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ART SPACE

프리다칼로_소마 (16)

프리다 칼로_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소마미술관 6.6~9.4

멕시코의 대표적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소개하는 전시다. 작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 즉 디에고 리베라와 당대 멕시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여 그녀를 역사와 주변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또한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 <프리다>, 다큐멘터리 영상, 그녀의 장신구, 의상 등을 함께 선보여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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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개인전
박여숙화랑 5.22~6.21

<Somebody>로 명명된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예의 몸을 둘러싼 작업과 맥락이 연결되어 있다. 다만 문신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전 작업에 비해 분리된 몸의 형상의 집합이 생성하는 또 다른 형태에 천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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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 (2)

이환권 라선영 2인전
카이스갤러리 5.28~6.26

형태를 길게 늘여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이환권과 A4용지 크기의 인간 군상을 제작한 라선영이 <조각과 사람사이, 조각, 사람이 되다, 사람, 조각이 되다전>을 열었다. 두 작가는 모두 일상의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지만 내용과 표현에서 확연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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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훈_사비나 (2)

성동훈 개인전
사비나미술관 6.12~7.12

철을 주된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Fake of the Kingdom>. 신작 20점을 소개하면서 철과 함께 슬러지(용광로 찌꺼기)와 청화백자를 융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 특유의 양괴감과 새롭게 도입한 재료가 어우러져 이전 작업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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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원_오뉴월 (3)

홍진훤 개인전
스페이스 오뉴월 5.29~6.20

<Last Nights>로 명명된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에 드러난 고속도로 휴게소 풍경은 낮과 밤이 사뭇 다른데 그 모습이 작가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조명이 꺼지고 사람이 사라진 휴게소의 민낯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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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준

박민준 개인전
두가헌갤러리 5.27~6.28

총 28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라포르 서커스>로 명명됐다. 7년간 뉴욕에서 거주해온 작가가 귀국 후 갖는 첫 개인전. ‘라포르’는 사람 사이의 긴밀한 교감 혹은 상호신뢰감을 의미하는데 서커스 단원이 갖는 그것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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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세계 (3)

멘토링전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6.2~7.6

부산지역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고 작업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기획전시. 이들은 비평가, 전시기획자 등과 매칭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올해는 유은석, 윤주, 이선옥, 임현정, 정안용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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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2)

니나 카넬 개인전
아르코미술관 5.29~8.9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스웨덴 태생의 작가 니나 카넬이 아시아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전시명은 <Satin Ions>. 작가는 지하 매설 케이블 신작을 비롯, 찰나와 비가시적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 작품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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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철철_포스코 (4)

철이철철_사천왕상에서 로봇 태권브이까지
포스코미술관 5.27~7.7/7.17~8.13

포스코미술관 개관 20주년과 미술관 이전을 기념하는 전시로 서울과 포항에서 각각 열린다. 철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한 전시장에서 소개한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

SIGHT & ISSUE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조선백자〉

백자_이대박 (7)

관념과 수사를 지운 조선백자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5.27~2016.1.30

근래에 조선 백자와 관련된 전시를 여럿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청화백자전>와 호림박물관의 <백자호전>, 서울미술관의 <백자예찬전> 등이 그것이다. 이화여대박물관이 개관 8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조선백자전>(5.27~2016.1.30)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한 형태와 순백의 색감으로 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백자다. 또한 ‘관조’나 ‘고요’와 같은 키워드와 더불어 한국적인 미, 한국성에 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온 것도 백자였다. 그래서인지 백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그려졌다. 본래 백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실용적 차원의 물건이자 유교적 이념을 투여하는 상징적 매개이기도 했다.
그런데 1930년대 그 백자는 조선의 중요한 전통으로 불려나왔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몇몇 일본인의 심미감이 작동한 결과이다.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의 안목의 산물이었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백자는 조선의 의미 있는 미술품이자 전통이 된 것이다. 그러한 동양주의의 담론 속에서 김환기, 도상봉과 같은 작가들이 즐겨 그렸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몇몇 작가가 백자의 백색을 원용한 단색의 추상화를 그렸다. 오늘날도 여전히 백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줄을 짓고 있으며 대표적인 전통으로 호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전통이라고 여기는 백자를 둘러싼 표상과 개념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리라. 어떤 고정된 전통문화 원형론이나 본질론에서 벗어나서 ‘골동이 되어버린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주체가 경험하는 당대성으로 인해 가능하다. 그간 백자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나 과잉된 관념적인 수사는 백자와는 다소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서구현대미술과 전통을 결합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 아래 재단된 혐의도 있고 타자들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욕망으로 형성된 것이기도 했다. 한국미와 이의 현대화란 문제를 다분히 조선조 문인의 미적 취향, 백자 등으로만 제한해 소재주의화하거나 전통을 박제화 시키는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화여대박물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는 백자에 들러붙은 기존의 선입관이나 여러 수사를 지우고 오로지 백자 그 자체만을 차분히 감상하게 해준 전시다. 어떠한 수식도 없이 ‘조선백자’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선 전시공학적인 측면에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고 전시된 백자의 양과 수준이 일품이다. 시기별로, 종류별로 분류된 600여 점의 백자를 찬찬히 감상하게 해준 이번 전시는 백자만을 중심으로 꾸민 최대 규모의 전시로 기억될 것 같다. “500여 년간 조선이 추구했던 왕조의 이념과 예제 준행의 실천과정에서 만들고 진설했던 백자의 결백하고 견실한 격식과 그리고 상층부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애호하고 실용했던 풍부한 조형미를 다채롭게 펼쳐보이”고자 한 이 전시는 전시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조선시대 백자의 용도, 기형, 문양 등을 시기별로 되돌아보게 한다. 기존에 백자에 들러붙은 모든 수사와 욕망을 모두 지운 자리에서 오직 저 순연한 순백으로, 혹은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백색의 변주 앞에서, 기이한 기형의 오묘함 앞에서 말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백자철화운용문호(누끼요청)

<백자철화 운룡문 호> 높이 45.8cm 조선 17세기 (보물 제645호)

백자청화 국화문병

<백자청화 국화문 병> 높이 36.4cm 조선 19세기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형민 관장이 직무정지에 이어 불명예 퇴진한 이후 8개월을 끌어오던 신임관장 선임은 문체부의 최종 후부 부적격 판정으로 결국 재공모로 가닥을 잡았다. 유일한 국립미술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이 오랜 기간 공석인 사태에 미술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미술계에 대한 모욕이라는 성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지금을 위기로 규정하고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미술계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우선 설문을 통해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각을 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를 짚어본다. 그리고 문제 원인 해소를 전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신임 관장의 요건, 즉 디렉터십에 대한 박신의 경희대 교수의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시대에 걸맞은 미션과 비전을 가진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신임 관장이 갖추어야 요소에 대해 일갈한다. 이번 인사 파문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알려진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의 글도 싣는다. 이와 더불어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이 보내온 제언도 읽어보시길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시대 한국미술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다만 그 실체가 작금의 관장 인사 사태로 드러났다는 점이 유감이다. 선장 없이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정상 항로로 진입하도록 유능한 선장 선임을 촉구한다.

초유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사태,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건을 두고 미술계가 시끄럽다. 매끄럽지 못한 인사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미술계는 “미술계를 무시한 처사”라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미술계는 오늘의 파행은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책임운영기관 제도’ 도입 당시 이미 예고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로부터 서울관 건립, 그리고 최근 관장 재공모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주요 사건을 연보로 정리했다.

2006. 1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체제로 전환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 여부를 놓고 치열한 찬반 논의를 벌인 끝에 2006년 1월 1일자로 책임운영기관제를 도입했다. 책임운영기관 제도란 “정부가 수행하는 사무 중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쟁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무에 대하여 기관장에게 행정 및 재정상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운영 성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미술계 내부에서도 “기관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극대화된 수익성 추구로 인해 예술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선 바 있다.

2009. 1
국군 기무사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로 선정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에서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서울시내에 국립미술관을 조성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오랜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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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배순훈 제17대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선임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전문경영인이 관장에 선임되어 화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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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서울관 설계공모 당선작 발표

2010년 2월에 공모한 서울관 건축설계공모에서 민현준 홍익대 교수의 설계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설계도 (4)

2011. 6
서울관 기공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공식이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각계 인사 6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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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배순훈 관장 사퇴

임기를 3개월 남긴 배순훈 관장이 전격 사퇴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름을 ‘UUL’로 지은 것에 대해 질타하는 국회의원과 이에 답변하던 배 관장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고 이것이 사퇴를 촉발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2012. 1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정형민 교수 선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보존센터 건립 추진 발표

정형민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가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 정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여성 관장이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청주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활용, ‘국립미술품 수장·복원센터’(가칭)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정형민 2

UUL 국립현대미술관 UUL국립서울미술관 브랜딩

2012. 8
서울관 건축현장 화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건립현장 이미지1

2013. 5
국립현대미술관 신규통합 MI 발표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 청주관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한 새로운 통합 MI(Museum Identity) ‘MMCA’를 발표했다. ‘MMCA’는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의 이니셜 약자다.

2013. 1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개관전 <시대정신>, 학연 논란 및 출품작 철거 외압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 <시대정신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전시 출품 작가가 특정 학교 출신에 치우쳤으며 개관전에 걸맞은 전시 내용과 수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게다가 일부 작가의 작업이 전시 직전 외압에 의해 철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시대정신 (1)

2013. 12
한국미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규탄대회
성명 발표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TF팀 구성 발표

국립현대미술관은 12월 3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일각에서 일었던 개관전 작품에 대한 균형성 미흡과 과천관과 덕수궁관 등에 대한 배려 미흡 지적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기구를 구성하겠다”며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4. 10
정형민 관장 정직(직위해제)

10월 10일 감사원은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학예사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 지인 2명을 합격시켰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감사원은 정 관장에 대해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16일 정 관장에 대해 직위해제 조치했다.

2014. 11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 개막

2015. 1
관장 공모(~2.9) 원서 접수

‘관피아’ 논란으로 신설된 인사혁신처를 통해 신임 관장 공모를 실시했다. 총 1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 2
관장 선임을 둘러싸고 잡음

자칭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를 위한 범미술행동 300’은 관장으로 선임되지 말아야 할 10대 사양 인물을 발표했다. 또한 관장 공모에 지원한 이 중 정계 출신 인사가 포함되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으며 일부 후보자의 과거 이력과 로비 등이 입길에 올랐다.

2015. 3
최종후보 최효준 윤진섭으로 압축

2015. 6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 결정

P1070657문화체육관광부 6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공모 등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법적 근거로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조 제5항)을 들었다. 이에 다음 날 최종후보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서울시내 모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체부로부터 자진 사퇴를 종용받았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또한 그는 “인사혁신처의 심사를 적격으로 통과했음에도 문체부에서 이를 거부한 것은 하자가 없는 인사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전례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문체부 장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 “인사혁신처는 후보자를 추천하고, 적격자 여부는 주무부처에서 최종 결정한다”며 “문체부 임용심사위원회에서 문화예술계 의견,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당시의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적극적인 업무추진력, 창의성과 혁신적 마인드 등 변화와 진취성이 요구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재공모를 추진키로 의결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최 전 관장이 주장한 ‘사퇴 종용’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며, 사전통보 과정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발표될 경우 후보자가 명예 또는 경력 훼손을 걱정해 스스로 사퇴하는 방법이 이야기됐다”고 밝혔다. 이후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개방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정리・황석권 수석기자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재정비, 디렉터십에 달렸다

박신의 미술비평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을 기점으로 그 위상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서울관 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감을 기대 이상으로 올려놨다. 가장 큰 수확은 북촌이라는 위치에 따른 대중적 접근성에서 이루어낸 감동적인 변화다. 과천 시절을 생각한다면, 과연 대중의 머릿속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가 있었을까 싶지만, 서울관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니 말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파격적인 후원까지 생각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전에 없던 화려한 변신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성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여겨져 안타깝고 불안하다. 그런 인식은 변화에 값하는 우리 미술계의 내부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여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연유한다. 서울관이라는 존재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여러 가지면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정작 이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여 그렇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중적 시선만이 아니라 국제미술계의 시야에도 노출도가 높아졌다. 그에 상응하는 내부 역량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모처럼 얻어낸 행운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 아닌 염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디렉터십의 요구와 맥락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관 개관전 사태로 당시 정형민 관장이 직위 해제되면서 불명예 퇴진한 마당에, 미술계 전문인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적 요구와 당위성 때문에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이 필요한 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관장 선임이 마무리된 상태가 아니지만, 누가 선임되든지 디렉터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디렉터십이란 단적으로 말해 관장이 발휘하게 될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미술관 운영에서 관장의 역할과 그에 따른 조직 운영의 문화, 관리 의사소통 절차, 그리고 조직 내 역학관계를 헤아리는 일이다. 물론 리더십은 비단 리더만의 일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내에서도 각각의 업무에 따른 역할과 수행과정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봐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리더십을 말한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예술분야에서의 리더십은, 예술적 리더십(artistic leadership)의 영역으로서,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발휘된다.
무엇보다도 국립현대미술관에 요구되는 예술적 수월성은 전시 및 소장품 활동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현대미술의 경쟁력을 키우며 진흥을 꾀하기 위한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와 수준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경영 효율성은 서울관을 비롯하여 과천관, 덕수궁관, 그리고 2017년 개관 예정인 청주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 4관 체제와, 창작스튜디오와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등의 하부 관리시설을 보유하는 방대한 규모의 조직에 대한 합리적인 운영 및 경영 성과 관리 역량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우리에게 디렉터십을 이야기할 만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 답이 시원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관장을 보면 주로 미술사나 미술평론 분야 인물이 담당해왔다. 경영 역량보다는 전시기획 역량에 따른 개인적 성향을 드러냈고, 3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서 충분한 디렉터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중간에 배순훈 관장과 같이 기업 경영인 출신이 발탁된 바 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예술적 수월성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모두 성취할 만한 인물이 없었고, 그런 면모는 어떻게 보면 초기적 양상이라고 양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모든 역량을 갖춘 완벽한 디렉터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술계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헤아릴 수 있는 역량과, 조직 운영 훈련을 거친 경영 역량을 겸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시급한 사안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두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실제로 미술관 성과(관람객 수, 전시 개최횟수, 재정 효율성 등)도 본질적으로는 전시와 소장품, 연구기능의 수월성이 전제되는 것이어서, 현대미술의 수월성과 경영 성과가 분리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변화 주도의 리더십과 관리 능력의 배합
이상적인 디렉터십을 거론할 때 리더십과 관리(leadership and management)의 차이를 살피는 것은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관리란 제도와 규칙, 구조에 초점을 두고 통제와 지휘를 행함으로써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목표로 하는 경우다. 리더십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구도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변화와 혁신을 꾀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유형이다. 관리는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 미시적인 계획인 반면, 리더십은 거시적인 계획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따라서 관리는 ‘일’이나 ‘성과’를, 리더십은 ‘사람’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관리는 책임을 요구하지만, 리더십은 사람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더욱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관리적 기능보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십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션과 비전을 먼저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홈페이지에 미션과 비전은 제시돼 있지 않다. 대개 미술관은 대내외 환경이 바뀔 때마다 미션과 비전을 교체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번이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역적 맥락만이 아니라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안팎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현실과 도전 과제는 무엇이고 국제 현대미술의 동향 속에서 어떠한 전략이 필요한지를 고심한다면, 그리고 대중의 문화향유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증진을 추구한다면 미션과 비전의 맥락은 힘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업무별로도 미션과 비전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시와 소장품 정책,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미션과 비전은 활동의 목표이자 기준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디렉터십은 각 분야별 책임자가 갖는 전문성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주고, 그들 스스로 자기 발전과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력은 상승하고, 소장품의 수준과 관리 역량은 높아질 것이며, 에듀케이터의 미술관 문화 활동은 큰 호응을 받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직이 갖게 될 전문성은 곧 디렉터십의 권위이고, 미술관 경쟁력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후 전망할 조직의 성격도 디렉터십에 부과된 주요 과제라 하겠다. 책임운영기관제는 일반 행정기관보다 폭넓은 조직・인사・예산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한편, 성과의 책임 및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성 및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직을 보면 책임운영기관제를 수행하는 기관치곤 뚜렷한 실행체계가 눈에 띄지 않는 중성적인 모습이다. 성과에 대응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 차원의 맥락이 거의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전시 기획에서의 전략도 현재 조직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기업 후원이 지속되고, 문화재단을 통해 수익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디렉터십의 대응은 준비돼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이러한 정황은 책임운영기관제라는 체제보다는 법인화에 걸맞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추후 국립현대미술관이 법인화로 갈 수 있을 만큼 내적 역량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되물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라도 강력한 디렉터십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지만 홈페이지에 역대 관장의 연혁이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관장의 존재는 미미하다. 과연 이 미술관이 관장의 역할을 중시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디렉터십을 이야기하고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긴급 앙케트, 국립현대미술관을 진단한다

전임 관장의 불미스러운 퇴진과 장기간의 공석 끝에 관장 재공모 논란에 휩싸인 국립현대미술관의 현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한 《월간미술》은 미술관계자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214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했고, 이중 60명이 참여했다. 설문은 총 25개 항목으로 구성됐으며 4개 카테고리로 나눴다. 첫째 ‘관장 재공모와 관련된 긴급 현안’, 둘째 ‘표류하는 MMCA’, 셋째 ‘MMCA 전시에 관하여’, 넷째 ‘서울관에 관하여’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의견을 들었다.
설문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이번 문체부의 관장 재공모 방침을 ‘잘못된 일(78.3%)’로 받아들였으며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문화체육관광부(68.8%)’로 돌렸다. 이는 재공모 결정까지 8개월이 걸려 관장 공석이 장기화한 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며 더욱이 문체부 장관이 나서서 외국인 관장까도 고려한다는 의사를 피력해 논란에 더욱 부채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장 선출방식 문항에는 ‘현행(공모제)유지’(28.8%), ‘추천제’(27.3%), ‘임명제’(19.7%) 순으로 답했다. 하지만 현 관장 선출방식인 공모제에 대해선 ‘반대’(63.3%)가 ‘찬성’(28.3%)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공모제가 가장 공정한 선출방식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현행 공모제에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재공모를 통해 선임될 관장이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으로는 ‘미술(관)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81.8%)을 압도적으로 주문했다. 이는 관장의 유형을 묻는 후속 문항에서 압도적 응답을 받은 ‘국내 미술현장 전문가형’(80.0%)과 응답률이 비슷해 미술인들이 바라는 관장은 미술현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입증했다. 재공모를 두고 미술인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선 ‘모르겠다’(48.0%)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시위형식의 집단행동’과 ‘사태관망’이 각각 26.0%로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최종 후보로 거론되던 후보자에 대한 신뢰가 두텁지 못했고, 재공모로 가닥이 잡히면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신임 관장 선임에 더욱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항목에는 10점 만점에 ‘4점’(38.3%)과 ‘6점’(33.3%)이라고 응답한 이가 많았다. 미술계 내부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계를 대표한다고 보느냐는 문항에는 ‘그렇다’(67.2%)가 ‘그렇지 않다’(25.9%)를 크게 앞질러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과는 별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계에서 갖는 의미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재 위기’(82.8%)라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했으며 위기를 야기한 문제점으로 ‘관장의 장기 공석’(31.6%). ‘전시내용과 수준’(30.1%)을 꼽은 이가 많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만족도 문항에는 10점 만점에 ‘6점’(45.0%), ‘4점’(28.3%)으로 대답한 이가 많아 전시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줬다. 불만족의 이유로는 ‘기획력 부재’(66.7%)를 첫손에 꼽았다. 이는 ‘전시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점’을 묻는 항목에 ‘기획 전반의 책임 및 자율성 보장’(56.4%)이 다수의 응답을 획득한 것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개관한 서울관에 대한 만족도는 앞선 항목의 만족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 10점 만점에 ‘4점’(39.0%), ‘6점’(32.2%)으로 응답한 이가 많았다. 접근성과 부대시설(60.7%), 설립(존재) 자체(32.1%)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으나 전시에 대해선 불만족(69.2%)이란 응답이 70%에 육박했다. 즉 하드웨어에 대한 만족도를 콘텐츠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접근성(79.7%)을 서울관의 최고 장점으로 꼽았으나 전시 및 프로그램 과잉에 따른 질적 저하(42.9%)를 부정적 평가항목으로 선택한 이가 많은 것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번 설문을 통해 확인된 것은 미술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우리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바를 결코 경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술계, 그리고 동시대 미술문화를 상징하는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관 개관으로 외형적인 성장은 가시화했지만 그러한 성장에 걸맞은 전시 등 미술관 본연의 기능은 미흡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인 대부분은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학예기능의 역량 강화를 꼽았다. 이번 신임 관장 재공모 결정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상급기관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와 정치력 부재를 드러냈다. 이는 전시를 비롯한 미술관 고유기능에서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제도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빚어진 결과라 하겠다.
황석권 수석기자

<설문 참여 60인>
강선학 강재현 고충환 김달진 김동일 김만석 김민기 김 석 김승영 김용익 김윤경 김정헌 김지연 김지원 김학량 남선우 노순택 노형석 류병학 문혜진 박소현 박영숙 박우홍 박인권 반이정 배종헌 백 곤 백기영 변길현 서상호 서준호 손성진 송미숙 신승오 안경화 안규철 안인기 양은희 양지윤 유진상 윤규홍 윤우학 이명옥 이선영 이영란 이영주 이용우 이태호 임근준 임종은 장동광 정정엽 정준모 정진우 조광석 조은정 채은영 최금수 최 열 하계훈

표2

표3

표4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제언

《월간미술》이 실시한 설문의 마지막 항목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제언이다. 이는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향한 질타와 충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상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미술인들은 신랄한 비판과 제도적 개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미술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론 단호하고 따끔하게, 때론 담담하게 건네는 미술인들의 제언을 가감없이 전한다.

-재공모 자체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와 같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장기 공석 사태에 대한 책임은 따져야 할 것이다. 재공모 결정을 지나치게 시일을 끈 상태에서 발표, 이제 와서 외국인에게도 개방한다니, 한국에는 자국의 국립미술관 수장을 맡을 만한 인물도 없는 것으로 비칠까 심히 걱정스럽다. 공모를 공고할 당시에 처음부터 외국인에게도 개방한다고 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사태는 현 행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 나라의 대표적 미술관의 위상을 위정자들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아가 한국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향후, 작금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현 공모제의 한계를 극복할 만한 정책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배종헌

2년 임기의 관장을 뽑는다며 8개월을 허송세월하고도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은 미술계에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미술계가 그만큼 만만한 것이다. 후보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라며 이번에는 외국인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관료들이 운영해도 미술관이 굴러는 갈 것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없어도 우리 미술에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문화융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부에서 한심한 일인데, 아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게 더 한심한 일이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장기 공석과 임용 무산은 근본적으로 시스템 즉, 제도적 문제에 기인한다. 국제적인 현대미술관의 운영시스템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관장을 맡고, 이들이 집행하는 전시기획, 운영방식, 인력운용 등에서 필연적 파행은 예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관장 선임 방식이 정부기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인사권의 자율성이 없는 게 문제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형식은 책임운영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사나 예산 등에서 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현재로선 이사회를 제대로 구성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하고 이 이사회에서 관장임명추천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이사회에서 추천, 임명을 결의하는 방식이 최선의 방책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기관일 뿐이다. 차제에 서울관 개관을 계기로 관장의 직급도 차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장동광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는 책임기관운영제로 행안부에서 한다고 들었다. 심사위원 구성에서부터 비전문가들이 참여하면 제대로 된 관장을 뽑을 수가 없다. 이 공모 운영 권한을 문체부가 되찾아야 한다. 행안부에서 심의위원을 선정하더라도 문체부에서 추천하는 인사들로 구성하면 현행 공모제도하에서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다. 김정헌

-그동안 미술계가 비판의 목소리에 인색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양은희

한 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기관의 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술계가 납득할 만한 인물이 선출, 임용되는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라면 그 방식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는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경험있는 내부 인력들의 의견을 수렴해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임용방식을 보면 위에서 정해놓고 공무원들이 심사를 조정하는, 주로 ‘짜고 치는’ 식으로 진행돼왔다. 이것도 수정돼야 하지만 누구든지 임용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고쳐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공모와 관련 외국인 전문가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다. 참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한 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적 방향이 걸린 관장직을 다른 나라 인재로 대체하려 한다는 그 사대주의적 발상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같은 발상을 하는 문체부에 모두 같이 나서서 적극 대응책을 촉구하자. 우리의 미래지향적 방안과 우리의 미래 창의적 계획을, 오늘의 형편에서 우리의 미래를 창출해갈 기획을 창안해내야 할 막중한 자리를 어찌 남의 손에 맡기려 하는가. 대통령을 다른 나라 국민에게 맡겨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과제, 우리들의 고민, 우리가 연구해 나갈 방향은 우리들이 구축해야 한다. 문체부 생각이 참 너무 꼴불견이라 큰 걱정이다.

내국인/외국인, 미술전문가/비전문가의 구분을 떠나, 현 시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필요한 관장은 관료조직화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방대한 조직에 적합한 미션을 정립하고, 이에 맞춰 각 관별의 정체성을 수립하며, 학연 및 지연보다 개개인의 능력에 맞춰 인사를 단행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장 아래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이 각 관별로 부관장 또는 실장으로서 적합한 사업을 기획해 나가야 한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 명의 관장이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현재의 조직구도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울 만큼 방대한 기관이 되었다. 관장 선임과 함께 기관 조직, 인사, 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

-첫째, 만병의 근원으로써 기형화된 책임운영기관 체제로부터 해방시켜 국립기관으로 환원하거나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하나뿐인 국립미술관 관장의 직급이 2급 국장에 해당하여 장관에 굽실대는 하위직급인데 국내는 물론 국제 위상에 적합하도록 최소 장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동시에 그 위상에 적합한 관장을 초빙, 임명해야 한다. 셋째, 형편 없는 소장품 구입예산을 최소한 100억 원대로 증액하고 특히 서구 근현대미술품 소장을 위한 특별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최열

이번 사태는 단순히 관장 개인의 능력에 대한 판단이나, 정치적 코드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계 전체에 대한 국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미술계는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제도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의 안정성과 권위는 내적으로 미술인들 사이의 주관적 신뢰로부터 나오며, 그 주관적 신뢰를 바탕으로 객관적 제도가 만들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제도의 정점이자, 국가와 사회에 대해 미술계를 대표하는 관문이자 거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계의 와해를 보아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수만을 위한 전시, 비평, 미술언론. 미술인 스스로 외면하는 미술계.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는 국가의 시선은 한 단면일 뿐. 김동일

-국립현대미술관을 문화정치의 기초로 삼지 말라. 국립현대미술관을 검열과 통제 그리고 통치의 방식을 실현하는 장으로 만들지 말라. 미술계 내 이념적 이항대립을 조장하여 갈등을 일으키고 적대와 혐오를 거듭하는 사태를 일으키지 말라. 풍문과 소문 대신에 사실과 진실 앞에 서도록 투명한 제도적 운영과 절차를 실천하라.

한 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기관의 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술계가 납득할 만한 인물이 선출, 임용되는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라면 그 방식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는 내부에서 승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경험있는 내부 인력들의 의견을 수렴해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임용방식을 보면 위에서 정해놓고 공무원들이 심사를 조정하는, 주로 ‘짜고 치는’ 식으로 진행돼왔다. 이것도 수정돼야 하지만 누구든지 임용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고쳐야 할 것이다.

정치 권력에 대한 예술인의 자율성 확보 요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현 사태에 관한 미술인들의 반발 또한 자율성 확보를 위한 ‘투정’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문제를 불투명한 이유로 백지화한 행태는 현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낮은 인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예라고 본다. 윤규홍

무엇보다도 개화기 이후 한국근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특히 제국 일본의 식민주의 규율과 2차대전 후 미국/소련이 이식한 냉전적 규율이 20세기 우리 미술에 드리운 부정성을 세계사적 문맥에서 비판하며 해체할 수 있는 그런 문제의식과 안목과 식견을 지닌 전문가를 관장으로 채용해야 함. 그렇게 하려면, 완고한 민족주의 정체성 담론에 물든 이들, 파인아트라는 식민지근대적 유령에게서 놓여나지 못한 이들, 국제적 규준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사대주의자에 불과하거나 자기-식민지화에 앞장서는 이들을 경계해야 함. 김학량

전시기획 운영 등에서 자율적인 조직 정체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무위. 낙하산 관장, 학맥 관장 시비 걷고 리더십의 새 모델 제시해야.

-정치와 미술은 분리되어야 한다. 이 사태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관장직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대해, 그리고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미술관장직은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전문 인력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독려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직이다. 또한 해외의 유명한 관장을 영입하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은 스스로 자유롭게 일어서야 한다. 백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출 논란을 계기로 미술계 내부가 반성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미술(관)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덕망 있는 미술인이 관장으로 선출되기를 바란다. 국내 기관장 선출에서 늘 문제시된 ‘무능’과 ‘부정’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전문성’과 ‘도덕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관장 선출 논란을 계기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미술인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선출제도와 심사제도를 재정비하기를 바란다. 류병학

[장기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며 미술계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촉구한다]
0. 미술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화 전환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라. 미술계는 작금의 사태를 숙의하며 개혁의 향방을 다각적으로 논하라.
1.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어갈 관장을 채용하는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라. (서울대 홍대 미협 민예총 등 파벌과 인맥을 등에 업은 구시대적 인물을 원천 배제하라.)
2. 국민과 미술인 사회는 관료주의적 운영을 극복하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현대적 감각을 갖춘 관장을 바란다. 청년 예술가들을 파트너로 포용하는 미술관을 창출해낼 리더를 널리 구하라.
3. 국립현대미술관장도 (국립중앙박물관장처럼)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직급을 차관급 정무직으로 격상해야 마땅하다.
4. 특수법인화와 함께 전면적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신규 재계약 학예직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라. (관장 이하 학예직의 국적 제한과 장벽을 철폐하라. 유교적 연공 서열에 따른 관리직 진급 시스템을 철폐하라. 학예직을 위한 유연근무제와 연구안식년제를 도입하라.)
5. 신자유주의적 초대형 미술을 지향하는 서울관의 시대착오적 전시공간 구획을 휴먼스케일에 맞게 재조정하라.
6. 서울관에 청년 작가를 위한 (적당한 크기의) 실험적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신설하라.
7. 청년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식의 유기적 프로그램—예컨대 초청 큐레이터/평론가 연구 지원 제도—을 도입하라.
8. 허울 좋은 미술은행제도 당장 폐지하라.
9. 국립현대미술관은 1987년 이후의 한국 컨템포러리미술의 얼개를 총괄하는 소장품/대여품 장기 전시를 서울관에 마련하고, 비평적-역사-쓰기 작업에 나서라.
10. 우수 전시의 여타 지방 국공립미술관 순환 전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라.
11.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주요 다큐먼트를 영역(英譯)하는 작업을 위한 번역기금을 조성하고 자율적 번역사업을 실시하라.
12. 국립현대미술관은 풀서베이 전시와 회고전 실시 과정에서 사실 확인 작업을 위한 엄격한 진실성 검증 단계를 도입하라.
13. 고 임영방 관장의 업적을 기리는 회고전을 실시하고, 그의 이름을 건 큐레이터십 시상 제도를 마련하라.
14. 미술계의 파벌들은 투서와 모함과 음해 공작을 중단하라.
15. 미술관의 운영 방침 논의 과정에서 아트딜러의 상업적 개입과 상업화랑에 긴밀히 연루된 인사의 부정한 개입을 차단하라.
임근준(이정우)

-우리나라 미술계의 역량은 최근 여러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미술계의 전시나 비엔날레 등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를 다루는 공무원 행정은 아직도 처참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 미술관장을 뽑는 인사 과정에 미술전문가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정무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현재 시스템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백기영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직원 개개인이 각자 맡은 업무에서 전문성과 창의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미술관 스스로 업무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 보며 자율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냥 커다란 조직 구조에 의해 굴러가는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 체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김달진

국립현대미술관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 또는 분담하기 위해선 우선 국립근대미술(박물)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근대의 시기 설정이 모호하더라도 이미 진행된 조형예술에 대한 시기적 구분은 가능하다. 창작의 입장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하나의 기관에만 의존하면서 생기는 오해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학예실의 고용 안정화는 물론 그 업무역량을 실제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비대해진 행정 서비스 조직으로 전락하지 않고 예민한 창작의 실험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예실의 권한을 더 키워야 할 것이다. 최금수

-미술관장은 단순한 관료 자리가 아니다.
우리 미술을 통한 우리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이를 윤리적 태도로 보여주기 바란다. 사회적 출세나 자기 과시의 자리가 된 이 시기에 관장은 무엇보다 상업성과 정치적 자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 시대의 사유와 상업화에 대응할 윤리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길 바란다. 국립미술관다운 존재 가치는 그럴 때 인정받을 수 있다. 강선학

이번 최종후보 두 사람이 임명되지 않은 것은 과정은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결과는 잘된 것이다. 관장보다 중요한 직은 학예실(장)이다. 학예실장 임명은 여론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하고 임기를 길게 보장하여 소신껏 일하도록 해야한다. 관장은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와 소양이 있으며 행정과 경영능력이 있는 자 중에서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재공모 사유에 대해 문체부 장관이 미술계 내부의 반목과 인물 부재를 거론한 것은 미술계 전체를 깎아내리는 처사라 사료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화계 수장으로서 반드시 사과와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함.
2. 문체부에서 직접 재공모 대상자를 물색하거나 외국인 관장 영입을 추진하겠다는 식의 언급 역시 국내 미술계를 평가절하하는 처사로서, 국내의 인물을 양성하고 역량을 발전시켜야 할 문체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봄.
3. 따라서, 발상의 전환과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며 국내 미술계가 당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선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임. 유진상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최종 후보자 2명(최효준, 윤진섭)에 대한 탈락 사유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안가는 게 문제입니다. 결격사유가 명확하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게 아니고, 우려하는 것처럼, 청와대 내정설이나, 학연 때문에 배제됐다면, 한국미술계에 엄청난 혼란과 반목을 조장할 것입니다. 미술계는 반드시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투명한 사후 조치를 지켜봐야 합니다. 손성진

-국립기관답게 장기적이고 일관된 관점으로 전시를 기획해, 스쳐 지나가는 전시가 아닌 쌓여나가는 전시, 연구 가치가 있는 전시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동시대 서구미술을 발빠르게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트렌드보다 더 중요한 국립기관의 의무는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서구미술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며, 소장 가치가 있는 도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장 자리가 정치적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장 자리는 기획자의 자리가 아니며 미술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바탕으로 미술관 내부 기획자들의 기획을 서포트하는 등 경영능력이 우선되는 이가 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 2년 계약의 비정규직 기획 인력은 기획력의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이 수반되는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없는 구조다. 학예인력의 고용안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관장 임명 과정은 투명성을 담보해야 하는 만큼 더욱 공개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서준호

바보야,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하는 곳이 아니야! 시각문화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를 통해 유대감을 지님으로써 한 개인이 국가 구성원으로서 국가를 사랑하고 믿고 일체감을 갖도록 하는 정치적 기관이야. 바로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근대국가들이 탄생하면서 모두가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을 설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때문에 이러한 위기가 온 것.(이 답변으로 17번 이하 답변을 대신함)
그리고 《월간미술》이라는 대한민국의 미술 전문지조차 이런 국립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모르고 단지 전시시설의 하나로 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상” 정준모

학예기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법적 장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수용하고 이끌어갈 관장이 선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장의 권한과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모든 대한민국 미술관 관장이 큐레이터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한국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서상호

1. 관장이 있을 때나 지금이나 미술관 운영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음. 오히려 없는 편이 이상한 관장이 재직할 때보다 나은 듯도 함.
2. 미술관 내부 학예연구직에게 기획과 운영의 자율성을 주고, 현 직급의 관장은 학예직에서 임용하는 것이 최선일거라 생각됨.
이태호(명지대 교수)

1. 관장 선임 방식에 따른 폐해성이 가장 큰 문제. 널리 인재를 구해 쓴다는 공모제의 도입 취지와 달리, 진정 덕망 있고 능력 있는 관장들이 응모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 그래서 관장 인선은 추천제와 임명제의 혼합형이 바람직하다고 봄.
2. 학예인력들의 폐쇄성 혁신이 시급. 미술관의 정체성 확립과 콘텐츠 능력은 결국 학예인력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수장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이에 전문성과 책임감을 지니고 미술계를 선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이에 미술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활동 인물의 인프라가 미약한 점을 감안하여, 공모제를 폐지하고 초빙하여 관장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책임과 권한을 함께 주어야 한다. 조은정

1. 관장 심사를 누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투명성이 없다
2.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사나 큐레이터의 기획력이 미흡하다.
3. 장기적 전문성을 확보할 기회가 부족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 홍콩바젤 등을 지원하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를 봤다. 부디 한국현대미술이 나아갈 좌표를 설정하셔서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을 채우는 전시가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해야만 하는 당위성 있는 전시가 많이 개최되었으면 한다.

-현대미술관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 사실상 실종된 채, 지나치게 지엽적인 시각이 난무함. 문제가 있다면 우리 미술계의 총체적인 현실과 직결돼 있음을 직시하고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을 희망한다. 문화 현상이야말로 미래를 내다보는 원거리의 넓은 시야에서 활성화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윤우학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은 미술계 주요 기관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미술계 다수 구성원의 여론과 무관하게 관료와 교수 등 권력 중심부에 있는 소수 관계자만의 리그였다는 데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미약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미술계의 중요 사안에 대해 여론를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미술계 자체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선영

그간 개별 전시 내용이나 수준, 관장 공석 사태 등의 문제가 지적되거나 불거져왔지만 그런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 기관인지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면한 문제들이 풀리기를 기대하는 건 모순된 일이다. 정부나 관계부처에 내맡기거나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모든 미술인의 주체적인 의견 개진과 참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양지윤

-관장을 비롯한 각 직책에 대한 역할과 책무를 정확히 설정해 장기적 비전과 기획의 견고성을 확보해야 한다. 박우홍

국립현대미술관은 늘어난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광부 장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 특별한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사건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공석 문제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미술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술계 외부에 미술의 중요성과 미술 행정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미술계 내부의 연대와 성취를 이루기엔 미술판이 이미 이익지향적 오합지졸의 판이 되어 쉽지 않을 듯. 몇몇 사람에 의해 찻잔 속의 태풍이 되거나, 적당히 포기하고 무관심으로 자기 활동에 몰두하면서 사태가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담론이 미술계 성골, 진골 싸움인 듯하여 관심두지 않는다.

장관은 ‘미술계의 여론이 워낙 나빠 논란을 감수하고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는데(《한겨레》 2015. 6. 11), 장고 끝의 부적격 판단과 관장 장기 공석에 대한 미술계의 여론은 왜 듣지 않는가. 남선우

미술계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엄격한 검정 과정을 통과할 사람이 과연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름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의 결점이라면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전 검정은 필요하겠지만, 후보자에 대한 먼지 털기식 암행은 문제가 있다. 사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는 전제하에 임명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충환

현행 공모제보다는 전문성과 리더십(행정 및 경영능력)을 갖춘 적임자를 발탁해, 임명하는 임명제가 나을 듯하다. 임기는 최소 5년으로 하고, 한 차례 연임가능케 해 깊이있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시행할 수 있다. 관장이 미술관 운영을 책임지되 철저히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술관 전시 및 작품 구입 예산이 너무 적다. 스폰서십과 멤버십 구축에 획기적인 전략이 시급하다. 큐레이터별 전문성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 이영란

1. 다른 방식들은 공모제보다 문제의 소지가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공모제가 능사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론 공모제를 찬성함
2. 8개월간 관장 직무대행이 운영한 것은 그 자체로 관련 부처 장관과 나라의 직무 유기이다.
3. 나라 예산을 줄이기 위한 애국심이 반영된 것은 아닐 텐데 서울관 전체 학예직이 계약직이라는 것은 희대의 코미디이다. 김지원

관장을 비롯하여 학예사는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미술관 운영의 모든 책임을 지는 의무와 소명에 투철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전문인들을 믿고 밀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한다. 여론이나, 정부고위 관료의 압박, 재정적 압박 등등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요인들은 미술관을 망치게 한다. 이는 결국 우리 미술문화를 좀먹는다. 조광석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누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다. 이에 더해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들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몇몇 미술인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들은 겉으로는 미술계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누가 관장이 되면 자신에게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처세꾼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재공모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던 날, 한 미술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실체도 없이 떠도는 소문을 부풀려 퍼뜨리거나 심지어 악의적으로 가공하는 미술인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훼방꾼들이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첩첩산중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창작의 산실이자 비판적 지성의 공론장인 미술계가 실력보다 학연과 인맥 관리에 열중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번 관장 재공모 건을 계기로 미술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내 편 네 편 가르기’, 내 이익만 좇는 ‘줄 세우기’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누가 신임관장으로 가장 적합한가, 즉 관장의 자질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미션, 목표는 일반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다르다. 따라서 특별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관장이 되면 국립미술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미술계에도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국내 유일한 국립미술관장이라는 대표성 때문인지 덕망과 인품을 갖춘 미술계 원로가 차기 관장감이라고 주장하는 미술인들이 있다. 혹은 빼어난 학식을 가진 미술사학자나 평론가,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받은 기획자, 유명작가, 경영마인드가 뛰어난 스타급 최고경영자(CEO), 문체부 고위관료, 심지어 미술계의 히딩크 같은 외국인을 전격 영입하자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연 누가 책임운영기관으로 법인화를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각종 문제점과 미술관 내부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후보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의 <예술기관 CEO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사례연구>와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의 <책임운영기관장의 리더십 유형이 조직 몰입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관장은 예술기관장을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이들 중 바람직한 리더는 예술 전문성과 행정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첫째 유형은 ‘공무원 기관장’으로 오랜 공직 생활과 관리직 경험으로 조직 관리가 능하지만 예술적 전문성이 부족해 예술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유형은 ‘예술가 기관장’으로 예술가이므로 예술 창조에 관심을 갖고 추진할 것이며, 그 결과 예술적 성과가 기대된다. 반면에 조직관리 경험 부족으로 예술기관 운영에서의 조직 관리는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유형은 ‘일반기업 CEO 기관장’으로 대기업 조직관리 경험으로 조직을 잘 관리할 것이 기대되지만 예술적 가치와 수익성의 충돌로 예술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넷째 유형은 ‘예술경영자 기관장’으로 오랜 예술기관 경험이 조직 관리에 적합할 수 있고, 본인이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 기관에서의 경험은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예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진우 임보영 류영아는 ‘변혁적 리더십’을 책임운영기관장의 자질로 꼽았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조직 구성원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하며 적절한 성취 수단을 제공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술전문성과 행정전문성, 변혁적 리더십을 갖춘 최적의 인물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차선책은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의 조언에 담겨 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 강점 영역을 더욱 향상시키되, 약점 부분은 그것이 강점인 구성원들을 찾아 팀을 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관장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인물을 관장으로 뽑고 최고의 미술전문가들을 운영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리더의 주위를 채우는 것이다. ●

SPECIAL FEATURE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많은 사람들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

지난달 초순, 베니스를 거쳐 파리로 가 루이비통재단의 미술관을 찾았다. 100% 전기로 달리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입장을 위해서도 기다려야 했다. 프랭크 게리 건물의 성가(聲價)와 개관 특수 덕이기도 했지만 차가운 전시와 따듯한 전시를 함께 여는 전략적 접근과 디테일을 완벽하게 챙기는 치밀함, 공간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 마케팅 센스 등을 접하며, “앞으로 기업이 작심하고 뛰어들면 공립 공영 미술관은 당해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 전시를 보여주는데도 한산하고 쇠락한 기운이 역력한 파리시립미술관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앞으로 관심 있는 한국의 여러 기업인이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대표 미술관으로 인식되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필두로, 공공 설치미술로 잘 짜여진 프로젝트를 연이어 선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제주시 구도심의 면모를 일신한 아라리오 제주미술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확실하게 특화된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림미술관 등기업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들의 성공적인 행보는 공립 공영 미술관장으로 10년 이상 일한 필자에게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술관 공공 서비스의 불가피성은 절대적일까? 미술관의 공공성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공통적 성격이며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먹고사는 것이 미술관이지만 공영이 불가피한 다른 행정 서비스와는 달리 민영의 효율성과 성과가 세계적으로 갈수록 인정되는 것은 아닌가? 적어도 한국에서 바람직한 미술관 거버넌스의 모델은 무엇일까? 이런 화두(話頭) 같은 것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까지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파리, 나고야 등지에서 같은 작가의 회고전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보다 더 충실한 내용이 놀라워 몇몇 아쉬운 점을 지나가듯 지적해 주었고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조명, 레이블링 여러 면에서, 하나를 말했는데 서너 가지가 개선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후 특정 공간에서 촬영 허용에 따른 감상 방해가 워낙 심해보여 조심스럽게 지적했는데, 즉시 “촬영금지를 했다”는 답이 왔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과감히 시도해서 그것의 주효함을 확인하고 미진하면 계속 보강하기로 작심한 듯 기획 운영의 대표자는 거의 늘 전시장에 있었다. 이런 것이 모두 영리 추구의 힘일까?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립 공영 미술관의 프로그램에서조차 분명하게 전제되지 않는 전시를, 오늘 여기에서 왜 하는지, 타깃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어떻게 소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접근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전시장 입구에 쓰여진 ‘위로, 치유, 화합’이라는 세 단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미국의 유일한 국립미술관의 대대적인 개보수 정보를 국내 유일 국립미술관에서 파악하고 온 노력을 쏟아 부어 이런 전시를 기획 유치할 수는 없었을까? 만일 섭외하여 전시를 개최했다면, 그렇게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내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관람객들의 반응을 적극 수집하고 예민하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부단히 개선해 나아갔을까? 도록과 상품을 그렇게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방위적인 프로모션을 할 수 있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경험이 있고, 현재 여건, 조직문화, 분위기를 잘 아는 필자가 낼 수 있는 답은 불행하게도 거의 모두 ‘아니요’였다.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한 관람객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과 큰 조직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우리 국립미술관에 대한 만족도가 그토록 낮아졌을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전 미술인이 합심하여 서울관의 개관을 보았는데 물리적 접근성 말고 내용적, 심리적 접근성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개관전 <시대정신>, 1주년 기념전 <정원>, 이런 것들은 정말 낯 뜨거울 정도였다. 큐레이터들은 그런 미흡함이 관장의 전횡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래서 관장 공석 중에 많은 규정을 개정하여 관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개혁(?)을 단행했는가 보다. 이해는 간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은 미궁에 빠졌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는 이즈음, 법인화를 반대했던 이들조차 법인화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과거 연극계 출신의 모 장관 시절 문체부 산하 법인화 대상 기관이 운 나쁘게 국립극장에서 미술관으로 바뀌었다고 하고, 그 이래 법안은 계속 상정되었다가 폐기되었고, 이제는 올려도 상임위 법안소위원회 소속 의원조차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본부 내 담당 부서도 담당자도 없이 으레 결국 폐기되려니 모두 생각하고, 주관부처인 행안부에서조차 “티오를 줄이는 그런 결정을 해당 부처에서 적극 추진할 리 있겠느냐?”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
전문직들은 아직도 극히 취약한 미술계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법인화는 불가하다 하고, 법인화되면 주무 부처와 완전 갑을 관계가 되어 운영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타당한 우려다. 재정자립도 80%라는 믿을 수 없는 수치를 자랑하는 예술의전당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 모습이라면 누군들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예술의전당 팀은 자신만만하다) 법인화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5년간 수천억 원의 국고 출연과 같은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며 30%를 재정자립의 상한선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옳고, 기부를 촉진하도록 세제 등 법제도를 영국 미국 프랑스와 같이 바꾸기 위해 과거 조윤선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류가 다시 심의, 통과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도 옳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드는 생각. 그것은 서울관의 분립 법인화이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모기관과 자기관의 운영체제가 다를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겠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 만든 법(法)인데 길이 없을까? 모기관으로부터 자기관을 제급(除給)내어 버린다면? 듣자하니 지금의 미술관 관장대행 체제에서 방대한 서울관을 과천관의 일개 과로 전락시켰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1년도 안 남은 서울관 직원들이 과천관, 덕수궁관의 전시를 4~5개씩 맡아 한다고 한다. 과천의 정규직들은 그 반도 안 되는 전시 업무를 맡고 있고. 지금의 서울관. 엄청난 덩치의 일꾼이 족쇄를 차고 굼뜨게 움직이며 비능률적으로 실수를 연발하며 일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제 서울관의 분리 법인화를 그려보자. 그래도 포기해야 할 티오가 없으므로 정부조직의 정규 공무원들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5년 정도의 계약기간으로 강호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찾아 전문계약직으로 고용하고 그들이 합심하여 보통의 시민들이 호응할 미술관을 만드는 과업을 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퇴임할 때쯤은 순수 민간부문에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의식과 열정이 있는 기업인으로서 자체 미술관 건립까지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모아 이사회를 구성하고,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철저히 파악하고 세계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 연구하며 국내외 전문가와 전문기관과 연대하고 제휴하여 수년 내에 모마, 퐁피두, 테이트모던과 순회전을 공동 기획하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집단 지성을 결집하여 미술 저변의 확대와 심화에 민관협치 방식으로 온 노력을 기울이고 강도 높은 자체 개혁과 함께 미술 교육, 제(諸) 미술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선도하는 것이다. 과천관은 직원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현 공영체제를 유지하며 연구, 수장, 교육 기능과 참신한 전시 기획에 매진하게 하여 법인화된 서울관과 선의의 경쟁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물론 서울관이 과천의 소장품을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서울관의 성공을 바탕으로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전국 4개 권역에 중앙정부-지자체 협력형 분관을 속속 건립하는 것이다. 공영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민영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모마, 퐁피두, 테이트 모던, 그리고 앞서 예시한 기업 운영의 미술관 프로그램들이 뭘 잘 모르는 내게도 좋게 와 닿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도 느낀다. 앞에 언급한 일개 기획사의 공들인 전시가 추상화가 전혀 와 닫지 않던 내게도 감동적이라는 것을. 요즈음 같이 “미술관은 미궁에 빠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 공중의 기대가 강렬하게 모아지고 공공의 지원이 대폭 이루어지는 법인화된 국립서울미술관의 희망적인 비전을 뚜렷하게 그려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이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문체부의 수장이 결심하고 전방위로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절차가 다시 필요할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취임보다 빠를 것 같은 문체부 새 수장의 취임 이후 말이다. ●

EXHIBITION TOPIC Yinka Shonibare MBE

< High Tea Ⅲ >(맨 왼쪽) 마네킹, 더치왁스, 패턴천 등 혼합재료 410×122×80cm 2015

나이지리아계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 MBE의 대규모 개인전 <찬란한 정원으로> (5.30~10.18)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역사를 풍자적으로 표현해 역사의 이중적인 측면과 문화의 혼종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일본 제국주의를 경험한 한국적 상황과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예술은 마술이자 연금술이다

이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잉카 쇼니바레는 영국이 자랑하는 멀티미디어 작가로서 회화, 조각, 공예, 의상디자인, 사진, 연극, 오페라,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쇼니바레의 국제적인 명성과 작품세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단순히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가 아니라 나이지리아 태생 흑인이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임을 인지하고서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의 가닥이 풀린다. 작가 입문 시절 흑인이 왜 아프리카 미술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고 강한 지적 호기심에 자존감도 강했지만, 영국사회에서 그에게는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 작가라는 주변적인 정체성이 부여되었다. 자신의 내면과 외부에서 규정하는 정체성의 불일치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는 외부에서 부여하는 정체성을 거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타협함으로써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자신에게 부여된 문화적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아프리카 문화의 정체성을 작품에 담고자 ‘더치 왁스(Dutch-wax)’ 염색 직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향후 그의 작품에 필수적인 주재료가 된다. 일명 ‘아프리카 천’이라고 불리는 이 직물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시장을 겨냥해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면직물인 바틱(Batik)과 유사하게 제조한 것으로 인도가 시장의 매력을 잃자 아프리카로 유입되어 크게 유행하게 되고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자체 제작할 정도로 아프리카화한 유럽 제품이다. ‘아프리카 천’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허구적인 개념임을 드러내는 문화 혼종(混種)의 실제적인 예로서 문화적 혼종성을 예찬하는 쇼니바레에게는 더없이 적합한 재료이다. 그의 작품은 외부에서 요구하는 아프리카성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규정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실체가 얼마나 근원 없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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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Victoria philanthropist’s Parlour >(맨 오른쪽) 더치왁스 패턴천, 카펫, 가구 등 혼합재료 259×487×508cm 199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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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ash Willy >(오른쪽) 실물크기 마네킹, 더치왁스 패턴천 등 혼합재료 132×260×198cm 2009

분노? 그런 건 없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쇼니바레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이 제국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며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국이었던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그의 작품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의 작품이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분노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답한다. 그는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가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한 거부할 수 없는 역사임을 인정한다. 나아가 그는 제국주의가 양산한 문화의 혼종성을 진정으로 즐긴다. 그에게 제국주의는 인간의 역사에서 문화가 어떻게 뒤섞이게 되었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이며, 자신의 성장 배경은 그러한 제국주의가 한 개인에게 적용된 과정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적 혼종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적극 수용한다. 제국주의가 양산해낸 문화의 혼종성 시대, 그리고 그것을 환영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는, 자신과 같은 흑인 장애인에게 예술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는 제국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과 수용이라는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영국 미술계의 인종차별 문제에는 신랄하다. 1980년대에 그는 해체주의에 열광하고 데리다와 프란츠 파농을 공부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의 작품 곳곳에 백인중심주의적 역사와 정치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그가 영국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뼈저리게 경험한 ‘차별’은 흑인작가에게 전시와 활동 기회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로서 첫발을 떼려 할 때, 중심무대에서의 활동은 요원해 보였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1990년대 초 그가 골드스미스를 졸업할 당시 단 한 명의 흑인 작가도 런던의 갤러리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그가 성공을 거둔 후 작품만을 평가하여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는 대안공간을 연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흑인 작가로서 생계를 꾸려갈지 막막하던 그에게 모델이 된 것은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운동이었다. 그는 미술계의 소수집단인 여성들, 특히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모델로 하면서도 지나친 정치성이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정치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예술의 정치적 표현은 형식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피상적인 문화적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정치적인 질문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킨 동력이었다. 예술성을 강조하는 그의 작품은 제국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사회적 구조나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대한 저항이나 분노보다는 아름답다는 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적 기질과 재능을 타고난 그는 모든 인터뷰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예술을 통한 재현의 정치학, 혹은 재현의 정치학에서 예술성의 확보임을 강조한다. 쇼니바레에 의하면 작품의 형식미는 관객과 소통하는 창구 구실을 한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인종차별에 대해 비판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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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of a Victorian Dandy(19.00 Hours) > C 타입 프린트 183×229cm 1998

 필름 14분28초 2005

< Odile and Odette > 필름 14분28초 2005

엄숙한 역사의 무게 덜기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문화적 혼종성의 근원인 제국주의적 역사에 대한 탐구와 비판적 재현은 쇼니바레 작업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그는 엄숙한 역사의 무게를 예술적 유머와 위트를 가미해 덜어낸다. 1962년생인 그는 자신을 68세대로 규정하면서 역사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인 세대라고 말한다. 그 무거운 역사를 가볍게 공중에 띄울 수 있는 것은 마술사이자 연금술사인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영국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영국과 나이지리아 문화의 충돌과 결합에서 잉태된 문화의 혼종성과 자본주의를 후기-식민주의 세대 특유의 거리두기와 유머와 위트로 표현한다. 그의 두 문화의 혼종성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개인적 체험은 광범위하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국가 간, 인종 간의 역학관계를 통찰하게 이끈다. 찰스 황태자로부터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상을 기꺼이 받고 그 이후 자신의 이름을 ‘Yinka Shonibare MBE’로 쓰는 점도 문화의 혼종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제국주의라는 역사의 엄숙주의를 예술로써 공중에 띄우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위트는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한 관객이 구체적인 작품 제작 방법을 묻자 쇼니바레는 마술사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알려주는 걸 봤냐면서 말해줄 수 없다고 재치 있게 답한다. 역사의 무게를 던 가벼움은 관객에게 오히려 역사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대구미술관 기자회견장에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쇼니바레는 직접적인 답을 피했다. 자신이 어떻게 팀을 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지 기술적인 문제만 간단히 언급했다. 하지만 수년전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그는 당당하게 본인의 모습을 닮은 목발 짚은 18세기 귀족의 상을 제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흑인이라는 제약과 몸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는 예술의 연금술을 통해 누구라도 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일까. 현실을 넘어선 그 지점에서 예술이 시작된다는 믿음은 인간 쇼니바레의 신념이며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의 몸은 갈수록 약해지고 말의 속도마저 느려지고 있다. 그러나 몸이 약해질수록 그의 작품 규모는 커져가고, 쾌활한 유머와 위트를 가미한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깊고 넓어진다. 그가 앞으로 마술과 연금술 같은 예술의 날개를 달고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어떻게 시각화할지 더욱 기대된다. ●

EXHIBITION FOCUS John Baldessari

존 발데사리 (7)

위 < Storyboard (In 4 Parts): Arm of Chair With Mans’ Hand Resting On His Knee >(왼쪽) 혼합재료 82.8×132.7cm 2013   아래 < Double Bill:…And Manet > (왼쪽) 혼합재료 152.4 ×152.4cm 2012

일상적 소재와 새로운 매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유분방한 작업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방향을 상징하는 작가, 존 발데사리의 개인전이 6월 3일부터 7월 12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1996년 개인전이 열린 이후 처음 열리는 전시로 2008~2015년에 제작된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80세가 넘은 현재, 팝아트와 개념미술 계보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경향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현대사회의 단편성들, 그 넌센스의 조합자

진휘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파편처럼 등장하는 일상적 장면들과 그 속에 숨은 현대사회의 민낯, 평이함에 가려진 모순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작가 존 발데사리 개인전이 서울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모더니즘이 주도했던 1950년대,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탈-모던, 반-모던의 해체적 관점과 대중문화의 급부상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수용했다. 팝아트의 일상적 소재와 매체의 다양화에 영향 받은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가볍고 자유분방한 취향을 바탕으로 텍스트, 영화 스틸, 사진과 인쇄기법, 동영상, 퍼포먼스, 입체, 설치와 디자인 등 폭넓은 소재의 활용과 작품 제작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없는 부조화의 기호들을 병치하고 분명한 주제의 전달을 방해하는 분절적 방식을 채택하면서 현대 도시와 개인의 삶을 반영하는 작가로 평가되었다. 이런 그의 미술은 20세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와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개념미술의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까지 미술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마르셀 뒤샹이후 언어기호의 사용과 그 구조분석에서 오는 기묘함-탈이성이나 범이성이라고 하기보다는, 단순한 신뢰와 수용에 대한 거부와 확대-을 이용하거나 미술과 예술에 대한 예술, 메타-아트는 꾸준히 탐색되고 시도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이런 경향은 일상과 미술의 관계, 미술과 하위미술(광고, 디자인, 상업적 이미지 등)의 관계, 매체의 전형성과 제작 방식의 회의로 이어지면서 재료와 내용, 작품의 존재 등에 변화를 가져왔다. 개념미술의 또 한 경향은 이미지의 차용인데, 특히 영화나 기타 대중매체에서 생산된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것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낯익은, 익숙한 이미지의 분절적 상황은 이성적이고 일관된 이해를 좌절시킴으로써, 분명하게 도출되지 않는 기의를 더듬어내는 과정에서 관객들의 다양한 경험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다. 동시에 로고스로 대표되던 합리적 인식과 기호의 투명성에 대한 반발을 가져왔고, 이것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자 현실문화의 한계로 이해되었다.

개념미술의 반미학적 반관습적 시각
이런 경향을 선도했던 미국 서부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 존 발데사리는 팝아트와 개념미술의 계보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시각적 요소보다는 문자, 언어를 주로 사용한 회화작품인 글자 작업을 시도했다. 자신의 필치가 작가의 흔적이자 특징이 될 수 있기에 이를 거부하고, 글자를 쓰는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문자를 제작하게 했다. 또는 보편적 언어의 패턴, 공적 글씨 스타일을 빌려오고 장식 없는 글자체를 사용하는 등 작가의 주관성, 창조자로서의 신화를 해체하려고 노력했다.
1970년에는 자신의 대학시절 작품인 1953년부터 1966년에 제작된 회화를 모두 불태우는 〈화장〉프로젝트를 시도, 다 타고 남은 재를 모아 과자로 구워내고 유골함에 넣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처럼 작품도 종결될 수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작품의 영원성, 가치의 불변성 등을 거부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작품들은 주로 영화의 스틸컷을 비롯, 사진이미지와 문자(텍스트)를 결합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예를 들어 〈wrong〉연작에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여러 장면과 글자를 함께 보여준다. 일상의 비틀기는 헛웃음이 나오는 유머를 느끼게도 하지만, 어떤 메시지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그는 시각적으로 화려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미술과 장인정신의 고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발데사리는 개념미술의 반미학적 반관습적 시각을 강하게 지지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이나 이미지를 둥근 원으로 가리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장면과 전혀 문맥을 파악하기 힘든 문서의 일부(주로 기술적 설명서에서 자주 차용)를 화면 안에 병치하는 방식도 기호의 전달에 스며든 각각의 채널과 상호간 소통의 장애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발데사리는 대중적 매체, 예술의 표현들에 숨어있는 어법의 전형화를 꼬집고, 이를 통해 무언가 공감을 창조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거부하길 원하는 듯하다. 이런 그의 작업은 신디 셔먼, 로버트 롱고, 바바라 크루거, 리처드 프린스 등에게 영향을 주고, 1980년대 이후 미국 미술의 중요한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
오랜 기간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발데사리의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무심함, 심각하지 않은 태도, 그리고 미학적 기술 없음이다. 물론 최근에는 작업방식이 훨씬 깔끔하고 미학적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작가의 의도는 굳이 그것에 큰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 미국 동부, 즉 뉴욕을 중심으로 한 개념미술은 언어와 그 구조 속에 깃든 인식의 편재함, 관습적 사고와 미술제작의 전통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매체의 서열과 이데올로기, 자본력에 저항했다.
이와 달리 서부 개념미술 작가들은 특별한 사조에 공통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서부 작가들은 모더니즘적 전통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또한 미술사적 관습에 대항하는 방식에서도 조금 자유로웠다. 그들은 감성을 강조하거나 작가마다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이질적 상황이나 내용을 연결시켰다. 발데사리는 그런 점에서 서부 개념미술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생산한 다양한 대중적 이미지를 적극 사용하고, 그것에서 어떤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맥락과 부분의 관계에서 보이는 애매성, 소위 메시지의 본질과 매체의 속성에 대한 질문, 그로부터 파생된 단편성과 유머, 재미 등을 추구했다. 언제나 영화, 문학, 기술 등 일상적 소재를 적극 수용하고 쉽고 단순한 이미지를 생산하지만, 동부의 남성성이 이끄는 거대하거나 치밀함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작가는 그의 특징적인 작품들을 보여준다. 〈Double Bill〉에선 미술사 거장들의 회화와 현대 이미지를 결합시켜서 이미지를 모호하게도, 동시에 대가들의 특징을 부각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했다. 〈Pictures & Scripts〉는 영화의 한 장면과 상관없는 텍스트의 결합을 시도했는데, 발데사리의 대표적 구성법이다. 이질적이고 상이한 방향과 해석을 지향하는 기호의 충돌은 결국 어떤 의미로도 수렴될 수 없는 딜레마를 제공한다. 〈Board play〉 연작은 한 작품을 구성하는 주된 색채를 도출하고, 그것과 관련되기도, 관련 없기도 한 다른 이미지들을 병치하는 일종의 스토리보드 형식을 가져왔다. 영화나 광고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작가는 통일을 위한 과정이지만, 파편화되고 분절된 실체를 갖는 이상한 조합을 보여주었다. 전시에서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매체, 다양한 레퍼런스들, 복합적 차용의 역사가 느껴졌다. 이런 긴 작품 활동을 이어오면서 그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기호들의 모호함, 언어, 시각적 이미지들과 그것의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허위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비판한다고는 할 수 없다.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통해 시각예술의 범주를 확장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발데사리 미술의 특징으로 보인다. 단편화된 기호들과 파편화된 문장들을 표현함으로써,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뿐 아니라, 단절과 몰이해, 소통의 부재와 표피적 관계의 일상성을 가리킴으로써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침투한다. 도시의 일상, 시각기호로 가득 찬 공간의 모습이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간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도 공감을 불러온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 보듯, 그는 화면을 그리드처럼 나누고 부분과 관계의 독립된, 또는 모호한 관계를 강조한다. 병치와 화면분할이란 형식과, 하나로 융합되지 못하는 관계라는 주제는 서로를 보완하고 더욱 굳게 한다. 작품의 어법과 메시지의 불변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그의 작품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소통의 대상이 발견되기는 어려웠다. 그의 개인전이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 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점차 장식적으로 변해가는 화면도 거장이기보다는 노장으로서 발데사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운 빠지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