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어떤 협업인가?


글: 이대형 | 〈CONNECT, BTS〉 아트디렉터

Antony Gormley 〈NEW YORK CLEARING〉 너비 25.4mm, 총 길이 18km의 알루미늄선과 철 이음소켓 2020 사진: 이대형

Antony Gormley 〈NEW YORK CLEARING〉 너비 25.4mm, 총 길이 18km의 알루미늄선과 철 이음소켓 2020 사진: 이대형

우리는 스스로 가진 능력 밖에 있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협업을 한다. 또한 새로운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협업을 한다. 그래서 그 결과물은 새로워야 하고, 특히 예술에서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문화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매뉴얼이 없는 예술에서의 협업은 그래서 어렵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개념은,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지금 당장 어떤 움직임을 취해야 하는지 여러 단서를 남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으로 보이는 움직임. 그러나 결국 모든 움직임은 그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차이에 의해서 특정된다. 다시 말해 반복이 아닌 차이를 통해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야 비로소 새로운 움직임, 새로운 발자취를 역사에 남길 수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파도와 수영선수 사이의 관계로 환원해 보면, 차이와 반복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시대가치를 읽어내고, 때론 저항하고, 때론 개척해야 하는 예술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복이 가져다주는 인지효과와 차이가 만들어내는 오리지널리티 사이에서, 깊은 다이빙이 가져다는 주는 풍경과 수면에 떠 있어서 얻을 수 있는 풍경 사이에서, 큰 해류에 대한 이해와 지류에 대한 이해 사이에서,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할 때와 파도를 거슬러 저항해야 하는 순간 사이에서, 때론 근육을 이완시키고, 때론 긴장시키며, 생존을 향한 움직임은 매 순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만한 특수성과 차이성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의미있는 반복과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준이 고정된 톱니바퀴 같다면 쉽게 낡고 오작동 할 것이다. 120년 역사 동안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담론을 주도해온 베니스 비엔날레가 늙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2년마다 ‘차이’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2013) – 오쿠이 엔위저(2015) – 크리스틴 마셀(2017) – 랄프 루고프(2019) 등 지난 4회 동안의 기획방향을 보면 마치 푸코의 진자운동처럼 2년마다 주제, 표현방식, 참여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전년도와 차이두기,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이같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푸코의 진자운동’을 일종의 방법론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더 큰 의미에서 시대의 가치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미술을 넘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기술 등 인접한 학문과 장르가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보다 거대하고 다층적인 맥락의 흐름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도식화하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x축과 y축, 즉 ‘트랜스내셔널’ 관점과 ‘트랜스제너레이셔널’ 관점이 어떻게 교차되며 한 개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지배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20세기가 국경을 경계로 벌어지는 ‘트랜스내셔널’ 관점으로 서술되었다면, 디지털 초연결사회에 진입한 21세기에는 정보기술 활용능력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트랜스제너레이셔널’ 관점이 세대 간 세계관을 지배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로 인해 물리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타인과의 소통은 가능하지만, 바로 이웃, 심지어 가족 내에서의 소통 단절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런던 - 베를린 - 서울 - 부에노스아이레스 - 뉴욕 등 5개 도시 22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CONNECT, BTS〉 역시 시대가치를 진단하고, 그 속에서 어떤 협업의 가치를 이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한 글로벌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이다. 이들 개성 강한 작가들의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무와 숲의 관계처럼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 개별 예술작품과 그 작품이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 될 수 있을지 등의 관점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전체를 보면서도 세부 디테일을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장르와 산업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공통분모를 현재의 시점에서 찾아서는 좋은 예술적 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것보다는 어떤 지향점을 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방법론을 공유할 수 있는가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시대가치를 읽어내고 그것의 대안, 그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가치, 연결해야 하는 가치를 표면으로 드러낼 수 있는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핵심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100%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