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HAVANA
the 12th Havana Biennale 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
현재 세계 여러 나라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약 150여 개. 이 가운데 베니스, 상파울루, 휘트니비엔날레를 3대 비엔날레로 손꼽는다. 그리고 이스탄불, 상하이, 광주비엔날레 등이 특색 있는 비엔날레로 주목받고 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되는 아바나 비엔날레는 이른바 ‘제3세계 국가’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알려졌다. 올해로 12회째인 아바나 비엔날레가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한국작가로 유일하게 한성필이 참여했다. 박불똥, 임옥상(1993)과 故 박이소(1994) 이후 20여 년 만이다. 《월간미술》이 아바나 비엔날레를 현지 취재했다.
정치와 예술이 교차하는 풍경
이준희 편집장
‘아바나 비엔날레’는 아니, ‘쿠바’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쿠바라면 막연히 카리브 해(海)의 낭만과 이국적인 이미지가 먼저 연상된다. 이런 선입관을 품게 된 배경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혹은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선율과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기에 개인적 경험을 덧붙이자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 연상된다. 2,500개의 빈 맥주병 위에 ‘감시원 청소배’라는 글씨가 낙서처럼 쓰여진 낡고 작은 나무배를 올려 놓은 설치작품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쿠바 출신 알렉시 레이바 카초였다. 아바나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의 당시 나이는 스물넷.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에 걸맞게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하는 보트피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아바나에 입성하기까지 꼬박 서른 시간이 걸렸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를 해준 쿠바교민(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쿠바의 연인>(2011) 정호현 감독)에게 카초의 근황을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카초는 현재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통신과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아바나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와이-파이 (Wi-Fi)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이를 기반으로 공공미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제3세계 미술을 넘어서
쿠바는 북한과 더불어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다. 1960년대 초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 정책으로 오랫동안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조만간 양국 국교 정상화에 합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50년 넘게 고립된 채 자립경제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를 고수해온 쿠바의 문호가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아바나 국제공항은 노랑머리 백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온 그들은 쿠바가 자본주의 물결에 오염되기 전, 사회주의 쿠바의 순수함(?)을 체험하기 위해 아바나로 여행 온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가 만들어낸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일까?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서구 유명 작가가 대거 참여했다. 애니쉬 카푸어(영국), 다니엘 뷔랭(프랑스), 앙리 살라(프랑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이탈리아), 티노 세갈(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디어와 경험 사이(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아바나비엔날레에는 44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작가가 35명이나 된다. 쿠바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바나 비엔날레가 처음 시작된 해는 1984년이다. 그런데 올해가 12회란다. 30년 동안 3차례나 제때 비엔날레가 열리지 못한 탓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비엔날레 개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아바나 비엔날레가 서구의 여타 비엔날레와 차별되게 보여준 정체성은 한마디로 ‘안티-스펙터클’로 요약할 수 있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나 카셀도쿠멘타 같은 서구의 대규모 국제미술제에서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를 발굴해왔다. 동시에 쿠바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제3세계 작가에 주목해왔다.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 내용과 전시 장소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아바나 비엔날레 출품작 대부분은 상업성 짙은 컬렉터나 권위적인 미술관 관계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즉, 거래 가능한 완결된 오브제 작품보다는 전반적으로 퍼포먼스와 공연, 음악, 무용 등 일회성 작품이 강세를 보인다. 따라서 전시장소와 공간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전시장과 생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도시 곳곳이 전시장이다. 바닷가나 낡은 건물이 밀집한 오래된 골목이 비엔날레의 무대다. 이처럼 아바나 비엔날레는 시민의 생활터전 속 깊이 침투해 있다. 일반 시민을 위한 이런 의도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내포하며 공공미술로서의 기능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작가 한성필의 작품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성필은 건물 파사드(façade)와 복원 공사 중인 가림막을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쿠바의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Capitolio) 바로 맞은편 건물 외벽에 설치된 작품 <조화로운 아바나(Harmonious Havana)>는 아바나 시민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 표지에 실린 바로 그 탑이다)을 촬영한 한성필의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가림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시가지(Habana Vieja)의 오래된 유럽식 건물 사이에서 아주 낯선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한성필이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작가는 지난해 아바나 비엔날레 큐레이터 팀으로부터 비엔날레 참가 제안을 직접 받았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한 명의 특정 큐레이터가 아닌 쿠바 ‘위프레도 램 현대미술 센터(Wifredo Lam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기관 산하 큐레이터 팀에 의해 공동 조직된다. 이들 큐레이터 팀은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참여 작가를 리서치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한성필 외에 몇몇 한국작가에게도 비엔날레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안에 응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한성필만 오케이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일단 참여를 수락한 한성필은 그때부터 적지 않은 전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외교부 산하 주멕시코한국대사관(대사 전비호)으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현재 한국과 쿠바는 미수교 상태다. 그래서 주멕시코한국대사관에서 쿠바를 상대로 한 대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곧 성사되면, 한국과의 수교 또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부도 미국처럼 정치에 앞서 문화예술분야에서 쿠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다각도로 모색하던 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성필의 작품은 한국과 쿠바 양국간 우호협력의 교두보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성필의 작품은 아바나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바, 여전히 아바나 시대를 굴러다니는 자동차 중 대부분은 195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이른바 ‘올드카’였다. 그리고 나머지 차량 중 20~30%는 한국산 자동차였다. 한국은 벌써 그들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 있었다. 이밖에도 K-Pop과 드라마를 통한 한류 열기가 다른 남미 국가 못지않았다. 그동안 멀게만 여겨졌던 쿠바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와 가까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