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심스(Martine Syms) 〈Lessons I-CLXXX〉 2014~18 180 standard-and high-definition videos (color, sound) 90mi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Fund for the Twenty-First Century © 2022 Martine Syms. Installation view 〈Pervasive Light: Works from MoMA’s Media and Performance Collection〉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현대카드
영구히 반짝거릴 영감의 빛

현대카드는 뉴욕 MoMA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바우하우스 특별전〉(2009)을 시작으로 〈르 코르뷔지에: 근대 풍경화의 거인〉(2013), 〈저드〉(2020) 등 미술사 주요 아티스트와 작품을 다룬 50여 회의 기획전을 단독 후원해왔다. 아울러 MoMA가 2019년 재개관하면서 새롭게 선보인 ‘마리-조세 & 헨리 크라비스 스튜디오(Marie-Josée and Henry Kravis Studio)’에서 진행되는 ‘현대카드 퍼포먼스 시리즈(The Hyundai Card Performance Series)’와 MoMA의 비디오 아트 컬렉션을 소개하는 온라인 프로그램 ‘현대카드 비디오 뷰스(Hyundai Card Video Veiws)’(2021~ )를 단독 후원해왔다. 이런 MoMA와의 협력은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서울의 전시공간 스토리지(Storage)와 컬처 라이브러리에 방문하는 이들이 향유할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미술관과 기업의 이유 있는 파트너십: ‘선언’을 공유하기

김주원 |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 〈Pervasive Light〉 2021 Three-channel high-definition video(color, sound; 16:15 min.) and three flat screen monitors
Dimensions variable The Museumof Modern Art, New York. Fund for the Twenty-First Century. © 2022 Sandra Mujinga.
Installation view 〈Pervasive Light: Works from MoMA’s Media and Performance Collection〉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아메리칸 아티스트(American Artist) 〈2015〉 2019 High-definition video (color, sound; 21:56 min.)
〈Untitled〉 2019 Curtain and bleachers Dimensions variabl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Fund for the Twenty-First Century. © 2022 American Artist.
Installation view 〈Pervasive Light: Works from MoMA’s Media and Performance Collection〉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Eye/Machine III〉 2003 Two-channel video edited to single-channel video(black and white and color, sound and silent) 17 mi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ommittee on Film Funds. © 2022 Harun Farocki Filmproduktion.
Installation view 〈Pervasive Light: Works from MoMA’s Media and Performance Collection〉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MoMA의 ‘선언’
“조만간 우리 미술관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협소한 범위를 벗어나, 아마도 드로잉, 판화, 사진, 타이포그래피, 산업 디자인, 건축설계도와 모형, 무대디자인, 가구와 장식미술 등을 담당하는 부서를 확충할 것이다. 필름라이브러리인 필모텍 (filmotek)도 중요한 컬렉션이 될 것이다.”
– 알프레드 바, ‘새로운 미술관(A New Museum)’, 1929.8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이 20세기 미술사는 물론 동시대 미술지형 확장에 공헌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크리스토프 그루넨버그(Christoph Grunenberg)의 말대로 MoMA는 현대미술에 독점적으로 관여한 첫 번째 미술관이며, 그 소장품의 범위가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인정돼왔다. 1929년 8월, 개관과 함께 발행한 소책자 《새로운 미술관(A New Museum)》은 이른바 MoMA의 ‘선언’이라 할 만큼 기관의 미션과 비전의 선포였다. 이 대담한 실험적 선언의 기초에는 미술의 새로움과 비확정성이라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MoMA의 입장이 견지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다소 장황하게 MoMA의 ‘선언’을 서술한 이유는 지금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며드는 빛: 뉴욕 MoMA 미디어&퍼포먼스 컬렉션〉 전시 때문이다. 이 전시는 글의 시작에서 인용한 MoMA의 1929년 8월의 ‘새로운 미술관’이 제시하는 대범한 실험적 입장이 100년을 넘어 오늘에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MoMA의 ‘선언’은 이제 거의 100년의 시간 속을 관통하며 미술의 새로움과 비확정성을 향해 앞장서서 움직이는 어뢰와도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MoMA의 컬렉션은 건축과 디자인, 영화와 비디오, 회화 등 총 6개의 분야로 구성되어, 약 15만여 점에 이른다. 여기에 필름 2만2000여 점과 영화 스틸사진을 포함하면서 컬렉션의 범위와 형태는 보다 실험적으로 확장되었다. 사진과 영화 등의 필름이 시각예술 분야의 중요 장르로 포함되기 이전부터 MoMA는 1929년의 ‘선언’을 실천해 오면서, ‘미술’에서 ‘시각예술’로 확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미술’개념의 변화와 미술사를 주도적으로 서술해왔다.

그리고 지금, 인용문 속 필모텍, 즉 현재의 필름라이브러리가 보다 더 확장, 분화된 MoMA의 ‘미디어&퍼포먼스 컬렉션’ 전시는 1929년 ‘새로운 미술관’ 선언 이래 근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미국’과 ‘한국’, ‘뉴욕’과 ‘서울’, 그리고 ‘MoMA’와 현대카드 ‘스토리지’라는 전혀 다른 권역, 도시, 기관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간의 복잡한 이슈들을 끌어안은 채 공명하고 있다.

‘미디어&퍼포먼스 컬렉션’
위상이 다른 도로와 골목을 위아래로 두고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아마도 기존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살려 도시와 공간의 기억을 가공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 광복과 6·25전쟁 이후 각기 다른 수많은 이유로 지금의 한남동 일대엔 비탈진 산길과 언덕을 따라 그대로 집들이 들어섰다. 좁디좁은 골목과 골목 사이, 위아래로 불규칙하게 선 허름한 건물과 건물, 집과 집, 이런 모습이 이전의 한남동의 기억일 것이다. 공간과 도시에 달라붙어 있는 기억의 저장소 ‘스토리지’는 큰 도로변 뒤편의 골목으로 직행할 수 있는 건물 사이에 난 가파른 계단 중간쯤에 입구가 있다. 맘껏 흘려 써 유혹적이게 붉은 네온사인 ‘Storage’와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작은 유리창이 달린 입구는 이 공간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동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은 바(bar)처럼 개방적이긴 하지만 권위적이지는 않다. 이 같은 입구의 인상 때문에 기존의 화이트큐브적 문화공간 같은 내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건물의 외관, 입구와 내부의 어긋남과 그 독창성은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개방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흑인성 (Blackness)’을 시각예술로 대변해 온 마틴 심스의 〈Lessons I-CLXXX〉 (2014~2018)가 설치되어 있다. 작품은 TV프로그램, 홈 비디오, 유튜브 등에서 차용한 30초짜리 영상 조각 180편이 알고리듬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의식의 흐름처럼 무작위로 재생된다. 북미 흑인 역사에서 ‘교훈(lessons)’처럼 전해 내려오는 전통들을 다룬 케빈 영(Kevin Young)의 저서 《The Grey Album: On the Blackness of Blackness》(2012) 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녀는 2014년부터 사적인 혹은 여러 매체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푸티지 영상들을 통해,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등의 디지털 문화 속에서 흑인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신화화되며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트레버 페이글렌의 작품 〈Behold These Glorious Times!〉도 눈길을 끈다. 지리학자이기도 한 페이글렌의 이 작품은 AI 네트워크가 물체, 얼굴, 몸짓, 표정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프로세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영상 후반부에 AI가 사진을 해석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선, 픽셀, 흑백명암으로 대상을 분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산드라 무징가는 작가이자 음악가이다. 이번 전시 제목으로 인용된 산드라 무징가의 작품 〈스며드는 빛(Pervasive Light)〉은 마치 종교 제단화의 삼면화(Triptychs)를 연상케 한다. 노르웨이 뮤지션 마리아마 엔두르(Mariama Ndure)가 3개의 모니터 속에서 등장과 사라짐을 반복하고 있다. 매체에서 비치는 흑인의 모습이 현실 속 개인으로서, 흑인의 삶을 대체해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아메리칸 아티스트는 ‘미국 작가’라는 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2013년 본인의 이름을 ‘아메리칸 아티스트’로 바꿔 활동하고 있다. 주로 기술, 인종, 지식 생산의 역사를 발굴하고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2015〉는 뉴욕 경찰이 치안 예측 소프트웨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해를 의미한다. 이 치안 예측 소프트웨어에는 테러 방지 목적으로 안보 시스템에 적용했던 알고리듬이 활용됐다. 아메리칸 아티스트는 이것이 인종 차별적인 치안 유지 패턴을 강화한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의 〈눈/기계(Eye/Machine)〉(2000~2003)는 3개의 2채널 설치 연작이다. 파로키는 노동, 전쟁, 기술의 이면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 방식과 미디어와 산업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눈/기계〉에서 파로키는 군사산업과 기술산업을 병치시키고 이들의 유사성을 주목하면서, “왜,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떻게 이미지의 생산이 인간 존재의 파괴에 가담하게 되었는가?”(조르주 디디 위베르만)를 질문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전시는 MoMA의 ‘미디어&퍼포먼스 컬렉션’ 가운데 3세대에 걸친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5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SNS, 얼굴 인식, 드론 카메라, AI 등 일상생활 전반에 스며들 듯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광범위한 기술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도 MoMA의 미디어&퍼포먼스 분야 주요 프로그램을 아카이빙한 별도의 섹션도 흥미롭다. 2019년 증축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MoMA가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한 형태로 시간기반 예술(time-based art)에 주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용 전시장 ‘마리-조세 & 헨리 크라비스 스튜디오’를 마련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기업과 미술관의 이유있는 파트너십
MoMA의 미디어&퍼포먼스 컬렉션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현대카드는 지난 2006년부터 약 16년간 MoMA와 파트너십을 맺고 MoMA가 개최하는 주요 전시를 50여 차례 단독 후원해 왔다. 현대카드의 이러한 예술후원 행보는, 대중과의 접촉방식을 보다 원활하게 한다. 특히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지역과 시간을 초월한 다수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미술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드러나는 예술후원은 기업 홍보의 효과적인 방법이 되며, 해당 기업의 이미지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업과 미술관의 파트너십 문제는 여러 가지 정치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스며드는 빛〉 전시가 보여주는 MoMA의 컬렉션들은 한 미술관의 대담하고 실험적인 ‘선언’의 실천적 증거이며, ‘스토리지’가 그 ‘선언’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움을 지속하는 MoMA의 이미지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에 투영되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를 권력이라고 하나 보다.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Behold These Glorious Times!〉 2017 High-definition video(color, sound) 10:02 min. Music: Holly Herndon. © 2022 Trevor Paglen.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ltman Siegel, San Francisco and Pace Gallery

이태원 스토리지 입구

전시 한 쪽에는 현대카드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크라비스 스튜디오의 미디어 퍼포먼스 프로그램 ‘현대카드 퍼포먼스 시리즈’와 ‘현대카드 비디오 뷰스’에 관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INTERVIEW] 현대카드와 동시대예술

류수진 |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
정리: 배우리 기자

동시대예술은 대중문화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대카드의 문화공간에는 일상과 디자인, 예술의 구분이 없다. MoMA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최근 동시대예술을 일상에 한껏 끌어들인 현대카드의 예술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데이비드 튜더 〈David Tudor and Composers Inside Electronics Inc.: Rainforest IV V (variation 1)〉. Installation view October 21, 2019~January 5, 2020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Image © 2019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Heidi Bohnenkamp

MoMA
MoMA와의 협력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현대카드는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20년 가까이 이를 비즈니스에 접목해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컨템포러리 아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뉴욕 MoMA는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을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글로벌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가치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는 이러한 MoMA와 협력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현대카드는 2006년 11월, 국내 처음으로 MoMA 온라인 디자인 스토어를 운영하는 것으로 MoMA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오랜 기간 전시 후원에서 협업으로 파트너십의 폭을 넓히며, MoMA와의 협력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현대카드만의 전시 후원 기준이 있다면.
현대카드는 사업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건축과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이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체적으로 펼쳐왔다. 따라서 파트너십 초창기에는 〈바우하우스(Bauhaus 1919~1933: Workshops for Modernity)〉 (2009), 〈톡 투 미(Talk To Me: Design and the Communication between People and Objects)〉(2011),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An Atlas of Modern Landscapes)〉(2013) 등 현대카드가 집중했던 분야인 건축과 디자인에 관련된 전시를 주로 후원하였다. 3년 전부터는 실험적이고 융복합적 성격을 지닌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의 다양한 전시 및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영역임에도 제대로 된 후원자가 없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라이브 & 퍼포먼스 아트에 현대카드가 적극적으로 후원자 역할을 하고자 했다.

현대카드의 철학과 가장 잘 맞았던 후원 전시와 그 이유가 궁금하다.
현대카드와 MoMA의 공통점은 ‘실험정신’의 DNA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현대카드는 현대 미술사 가운데 새로운 시대와 그 시대의 변화에 따른 창의적 장르,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수많은 전시를 단독 후원해왔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세계의 미술계뿐만 아니라 특히 디자인과 건축 면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미국 예술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의 대규모 회고전, 〈Judd〉(2020)를 꼽을 수 있다.
이 전시는 간결한 선, 단순한 색상, 재료의 물성 등, 형태가 예술적 요소로 발현될 수 있는 궁극의 미학을 보여줌으로써 저드가 오늘날 예술, 건축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세계를 여러 형태로 설계하는 데 영감을 주는 선구자였음을 알려주었다. 전시 개막 당시 코로나 19로 인해 잠정적 휴관에 들어간 MoMA는 현대카드 회원만을 위해 특별히 온라인 전시투어를 마련하였는데, 당시 1,000여 명이 신청한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엄선된 100명이 초대되어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현대카드 퍼포먼스 시리즈’와 ‘현대카드 비디오 뷰스’에 대한 소개해준다면. 어떤 작가들이 소개되었는지, 특히 반응이 좋은 작가가 누구인지 프로그램에 대한 해외 반응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그간 ‘현대카드 퍼포먼스 시리즈’의 일환으로 소개된 작가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사운드 설치 작업의 선구자였던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1926~1996), 거리 퍼포먼스로 유명한 포프 엘(Pope.L, b.1955) 등을 비롯하여, 한국 작가로서는 MoMA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양혜규(b.1971), 김성환(b.1975) 등이 있다. 특히 크라비스 스튜디오 개관 후 첫 전시인 〈David Tudor and Composers Inside Electronics Inc.: Rainforest V(variation 1)〉(2019)에서는 금속 배럴, 빈티지 컴퓨터 하드디스크, 플라스틱 튜브와 같은 일상적인 물체들이 공간에 매달려, 여기에 장착된 음파 변환기에 의해 전시장 안에서 풍부한 공명이 구현되었는데, 작품과 대면하는 관람객의 현실적 시간과 경험, 예술적 공간 간의 상호작용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2021년 4월에 론칭한 ‘현대카드 비디오 뷰스’는 MoMA의 비디오 아트 컬렉션을 소개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이다.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작품을 볼 수 없는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글로벌 관중이 감상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전시 프로그램인 비디오 뷰스를 마련한 것이다. 현대카드 비디오 뷰스는 매달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약 2주간 한정적으로 온라인 스크리닝을 진행하며, 매거진 아티클도 발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멀티미디어 설치작업을 통해 사회 구조적 편견이 기술의 개발과 사용에 스며드는 방식을 탐구하는 아메리칸 아티스트를 조명하였는데, 현재 스토리지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작가로, 전시장을 찾은 국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현대카드가 미디어와 퍼포먼스와 같은 시간 기반(time-based) 혹은 움직임 기반의 예술 장르에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최근 MoMA는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한 형태로 미디어아트 혹은 퍼포먼스와 같은 시간 기반 예술에 주목하고 있다. 찰나의 시간이나 움직임을 다루는 비물질적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영속적 공간 속에서 선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전용 전시장을 새롭게 마련하고 입체적인 경험이 가능한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MoMA의 선구적이고 과감한 실험은 현대카드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혁신을 추구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카드는 이러한 장르에서만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사고를 만나는 신선함에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장기적으로 MoMA와의 협업 계획이 어떻게 되나.
최근 현대카드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영역임에도 제대로 된 후원자가 없거나 관심받지 못하는 라이브 & 퍼포먼스 아트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 아티스트의 MoMA 전시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후원하고자 한다. 내년 현대카드에서는 백남준(1932~2006),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in, b.1943),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b.1946), 토니 콕스(Tony Cokes, b.1956),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b.1966) 등의 작품들을 통해 1960년대 비디오아트의 초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MoMA의 대규모 기획전 〈Signals〉를 단독 후원할 계획이다.

김성환(Sung Hwan Kim)
〈Temper Clay〉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June 5~July 18, 2021. Digital image © 2022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 Robert Gerhardt

스토리지
스토리지가 다른 갤러리, 미술관과 차별점으로 내세우는 점이 있다면.
2016년에 개관한 스토리지는 ‘저장고’, ‘창고’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그 이름처럼, 화이트 큐브라고 일컫는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탈피하여 인위적인 손길을 최소화한,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지닌 공간이다. 스토리지가 위치한 이태원은 미술과 디자인, 패션, 음악, 서브컬처 등이 장르 간의 경계 없이 재미있게 과감한 도전을 보여주는 곳으로, 스토리지는 그러한 로컬리티에 맞는 장르 융합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콘텐츠를 선보여왔다.

스토리지에서 가장 주목받은 대표 전시와 콘셉트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2019년에 선보인 〈Energy Flash〉는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을 재해석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로 대중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나이트 라이프의 대표적 공간인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에너지를 표출하는 플랫폼인 동시에 서브컬처에서 중요한 커뮤니티로 기능해왔다. 이 전시는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당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요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는지를 보는 동시에 관람객에게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였다.
이와 더불어 작년에 개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광고패션계의 독보적인 포토그래퍼, 피에르파올로 페라리의 전시 〈TOILETPAPER: The Studio〉는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해진 최근의 문화 소비 트렌드 속에서 그 경험의 정점을 극적으로 제공하였다.

스토리지에서 열린 〈Good Night: Energy Flash〉(2019.4.18~2019.8.25) 전시 전경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도 예술 관련 서적들이 있다. 아트 라이브러리를 새로 마련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현대카드는 2013년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시작으로, 트래블, 뮤직, 쿠킹 라이브러리를 차례로 개관하며 다양한 영감의 공간을 만들어왔다.
5년 만에 선보이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유구한 미술사를 모두 다루기보다는 동시대의 시각을 반영하는 현재성을 지니면서도, 현대카드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디자인과 맥락을 같이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주제로 삼았다. 현대카드는 오래전부터 컨템포러리 아트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전시를 후원해오며,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시각 문화의 토대이자, 현재와 미래에 가장 대담하고 지속적인 영감을 주는 컨템포러리 미학에 주목해왔다.

MoMA 도록, 베니스 비엔날레 도록 외 아트 라이브러리에서만 볼 수 있는 도서를 추천해 준다면.
활자와 이미지로만 구성된 기존 종이책의 형식과 제작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책과 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아티스트 퍼블리싱 북
(Artists’ Publishing Book)’을 소개하고 싶다. 그 가운데서도 현대 아티스트 퍼블리싱 북의 아버지라 불리는 디터 로스(Dieter Roth)의 첫 번째 책은 원래 로스가 그의 친구였던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클라우스 브레머(Claus Bremer)의 아들을 위해 1954년 처음 만들었다. 처음 발행한 책은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57년 작가가 자비출판하며 세상에 재등장했다. 이 책은 추상적 무늬와 색상을 반복해 화면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옵아트(optical art)의 기하학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형상과 원색으로 이루어졌다.
또 다른 책으로는 1966년 200부 한정으로 제작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이라는 아코디언 형태의 아티스트 북으로, 금색 종이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나 있다. 캔버스를 찢었던 폰타나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을 빌려 책에 구멍을 뚫고 보이지 않는 공간의 깊이를 구현한 아티스트 북이다.
이처럼 아티스트가 직접 만들어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아티스트 퍼블리싱 북은 우리로 하여금 도서의 무한한 확장성과 아티스트의 창의적 실험정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시민 혹은 관객,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현대카드의 철학이 무엇인지, 앞으로 문화 영역에서 브랜딩 활동이 어떻게 확장될지 궁금하다.
현대카드는 대중이 저마다의 방식과 관점으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한다. 라이브러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디지털 플랫폼 DIVE를 통해 온 - 오프라인 활동을 연계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음악, 아트, 토크 등이 벌어지는 융복합 페스티벌 ‘다빈치 모텔’을 기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많은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적 의식과 감각을 깨워 창조적인 미래를 꿈꾸기를 희망한다.

사진 제공: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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