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11.16~2023.2.12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미술관옆집 제주, 가파도 AiR,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11월 16일 가파도에서 진행된 홍이현숙의 퍼포먼스. 작가는 해양 쓰레기 밑에서 죽음을 맞은 해양생물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사바하를 불러주었다

힘을 빼고, 숨을 쉬자고 제안하는 비엔날레
조현아 기자

2017년 1회 개최 후 2020년 5월 개막 예정이었던 제 2회 제주비엔날레(이하 비엔날레)는 코로나19 상황, 부실 행정, 참여 작가 교체를 요구했던 비엔날레 주관처의 강압적 태도에 작가와 기획자들이 항의하면서 무산됐다. 2021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프로젝트 제주〉를 열어 제 2회 비엔날레를 대체하면서 사건은 무마되는 듯 보였으나 전례없는 파행사태가 남긴 여파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는 3회이지만, 약 5년 만에 물리적으로 구현된 비엔날레로 준비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11월 15일 개막한 비엔날레는 전시 장소를 6곳으로 분산 기획해, 동서쪽에 남은 제주의 신화적 면모를 경험해볼 수 있는 통로를 전시 관람 동선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11월 15일 박남희 예술감독은 관광지가 아닌, 제주의 자연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지구족”이 인류세 이후를 살아갈 방안을 성찰하는 주제를 전하고자 골몰했다고 언급했다. 이번 비엔날레 제목에서, ‘움직이는 달’은 변화하는 시간과 자연의 속성을 암시하며, ‘다가서는 땅’은 인간이 자연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생멸을 겪는 종(種) 중의 하나임을 명시한다. 그러므로 이는 제주 곳곳을 직접 발로 디디며 숨쉬는 행위가 비엔날레의 주요한 감상법 중 하나임을 예시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자연 본래의 생김이 최대한 보존된 곳에서 호흡을 한번 가다듬는 계기로서, 첨예한 화제를 다루는 여타 국제 비엔날레와 달리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걸어보라고 등을 떠민다는 점에서 오히려 차별된다. 2017년 비엔날레의 주제가 〈투어리즘〉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제주’에서의 비엔날레는 부러 여유로움을 상기시키는 데에서 타 지역의 그것과는 비교되는 정체성을 구축해 갈 수도 있겠다.

빛과 시간 앞에서
이번 비엔날레의 소주제는 “밀밀, 면면, 유유, 미미” 총 4개로, 이는 허균의 《한정록》에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여기에 박 예술감독은 천자문에서 각 한자의 뜻을 참조해 부제를 덧붙였다. 그중 전시의 주제에 가장 가까운 소주제는 ‘밀밀 : 해와 달은 차고 기울어’와 ‘면면 :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이다. 두 주제는 빛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간과 순환하는 자연으로부터 탄생한 모든 종의 역사를 사유하게 한다. 이는 제주의 설문대할망 설화와 전시의 한 장소이기도 한 삼성혈에 얽힌 서사처럼 제주에 가득한 신화적 요소와도 맞물린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의 주전시관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이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빛과 시간에 중점을 두어 제작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미술관에 쏟아지는 햇빛을 이용한 김수자의 〈호흡〉, LED 전구가 달린 와이어가 움직이며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목진요의 〈양단의 별〉은 자연적인 빛과 인공적인 빛의 대비를 상기시킨다. 더불어 백광익의 〈오름 위에 부는 바람〉은 달과 제주의 식생이 수직으로 마주보고, 그 사이의 배경을 점묘로 채워 바람의 순환과 별의 이동을 상기시킨다. 또한 작가 12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제주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미디어 작품과 생태에 주목해온 기관의 성격에 맞추어 콰욜라, 강이연, 엘리자베스 앙과 레나 부이의 영상 및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형광빛으로 빛나는, 조선 시대 제주 여성 사업가의 심장을 거대한 형상으로 나타낸 윤석남의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2015)는 전시의 주제와 작품의 서사를 직관적으로 엮어낸다. 작품은 제주에 살았던 실제 인물의 이름과 생을 호명하여 역사를 거슬러 한 인간의 업적과 감상자의 눈이 서로를 마주하게 한다.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전시
여섯 장소를 전시장으로 사용한 점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지역의 유휴공간과 예술공간을 하나로 잇겠다는 포부는 미술관 밖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 감상자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지만, 모든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의 밀도가 비등하게 느껴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도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위성전시관 중 하나인 미술관옆집 제주에서는 공생의 가치와 공동의 경험에 대해 탐색해온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안거리와 밖거리, 귤창고 등으로 이루어진 제주 전통 가옥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생활하며 이를 전시 공간이자 환대의 공간으로 삼아 작업 〈무제 2022(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를 선보였다. 작품의 제목은 시에서 발췌한 문구인 동시에 강력한 표어이자 행동 지침이 된다. 작가의 요청에 따라 공간 운영자는 퇴비를 만들고, 난로 앞에서 그린 커리와 직접 빚은 제주막걸리를 관람자에게 나누어준다.
더불어 이번 비엔날레는 가파도 AiR와, 장소 사용뿐 아니라 작가 발굴의 측면에서 긴밀하게 협업했다. 영화와 프레스코화를 제작하는 아그네스 갈리오토와 영상 및 설치작업을 해온 앤디 휴즈는 가파도 AiR 레지던시에서 활동한 작가들로, 가파도에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 작품을 설치했다. 특히 아그네스 갈리오토는 쓰레기로 뒤덮였던 폐가의 다섯 개 방에 프레스코화 〈초록 동굴〉을 그려 가파도에 서식했던,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모습을 담아냈다. 가파도 AiR 공간에는 구성과 해체, 그리고 재구축의 과정에 천착해온 심승욱의 조각이 군데군데 놓였다. 초산비닐수지와 우레탄 등의 산업 재료로 제작된 조각은 검게 타오른 숯 같은 외형으로 그 물질적 유래에 대한 착각을 일으킨다.
마지막 장소인 삼성혈에서는 박지혜의 영상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연작이 상영된다. 삼성혈의 신화적인 서사가 보존되어 있는 지세를 렌즈로 훑으며, 작가는 작금의 ‘관광지’ 제주가 본래 지니고 있던 자연적인 영험함을 상기시킨다. 이같이 마지막 전시의 장소는 작품들과 함께 감상자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과거를 면밀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숨쉬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삶의 생리임을 효과적으로 부연한다.
하지만 이번 비엔날레는 자체적인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다, 제주의 지형과 특성에 의존하며 기후변화와 지속되는 전쟁에 반해 공생을 모색하는 현재의 국제적 화두를 논제로 삼은 다수의 국제 기획전과 큰 차이가 없어 창조적 담론을 만드는 기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더불어 올해 3월부터 작가 섭외를 시작, 약 8개월간의 짧은 기간 동안 작가와 기획자가 시각을 교류하고 이를 전시에 구현하는 것은 무리였다는 비판과 함께 현장에서는 비엔날레 주최 측의 졸속한 태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잇따랐다.

심승욱〈구축 혹은 해체 -  환영의 틈 02〉 초산비닐수지, 스프러스구조목, 발포우레탄 280×190×160cm 2022
아그네스 갈리오토 〈초록 동굴〉 가파도의 폐가에 프레스코화 2022

윤석남〈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혼합재료 300×200(Ø)cm 2015 제주현대미술관 설치 광경

왼쪽 목진요 〈양단의 별〉(사진 앞) 철제 프레임, 알루미늄 레일, LED 전구, 스테핑 모터, 파워, PC, 스테레오 사운드 350×350×50cm 2022
오른쪽 위 자디에 사(Zadie Xa)〈지구 생물과 공상가를 위한 달의 시학〉 조각, 조명, 사운드 등 가변설치 2022 제주도립미술관 설치 광경
가운데 김기대 〈바실리카〉농업용 건축 자재 700×2,000×850cm 2022
아래 신예선 〈움직이는 정원〉명주실 가변크기 2022 삼성혈 설치 광경

리크릿 티라바니자 〈무제 2022(검은 퇴비에 굴복하라)〉 혼합매체, 퍼포먼스 가변크기 미술관옆집 제주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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