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윤상윤
왼손 쓰기를 강제적으로 금지당한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 줄곧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이따금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던 왼손으로 2년 전부터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흥을 견지한 채로. 작가는 현재 두 손의 작업 균형을 맞춰가고 있으며 50세쯤 되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의 경지가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
왼손 쓰기를 강제적으로 금지당한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 줄곧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이따금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던 왼손으로 2년 전부터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흥을 견지한 채로. 작가는 현재 두 손의 작업 균형을 맞춰가고 있으며 50세쯤 되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의 경지가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
‘회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성낙희의 개인전 〈Modulate〉가 페리지갤러리에서 3월 5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린다. 점ㆍ선ㆍ면을 이용해 화면 속에서 리듬과 화음을 만들어내던 작가가 어느 순간부터 더 거대하게 증폭되는 음을 화면에 연주하더니 이번에는 소리가 공간을 구축해내는 듯한 연작 〈Sequence〉를 선보인다.
안경수는 재료의 질감과 성향을 탐구하며 그 흔적을 캔버스에 쌓아 올린다. 얇은 지층들이 아크릴의 물성과 만나 쌓이고, 그 표면은 작가가 조용히 조우해온 시간을 머금고 있다. 작가가 지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섬세하게 쌓아 올린 화면은 작가가 만나는 도시의 불완전한 풍경의 겹과 맞닿아 있다.
전시장은 한마디로 어둠과 그로테스크의 향연이다. 잔혹극의 세트장 같은 심래정의 수상한 수술방은 육체를 절단하고 재봉합하여 변이의 산물을 만들어낸다. 심래정의 개인전 〈 B동 301호 〉는 욕망을 행위로 옮길 수 없는 제약이 제거된 일종의 해방구이자 인간 본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실험실을 닮아 있다.
임옥상의 홍콩 개인전은 ‘흙’이라는 주제와 소재를 파고드는 그에게 일대 전환점이었다. 땅의 서사와 흙의 물성에 몰두하던 그가 또 다른 지향점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에서 ‘획’으로의 환원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환은 그를 민중미술가냐 아니냐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임옥상은 이분법을 넘어 관계항을 설립하고 다시 그로부터 벗어날 이유를 찾고 있다. 그의 거친 작업의 표면을 매만져본다.
강서경의 작업을 보면 긴밀하지만 적당히 밀접하고, 일시적이지만 존재감은 지속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비(非)가시적인 공간과 그 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써내려가는 그를 만나보자.
밤하늘에 빛나는 수없이 많은 별처럼 인간 역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빛난다. 동양화가 김성희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선과 점은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같다. 소멸과 탄생의 과정이 윤회하는 자연 만물과 인간 세상에 대한 주제의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생각을 미술평론가 최열과 함께 문답식으로 풀어낸다.
이강소는 인위적이지 않고 직감적으로 작품을 창조한다. 작가 이강소의 1970년대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예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 권순영의 그림은 이중적이다. 순수와 잔혹, 아름다움과 추함, 유년과 성년, 현실과 판타지, 웃음과 눈물, 폭력과 희생, 이성과 감성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다. 순수의 잔혹함이 반영된 그의 그림은 사회와 인간 내면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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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너머 출렁이는 폴리팝의 달콤함
최금수 | 전시기획자,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섬이다. 한반도의 반쪽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이고 북쪽은 비무장지대로 가로막힌 이념 절벽이라 안타깝지만 참말로 섬이 맞다. 물론 깊은 원한이 맺혀있기에 사람들은 그 절벽을 너무나 아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냉전의 결과인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미움은 미성숙한 국가의 내부통치를 위해 이용되었다. 그 결과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법적으로 금기시하고 대치 상황은 일상적인 위기감으로 변절되었다. 그리고 근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섬나라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해진 불안감을 즐기며 너무나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기나긴 적응의 세월 탓에 북에 대한 이질감은 무관심으로 변했으며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두려움만 출렁일 뿐이다.
지난겨울 이후 한반도 상황은 남북 교류를 모색하며 분단의 위기와 긴장이 해소될 거라는 낭만적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제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을 누빌 철도를 준비하기도 하며 예전 ‘낭만적 통일론자’들의 어눌한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무지갯빛 급류를 타고 있다. 정치적 통일이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가들이 풀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몇 년 새 냉전의 기억을 추스르는, 민족분단을 주제로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발표가 잦아지던 차에 한국현대미술에서도 작금의 해빙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국가적 통일이야 쉽지 않겠지만 종전협정 체결 또는 민간교류의 물꼬가 조만간 트일 듯한 조짐이 체감되기에 예술가들의 ‘분단 해소’를 위한 노력들이 부각되고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의 작품에서도 기나긴 분단이 결과한 오해와 폭로의 함성이 가득하다. 미술사적 양식에서 보자면 사회주의권 선전화(宣傳畵)와 현란한 팝아트를 섞은 당당한 형상과 선명한 색상들 덕분인지 천민정의 프로파간다는 무척 힘이 있고 감각적으로 밝다. 그리고 섬나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환경을 넘어선 입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상상력은 매우 자유분방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미지들이 과감하게 등장하는 그의 작업은 섬나라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편안한 그림은 아니다. 더구나 두 개의 이질적인 나라가 지루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려는 습관에 젖어있는 섬나라 사람들에게 천민정의 작품은 다소 공포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전체주의 또는 민족주의적 상징 풍경들은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 선전물로 가치관을 교정하려는 작업의 일환처럼 사명감 또는 부담스러움을 조장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천민정은 이 부담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달콤한 롤리팝을 끌어들였다. 무지갯빛 회오리를 담은 미끈미끈한 롤리팝은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에 의해 폴리팝(POLIPOP ; Political Pop Art)으로 변환된다. 그 달콤함으로 중화시킨 이념적 이미지들은 곧바로 몽환적인 천민정의 이미지 세계로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천민정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가임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절차인 것이다. 이제야 두 개의 나라 어느 편도 아닌 예술의 영역에서 차분히 작품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 셈이다.
‘김일순 교수’가 전파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김일순. 낯설지만 익숙한 이름의 김일순은 천민정이 고안해낸 가상의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화가, 해군사령관, 농부, 학자, 교수,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하나의 인간’이다. 때때로 천민정은 김일순이 되어 “세상은 북한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김일순의 등장과 함께 구비된 선물들은 층층히 쌓인 1만 개의 초코파이와 미술사 강연을 동영상으로 저장한 USB이다. 마치 북한에 살포하기 위해 날리는 비닐풍선에 넣어졌던 내용물들처럼 북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전해지는 달달함과 호기심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김일순의 그간의 행보를 보자면 체제 풍자꾼이라기보다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그 달달함과 호기심의 범위가 북한이라는 특정지역으로 좁혀진 것은 사실이나 최근에는 ‘모성애’라는 지도자적 품성에 더 심취해 있는 것을 볼 때 김일순은 민족분단 때문에 잊고 살아온 ‘촌스럽지만 당당한 어머니’로 좀 더 건강한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설파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역시 천민정의 예술세계에서 가상활동으로 실재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작품 속에서 가상인물 김일순의 아들 ‘김시운’과 딸 ‘김시아’가 북한 어린이로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수고롭게 직접 분장한 천민정의 친자녀다. 이 해맑은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되묻게 하는데 이는 굳이 한반도에 국한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천민정은 이에 대해 “그림 속에 보이는 행복한 얼굴은 각 나라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를 수 있고 딱 한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천민정의 작품 배경이 되는 풍경들도 북한의 달력 사진이나 선전화 등에서 따온 것인데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김일순 교수는 북한 주민과 어린이를 위한 10회의 미술사 강연 동영상을 제작하여 USB에 담았다. 그 강의의 주제는 ‘미술과 인생’, ‘미술과 음식’, ‘미술과 돈과 권력’, ‘추상미술과 꿈’, ‘페미니즘, 우리는 평등한가’, ‘미술, 삶의 문제, 그리고 사회정의’, ‘리믹스와 차용미술’, ‘미술과 기술’, ‘미술과 침묵’, ‘미술과 환경’ 등이다. 제목만 보아도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짚는 내용이다. 더구나 미디어아티스트 천민정의 발랄함이 더해지면서 캐릭터와 영상의 짜임이 유명 유튜버 수준을 넘고 있다. 얼핏 무거운 주제들인데 밝은 미래를 생각하는 김일순 교수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2017년 이텐 코헨 갤러리 뉴욕에서 열린 〈엄마: 매스게임-어머니의 사랑으로 북한을(UMMA: MASS GAMES – Motherly Love North Korea)〉 (2017.10.20~1.11)을 보면 천민정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더욱 명료해지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특히 ‘엄마 UMMA’라는 이미지를 빌려 한반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자식을 끌어안으려는 시도인데 그가 염두에 둔 실천적 미술행동에 좀 더 다가서는 느낌이다. 단기간 소모되는 정치적 예술이라기보다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예술영역에서의 정치적 발언인 셈인데 김일순의 품성으로 보아 충분한 현명함을 지녔을 것이라 짐작된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아직도 존재하는 섬나라 사람들의 어설픈 편견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막막했던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반기면서 예술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21세기 들어 세계 예술에서 무수한 다양성을 확보한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현대미술계의 환경 또한 많이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겠으나 분명 예술과 정치의 다름을 느낀다. 때때로 예술보다 정치의 속도가 너무 느림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회적 삶에 서 반성의 계기를 만드는 예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신뢰는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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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민 정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메릴랜드 미술대학 이미징&디지털 아트 석사, 스위스 유럽대학 대학원 연계과정(EUFIS)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철학 박사를 받았다. 인사아트센터(2005), C. Grimaldis 갤러리(볼티모어 2008), 성곡미술관(2012), 트렁크갤러리(2014)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 미술대학(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교수로 재직하며 이탠 코헨 갤러리 소속 작가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9월에 열리는 〈2018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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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미술 >⠀Vol.401 | 2018.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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