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제367호

특집

광복 70주년, 한국미술 70년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본격적으로 국가체제를 수립했으나 시간에 맞서야 했다. 국가는 물론 사람이 모였던 사회 각계의 모든 분야가 그러했다. 그 과정은 말 그대로 ‘굴곡(屈曲)’이었다. 때론 꺾이고 때론 굽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흐름은 지금으로 이어졌다.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간미술》이 바라보는 우리 미술 70년은 단절의 역사가 아닌 연속성을 갖고 흘러왔다. 그래서 10년 전 광복 60주년의 성대한 기억을 호출했다. 당시 주요한 정치·사회적 사건을 기준으로 구획한 6마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동친 미술판을 정리했던 필자들이 다시 이번 기획에 참여, 1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에 따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물론 그 이후 미술계의 10년은 사안별로 정리했다. 또한 미술판과 우리 사회가 별개로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연보와 차트를 실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도 소개한다. 광복 이후 우리 현대미술사를 정리한 대전시립미술관의 <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전>(5.23~8.23)과 분단현실에 초점을 맞춘 <북한 프로젝트전>(7.21~9.29)이 그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7.28~10.11)에 대한 프리뷰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광복 70주년은 말 그대로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변화라는 말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며, 우리 미술도 이에 따라 새로운 양상을 선보였다. 그 흐름을 짚어가며 지금의 나, 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자.

편집실에서 62

모니터 광장 64

열혈독자·도움주신 분 66

칼럼 68
포스트 뮤지엄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김규항

강수미 공론장 670
세대 특정적 미술? 오늘의 미술 | 강수미

사이트 앤 이슈 72
<헨릭 빕스코프展>‘아티스트’로서,‘패션 디자이너’로서 | 황석권

핫 아트 스페이스 74

특집 광복 70주년,한국미술 70년 80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시대 미술의 제도적 변천 |문혜진
“이젠 우리가 알아서 뜰거야!” |노형석
RE_1990년대와 한국현대미술의 조변석개 |임근준 AKA 이정우
‘모더니즘’과‘리얼리즘’미술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대립의 시기 |오세권
역동의 70년,‘역동’의 1970년대 |박계리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 좌절되는 우리미술의 정체성 |박영택
분열, 잃어버린 기회 |조은정

스페셜 아티스트 108
선무당대적 존재로서의 선무, 혹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김동일

화제의 전시 116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展> 세밀의 미, 한국미술의 또 다른 아름다움 |김홍남

전시와 테마 130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展> 수집과 창작의 관계 |박영택

전시초점 136
<천개의 플라토 공항展> 이 자리는 당신 것일 수 없다 |임승현

뉴 페이스 140
김원정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있으랴 |황석권
박지희 비가시적 유기체의 생존실험 |임승현
조혜진 한국식 열대의 풍경|이슬비

크리틱 146
뉴 스킨·옅은 공기 속으로·도윤희·임자혁·김미경·김실비·장파

리뷰 154

프리뷰 156

전시표 160

강성원의 인문학미술觀 8 164
초현실과 삶의 리얼리티 |강성원

아트북 170

아트저널 172

독자선물 178

편집후기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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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62

Monitor’s Letters 64

Devoted Reader·Contributors 66

Column 68
Korean version of Post-Museum?|Kim Kyuhang

Kang Sumi’s Column 670
Art Today|Kang Sumi

Sight & Issue 72
<Henrik Vibskov: Fabricate>|Hwang Sukkwon

Hot Art Space 74

SPECIAL FEATURE 80
70th Anniversary of Koreaʼ|
Moon Hyejin, Roh Hyungsuk, Lim Geunjun, Oh Sekwon, Park Carey, Park Youngtaek, Cho Eunjung

Special Artist 108
Sun Mu |Kim Dongil

Exhibition Topic 116
<Exquisite and Precious: The Splendor of Korean Art> |Kim Hongnam

Exhibition & Theme 130
<Kim Chonghak Collection : A Key to Creation> |Park Youngtaek

Exhibition Focus 136
<Aéroport Mille Plateaux> |Lim Seunghyun

New Face 140
Kim Wonjung | Hwang Sukkwon
Park Jeehee |Lim Seunghyun
Jo Hyejin |Lee Seulbi

Critic 146

Review 154

Preview 156

Exhibition guide 160

Kang Sungweon’s Art & Humanities 8 164
Surrealism and the Reality of Life |Kang Sungweon

art book 170

art journal 172

readers gift 178

postscript 180

2015년 7월 제366호

특집 78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형민 관장이 직무정지에 이어 불명예 퇴진한 이후 8개월을 끌어오던 신임관장 선임은 문체부의 최종 후부 부적격 판정으로 결국 재공모로 가닥을 잡았다. 유일한 국립미술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이 오랜 기간 공석인 사태에 미술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미술계에 대한 모욕이라는 성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지금을 위기로 규정하고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미술계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우선 설문을 통해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각을 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짚어본다. 그리고 문제 원인 해소를 전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신임 관장의 요건, 즉 디렉터십에 대한 박신의 경희대 교수의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시대에 걸맞은 미션과 비전을 가진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신임 관장이 갖추어야 요소에 대해 일갈한다. 이번 인사 파문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알려진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의 글도 싣는다. 이와 더불어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이 보내온 제언도 읽어보시길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시대 한국미술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다만 그 실체가 작금의 관장 인사 사태로 드러났다는 점이 유감이다. 선장 없이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정상 항로로 진입하도록 유능한 선장 선임을 촉구한다.

편집실에서48

모니터 광장 50

칼럼52
계층화에 감싸인‘이우환 공간’|강선학

강수미 공론장 556
말의 사용, 미술비평의 문제|강수미

핫 피플58
다니엘 뷔렝 무한의 영역으로‘현장’을 바꾸다  | 임승현

사이트 앤 이슈 60
<디올 정신展> 크리스챤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문을 열다 | 임승현

핫 아트 스페이스 64

사이트 앤 이슈 70
<조선백자展> 관념과 수사를 지운 조선백자|박영택

이태호 교수의 진경산수화 톺아보기 2  72
서울이 아름답다 겸재 정선, 비에 젖은 여름 인왕산에 취하다 | 이태호

특집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78
국립현대미술관 재정비, 디렉터십에 달렸다 | 박신의
누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 이명옥
많은 사람들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 최효준

화제의 전시98
<잉카 쇼니바레 MBE : 찬란한 정원으로展>예술은 마술이자 연금술이다 | 이필

전시초점104
<존 발데사리展>현대사회의 단편성들, 그 넌센스의 조합자 | 진휘연

스페셜 아티스트108
김윤신맑은 영혼이 엮은 생명의 얼개 | 최태만

작가 리뷰114
김대수 그 때를 아시나요?|최건수
방정아 납작한 세계에 납작하게 엎드리기 | 조선령
백정기 의사(擬似, 意思)적인 공감의 미술 | 민병직

월드 리포트 126
휘트니미술관 재개관 허드슨 강변에 세워진 미국 현대미술의 메카 | 서상숙
폰다지오네 프라다 전복적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예술실험, 날개를 달다 | 이영란
<제12회 아바나비엔날레>정치와 미술이 교차하는 풍경|이준희

크리틱140
윤석남·필름 몽타주·시징맨·함경아·유승호·이예승·신건우·몽중애상-삼색도·눈에는 이, 이에는 눈

리뷰 150

프리뷰 152

전시표 156

김신의 디자인에세이 11 160
전문성의 평준화|김신

아트북162

아트저널 164

독자선물 170

편집후기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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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66 / 2015.07

Editor’s Letter 48

Monitor’s Letters 50

Column52
Space Lee Ufan|Kang Sunhack

Kang Sumi’s Column 5 Art Criticism 56

Hot People 58
Daniel Buren|Lim Seunghyun

Sight & Issue 60
<Esprit Dior>|Lim Seunghyun

Hot Art Space 64

Sight & Issue 70
<Joseon White Porcelain>|Park Youngtaik

Lee Taeho’s Jinkyungsansu sketch 2 72
Seoul is Beautiful_Mt.Inwang|Lee Taeho

SPECIAL FEATURE 78
Drift of MMCA|Park Shineui, Lee Myeongok, Choi Hyojoon

Exhibition Topic 98
<Yinka Shonibare MBE: Wildness into a Garden> | Lee Phil

Exhibition Focus 104
<John Baldessari>|Jin Whuiyeon

Special Artist 108
Kim Yunshin|Choi Taeman

Artist Review 114
Kim Daesoo | Choi Gunsoo
Bang Jeongah|Cho Seonryeong
Beak Jungki|Min Byungjik

World Report 126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Suh Sangsuk
Fondazione Prada|Lee Younglan
<the 12th Havana Biennale>|Lee Junhee

Critic140

Review 150

Preview 152

Exhibition guide 156

Kim Shin’s Design Essay 11 160

art book 162

art journal 164

readers gift 170

postscript 172

2015년 6월 제365호

특집 90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5월 9일 개막, 자르디니공원과 아르세날레, 그리고 베니스 도시 곳곳을 수놓으며 11월 22일까지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창립 120주년을 맞는 경사도 겹쳤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아 한국과도 인연 깊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그가 앞세운 전시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다. 역사적인 프로젝트와 반역사적인 프로젝트를 동시에 탐색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본전시에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국가관 전시에는 89개국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작가와 미술계 인사의 참여가 눈에 띈다. 본전시에는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세 명의 작가가 초청되었으며, 특히 임흥순은 <위로공단>을 출품, 한국작가로서는 사상 최초로 본전시 ‘은사자상’을 수상해 주목 받았다. 국가관에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참여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을 선보였는데, 한국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건물의 내외관을 이용, 역사성과 장소성 모두를 살리는 작업을 구현했다. 또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자 현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은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병행전시(Collateral Events)로 열린 <단색화전> <Human Nature and Society(山水)전> <Jump into the Unknown전> <Frontiers Reimagined전>을 비롯, <개인적인 구축물전>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전> <채집된 풍경전> 등 한국작가가 참여한 전시도 다수 개막했다.
《월간미술》은 베니스를 직접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생생한 전시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과거들 | 유진상
베니스의 한국 작가들 | 임종은
베니스에서 만난 단색화의 현재적 의미 | 이용우

편집실에서68

모니터 광장 70

열혈독자・ 72

칼럼74
총체적 난국|하계훈

핫 피플76
임흥순 작가가 보내는 존경과 위로|황석권
심화진“인문과 예술의 만남, 미술관이 된 캠퍼스”|임승현

사이트 앤 이슈 80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 황제의 덕을 기억하라|조은정

핫 아트 스페이스 84

특집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90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과거들 | 유진상
베니스의 한국 작가들|임종은
베니스에서 만난 단색화의 현재적 의미 | 이용우

테마 기획136
2015년 한국미술의 새로운 경향!|함영준

전시와 테마146
<허영만 – 창작의 비밀展> 모든 것이 만화의 소재다 | 허영만 이동기

월드 리포트 154
<다카마쓰 지로展> 다카마쓰 지로의 현재|마정연

크리틱160
서용선·데니스 오펜하임·Magnum’s First·남화연·윤정원·안경수·백남준의<에튀드 1>

리뷰 168

프리뷰 170

전시표 174

김신의 디자인에세이 10 178
분 바르는 여자들이 학교 많이 오면 안 된다고? | 김신

강성원의 인문학미술관 7 180
예술이 일상의 진실을 말할 때 | 강성원

아트북186

아트저널 188

독자선물 194

편집후기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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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65 / 2015.06

Editor’s Letter 68

Monitor’s Letters 70

Devoted Reader / Contributors 72

Column 74
Omnishambles|Ha Kyehoon

Hot People 76
Im Heungsoon|Hwang Sukkwon
Shim Hwajin|Lim Seunghyun

Sight & Issue 80
<Mural Painting of Daejojeon Hall in Changdeokgung Palace>|Cho Eunjung

Hot Art Space 84

SPECIAL FEATURE 90
the 56th Venice Biennale|Yoo Jinsang, Lim Jongeun, Lee Yongwoo

Theme Feature 136
Look at Korean art 2015 in a New Way|Hahm Youngjune

Exhibition Theme 146
<Hur Youngman-The Secret of Creations>|Hur Youngman, Lee Dongi

World Report 154
<Takamatsu Jiro>|Ma Jungyeon

Critic 160

Review 168

Preview 170

Exhibition guide 174

Kim Shin’s Design Essay 10 178

Kang Sungweon’s Art & Humanities 7 180

art book 186

art journal 188

readers gift 194

postscript 196

2015년 5월 제364호

특집 100

시선의 정치, 동물원을 다시본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이지만 자신을 동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동물원을 만들고 그 속에 동물을 넣어 인간과 구분해왔다. 동물원은 오랫동안 야생 동물을 길들이고 전시함으로써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공간으로 기능해왔다.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박람회장 또는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이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 야만에 해당한다. 근대 동물원은 서구의 발명품이며, 동물원의 역사에는 제국주의 시선이 배어 있다. 한국 최초의 동물원은 일제강점기 설립된 창경원 동물원이다. 왕실 건물 20여 채가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생기면서 박물관도 함께 들어섰다. 동물원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을 유리 진열대 안에 넣고, 작품에 손댈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최근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관람하는 유희적인 공간에서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방향을 수정하며 동물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진화하고 있다.《 월간미술》은 근대적 시각장치이자 제도적인 공간으로서 동물원과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주목함으로써 수집, 분류, 보존, 전시와 교육의 기능에 내재된 인간 중심주의적 시선을 반성하며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 그 시각적 ‘애완(愛玩)’의 역사와 이별하기 | 박소현
탈식민주의적 시선에 대한 고민 | 정현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는 진짜 이유? | 최종욱

편집실에서 74

모니터 광장 76

열혈독자?도움주신 분 78

칼럼 80
이제 청년들이 미술계에 대해 말한다 | 송윤지
강수미의 공론장 4 인격화 또는 사물화, 미술제도의 문제 | 강수미

핫 피플 84
박양우 대한민국 대표 비엔날레의 재도약을 위해 | 임승현 박진현

핫 아트 스페이스 88

이태호 교수의 진경산수화 톺아보기 1 94
서울이 아름답다_필운대 언덕의 봄꽃 잔치 | 이태호

특집 동물원을 다시 본다 100
미술관 옆 동물원, 그 시각적‘애완(愛玩)’의 역사와 이별하기 | 박소현
탈식민주의적 시선에 대한 고민 | 정현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는 진짜 이유? | 최종욱

스페셜 아티스트 118
남춘모 제3의‘질(質)’을 향하여 | 윤진섭

작가 리뷰 124
김남표 손끝 풍경 | 최은경
표영실 살갗, 연약한 너무나 연약한 | 고충환

전시 초점 132
<윤형근展>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그림 | 류병학
윤형근 미술에 구현된 담(淡)의 정신 | 홍가이

화제의 전시 140
<마크 로스코展> 추상의 의미와 유효성 | 정무정

월드 리포트 146
<잠 못 이루는 현대인: 역사와 현대미술로 본 침대展> 불면증에 걸린 현대미술 | 박진아
<아름다운 강박: 수집가로서의 예술가展> 예술가의 호기심 캐비닛을 열다 | 지가은

뉴 페이스 2015 158
유목연 유케아식 예술·생존·게임 가이드 | 이슬비
이정형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임승현
오완석 공간을 만들다, 사유하다, 그리고 살피다 | 황석권

크리틱 164
한반도 오감도·최헌기·잭슨홍·김윤호·경현수·이은·박대조·김수자·막후극

리뷰 174

프리뷰 176

전시표 182

아트북 186

아트저널 188

독자선물 194

편집후기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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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64 / 2015.05

Editor’s Letter 74

Monitor’s Letters 76

Devoted Reader / Contributors 78

Column 80
The Statement of Young Artist | Song Yunji
Kang Sumi’s Column 4 Personalization, Materialization, the Problem of Art System | Kang Sumi

Hot People 84
Park Yangwoo | Lim Seunghyun, Park Jinhyun

Hot Art Space 88
Lee Taeho’s Jinkyungsansu sketch 1 94
Seoul is Beautiful_Pilundae | Lee Taeho

SPECIAL FEATURE 100
New Perspective of Zoo | Park Sohyun, Jung Hyun, Choi Jongwook

Special Artist 118
Nam Tchunmo | Yoon Jinsub

Artist Review 124
Kim Nampyo | Choi Eunkyung
Pyo Yongsil | Kho Chungwhan

Exhibition Focus 132
<Yun Hyoung-Keun> | Ryu Byunghak, Kai Hong

Exhibition Topic 140
<Mark Rothko> | Chung Moojeong

World Report 146
<Sleepless-The Bed in History and Contemporary Art> | Park Jina
<Magnificent Obsessions Artist as Collector> | Ji Gaeun

New Face 2015 158
Yoo Mokyon | Lee Seulbi
Lee Chunghyung | Lim Seunghyun
Oh Wanseok | Hwang Sukkwon

Critic 164

Review 174

Preview 176

Exhibition guide 182

art book 186

art journal 188

readers gift 194

postscript 196

2015년 4월 363호

특집 84

우리 옛 그림, 민화의 재발견

민화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우리 그림이다.
말 그대로 ‘백성(民)의 회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 계층이 향유하던 문화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녀노소에게 사랑 받는 하나의 미술장르로 우뚝 섰다. 현재 민화 인구는 10만 명에 육박한다고 추산되며 그 증가세가 꺽일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 소장된 우리의 궁중회화와 민화를 3권의 책으로 묶은《한국의 채색화》가 발간되었다. 일부 중년여성사이의 여가활동 대상으로 여겨지던 민화가 이제 주류 미술계의 문을 당당히 노크 하고 있다. 바야흐로 민화의 예술성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민화의 매력은 무엇일까.《월간미술》은 근래의 민화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 민화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민화라는 이름”에서부터 접근을 시도한다. 다채로운 고전 민화를 살펴보며 ‘민화’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이미지와 저급한 예술이라는 편견을 깨고자 한다. 또한 ‘민화’를 불러싼 논쟁의 쟁점을 짚어봄으로써 세계미술 속에서 우리 민화가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엿본다. 오색찬란한 민화 속 색의 향연이 자연의 색을 입은 봄꽃과 함께 당신의 눈과 흥을 자극할 것이다.

행복을 담은 색깔 그림 길상화(吉祥畵) 다시 보기 | 윤범모
민화야말로 진정한 우리그림이다 | 정병모
민화(民畵), 발화(發花)를 시작하다 | 임승현

편집실에서 64

모니터 광장 66

열혈독자·도움주신 분 68

칼럼 70
시각예술 전문지의 디지털화, 그 명과 암 | 최원호
강수미의 공론장 3 새로운 관계미학, 미술정치학의 문제 | 강수미

핫 피플 74
표미선 작가에게는 창작의 동기부여를, 후원자에게는 자부심을 | 황석권
김달진 걸어다니는 미술자료 전문가 홍지동에 정착하다 | 임승현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미디어아티스트 3인방 | 황석권

사이트 앤 이슈  78
<아트 바젤 홍콩 2015> 아트바젤홍콩의 변화와 한국미술의 봄 | 서진수

핫 아트 스페이스 80

특집  우리 옛 그림, 민화의 재발견  84
행복을 담은 색깔 그림 길상화(吉祥畵) 다시 보기 | 윤범모
민화야말로 진정한 우리그림이다 | 정병모
민화(民畵), 발화(發花)하다 | 임승현

스페셜 아티스트 106
김주호 말하는 조각들 | 성완경

작가 리뷰 114
김종인 살아 있는 도자기, 생각하는 작가 | 조혜영
박미화 물질에 새긴 마음의 기록 | 박영택

화제의 전시 126
<그림/그림자_오늘의 회화展> 다수의 중심이 넘실대는 그림 | 이선영

전시 초점 134
<빌 비올라展> 비디오가 사라진 상징과 은유에 대한 경계 | 김지훈
비디오 작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 김백균

전시와 테마 140
<정종미 개인전: 산수&여성을 위한 진혼> 마이너의 삶을 위무하다 | 정종미, 조은정

월드 토픽 146
<뷔욕展> 미술관이 호출한 음악가는 무엇을 보여주었나 | 서상숙

월드 리포트 152
홍콩 아트신 미술본색 in 홍콩 | 임승현

뉴 페이스 2015 156
박아람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한 측량 | 황석권
호상근 혼자만 보기 아까운 풍경 | 이슬비
지희킴 마스커레이드는 끝났다 | 임승현

김신의 디자인 에세이 9 162
창조 적당히 합시다 | 김신

크리틱 164
양혜규·미묘한 삼각관계·두렵지만 황홀한·아무도 모른다·이슬기·KDK·임소담·이윤엽·윤종숙

리뷰 174

프리뷰 176

전시표 180

강성원의 인문학미술觀 6 184
예술이 일상의 진실을 말할 때 | 강성원

아트북 188

아트저널 190

독자선물 194

편집후기 196

[separator][/separator]

Vol. 363 / 2015.04

Editor’s Letter 64

Monitor’s Letters 66

Devoted Reader / Contributors 68

Column 70
The Digitization of Art Magazine | Choi Wonho
Kang Sumi’s Column 3  New Relational Aesthetic, Art of Political Purposes | Kang Sumi

Hot People 74
Pyo Misum | Hwang Sukkwon
Kim Daljin | Lim Seunghyun
Kim Ayoung, Nam Hwayeon, Im Heungsoon | Hwang Sukkwon

Sight & Issue 78
<Art Basel Hong Kong 2015> | So Jinsu

Hot Art Space 80

SPECIAL FEATURE 84
New Perspective of Minhwa | Youn Bummo, Chung Byungmo, Lim Seunghyun

Special Artist 106
Kim Jooho | Sung Wankyung

Artist Review 114
Kim Jongin | Cho Hyeyoung
Park Mihwa | Park Youngtaik

Exhibition Topic 126
<Tracing Shadows> | Lee Sunyoung

Exhibition Focus 134
<Bill Viola> | Kim Jihoon, Kim Baekkyun

Exhibition & theme 140
<Jung Jongmee> | Jung Jongmee, Cho Eunjung

World Topic 146
<Bjork> | Suh Sangsuk

World Report 152
Hongkong, the Global Art Hub | Lim Seunghyun

New Face 2015 156
Parc Rahm | Hwang Sukkwon
Ho Sangun | Lee Seulbi
Jihee Kim | Lim Seunghyun

Kim Shin’s Design Essay 9 162

Critic 164

Review 174

Preview 176

Exhibition guide 180

Kang Sungweon’s Art & Humanities 6 184
System of everyday life | Kang Sungweon

art book 188

art journal 190

readers gift 194

postscript 196

EDITOR'S LETTER

전화위복의 기회로

지난해 10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불미스런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무려 8개월 이상 관장 공석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래도록 진행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당연히 (누가 됐던지) 절차에 따라 후임 관장이 부임하면 상처를 봉합하고 미술관을 조속히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했을 테니. 하지만 관장 임용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계의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체부는 6개월 걸린다던 공모기간에서 두 달이나 더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9일이 돼서야, “그 동안 진행되어 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채용절차와 관련하여,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공모 등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조 제5항)」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선발시험위원회가 추천한 채용 후보자 중에서 적격자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채용 후보자 중에서 채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한편, 문체부는 현재 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기획운영단장을 중심으로 미술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라는 짤막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며칠 후엔 문체부장관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밝힘으로써 미술계를 다시 한 번 혼돈에 빠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보낸다. 사실 우리는 서너 달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내용과 포맷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신임 관장 인터뷰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우리 편집부는 ‘침몰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인양하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가제(假題)로 정하고 앙케트를 실시했다. 결국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언수위를 낮추기는 했지만, 그 만큼 이번 사안을 아주 심각한 상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나온 김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침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문지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도 여러 통 받았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애꿎게 《월간미술》이 동네북 신세가 된 것 같았다. “멀쩡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왜 침몰했다고 단정하느냐” 또는 “관장이 없어도 오히려 미술관이 예전보다 더 잘 돌아 가더라”는 반론부터 “설문 내용이 편파적이고, 뭔가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설문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돼느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쾌해서 답변을 거부한다”는 불평불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런 상황자체가 쪽팔리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반면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답변 회신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미술인의 관점이 극명하게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우리는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나 뾰족한 묘수를 내놓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뻔하고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이런 문제는 누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적어도 《월간미술》 독자라면, 어느 때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앞날을 예의주시 해야 할 것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COLUMN

계층화에 감싸인 ‘이우환 공간’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전위적 작품과 사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관주의와 표현의 독재를 당연시하는 서구작가들의 태도와 달리 이우환은 사물을 사물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그들과 변별되는 지점을 자신의 세계로 승화시킨 성과를 거두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고 사물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풍요롭게 만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경직된 감성과 사유를 넘어서서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이우환 작업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1967년의 <관계항>과 오늘 부산시립미술관 앞 잔디밭 이우환의 <관계항>. 그리고 ‘이우환 공간’에 놓인 설치작업과 평면작업들은 과연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우환 공간’ 개막 전후로 쏟아진 온갖 이론들과 상찬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질케 폰 베르스부르트 발라베’의 저서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의 결과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나 천착의 결과를 읽지 않았거나 이우환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1967년 이후 그의 작품에선 별다른 변화를 목격하기 힘들다. 그 후의 시리즈 형식 평면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변화 없음을 두고 뭐라 한다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잘라 말하거나 위의 책이라도 읽기를 요구할 것인가. 그러나 작품은 책을 읽고 연구한 후에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장대로 정말 있는 그대로를 그 순간에 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대로 보라는 지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하고 그 말이 가진 의미 안에서 작품을 보게 하려 한다. 말하자면 그의 반복을 정당화하고 반복에서 보이는 차이를 첨예화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개념을 이해시키려 한다.
‘있는 그대로’는 시간의 현재성, 현장이 가진 지금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읽는 중요 태도이고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 던진 의미이지만 이미 1967년에 있었던 일이며 그 이후 몇몇 작품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오늘, 여기서 그때의 작품을 재현하면서 지금의 작품이며 지금의 공간과 시간에서 경험하기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작품을 보고 경험하는 현재가 아니라 지나간 의미를 되새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 없는 것을 앞에 두고 변화를 읽어야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은 강제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이제 생경함과 전위성과 현재성을 잃었다. 반복의 지루함과 반복을 새로운 이해로 강요하는 억지만 남을 뿐, 새로움은 거기 없다. 어느 작가가 40여 년 전의 작품을 재연하면서 그것이 새로운 것이며 새롭게 읽히는 것이며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이미 그의 작품엔 권위에 기댄 요구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발언과 평가적 차원의 이론적 고찰이 그의 작품을 감싸고 있으면서 그의 작품을 보지 못하게, 읽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과 설명에 의해 이해될 뿐, 여기서 그의 작품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 없다. 그의 작품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있는 그대로’는 그의 작품을 자신 스스로 보기를 거부하며 이론적 배경으로 그의 40여 년간의 작품을 합리화하고 있다. 작품을 대하는 현재의 경험이라는 시간성의 문제는 이제 그를 다른 작가와 변별하기에 충분치 않다. 그것은 어느 작품에서나 가능한 일반적인 지각이론일 뿐이다.
재현의 대상을 벗어난 것이 그의 작품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복제하는 듯한 재연은 재현이 아닌 것일까. 그의 이론적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을 자신이 복제하는 것도 실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복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가 주장하듯 시간의 현재성의 경험으로 정당화된다. 이우환의 ‘반복에 대한 차이’의 옹호는 《이우환》을 쓴 ‘질케 폰 베르스부르트 발라베’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의 옹호는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향유할 만한 계층의 ‘이우환’ 상품화를 은폐하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일 뿐이다. 그의 작품이 던지는 의미가 상품화로 사물화되어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시대를 사물화하는 데 왜곡되게 방기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의미 생성의 자율성으로 혹은 자율적 의미존재로 보는 것은 작품을 정의하는 통상적 특징이다. 그러나 작품의 자율성은 근대의 산업화에 따른 대중화와 함께 일상성의 사물화와 작품의 사물화에 반항한 성과이다. 오늘날 미술작품에서 쉽게 목격하는 카툰, 삽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적 취향이나 그런 특징이 강한 작품들은 형식과 내용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아트페어, 미술관의 팔리는 그림을 부추기는 기획전을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일상과 미세담론의 전면 등장이 거대담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반작용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근대에 대한 반작용의 하나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성향도 이제 일상의 미세한 반응까지 상품화하는 세태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때로 이 시대 작품이 가지는 이런 특징에 위험스러운 세태를 역설적으로 읽거나 형상화하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그대로 증명하는 것일까. 그것은 억측일까.
그런 안타까운 희망도 숨기기 쉽지 않다. 예술의 자율성은 근대의 예술적 성과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충실한 표현의 성과이다. 그것이 근대기 삶의 일상성에 대응하는 성과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작품에서 읽히는 자율성의 포기와 퇴각은 예술의 사회적 임무를 해체하거나 상업성에 감염된 탓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인기 작가들의 팔리는 작품은 어떤 전위성, 어떤 성찰도 없지만 마치 한 시대의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자율성을 덧붙여 소비하고 있다. 자율성은 이제 우리 미술계의 허위의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우환의 자기복제는 자기유일성뿐 아니라 오늘의 예술 자체의 유일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던한 지금에도 그가 현대적 작가일까. 그러나 40여 년간 같은 작품을 두고 현재성, 유일성의 부정이라는 화두는 허황되다. 자기복제와 자기인용으로 계속되는 이우환의 작품은 이제 자신의 자리에 대해 물어야 한다. 유수의 외국 공간에서 전시를 했다는 경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기회가 그의 총체적 성과에 대한 평가에 다르지 않지만 여전히 그가 하고 있는 반복은 지루하다. 그 지루함을 정당화하려 하지 말고 생경한 있음, 있는 그대로의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우환의 예술적 이념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그의 반복되는 특징은 작품의 자율성을 확보하기보다 세상의 흐름을 타고 상품으로서 가치를 확보하려는 것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 있다. 자율성에 대해 우리 사회 엘리트층의 소유욕과 그들의 소장품 가치의 영구화 혹은 보증으로서 ‘아름다운 가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예술품에 대한 통속적 의식일 뿐이다. 예술은 이제 삶의 성찰이 아니라 상류층의 취향을 마치 대중이 지향할 가치인 양 기만하는 허위의식의 하부구조가 되고 만다. 소위 인기 작가들의 자기복제에 대한 정당화 주장은, 특히 이우환의 경우, 그 역시 자신의 세계를 정치, 경제 산업화의 하부 사물로 취급하는, 스스로 그것에 복속시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작품을 상품으로 소비해야 하는 화랑이나 투기 대상이 된 작품을 소장한 재력가나 엘리트층의 요구는 상품으로서 가치의 문제로 당면한 그것의 정당화를 위한 논리이지 작품의미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복제는 이미 어떤 전위성도 가지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에서 차이 운운하는 것은 발표 당시에 가질 수 있는 태도나 의지이지 그것이 몇 십 년간 복제되고 고가의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면 당연히 작가는 이런 흐름에 반응해야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건물, ‘이우환 공간’은 작가의 설계와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여 만든 것이며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일이다. 작가의 기질과 완벽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없어진 중세의 교회나 절을 보는 듯하고 철저하게 현실과 분리된 공간을 꿈꾸는 특정장소로 독립되어 있다. 그 안의 공간 역시 성스러운 어떤 것을 보듯, 작품은 진열되었고, 자기연출이 과도한 공간은 작품을 만나기보다 우선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타자와 만나려 한 것이었을까.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차이와 반복에서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가 서구 현대미술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려 한 지점일까. ‘이우환 공간’과 작품은 철저한 분리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경계인으로서 그는 자신을 어느 곳에도 정착시키지 못하고 끝내 자신의 공간을 타자와 분리하고 자신의 작품을 유폐시키고 미술계를 계층화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 소수는 이 사회의 상층부로서 갖춘 사람들이며 그들만이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며 미술의 이해와 감상과 향유는 고급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 같다. 그의 공간이 주는 위화감은 그동안 미술관 내에 설립을 반대했던 부산 작가들이 했던 점이다. 미술관 부지 내에 건물을 세우고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런 우려가 상쇄되거나 은폐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논리는 노예상태에서라도 먹고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자기기만이자 허위의식과 다르지 않다.
미술관 부지 안의 독립된 건물, 그의 명성과 초빙에 값하는 대접이라 하겠지만 현대미술에서 그가 추구하는 ‘있는 그대로’의 의미망을 벗어나는 짓이다. 예술과 일상의 분리, 삶과 사유의 분리를 거부하는 것들이 현대미술이고 전위였으며 많은 작가와 이론가들이 그것에 주목하고 온전한 삶과 예술의 관계를 담론화하려 했다. “이 세대의 비평가들은 규범과 대서사의 개념, 그리고 근본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유일한 행위자로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해 비판”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이름을 단 건물은 이제 미술관 내의 모든 작품과 단절되고 그 자신만의 공간이 되어 타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고 있으며 그 분리는 작품 의미의 차이가 아니라 유명 작품과 아닌 것으로 속악하게 나눠지고 있을 뿐이다.
볼거리로 변한 이우환, 스펙터클의 한 지점이 된 부산시립미술관, 그것은 다른 말로 상품화된 이우환과 상품이 된 미술관이다. 삶의 구체적 장소인 부산이라는 지정학적 장소가, 사유의 가치를 위해 만든 미술관이 상품이 되어 진열된 셈이다. 상품은 사유가 아니라 소비이며 돈의 가치로 계량화된 사물이다. 세상의 많은 것이 상품으로 둔갑해서 대중적 호응과 이윤을 창출한다지만 미술관과 하나의 도시가 상품이 되는 사태에 대해서 왜 염려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작품을 가진 자들에게는 작품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겠지만 그의 의미는 이제 장사치들의 볼거리를 전시하는 진열대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며 그 보증으로 미술관이 버티고 선 꼴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볼거리는 곧 남루해지고 새롭지 않은 새로운 상품으로 대체된다는 인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언론조차 분리되는 미술계, 사회계층의 고착화 징후에 대해 지적하려 하지 않는다. 유명 인사에 경도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이 시대 미술계의 극단적 분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의 이론도 그의 이야기도 이제 반복에 의해 통속화되고 독립된 건물처럼 그의 작품과 공간은 우리 사회 상층부의 취향을 보여주는 표지가 되고 있다. 대중적 볼거리로 만든 듯 하지만 그것은 시혜와 특권의식이자 미술계 내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인식이란 다름 아니라 삶의 인식, 그들이 가진 이름으로 세상을 보는 인식일 뿐이다. 권력과 인식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보는 이의 방법의 고급화란 그저, 허위의식일 뿐이다. 사원이 된 ‘이우환 공간’은 분리된 욕망에서 예술의 계층화를 부르는 통속화에 다르지 않다. 나는 이것을 이우환의 포퓰리즘이라 생각한다. “포퓰리즘 미술은 단순함을 특징으로 광범위한 대중에게 다가서며, 브랜드화한 이미지를 통해 상업대중문화와 적극 관계를 맺는다”는 그 이상이 아니다.
강선학 미술비평

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5

말의 사용, 미술비평의 문제

여전히 글로벌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이들이 국제미술계 (international art scene)라는 실체는 모호하지만 경쟁 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미술 장(場)을 가로질러 다니고 있다. 또 여전히 세계 곳곳에 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전시(말 그대로 ‘펼쳐 보이기’) 이벤트가 만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체감컨대 2000년대 초반을 ‘큐레이터의 황금시대’로 변조한 전시기획 열풍은 한풀 꺾였고, 아트 비즈니스 광풍이 ‘미다스의 손’처럼 모든 것을 도금할 기세로 미술 구석구석까지 덮쳐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파악하기 쉽지는 않지만, 우리 곁에서 솔솔 다른 국면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바로 한국 미술계에 덧씌워진 ‘비평의 위기’라는 지겹고 둔한 수사학을 뚫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미술비평’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육성책이 새 빛의 파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하나금융그룹과 맺은 업무협약(MOU)에 따라 ‘세마(SeMA)-하나 평론상’을 제정해 공모에 들어갔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미술비평 활성화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안다. 개인이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기성세대 비평가로서 다음 세대 작가 및 비평가와 함께 하고자 ‘2015 비평 페스티벌’을 기획해 6월 중순 실행시켰다. 이 사례들은 형식과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지금 여기 미술 장에서 비평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그것의 독자적 역량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점에서는 달라지는 미술패러다임의 시그널일 수 있다.
동시에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여기 미술계에서 비평의 모색은 현실사회의 문제적 징후들과 결부시켜 생각할 만한 테제로 부상한다. 비유하자면,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피부가 벗겨진 채 서로 살을 부비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사회생활에서 겪는 고통이 커지고, 그 민감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말들이 횡행하고, 실제로 지극히 평범(하다고)한 사람이 분노조절에 실패해 이유 없고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 반대 현상도 있다.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마구 쓰는 존댓말,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공허한 직위들, 시도 때도 없고 의미도 없이 내뱉는 과잉 언사가 넘쳐나는데, 그 비약적인 말들은 결국 우리의 삶이 얼마나 혹독하고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한지 보여준다. 그만큼 우리가 날것의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세상에 대한 큰 공포로 소극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는 지난 시기 정체되고 외면 받았던 비평이 최근 관심사로 부상한 맥락을 이와 결부시켜 생각해본다. 요컨대 핏빛 살벌한 날것의 세상과 피부가 벗겨진 우리 사이에 ‘말’이라는 거즈, 중간재, 매체가 다시금 관건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 말을 어떤 시각, 판단, 해석, 서술, 의미화, 발화의 테크네(Techne) — 이것이 단순한 비난이나 비판과는 전혀 다른 비평의 몫인데– 를 따라 사용해야 세계가, 우리 자신이, 사물이, 예술이, 현상이 온전하고 온건하게 상대와 맞닿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현실에서 말의 힘은 약만이 아니라 독(毒)을 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때 청년세대담론의 젊은 기수라 불린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년논객 한윤형의 잉여탐구생활》에 넋 놓고 감정이입하는 순간, 당신은 논객도 독자도 뭣도 아닌 그냥 ‘잉여’다. 또 예컨대 당신이 세간에 유행어로 떠돌고, 정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한 청년세대의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현상을 ‘내 얘기’라고 동조하는 순간, 당신은 그냥 삼포를 내면화한 세대원 중 하나에 불과해질 위험이 있다. 애초 그 말들은 비판의 생산성, 판단의 시의성, 변화의 잠재성을 내적 힘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이 특정 발화자/주체의 이름 아래서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해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익명은 부지불식간에 잉여의 기만적 위안에 젖어 퇴행해간다. 과거에는 목에 걸린 떡처럼 갑갑하게 짓누르던 잉여적 삶이, TV 예능프로그램처럼 재미있는 미션이 주어지고 독특한 취향과 기질을 구사할 수 있는 생활 형태로 여겨지며 사람을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또 공동체의 지속, 사회 안전망, 보편적 복지에 관한 국가 책무와 공적체계의 기능을 두고 국민으로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놓친 채, 운명론으로까지 비약한 사회의 부정적 현상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동일시하게 된다. 내가 연애를 못하는 것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아서이고, 내가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없는 것은 내 형편상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서라는 식으로 말이다. 마치 그런 일들이 국가와 사회의 공적시스템이 책임지고 지켜낼 공공의 몫이 아니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운인 양 말이다. 그럴 때 말의 힘, 이를테면 비판의 자생력과 변화를 향한 인식의 활동성은 현실 순응적 기만으로, 집단적 자포자기의 마취로 전도되며 한껏 독을 피워 올린다. 그리고 그 독이 점진적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과 세상을 찌른다.
말이 무서운 것은 이런 점에서다. 즉 말은 현상을 설명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더 나은 세계 또는 온당한 삶의 구조 짓기와 실체 채우기를 위해 우리가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말은 아주 간단히 우리를 염세주의 혹은 자기파괴 역장으로 밀어 넣는다. 또 쉽게 스스로를 현상 판단과 문제 제기의 주체 대신 연민의 대상이나 피동성의 자리로 몰아넣는다. 지금 여기 한국 미술계가 새삼 미술비평을 중요한 실천 영역으로 재인식하고, 그 영역을 새로운 기능과 방법론으로 충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즉 이렇게 말의 힘이 약과 독이라는 양면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미술비평의 근본적 자리와 역할, 나아가 비평의 미래지향적 용도와 실천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청년/젊은/신진미술가들이 기성미술세대의 예술적, 미학적 담론 및 사회 일반의 뒤섞인 담론으로부터 건강함은 취하고 독소는 제거하는 가장 탁월하고 유효한 방법으로 ‘비평’을 추천한다. 단지 미술 창작의 후위(rear-garde)로서 미술 이론적 글쓰기 혹은 개별 작품의 해석과 해설로서 미학적 언술을 넘어, 세대와 집단의 인식을 가늠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근간의 활동으로서 말이다. 직업으로서 비평가와 전문 영역으로서 비평에 한정하지 않고, 준거집단의 정신구조와 행동양식을 뒷받침하는 원천으로서 ‘말의 사용’을 연구하고 다양화하고 깊이 있게 하는 일 말이다.
그런데 미술비평을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말의 차원과 범주로, 지각의 발화와 영향의 청취가 뒤얽혀 돌아가는 힘의 정치학이자 ‘말을 빼앗긴 익명’이 ‘판단력의 주체’가 되는 존재론적 모험임을 이해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목소리와 화법과 음색과 언어습관을 근거로 서로를 구분하고,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다. 그 구분 가능성과 특정성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고, 개인으로서 다른 무엇과도 나눌 수 없게 한다. 그럼 미술비평은 어떤가? 구어든 문어든 그것의 말은 각자의 개인성을 가지며, 서로 통약 불가능한 요소들로 나뉘는가? 우리는 그만큼 미술의 장에서 말을, 담화를, 언어를, 문체를 발전시켜왔는가? 어린 화가의 말, 늙은 큐레이터의 화법, 기성 비평가의 문체, 40대 미술이론교수의 논리, 신입 화랑 직원의 대사, 노회한 컬렉터의 이야기 등등으로 분화되고 다양화하는 말들의 세계가 있는가 말이다.
고백건대, ‘2015 비평 페스티벌’을 열기 전까지 내게는 한국 미술계 청년세대와 관련한 편견이 있었다. 나의 선배들이 자주 말했고, 그 와중에 내게도 자연스러워진 편견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티도 안 나는데 힘들기만 한 걸 못 참고,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미술비평 같은 건 하려 하지 않는다. 다들 화려한 전시기획을 하고 싶어 하지’가 그것이다. 이 편견 때문에 젊은 미술세대에게는 비평 욕망이 별로 또는 거의 없으리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비평 페스티벌’의 와중에 알게 된 현실은 청년미술세대 중에 꽤 많은 이가 미술비평을 원하고, 실제로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힘듦이 아니라 ‘해도 무의미해지는 것’이고, 그들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스타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비평을 업으로 삼아 밥 먹고사는 평범한 현실’이다. 이는 바우만(Z. Bauman)이 짚은 바, “사회적 추방”1을 공공연하게 상연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TV 쇼 프로그램을 싫든 좋든 내면화한 동시대 젊은이들의 공통된 삶의 생리이자 욕망의 규모로 보인다. 즉 거의 모든 삶의 국면이 오디션 경쟁처럼 절박하고, 한 스테이지를 거칠 때마다 반드시 탈락자나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세상 메커니즘에 익숙해진 세대의 그것인 것이다. 누군가는 그로부터 무슨 힘 있고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미술비평이 나오겠는가를 물을지 모른다. 또 무슨 주체적이고, 인식과 감각 지각의 차원에서 고도로 분할된 말의 사용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그런 못미더움과 의구심은 접어둬도 좋겠다. 내가 접한 젊은 미술세대의 비평은 대체로 논리 구성과 분석력과 성실성 면에서 꽤나 학술적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그들의 언어 사용은 장르, 매체, 동서양, 비평대상 등에서 상당히 유연하고 열려 있었다. 그 학술적 면모와 오픈마인드, 그리고 지적 활동의 유연성은 단언컨대 그 세대가 처한 현실 환경이 그/녀에게 준 비평적 능력이고, 그/녀가 그 현실의 가두리에서 절박하게 조합해낸 말의 유형이다. 바흐친(M. Bakhtin)의 언어이론을 따라 말하자면, 지금 여기 젊은 미술세대의 비평 언어는 “인간 활동의 여러 영역에 관계하는 참여자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구어적・문어적) 발화의 형식”2 중 하나로 기성 미술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 형식을 이룬 8할이 다소 씁쓸하게도 생존경쟁의 현실이고, 평범한 삶을 향한 작은 꿈이라도.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1 지그문트 바우만, 함규진 역, 《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2009, p. 56.
2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ㆍ박종소 역, 《말의 미학》, 길, 2006, p. 349.

사진 미술평론가 강수미가 총괄기획한 <2015비평페스티벌>이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렸다. 첫째날 비평워크숍에 참여한 강수미

HOT PEOPLE Daniel Buren

다니엘뷔랑 인물 (1)

 철, 프렉시글라스, 접착제 바른 하얀비닐, 거울 217.5×217.5cm 2015

< The grid with 49 squares in frame, work in situ, Seoul NO.6 > 철, 프렉시글라스, 접착제 바른 하얀비닐, 거울 217.5×217.5cm 2015

무한의 영역으로 ‘현장’을 바꾸다

‘인 시튜(in situ)’, 8.7cm로 정확히 구획된 흰색과 원색의 줄무늬. 이는 다니엘 뷔렝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연관 검색어’다. 그의 약력을 보면 거주 및 작업 장소는 늘 ‘in situ’, 즉 현장이다.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늘 ‘현장’에 있는 그가 개인전을 위해 서울의 ‘현장’을 찾았다.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VARIATIONS, 공간의 미학전〉(6.6~8.8)을 위해 내한한 다니엘 뷔렝을 만났다.

작업에서 공간이 지니는 의미가 중요하다. 이번 전시에서 공간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점은 무엇인가?
313아트 프로젝트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면 유리가 있는 갤러리 앞쪽은 보도와 가까이 붙어 있다. 반면 갤러리의 내부는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에 가깝다. 보통 작가들이 내·외부 공간을 철저히 구분해서 막는다든지 공간 내부만을 활용하는 데 비해, 나는 닫힌 내부공간을 막기보다 밖과의 소통을 위해 오히려 구멍을 뚫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313아트프로젝트는 건물 입구의 전면유리가 이미 그 구멍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문에 있는 ‘인 시튜(in situ)’ 작업이 중요하다. 거울을 사용해서 길과 갤러리 안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내부 작업도 거울을 많이 사용해 야외의 길이 내부에 비춰지도록 표현했다. 외부의 길이 갤러리 내부에 있다고 보았다.

‘인 시튜’는 전시기간이 지나면 해체되어 사라지는 현장 작업이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만으로 작업을 보는 관객이 늘었다. 이러한 관람 자세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부터 사진으로 작품을 보는 풍조는 있었다. 여행 할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사진을 통해 작품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잘못됐다. 사진 속 작품과 실제 작품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사진 이미지로만 보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수단 이상은 될 수 없다.

관람객이 확장된 것은 사실 아닌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실제로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확산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다. 이미지로만 작품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덧붙여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전파되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예전에는 나의 작품을 보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작품을 카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 지 1분만 지나도 영감을 얻거나 혹은 카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 작업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카피했다는 점이다.

큐레이팅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작가와 큐레이터 사이의 개연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개인전의 경우는 예술가가 기획부터 작품 제작 전체에 관여하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필요 없다. 그러나 그룹전은 다양한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조율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1970년에 쓴 에세이 〈Fonction du Musée〉에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

줄무늬에서 흰색과 함께 사용되는 원색을 전시하는 나라의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다고 들었다. 색 배열의 의미가 궁금하다.
50년간 항상 색과 함께 작업했다. 예술가는 ‘비주얼 아티스트’다. 색이야말로 예술가가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색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추함 혹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색은 유일하게 말로써 개념 설명이 불가한 구성요소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사과색과 자두색 사이 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설명할수록 꼬인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유를 담고 있는 것 또한 색이다. 어떤 작품이더라도 색은 그 자체만으로 살아있다. 나의 경우, 하나의 색을 사용할 때는 이전부터 어떤 사용체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형태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 색들이 새로운 하모니를 구성한다. 작품에 사용하는 색을 전시하는 나라 언어의 알파벳 순으로 나열함으로써 나의 취향을 철저히 배제한다. 같은 색을 쓰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오더를 사용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달된다. 색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이야기하고 나는 그것을 펼쳐놓을 뿐이다. 나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색의 순서를 골라달라고 할 때도 있다.

당신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거부로 해석된다. 당신의 작업이 꾸준히 변화해왔다고 하지만 큰 그림 안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생각이 유지되고 있는것 아닌가?
큰 틀에서 본다면 맞다. 작업을 하면서 더 나은 해결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이어가고 있다. 50년간 작업하면서 나는 특정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 나만의 방식을 고집해왔다. 작업이 객관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객관적 지표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작업이 미술사적 연대기 안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99%의 작가가 근대미술이 추구해온 ‘자율성’을 지닌 작업을 한다. 어떤 화이트큐브에 걸어도 무관한 작업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율성’을 가진 작품은 폭력적일 수 있다. 미술이 ‘자율성’을 갖지 않는 이상 판매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당연한 순리이다. 나는 1% 속에서 작업한다. 물론 나 또한 작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공간과 함께 존재했던 작품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감각은 더욱 무겁다. “한때의 그것이었던” 콘텍스트가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임승현 기자

Daniel Buren 다니엘 뷔렝 프랑스 설치미술가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중반 반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05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10여 차례 베니스 비엔날레 및 카셀 도쿠멘타에 참가했다. 2012년 파리 그랑팔레 <모뉴멘타전> 2014년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Like Child’s Play, Works On-site> 등의 전시를 이어오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6월 10일부터 8월 8일까지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개인전을 이어간다.

SIGHT & ISSUE

위 박선기 〈조합체-출현 1506〉(가운데)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 나일론 줄 500×500×500cm 2015 아래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아뜰리에 (1948)를 재현한 모습

위 박선기 〈조합체-출현 1506〉(가운데)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 나일론 줄 500×500×500cm 2015
아래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아뜰리에 (1948)를 재현한 모습

〈Esprit Dior-디올 정신展〉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6.20~8.25

크리스찬 디올의 꾸뛰르 하우스, 문을 열다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Esprit Dior-디올 정신전>(6.20~ 8.25)이 주는 첫인상이다. 이 전시는 상하이 도쿄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를 찾았다. 이번 전시의 수석 큐레이터인 플로렌스 뮐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이 패션 문화 건축 등 창작활동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이번 전시는 크리스티앙 디오르부터 이브 생 로랑, 장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까지 크리스찬 디올의 역대 디렉터들의 의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작가 6인(김동유 김혜련 박기원 박선기 서도호 이불)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이 주를 이루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상하이와 도쿄에서 열린 전시와 비교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전시는 ‘파리’ ‘디올 아틀리에’ ‘베르사유: 트리아농’ 등 10개의 소주제로 구성했다. 디올의 화려한 의상과 그와 어울리는 작품의 조화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했다. 참여 작가 선정에 대해 뮐러는 “한국 미술 전반에서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를 골고루 배치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하며 작가들이 “디올 세계의 은밀한 내용을 잘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그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찾은 미술과 패션의 접점을 강조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서도호의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은 디올의 꾸뒤르 하우스 탄생의 상징적 공간을 투명한 천을 통해 파사드를 넘어 집 내부까지 투과할 수 있게 대규모로 설치했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패션계의 모습과 유사하다. 패션 공방도 마치 연금술의 과정처럼 복잡하고 은밀하다. 작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초상화를 선보인 김동유는 전체 수작업으로 정말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긴 제작기간과 장인정신을 요한다는 것은 오뜨꾸뛰르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오뜨꾸뛰르 전시는 시각미술의 옷을 덧입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브랜드 홍보를 교묘히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파인아트를 어설프게 혹은 끼워 맞추기식으로 더하면서 전시내용과 메시지가 모호해지기 쉽다. 그러나 <Esprit Dior-디올 정신전>은 국내에서 최근 잇따라 열린 패션전시 중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디올’이 지닌 오뜨꾸뛰르의 화려함과 그와 어울리는 작가의 신작을 함께 배치하고 패션 전시만이 구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디스플레이를 더했다.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하며 상업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디올 가든’ 섹션의 경우, 김혜련의 12폭 회화인 <열두장미·꽃들에게 비밀을>로 벽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디올의 덩굴 장식 무도회 드레스, 은방울꽃 자수로 장식한 헤어네트 머리장식 등을 중앙에 세웠다. 여기에 천장과 바닥에 하늘빛 화면을 배치해 정원의 느낌을 살렸다. 비록 일차원적인 디스플레이일 수 있지만, 시각적 유흥은 탁월했다. 또 디올의 상징적인 패션으로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한 ‘뉴룩’을 입은 마네킹을 시대순으로 일렬 배치하며 그 맞은편에 전면 유리를 두어 마치 런웨이 양쪽에서 모델이 걷는 듯 보이도록 한 ‘디올 얼루어’ 섹션의 디스플레이는 ‘쇼’적으로도, ‘뉴룩’의 역사를 전달하는 데도 탁월하다.
물론 동시대 작가들과의 협업 외에 ‘디올의 정신’을 드러내는 일반적 구성 방정식도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당대 교우했던 작가들과 함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한 ‘디올과 예술가 친구들’ 섹션은 예술과의 패션의 고리를 드러낸다. 물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경우는 미술계와 보다 직접적인 체험적 경험이 있다. 그는 패션계 입문 전, 1928~1934년까지 2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 ‘올랑 프티트’라는 발레작품의 디자인, 세트, 작곡까지 직접 했을 만큼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뮐러는 이점에 주목했다. 디오르는 피카소처럼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주로 젊은 작가들을 도왔다.
“당시 젊은 작가였던 자코메티의 개인전, 주목받지 못하던 달리의 3번째 개인전이 디오르가 운영하던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곳에서 판매한 자코메티의 <Le Table>을 현재 퐁피두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예술적 감각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 큐레이팅의 중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각 주제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공간 활용 방법도 눈에 띈다. DDP는 이미 다수의 패션 전시가 열린 공간이다. 자칫 유사한 디스플레이로 비슷한 시각적 패턴을 제공하기 쉽다. 둥근 형태의 건물이라 회화작품은 가벽을 설치해 디스플레이할 수밖에 없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체가 조망되는 등 전시장으로서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뮐러는 “천장이 높고 매우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점이 오히려 좋았다. 공간이 넓다보니 마네킹을 세웠을 때 원근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서 웅장한 연출이 가능했다. 패션 전시에서 마네킹은 하나의 조각이다. 넓은 공간은 공간감까지 느낄 수 있으므로 오히려 전시를 꾸리는 입장에서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웹사이트(espritdior.com)를 통해 사전 예약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또한 전시와 동시에 크리스찬 디올은 크리스챤 드 포잠박이 설계하고, 피터 마리노가 인테리어를 맡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하우스 오브 디올’을 서울 강남구 삼성로에 오픈했다.
임승현 기자

디올 (22)

창립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찬 디올 디자이너의 대표적 의상을 입은 마네킹이 일렬로 서있다.

디올 (3)

서도호 〈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올〉 혼합재료 2015

디올 (9)

플라워 드레스 뒤로 김혜련의 <열두 장미·꽃들에게 비밀을〉 (캔버스에 유채 225×100cm 2015) 12점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