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곳을 상상하며

《게임사회》

2023. 5. 12 – 9. 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이 만든 게임적 상상과 리얼리즘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자주 접하는 스타벅스의 리저브 제도만 보아도 그렇다!) 《게임사회》는 사회와 게임의 강력한 동기화 과정에 주목하며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시장에는 레트로 오락기부터 조이스틱과 최신 VR 기기까지, 게임사회로 관객을 초대하기 위한 장비가 가득하다.

게임의 디지털 이미지는 태생적으로 시뮬라크르 simulacre적 특성을 가진다.1 게임은 현실 세계로부터 유래되었지만, 실제와 단절되어 스스로 ‘원본’이 되었다. 기원 없이 무한히 연쇄되는 게임 환경은 가짜이자 진짜인 불완전한 세계를 구축한다. 한편 단절된 모사의 세계에서 ‘동기화’는 복제가 아닌 새로움의 창조를 시사한다. 숫자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스템인 디지털 게임은 사용자의 문화적 합의인 매핑 mapping을 통해 창조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2 사용자는 자신의 앵글에서 규칙을 해석하고, 자의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게임의 세계를 모델링한다.3

그러나 사용자, 즉 게이머의 창조는 제한적이다. 게임의 공급자가 설계한 공간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용자는 게임을 진행할수록 전능함보다 한계를 깨닫게 된다. 게임의 한계는 사용자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실 세계의 모순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가상의 이미지로 가득 채워진 디즈니랜드는 시뮬라크르가 만드는 모순을 잘 보여준다. 화려한 디즈니랜드에서 하루를 보낸 방문자가 그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이라 믿지만, 디즈니랜드의 바깥 또한 시뮬라크르로 채워진 하이퍼 리얼한 세계일 수 있으며 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현실은 단지 이를 조금 더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는 또 다른 복제일 수 있는 것이다.4

시뮬라크르의 힘은 바로 여기서 발현된다. 비판적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사용자는 시뮬라크르로 채워진 인공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틈새를 찾아내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게 된다. 또한 모사의 세계 사이를 횡단하며 사회에 은폐된 빈 곳과 내몰린 존재들을 탐색함으로써 일상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5 게임을 매개로 한 즐거운 예술 경험을 통해 누락되거나 배제되는 요소들을 살펴보자. 존재와 비존재, 리얼타임과 이미지 사이를 유영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탐구하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보살핌이 될 것이다. 고로 《게임사회》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는 것은 시뮬라크르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조화로운 세상에 일조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게임을 시작할 때! 망설임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러 보자.

  1.  권오상, 디지털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에 관한 연구 -들뢰즈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을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2018, vol., no.51, pp. 391-411.
  2.  류철균·권보연, 디지털 게임에 나타난 미학의 정치, 인문콘텐츠, 2015, vol., no.37, pp. 91-114.
  3.  전석·조현경·윤준성, 미학적 테크놀로지로서 철학화하는 게임, 한국HCI학회, 2007. 02, pp. 2005-2010.
  4.  권오상, 앞의 글, 2018, pp. 391-411.
  5.  류철균·권보연, 앞의 글, 2015, pp. 91-114.

글, 사진: 문혜인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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