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HAVANA

the 12th Havana Biennale   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

현재 세계 여러 나라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약 150여 개. 이 가운데 베니스, 상파울루, 휘트니비엔날레를 3대 비엔날레로 손꼽는다. 그리고 이스탄불, 상하이, 광주비엔날레 등이 특색 있는 비엔날레로 주목받고 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되는 아바나 비엔날레는 이른바 ‘제3세계 국가’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알려졌다. 올해로 12회째인 아바나 비엔날레가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한국작가로 유일하게 한성필이 참여했다. 박불똥, 임옥상(1993)과 故 박이소(1994) 이후 20여 년 만이다. 《월간미술》이 아바나 비엔날레를 현지 취재했다.

정치와 예술이 교차하는 풍경

이준희 편집장

‘아바나 비엔날레’는 아니, ‘쿠바’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쿠바라면 막연히 카리브 해(海)의 낭만과 이국적인 이미지가 먼저 연상된다. 이런 선입관을 품게 된 배경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혹은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선율과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기에 개인적 경험을 덧붙이자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 연상된다. 2,500개의 빈 맥주병 위에 ‘감시원 청소배’라는 글씨가 낙서처럼 쓰여진 낡고 작은 나무배를 올려 놓은 설치작품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쿠바 출신 알렉시 레이바 카초였다. 아바나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의 당시 나이는 스물넷.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에 걸맞게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하는 보트피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아바나에 입성하기까지 꼬박 서른 시간이 걸렸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를 해준 쿠바교민(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쿠바의 연인>(2011) 정호현 감독)에게 카초의 근황을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카초는 현재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통신과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아바나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와이-파이 (Wi-Fi)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이를 기반으로 공공미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20150524_190148

알렉산더 구엘라(Alexander Guerra) < Sweet emotion >

20150524_181639

마뉴엘 A. 헤르난데스 카르도나(Manuel A. Hernández Cardona) < Love is calling you >

제3세계 미술을 넘어서
쿠바는 북한과 더불어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다. 1960년대 초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 정책으로 오랫동안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조만간 양국 국교 정상화에 합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50년 넘게 고립된 채 자립경제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를 고수해온 쿠바의 문호가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아바나 국제공항은 노랑머리 백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온 그들은 쿠바가 자본주의 물결에 오염되기 전, 사회주의 쿠바의 순수함(?)을 체험하기 위해 아바나로 여행 온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가 만들어낸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일까?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서구 유명 작가가 대거 참여했다. 애니쉬 카푸어(영국), 다니엘 뷔랭(프랑스), 앙리 살라(프랑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이탈리아), 티노 세갈(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디어와 경험 사이(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아바나비엔날레에는 44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작가가 35명이나 된다. 쿠바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바나 비엔날레가 처음 시작된 해는 1984년이다. 그런데 올해가 12회란다. 30년 동안 3차례나 제때 비엔날레가 열리지 못한 탓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비엔날레 개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아바나 비엔날레가 서구의 여타 비엔날레와 차별되게 보여준 정체성은 한마디로 ‘안티-스펙터클’로 요약할 수 있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나 카셀도쿠멘타 같은 서구의 대규모 국제미술제에서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를 발굴해왔다. 동시에 쿠바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제3세계 작가에 주목해왔다.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 내용과 전시 장소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아바나 비엔날레 출품작 대부분은 상업성 짙은 컬렉터나 권위적인 미술관 관계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즉, 거래 가능한 완결된 오브제 작품보다는 전반적으로 퍼포먼스와 공연, 음악, 무용 등 일회성 작품이 강세를 보인다. 따라서 전시장소와 공간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전시장과 생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도시 곳곳이 전시장이다. 바닷가나 낡은 건물이 밀집한 오래된 골목이 비엔날레의 무대다. 이처럼 아바나 비엔날레는 시민의 생활터전 속 깊이 침투해 있다. 일반 시민을 위한 이런 의도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내포하며 공공미술로서의 기능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작가 한성필의 작품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성필은 건물 파사드(façade)와 복원 공사 중인 가림막을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쿠바의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Capitolio) 바로 맞은편 건물 외벽에 설치된 작품 <조화로운 아바나(Harmonious Havana)>는 아바나 시민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 표지에 실린 바로 그 탑이다)을 촬영한 한성필의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가림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시가지(Habana Vieja)의 오래된 유럽식 건물 사이에서 아주 낯선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한성필이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작가는 지난해 아바나 비엔날레 큐레이터 팀으로부터 비엔날레 참가 제안을 직접 받았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한 명의 특정 큐레이터가 아닌 쿠바 ‘위프레도 램 현대미술 센터(Wifredo Lam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기관 산하 큐레이터 팀에 의해 공동 조직된다. 이들 큐레이터 팀은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참여 작가를 리서치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한성필 외에 몇몇 한국작가에게도 비엔날레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안에 응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한성필만 오케이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일단 참여를 수락한 한성필은 그때부터 적지 않은 전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외교부 산하 주멕시코한국대사관(대사 전비호)으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현재 한국과 쿠바는 미수교 상태다. 그래서 주멕시코한국대사관에서 쿠바를 상대로 한 대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곧 성사되면, 한국과의 수교 또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부도 미국처럼 정치에 앞서 문화예술분야에서 쿠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다각도로 모색하던 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성필의 작품은 한국과 쿠바 양국간 우호협력의 교두보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성필의 작품은 아바나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바, 여전히 아바나 시대를 굴러다니는 자동차 중 대부분은 195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이른바 ‘올드카’였다. 그리고 나머지 차량 중 20~30%는 한국산 자동차였다. 한국은 벌써 그들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 있었다. 이밖에도 K-Pop과 드라마를 통한 한류 열기가 다른 남미 국가 못지않았다. 그동안 멀게만 여겨졌던 쿠바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와 가까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안토니오 엘리지오(Antonio Eligio)

안토니오 엘리지오(Antonio Eligio) < TONEL > 이 작가는 쿠바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WORLD REPORT | JAPAN Takamatsu Jiro Mysteries / Trajectory of Work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300×1245cm 1977 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일본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다카마쓰 지로(高松次郎, 1936~1998)의 대규모 회고전이 일본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군데의 국립미술관에서 열렸다. <다카마쓰 지로: 미스터리즈(Takamatsu Jiro: Mysteries)>(도쿄 국립근대미술관, 2014.12.2~3.1)과 <다카마쓰 지로: 제작의 궤적(Jiro Takamatsu: Trajectory of Work)전>(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4.7~7.5)이 바로 그것. 이 전시의 중심에는 그의 작품과 자료를 정리하고 소장한 치바 유미코의 에스테이트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성과 객관적인 시각의 작품세계를 전달한 이 두 전시를 통해 작가는 “스스로 사고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다카마쓰 지로의 현재

마정연 미술사

도쿄 국립근대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과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이 연이어 다카마쓰 지로(高松次郎, 1936~1998) 회고전을 개최했다. 두 곳의 국립미술관에서 공동 기획과 순회 형식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기획과 내용으로 한 작가의 회고전을 거의 동시에 개최한 것은 일본 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5년, 다카마쓰 지로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196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말년의 작품까지 망라해 소개한 미술관 규모의 회고전은, 작가 생전에는 1996년 니가타시 미술관(Niigata City Art Museum)과 작가가 오랫동안 거주한 도쿄도 미타카시 아트갤러리(Mitaka City Gallery of Art)에서 개최된 <다카마쓰 지로의 현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국내에서만 수차례의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1999년 국립국제미술관의 그림자 회화와 드로잉전, 1970년대의 입체작품을 조명한 2000년 지바시 미술관(Chiba City Museum of Art)의 전시, 회화 작품을 재검증한 2003년 미타카시 아트갤러리의 전시 등등. 이들 전시가 다카마쓰의 특정 시리즈 작품에 주목한 데 반해 2004년 후츄시 미술관(Fuchu Art Museum)과 기타큐슈시 미술관(Kitakyushu Municipal Museum of Art)이 개최한 <다카마쓰 지로: 사고의 우주전>은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품을 망라하는 성격의 전시였다.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2014년 12월 2일부터 2015년 3월 1일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다카마쓰 지로: 미스터리즈(Takamatsu Jiro: Mysteries)>와 2015년 4월 7일 개막해 7월 5일까지 계속되는 오사카 국립국제 미술관의 <다카마쓰 지로: 제작의 궤적 (Jiro Takamatsu: Trajectory of Work)전>도 다카마쓰 지로의 일생에 걸친a 작업을 소개한 회고전이다. 명백하게 다른 관객층을 설정한 두 미술관의 전시가 공유하는 것은 크레딧이다. Yumiko Chiba Associates의 대표인 갤러리스트 치바 유미코가 운영하는 에스테이트(The Estate of Jiro Takamatsu)가 제공한 작품과 자료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은 에스테이트가 발행한《Jiro Takamatsu: All Drawings》(2009)에 게재된 약 4000점의 드로잉이다. ‘에스테이트’는 저작권을 비롯한 다카마쓰의 자료, 작품 일체의 관리를 담당하는 공적인 존재라는 의미이다. 치바는 해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가 재단, 즉 ‘파운데이션’이 아니라 ‘에스테이트’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로, 작가 개인을 연구하는 단체에 대한 공적 지원 시스템의 부재와 소규모 자금만으로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조직을 운영해 온 점을 들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자료의 정리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아카이브’로서 일반 공개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미국이나 유럽만큼 확립돼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자료 제공 서비스가 국공립 기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0년 다카마쓰와 처음 만나 함께 아틀리에의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 치바가, 작가 사후에 그 어떤 공적 자본의 지원 없이 기울여온 25년간의 노력이 두 개의 전시로 열매를 맺은 셈이다.
1952년 일본 최초의 국립미술관으로 설립된 이래 줄곧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은 일본 근현대미술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전은 이번이 최초이지만, 이 미술관은 1960년대부터 다카마쓰의 작품을 소장하고, 각종 전시들을 통해 그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긴 역사를 가지는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 전시가 다카마쓰 지로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 혹은 그의 이름만 아는 국내외의 일반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다카마쓰가 병석에서 남긴 드로잉을 표지로 삼은 단행본 크기의 카탈로그와 전시장 곳곳에 게재한 작품 해설이 일반적인 미술관 해설의 화법이 아니라 친근한 대화체라는 점, 모든 문자 정보가 일본어와 영어 2개 국어로 표기되었다는 점, 그리고 잘 알려진 그림자 시리즈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끔 전시장 입구의 긴 통로에 설치된 그림자 실험실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jtmy_019

<The Target Never Comes into View> 1964~1970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전시광경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IMG_4326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전시 광경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모티프가 된 점과 소립자
이 전시가 주목을 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큐레이션 체제에 있다. 마스다 도모히로, 구라야 미카, 호사카 겐지로가 다카마쓰의 작업을 각자의 관심에 따라, 각각 <‘점’ 하나의 미궁사건: 1960~1963>, <표적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64~1970>, <그것은 ‘회화’가 아니었다:
1970~1998>이란 제목의 파트로 나누어 담당하고, 오타니 쇼고가 전시 전반의 기획 운영을 맡았다. 이 전시가 설정한 대다수의 관객뿐만 아니라, 큐레이터들 또한 동시대 작가로서 다카마쓰의 작품을 접하기보다는 미술사를 통해 알게 된 세대이다. 그들은 그들 세대가 배운 미술사 속의 다카마쓰에 대한 평가, 즉 하이레드센터나 모노하와 관계있는 1960, 70년대의 작업은 높이 평가받지만 그 이후의 회화작업은 그렇지 않은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각형의 전시공간 한가운데에 실제 사이즈의 아틀리에를 재현함으로써, 도넛 모양 구조의 동선을 이룬 본 전시는, 전시장 입구에서 전시장 출구의 작품들이 보이고, 전시장 출구에서 다시 전시장 입구로 돌아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초기 작품과 말년 병석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작품 안에, 다카마쓰가 세계의 기본 단위로 생각한 점과 소립자의 모티프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온 작품세계 안에 일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와 작가의 평생의 관심을 증명해내기 위해서였다. 필자 역시 원형 구조의 전시장을 몇 차례 돌며 전시를 관람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념적이고 난해하다고 알려진 다카마쓰 지로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제시하는 데 성공한 전시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한편,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은 다카마쓰 지로와 인연이 깊은 미술관이다. 다카마쓰의 전 시대에 걸쳐 주요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7년 개관 당시 제작을 의뢰한 거대한 그림자 작품은 이 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1980년 구타이(GUTAI)의 일원인 모토나가 사다마사와 더불어 2인의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하는 형식으로 다카마쓰가 최초로 미술관 규모 개인전을 연 곳이자,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림자 시리즈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열린 곳이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미술관에서 현재 개최 중인 전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다카마쓰 지로 회고전이자 미술사의 현재 페이지로 남을 귀중한 연구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5년 전부터 치바와 상의하며 연구를 진행해 온 나카니시 히로유키는 전관의 전시공간을 이용해 450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개했다.
평면작업이 주류가 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감상하는 데 상상 이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카마쓰의 주요 작품들 사이, 여지껏 공백이나 물음표로 존재했던 사고의 과정에 단서를 제공하는 드로잉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전시 작품 하나 하나가 선택되었기에, 관객의 한 걸음 한 걸음에도 적지 않은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해설이 일절 배제된 채 작품만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과 카탈로그에 실린 나카니시의 금욕적인 에세이 ‘다카마쓰 지로의 전체상: 드로잉과 표지, 삽화 작업과 더불어, 연대 순으로’ 또한 최소한의 문자를 통해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한 정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시 그 자체와 닮아있다. 이에 따르면 다카마쓰 지로의 작품세계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논리적으로 발전해왔다. ‘1960~1963년: 점’, ‘1964~1966년: 그림자’, ‘1967~1968년: 원근법’, ‘1969~1971년: 단체(單體:oneness)’, ‘1972~1973년: 단체로부터 복합체(複合體: compound)로’, ‘1974~1977년: 복합체와 평면상의 공간’, ‘1977~1982년: 평면상의 공간’, ‘공간, 기둥과 공간’, ‘1983~1997년: 형(形)’으로. 이 전시가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이유다.

<Form/Origin No.1385> 캔버스에 유채 218×82cm 1996 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Point No.20_1961-62

<Point No.20> 보드에 래커 40.9×1.6cm 1961~62 Aomori Museum of Art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일본 현대미술을 재검증하다
에스테이트를 중심으로 한 장시간에 걸친 아카이브 구축 작업, 작품과 자료 조사에 기반을 둔 전시회 기획, 작가 집필원고와 작가에 대한 비평의 출판을 통한 문자 정보의 자료화와 번역 작업은, 작가와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사를 재검증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현대미술의 역사화 작업에 대한 국내 연구의 응답 의미도 갖는다. 치바는 그러한 점에서 다카마쓰 지로가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실험미술: 하이레드센터– 직접 행동의 기록》(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김미경 옮김, 열화당, 2001) 등을 통해 다카마쓰 지로의 이름을 접한 한국의 독자라면 두 전시 안에서 하이레드센터의 비중이 매우 작다는 사실에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2014년 지바시 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을 이틀 앞두고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세상을 떠난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구라야와 나카니시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이유의 한 가지는, 2013년 나고야시 미술관에서 자료를 중심으로 한 하이레드센터의 대규모 전시가 이미 개최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다카마쓰 지로라는 작가는 그 자체로서 제시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22일 TBS 방송의 프로그램 <뉴스의 시점>은 이번 두 전시에 대해 보도하며 과거에 방송된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1974년 5월 4일자)를 재방영했다. 영상 속에서 다카마쓰는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자신의 작품관과 세계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만,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행위라는(…) 그런 ‘표현’과는 조금 다른 것을 하려 한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다카마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상식에 기반을 두고 인간 관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일원적으로 고정되어버린 데 대한 답답함이라고 할까, 그 일원적인 관계성에서 해방된, 더 넓고, 다각적이고, 깊이 있는 관계(…) 백지 상태로 돌아가, 무구의 지점에서 시작된 관계를 갖고 싶습니다.”
사후 17년을 맞이하는 작가 회고전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주는 의미는 다카마쓰 지로가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구라야는 수평일 때에는 앉기 위한 기능밖에 갖지 못하는 의자가, 벽돌 하나로 인해 기울어지면 인간과 관계없는 물체가 되어버리는 <복합체(의자와 벽돌)>(1972) 작품을 예로 들며, 대지진 이후의 사회 불안과 정치적인 보수화, 올림픽 개최에 대한 흥분과 기대 등, 1930년대의 정황과 매우 유사한 현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다카마쓰 지로라는 작가에게서 기존의 개념과 사고방식을 의심하고, 철저히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4.Takamatsu Painting Chiba

치바 유미코와 작업하는 다카마쓰 지로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WORLD REPORT | VIENNA Sleepless – The Bed in History and Contemporary Art

줄리아 피시텔리(Giulia Piscitelli) <임시 상태(Temporary State)> 용수철 매트리스 라텍스 무명천 220×180cm 2011 Courtesy Galleria Fonti © Photo: Amedeo Benestante

침대가 갖는 문화사적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휴식의 장소라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 인류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한 흐름을 살펴보는 전시 <잠 못 이루는-역사와 현대미술로 본 침대(Sleepless-The Bed in History and Contemporary Art)전>(1.30~6.7, 오스트리아 빈 국립 벨베데레 갤러리 21세기 하우스)이 열린다.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의미를 가지는 침대를 새롭게 고찰해본다.

불면증에 걸린 현대미술

박진아 미술사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인생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들은 침대 위나 그 주변서 벌어지지 않는가? 예술적 대상으로서 혹은 주제로서 침대는 세계 문명의 태초부터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침대가 있는 장소 혹은 침실이란 영원한 모태의 공간, 즉 생명이 잉태되는 신비의 변증적 공간이다.” 마리오 코도냐토(Mario Codognato) 큐레이터는 침대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침대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가구에 얽혀 있는 인류 역사와 의미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전시 <잠 못 이루는 현대인: 역사와 현대미술로 본 침대(Sleepless – The Bed in History and Contemporary Art)전>은 1월 30일 개막해 6월 7일까지 오스트리아 빈 국립 벨베데레 갤러리 21세기 하우스(21er Haus)에서 계속된다.
누구라도 어려운 시험문제에 답하지 못하고 난감해 하거나 아무리 뛰려고 애를 써도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허우적대는 꿈을 꾸다 화들짝 놀라 깬 경험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크고작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면 마음속에 억눌러둔 불안과 강박감이 꿈으로 표현되곤 한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실존적 불안감이 커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언제부턴가 하루 24시간 중 방해 받지 않고 쉬고 잠자고 꿈꿀 수 있는 한 토막 7~8시간은 잘 깎은 한 덩어리 다이아몬드보다 찾기 어려운 귀한 럭셔리가 되었다.
과거 하루 8시간 편한 잠을 약속했던 침대 생산업체들은 21세기로 접어든 후 잠자리에서조차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공간으로써의 침대를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2001년 뉴욕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화제의 디자인 전시회 <미래의 사무실(Workspheres)전>에서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헬라 용게리우스(Hella Jongerius)는 아우핑(Auping) 사와의 협력으로 멀티 컴퓨터 스크린을 장착한 업무용 침대 콘셉트를 디자인하고 ‘침대 속에서 비즈니스’를 선언했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만성적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취침과 숙면을 돕는 스마트폰 앱까지 등장해 속속 일상화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어, 올해 1월 30일자 미국의 시사지 《뉴스위크》는 <미국인 대 취침결핍의 시대(The Great American Sleep Deficit)> 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담은 특집호를 내보내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그토록 증가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약물 치료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기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는 불안정한 라이프스타일과 스마트폰 같은 전자용품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보다 더 잠을 못이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그 같은 침대 생산업체들과 소비전자제품 업계의 라이프스타일 예언은 적중했디. 오늘날 현대인은 깊은 밤에 일하거나 잠 못 이뤄 들썩이는 이른바 24시간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일중독자들은 잠자리로까지 컴퓨터를 가져오고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소셜네트워크로 인맥관리하느라 바쁘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는 ‘셀카(selfie)’는 물론 인생의 가장 사적인 순간까지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기기를 통해 공개・공유하는 데 익숙한 독특한 세대인데, 그 현상은 2015년 1월 자 《엘르》 프랑스 판 포르노 특집에 실린 베네통 광고 사진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의 사진 연작 <사이버 에덴의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in Cyber-Eden)> 에 잘 응축돼 있다.

위르겐 텔러(Juergen Teller) (런던) C-프린트 45×55.5cm 1998 ©Juergen Teller and Christine König Galerie

위르겐 텔러(Juergen Teller) <핑크색의 어린 케이트(Young Pink Kate)>(런던) C-프린트 45×55.5cm 1998
©Juergen Teller and Christine König Galerie

디비시오 아포스톨로룸의 화가(Master of the Divisio Apostolorum)가 그린  가문비 목판 위에 유채 78×73.5cm©Belvedere, Vienna

디비시오 아포스톨로룸의 화가(Master of the Divisio Apostolorum)가 그린 <성처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 탄생(The Nativity of the Virgin)> 가문비 목판 위에 유채 78×73.5cm©Belvedere, Vienna

침대, 인생의 가장 극적인 무대
서양미술에서 침대가 개인사와 문화 일반을 반영하는 배경 도구로 즐겨 등장했듯 오늘날 거의 대다수의 인간은 침대에서 태어난다. 라비니아 폰타나(Lavinia Fontana)가 그린 16세기 그림 속에 직사각형 요람에 누워있는 갓난아기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에서 생명 탄생의 신비는 침대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졌다. 일찍이 고대 로마시대 폼페이의 여느 가정집 금슬 좋은 내외의 침실에서는 벽장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 남녀의 모습이 그려졌고 매춘굴에서는 침대가 광고판 심볼로 활용되었다 한다.
인생살이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순회바퀴 속에서 결정적인 단계마다 침대는 인간과 함께 한다. 인류 역사의 초창기부터 우리가 몸을 뉘어 휴식하고 잠드는 자리는 참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우리네 인간은 침대(寢臺) 또는 요(寢牀)에서 태어나고 사랑을 나누고 나이가 들면 병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침대를 가장 극적이고 최종적인 ‘인생의 무대(theater)’라고 하는 이유다.
아르테포베라 운동의 기수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는 내버려진 단순한 철제 침대받침이나 매트리스를 전시하는 것으로써 시간과 기후 변화에 따라 붉게 녹스는 금속과 닳고 허물어져 먼지로 화하는 직물 매트리스란 한 인간이 무작위적으로 거치는 탄생, 성장, 사랑, 죽음이라는 생사의 순환과정과 다를 바 없음을 은유하며 관객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사색의 여유를 가져볼 것을 권유한다.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설치작 <무제(검은 침대)>는 침대란 인간의 신체가 가하는 무게, 반복해 가한 충격, 체액을 감내하고 흡수하는 세월의 증인이자 산물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현대미술에서 침대가 한 편의 정치적 콘셉트이자 매개체로 재탄생한 결정적인 순간은 지금부터 약 50년 전인 1969년에 벌어진 한 편의 개념미술 퍼포먼스를 통해서였다.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힐튼 호텔에서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침대 시위(Bed-In)를 펼치는 것으로써 휴식, 잠, 에로티즘을 두루 상징하던 침대에 대한 관점과 관객의 고정관념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게 하여 침대는 전 세계 만인이 볼 수 있는 공공 무대가 되었고, 신혼여행이라는 로맨틱한 행사는 ‘싸우지 말고 사랑합시다(Make Love, Not War!)’라는 구호를 내건 정치적 제스처로 재탄생했다.
20세기 후반기 현대미술이 연인과 부부만의 침실 공간 속으로 밀치고 들어온 이후로 이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던 갖가지 인간사도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공공 공간 바깥으로 떠밀려 나왔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에드 루샤(Ed Ruscha)는 ‘대학 시절 즐거움이여 안녕(Goodbye to College Joys)’이라는 캡션과 함께 작가와 두 여성이 한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사진을 1967년 미술전문지 《아트포럼(Artforum)》에 발표하는 것으로써 결혼 선언을 하고 자유롭던 총각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서 그는 1971년 24분 길이의 16mm 비디오 <프리미엄(Premium)>을 제작했다. 한 남성이 한 여인을 호텔로 초대해 드레싱과 크루통으로 사랑의 샐러드를 만든다는 줄거리의 아트 코미디로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영상예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또 자유연애가 구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류 청년문화로 자리 잡아가던 1970년대, 래리 클라크(Lary Clark)는 미성년자 연애, 불법 마약 복용, 폭력 등 청년 서브컬처 뒤안길에 서린 어두운 일면을 사진으로 담아냈는데, 특히 <무제(Untitled, T40)>(1971)라는 흑백사진에서 침대는 연인 사이에 사랑은 물론 금지된 마약을 몰래 주고받는 공간으로 묘사됐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바로크 시대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에서 그렸듯 침대는 죽음의 무대이기도 하다. 신체미술이 미술 창조의 큰 모티프로 차용된 오스트리아에서 특히 침대는 질병과 죽음과 연관 깊은 사물로 여겨졌다. 긴 병고 끝에 2012년 타계한 프란츠 베스트(Franz West)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유독 다수 눈에 띄는데,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자도 결국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인간생명의 유한성에 사로잡혀 있던 이 빈 출신 조각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지난해 세상을 뜬 오스트리아 출신의 원로화가 마리아 라스닉(Maria Lassnig)의 유화작품 <병원(Hospital)>은 병원 침대에 누워 육신적 고통, 공포, 고독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한낱 고깃덩이로서의 육신을 여과없이 표현했다.
침대가 모티프가 된 21세기 미술작품들 역시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면서 침대는 휴식과 휴면을 위한 가구가 아니라며 자명종을 요란하게 울려댄다.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은 1999년 헝클어진 침구와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이 널브러져 있는 <나의 침대(My Bed)>라는 레디메이드 설치작을 갖고 자신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 공간과 과거사를 노출하는 ‘치부 고백하기’ 전략으로 현대미술의 경계를 한 단계 더 밀어붙여 현대미술사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라 루카스(Sarah Lucas)의 <오 나튀렐(Au Naturel)>은 남녀를 상징하는 과일과 플라스틱 양동이가 놓인 매트리스를 통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침대란 남녀 간 섹스의 교환이 벌어지는 영역임을 논평한다. 서구와 중동 사이의 정치문화적 차이를 미술로 해석하는 모나 하툼(Mona Hatoum)에게 현대 글로벌 시대에서 침대란 치즈갈이를 연상시키듯 뾰족하게 날이 선 바늘방석이라고 은유하면서 현대인에게 한시도 방심 말고 깨어있으라 경고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종일 일하고 소비하는 21세기형 인간을 요구한다. 일로, 시험 준비로, 마음속 불안감 때문에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24시간 사회 속에서 늘 불안해 하고 정처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느새 초현대판 노마드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회를 떠돈다. 만성적인 잠 부족과 피로에 지치고 화가 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한 침대와 방해받지 않는 숙면이지만, 현대미술은 현대인의 만성적 불면증은 쉽게 치유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듯하다. 그러나 기억하자. 플라톤이 말했듯, “잠자고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꿈 없는 영원(永遠)으로 간다”는 것을. ●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캔버스에 가정용 래커, 두개골, 조명등, 곰인형, 까마귀, 침대. 작품 크기: 침대: 97×202×123cm 그림: 213.4×213.4cm 2008 Courtesy of the artist/White Cube Gallery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죽어가는 사람에게 미치는 최면술의 놀라운 효능(The Startling Effects of Mesmerism on a Dying Man)> 캔버스에 가정용 래커, 두개골, 조명등, 곰인형, 까마귀, 침대.
작품 크기: 침대: 97×202×123cm
그림: 213.4×213.4cm 2008 Courtesy of the artist/White Cube Gallery

 

WORLD REPORT | LONDON Magnificent Obsessions : Artist as Collector

작가가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는 일이다. 작가는 때로 수집을 통해 작업의 동인(動因)을 얻기도 하고 소재로서 이용하기도 한다. 런던 바비칸 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전>(2.12~5.25)은 작가의 취미를 엿보는 흥미로운 전시다. 작업실 내부에 꼭꼭 숨겨왔던 작가의 소장품을 통해 그들의 은밀한 면모를 살펴보기 바란다.

LONDON, ENGLAND - FEBRUARY 11: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 exhibition at the Barbican Art Gallery on February 11, 2015 in London, England. This is the first major exhibition in the UK to present the personal collections of post-war and contemporary artists. Ranging from mass-produced memorabilia and popular collectibles to one-of-a-kind curiosities, rare artefacts and specimens, these collections provide insight into the inspirations, influences, motives and obsessions of artists.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 opens at the Barbican Art Gallery in London on February 12, 2015 until - May 25, 2015.  (Photo by Peter Macdiarmid/Getty Images for Barbican Art Gallery)

마틴 왕(Martin Wong)의 수집품_Dahn Vo artwork. < Magnificent Obsessions_The Artist as Collector >, Barbican Art Gallery_Peter MacDiarmid, Getty Images

LONDON, ENGLAND - FEBRUARY 11: Dolls in the collection of Peter Blake are shown in the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 exhibition at the Barbican Art Gallery on February 11, 2015 in London, England. This is the first major exhibition in the UK to present the personal collections of post-war and contemporary artists. Ranging from mass-produced memorabilia and popular collectibles to one-of-a-kind curiosities, rare artefacts and specimens, these collections provide insight into the inspirations, influences, motives and obsessions of artists.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 opens at the Barbican Art Gallery in London on February 12, 2015 until - May 25, 2015.  (Photo by Peter Macdiarmid/Getty Images for Barbican Art Gallery)

피터 블래이크(Peter Blake)의 인형들_< Magnificent Obsessions_The Artist as Collector >, Barbican Art Gallery_Peter MacDiarmid, Getty Images

예술가의 호기심 캐비닛을 열다

지가은 골드스미스대학 비주얼컬처 박사과정
“모든 수집가의 진열장은 우리에게 다른 세상, 수집가의 상상 속에만 있는 세상, 그러면서도 기억이건 상상이건 아름다움이건 천재성이건 또 다른 영역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체류를 허락해준다. 그곳은 수집가가 도피하는 폐쇄된 공간이며 수집가 자신이 조물주요 심판자인 곳, 승인과 추방, 순서와 배열, 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곳이다.” (필립 블롬 지음, 이민아 역, 《수집: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 동녘, 2006, p.201)
예부터 예술계에는 남다른 수집벽을 자랑하는 대가가 많았다. 렘브란트는 동서양 회화부터 악기, 화석, 무기, 골동품 등 방대하고 열렬한 수집벽으로 가계가 파산에 이를 지경이었고, 루벤스는 보석, 조각품과 이집트 미라와 같은 고대 예술품에 감식안을 가진 수집가로 유명했다. 드가나 모네는 일본 판화에 심취해 이를 수집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색채와 구도를 작품에 차용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피카소의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 컬렉션은 큐비즘을 탄생시키는 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런던 바비칸(Barbican)의 <아름다운 강박: 수집가로서의 예술가 (Magnificent Obsessions: Artist as Collector)전>은 이러한 수집가의 명맥을 잇는 전후시대 및 동시대 예술가 14명의 수집품 800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아르망(Arman), 솔 르윗(SolLewitt), 앤디 워홀(Andy Warhol), 피터 블레이크 (Peter Blake),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등 낯익은 예술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집 진열장이 공개됐다.
애초에 공개될 목적으로 모아진 수집품들이 아니다.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컬렉션이 모인 만큼 수집품의 범위나 종류도 광범위했다. 예술가 개인의 은밀한 취향이나 취미 생활이 배어 있는 갖가지 컬렉션들은 독립된 섹션으로 나누어진 공간에 각각 개별 전시처럼 포진했는데, 실제 작업실이나 집 안 한 켠을 슬며시 엿보는 듯한 관람 동선이 수집품 탐색의 묘미를 더했다. 컬렉션과 작품의 연관성이 명백한 경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반짝이는 금속 액자 속에 나비와 곤충들이 정렬된 자태는 멀리서도 한눈에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주변으로 동물 박제, 해골, 의학 모형, 곤충 표본들이 군집해 있었다. 돌연변이 동물 박제나 사체의 단면을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아 기괴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허스트 작업의 근저에는 어린시절부터 심취한 자연사 유물에 대한 관심과 죽음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자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생 시절부터 동료 작가들과 작품을 교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스로 고가의 미술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가 되었다. 컬렉터의 생리를 이해하기 위해 미술품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고백한 바 있는 허스트에게 수집 행위와 예술 창작은 동일한 맥락에 존재한다.
예술가의 수집 컬렉션과 작품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연관성이 아주 은밀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정적이고 미니멀한 흑백 사진들을 먼저 떠올렸다면 전시장에 진열된 신석기시대 도구들과 화석, 해부학 모형과 각종 의학 도구들로 이루어진 그의 수집품들이 꽤나 낯설지도 모르겠다. 스기모토가 사진작가가 되기 전에 일본 민속미술을 취급하던 전문 딜러였다는 행적도 그의 자연사 컬렉션의 수준을 높이는데에 한몫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 생각해보면, 스기모토 컬렉션은 인류의 기원이나 생명, 지식의 진화, 흐르는 시간과 역사의 층위들을 사진이라는 한 프레임에 응축하고자 하는 그의 오랜 예술적 사유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스기모토에게 화석과 사진은 모두 특정한 순간의 시간성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은 영역인 것이다. 미술품 전문가(connoisseur)의 심미안으로 특정한 분야와 장르에 특화된 수준 높은 컬렉션을 완성한 또 다른 예술가로는 하워드 호지킨(Howard Hodgkin)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인도회화에 깊이 매료되어 수집을 시작한 호지킨은 특히 17세기 무갈(Mughal) 회화에 조예가 깊다. 양식과 맥락은 다르지만,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와 빛의 표현을 즐기는 호지킨의 추상회화와 인도회화의 연관성도 짐작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히로시 스기모토 (Hiroshi Sugimoto)_ , Barbican Art Gallery_ Peter MacDiarmid, Getty images

히로시 스기모토 (Hiroshi Sugimoto)_ < Magnificent Obsessions_ The Artist as Collector >, Barbican Art Gallery_
Peter MacDiarmid, Getty images

앤디 워홀(ANDY WARHOL) 쿠키단지

앤디 워홀(ANDY WARHOL) 쿠키단지

수집, 병리학적 강박증? 창작의 동인?
수집한다는 행위 자체와 자신의 작업세계에 유사한 수행적 규칙을 적용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유럽의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을 주도한 아르망(Arman)이 있다. 한 가지 종류의 산업 생산물과 일상 오브제들을 유리 진열장 안에 빼곡히 채워넣은 작업과 같은 방식으로, 아르망은 자신의 아프리카 가면과 조각상, 시계, 일본 갑옷 컬렉션에도 예외없이이 ‘반복과 축적’의 코드를 적용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주자 솔 르윗은 자신의 작업실이나 생활 공간에서 마주하는 일상용품들의 사진을 종류별로 모아 9개씩 목록화해두었다. 작품의 균일한 모듈 구조와 조형성이 일상적 삶의 반복된 수행성에도 고스란히 묻어난 경우이다. 이와 함께, 영국 도예가 에드문드 드 왈 (Edmund de Waal)의 단순한 형태와 간결한 색채의 도자기 작품들이 군집하여 만들어내는 리듬감은 어린 시절부터 원석과 화석을 모아 순서대로 배열하기를 즐기던 그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일본에 머물 때 모은 264개의 ‘네추케(Netsuke)’ 컬렉션도 왈의 명상적인 수집 활동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와 정반대로 한네 다보벤(Hanne Darboven)은 엄격한 수학적 계산과 배열, 개념주의에 중심을 둔 자신의 작품 체계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수집 패턴으로 반전을 선보였다. 사자가죽에서부터 실물크기 말 조각상, 각종 공예장식품 등 무질서해보이는 수집품 더미는 그녀의 함부르크 고향집과 작업실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차지하고 있던 수집품 일부를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한편, 컬렉션을 구성하는 각 아이템의 모티프나 이에 담긴 기억, 이야기가 예술가들에게는 그 자체로 영감의 보고가 되기도 한다. 멕시코의 타투이스트(Tattooist) 닥터 라크라 (Dr Lakra)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전통시장이나 벼룩시장에서 모은 일상적 오브제나 이미지들이 교과서였다. 벽면을 메운 50장의 음반 커버에 담긴 이국적이면서도 통속적인 핀업걸(Pin-up girls) 이미지와 으스스하고 기이한 캐릭터들이 타투 디자인의 중요한 소스가 되었다. 미국 작가 짐 쇼 (Jim Shaw) 컬렉션의 주된 출처도 중고 잡화점이나 동네 차고 세일이었는데, 그가 집착적으로 수집한 것은 내다 버려진 작가 미상의 그림들이다. 작가는 이 흉물스러운 그림들이 아무도 원치 않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 대중문화의 찌꺼기를 대하는 그의 끈질긴 애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짐 쇼는 파편화되고 소모되는 대중문화의 시각 이미지에서 따온 상징, 기호, 모티프를 그만의 방식으로 중첩시켜 만든, 출처와 전개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개인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더불어, 영국 사진작가 마틴 파(Martin Parr)의 기념 엽서 컬렉션은 그가 스냅사진에 담아낸 현대인의 단조로운 여가 생활상, 그에 스며든 소비사회의 강박적 욕망과 허영의 단상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흑백의 빈티지 엽서부터 컬러로 이어지는 20세기 엽서 시리즈에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부한 기념 사진, 관광 사진의 시선이 포착되어 있다. 또 이와는 별개로, 마틴 파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우주로 보내져 희생양이 된 개, 라이카를 추억하는 이미지들을 담은 담배 케이스나 배지, 시계들을 집요하게 수집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집벽이 병리학적인 저장강박증으로 남느냐 혹은 지치지 않는 창작 동인의 열쇠가 되느냐는 한 끗 차이이다. 패 화이트(Pae White)는 베라 뉴만 (Vera Neumann)의 텍스타일 디자인이라면 침대보, 티타월, 냅킨, 스카프 등 무엇이든 중독적으로 사 모은다. 화이트에게 이 수천 장의 텍스타일 컬렉션은 “디자인 라이브러리 혹은 그래픽 아카이브”이자, 패턴 디자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영감의 원천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 끈질긴 수집 에너지가 창작을 지속시키는 결정적인 동력이라고 말했다.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도 타고난 수집가 기질을 자랑하는데, 그의 수집벽은 뿌리깊은 집안 내력으로 알려졌다. 영국 민속미술품, 오래된 장난감, 빅토리안 콜라주, 곤충 표본, 가면 등 그 수집 범위도 광범위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십 종류의 코끼리 모형을 비롯해 인형과 간판, 가면 컬렉션의 일부만이 공개되었다. 작업실 벽면을 가득 채운 간판 컬렉션을 그대로 전시장에 가져와 재현하고 싶었던 큐레이터의 바람은 블레이크의 거절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자신만의 수집 체계와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우려하는 진정한 수집가적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블레이크에게 작업실은 이제 수집품의 정교한 축적과 배열로 완성된 아주 사적인 영역의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컬렉션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 사례는 미국의 화가 마틴 왕(Martin Wong)의 컬렉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왕이 40여 년간 수집한 중국 다기들과 기념품 4000여점은 작가가 타계한 이후 이를 승계한 또 다른 예술가 단 보(Danh Vo)가 설치작품으로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과 삶 자체가 수집과 저장의 연속이었던 강박적 수집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컬렉션은 그 유명세에 비해 다소 초라한 규모와 수준으로 공개되었다. 워홀의 판화 작품과 함께 전시된 쿠키통들은 그가 평생 끊임없이 사고 모으고 쌓아 두고 보관해 온 수만 점의 물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쇼핑중독자였던 워홀이 남긴 것은 벼룩시장에서 사모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창작 활동과 비즈니스 과정, 사적인 일상생활에서 파생된 온갖 종류의 기록물을 담은 박스 610개가 발견되었는데, 워홀 스스로 이를 ‘타임캡슐’이라 명명했다.
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경험 등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된 수집 강박은 예술가들에게는 그저 수집을 위한 수집에 그치지 않고, 창작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열렬한 탐구 에너지이자 애정과 욕망의 분출구가 된다.
그 컬렉션의 세계는 예술가 자신만의 질서와 체계, 철학과 미감이 작동하는 하나의 소우주이고 상상과 창조력의 발로이다. 때로는 수집품에 담긴 이야기가 특정 지역색이나 정치, 문화, 사회사의 다양한 층위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리디아 이(Lydia Yee)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늘 그들의 생활공간에 함께 자리한 수집품들의 정체가 궁금했고, 이들의 집착적 수집 동기, 작품과 컬렉션의 내밀한 연관 관계를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예술과 수집의 동인과 배후를 심도있게 파고들었다기보다는 예술가 컬렉션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관객은 논리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이상한 호기심에 동참하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전시를 즐길 수 있다. ●

맨위이미지 닥터 라크라(Dr. Lakra)의 레코드앨범 커버 수집품_ <Magnificent Obsessions: The Artist as Collector전>, Barbican Art Gallery_Peter MacDiarmid, Getty Images

PREVIEW | KOREAN ARTISTS IN VENICE

1_축지법과 비행술, 2015, HD Film Installation, 10 min 30 sec

축지법과 비행술
Giardini di Castello 5.9~11.22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이숙경 커미셔너의 기획으로 문경원, 전준호가 참여한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틀 안에 속한 한국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내용으로 한국관의 구조적 특성을 살려 7채널 영상작업으로 설치된다. 고고학적 탐구, 과학으로 증명된 가설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작품에서 두 작가는 미술에 내재한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을 표출하고자 한다.

[separator][/separator]

단색화

단색화 Dansaekhwa
Palazzo Contarini Polignac 5.8~8.15

<단색화>전은 벨기에의 보고시안재단이 주최하고 국제갤러리가 후원하는 한국현대미술특별전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의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이번 특별전은 이용우의 기획으로 이루어졌으며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단색화의 대표적 거장인 김환기 권영우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故정창섭의 작품을 국제무대에 선보이는 중요한계기가 될 전망이다.

[separator][/separator]

Humanistic Nature and Society

Humanistic Nature and Society
Palazzo Ca’ Faccanon 5.7~6.7

큐레이터 왕순킷(Wong Shun-Kit)이 기획한 인문, 자연, 사회에 관한 전시. 한국 작가 이매리(사진)가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 뮤지엄 소속으로 중국 작가 8명과 함께 참여한다. 여성성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이매리는 이번 전시에서 민족과 언어를 통한 메타포로 한 색다른 미디어 작품 2점을 선보인다.

[separator][/separator]

베니스, 이상과 현실사이

베니스, 이상과 현실사이 Sleepers in Venice
Calle del carbon 5.7~6.7

세계 미술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이 총 집합하는 베니스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왜 베니스로 가는지?’를 되짚어보는 전시가 열린다. 독립기획자 김승민이 영국작가 2007년 터너상을 수상자인 마크 왈린저의 영상설치작품 <Sleeper>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이번 전시는 마크 왈린저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작가 8명(강임윤 김덕영(사진) 구혜영 우디킴 이현준 장지아 MR36)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separator][/separator]

개인적인 구축물

개인적인 구축물 Personal Structures
Palazzo Bembo& Palazzo Mora 5.9~11.22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인 GAAF가 베니스비엔날레를 위해 마련한 기획전. <개인적인 구축물-경계를 넘어서>라는 타이틀의 이번 전시에는 50개 국가에서 온 작가 100여명의 작품이 모인다. 한국작가로는 남홍을 비롯해 박기웅 이명길 이이남(사진) 차수진 한호가 참여해 빛을 매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separator][/separator]

Frontiers Reimained

Frontiers Reimained
The Palazzo Grimani 5.9~11.22

전광영(사진)과 김준은 큐레이터 선다람 타고르(Sundaram Tagore)가 마리우스 킨트(Marius Kwint)와 함께 기획한 전시 <Frontiers Reimained>에 참여하여 생활과 물리적 국경을 넘어선 예술을 소개한다. 이 전시는 아름다운 건축과 정교한 장식으로 잘 알려진 16세기 건축물에서 이루어지며 아프리카, 아시아 등 25개의 나라에서 44명의 작가가 참여해 60여점의 조각작품을 선보인다.

[separator][/separator]

박병춘 Installation Butche-Collected landscape3 muck on krean paper , 130 Work 2014 (3)

박병춘 Byoung-choon Park
Universita Ca’ Foscari 5.8.~8.31

이탈리아의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인 카 포스카리 대학에서 동양화가 박병춘의 개인전이 열린다. 한국인 최초로 카 포스카리 대학의 초청을 받아 베니스에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Collected Landscape(채집된 풍경)>라는 제목으로 미술관 전관에서 이루어지며 방마다 각각의 컨셉이 있는 대형작품으로 구성된다.

WORLD TOPIC Björk

bjork 11 all is love

뷔욕의 뮤직비디오 <모두가 사랑이 넘친다>의 촬영을 위해 감독 크리스 커닝햄(1970~, 영국)은 두개의 로봇을 디자인하여 주문 제작했다 Björk, Still from directed by Chris Cunningham 187×63×103cm 1999
Credit: Courtesy Wellhart Ltd&One Little Indian. 위 앨범 <볼타>에 실린 <방랑벽>의 뮤직비디오에서 뷔욕이 입었던 의상. Encyclopedia Pictura, Isaiah Saxon(American) Sean Hellfritsch(American), costume, 2007 Wool and leather. Björk. Still from directed by Encyclopedia Pictura, 2008. Courtesy Wellhart Ltd&One Little Indian

아이슬란드 출신 싱어 송 라이터인 뷔욕(Björk, 1965~)의 회고전이 뉴욕 MoMA에서 개막했다. 3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그녀가 20여 년 동안 발표한 8장의 앨범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앨범 커버 사진, 사운드, 영상, 악기, 오브제는 물론 의상까지 선보이는 이 전시는 그야말로 미술관에서 일견하는 한 음악가의 인생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술관이 호출한 음악가는 무엇을 보여주었나

서상숙 미술사
현재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 아트리움에서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팝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인 뷔욕Björk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단 하나의 음에서도 극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목소리를 가진 천재적인 가수’ ‘팝뮤직의 지평을 바꾸었으며 음악의 시각적인 프리젠테이션을 바꾸었다’는 등의 평을 듣는 뷔욕은 일렉트로니카,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의상,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한 아방가르드 뮤직비디오 등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팝음악계의 정상을 누린 가수다. 이 전시는 1965년 생으로 오는 11월 50세를 맞는 뷔욕의 첫번째 솔로 앨범 <데뷔Debut>(1993)로 시작해 올초 발매된 <버니큐라Vulnicura>(2015)까지 음악사를 돌아보는 중간 회고전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지난 2013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10년 넘게 함께 살았고 비디오 작업도 같이 한 예술적 동지였으며 딸 이사도라(13)를 낳아 키워 온 현대미술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와의 관계를 청산한 이후 그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한 새 앨범 <버니큐라>에 수록된 뮤직비디오, <검은 호수Blake Lake>가 이번 기획전에 소개 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았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앨범의 음원이 인터넷에 무단 유출되었고 뷔욕은 전시 개막 두 달 전 앨범을 발표해버림으로써 모마가 이 전시를 위해 기획했던 비디오의 상영은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Vulnicura’는 라틴어로 상처라는 뜻의 ‘vulnus’와 치유라는 뜻의 ‘cura’를 합친 말로 뷔욕이 만들었으며 사전에는 없다고 한다. 이 앨범에는 역시 잘 알려진 현대미술 작가와 사랑에 빠져 뷔욕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바니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때로부터 이별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에 만들어진 곡들이 차례로 수록돼 있다.
이 특별전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술관인 MoMA가 비판을 감수하고 팝가수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지난 3월 8일 전시 개막과 함께, 아니 그보다 앞서 3월 2일 프리뷰 직후 MoMA 전시사상 유례없는 혹평이 쏟아져 나와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필자 역시 프리뷰에 참석한 후 큐레이터인 클라우스 바이젠바흐Klaus Biesenbach(모마 P.S.1관장)가 그답지 않게 베테랑 큐레이터로서의 경력과 기획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술 큐레이팅을 전혀 모르는 뷔욕에게 전권을 넘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바이젠바흐에게 팝가수의 기획전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는 2012년 독일 테크노 음악그룹 크래프트워크Kraftwerk를 초대, 같은 장소인 아트리움에서 라디오 액티비티 등 매일 앨범 1개씩, 8일 연속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MoMA P.S.1에서 그들과 관련된 전시를 따로 마련하는 등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기 때문이다.
바이젠바흐는 2000년 뷔욕에게 전시를 제의했으나 “음악을 어떻게 미술작품처럼 벽에 걸 수 있겠느냐”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음악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조건하에 3년 전에야 성사되었으며 뷔욕이 이번 전시의 세세한 부분까지 참여했다”고 밝혔다. 모마는 이번 전시를 위해 아트리움에 가건물을 지었다. 2층짜리로 1층 전시장에서 2층 전시장으로 가려면 전시장을 나와 모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연결된 입구를 통해 2층전시장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이렇게 모두 3개의 임시전시실을 만들었는데 1층에는 2개의 전시장을 만들어 각각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있다. 새 작품인 <검은 호수>가 한쪽 방에서, 그리고 다른 한쪽 전시실에서는 뷔욕의 커리어를 모아놓은 32개의 비디오가 연속 상영되고 있다. 180도로 움직이는 렌즈가 설치된 스포츠 중계용 카메라 4세트를 이용해 찍은 <검은 호수>가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룸은 아이슬란드의 동굴에서 촬영한 이미지에 맞춰 6000개의 콘 모양 장식을 천장에 붙여 방음효과와 동굴 이미지를 연출하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 광경. 유명한  드레스와 매튜 바니가  비디오를 위해 제작한 뮤직박스를 들고 라이브 슈즈를 신은 흰 드레스의 뷔욕 마네킹이 보인다 Marjan Pejoski, Macedonian, Swan Dress, Tulle, feathers and leather 87×60cm 2001 Matthew Barney, Vespertine Music Box, 2001 acrylic, brass and copper mechanical apparatus 30.5×33×35.6cm Installation view of Björk, The Museum of Modern Art, Mar. 8~Jun. 7 2015.

전시 광경. 유명한 <백조> 드레스와 매튜 바니가 <베스퍼타인> 비디오를 위해 제작한 뮤직박스를 들고 라이브 슈즈를 신은 흰 드레스의 뷔욕 마네킹이 보인다 Marjan Pejoski, Macedonian, Swan Dress, Tulle, feathers and leather 87×60cm 2001 Matthew Barney, Vespertine Music Box, 2001 acrylic, brass and copper mechanical apparatus 30.5×33×35.6cm Installation view of Björk, The Museum of Modern Art, Mar. 8~Jun. 7 2015.

Bjork instrument MOMA

뷔욕이 앨범 <바이오필리아> 발매 후 투어를 위해 제작 의뢰한 로봇 악기, 그래비티 하프가 MoMA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 Andrew Cavatorta, American Gravity Harps, 2011 Walnut, spruce tonewood, poplar, aluminum, harp, strings, motors, sensors, electronics and software 320×61×61cm Credit: Sang Suk Suh

뷔욕의 과욕? MoMA의 과신?
뷔욕은 디자이너에게 “인간의 내장 속에 들어간 듯한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전시장이 비디오 상영관이거나 오디오를 들으며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폐쇄되고 정체된 공간이어서 관객들은 비디오룸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걷고 스치면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2층 전시장에 마련된 <Songlines>는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1층 로비에서 시간이 찍힌 티켓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도 추운 뉴욕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밖에 줄 서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막상 티켓을 받아 들어간 전시장의 빈약함이다. 이미 비디오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뷔욕의 의상과 소품 등을 전시하고 있어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Songlines>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먼 길을 가면서 길을 찾기 위해 노래나 이야기 등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된 곳들을 묘사한 노랫길을 뜻한다.
MoMA는 이 전시장에 뷔욕의 25년 커리어를 대표하는 솔로 앨범 8장에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했다. 블루투스 신호를 이용해 장소를 인식하고 사람의 머리동작에 따라 작동하는 헤드폰을 끼고 아이패드를 목에 걸면 뷔욕의 음악과 아이슬란드 시인인 숀Sjon이 뷔욕에 관해 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오디오를 들으며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40분짜리 이 소프트웨어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짧고 좁은 이 전시장에서 40분 동안 뷔욕의 일생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즐기기는 힘들었다.
전시장에는 뷔욕의 신체를 3D로 스캔해 만든 실물 크기의 마네킹에 무대의상들이 입혀 있다. 200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 입고 나타나 조롱의 대상이 된 (가수 엘튼 존은 이에 대해 미국인은 유머가 없다고 일갈했다) 백조 드레스, 알렉산더 매퀸의 벨 드레스(2004), 후세인 샬라한의 에어메일 드레스(1999)등이다.
또 매튜 바니가 2001년 <베스퍼타인Vespertine> 앨범을 위해 제작한 뮤직박스와 라이브 슈즈, 크리스 커닝햄의 로봇(<All is Full of Love>), <메둘라Medulla>(2004), <볼타Volta>(2007) 등의 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 모자와 머리장식, 악보, 스케치북, 다이어리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뷔욕은 자신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며 때로는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악기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악기들은 1층 홀에 따로 전시돼 있다.
물론 뷔욕의 음악과 비디오는 한번 듣거나 보면 잊기 힘든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독특한 목소리와 거칠게 내뱉는 듯한 창법은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아이슬란드의 풍경과도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한다. 클래식 악기, 특히 현악기를 이용하는 센스가 뛰어나고 아이슬란드의 전래민요, 스스로 만든 악기 등을 믹싱하는 등 뷔욕은 거의 모든 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또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협업자들을 잘 선택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스, 데이비드 황, 크리스 커닝햄 등의 음악감독들이 바로 그들 중의 일부다. <베스퍼타인> 앨범에 참여한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여성 합창단이라든지 트랜스젠더인 앤토니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 등 그의 소리에 관한 감성은 다른 음악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뷔욕은 모마전 개막 전날인 3월 7일 카네기홀에서 <버니큐라> 앨범 월드투어를 시작했다. 모마에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뷔욕의 비디오와 라이브 무대를 보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그만큼 뷔욕의 창의성은 음악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통합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뷔욕의 비디오를 <피필로티 리스트전>(2008)처럼 아트리움의 큰벽에 상영하고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거나 앉을 수 (그리고 누울 수도 있었다) 있게 했더라면, <Songlines> 전시를 마리나 아브로비치전처럼 6층의 특별전시실에 따로 마련했더라면, 크리프트워크처럼 아트리움에서 콘서트를 하고 비디오와 의상 등은 모마 P.S.1에서 상영 전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꼬리를 이었다.
이번 뷔욕전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뷔욕은 MoMA의 제의에 ‘No, thanks’라고 거절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마는 아직 (뷔욕에 관한 전시를 할 만한)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할 일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을 잘 전시하는 것인데 그것에 실패했다”고. ●

뷔욕의 카펠라 앨범  커버사진에 쓰인 숍리프터 (Hrafnhildur Arnardóttir aka Shoplifter 1969 아이슬란드) 디자인의 머리장식(2004)과 알렉산더 매퀸 디자인의 벨 드레스(2004). Credit: Sang Suk Suh

뷔욕의 카펠라 앨범 <메둘라> 커버사진에 쓰인 숍리프터 (Hrafnhildur Arnardóttir aka Shoplifter 1969 아이슬란드) 디자인의 머리장식(2004)과 알렉산더 매퀸 디자인의 벨 드레스(2004). Credit: Sang Suk Suh

 

WORLD REPORT Hongkong,the Global Art Hub

〈아시아 아방가르드〉전시 전경

〈아시아 아방가르드〉전시 전경

미술본색 in 홍콩

임승현 기자
홍콩이 아시아 최대의 미술허브로 급부상 중이다. 물론 홍콩이 아시아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주목받은 것이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그러나 홍콩의 2015년 3월은 그야말로 ‘아트먼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 세계 미술인이 주목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2015>을 포함해 ‘아트홍콩(ART HK)’에서 새롭게 선보인 <아트 센트럴>, <아시아 호텔아트페어(AHAF Hongkong 2015)>가 열려 아시아 컬렉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시장은 있고 작가와 전시는 없다”는 비판을 뒤엎기 위해서 일까. 페어 기간에 미술시장을 찾은 컬렉터와 미술애호가들을 붙잡기 위한 다양한 전시가 홍콩 전역에서 펼쳐졌다.
이 기간 한국미술로서 가장 주목받은 부문은 단연 단색화다. 국제갤러리를 비롯한 국내외 갤러리가 소개한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등 이른바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은 <아트바젤 홍콩 2015> VIP오픈 첫날 뜨거운 판매행진을 이어가, 단연 시장의 ‘대세’임을 입증했다. 단색화에 대한 관심은 잠시 홍콩을 들른 한국 컬렉터만을 자극한 것이 아니었다. 홍콩의 젊은 컬렉터들 또한 단색화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 규모의 옥션인 소더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아방가르드전〉(3.12~27)은 이를 증명한다. 소더비 홍콩은 경매와 무관하게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구타이회화를 함께 조망하는 자체 기획전을 열었다. 두 장르을 최초로 조합한 전시가 경매회사의 기획으로 열린 점은 특이한 사항이다. 시장의 중심에 있는 소더비가 한국미술의 이미지에 깊이있게 접근하고자 ‘단색화’를 선택한 것은 ‘스마트 초이스’였다. 전시에 맞춰 베니스비엔날레 관외전시로 〈단색화전〉(5.7~8.16)을 기획한 이용우와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아 미술부 큐레이터 알렉산드로 먼로가 각각 단색화와 구타이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여 작가인 박서보와 하종현이 직접 나서 작가토크를 진행해 적극적인 방법으로 단색화에 대한 미술애호가들의 이해를 도왔다. 전시 연관 행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최연수 소더비 홍콩 비즈니스 매니저는 “홍콩의 컬렉터에게 단색화는 아직 생소하다. 시각적으로 매료되더라도 한국미술사, 역사 속에서 단색화가 어떤 맥락으로 읽히는지 알지 못하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행사가 홍콩 컬렉터들에게 단색화의 미술사적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홍콩 컬렉터의 작품구매 특징을 짚었다. 작년부터 국내에서 불기 시작한 단색화 열풍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단색화’에 대한 미술사적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시장에 머물기만 한다면 결국 세계미술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5월 DAP에서 출간될 단색화 관련 연구논문집은 세계미술인들의 미술사적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관심을 끈다.
시장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홍콩은 그동안 미술시장은 팽창한 데 비해 전시장과 미술관련 기관의 인프라 구축이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받아왔다. 마크 스피글러 아트바젤 이사의 “그림이 판매되는 페어에 머물지 않겠다”는 말은 다분히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트바젤 홍콩 2015>은 알렉시 글래스-캔토(시드니 아트스페이스 상임 이사)를 큐레이터로 초빙해 <인카운터전>을 열어 전시 기능을 강화할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카운터전>은 아트페어 장 중앙부에 20여 점의 대작을 설치해 “역동적인 도시가 멈춘 공간을 표현”했다. 우리나라 갤러리도 이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아라리오갤러리의 인도 작가 탈루 L.N, 서울과 대구의 리안갤러리가 소개하는 카를로스 로론 디진, 원 앤 제이갤러리의 김태윤, 국제갤러리와 뉴욕의 티나킴갤러리가 함께 추천한 이우환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트페어 부스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페어의 시각적 다양화를 이뤄냈으나, 아트페어의 일부일 뿐, 담론을 담은 전시로서 읽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트홍콩(ART HK)’이 새롭게 선보이는 위성 페어인 <아트 센트럴>은 이러한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 돋보였다. <아트바젤 홍콩>이 수용하지 못한 보다 실험적인 작업과 젊은 갤러리들을 끌어들여 아시아 현대미술의 생생한 현장을 담으려 했다. 하버뷰프런트에 위치한 페어 행사장은 <아트바젤 홍콩>보다는 한결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이를 의식한듯 어린이를 위한 미술행사나, 길거리 음식을 먹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관객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 어떤 아트페어보다 홍콩미술계를 넘어 아시아 미술계가 주목하는 공간은 완공을 4년이나 앞둔 ‘서구룡문화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였다. 앞으로 홍콩 미술의 장을 확대할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공연·교육 공간과 함께 공공녹지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설립을 위해 홍콩 정부가 투자한 예산은 9억 달러(약 1조160억원), 2012년부터 작품 수집으로 소비한 금액은 1억2900만 달러(약 1460억원), 현재 수집한 소장품만 4000여 점, 전체 공간 연면적 6만m(1만8150평)에 전시 공간은 1만7000m(5142평). 일련의 천문학적 숫자 나열만으로도 그 규모에 압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도련이 ‘M+뮤지움’의 수석 큐레이터로 부임하고, 세계적인 명성의 스위스 컬렉터 율리시그가 1500여 점의 작품을 이곳에 기증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3월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르스 니트브Lars Nittve ‘M+뮤지움’ 총괄 디렉터는 ‘M+뮤지움’에 대해 “역사적 개념의 미술관이 아니다. 홍콩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형태의 복합 시각미술 공간을 창출할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비록 ‘M+뮤지움’의 전시공간은 공사 중이지만 이미 구매한 소장품을 외부 전시장에서 선보여 미술관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M+ Moving Images>는 2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홍콩, 꿈, 희망, 집’이라는 주제로 스크리닝 프로그램과 Midtown pop과 Cattle Depot Artist village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이 전시는 이주를 테마로, 디아스포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건축과 디자인에서 간학문적 접근이 가능한 미술관의 지속적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기획이다.
한편 공간을 이전한 홍콩의 대표적인 대안공간 ‘Para site’도 같은 기간 개관전을 열어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A Hundred Years of Shame–Songs of Resistance and Scenarios for Chinese Nations?>란 제목의 개관전은 홍콩을 포함한 중국어권 국가가 현재 처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해 반항적인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홍콩을 찾은 많은 외국인과 중화권 사람들에게 펀치라인을 던지는 전시로 작지만 알찬 구성이었다.
이 외에도 K11 예술재단의 <인사이드 차이나전>, 페더빌딩에 입주한 세계적인 갤러들의 전시 등 홍콩의 3월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홍콩은 기존 전시장의 모슴을 탈피하고 상업과 예술이 교묘하게 줄타기 하는 새로운 장을 표방하는 곳이 유독 많다. 홍콩은 자유로운 분위기만큼 해외미술의 진입로가 열려 있는 곳이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자리를 확고히 할 홍콩에서 우리의 미술이 그 기반을 다잡고, 함께 어울려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외관 전경

<아트 센트럴> 외관 전경

para (7)

Para site 〈A Hundred Years of Shame전〉 전경

 내부에 설치된 특별부스

<아트 센트럴> 내부에 설치된 특별부스

[section_title][/section_title]

interview
Mr_Adrian_Cheng_1애드리언 청(Adrian Cheng)
K11 예술재단 설립자 및 회장,주대복(周大福) 전무이사

“신개념 모델을 제시해 홍콩만의 미술생태계를 조성한다”

 K11은 신개념 쇼핑몰을 표방한다고 들었다. 보충 설명 부탁한다.
K11은 예술과 상업이 결합한 ‘뮤지엄-리테일’콘셉트의 신개념 모델이다. 중화권 국가 내 아트몰, 사무실, 호텔식 아파트를 선보이며 최고급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K11은 ‘예술, 사람, 자연’이라는 핵심 요소를 결합해 대중에게 예술을 전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2014년 상하이 K11 아트몰에서 진행된 모네쇼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전시회가 열리는 3달 동안 34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2000개가 넘는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K11 예술재단은 2010년 설립한 비영리재단이다. 그동안 유수의 미술관(팔레 드 도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과 협력체계를 유지하며 전시를 해왔다. K11 예술재단의 비전이 궁금하다.
K11 예술재단은 2010년 사회혁신과 사회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주 목적은 중국 신진 현대미술 작가를 양성하고 공공예술교육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동안 유명 기성 작가들에게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미술계에서 젊고 유망한 신진 작가를 찾기 어려웠다. 세계적으로도 중국 신진 작가 관련 소식은 가끔 들릴 뿐이었다. 중국의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역량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는 한편, 세계무대에 더 많이 오를 수 있도록 중국의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홍콩 신진 작가를 양성하고 그들을 위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무대 진출 외에 홍콩 내부에서 이뤄지는 지원 형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K11 예술재단은 팔레 드 도쿄 같은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중국 작가들이 세계무대에서 주목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작가들이 상주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K11 아트빌리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 지원도 맡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다수의 작가를 초청해 190여 개가 넘는 전시회, 세미나, 포럼, 워크숍을 진행했다. 특히, 입주작가 프로그램과 관련해 국내외 큐레이터와 중국 예술학교 교수들로 구성된 평가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트빌리지 입주를 희망하는 지원자의 지원서를 평가하고 인터뷰해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홍콩은 미술시장만 존재하고 전시공간, 교육기관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홍콩 내부의 작가보다 외국 작가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컬렉터로서 홍콩 작가들의 위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중국 작가와, 홍콩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맞다. 홍콩은 현재 주요 미술시장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전시공간 및 예술교육기관은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미술계는 홍콩만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M+ 뮤지움 모바일 아트 이니셔티브 지원’을 바탕으로, 홍콩 예술생태계는 유기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관객 교육 프로그램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신진 작가 양성에 나서는 홍콩의 젊은 후원자, 컬렉터, 작가들도 증가한다. M+뮤지움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향후 세계무대와 교류하고 현대미술의 미래에 기여할 것이다. 이를 통해, 홍콩은 다양한 관점, 내러티브, 관객이 공존하는 만남의 장소로 변화할 예정이다.
외국 작가들이 주목 받는 이유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을 갖춘 예술 환경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홍콩은 매우 탁월한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플랫폼이 필요하다. K11 예술재단은 이들 홍콩 및 중국 작가에게 이러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 예로, 홍콩 작가 에드윈 로(Edwin Lo)는 팔레 드 도쿄와 공동 주최한 〈인사이드 차이나전〉에 작품을 출품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홍콩 작가는 큰 차이가 없다. 이들 모두 국제적인 비전을 갖고 있으며, 국제 문제를 다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미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혹시 주목하는 작가나 이미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가 있다면 공개 부탁한다.
한국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 K11은 한국 작가들과 함께 다양한 전시를 진행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업을 구상 중이다. 2012년에는 최정화와 작업을 진행했다.
최 작가는 홍콩 K11 아트몰에 크리스마스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으로 다수의 작품을 설치했다. 또한, 2014년 홍콩 K11 아트몰에서 한국 디자인 전시회를 주최했다. 미디어아트, 회화, 공예, 디자인, 상품, 패션, 그래픽, 타이포그래픽 등 14명의 한국 작가 작품들이 망라된 전시회였다.
홍콩=임승현 기자

K11 아트몰 전경 (사진제공·GRAPE PR)

K11 아트몰 전경 (사진제공·GRAPE PR)

 

WORLD REPORT 제2회 CAFAM 미래전 : 관찰자 창조자 ·중국청년예술의 현실 표징

을미년 새해 목표를 세우는 첫 달, 베이징은 수년 뒤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해 달리는 젊은 작가들의 패기로 가득하다.
지금, 여기 젊은 작가들은 구정(춘절) 연휴 가족들에게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에 담을 소중한 인연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대학 미술관은 대륙의 호방함으로 학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시를 개최하고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참여 작가와 미술 관계자들로 베이징 미술계는 연일 잔칫집 분위기이다. 이는 바로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CAFAM(China Cental Academy of Fine Arts Museum)이 3년 만에 선보인 <CAFAM 미래전>이 선사한 새해 선물이리라. 대륙의 미술계계 점치는 미래상은 어떤지 미술관으로 향해 보자.

관찰하고 창조하는 중국 젊은 예술가의 오늘

권은영 중앙미술학원 미술사 박사과정

우리의 오늘은 지난날 청춘을 불태운 선배들이 일군 미래이며, 오늘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것이다. <CAFAM 미래전>은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고 지지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표방한 정기 기획전이다. 2012년 대학 미술관임에도 졸업장과 무관한 <CAFAM 미래전: 서브-현상亞现象: 중국 청년예술 생태 보고>로 테이프를 끊으면서 본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이 대학 교정에 있는 미술관이지만 전국구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것은 2008년 아라타 이소자키矶崎新 디자인 신관을 개관하고, 2009년 난징예술학원을 졸업한 광둥 출신의 왕황성王璜生 교수가 관장에 취임하는 파격 인사, 그리고 2010년 ‘국가 중점미술관’에 선정되면서 국공립 미술관의 면모를 갖춘 덕분이다.
작가 쉬빙徐冰과 파리 소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관장 장 드 루아지 Jean de Loisy가 공동 총감독을 맡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을 ‘창객創客, Observer-Creator’로 정의하고 그들의 오늘을 분석했다. 여기서 ‘創客’은 금세기에 이르러 출현한 신조어로 ‘Maker’로 번역하는 서구의 DIY 문화에서 비롯됐다. 본래 ‘客’는 ‘-쟁이’를 의미하는 접미사로 ‘創客’는 ‘창작쟁이’로 이해할 수 있는데, 영문 제목을 통해 “관찰하고 창작하는 사람”으로 보충 설명하고 있다. 쉬빙은 전시 서문에서 오늘날 젊은 작가 작업 방식에서 “관찰하고 창작”하는 예술 창객의 특징이 발견된다며, 동시대예술의 양식화와 제도화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1회 <CAFAM 미래전>에서도 강조된 바 있는데, 당시 주제인 ‘서브-현상’ 역시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가치를 높이 사고 있다.
<CAFAM 미래전>의 특징 중 하나는 넓은 범위의 여러 단체와 맺은 긴밀한 협력 관계다. 이번 전시는 대륙, 대만, 홍콩을 포함한 중국 전역의 64개 기관에서 추천한 작가들을 바탕으로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기획자 2명과 외부 독립 기획자 2명이 팀을 이루어 기획했다.
《예술시대艺术时代》, 《미술문헌美术文献》 등 잡지사, 금일미술관今日美术馆, 선전 OCT 당대 예술센터深圳OCT当代艺术中心, 광저우시대미술관廣州时代美术馆, 난징예술학원 미술관南京艺术学院美术馆, 타이베이 당대 예술센터台北当代艺术中心 등 미술관, 리셴팅 영화기금栗宪庭电影基金, 비타민 예술공간维他命艺术空间, AAAAsia Art Archive, 청년예술100青年艺术100 등 비영리 기구를 비롯해 젊은 작가를 후원해 온 중앙미술학원 ‘천리길千里之行’, 중국미술학원 ‘TOP 15’와 같은 프로젝트도 하나의 기관으로 작가 추천권을 행사했다.
이를 통해 선정된 232개 조의 작가가 도록을 통해 문헌전 형식으로 예선을 치르고, 95개 조가 최종 선정되어 대망의 본선, 즉 실제 전시에 참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는 총 5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4개의 본전시는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하나의 특별전은 798예술공장에서 동시에 개막했다. 83개 조가 참여한 본전시의 첫 번째 소주제는 ‘공동 지식共智場’으로 지식 공유의 시대를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인터넷, SNS, APP 등을 통해 자신의 인식과 행동 나아가 예술과 주체에 대한 인식에 끼치는 변화에 주목한다. 미술관을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허샹위何翔宇(랴오닝성, UCCA 추천)의 <탱크 프로젝트> 역시 시각을 통한 간접 경험이 주는 충격과 내면의 갈등을 시각화하고 있다. 샤오반뤄肖般若(후베이성, 우한미술관 추천)는 전시 기간 동안 화초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고, 각자의 방식으로 키우는 화초 사진을 수합하여 작품의 일부로 삼는 보다 적극적인 공유를 실험하고 있다.
객관적인 코드를 생성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설명하는 ‘원시 코드源代碼’는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사회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두 번째 소주제는 바로 사회를 관찰하고 해체해서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오늘의 젊은 작가들이다. 3층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빠른 비트의 힙합 선율을 따라가면 한껏 힘을 준 영상설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그 주인공 천톈줘陳天灼(베이징, K11예술재단・상하이비엔날레・격월지 《예술계》 등 추천)는 종교적 기호를 해체해 일상 생활용품과 주변 이미지에 삽입하고 재조합하여 가상의 종교적 경험을 제시한다.

11-2

비룽룽(毕蓉蓉) LED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 가변크기 2013 © 사진 권은영

양민스(楊牧石)  나무 먹 알루미늄 가변크기 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양민스(楊牧石) <소모> 나무 먹 알루미늄 가변크기 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중국 젊은 작가에 대한 새로운 기대
분홍빛 네온 등을 원시 코드로 사용하는 왕신王欣(후베이성, 상하이 다룬多伦 현대미술관・지하실6 추천)의 <여기서 우리는 미래의 작가를 창조한다>는 꽉 막힌 틀 안에 가두어 작가를 찍어내듯이 교육시키는 현실의 한 단면을 재치 있게 풍자하고 있다.
세 번째 소주제 ‘클라우드 생산云生产’은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며 연동 기능이 장착된 생활 기기에 익숙한 청년 작가들의 모습에서 도출했다. 이는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서로 다른 물리적 위치에 존재하는 컴퓨터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통합 처리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클라우드 생산의 분절과 통합의 논리는 천페이링陳佩玲(마카오, C&G Apartment 추천)의 담청색 나뭇잎 상자들 곁에 놓인 남청색 별자리표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봄직하다. 대상을 픽셀로 분절시켜 작은 색점의 통합으로 다시 형상화하는 타오나陶娜(후난성, 청년예술100・중국 청년예술가 프로젝트 추천)의 작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인터넷이 교류와 소통의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사고의 틀을 깨는 전환점 구실을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본전시의 마지막 주제는 “E 순환循环”으로 요약되었다. 쉬저위許哲瑜(대만, 타이베이 당대예술센터 추천)의 영상작품은 기억과 망각,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매체가 가진 전달력에 집중하고 있다. 린저우林周(광둥성, 53미술관 추천)는 과학 기술과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어느덧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CAFAM 미래전>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본전시와 더불어 798예술공장에서 같은 기간 동안 <미래 방정식: 제2회 CAFAM 미래전 추적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1회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 2회에 재차 추천받은 12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전시를 연 바 있는 차이위안허蔡遠河(광둥성, 53미술관 추천)를 비롯하여 겅쉐耿雪(지린성, 중앙미술학원 천리길 추천), 리칭李青(저장성, 벌집 당대예술센터 추천)의 작품이 포진해 있다. 총감독을 맡은 쉬빙은 기존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특별전을 통해 다시 참여케 하여 그들의 성장을 관객과 함께 목도하고, 전후 전시의 연결고리를 견고히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중국 작품가격의 거품 논란이 지나간 자리에 언젠가부터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다. 베이징을 비롯한 대륙의 중소도시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 요즘이다. 이러한 시점에 상하이와 홍콩 순회전도 기획하고 있는 <CAFAM 미래전>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중국 젊은 작가 항해의 든든한 지원군처럼 보인다.
대륙의 호방함은 학연과 지연의 굴레를 벗어나, 대만, 홍콩, 마카오에 이르는 거대한 중국을 아우르며 미래를 설계하는 추진력이 되고 있다. 물론 냉혹한 사회에서 일정 선별과정을 거치고 십수 년 뒤 과연 몇 명의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오늘을 버티는 젊은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샤오반루오(肖般若) 종합재료 가변크기 2013~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샤오반루오(肖般若) <식물 키우기 프로젝트> 종합재료 가변크기 2013~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리우지아위(劉佳玉)  300개 바람개비 및 LED 가변크기 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리우지아위(劉佳玉) <투명한 안에서> 300개 바람개비 및 LED 가변크기 2014 ©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사진 권은영

WORLD REPORT 칼 안드레 : 장소로서의 조각, 1958 – 2010

서구 미니멀리즘의 태두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그를 정의하는 말은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5월 개막한 그의 대규모 회고전 <칼 안드레: 장소로서의 조각, 1958~2010(Carl Andre : Sculpture as Place, 1958~2010)>이 뉴욕 디아: 비컨에서 3월 9일까지 계속된다. 여타 미니멀리스트와 확연히 구별되는 시적인 그의 작업이 전시공간과 어우러져 그 자체의 물성을 한껏 드러낸 자리였다.

살아있는 미니멀리즘의 전설을 만나다

서상숙 미술사

칼 안드레의 작품은 심플하다.
바닥에 깔린 사각형 동판들의 규칙적인 반복, 낮은 담처럼 쌓여 있는 벽돌들의 소박함, 무심하게 뿌려진 듯한 금조각들의 빛남…. 그리고 고대의 문화 유적처럼 묵직하게 서있는 목재들. 그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늘 침묵한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작품들이 남겨 놓은 텅 빈 공간, 자연에서 발굴된 원재료에서 읽히는 시간성, 단순한 선과 면이 이루어내는 직설법의 리듬.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칼 안드레Carl Andre, 1935~의 50여 년에 걸친 작업을 모은 뉴욕주 디아:비컨의 전시장을 걷고 바라보며 떠오른 단상들이다.
이 미술관에 장기 전시 중인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솔 르윗, 로버트 스미드슨 등 그와 동시대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철저히 공업적인 차가운 작품들과 달리 안드레의 작품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허드슨 강변의 나즈막한 언덕 위 나무숲에 둘러싸인 디아:비컨 미술관은 1960년대 미니멀리즘 작업과 그 후의 현대미술품을 소장 전시하는 곳이다.
뉴욕시 맨해튼에서 북쪽을 향해 자동차로 한 시간쯤 올라가다 보면 이르게 되는 작은 도시 비컨에서 디아 미술재단 Dia Art Foundation이 운영하는 디아:비컨은 2003년 문을 열었다.
칼 안드레의 회고전 <장소로서의 조각Sculpture as Place, 1958–2010>은 지난해 5월 개막해 오는 3월 9일까지 진행된다. 올해 80세의 그는 미술사에 기록되는 미니멀리즘의 거장이지만 미술관 규모의 서베이전으로는 처음이고 미국에서는 1970년 구겐하임에서의 회고전 이후 45년만이다. 1985년 부인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고 그 사고와 관련해 범인으로 지목되어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그후 자신의 전시 오프닝은 물론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은둔자의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술계에는 그의 유죄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회고전이 시작된 지난해 5월에 뉴욕시 첼시의 디아갤러리 앞에서 벌어진 작은 시위가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길바닥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마치 안드레의 조각처럼) 시를 읽은 후 (안드레의 시 작품처럼) 피가 흐르는 닭의 내장을 바닥에 쏟아 붓고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전시는 지속되었고 미국에서는 그의 딜러인 파울라 쿠퍼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다. 1958년부터 2010년까지—안드레는 몇 년 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작업한 조각품 45점과 160여 점의 구조주의 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만든 종이작업 등이 그가 직접 만든 전시상자에 넣어져 전시되었다. 특히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거의 없는, ‘다다 모조품’이라고 불리는 아상블라주 작품, 사진 등이 함께 선보여 흥미롭다.
“내 작품의 주제를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가지는 엄청난 잠재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 안드레는 작업에서 재료의 물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전시 카탈로그에는 그가 쓴 재료를 금속, 광석, 자철광, 합성재료, 나무, 풀 등 유기재료로 나누어 도표를 만들었는데 무려 100여 종에 달한다. 안드레는 1960년대 전시포스터를 화학기호표처럼 만들 정도로 초기부터 한 가지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같은 작업을 그는 “물질을 물질화한다matter mattering”고 축약한 바 있다.
안드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작업실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전시할 곳에 도착해 전시공간을 확인한 후 주변을 돌아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줍거나 누군가의 소유라면 얻기도 하고 전시가 끝난 후 돌려주기로 하고 빌리기도 한다. 아니면 그 지역의 철공장이나 목공소 등에 벽돌, 나무, 철판, 스티로폼, 금 혹은 은 등을 사각형이나 원 같은 가장 단순한 형태, 특정한 크기로 잘라달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구해진 재료들을 그 물성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색도 칠하지 않고 변형시키지 않은 채 그가 직접 하나 하나 전시장 바닥에 배열하거나 쌓는다. 따라서 주문하는 재료의 크기는 그가 직접 옮길 수 있는 크기와 무게이며 전체 완성된 작업도 작가가 신체적으로 움직여 닿을 수 있는 크기에 한정된다. 못이나 접착제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 전시가 끝나면 쉽게 수거해 다시 되돌려주거나 차곡차곡 쌓아 보관할 수 있다. <조인트Joint>는 1968년 작으로 건초더미 183개를 길게 한 줄로 늘어놓은 작품이다. 167m 길이의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디아 비컨 미술관 야외에 재현되었는데 10개월에 걸친 전시 중 짐승들에 의해 옮겨질 수도 있고 먹힐 수도 있으며 날씨에 따라 썩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면 쓰레기로 처분된다.

Installation view, Carl Andre: Sculpture as Place, 1958–2010, Dia:Beacon, Riggio Galleries, Beacon, New York. May 5, 2014–March 2, 2015. Art © Carl Andre/Licensed by VAGA, New York, NY.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Carl Andre: Sculpture as Place, 1958–2010, Dia:Beacon, Riggio Galleries, Beacon, New York. May 5, 2014–March 2, 2015. Art © Carl Andre/Licensed by VAGA, New York, NY.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재료의 물성만이 나의 관심사”
1966년에는 한 컬렉터가 작품을 사겠다고 하자 작품값만큼의 네모 반듯한 금괴 하나를 주문해주었다. 0.37×67.6cm 크기의 이 작품의 제목은 <금밭Gold Field>
이었다.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첫 작품, <520 오래된 도시의 사각형들Altstadt Rectangles>은 1967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휘셔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으로 100장의 얇은 철판Hot–rolled Steel, 열간압 연강을 타일처럼 갤러리 바닥 전체에 깐 것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긴 통로처럼 생긴 전시장에 들어와 벽에 걸린 작품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이 작품을 밟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람객이 작품을 밟도록 한 것은 그때까지 조각의 개념을 뒤바꾼 것으로 마르셀 뒤샹이 가게에서 산 변기를 그대로 전시한 이래로 현대미술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도전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이론가들은 안드레의 작품을 개념주의 작업으로 보기도 했으나 작가 자신은 “재료의 물성만이 나의 관심사”라며 부정했다.
안드레가 작품에 관람객을 포함시킨 이후 현대미술은 장소특정적site-specific, 퍼포먼스, 인스톨레이션(설치), 프로세스 아트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장르가 무너지고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경계도 없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1960년 여름 뉴욕의 그린갤러리에서 열린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의 작품전에서 전시대를 없애고 바닥에 직접 놓은 조각을 보고 감명받은 안드레는 이렇게 말한다. “프랭크 스텔라가 조각의 개념을 바꿀 전시가 있으니 꼭 봐야 한다며 나를 데려갔다. 그 이후 더이상 작품대에 올려놓는 조각bench–top sculpture은 할 수 없었다. 그 전시는 나에게 바닥에서 직접 솟아 올라오는 조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시도가 언제나 그렇듯 안드레의 작품 또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게 미술이냐?”는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에 따라다니는 의문이다.
1976년에는 영국의 일간 《데일리 미러》가 테이트 미술관이 구입한 벽돌 120장으로 이루어진 <등가 V III Equivalent V III>(1966/1969)에 대해 “이런 쓰레기 더미를!”이라는 제목으로 예산 낭비의 대표적 예로 들어 1면에 실었다. 안드레는 일명 ‘벽돌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960장, 8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팔린 작품에 쓰인 벽돌 120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벽돌공장에 돌려 주었다고 한다. 칼 안드레는 어디를 가든 트레이드 마크인 가슴받이와 멜빵이 달린 블루진 작업복을 입고 다녀 공사장 인부를 연상케 한다. 매사추세츠 주 퀸시 출신인 그는 할아버지가 벽돌공이었고 아버지는 해군 조선소에서 배를 고치는 일을 했으며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철판과 나무조각, 그리고 연장을 가지고 놀던 어린시절, 현 뉴욕철도사 암트랙의 전신이던 펜실베이니아 레일웨이의 보수공으로 일한 경험들이 자신의 작업 원천임을 누누이 밝혔다.
그는 명문 사립교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장학금을 받아 다녔는데 대학을 가지 않은 안드레에게 이곳에서 받은 교육은 정규 미술교육의 전부다. 뉴욕에서 고교 동창인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와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홀리스 프램프턴Hollis Frampton, 1936~1984 등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가게 된다. 특히 그의 작업은 프랭크 스텔라의 스튜디오를 함께 쓰면서 스텔라의 초기 블랙페인팅에 영향을 받았다. 스텔라가 그의 조각되지 않은 나무의 단면을 가리키며 “이것도 조각”이라고 말한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현재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세련되어 보인다. 마치 미술의 법칙을 일깨우고 나아가 삶의 정곡을 찌르는 듯한 단순함의 힘이 그 어느때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안드레는 2010년 미니멀리즘의 메카인 텍사스의 치내티 재단Chinati Foundation 건물과 건물 사이의 야외공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인 <Chinati Thirteener>을 설치했다. 또 이번 디아 비컨전과 2013년 파이돈에서 출판된 모노그래프 책 발간을 계기로 30년의 침묵을 깨고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하고 전시를 준비 중인 디아:비컨을 직접 방문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매일 밤 술에 취해 있던 나를 구해준 사람”이라고 부르는 4번째 부인이자 작가인 멜리사 크레취머Melissa Kretschmer, 1962~와 뉴욕대학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다. 2013년 《인터뷰》지에 실린 친구이자 미술비평가인 바바라 로즈와의 대담에서 안드레는 노자의 말을 인용했는데 격동적으로 살아 온 그의 인생에 대한 담담한 소회를 듣는 것 같아 흥미롭다.
“훌륭한 여행자는 정해진 계획이 없으며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이다.” ●

Installation view, Carl Andre: Sculpture as Place, 1958–2010, Dia:Beacon, Riggio Galleries, Beacon, New York. May 5, 2014–March 2, 2015. Art © Carl Andre/Licensed by VAGA, New York, NY.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Carl Andre: Sculpture as Place, 1958–2010, Dia:Beacon, Riggio Galleries, Beacon, New York. May 5, 2014–March 2, 2015. Art © Carl Andre/Licensed by VAGA, New York, NY. Photo: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맨위 <Breda>(사진 앞, The Hague) 97개의 석회암 , 1986 Courtesy the artist and Konrad Fischer Galerie, Düsseldorf <Neubrückwerk>(사진 가운데, Düsseldorf) 19개의 나무 1976 Musée d’Art Contemporain, Montreal

[World Topic] Gilbert & George

그 존재 자체로 동시대 서구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길버트와 조지(Gibert & George). 그들의 전시 <희생양(Scapegoat)>이 영국 런던(화이트 큐브 갤러리, 7.18~9.28)과 프랑스 팡탱(테데우스 로팍 갤러리, 9.7~11.15)에서 열리고 있다. 70을 넘긴 나이임에도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은 그들의 미적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은 둘인 듯 하나인 작가 그룹의 대명사인 그들의 작가로서의 행보와 꼭 닮아 있다.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예술

심은록  미술비평

루브르 박물관이나 퐁피두센터 앞에 못 보던 조각상이 하나 놓여 있다. 얼굴과 손뿐만 아니라 옷과 장식품까지 모두 골드 브론즈 물감으로 뒤덮여 있다. 관광객들은 진짜 조각상인지 궁금해 하며 가던 발길을 멈춘다. 용감한 아이들은 조각상을 살짝 건드려 보기도 한다. 부모에게 동전을 얻은 아이가 조각상 앞에 놓인 작은 소쿠리에 동전을 넣는다. 그러자 기계의 작동버튼이 눌린 듯, 갑자기 조각이 움직인다. 유럽의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이러한 퍼포먼스가 약 반세기 전에 처음 시작됐을 때는 혁명적이었다. 비록 서두에 언급한 길거리 퍼포먼스가 ‘태도’(작품 동기, 과정, 의미)는 제거하고 ‘형식’만 취했다고 할지라도, 그 원조는 길버트와 조지의 <노래하는 조각(The Singing Sculpture)>이라 하겠다. 주변을 돌아보면, 현대미술이 이처럼 새롭게 각색되어 우리의 일상과 섞여 있다.
1969년, 전설적인 전시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의 오프닝에 길버트와 조지가 참여했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이들의 얼굴과 손에는 온통 골드 브론즈 물감이 칠해져 있었다. 탁자를 조각받침대 삼아 두 점의 조각상이 되어, 플래너건과 앨런의 “아치 아래서”(Underneath the Arches)를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은 서서히 움직이는 커다란 태엽 인형 같았다. 이때부터 길버트와 조지는 ‘퍼포먼스’ 대신에 “살아있는 조각”, 혹은 “살아있는 작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퍼포먼스’나 ‘해프닝’은 작가가 잠시 동안만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예술의 연장이며, 예술의 연장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체는 이처럼 살아있는 조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포토몽타주로 확장되어 지금까지 계속된다. 길버트와 조지의 포토몽타주는 세르게이 트레차코프(Sergei Tretyakov)의 말처럼, 사진과 사진만의 몽타주가 아니라, 사진과 텍스트, 사진과 색채를 몽타주한다. 특히 예술과 삶을 몽타주한다.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유럽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 작가인 길버트와 조지, 이들은 “두 사람이지만 한 작가”라고 불린다. 이탈리아 출신 길버트 프뢰슈(Gilbert Prousch, 1943~)와 영국출신 조지 패스모어(George Passmore, 1942~)는 1967년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해 벌써 반세기 가까이 되었다. 그들이 대학을 다닐 때, 지나치게 많은 색깔, 지나친 감정, 섹스는 예술의 터부였다. 길버트와 조지에게도 이러한 경향이 잠시 보였으나 곧 그 반대로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 그들의 작품에는 “너무나 많은 색깔, 너무나 많은 섹스, 너무나 많은 알코올” 등이 나타났다. 이와같이 그들은 미니멀아트나 신체가 제거된 개념미술에서 “휴먼아트(human art)”, 즉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로 전향했다. 초기 퍼포먼스부터, 길버트와 조지의 용어로 말하면, ‘살아있는 조각’부터 현재까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마티에르는 ‘신체’이며, 이를 사용한 예술은 ‘살아있는 작품’이다. 삶 자체가 예술이 되면서, 승화되거나 고상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동안 예술화 할 수 없었던 새로운(묻혀 있었던) 소재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터부가 거침없이 재현되고, 삶과 예술의 경계선에서 구분되었던 기존 질서와 고정된 체제가 무너진다. 사회 관습적인 용인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일탈한다. 길버트와 조지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삶  (살고 있는 장소, 현재의 사회정치적 문제 등)과 연관된 주제를 화면 위에 신체언어로 구사한다. 애브젝트 이미지(Abject Image, 땀, 대소변, 토사물, 정액처럼 신체에서 나오는 불결한 것들에 대한 이미지), 생식기관의 적나라한 노출, 기독교적 자아분열 이미지 등이 여과 없이 사용된다. 이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대중의 관심을 얻는 만큼 강도 높은 비판도 끊임없이 받았다.
‘살아있는 조각’은 창조자와 피조물이 구분되지 않으며, 작가와 작품이 이분화 되지 않는다. 작가자 조각품이고, 만드는 동시에 만들어지는 행위가 동일체에서 이뤄진다. 창조자와 피조물이라는, 신화시대부터 현대까지 고수된 이원론적 구분이 무너진다. 또한 전시장 안과 밖이, 무대 위와 아래가 구분되지 않으며, 예술과 일상 삶이 나눠지지 않는다. 이들에 의해 살아있는 작품은 미셀 푸코가 말한 “삶의 예술(미학)화”로 표현되고 실천된다.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자기 배려와 단련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며, 일상의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존재’의 미학이 아니라 ‘삶’의 미학이다.
현재, 길버트와 조지는 이 삶의 미학을 <희생양(Scapegoat)>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는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White Cube, 2014.7.18~9.28)와 프랑스 팡탱(Pantin)의 테데우스 로팍 갤러리(Galerie Thaddaeus Ropac, 2014.9.7~11.15)에서 진행 중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물론 파리 근교에 있는 테데우스 로팍의 전시장이지만, 작품 속 배경은 아랍의 어느 중소도시 같다. 런던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해온 길버트와 조지이기에 당혹감마저 든다. 작은 폭탄 같은 오브제가 넘쳐나는 화폭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이슬람적이다. 인도나 아랍 상점들이 배경에 나타나기도, 눈만 내놓고 온통 검은 천으로 가린 니캅(Niqab) 차림의 무슬림 여인들과 토브(thobe)를 입은 무슬림 남성, 무슬림 청년들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몇몇 작품은 마치 비행기에서 폭탄이 연이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공중투하(AIRDROP)>)
이처럼 새로운 주제와 낯선 분위기 속에 길버트와 조지의 전형적인 원칙(표현방식)들도 눈에 띈다. 화면이 그리드    (사각형 격자무늬)로 구획되고 확장되며 긴장되게 하는 것, 이 그리드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 복제가 이뤄지는 것, 좌우 혹은 상하로 거울효과를 내면서 반복되는 것. 이 반복에 의해 발생된 균형을 작가들 자화상으로 깨는 것 등등, 이들 특유의 기본적인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희생양>, “이슬람은 진리가 아니다”
전시의 첫인상을 잠시 접고, 이제 차근차근 작품을 흩어본다. 작은 폭탄 같은 오브제 사이로 “어떻게 이슬람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영어 신문 제목이 보인다. 오브제 너머 가게들의 간판이 아랍어가 아니라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 무슬림들 사이로 영국 전통 건물양식이 보이기도, ‘ER II(Elizabeth Regina 엘리자베스 여왕 2세)’라는 영국왕가의 표지가 등장하기도, 또한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형 시계탑 빅벤(Big Ben)도 보인다. 결국 <희생양> 연작의 배경은 아랍의 어느 한 도시가 아니라 런던이었다. 작은 폭탄처럼 보이는 오브제는 ‘휘펫(whippets, 혹은 히피 크랙, 웃음가스)’이었다. ‘휘펫’은 <이산화질소(Nitrous Oxide)> 성분의 기체로 영국에서는 합법적인 향정신성물질이다. 호흡질환, 발작, 뇌졸중을 야기할 수도 있다. 길버트와 조지는 길거리에 버려진 휘펫을 보고 마치 작은 폭탄을 연상했으며, 그 순간 우연히 니캅 차림의 무슬림 여인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123점의 <희생양> 연작(2013)이 탄생한다. 그 크기도 세로 2미터, 가로 3미터가 훨씬 넘는 대작들이다.
관람객은 이슬람적인 분위기에 ‘휘펫’을 작은 폭탄으로 여기게 됐다. 문제는 순수한 무슬림 들을 보면서도 폭탄을 지닌 테러리스트를 연상하는 비무슬림들의 선입관이다. 만약 이 작품의 배경이 프랑스이고 백인들이 등장했다면, 휘펫은 포도주 병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영국의 런던이 배경이더라도 백인들이 등장했더라면,  ‘휘펫’과 폭탄을 연결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파티에서 기분을 고조시키고자 휘펫을 사용하기도 한다. <희생양>연작 중 <휘펫(WHIPPETS)>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에는 젊은 청년들이 휘펫에 취해 미소 짖고 있다.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형 시계탑 빅벤이 파티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시각인 <8시 45분>을 가리킨다. <가스(GASEOUS)>를 흡입한 뒤의 기분 좋은 상태를 나타내는 듯 꽃이 만발해 있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삼부작(<Scapegoated. A triptych>)의 중심에 적혀있는 “이슬람은 진리가 아니다(ISLAM IS NOT TRUTH)”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서구에선 이슬람 관련에 관한 발언 자체가 터부가 됐다. 그런데도 길버트와 조지는 그들의 예술을 통해 노골적으로 이슬람을 말하고 있다. 이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들은 꼭 이슬람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성 종교도 우리가 수백 년간 싸우며 쟁취한 자유를 가져가버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 “이슬람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문장 옆에는 “교회를 단념하라”는 문장도 나란히 쓰여있다. 길버트와 조지는 이처럼 거짓으로 포장된 평온을 뒤흔드는 것도 예술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들은 항상 현실적 삶에서 발생하는 중요 주제와 자신들을 연결해 작품에 등장 시킨다. 즉, 그들의 몸은 바깥세계와 연결되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신체는 더 큰 신체인 외부의 일부일 뿐이다 (메를로퐁티). 현대는 도용예술의 등장과 가상현실적 환경으로 사진의 고유한 특성이었던 ‘리얼리티’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또한 리얼리티를 가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회화적 몽타주가 사용되기도 한다. 반면에 길버트와 조지가 회화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것은 리얼리티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리얼리티와 관련된 사진의 기록성은 다른 예술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현실적 힘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White Cube Bermondsey, 18 July - 28 September 2014 © 18 July - 28 September 2014 Gilbert&George Photo: Jack Hems


White Cube Bermondsey, 18 July – 28 September 2014 © 18 July – 28 September 2014 Gilbert&George Photo: Jack Hems

위 <Scapegoated. A tryptych>(부분) 혼합재료 381×1963cm 2013

[separator][/separator]

interview

Gilbert and George (6)

<희생양전>을 개최한 길버트와 조지

“좋은것과 나쁜것은 계속 바뀐다”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작은 병들은 무엇인가?
조지 __ 히피 크랙 (‘hippy crack’, 휘펫의 또 다른 명칭)인데, 3년 전 런던 거리를 산책하다가 버려진 히피 크랙의 빈 용기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작은 폭탄 같다고 느꼈는데, 그때 니캅을 입은 무슬림 여성이 지나갔다. 당시 경험이 이번 <희생양> 연작의 동기가 되었다.
거대하고 많은 양의 작품을 하는데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끊임없는 영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조지 __ 우리가 살며 일하는 이스트 런던이 우리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길버트 __ 런던인들은 각각 특정한 방식으로 다른 문화를 표현하기에 언뜻 정신분열적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뿌리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기 때문이다. 이곳에 산다는 것은 좀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이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인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조지 __ 서로 다른 문화의 복합체인 이곳은, 그래서 지역적(국부적)이면서 동시에 글로벌하다.
길버트 __ 우리는 전통을 좋아하며 보수적이나, 경직된 도덕은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계속 바뀐다. 보들레르는 “예술에서는 나쁜 발상조차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것도 완전하게 굳혀질 수 없다.
당신들의 관심은 주로 ‘지금 이곳(hic et nunc)’에 집중되어 있는가?
조지 __ 비록 우리는 현실을 재현하지만, 모든 문화는 미래를 창출하기에, 우리 작품도 미래를 건설하고 미래를 조금 달라지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들의 작품은 지역적이면서도 글로벌하고,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말하지만 당신들의 예술은 혁명적이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가벼움과 유머가 엿보인다. 당신들의 예술이 지나치게 양의적(兩意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길버트 __ 인생보다는 덜 양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더 이상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가?
길버트 __ 퍼포먼스가 아니라 ‘살아있는 조각’ 혹은 ‘살아있는 작품’이다.
퍼포먼스와 ‘살아있는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조지 __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퍼포먼스는 잠시만 하는 것이지만, ‘살아있는 작품’은 삶 전체를 의미한다.
팡탱=심은록

길버트(사진 왼쪽)는 1943년 이탈리아 산 마르틴 데 토르에서 태어났다. 조지 패스모어는 1942년 영국 플리마우스에서 태어났다.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에서 만난 그들은 이후 ‘길버트&조지’란 그룹명으로 협업작업을 시작했다. 터너프라이즈(1986), Special International Award(1989), South Bank Award(2007)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