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진흥법
쟁점과 현장의 목소리

이화순 에이앤씨미디어 대표이사

쟁점1 재판매보상청구권

미술 작품은 한번 판매되고 나면 구매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되고, 이후 작품이 재판매되어도 작가가 추가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25일자로 제정된 미술진흥법에서 미술 작품이 재판매될 때, 원저작자가 매매가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 명목으로 수령할 수 있는 권리인 ‘재판매보상청구권(Droit de Suite)’, 소위 ‘추급권(Resale Right)’이 도입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등 일생을 가난하게 산 작가들은 사후에 비로소 작품이 빛을 보게 되었으나 그 유족들에게는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192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재판매보상청구권이 도입되어, 현재는 EU를 비롯한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인정되고 있다. 한-EU FTA를 통해 EU 측에서 한국에서도 재판매보상청구권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오랜 논의를 거쳐 이번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의 내용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은 미술품의 소유권이 작가로부터 최초로 이전된 이후 해당 미술품이 재판매되는 경우, 작가가 해당 매도인에게 일정 금액을 청구할 권리를 말한다(미술진흥법 제24조 제1항). 재판매보상청구권의 구체적인 요율은 대통령령에서 정하게 되어 있다. 미술진흥법상 ○미술품의 재판매가가 500만 원 미만인 경우 ○「저작권법」 제9조에 따른 업무상저작물에 해당하는 미술품이 재판매되는 경우 ○매도인이 원작자인 작가로부터 직접 취득한 후 3년 이내에 재판매하는 경우로서 미술품의 재판매가가 2000만 원 미만인 경우에는 재판매보상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동항 단서 각 호).

재판매보상청구권은 양도할 수 없으며, 작가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 후 30년간 존속하되, 작가가 사망한 경우에는 법정상속인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제24조 제2항). 재판매보상청구권은 미술진흥 전담기관 또는 문체부가 지정하는 단체를 통하여 징수, 분배가 이루어질 예정이고(제25조), 해당 단체는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등 미술품의 대여· 판매업을 하는 자에게 재판매보상금 지급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제26조 제1항).

미술진흥법상의 재판매보상청구권 관련 조항은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인 2027년 7월 2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실제 법률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은 상당 부분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에 위임되어 있는데 현재는 이러한 하위 법령에 규정될 사항들에 관하여 각계각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 & 전망과 시사점
1 현장의 목소리

원로작가 A씨

미술진흥법이 정말 미술을 진흥시키는 법인지 살펴봐야 한다. 미술품 구매를 투기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미술이 진흥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피카소 작품을 갖고 있다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에선 ‘탈세용으로 구입했을 것’이라는 시선으로 먼저 바라본다. 현재 전 국민이 누리는 ‘이건희컬렉션’도 한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나.

‘재판매보상청구권’으로 작가 사후에 그 상속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니 좋게 들리지만, 자칫 미술시장이 더 나빠질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요즘처럼 작품도 잘 팔리지 않는데 ‘재판매보상청구권’부터 들이밀면 작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가  는 생각도 든다. 시기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원로 작가들은 “죽은 후에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한다. 작가 사후에 남겨진 작품 때문에 상속받은 자녀가 무거운 세금을 물게 되는 게 현실 아닌가? “작품을 남겨서 문제를 만들 바엔 작품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나온다.

나도 작품을 찢어버린 적이 있는데, 다른 작가도 “죽기 전에 작품을 불태워버릴까, 찢어버릴까” 고민 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부가 진정 한국 미술을 진흥시키려면 작가가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하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국민들이 자국 작가들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내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작품이 해외에서 팔리겠나. 국민들이 미술품을 자랑스럽게 구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진정한 미술진흥법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김창겸
한국미디어아트협회 이사장

추급권을 반대하는 논리는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파야 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라. “이 돈은 내 것이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마!” 하는 자본주의 탐욕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작가가 말년에 혹은 사망 후 2차 시장에서 작품가격이 수천 배 폭등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자에게 어떠한 분배도 없었다. 왜? 우리나라는 추급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술진흥법도 없었으니까.

미술진흥법이 만들어졌다. 나는 지난 20년간 미술의 법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했고 미술진흥법이 만들어지는 초기부터 발로 뛰었던 사람 중 하나로서, 추급권 하나만 콕 집어 논하고 싶지 않다. 2021년 세계 10위, 2022년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에서, 미술이란 장르가 성장하고 세계로 뻗어가려면, 미술진흥법이 우리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작품의 위작 논쟁, 표절, 작품가격 조작은 미술시장을 붕괴시키고, 작가의 창작의욕도 꺾는다. 작품은 보증서로 증명하고, 갤러리는 신고제에 응하고, 통합정보시스템으로 작품의 소장처를 알 수 있게 하고, 추급권이 정착되어 미술생산자 측에 수익이 돌아가면, 불투명한 국내시장 거래 관행이 투명하게 개선될 것이다. 이는 2023년부터 본격 시행한 미술품 물납제와 함께 시너지를 내어 미술시장을 선순환 구조로 바꿀 수 있다.

신진 작가들의 창작 의지를 고취시키려면, 추급권 예외 조항인 ‘재판매가 500만 원 미만, 단기 판매, 구입 후 3년 이내 재판매 및 2000만 원 미만’의 제한을 없애면 될 것이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

작가들의 권익 보호라는 측면에서 재판매보상청구권의 취지는 미술계 모두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매보상청구권의 경우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미술 분야가 이제 체계를 잡아가야 하는 신생 산업 분야인 만큼 미술품 재판매 제도의 혜택을 보는 작가는 극소수의 유명 작가, 그나마 작고 작가의 유족들에 불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의 취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에게 작품의 재판매 시 경제적 가치 상승분의 일부를 지급하자는 것인데, 현실 여건상 1차 판매조차도 어려운 작가들에게 재판매권이 있다고 해도 상징적인 의미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 미술품 재판매시 작품의 경제적 가치 상승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도가 시행될 때, 미술 서비스업자 모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술시장의 특성상 개인 고객들의 활발한 거래가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재판매보상청구권이 도입되는 경우, 정부 및 이를 징수하는 관련 기관 등에 중요한 거래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개인 고객들의 미술품 거래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개인 고객들은 이러한 부담이 없는 해외 미술 서비스업자에게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거나, 음성적 거래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

또한 문체부의 승인을 받는 요율에 따라 수수료를 징수하도록 하였는데, 수수료를 징수할 기준이 명확해야 할 것이다. 재판매보상청구권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매도인이나 매수인 간 거래 정보 공개가 필요하므로, 매도인이나 매수인의 정보 보호가 몰각될 우려가 있다.

B씨
A경매업체 법무팀장

미술진흥법과 관련해 서울옥션, 케이옥션을 포함한 8개 경매회사가 지난해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결 이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및 문체부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해당 법안이 미술 ‘진흥’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이제 겨우 성장하기 시작한 산업 전반을 오히려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급권 관련된 내용으로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특성상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어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도입 시 시장 위축 및 음성화, 가격 왜곡 등 다양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점 때문에 성급히 도입하기보다는 폭넓은 공론화 과정이 충분히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B 부회장
A기업 컬렉터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미술진흥법이 잘 진행되어서 한국 미술이 제대로 진흥되기 바란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이 법인 자산으로 미술품을 구매할 때 세금 혜택을 주면 기업의 미술품 구입이 더 늘어날 것이다. 기업의 작품 구입이 늘어야 작가나 화랑에도 좋고, 더불어 미술 전시장과 평론가, 나아가 일반 관람객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센터 대표 겸 미술비평가

추급권료 부담으로 단기적으로는 미술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1850년대 이전의 미술품 거래만 활성화되고 현대미술 시장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서류 계약이나 구두 예약 등 증빙이 불투명한 국내 미술시장의 특성상 재판매 보상의 부담을 피하려고 경매나 화상을 통한 거래보다 개인 간의 거래 또는 음성적인 거래가 관행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 추급권 징수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이 발생할 터인데, 이는 결국 소비자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전 세계 최대 미술시장이자 유럽 작가들 작품을 가장 많이 매매하는 미국이 추급권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이로 인해 유럽이나 타국에 지불할 추급권료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실익을 위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

2.해외 제도에서 보는 시사점

프랑스, 독일 등은 EU 지침에 따라 재판매보상청구권을 도입하고 있는데, 보상금의 요율은 판매가가 5만 유로(약 7160만 원) 이하인 경우 4%, 5만~20만 유로(약 2억 8600만 원)인 경우 3%, 20만~35만 유로(약 5억 52만 원)의 경우 1% 등으로, 고가의 미술품 거래일수록 수취할 수 있는 보상금 요율을 낮게 설정하고 있다.1

미국은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주에서 1976년 입법이 이루어졌으나(The California Resale Royalties Act, 약칭 ‘CRRA’) 2018년 연방 항소법원(9th Circuit Court of Appeal)에서 해당 법률이 연방법인 저작권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효력이 배제되었다.미술품의 시장 규모가 매우 큰 미국으로서는 미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보상금을 받는 것 못지않게 유럽에 지불해야 할 보상금 액수가 상당할 수 있고, 거래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유통업계의 우려 등으로 인하여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다른 저작물 분야 요율과의 관계

음악, 문학, 영상 등은 복제, 전송에 따른 사용료나 보상금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음악의 권리자는 자신의 음악에 대하여 저작권 사용료 내지 보상금을 지급받고, 배우 등의 방송 출연자는 재방송료, 프로그램 복제 판매 시 복제 ·배포 사용료를 지급받으며, 방송 작가들도 기본극본료에 일정 요율을 곱한 재방송료를 지급받는다. 미술진흥법상의 재판매보상청구권은 위와 같은 타 분야 창작자들에게 부여된 것과 유사한 취지의 보상청구권을 미술 작가에게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구체적인 저작물 유형과 요율 등을 정할 때 이와 같은 다른 저작물 분야에서의 지급 사례들이 참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쟁점2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의 내용

미술진흥법은 제2조 제5호에서 ‘미술 서비스업’을 정의하고, 제6호 내지 제11호에서 미술 서비스업의 종류를 나열했다. 또 제18조를 통하여 미술 서비스업을 신고하도록 했고, 신고할 수 없는 자를 규정해 국내 미술품 유통 주체를 정부 또는 지자체의 통제하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미술 서비스업을 하려면 신고서의 기재 사항, 첨부 서류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신고한 사항 중 문체부령으로 정하는 중요한 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신고해야 한다. 따라서 화랑업을 개시하고자 하거나 화랑업과 관련된 변경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심지어 폐업, 양도, 승계하는 경우에도 각 지자체장이나 구청장 등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증을 발급받아 화랑이나 그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야 한다. 또 화랑을 양도, 합병, 상속하는 경우에도 신고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 전망과 시사점
1 현장의 목소리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

미술 서비스업은 예술을 다루는 특수한 사업군이며 일반 서비스업을 대상으로 기초 지자체 장에게 모두 신고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법률 체계상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 군수 또는 구청장으로부터 영업 폐쇄 처분을 받은 후 1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후 그 기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미술 서비스업 신고를 할 수 없다. 이 부분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제16조(소비자 보호), 제19조(영업정지 등), 제33조(과태료)에 미술품 구입자는 작가 또는 미술 서비스업자에게 해당 미술품에 대한 진품증명서 발행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미 미술 서비스업자들은 유효한 진품보증서가 있는 경우 고객에게 발급하고 있다. 다만 작가에게 요청하여도 작가가 발급해주지 않거나, 작고 작가의 유족들의 경우, 진품보증서 발급이 불가하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도 빈번한 상황에서 미술 서비스업자들에게만 이와 같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자기 책임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 미술품의 거래규모 성장으로 미술품 감정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국세청 및 법원 등 정부 관계기관에서 감정 전문인력에 대한 요청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미술진흥법」 제15조(공정한 거래 및 유통질서 조성)에서 허위감정서 발급 금지, 문체부 장관이 고시하는 양식에 따른 감정서를 발급할 것 등으로 공정한 감정의 시행과 더불어 감정서 양식에 대한 부분만을 언급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이 미술품 진흥법 내에서 도외시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미술전시업이나 미술품 자문업이 신고제가 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요즘 투명하지 않은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이 생겨 산업화가 어려운 것 같다. 미술시장이 보다 높은 신뢰를 얻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관련업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미술 전문가들이 인정할만한 미술품 감정 기구나 기관도 필요하다. 또 작품 거래 시 진품증명서 발행은 당연하다.

A씨
미술품컬렉터

미술품 매매업도 사업인데 당연히 규제가 필요하다. 신고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지인 컬렉터 중에도 피해를 입은 이가 있다. 작품가의 일부를 선입금했는데 작품이 배송되지 않아 알아보니 화랑도, 화랑 주인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이런 뜨내기 중개인 중에는 작가에게 전시 개최를 제안하고 작품을 가져간 후 사라지는 이들이 있어 작가들이 크게 손실 본 경우가 있다.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내 화랑 등 중개업체들의 거래 관행은 보다 선진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100년, 200년 이후에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진품보증서 발급은 필수적이다. 미술품 감정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인증 기관 및 제도도 필요하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센터 대표 겸 미술비평가

미술품 감정은 미술사적 의미와 함께 시장을 동시에 아우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따라서 법령에 의거 신고제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신고도 하지 않은 곳에서 감정을 한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하지만 법을 제정하면서 미술계 현실을 잘 모르고 법만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법률만능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다. 지난해 제정된 미술진흥법은 미술시장 진흥법에 가까운 법으로 너무 시장 중심으로 매사를 규정한 것은 문제다. 또 미술품을 일반 상품처럼 일반화하고 있는 점도 미술계가 이 법안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감정업 등록도 우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법에 따라 감정업으로 신고할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국가유산)·미술시장을 보면 상인들이 소위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감정행위를 수반한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감정업으로 신고해야 하는 것일까. 또 ‘물건’을 구입하려고 ‘감정’을 한다고 써붙인 곳이 많다. 또 황학동이나 고물상, 아파트 단지에 골동품, 조각, 그림 등을 구입하거나 처리해주는 트럭이나 리어카상도 있다. 이들이 행하는 생계형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물론 미술품을 거래, 중개하거나 국가유산을 취급하는 이들에게 모두 감정업으로 신고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화랑업이나 문화재판매업으로 신고하고 사업자등록을 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구입, 판매하는 작품 또는 국가유산에 대해서 자체 보증서 차원의 감정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외 조항을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5만 원짜리 작은 골동품이나 판화에 감정서를 붙여야 한다면 감정료가 들게 되고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업의 범위 ▶이해당사자의 경우 감정에서 배제하도록 규정하지만 생존작가 또는 작가 유족의 경우, 작품 감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감정인의 범위 ▶법안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이 감정서 양식을 정하게 되어 있지만 이것 또한 다양한 국가 유산, 미술품을 하나의 양식으로 기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내용만 규정하고, 그 외의 형식과 내용은 각 감정기관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 이는 각각의 감정기관이 자신들의 전문성과 특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유경
댄지거로펌 변호사, 한국문화예술법학회 회원

신고제 대상 중 화랑과 경매업체는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업종이 많이 생겨나서 애매한 부분이 많다. 화랑업 하는 업체가 아닌데 1주일 전시를 한다거나, 팝업을 통해 하루만 잠깐 경매를 하는 곳도 있다. 아트페어 운영사도 임대업인지 작품판매업인지 헷갈려 신고 대상인지 애매하다. 이 밖에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신고를 할 경우, 신고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데, 현재 미술진흥법에는 관리에 대한 내용이 없어 추후 보강이 필요하다. 금융업과 비교하면 무슨 종목을 거래하고, 장부는 어떻게 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런 내용이 미술진흥법에는 안 나온다. 화랑에서 오가는 모든 거래를 신고하게 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화랑의 전 거래를 모두 신고하게 한다면 유럽의 ‘불법자금 유통 금지’나 ‘자금 세탁 금지’처럼 시행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그럴 경우 미술품 거래에만 그러한 제재를 가하는 모습이라 형평성의 문제가 생긴다.

2.시사점

미술진흥법이 제정되고 보니 새롭게 확산되는 사업체들을 어떤 틀로 규정해야 하는지도 어려운 형편이다. 한 예로 최근 MZ세대로부터 비롯된 ‘미술품 조각투자’를 보자. 미술계에서는 조각투자업이 화랑업인지, 미술품거래업인지, 금융투자업인지 애매하다고 지적한다. 또 아트 딜러들의 경우, 자산컨설팅으로 볼 것인지 미술 서비스업으로 볼 것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한편 미술진흥법에 따르면, 미술품 서비스업을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자체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미술계에서는 ‘신고제’가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이 법안을 채택한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투명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일정 기간의 적응이 필요한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자칫 미술진흥법이 미술통제법이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더구나 가까스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시점에 “한국에서 미술품 팔기 어렵다”고 인식되면 국내 미술시장이 ‘얼어붙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미술진흥법’에서 미처 살피지 못해 놓친 부분을 시행령을 통해 지혜롭게 보완해 한국 미술을 진흥시켜가야 할 것이다.

쟁점3 진흥법인가, 미술유통법인가

미술진흥법은 과연 미술을 위한 진흥법일까 미술유통법일까? 미술계 내부에서는 이번 미술진흥법의 내용이 미술유통을 위한 법에 가깝다는 의견이 높다. 또 미술 정책이 언제부터 미술시장 중심의 정책이 되었느냐고 반문한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 교수, 미술비평가 겸 전시기획자

미술진흥을 위한 기본 방향과 철학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미술진흥의 중심인 창작가, 기획자, 평론가에 대한 균형잡힌 제도적 지원체계가 미흡하다. 미술진흥법 제2조(정의), 미술진흥법의 기본 얼개가 ‘미술업계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술서비스업,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 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전시업 등 미술서비스업, 공공미술 등 업계의 직종을 망라했다. 미술진흥법이 아니라 미술유통법 같다. 미술진흥법의 제정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술진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필요한 예산 확보와 지원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미술진흥법의 기본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동법 시행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술창작과 전시기획 그리고 미술평론 분야를 포함한 균형 잡힌 미술진흥법이 되도록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3

홍경한
미술비평가

미술진흥법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 법의 정체성이다. 기본 방향과 철학이 두루뭉술하다. 경매업, 화랑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전시업 등 33개의 조항 중엔 문화예술에 대한 존중보단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것이 수두룩하다. 이는 미술진흥법이 ‘미술유통법’ 내지는 ‘미술업자법’처럼 비치는 이유다.

실제로 미술진흥법은 미술품에 대한 가치 평가 또는 취득과 처분에 관한 의견을 제공하는 전문가의 업무를 ‘미술품 자문업’으로 규정하거나 전시기획과 개최, 운영 주체를 ‘서비스업자’로 묶고 있다. 초기 거론되던 평론가를 비롯한 이론가,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망은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미술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고용 형태가 불분명한데다 초현실적인 평론비와 원고료를 받고 있다. 심지어 10년 혹은 20년 전 평론을 재사용해도 그에 대한 저작료 등의 보상은 전혀 없다. 어떤 면에선 ‘미술업계 제도화’라는 명분 아래 제정된 ‘규제법’이라는 인상까지 심어준다. 시행령이 미술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미술인들이 먼저 의견을 모으고 합의된 개선안을 정부에 제시해야지 않나 싶다.4

이명옥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 사비나미술관 관장

미술계 일각에서 “미술유통진흥법이냐” 또는 “규제법이냐” 등 이견이 많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지난해 통과되지 않았다면 올해 다시 원점에서 미술진흥법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 진흥정책도 나오고 작가들이 지원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일단 큰 틀을 통과시키려 관계자들과 함께 무진 애를 써왔다.

한국미술시장이 1조 원 시장으로 커졌는데, 관련 법이나 정책, 제도도 시장 크기에 맞춰 정비돼야 한다. 시장은 커졌는데, 자본의 논리로만 승자독식이 되어, 가난한 화가는 계속 가난한 게 맞는가.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한 95% 이상의 예술가는 전혀 시장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미술진흥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시행령을 근거로 미술진흥정책이 많이 나오도록 애써서 미술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법을 고쳐야 할 일이 생기면 향후 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본고는 지난 1월 25일 한국문화예술법학회 주최의 학술대회 ‘미술진흥법 제정의
의미와 과제’에서 발표한 「한국 미술 진흥을 위한 생산자, 중개자, 소비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참고자료
법무법인 세종 뉴스레터, 법무법인 광장 뉴스레터
정현경 「미술진흥법이 미술시장에 미치는 영향」 제24회 한국문화예술법학회
동계학술대회 ‘미술진흥법 제정의 의미와 과제’ 발제문 2024
최동준 「미술진흥법 제정에 따른 추급권 도입과 향후 과제」 『법학논총』 47(3)
2023 pp. 287~330


3 「[김영호의 월요논단] 미술비평이 소외된 ‘미술진흥법’」『한라일보』 (2023.8.7) 발췌
4 「[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진흥법’인가 ‘미술유통법’인가」 『메트로신문』(2023.8.2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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