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ONAL NEWS

부산 (2)

위 김민정 〈우두커니 홀로〉 캔버스에 유채 80.3×116.8cm 2014 아래 이동근 〈 untitled 150 〉

부산

사라져 가는 도시의 그림자
〈사진과 회화의 만남 -집을 만나다〉 누리봄 아트스페이스 5.11~6.1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아파트가 도시의 풍경을 화려하게 바꾸고 있지만, 그 이면에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던 도시와 집들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에 남게 될까? 이동근(사진) 김민정(회화)은 각각 ‘산복도로의 좌천아파트’와 ‘주상복합 아파트’를 주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발되고 사라져가는 도시의 그림자들을 포착했다.
부산은 지형적으로 산이 많고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 주거 형태가 매우 다양한 도시다. 그래서 ‘산복도로’는 부산에서 매우 익숙한 단어다. ‘산복도로’라고 하면 본디 사람과 차의 왕래를 위해 땅 위에 만들어진 길을 뜻하기에, ‘산복도로’란 산 위에 만들어진 길 외에 다른 뜻은 없다. 하지만 부산 사람에게는 사전적인 뜻외에도 정서적 기억을 포함한다. ‘산복도로’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부산 사람의 삶의 애환과 애증이 몸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향의 원형 같은 곳이다.
이동근은 그 ‘산복도로’ 한켠에서 오래된 세월을 지켜온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인 좌천아파트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새로운 주거형태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지금은 그립고 생경한 초창기 아파트의 모습을 담아냈다. 불시에 다가온 낯설음은 곧 기원에 대한 기억의 회로를 작동시킨다. 검붉은 고무 물통, 파란 슬리퍼, 창문 틈의 장독, 나무선반에 올려진 양은냄비.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손때 묻은 가재며 기물들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전해준다. 사진이 공간과 시간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며 도구들은 경험과 기억의 집합체이다.
이동근이 오래된 아파트 안의 손때 묻은 도구들과 흔적들을 포착하여 도시의 기억을 떠올렸다면 김민정은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형태성과 변모하는 속도에 질문을 던진다. 도시적 삶에 공허하기까지 한 개인의 심리를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 현장에 담아 회화작업으로 표현했다. 해운대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끊임없이 공사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의 건설현장 모습을 안개 속에 가려있는 바벨탑처럼 희뿌연 바탕에 무심하게 그려냈다. ‘산복도로’의 좌천아파트와 해운대 신도시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각기 다른 이미지로써 이렇듯 각자에게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는 2014년에 개관한 누리봄 아트스페이스의 도시풍경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민정, 이동근의 〈집을 만나다〉는 5월 11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되며 다음 프로젝트 전시는 〈길 위에서 서다〉라는 주제로 이인미 정지영의 2인전이 6월 6일까지 이어진다.
김은경 예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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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

박주애 〈메아리〉 캔버스에 아크릴, 수채화91×116.8cm 2014

제주

제주를 담아내는 젊은 방식
〈청춘을 달리다〉 제주도립미술관 5.3~7.3

핑크빛 벚꽃이 지고 난 뒤, 온통 연두색으로 뒤덮인 5월의 제주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느라 분주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5월 3일부터 7월 3일까지 제주지역 청년작가들을 선별해 〈청춘을 달리다〉를 개최한다.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된 본 전시에는 김수연, 박주애, 오민수, 오상열 등 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모두 제주의 풍광이나 일상의 이야기를 평면회화로 구현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박주애는 장지와 캔버스를 넘나들며 아크릴과 수채물감을 혼용해 작업한다. 얇은 선을 사용한 세부적인 묘사에 능하다. 시선을 끄는 사물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구도를 끌어낸다. 어딘가에 고정된 안정적이고 익숙한 풍경을 담는 것이 아니라, 화면 안에서 리드미컬하게 흩어지거나 모인 사물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식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풍경에서 일부를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닌, 프레임 안에 사물들을 끌어다 놓는 방식의 접근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제주 어딘가에서 본 듯한 돌담, 배, 가옥, 나무 같은 익숙하고 오래된 풍경이 그의 화면에서는 신선하고 현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수연은 부둣가처럼 제주적인 풍경을 색면으로 나눠 에나멜로 채색한다. 에나멜이라는 질료가 가진 인공성에 제주 풍경이 지닌 서정성이 결합되면서 차가운 둣 따뜻한 화면이 만들어졌다. 붓질의 흔적 없이 면들로 나눠진 사물과 풍경을 채색해 나가며, 작가는 본인의 감정을 더한 기억을 재생시키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들을 회화로 옮기며 사진이 찍힌 당시 기억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과정이다.
오민수는 〈산수유람〉 시리즈를 통해 제주의 자연을 그린다. 한지에 수묵화로 표현되는 풍경화가 청년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에 결이 안 맞아 보일 법도 하다. 잘 정제되고 다소간 추상화된 화면은 옆 공간의 다른 작품들과 무리없이 어울린다. 여유를 주는 제주 자연의 넉넉한 풍경을 넓은 시각으로 2미터, 혹은 6미터 이상의 큰 화면에 펼쳐놓았기 때문일까. 오민수의 화면이 제주를 넓게 조망한다면, 다른 3명의 작가는 그 품에서 좁게 관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오민수의 화면에서부터 점점 줌인 해가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오민수 다음으로는 오상열이 놓여야 한다. 여러 명의 인간 군상을 그리되, 이목구비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묘사하는 화면은 원근법과 배경이 무시된 상태라 사람들이 하나의 벽지 패턴처럼 보인다. 같은 세대, 같은 지역에서 풍경과 문화를 공유한 작가들이지만 각자가 걸어오며 선택한 길에 따라 표현 언어와 재료, 소재가 다르다. 그렇게 세분화되고 발전해가며 그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시각을 구축하는지를 확인하게끔 하는 청년 그룹전은 그 이유만으로도 매해 거듭해서 마련돼야만 한다.
이나연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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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

< CHOI, SANG-HM전 > 전시장 전경

대구

한 중견화가의 귀환
〈CHOI, SANG-HM전〉 yfo갤러리 5.4~20

yfo갤러리에서 열린 〈CHOI, SANG-HM전〉은 참여한 작가와 기획한 화랑 양쪽 모두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전시이다. 한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최근에 다시 자신의 미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한 작가가 관록있는 화랑과 모처럼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양화가 최상흠은 1980년대에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해 온 중견작가로서, 지난해 <강정-대구현대미술제>, ‘스페이스 바’ 등에서 벌어진 단체전에 참가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봉산문화회관 개인전에 이어, 이번 개인전을 신작만으로 준비했다. 그의 작업은 색의 중첩 효과를 보여주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두고 그 면 위에 물감을 비롯한 여러 성분을 차례대로 착색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벽에 걸리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놓인 작업과 더불어, 갤러리 바닥 가운데에 뉘어진 두 점의 작품이 그의 작업 과정을 가늠하게 한다. 백색 캔버스 위에 차례대로 쌓아 올려진 물감 성분은 캔버스 옆면을 타고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하다. 혼합재료의 점도 차이에 따라 어떤 작품에서는 옆으로 흐른 안료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시간과 노력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시각적 포인트가 된다. 여러가지 색이 덧칠된 층 위에는 레진과 같은 산업 재료가 두꺼운 피막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처리는 완성된 작품이 지나칠 정도로 반짝이는 산란 효과를 꾀함과 동시에 그 속에 품은 색들의 깊이를 풍부하게 해준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yfo갤러리의 신용덕 디렉터의 제안에 따라 두 개의 평면작품을 가로 혹은 세로로 포개어 붙인 배치가 돋보였다. 이러한 배열은 각각의 그림이 그 빛과 색을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회화 전시의 한 가지 표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미술가들의 모임인 ‘그룹 6,7’의 일원이기도 한 최상흠은 활동 이력으로 볼 때 다작보다는 과작 쪽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작가는 최근 들어서 특유의 조형 감각을 작품으로 구체화할 여건을 갖추고 다시 한 번 화단의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는 ‘그룹 6,7’에 느슨하게 몸담고 있는 작가들(금륜, 김문석, 김현석, 박두영, 한용채, Jade Calix)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라갤러리,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 바, 그리고 yfo갤러리에서 연달아 열리고 있는 이들의 전시는 젊은 미술가들과 원로 작가군 사이에 위치한 중견작가들의 층이 얇아진 상황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 작가들이 한자리에서 혹은 개별 활동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은 대구 미술계에 불어 닥친 또 다른 활력이다.
윤규홍 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