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캐슬린 킴의 예술법 세상14]

감정인의 의견은 누가 감정하는가

.

레오나르도 다빈치 〈La Belle Ferroniere〉 목판에 유채 55×43.5cm 1490~1496

.


.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걸작 〈페로니에르 1 를 한 아름다운 여인(La Belle Ferroniere)〉. 한 여인이 칠흑 같은 배경에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몸을 살짝 틀고 앉아 있다. 입술은 꼭 다물었고 눈매는 날카롭다. 여인이 관람객을 마주하는 시선은 강렬하다. 작품은 다 빈치가 밀라노에 머물던 시절 그린 것으로 추정될 뿐 모나리자처럼 여인의 정체는 분명치 않다. 학자들의 해설은 분분하다.2 하지만 이 낯선 여인이 모나리자만큼이나 세상을 뒤흔들었다.

1920년 미국 캔자스 주에 다 빈치 작품이 내걸렸다. 진품이 미국에서 전시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작품의 소장자는 안드레 한(Andrée Lardoux Hahn)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서 이 작품을 구매했다고 소개됐다. 한은 이 작품을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금액인 22만5000달러에 캔자스시립미술관에 팔 예정이었다. 뉴욕의 한 기자가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이자 예술품 감정인인 조셉 뒤빈 경(Sir Joseph Duveen)에게 의견을 물었다. 뒤빈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품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당시 뒤빈은 런던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캔자스 주에서 전시 중인, 한이 다빈치가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감정 의견은 확고했다. 진품이 파리 루브르 뮤지엄에 있고, 다 빈치는 결코 복제품을 만들지 않으므로 캔자스 주에서 전시중인 작품은 결코 진품일 리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한 진위 감정인이 발급한 진품감정서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뒤빈의 영향력만큼이나 감정 의견은 파장이 거셌다. 이미 구두로 약정을 했고 이제 막 매매계약을 마무리하려던 시점에 터져 나온 뒤빈의 의견으로 캔자스시립미술관은 작품의 매입을 포기했다.

예상치 못한 스캔들로 비화되자 소장자 한은 1920년 6월, 뒤빈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3 청구금액은 매매 예정가의 두 배가 넘는 500만 달러였다. ‘세기의 예술 재판’이 시작됐다. 배상책임의 근거는 위법한 ‘비방(slander)’이었다. 미국법상 비방은 명예훼손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명예훼손이 개인의 평판을 보호한다면 비방은 좀 더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좀 더 초점이 맞춰진다. 한의 입장에선 뒤빈이 자신의 소장품에 대해 논평을 기화로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거짓된 주장을 함으로써 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훼손시키고 매매계약을 무산시킨 데 대한 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위작이라면 소장자 한의 책임일 것이고, 진작이라면 뒤빈의 책임일 것이다. 좀 더 들어가자면 감정인의 주장은 맞는 걸까 틀린 걸까. 나아가 감정인의 논평에 비방을 하고자 하는 악의적 있는 고의가 있었을까. 이것이 변론의 쟁점이었다. 원고 측은 X – 레이 필름, 재료 분석, 각종 사료 검증에 안목 감정 전문가들의 증언을 제시하며 한의 소장품이 진작임을 주장했다. 오히려 루브르 뮤지엄 소장품이 위작이라며 공격했다. 과학적 분석보다 전문가의 경험과 직관, 안목을 신뢰성을 강조하는 피고 뒤빈 측은 미국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맞섰다.

‘세기의 예술 재판’답게 뒤빈 측 증인에는 예술사가 버나드 베렌슨과 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큐레이터인 로저 프라이, 베를린 뮤지엄의 빌렘 본 보데 관장, 런던내셔널 갤러리의 찰스 홈즈 관장 등이 포함됐다. 놀랍게도 루브르 뮤지엄 소장품과 한의 소장품이 나란히 법정에 현출 됐다. 루브르 입장에서도 이 재판만큼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즉석에서 감정이 이루어졌다. 뒤빈 측 증인들은 두 작품이 상반신의 길이, 목걸이와 헤드밴드, 눈의 크기, 뺨의 폭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며 한의 소장품은 다 빈치의 제자 또는 후예들이 그린 모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뒤빈이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거짓 주장을 했는지도 위법성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이었다. 피고 측은 루브르 뮤지엄 소장품이 진품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며 이는 충분한 근거에 바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원고 측이 피고 측을 혼란에 빠트릴 증거를 제시했다. 뒤빈이 언젠가 루브르 뮤지엄의 소장중인 작품이 과연 진품인지 의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힌 서한이었다. 진작 여부도, 과연 진작이라면 어느 것이 진작인지도, 아니면 둘 다 위작인지도 모르는, 각기 상반되는 증언과 증거의 홍수 속에서 배심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의견이 갈렸다. 배심원들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를 설득해서 하나의 통일된 결론을 만들어야 했다. 결국 평의는 실패했다. 고심 끝에 내린 배심원단의 결정은 불일치(hung jury)였다. 결정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때로는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하는 것’이다. 피고 측은 원고의 주장이 충분치 않아 생긴 평결이라며 손해배상책임 소송의 기각을 요청 했다. 하지만 법원은 재심(retrial)을 명령했다. 배심원을 새로 선정해서 처음부터 재판을 새로 시작하자는 결정이었다.

.

1929년 2월 5일자 《the New York Journal》에 실린 기사 사진

.

‘소송 경제’라는 말이 있다.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에 대한 조화의 문제다. ‘돈 많이 들고, 오래 걸리는’ 재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9년간의 소송과 여론전에 피고가 지치고 말았다. 뒤빈이 6만 달러의 배상과 소송 비용을 물어주기로 합의하면서 사건은 화해로 종결됐다. 세기의 재판치고는 결말은 허무했다.

예술시장에서 감정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감정은 크게 진위 감정(authenticity)과 시가(가치) 감정(appraisal)이 있다. 진위 감정이 작품의 진위성 여부에 대한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라면, 시가(가치) 감정은 시장에서의 매매 가치, 또는 예술사적 가치를 금액으로 산정하는 것이다. 물론 진위성이 시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두 가지 감정을 판단하는 방법이나 기준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다. 이중 진위 감정은 경험칙에 근거한 안목 감정(connoisseurship)이 절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진작에는 딱히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반면 위작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간혹 경매 스페셜리스트조차 위작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진작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며 심미적으로 완벽한 위작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작과 위작을 분명히 구분하는 이유는 진작에는 그것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어떤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도널드 톰슨 요크 대학 석좌교수). 어쩌면 이것이 진위 감정의 본질일지 모른다.

이 사건은 진위 감정의 문제였다. 거기다 잘못된 감정이었을 때 비방이라는 위법 요소가 있는지를 따져 배상책임을 묻는 재판이었다. 일정 부분 배상 책임을 인정한 화해였기에 자칫 뒤빈이 패자로 비칠 수 있다. 결국 최종 판단은 시장의 몫이었다. 아무도 한의 소장품을 사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1993년 3월, 다 빈치 전문가인 영국의 예술사가 마틴 캠프 교수가 한의 소장품들이 전부 모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다시금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고, 작품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루브르 뮤지엄에는 여전히 뒤빈이 진작이라고 주장한 작품이 걸려 있다. ‘미국의 레오나르도(The American Leonardo)’는 별칭이 붙은 한의 소장품이 2010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됐다. 다 빈치의 진작이 아니면 어떠하랴. 이미 ‘미국의 레오나르도’로 충분했다. 낙찰 금액은 1,538,500달러였다.

뒤빈은 자신의 사후에 〈페로니에르를 한 아름다운 여인〉의 남자로 기억되길 희망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작품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여인의 남자’는 호명된다. 예술품 진위 감정을 둘러싼 세기의 재판은 이미 예술법 교과서에 올라 있다. 앞서 그러했듯 예술품 진위 감정은 시장은 물론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절대적이다. 2005년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소속 감정인들이 위작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소장자는 곧바로 명예훼손을 근거로 하는 손해배상 책임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진위 감정을 판단해 달라는 경매회사의 의뢰를 받아 위작으로 판정한 것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실 적시가 아니며, 위작이라는 의견의 표시는 진위 여부에 관한 사회적 논란을 해소코자 한 것으로 공익적 목적”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4 나아가 “감정위원들이 위작이라고 적시한 사실은 제출된 증거와 진술로 볼 때 진실일 개연성이 높으며, 설령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피고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합리적 자료와 근거가 인정된다”고 했다. 법원조차 위작일 가능성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감정은 다른 수단에 의한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법적 책임 이전의 드높은 윤리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

1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던 이마에 두르는 보석 달린 장신구

2 밀라노 공국의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아내인 베아트리체 데스테라는 설도 있고, 정부인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나라는 설도 있고, 프랑스와 1세의 정부로 철물 장식업자인 페론의 아내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장신구 이름이 된 ‘페로니에르’ 철물 제작자의 아내라는 의미에서 시작 됐다.

3 Hahn v. Duveen, 234 N.Y.S. 185 (N.Y.Sup.Ct. 1929)

4 서울중앙지법 민사 13부 2005가합81835 1929년 2월 5일자 《the New York Journal》에 실린 기사 사진

.


글:캐슬린 김 | 미국 뉴욕주 변호사, 홍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