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Simultaneous Echoes
hola!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의 젊은 세대 미디어아티스트 10명이 참여한 전시 <동시적 울림(Simultaneous Echos)전>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7월 23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의 무대인 포르타밧미술관은 아르헨티나 4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유명 사립미술관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 취재를 통해 이번 전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이준희 본지 편집장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브라질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가는 즈음에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월드컵 준우승의 아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남반구에 위치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서울과 정확히 12시간 시차가 난다. 따라서 우리나라와는 낮과 밤이 반대고 계절 또한 반대다. ‘남미의 파리’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도시 전체가 전형적인 유럽 도시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오래된 유럽식 건물과 잘 정돈된 공원은 영락없는 유럽 한복판 풍경이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를 선언하는 등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지만 거리나 식당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한국대사관 외벽엔 때마침 한국을 방문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자한 얼굴이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황이 아르헨티나 사람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현수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선 오히려 여유와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이처럼 아르헨티나는 국민 대부분이 백인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여느 남미 국가와 달리 원주민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래설까? 그들은 문화적인 자존감과 우월의식이 넘쳐났다. 그 이면엔 침략과 점령을 통한 식민지배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가 감춰져 있음은 물론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한류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엔 이른바 ‘K-Pop’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의 한국 대중가요가 있다. 한국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클래식 연주자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미술이나 현대무용 같은 순수예술 분야 교류도 점차 확대되어가는 추세다. 이와같은 문화외교의 중심에 중남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에 있는 중남미한국문화원(원장 이종률)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 10명의 작품이 출품된 이번 전시 또한 중남미한국문화원에서 추진하는 문화사업 ‘K-컬처 4중주(팝, 영화, 클래식,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사된 것이다.
예술매체이론 박사인 경일대 사진영상과 손영실 교수가 기획한 <동시적 울림전>이 열린 포르타밧미술관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근래 개발된 신도시 지역에 있다. 마치 바다처럼 넓은 강변에 위치한 미술관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느 오래된 건물과 달리 현대적이다. 미술관 설계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했다. 서울 종로2가 사거리에 있는 삼성 종로타워와 도쿄아트페어가 열리는 도쿄 국제포럼 빌딩이 그의 작품이다. 그것들과 비교해 포르티밧 미술관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뇰리 특유의 건축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2008년 개관한 포르티밧 미술관의 역사 또한 흥미롭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COLECCION DE ARTE AMALIA LACROOZE DE FORTABAT’. 즉 ‘아말리아 라크루제 드 포르타밧의 컬렉션을 모아 놓은 미술관’이란 뜻이다.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 1층은 카페와 아트숍 등이 있고, 2층과 3층에서 기획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도 3층 공간을 활용했다. 지상층보다 훨씬 넓은 지하 전시장에서 컬렉션이 상설전시된다. 지하 1층 상설전의 첫 작품은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Portrait of Mrs. Amalia Lacroze de Fortabat>(1980)이다. 앤디 워홀 특유의 색채로 표현된 아말리아 포르타밧 여사가 이 미술관을 만든 주인공이다. 바로 옆에 걸린 흑백 인물사진을 보면 상당한 미인임을 알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아말리아 여사의 성(姓)이 원래는 포르타밧이 아니었다는 것. 유부녀인 아말리아를 보고 한눈에 반한 아르헨티나의 부호이자 시멘트 사업가였던 포르타밧(Retrato del senor Alfred Fortabat, 1919~1994)의 끈질긴 구애로 결국 아말리아는 원래 남편과 이혼하고 그와 재혼했다고 한다.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포르타밧과 재혼한 아말리아는 포르타밧이 죽은 후에도 시멘트 사업을 더욱 번창시켰고, 그러면서 수준 높은 미술작품을 수집해 미술관까지 건립하게 된 것이다.
백남준의 후예들
한편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손영실 교수는 올해가 백남준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30주년 되는 해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백남준의 인지도는 남미에서도 매우 높다. 아르헨티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그들을 ‘백남준의 후예’로 각인시킨 기획자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백남준의 명성과 맞물려 최첨단 디지털 산업이 발달한 한국에서 온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은 현지 미술계로부터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참여작가 류호열, 뮌(김민선+최문선), 박준범, 오용석, 유비호, 이예승, 이이남, 이종석, 임상빈, 한경우는 2000년대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한국 3세대 미디어아티스트로 구분지울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기반을 둔 영상과 음향, 설치 등 다양한 표현매체를 다루는 이들의 작품은 개인의 내밀한 감수성 문제부터 사회·정치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손영실 교수는 “정치/문화/사회적 정체성이 재편되고 전이되면서 급격한 변모를 거쳐 온 한국 현대사회 속에서 사회와 개인, 예술과 삶, 기술과 예술이라는 이항대립적 관계에서 파생된 현상을 동시대의 시각으로 진단하고자 이와 같은 전시주제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출품작가 가운데 뮌, 이예승, 이종석이 손영실 교수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고 워크숍에 참여했다. 부부 작가 뮌은 올봄 코리아나미술관 개인전 <기억극장>에서 선보여 큰 호응을 받은 미니어처 권투 링 모양의 작품 <앙상블-Ethics Business>과 영상 <Set(American wooden house)>를 독립된 전시공간에 설치했다. 이예승은 오브제와 그것에 비친 그림자를 이용한 설치작업 <Cave into the cave : A wild rumor)> 새 버전과 관람객 소리에 반응해서 점멸하는 전구 작품을 전시장 곳곳에 설치했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느린 카메라 워크로 섬세하게 표현한 류호열은 소형 모니터를 이용함으로써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이 밖에도 임상빈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사운드와 입모양 영상작품을 출품했고, 나머지 작가의 작품은 삼성전자 현지법인으로부터 협찬 받은 TV모니터를 통해 디지털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공개됐다. 이틀 동안 두 차례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결같이 많은 관람객이 이이남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감상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미 여러 전시를 통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거니와 작품이미지가 전시 팜플렛과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서양의 명화 이미지를 차용해 디지털로 번안한 이이남의 작품이 서양인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전시를 함께 관람한 중남미한국문화원 이종률 원장은 미술에 문외한이라며 겸손해하면서도 “한국은 1979년 <한국미술 5천년전> 이후로 대규모 해외전시를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식 해외 전시가 60여 회 열렸고, 1994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1945년 이후 일본미술:하늘을 향한 비명>이라는 큰 규모의 전시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대미술 경우에도 비엔날레를 통해 외국 작가를 초청하는 사례는 많지만, 한국 작가를 외국에 적극 소개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에 기자는 한국 현대미술을 외국에 프로모션하기 위한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했던 전시 <박하사탕전>이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4개월 동안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순회한 적이 있노라 궁색하게 변명 아닌 변명으로 댓구했다. 그런가 하면 현지에서 만난 이민 2세 출신 작가 조용화 씨는 “국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나의 뿌리는 한국” 이라며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앞으로도 한국미술의 발전을 기대하며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남미뿐 아니라 그동안 서구 일부 국가에 편향된 미술교류의 통로를 보다 다각화하고 넓힐 필요성을 절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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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동시적 울림전>을 기획한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손영실 교수
“첨단기술과 문화가 결합한 국가 이미지를 심어줬다”
아르헨티나에서 전시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미디어아트 작업을 해외에 선보일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르헨티나 중남미한국문화원이 2013~2014년 중점사업 분야를 한국미술 전시로 지정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1년 넘게 여러 차례 전시기획안을 아르헨티나 주요 미술관에 제출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올해 초 전시가 결정됐다.
현지 관객의 반응은? 아르헨티나 주요 신문기자들은 물론이고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백남준에 대한 기억 속에서 이번 전시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그들은 백남준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남준 이후 한국의 미디어아트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한국의 젊은 미디어작가들의 모습을 백남준과 비교해보려는 듯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아쉬웠거나 어려웠던 점은? 한국과 물리적으로 먼 남미라는 점이 가장 큰 장애였다. 작품 운송이 쉽지 않은 환경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전시 기획의 첫 단계에서부터 작품 운송 문제는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모니터 기반의 싱글채널 작업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개됐다. 일부 설치작업은 작가가 현지에서 직접 설치했는데,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일 수 없었던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30주년을 전시 주제의 모티프로 설정한 점은 다분히 전략적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에서 백남준의 명성과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가? 이번 전시는 백남준과 젊은 미디어아티스트의 미디어아트에 관한 시선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와 간극을 드러냄과 동시에 급격하게 개인화한 미디어의 변용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전시 기간 중에 ‘한국 현대 미디어아트와 백남준의 유산들’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포르타밧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2시간가량 진행된 워크숍에서 ‘한국 미디어아트의 역사와 특성’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참여 작가의 작품을 보다 자세히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호르헤 라 페를라 교수 등 아르헨티나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이 여럿 참여했다. 그들은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여전히 생소하게 받아들였지만, 백남준에 대해서는 뜨거운 관심을 표출했다.
이번 전시가 향후 전시기획을 추진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되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시 개막 직후 현지 관계자로부터 남미 순회전 제안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실행 여부를 좀 더 차분히 고민해보려 한다. 앞으로 한국 미디어아트의 담론을 확산시키고 동시에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에 프랑스에서 개최할 예정인 전시기획안 확정 작업을 서두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