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한강, 漢江
10.6~30 이랜드크루즈 터미널 및 유람선, 한강 둔치
이레나 | 독립기획자

정소영 〈부유물과 침전물〉 혼합 재료, 한강의 부유물과 침전물 가변크기 2022

한국의 근현대사는 한강을 따라 흐른다. 그 물길엔 수많은 서사와 욕망이 뒤엉켜 용해되어 있다. 최주원 큐레이터는 근현대사의 역사적 산물인 ‘한강’에 주목하여 국내 작가 14팀과 함께 이랜드크루즈에서 전시 〈한강, 漢江〉을 꾸렸다. 강남버그, 김정모, 김홍석, 듀킴, 유지완, 이우성, 이정우, 장영혜중공업, 정명우, 정소영, 정승규, 최태훈, 해파리, 현이재 등 동시대의 작가들은 ‘한강’을 하나의 역사적 오브제로 혹은 사적인 의미를 내재한 대상으로 번역해냈다. 이는 알고리즘처럼 작동하여 이랜드크루즈의 터미널 및 유람선, 그리고 한강 둔치에 흩어진 작품들을 연동시킨다.
전시의 관람자는 신문 형태의 브로슈어를 펼쳐 들고 작품의 위치를 더듬는다. 차가운 강바람에 구겨진 신문지를 펄럭이며 한강 이곳저곳을 헤매고, 흑백의 신문을 손에 쥔 채 걸어가는 다른 무리와 마주하는 경험들은 윤곽 없는 노스탤지어를 상기시킨다 ‘한강’이라는 거대한 장(場) 안에서 배회하며 관객들은 각자의 타임라인에 젖어든다.
유람선과 선착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강, 漢江〉의 작품들은 외부와 격리되어 말끔한 낯을 지키던 화이트 큐브 내 작품과 달리, 작품 그 자체의 자율성을 포기한다. 유람선 승객 또는 한강을 거니는 시민과 작품의 의도치 않은 조우, 여러 시설물로 가득 찬 선착장, 그리고 한강이라는 특수한 맥락. 이 세 조건의 결합은 작품을 새로운 혼성객체로 변화시킨다. 그것들은 더 이상 화이트 큐브에 안주하는 오브제가 아니며 한강과 유람선을 찾는 시민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침범하는 일시적  -  불청객이 된다.
터미널과 유람선의 시설물 사이에, 내부에, 혹은 그 위에 얹어져 있는 작품들은 누군가에게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 시설물 혹은 그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듀킴의 〈하이 소울〉은 이랜드크루즈의 커다란 로고 위에 작은 네온사인을 걸어두어 시설물로 위장했고, 몰래 붉은 네온 십자가를 심어두는 데에 성공한다. 듀킴은 서울과 그곳에 깊게 뿌리내린 8,000여 개의 교회가 서로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며 근현대사를 지나왔다고 말한다. 그는 선착장 곳곳에 서울에 기식하는 교회의 띠부띠부씰을 붙여두어 차별과 억압에 갇힌 영혼의 소환 의식을 준비한다.
기묘한 의식의 장을 통과하며 유람선에 올라타면 승객들의 어수선함을 비집고 각국의 국가가 흘러나온다. ‘한강’이라는 맥락에 승선한 탓일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특유의 격양된 톤과 억양에 자연스레 귀기울이게 된다. 김홍석의 〈다섯 국가〉는 일본, 중국, 미국, 북한 그리고 한국의 국가(國歌)를 한국인과 일본인 가수가 각자의 모국어로 번역해 부르는 사운드 작업이다. 이는 각 나라의 국가를 겹쳐 재생해 한국의 근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나라들 간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관계를 상기시킨다.
유람선 2층에서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점진적으로 크게 울려퍼지며 해파리의 〈Born by Gorgeousness〉 퍼포먼스가 전시의 오프닝을 알린다. 박민희와 최혜원으로 이루어진 해파리는 종묘 제례악과 전통가곡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현대적 감각을 덧입힌다. 그들은 한강을 가로지르며,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종묘제례악을 여성 신체로 재전유한다. 그들은 음악의 여러 요소에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일무(佾舞, 문묘 제향 때 여러 사람이 여러 줄로 벌여 서서 추는 춤) 중에는 의도적으로 고증을 깨뜨린다. 선택적으로 전통을 복원하고 과감히 변형하는 그들의 주체적인 가무는 서구의 시선이 내재화된 한국의 근현대를 되돌아 살피게 한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 바라본 한강은 한국의 근현대를 둘러싸는 하나의 풍경이자, 역사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다시금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강, 漢江〉의 작품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물줄기를 따라 개인의 언술적 서사 공간을 활성화시키고, 역사를 재맥락화하는 데 힘을 보태며 그 자리를 잠시 지킬 것이다.

현이재 〈우화하듯 남겨지는 것들〉 아크릴, 레진, 알긴산, 한강물 약 150×50×180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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