에서 주제를 찾거나, 예술 자체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던 시대에 예술이 일상의 삶과 합쳐지는 변혁의 시대를 체험했어. 당시 프랑스는 미테랑이 재선되어 10년이나 대통령직에 있었고, 자크 랑 문화부 장관과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문화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지.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정책으로 가난한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많은 혜택을 받은 꿈의 시기였어.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사소한 곳에 눈을 돌릴 수도 있었고, 전체를 막 흔들 수 있었던 거야. 이런 경험 또한 당신의 작업 <사이드 스케이프>의 배경이 된 것 같아.
둘이서 꿈을 찾아서 유럽까지 갔는데 참 운이 좋았지. 요즘 같아서는 그 돈으로 거기 가서 한 달도 버틸 수 없을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있을 때 프랑스는 사회주의 정책이 강력해서 우리처럼 학비도 없고 가난한 유학생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줬지. 그런데 작품이라는 게 한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잖아. 한국에서도 대학생하고 정부하고 싸우던 시절이었는데, 파리에서도 10년 넘게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정책을 경험하고 사회 분위기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지금의 내 가치관이 더욱 굳어진 것 같아.
다시 매체 얘기로 돌아가서 질문할게. 지금은 컴퓨터가 우리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고 매일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뒤적이는 시대잖아. 세계 각국에서 온갖 사건과 재앙이 발생하고,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게 정보화된 이미지로만 접하지. 그런 점에서 당신이 단순한 이미지 정보가 아닌 실제와 가까운 풍경을 그리는 것은 기호가 아닌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나는 평론가들의 이런 말투가 불편하고 불만이야. 왜냐면 평론가들은 말이나 글로 나를 어떤 틀 안에 자꾸 집어넣으려고 해. 작품은 원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스스로 생명력이 있는데, 크리틱에 의해서 오히려 그 생명력이 약해지는 거야. 대신에 작품은 유명해지고 비싸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평론가들은 어떻게 하면 작품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것을 많이 연구하고 개발하면 좋겠어. 자기들이 읽은 책에다 끼워 넣지 말고,
우리도 천재적으로 어떤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면 좋겠지만 지금의 언어는 이미 사회적 약속이잖아. 그리고 평론가는 그것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야. 비평이란 학문의 사회적 소통을 위해 그런 틀에 맞추어진 거지. 우리 같은 사람의 고충도 이해해주길 바라.
<사이드 스케이프>에서 회화의 소재로 보도사진을 사용하는데 그림을 그릴 때 물감 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지? 컴퓨터 화면처럼 보정을 하나? 아니면 그대로 써?
어떤 사람들은 “어디를 보고 프레임을 잘랐나요?”, “어떤 기준에서 사진을 선정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지, “예쁘면 그냥 가고 안 예쁘면 색을 바꾸기도 한다”고.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사건의 중요성이나 위급성을 떠나 전체를 완전히 탈맥락화시킨다고 봐.
그 지점이 바로 입체작품 <메모리 스케이프(Memoryscape)>와 연결되는데. 방금 얘기한 것과 결부시켜 이야기하자면, 나는 미술, 특히 회화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감각의 문제’라고 보는 거야. 조금 전에 말했듯이 나는 부분과 전체에서 상생과 조화, <사이드 스케이프>에서는 독립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고 이론적 맥락을 세울 수 있겠지만 그 맥락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은 그냥 그림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그 맥락이 결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야. 그러면 도대체 화면 자체가 뭐고, 그것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냐는 거지.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야. 왜냐면 언어를 벗어난 다른 분야의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 나는 그 대부분이 ‘감각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감각적이라는 것은 사진에서 부분을 선택하는 감각이란 말인가?
그렇지. 부분을 선택하는 것, 또 그림을 그려나가고 완성으로 향해가는 것 등을 말하는 거지. 어떤 부분을 프레임으로 잘라낼지는 작가의 느낌으로 결정하는 거지. 그런데 이런 느낌을  정확하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 ‘뿌옇고 일시적이고 가볍고 금방 사라질 것 같고 뭔가 견고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모습’이라고.
그게 완전히 순수한 예술의 순간을 찾아가는 것이고 작가로서 당신의 꿈인 것 같아. 작가는 예술의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거잖아. 낯선 형태를…. 하지만 평론가는 처음 보는 것을 해석하기 위해 이론을 집어넣어. 예전에 존재한 작품에 덧붙여 언어로 설명하다보니 작품이 낡아지는 것 같아. 많은 작가도 이 방법을 써. 그런데 당신은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는 그것을 애매함이라고 보거든. 당신은 애매함으로 자꾸 비켜나가. 애매하면 소통이 안 될 수도 있지. 애매함보다는 조금 더 우리가 원하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이 현재 소통되고 유명해지잖아?
그 소통이 미술에 애정과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면 그 미술판은 후진 거지.
알았어. 이제 회화와 장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봐. <사이드 스케이프>는 장소적 설치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 당신은 설치작업도 많이 했고, 2008년 미국 뉴멕시코에서 열리던 <산타페 비엔날레>에서는 건축가가 당신의 작품을 미리 보고 작품에 맞게끔 건축적인 전시환경을 만들어줬어. 마찬가지로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만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도 건축적 환경에 따라서 설치를 했지. 내가 볼 때는 3층의 <아쿠아리움-1402>에는 작품 사이의 틈이 창살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간에서 캔버스가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어. 마치 동양의 산수화 안에 여백이 사물과 공간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리적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실제 공간과 캔버스가 소통하는 것 같아.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줘.
아까도 말했듯이 회화는 그냥 화면 안에서 끝나야 된다고 난 생각해. 그런데 회화 몇 점 가져다 놓고 거기에서 이해해라. 그건 굉장히 불친절하잖아. 불친절한 것이 현대미술의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지만 내 방식의 설치는 하나의 서비스이고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라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냥 서비스라기보다는 내 작품에 사이드가 있고 비켜서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산타페 전시에서는 메인을 피해서 옆에 쭉 설치해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강조했지. 이 미술관은  공간 자체가 이미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고 실제적로도 무척 아름다워. 하지만 작품 설치하기에는 솔직히 좋은 공간은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런 맥락도 있고 이 건축물 전체가 이미 회화 같은 풍경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전시 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공간하고 작품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야. 나는 그냥 아름답게 보이는 상황이 어떤 것일까 고민했을 뿐인데 다들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내가 공간에 아부한 느낌이더라고. 그런데 공간을 바꿀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거기에 맞춘 거지. 회화는 캔버스가 어디에 걸려있든 그 자체로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해. 그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회화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작품 안으로 들어가보자. 그림 안에서 붓 터치를 보면 무심한 듯 턱턱 던져놨는데 멀리서 보면 생동감이 들어. 이게 바로 감각과 연결되는 지점이야. 모든 힘을 빼고 붓하고 내가 일치되면서 붓이 가는대로 따라 가지만 서예를 하듯이 붓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힘이 빠진 상태야. 그래서 중성적이면서도 붓 자체도 독립적인 힘을 갖고 있어. 그림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존재하게끔 보이게 해.
오~! 이 얘기는 내가 원하는 것과 똑같아. 서로 말 안했는데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야. 사실 그림 대부분이 한구석을 그린 건데 나는 그 구석을 또 구석으로 몰고 나간거야. 그러다보니 한 개 한 개는 완전 비구상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때 남는 건 색, 터치, 느낌, 분위기, 마티에르 등 굉장히 재료적인 문제야. 형태가 아닌 재료적인 것이 어떻게 스스로 독립해서 서 있을 것인가. 까딱 잘못하면 비구상과 구분이 안돼.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주제적인 면에서도 초월성을 싫어해. 재료들이 스스로 그냥 독립해서 화면에 존재하는 것. 한 개 한 개 독립체가 모여 하나의 화면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모여 또 다른 독립체가 되고, 이런 상황들이 혹시 가능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속 시도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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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스케이프> 캔버스에 유채 18×14cm (각) 1700여 점 2005~2014

예술가의 삶의 방식
그것이 회화 자체가 갖는 힘이야. 작가와 관객이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자유로움 속에 소통하는 순간이 있어. 그리고 삶의 태도를 볼 때 당신은 규칙적으로 작업실에 가서 일정량의 작업을 해. 주로 밤에 작업을 많이 하지. 그리고 집에 와서도 계속 컴퓨터로 소재를 찾고 있어. 잠도 3~4시간밖에 안 자. 거의 작품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거 같아. 은퇴 후 집에서 책 읽고 서예하시는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선지 옛날 문인화를 그리던 선비의 태도를 가진 것 같아. 독서와 작업이 삶의 방식을 이루는 예술적 태도를 갖고 있어.
말만 들으니 너무 거대하다. 그렇지는 않아.
좀 찔리나보네. 하하
그 정도는 아니야. 잘 알잖아. 나 노는 거 무진장 좋아해.
물론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55년 평생 그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작품이 쌓여 있는 것 같아.
그렇다기보다는 훈훈하게 마무리하려면 어쨌거나 내가 많은 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 게 맞는 거 같애. 그런 조건을 당신이 다 만들어주잖아. 남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인 건 틀림없지. 또 하나 무척 고마운 것이 내가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작업이 새벽에 끝나면 집에 가기 애매해. 그냥 작업실에서 자는 거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작업하고 그 다음 날 저녁 때 집에 가고 이런 식으로 계속 살잖아. 그런 식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니까 내가 아무리 작업실에서 빈둥거리고 놀아도 작업량이 꽤 많은건 당연해.
마지막으로, 최근작 <메모리 스케이프>로 넘어와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의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회화와 조각, 설치의 영역이 합쳐있는 상황인거 같아. 조각으로 보기에는 형태가 너무나 비정형이고, 얇은 표면 때문에 내부 오브제들의 형태가 짐작되고 일부는 노출되는 거. 버려진 장소의 당시  현장을 간직한 형태는 함께 뭉뚱그려져서 나와 매우 이질적으로 보여. 장르와 매체, 사건과 장소, 시간과 공간 등의 이질적인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 그 안에는 무수한 혈맥이 흐르는 새로운 변종의 생명체처럼 새롭게 보여. 예술작품에서 ‘처음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은 아주 중요해. 그래서 매우 기뻐.
10년 동안 보도사진을 수없이 봐왔는데 사람들은 마치 내가 사회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은 줄 알지만 실제 나는 보도사진이나 사건 그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든. 내 작업을 위해 이미지들을 빌려오는 것뿐이지. 그렇게 계속 작업 하다보니 예술은 인간의 삶에 대한 얘기인데, 내가 너무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삶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죄책감이 들더라구. 특히 이 정부 들어서는 그래. 그래서 내 삶에서 내 손에 닿고 내 눈에 닿는 조금은 일상에 가까운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이 작업을 시작한 거야. 뭔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이슈가 된 밀양 송전탑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보도사진을 볼 때에는 송전탑이 정말 가까이 있고 인근 마을에는 전류가 어마어마하게 흐를 것 같은데, 실제 밀양에 가서 보니까 내 눈에는 송전탑이 너무 멀리 있는거야. 이게 뭐지. 내가 보기에는 밀양 사람이 오버한 건지 한국전력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뭔지 모르는 이상한 상황이 된거야. 현장에서 내 생각은 고발이 아니라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던 거야. 그렇다면 작가로서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보존’이라고 생각했어. ‘보존’ 하면 대부분은 숫자나 데이터, 증거 확보처럼 어떤 상황을 증명하는 식으로 존재하잖아. 나는 그런 거 말고 내식대로 감상적이고 시적인 생각을 한 거야. 그때부터 상황이 벌어지는 곳에 있었던, 그 상황을 자기 식대로 머금고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오기 시작한거지. 나뭇가지, 굴러다니는 석유통 등 쉽게 가져올 수 있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몇 차례 실어왔지.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은 데모하는 사진이 아니야. 전류에 대해서 무식한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되기에 너무 멀리 있는 송전탑, 그 옆에서 농부가 논을 태우는 일상적인 모습이지. 그리고 물건들을 랩으로 미친 듯이 감싸고 캔버스 천을 여러 번 덧붙여서 물건들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도록 했어.
당신에겐 그게 굉장히 중요하지.
그렇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한 화면을 그리기 위해서 내가 프레임을 잘랐잖아. 처음에는 입체 형태에다 프린트한 사진을 보고 그리려고 했는데 전체 형태가 안보이고 돌아가면서 위 아래로 봐야 하는 입체 형태와 사각형 프레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야. 당혹감과 동시에 굉장히 재미있었어. 지금까지 그린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구나. 그걸 그려보고 알았어. 그 다음부터는 형태에 맞게 적절한 화면을 뽑기 시작했는데 한 화면으로는 해결이 안되서 결국 밀양사진 여러 장을 얼기설기 겹쳐서 그리게 되었지. 그동안 나는 스케치는 안하지만 포토샵으로 이미 그릴 범위를 결정하고 그렸거든. 원래 상상력으로 여러 장면을 끌어모아 그리는 거 잘 못하는게 나에게 콤플렉스였는데 이 작품에선 그렇게 안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잘 못하던 어떤 부분을 요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작업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가 있어. 이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가 있든 그걸 떠나서 내가 이 사회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무심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있고, 순수하게 내 시각으로 보고 이 사건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더라고. 이런 과정이 주는 즐거움에 이 작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더 하려고. 전시 오픈하고 나서 당장 세월호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못가고 있어서 안타까워. 보도사진은 다 확보해놨지만 그 사건이 끝나기 전에 가서 실질적인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작업으로 보존하고 싶어.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야기 했네. 나는 아내이자 미술계 동지로 당신이 작가로서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한 길을 가는 것이 훌륭해 보여. 물론 나에게는 손해겠지만… 가난하지만 떳떳해. 그리고 조력자로서 예술의 순수 목적을 위해 온전히 독립하려는 시도에 동참할 수 있어서 참 좋아. 훈훈한 마무리네.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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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홍순명 개인전 광경 (맨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89.5×145.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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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오른쪽)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했다. 1989년 미국 티모티 티유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2 광주비엔날레, 2008 산타페 국제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대법원, 미국 산타페 아트 인스티튜트, 경기도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미진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파리8대학교 조형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파리1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은미술관 부관장, 세오갤러리 디렉터, 예술의전당 전시예술감독 등을 역임했고,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hibition Topic]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위성예술을 넘어서,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의 백남준

1984년 1월 1일, 백남준은 위성을 이용해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등지에서 10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위성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시도된 지 올해로 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7.17~11.16)은 백남준의 작업과 함께 예술과 매스미디어의 관계에 주목한 동시대 작가 16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김지훈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1984년 새해를 열어젖힌 백남준의 기념비적 인공위성 생방송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와 뉴욕에서 열린 존 케이지의 즉흥연주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접속시키고 앨런 긴즈버그, 로리 앤더슨, 톰슨 트윈즈(Thompson Twins),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 팀 버튼의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대니 엘프만이 속했던 미국 록 밴드) 등을 한자리에 모은 이 프로젝트는 백남준이 개척한 비디오아트 하위 장르의 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예술과 사이버네틱스의 관계에 대한 백남준의 사유들을 가로질러보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위성 비디오아트 (satellite video art)’의 선구적 작품” 또는 “위성 텔레비전의 대안적 활용”이라는 기존 예술사의 통념들을 넘어선다. ‘백-아베 비디오 신서사이저(Paik-Abe Video Synthesizer, 1970)’를 완성하기 전인 1967년, 백남준은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초기 컴퓨터 그래픽과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베르트 위너와 마셜 맥루한의 방법은 확장된 예술 연구에 가르침을 준다. 이 둘은 단일 예술가에게는 출입금지구역이던 많은 구별된 지대들을 뛰어넘고 유영했다.”1 이렇게 볼 때 백남준에게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원격통신의 예술적 적용을 넘어 그가 신서사이저의 개발과 다양한 비디오 형성체들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했던 인터미디어(intermedia) 이념, 즉 음악과 회화, 사운드아트, 퍼포먼스를 횡단하고 공존시키는 미디어예술이라는 이념을 연장한 결과다. 전자초고속도로의 구축이 예술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면서 백남준이 예술가를 “처음부터 여러 매체를 횡단하여 다루고 말을 넘어선 언어를 구사하는 전문가”2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의 이상에 따라 기획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기존의 교향악과 오페라를 다른 지역으로 송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성예술로서 이 프로젝트는 백남준이 착안한 여러 가지 이념인 대화적인 예술구조, 열린 회로(open circuit)로서의 예술작품, 공간적 합성, 시간적 가변성과 다차원성, 즉흥성, 불확정성을 이용하여 창조한 “복합적인 시공간의 교향악”3이다. 그리고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기술적 특정성인 실시간성, 이미지의 변형성(transformativity), 시청각성(audiovisuality), 아웃풋의 다양성과 비결정성 등은 이러한 이념들을 가능케 하는 재료들과 기법들이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선보인 “복합적인 시공간의 교향악”의 면모들을 새로운 전시 환경에 구현하면서 “인터미디어 예술가”로서 백남준이 가진 이념들, 그리고 위성예술로서 이 프로젝트가 펼친 회로들을 부각시킨다. 이 프로젝트의 안과 밖, 이전과 이후를 넘나드는 이 전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획 및 실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역사적 계보에 대한 통시적 조망,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협력자들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폴 개린(Paul Garrin) 등의 작품들에 대한 공시적 조망, 그리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다양한 맥락 및 기술적, 미학적, 주제적 요소들과 조응하는 동시대의 미디어아트 또는 무빙 이미지 예술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장 1층과 2층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다양한 모습들이 대형 프로젝션으로 펼쳐진다. 2층에는 뉴욕과 파리의 두 가지 방송 버전 및 KBS에서 방송된 서울 버전을 나란히 설치하여 이 프로젝트가 가진 시공간적 동시성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다. 1층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었던 출연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들을 10개의 클립으로 나누어서 동시에 보여준다. 이 10채널 동시 프로젝션은 각 퍼포먼스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규정했던 “복합적 시공간의 교향악”이라는 이념을 부각시키는 데 적합하다. 또한 이는 백남준이 1960년대부터 비디오와 컴퓨터를 통해 탐구했던 사이버네틱 예술의 특질인 정보 흐름의 다층성과 접근의 다방향성을 환기시키면서 관람자들에게 각 퍼포먼스들 사이의 자유로운 조합과 연결을 촉진한다.
위성예술이라는 한정된 장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젝트다. 백남준이 실시간 원격통신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형태와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에 도달한 시점이 1984년보다 훨씬 이전이라는 점은 1961~1962년 그가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피아노 콘서트를 구상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된 것은 1977년이었다. 백남준은 그해의 도쿠멘타6 오프닝 기념행사로 요제프 보이스, 샬롯 무어만, 더글러스 데이비스와 더불어 위성 생방송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같은 해에 키트 갤러웨이(Kit Galloway)와 셰리 라비노비츠(Sherrie Rabinowitz)는 두 장소에서 서로 다른 무용가들이 펼치는 공연을 합성하여 단일 화면에 공존시키는 “위성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모든 프로젝트가 전시된 “텔레커뮤니케이션 카페”(1984년 갤러웨이-라비노비츠가 LA 올림픽에 맞추어 기획한 프로젝트인 ‘일렉트로닉 카페’에서 이름을 따온)에서 관람자들은 위성예술이 소셜미디어 시대 이전에 선구적으로 실험하고자 했던 참여와 사회적 네트워킹의 이념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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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후
전시의 나머지 반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술적, 미학적, 주제적 이념들과 공명한다고 큐레이터들이 판단한 동시대의 여러 작품이 다양한 포맷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작품들을 지탱하는 매체와 예술형식의 스펙트럼 또한 비디오 퍼포먼스(리즈 매직 레이저, <PR(공적인 관계들)>, 2013), 원격현전 프로젝트 (엑소네모, <수퍼내추럴>, 2009~2014) 등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기술적 국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품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목탄 드로잉과 초기 애니메이션, 필름의 기법들을 재해석하여 백인 남성의 악몽을 전보, 전화 등의 통신매체를 매개로 역동적으로 표현한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스테레오스코프>(1999)는 백남준 재해석을 비디오아트에 대한 매체 특정성의 신화에 가두지 않으려는 전시의 야심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섹션은 질 마지드의 <증거보관소(다시 추적한 사건)>(2004), 하룬 파로키의 <카운터-뮤직> (2004) 등 감시를 주제로 한 현대적 작품들의 배치다. 이는 언뜻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조지 오웰의 묵시록적 미래상에 대한 안티테제라는 세간의 통념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성기술을 통한 ‘자유의 증대’는 기대와 달리 ‘강한 자의 승리’로 이어진다”4라는 백남준의 경고를 상기해 보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통제사회에 대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을 알 수 있다. <카운터-뮤직>은 특히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릴(Lille)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교통 통제와 건물 온도 관리를 위해 폐쇄회로 비디오카메라와 적외선카메라로 촬영된 디지털 영상들을 지가 베르토프의 도시 교향악(city symphony)인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7)의 영상과 교차시킨다. 파로키가 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선정한 이 작품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미디어예술의 역사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접점들을 가시화한다. 한편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시공간적 동시성은 사회주의 도시의 24시간을 관류하는 기계와 노동의 물질적 네트워크들을 탈인간적 시각과 몽타주 역량으로 통합하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전통과 공명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이 정교한 몽타주로 분석하고 있는 감시 카메라 이미지들의 순환과 처리 양상은 백남준의 비디오 매체에 대한 이념과 은밀하게 공명한다. 백남준에게 비디오는 기계의 눈으로 포착되는 시청각적 정보들의 모듈레이션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일상과 시공간에 스며든 통제와 감시의 이미지 또한 인간의 파악을 넘어선 네트워크들의 복잡한 모듈레이션에 따라 생산되고 순환된다.
이 전시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 선정 방식이다. 국내의 각종 기획전을 주름잡고 있는 옥인콜렉티브의 <서울 데카당스>(2013)는 가상의 상황을 던지고 그러한 상황이 부여하는 미학적, 사회적 코드들과 그에 반응하는 개인의 표정과 몸짓을 주시하게끔 하지만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쉽게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옥인콜렉티브의 작품을 배치한다면 제스처의 수행성과 현전을 탐구하면서도 비디오의 리믹스 미학과 파국에 대한 사유가 더욱 두드러진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2)가 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송상희의 비디오 에세이 <그날 새벽,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2014)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를 인용하면서 일상적 세계의 풍경에 잠재된 폐허와 이상향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연결되지만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보다는 집중된 시간성을 가진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더욱 적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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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왼쪽) 1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8분 2013 이부록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오른쪽) 비닐 스티커에 프린트 300×450cm 120×480cm 2005~2014


1 Nam June Paik, “Norbert Wiener and Marshall McLuhan (1967),” in Judson Rosebush (ed.), Nam June Paik: Videa ‘n’ Videology 1959-1973 (Syracuse: Everson Museum of Art, 1974), unpaginated.
2 Paik, “Media Planning for the Post Industrial Age: Only 26 Years Left until the 1st Century (1974),” in Nam June Paik. Werke 1946–1976. Musik – Fluxus – Video (Kölnischer Kunstverein, Cologne, 1976), unpaginated.
3 백남준, <예술과 위성 (1984)>,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에디트 데커, 이르멜린 리비어 엮음, 임왕준 외 옮김 (백남준아트센터, 2010), p.137.
4 백남준, <예술과 위성>, p.140.

[Exhibition Topic]13th Donggang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한국 사진축제의 가능성과 미래

산과 산 사이를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품은 작은 고장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가 13회를 맞았다. <동강사진상 수상자-구본창전>, <특별기획전-에피소드:호주 현대사진전>,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전>을 비롯해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김전기전>과 워크숍, 공개강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7월 18일부터 9월 21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과 영월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작은 마을, 큰 축제의 성공적 사례로 손꼽히는 <동강국제사진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최연하  전시기획, 사진비평

해마다 7월 셋째 주 금요일이면 <동강국제사진제> 개막식이 강원도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 앞마당에서 열린다. 영월군은 21세기가 시작된 첫해인 2001년 ‘동강사진마을’을 선포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제1회 동강국제사진제>가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른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축제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이 작은 마을의 사진축제는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회’와 ‘영월군’이 주체가 되어 사진예술과 지역축제의 이상적인 만남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본래 취지가 희미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었을 텐데, <동강국제사진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을 넘어 한국 사진축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를 보여주었다. 축제를 만들어내는 기획력은 보다 탄탄해졌고, 행사의 형식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이처럼 <동강국제사진제>가 확장된 사진미디엄을 수용하고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견고하게 구축해 내기까지 기획자들의 노력을 높이 사야겠다.
올해 동강사진축제는 주 사진가 12명의 작품을 선보인 <호주현대사진전, Episodes: Australian Photography Now>(이하 <에피소드전>)과 <강원도사진가전>, <거리설치전>, <보도사진가전>, <동강사진박물관 소장품전>, <영월군사진가전>, <평생교육원 사진전>, <포트폴리오 리뷰 수상자전>(이하 <보이지 않는 풍경Ⅱ>) 등 지역의 서사성과 한국사진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전시 테마를 설정하여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사진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 받은 전시는 국제전으로 기획된 <에피소드전>과 작가 김전기의 작업으로 이뤄진 <보이지 않는 풍경Ⅱ>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전시에 반영된 역사인식은 참신했다. 실증적인 역사주의를 벗어나 현재주의적인 역사관을 미적 상상력으로 도약시켜 유쾌하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나 과격하지 않게 형식과 사유의 변증법적 역동성이 특별했다.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매체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와해될 수 있을지, 이 두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밀도 높은 철학적・미학적 고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에피소드전>에 참여한 호주 작가들은 거의 모든 사진적 수단을 빌려 그들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상징적, 우의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호주 원주민(Aborigine)인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마이클 쿡(Michael Cook),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 데스티니 디콘(Destiny Deacon) 등 네 명의 ‘에피소드’는 모든 대립적 가치가 프레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주제를 향한 높은 환기력을 보이고 있다.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는 호주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원주민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으로 애보리진들은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채 강제수용당하거나 호주 내의 디아스포라가 된다. 자신들의 과거를 호주정부에 의해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트라우마로 얼룩진 애보리진의 후예들의 작품은 이제는 희미해진 고향의 삶과 언어를 회복하려는 자의식과의 싸움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을 지나간 체험이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섞어내며 작업하는 것은 하나의 불가피함이다. 그러자면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으로부터 대항기억(counter memory)을 곧추세워 자신을 통제하고 강요해왔던 지배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 기억의 제도화와 다름없는 ‘역사’는 역사적 책무를 회피하려는 지배자의 담론일 뿐이다. 그러니 기억 속에서 사라진 망각의 역사, 즉 공식적이고 지배적인 기억이 아닌 대항기억의 부활에 사진은 생생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한 번도 애보리진 역사에 대해 배운 적 없고, 오직 유럽인의 호주 정착에 대해서만 배웠다”는 마이클 쿡의 에피소드와 정부와 선교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지식과 역사, 문화에 박식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데스티니 디콘은 ‘생김새가 다르다고 주변에서 침을 뱉고, 돌을 던졌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기억해낸다. 호주땅에 처음부터(ab origine) 있었지만 자신의 땅에서 분리(ab-)된 애보리진 작가들에게 ‘수년 전에 몇몇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작업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대지로 돌려놓는 것, 예술이 그러한 이동을 가능하게 할 운송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크리스천 톰슨)은 흘러가버리고 기록된 연대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역사의 공간에 작가를 합류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무력화 시킨 사진의 힘
<에피소드전>의 전시장은 중심 스토리가 아닌 주변의 에피소드들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된 미이라가 묘한 영적 아우라와 함께 현재를 바라보거나(폴리제니 파파페트로), 익명의 군중은 거리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트렌트 파크). 진정한 소통이란 불가능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역설의 아포리아를 보여주는 작업(폴 나이트), 슬픔과 광기로 빚은 에로틱한 초상(폴리 볼란드), 앵글로-오스트레일리아 문화권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동성애자인 윌리엄 양의 작업에서는 밝고 쓸쓸한 바람이 스친다. 중심이 아닌 주변,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이야기로 즐비한 것이다. 에피소드 중 압권은 트레이시 모팻과 개리 힐버그(Gary  Hillberg)가 함께 작업한 영상작품 <다른 것(Other)>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장면들을 몽타주한 이 영상은 침략자와 원주민, 보안관과 인디언,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주인과 노예로 이분화된 대립각에서 전자의 도덕적, 지적, 문화적 우월성을 전복시키며 동일자의 표상체계 밖에 있는 타자, 상징계 너머에 있는 ‘인식’이나 ‘표상’의 대상이 아닌 ‘다른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공동체 바깥에 있는 타자, 이방인으로 내몰린 호주 애보리진들은 실상 공동체의 구조에 속하면서 어떠한 타자성도 지니지 않는, 즉 공동체의 동일성을 위해 요구되는 원주민이 아니었을까.
전시장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김전기의 <보이지 않는 풍경Ⅱ>에서 만난 주문진의 밤바다 사진이다. 해질 녘에 촬영한 후, 똑같은 자리에서 해 진 후 다시 이중촬영한 철책너머 보이는 동해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겨울 폭풍 후의 강릉 해안선, 실외 사격장 등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삼척까지 동해안 7번 국도의 해안선을 따라 철책선과 군사시설물을 촬영한 이 사진들에서 분단 이후, 해독되지 않는 ‘틈’으로 남아있는 권태로운 동해안을 본다. 대형카메라와 네거티브필름으로 촬영한 이 사진들의 색감은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현실의 네크워크를 해체하며 은밀한 균형상태를 보여준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사진으로 표상될 때, 그 명료한 주제의식 때문에 범상한 소재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터인데, 김전기의 사진에서 두 개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뇌와 성찰을 포착할 수 있었다. 김전기의 가능성은 여전히 38선 이남에 머무르면서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경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지금・여기’의 동시대 작가들은 사진이라는 그릇에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올해 동강사진축제의 작품들을 보며 더욱 골똘하게 생각한다. 호주 작가들의 서술적이고, 자전적이고, 장식적이고 제의적인 에피소드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골짜기,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서 잔잔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 삶의 복잡성과 다층성, 문화의 다원적인 가치들 속에서 주체(중심)가 타자(주변)를 배제 않고 배려하는 흥미로운 토대를 생각해본다. 국가 간, 지역 간 문화교류 및 기획에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그윽한 차원을 그려보며, 국제전시의 타이틀이었던 ‘에피소드’ (해양과학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은 ‘지질시대를 통하여 독특하고 뚜렷한 사건(들)을 시간의 함의 없이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가 사뭇 발본적이었음을 알아챈다. ●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전시광경

강원도 출신 사진작가로 기획된 <강원도사진가전-강원도에 투영된 사진예술의 진실> 전시광경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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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전 <호주 현대사진-에피소드전> 공동기획자 나탈리 킹(Natale King)

“호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_MG_1809이번 <동강국제사진제>에 대한 인상은?
개막식 행사에서 누군가 말한 ‘작은 마을의 큰 축제’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일주일 정도 영월에 머물며 영월이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여름축제 가운데 <동강국제사진제>가 가장 핵심적인 행사임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 현대사진의 현주소를 보여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동강국제사진제>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사진가를 초대했는데, 이번에 호주의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12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게 된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전시 외에도 워크숍, 강의, 특별전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는 점도 돋보였다.
주제로 내세운 ‘에피소드(episode)’는 어떤 의미인가?
영어 단어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인 변화를 느낄 때의 분위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영화나 TV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순간의 장면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의 다양한 표현방식과 영역에서의 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나와 공동 큐레이팅을 맡은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사진 오른쪽)는 호주의 ‘사진/영화/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키워드로 ‘에피소드’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이는 과거와 현재 또는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역사와 모호한 정치성이 공존하는 호주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다.
이번에 출품된 호주 작가의 작품은 문화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호주 예술가 대부분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들은 유럽인에 의해 점령되고 식민지화되고 문명화된 호주라는 특수한 장소성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그 안에 내재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은 영국 옥스퍼드대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애보리진 예술가이자 사진가다. 그는 호주 원주민과 유럽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자화상 작업을 선보인다. 이밖에도 그리스계인 폴리제니 파파페트로(Polixeni Papapetrou)는 자신의 아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진 전투복을 입혀 호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한다. 이 전투복은 원래 사냥꾼이나 군인이 위장하기 위해 입던 것인데, 이처럼 평화로운 풍경과 이질적인 캐릭터의 조합은 배경과 인물의 긴장을 부각시키며, 유럽인과 원주민이라는 이질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호주 현대사진의 특성은 무엇인가?
호주의 많은 사진가 역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영역은 기술적인 창의성뿐만 아니라 인물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전통적인 사진부터 이미지 연출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내용적으로는 앞서도 말했듯이 호주라는 특수한 다문화 상황과 과거 식민지 역사의 배경과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인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상적인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은?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된 구본창의 작품이 특히 좋았다. 풍경, 가면, 백자 시리즈 모두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시적(詩的)이다. 그리고 백승우의 작품도 흥미롭다. 서울 도심과 황폐한 장소의 이미지를 표현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영월=이준희 편집장

 

 

[Review]홍승혜 – 회상

홍승혜  __  회상

국제갤러리 7.10~8.17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한 편의 소네트를 썼다. 한 편의 소네트를 쓴 후  “지난번 소네트를 끝내고 나니, 나는 또 시를 쓰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며 다른 한 편을 쓰게 되었고, 이어서 또 한 편을 썼다. 단테가 시를 쓰게 된 애초의 동기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이었다면 그 다음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소재, 적어도 그 일부는, 자신의 시 자체였을 것이다. 홍승혜의 개인전 <회상>이 열리는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발밑에 나지막하게 작은 글자 조각들이 서있다. M.O.R.E. 잠깐 웃음이 터지는데, 일단 ‘미니멀’한 기하학과 상충하는 단어인데다가, 단테 같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채 ‘더, 더’를 조용히 되뇌고 있는 듯해서다.
<회상>은 홍승혜의 과거 개인전들을 모태로 한다. <유기적 기하학> (1997) (2000), <복선을 넘어서>(2004)(2006), <파편>(2008), <온 앤 오프(On & Off)>(2008), <음악의 헌정>(2009), <프레임의 모든 것>(2010) 등의 전시에서 몇 작품씩 뽑아 크기와 재료를 달리하고 그레이스케일로 처리했다. 회고전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고전 형식을 빌린 신작 전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홍승혜는 그동안 자신의 이전 작업에서 모티프를 따오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써왔다. 미술이 아름다움의 재현이란 사명에 치중하지 않게 된 이후 현대미술가들은 줄곧 다른 작가의 작업들 또는 자신의 작업을 새로운 작업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아왔는데, 홍승혜는 이를 의식적인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상이라는 복고적이고 온건한 간판을 내건 그녀의 좀 더 급진적인 제스처다.
이번 전시의 제목 <회상(reminiscence)>을 보자. ‘reminisce’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 recollect(역시 ‘회상하다’라는 의미) + 어떤 정서이다. 예를 들어 미소와 함께, 또는 향수 어린 마음으로 과거를 돌이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시에서 어떤 정서가 느껴진다면 그건 홍승혜가 그런 정서를 표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음악적’ 방법론으로 인한 어떤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은 홍승혜의 오랜 관심의 대상이고, 반복과 변주는 그녀의 조형적 방법론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영상작업 <센티멘탈> 연작 중 6편을 추려 흑백으로 변형한 후 설치한 대규모 영상작업 <6성 리체르카레>는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절정에 해당하는 6성 푸가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홍승혜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돌이켜 보고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인간의 기억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능동적인 것이다. 과거의 일을 변형시키고 삭제하고 수정한다. 그리고 프레임을 부여한다. 즉 회상은 형체가 없는 과거라는 무정형의 덩어리에 프레임을 주어 잠시 고정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현재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 위치시킨 후 응시한다. 결국 회상의 목적과 결과는 모두 응시이다. 홍승혜는 <회상>에서 음악적 방법론으로 변용하고 프레임을 준 이전 작업을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작업으로 위치시킨다. 이 중 몇 작업은 기시감과 낯섦을 사이를 오가게 하며 먹먹한 응시를 낳는데 서랍을 연상시키던 평면작업에서 서랍으로 태어난 한 쌍의 <춤추는 서랍>은 움직이던 뭔가가 얼어붙듯 멈추었을 때의 기이한 정적을 자아내며 시선을 붙든다. 붉은색이 사라져버린, 날개를 단 듯한 <온 앤 오프>는 공중에서 연상과는 무관한 일루전을 자아낸다. 아직 관객이 들지 않은 어느 아침, <6성 리체르카레>에서 군무하는 6개의 영상은 그 사이 어딘가 어둠 속으로의 응시를 낳는다. ‘센티멘탈’의 회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없는 깊고 오랜, 그러나 낯선 풍경 속으로 전치되는 듯하다. 이 느낌은 ‘센티멘탈’이 아니라 ‘서블라임(sublime)’에 가깝다.

박상미・Thomas Park 갤러리 대표

[Review]가면의 고백

가면의 고백

서울대학교미술관 7.10~9.14

“사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차마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살까지 파고든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미시마 유키오
미디어시대에 고백의 의미를 짚어보는 <가면의 고백전>은 시작부터 다소 도발적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내는 ‘나’의 고백은 너무나도 유희적이고 가벼우며 공격적이다.” 혹은 “미디어시대의 고백은 진실한 내면은 감춰두고, 매끈하게 정돈된 모습만을 보여준다”라는 지적은 SNS 유저가 아닐지라도 전시장을 도는 내내 뜨끔거리게 만든다.
전시는 네 개의 섹션(프롤로그,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 ‘고백을 엿보는 자’, 에필로그)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앙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이 걸린 작은 방이 위치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치듯 가운데에 웅크린 채로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거미 형상을 한 그녀의 대표작 <마망>을 떠올리게 한다. “전제군주”와도 같았던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 자신의 상처와 대면한 자전적인 작업은 ‘고백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그녀가 유년기의 상처를 자신의 옷과 사용하던 천을 잘라 아름다운 문양으로 풀어냈다면, 정문경은 누구나 귀엽다고 인정하는 천 인형을 뒤집어서 바느질의 너덜너덜한 부분을 내보인다. 단지 안팎만 뒤집었을 뿐인데 푸우와 도널드 덕은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기괴하다. 만약 누군가의 고백이 아름답지 않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 싶을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해 너무 무겁지 않게 정리된 고백이 꼭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정문경의 인형은 고백의 형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비해 사진을 조합해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보여주는 김아영은 고백을 듣는 자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모래 욕조 속에서 발견된 영국인 교사 2007.3.28>는 2007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맨션의 베란다에는 모래가 담긴 욕조가 놓여 있어 마치 영국인 영어 교사가 살해당한 현장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사진을 잘라 붙이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다시 찍는 과정을 거친 가짜이지만 쉽게 읽고 버려지는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의, 그 소비성의 본질을 묻는다는 고발의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진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시간을 들여 다시 무대 위로 불러온 사건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마주한다.
고백의 미추(美醜), 진위 여부를 다룬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에 이어 ‘고백을 엿보는 자’에서는 인류가 흔히 앓고 있는 질병인 관음증을 다룬다. 잘못 보기만 해도 죄가 되는 시대에 파리 유학시절 맞은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래 찍은 사진을 선보인 예기는 스토커의 형식을 차용한다. 그들에게 ‘쏘피’, ‘쎄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때로는 그들의 패션 감각을 칭찬한다. 그녀를 처음 보던 날을 떠올리는 편지 형식의 글을 읽다보면 스토커에 대한 공포보다는 매일 마주하더라도 단절된  관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왜일까? KKHH(강지윤+장근희)의 영상 작업인 <Chasing K>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는 나흘째 K씨를 쫓고 있다”고 밝히며, SNS상에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따라다닌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짐작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실제로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진심을 털어 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 하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진실게임에서 진심을 가장 잘 전하는 자는 때로 대답을 하지 않고 벌주를 마신다. SNS상에서 드러낸 나의 모습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 편집된 내면이라는 <가면의 고백전>의 지적은 예리하다. 그렇지만 비단 SNS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로 날것 그대로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제되지 않은 형식의 고백이 꼭 추구되어야 하는 것일까.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의 고백을 기하학적인 형태나 추상적인 무늬로 풀어내어 많은 이와 교감했듯이 때로는 직접적이지 않거나 아름다워서 고백은 강해진다.
<가면의 고백전> 입구에 걸린 일본인 소설가의 문구를 읽으면서 처음 떠오른 것은 한국의 시인 황인숙의 말이었다. “솔직이란 옷을 입고 저의 삿됨과 속됨과 추함과 비천함을 발산할 것인가, 아니면 제 한 몸 솔직하기를 희생해서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과 비범함에 봉사할 것인가.” 시인은 라로슈푸코가 후자에 높은 점수를 줬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 역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는 시를 쓰길 원한다. 그냥 가면이 아닌, 살까지 파고든 가면이라면 예술에는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할 그 가면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가면의 고백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고백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하자가 없다.

박현정・미술사

 

[Review]천민정 – 행복한 북한아이들

천민정  __  행복한 북한아이들

트렁크갤러리 6.26~7.29

천민정이 이번 전시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이 시점에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남한의 한 관객으로서 바라보기가 편치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지구화 시대에 북한의 독재정권과 연관된 각종 아이콘들이 흡사 한반도를 대변하는 시각문화의 상징처럼 인지되는 불편한 상황이 존재한다. 북한과 연관된 사진 이미지들이 유수의 국제 사진수상전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고, 김정은이나 김정일은 “황당한”, “미친” 등의 형용사와 동일시되면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이번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배경에도  북한의 건축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호기심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얼마든지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명목에서건 북한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어 축소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부차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북한 독재정권이 지닌 기이함으로 단순화하는 데 따른 논란의 소지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결국 북한을 독특한 방식으로 타자화하고 오히려 신비주의화하는 데에 이러한 이미지들이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이와 연관하여 전시 서문은 천 작가 작품 속 북한 어린이들은 불과 50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우리들이 북한에 대하여 얼마나 상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우리’를 일반화할 수 있을까? 개인 차이가 확연히 존재하지만 국내에 탈북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매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북한의 삶의 모습을 접하는 일이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는 천작가의 사진과 회화에서 ‘김시운’과 ‘김시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가의 아들, 딸들이 완벽히 유형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나치게 활기 차 보이고 오히려 자유분방해 보이는 딸의 모습은 인종적으로나 제스처에 있어서 경직된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완벽히 재생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채꼴의 태양은 마오의 태양보다는 선 메이드(건포도 상표)의 배경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실패한 모방의 결과는 또 다른 미학적인 가능성과 문제점을 던져진다. 뒤쪽의 매스게임과 앞쪽 어린이들, 그리고 단체 유니폼이 어색해 보이는 시점에서 천 작가의 작업은 이것이 더욱더 연극적이며 반어법적인 상황(이들은 행복한가?)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준다. 나아가서 북한 어린이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천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착잡해졌다. 과연 진정으로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란 무엇일까?
과연 예술이 타자에 대한 연민을 그 출발점으로 해서 타자를 재현하고 연기하면서, 그것도 북한 어린이들을 연기하면서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행복한 북한의 어린이들은 북한 어린이들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무지하였던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기서 파생되는 불편함은 단순히 자기비판의 부산물만은 아니다. 이 불편함은 북한 어린이라는 민감한 소재, 그리고 누가 그들을 위하여 종을 울려야 할지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부터 기인했다.

고동연・미술사

[Review]이은우 – 물건방식

이은우  __  물건방식

갤러리 팩토리 7.2~25

이은우의 근래 작업은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 사물의 기능과 형태, 표준화, 재료의 물성 등의 측면에서 논의된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도 작가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그 사물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나 그 관습적인 쓰임새를 원료로 작업한다’고 밝히고 있다. 볕이 유난히 강렬했던 7월의 어느 오후, 팩토리 유리문을 젖히고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맞딱드린 일련의 사물들에 대한 첫인상은, 그곳에 맘먹고 기거하려는 듯 적당하고 자연스러웠다. 언뜻 라디에이터처럼 보이는 그 무엇, 의자인지 다른 가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규칙적인 선반과 주황색 원추가 인상적인 구조물,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채 벽에 붙어버린 그 무엇, 그외에도 프레임, 면, 선으로만 드러나보이는 도형들과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기본 색채들의 유영. 이들은 한눈에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사물들이었으나 공간을 적당히 점유하고 있었으며 그 사이를 오가는 관람자에게도 충분한 여유를 내주었다.
이 사물들, 혹은 그 무엇들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수치, 예컨대 가구가 지닌 인간공학적 수치, 1: 1.618의 황금률, 반복, 대칭, 비례 등의 속성을 지녀서 일상 사물에 대한 기하학적 감각을 자극한다. 또한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의 잉크를 종이에 마블링한 일련의 <제목 없음>은 회화 이전의, 아니 색채 이전의 질료의 물성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다. 재료 역시 거의가 목재, 스테인리스 스틸, 철재 평철, PVC, 페인트 등 산업재료인데, 일부는 작가가 직접 다룰 수 있었겠지만 기술자와 기계에 의해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전문적인 산업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쓰임은 무엇인가. 용도를 지닌 것들인가? 아니면 장식적인 오브제인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말은 20세기 초, 루이스 설리번을 위시한 서구 기능주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의 신념이었다.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자, 사물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그 근거와 당위성은 곧 사물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루이스 설리번이 설계한 시카고 마천루에 당위성을 제공했고, 아돌프 로스는 한술 더 떠 장식은 죄악이라고 외치며 엄격한 기하학 형태의 건물을 설계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기능주의를 정교하게 이론화하거나 장식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 사회에서 제품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기능을 따른다는 경제적 효율성의 개념을 심어주었고, 이는 제품의 규격화, 표준화 개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기능주의자들 이후에도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꽤 근사한 디자인 선언을 했지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은우가 이번 팩토리 전시에서 제시하는 사물들은 기능주의자들이 당황스러워 할, 기능은 모두 소거되고 형태와 색채만을 가진 것들이다. 이는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전 <근성과 협동전>(2013)에서는 작품명을 통해 기능을 제시한 <인쇄물보관상자>를 만들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물건>, <기둥>, <푸른 사각형>, <녹색 원>, 또는 아예 <제목 없음>과 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제시한다. 심지어 형태 자체가 기능임을 부정할 수 없는 바퀴와 공조차 꼼짝없이 벽면에 고정되어 그 기능을 거세당했다. 이렇듯 기능이 소거되거나 형태, 색채, 재료가 제각기 해체된 이은우의 사물을 통해서 우리는 물건의 합당한 존재 방식이라며 합리화에 능한 도구적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본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동시에 예술로서 사물은 어디까지 기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은 멋스럽게 전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저 사물들이 전시의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Review]양아치 – 뼈와 살이 타는 밤

양아치  __  뼈와 살이 타는 밤

학고재갤러리 6.20~8.10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던 <미들코리아전> 이후, 5년 만에 ‘뼈와 살이 타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양아치 개인전이 열렸다. 이전의 전시가 구체제를 파괴하고 현재를 비판해서 신세계를 창조한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말을 지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는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는 듯하다. 고통이 사그라지다 여전히 반복되는데도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0년 전의 부조리한 사회구조가 현재에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1980년대 중반의 정치적 장려책인 일명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으로 제작된 영화 제목을 불러들였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1980년 부흥한 에로영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열된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실제로 뼈와 살이 타는 것이니 섬뜩한 공포영화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고, 문맥에 따라 그 당시 일어났던 끔찍한 고문과 살육에 대한 기술일 수도 있다. 여하튼, 1980년대를 어떻게 겪었는가에 따라 제목의 의미는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근대화를 뼈아프게 겪은 나라임에도 현재의 사회 흐름은 그렇게 반듯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 간이든, 계층 간이든, 세대 간이든, 신뢰는 약화되었고 충돌은 강화되었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는 대충 20년 전 군부시대를 끝으로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가 요즘 들어 다시 갑갑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자연 훼손과 가정 파탄, 사이비와 어이없는 사고가 도처에서 재발하는 데도, 당한 자와는 별개로 국가는 침묵을 강요한다.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고 진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시가 열렸기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다소 명확해 보인다. 예술가로서 억압과 통제가 한창이던 30년 전의 과거와 현재 상황의 유사함을 당연히 감지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 되는 현실이 동기가 되어 이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전에는 (권력의 통제 등이) 시각적으로 드러났지만, 지금은 교묘한 통제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는 30년 전의 분위기와 현재가 혼재된 듯한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귀곡산장을 연상케 하는 별장의 요소들로서 샹들리에, 촛불, 유리잔, 박제들, 그리고 마치 산장 주변과도 같은 숲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쓴 늑대의 탈이나 닭대가리 같기도 한 새의 머리(무관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숲 속에 놓인 시신의 부분 같은 머리카락 뭉치, 앵두나무, 머리를 축 늘어뜨린 입상 등 모든 요소가 에로틱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때로 현재의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실의 다양한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연출된 장면들은 밤에 조명을 사용하여 촬영함으로써 어둠과 빛의 대비가 극명하여 그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이렇듯 성적인 코드와 공포스러움이 혼재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과 허구, 죽음과 생명, 절망과 헛된 희망이 뒤섞여서 자아내는 불안한 현실과 이를 지탱하는 현재의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작가는 꾸밈없이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의 신작 <뼈와 살이 타는 밤>은 6개월 정도 야간 산행을 반복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어두운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고독한 시간이자 존재와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독은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작가는 고독의 수행을 통해 왜 하필 안 좋은 것이 반복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자신처럼 고독한 시간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제안하는 듯하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view] 노세환 – 학습된 예민함

노세환  __  학습된 예민함

표갤러리 사우스 7.3~24

첫째 항(項): 태생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바나나. 둘째 항: 비슷한 형태일 뿐 똑같을 수 없는 바나나. ‘바나나’라는 동일항이 노세환의 뷰파인더 속 관계에선 대립항(對立項)으로 전환된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니다. 낱개의 사실(fact)과 약간의 차이(difference)가 만들어낸 논리는 꽤 설득력을 지녔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바나나, 사과)에서 온 ‘차이’와 ‘사이’라는 명확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시작한 사진작가는 좀 더 세련된 논법으로 자신의 다음 생각을 피력한다. 자연의 물을 포장만 한 생수 브랜드, 철저히 인공적인 콜라. 모두 ‘차이’와 ‘사이’가 존재하지만 시각적 구분은 매우 힘들다.
오늘의 시각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먼저 발견하거나 진리의 미묘한 ‘사이’에 대한 물음을 먼저 감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동시대(contemporary)라 지칭되는 오늘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수 또한 상당하다. 그 많은 사변-思辨: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생각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는 일-을 한 줄로 정리해서 수반되었을 유사하고 반복적인 사유와 실험이 결과론적 사진 한 장에 담긴다.
그러나 노세환의 사진은 철학적이지도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밝고 유쾌하다. 규칙을 가진 형태들이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색감을 띠고 화면에 안착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이 지루하게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너무나 인위적(혹은 인공적)이어서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사실)을 바라보면서 미니어처(가짜)를 찍은 느낌이 드는 것. 화이트 큐브에 입장하며 가졌던 기대심리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너무나 정직한 작품 제목들. 날카롭지 않지만 무언가 한 방 맞은 듯한 심정이 되는 이유는 바로 현대미술이라는 장치가 우월하게 제대로 작용했다는 반증일 터. 노세환의 노림수. 자신의 시각논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경계심을 낮추는 작품을 진행해 나간다. 학습된 선험에 대항하는 것 보다 현명한 미술인의 자세다. 굳이 바나나와 사과를 만들고, 물감을 붓고, 자신만의 잣대로 허용된 1mm의 규칙을 정한 후 오차 없이 찰나의 순간에 셔터 타이밍을 포착하는 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시각예술가가 정리하는 방식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탁월한 사실에 대한 기대감과 사실이라고 배운 학습에 대한 막연한 근원적 물음을 철학자가 아닌 시각예술가가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여 물어보고 있다. 진리의 기원 따위를 캐묻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자아(自我)라 불리는 ‘나’의 정체성 속에 ‘나’만의 사유가 얼마만큼 포진해 있는지, 그것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되짚어주고 있다.

김최은영・미학

[Review] Hands across the Water

Hands across the Water

갤러리 노리 7.4~8.4

국적이 각기 다른 작가들의 전시는 늘 공통의 관심사로 묶인다. 가령 아시아 작가나 작품을 식민주의 근대의 역사로 엮는다든지 아랍의 정치적 현실을 지리적 접근성으로 범주화하는 따위가 그렇다. 전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언어와 역사를 동급으로 여기게 될 테고, 후자는 컨템포러리아트 시장으로 각광받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와 동급으로 평가되는 오류를 필연으로 범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체성의 범주화는 현대 전시학의 필연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은 나를 규정하는 타자의 시선, 타자를 바라보는 내 안의 시선들이 만나고 결국 돌고돌아 예술이 물어야 할 가장 존재론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Hands across the Water”는 서구와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아픈 현대사를 겪은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는 LA에 기반을 둔 백아트(Baik Art)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2013년 가을 제주에서의 짧은 체류기간을 통해 제주의 역사와 풍경, 사람에 대한 토론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읊은 작품들이다. 전시가 열린 제주 갤러리 노리는 1980년대 초  미술동인회 임술년의 멤버였던 이명복과 그의 부인이 운영한다. 어쩌면 전시의 맥락과도 어울리는 공간이다. 인도네시아의 헤리 도노(Heri Dono), 말레이시아의 자키 안와르(Ahmad Zakii Anwar)와 카우(Kow Leong Kiang), 그리고 한국의 한용진과 최태훈이 참여했다. 1995년, 2006년, 그리고 올해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헤리 도노는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와 전통 인형극인 와왕(wayang), 민담 등을 제주도 해녀와 바다 풍경, 분단 한국의 풍경 속에 버무렸다. 목탄을 이용한 자키의 작품은 화면 가득한 오징어, 게 등이 제주 해녀들의 표정과 어울려 노동의 힘듦을 밝게 표현해낸다. 붓이 아닌 손의 놀라운 소묘가 돋보인다.
한용진의 미니멀한 조각작품은 제주의 현무암,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막돌을 발견하여 최소한의 조각질로 만들어냈다. 80이 넘은 고령의 예술가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서울에서 마주쳤던 젊은 여성들의 표정과 패션을 옅고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한 카우의 도시인물화는 재현의 방식을 재현의 대상과 일치시키려 노력한 흔적으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본 작품은 최태훈의 신작이다. 숟가락을 구부리고 눌러 만든 배의 형상은 세월호를 상징한다. 구체적 삶으로서 숟가락 하나하나는 아우성치는 배의 형상으로 완성되는데 하얀 벽면에 검은 배의 형상이 너무 아프다. 플라스마 기법의 숲과 우주 이미지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최근 일상과 사회적 존재, 그리고 정치적 맥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지던시의 가장 큰 목적은 교류, 즉 만남에 있다. 얼굴과 얼굴, 사람과 풍경의 일대일 만남은 인터넷상의 접속과 차단 같은 차가운 만남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 당혹스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만남이다. 한 시인이 말했듯, 한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것은 늘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자아에 대한 발견 혹은 여행이다. 레지던시의 필요성인 것이다.

정형탁・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