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FEATURE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새로이 발굴한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사료 세 가지
이태호 | 명지대 교수, 문화예술대학원장

공재 윤두서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문인화가이다. 그의 탁월한 묘사기량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하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서거 300주기를 추모하여 대규모의 도록 발간과 함께 <공재 윤두서전> 을 마련하였다. 윤두서와 관련한 조선후기 서화와 문학, 그리고 학예를 망라하는 빅 이벤트였다. 해남윤씨 집안의 자랑인 녹우당綠雨堂의 대표가 가사문학의 효시 ‘고산 윤선도’에서 그의 증손자 ‘공재 윤두서’로 바뀌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윤두서의 예술세계를 재평가하는 좋은 기회였다.
이 글에서는 내가 새롭게 만난 윤두서 일가의 세 가지 회화사료를 살펴보겠다. 첫 사례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천하지도>로, 이 지도가 윤두서의 중국지도임을 검토한 것이다. 둘째는 단양 하선암 바위글씨에서 발견된,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이다. 셋째는 윤두서의 손자 윤위가 그린 <구택규 초상>으로, 요근래 세상에 나온 그림이다. 이들도 <공재 윤두서전>에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필자의 게으름 탓에 이제야 소개하게 되었다.

이태호 (1)-1

윤두서 추정 〈천하지도天下地圖〉 종이에 수묵담채 128.2×156.7cm 18세기 초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윤두서의 중국지도, <천하지도>
<천하지도>는 조선 닥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18세기초의 대작인즉, <천하대총일람지도天下大摠一覽之圖>라는 명칭으로 진작에 알려져 있었다.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1929년 박봉수에게 당시로는 엄청 고가인 3000원에 구입했던 지도이다. 필자는 최근 학술심포지엄에서 이 지도에 대해 윤두서 제작설을 제기한 적이 있다.(이태호, <조선후기회화의 사실정신과 지도, 그리고 대동여지도>,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 -대동여지도간행 15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국립중앙도서관, 2011) 접힌 소책자 형태가 현재 녹우당에 소장된 윤두서의 조선지도나 일본지도와 흡사하여 그렇게 주장한 것이다.
국화무늬 능화판으로 찍은 <천하지도>의 표지에는 활자식 명조체로 ‘천하지도, 부 조선 류구국天下地圖 付 朝鮮 琉球國’이라는 묵서가 씌어 있다. 현재의 장황은 19세기 말 이후 다시 꾸민 상태이다. 제목과 같은 글씨체의 ‘천하대총일람지도’를 별지에 써서 지도 위에 덧붙였고, ‘조선국’ ‘류구국’ 등을 써 넣었다. 뒷면에서 음각의 ‘德’자와 그 아래에 붙은 양각의 ‘弼’자를 배치한, 2cm가량의 붉은 인장으로 찍은 전서체 ‘덕필’이 눈에 띈다. 위치로 보아 소장자가 찍은 것이다. 이는 재표구하면서 본래 지도 뒷면에 있던 도장을 오려다 붙인 듯하다. ‘덕필’은 윤두서의 조카뻘인 윤덕필(1723~1793)로 생각된다. 윤덕필은 해남윤씨 어초은파 중시조인 윤효정의 넷째 아들 윤부尹復의 6대손으로 강진에서 종택을 이루었다. 언제 윤덕필의 소유로 넘어갔는지 모르나, <천하지도>가 윤두서의 작품일 개연성을 높여주는 소장인이다.
윤덕희는 윤두서가 중국지도·조선지도·일본지도를 그렸다고 밝혀 놓았다.(<恭齋公行狀>) 현재 녹우당에는 윤두서의 조선지도인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와 일본지도인 <일본여도日本與圖>만이 전해져, 이 <천하지도>가 윤두서의 중국지도임을 점쳐본다. 조선과 류구를 함께 그려 넣고 ‘천하지도’라고 표제가 바뀌었지만,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중국지도라 이를 만하다. 붉은색 선묘의 도로표시, 같은 색 외곽선과 노랑이나 파란색 바탕에 지명을 써놓은 방식, 약간 길쭉한 지명의 행서체, 그리고 <천하지도>의 필치와 회화적 분위기가 윤두서의 조선지도나 일본지도와 근사하다. 특히 전체적으로 사막, 만리장성, 산악, 강과 호수, 바다 표현과 색채감이 한 폭의 그림다운 맛을 돋운다. <천하지도>의 제작시기 또한 윤두서가 두 지도를 그린 1710년대와 멀지 않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천하지도>는 북경·남경의 양경兩京과 13성省의 명나라 행정체계를 바탕으로 삼았고, 만주지역의 영고탑寧古塔과 오라烏喇, 그리고 심양審陽을 승격시킨 성경盛京 등 청나라 초기의 새 지명이 공존하는 지도이다. 이를 통해 청조가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기 이전의 정황을 읽어내기도 한다.(오상학,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 창비 2011) 일본의 위치를 글로만 써놓고 류구국을 크게 강조한 것도 이 지도의 특징이다. 또 일반적인 류구지도와 달리 상하가 뒤집혀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조선에서 내려본 시점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지도가 16~18세기 조선에서 유행한 가운데, 이 <천하지도>는 조선을 가장 자세히 그린 사례이다. 경도京都와 함흥, 평양, 해주, 원주, 공주, 전주, 대구, 제주 등 8도 소재지의 원이나 네모 표식과 더불어 주요 지명과 강·산·섬의 이름이 가득하다. 1680년대에 등장하는 무산茂山이나 순흥順興 등의 지명이 있고, 1712년 5월 15일 조선과 청의 국경협약에 따라 백두산에 세운 임진정계비壬辰定界碑가 보이지 않음은 이 지도의 제작시기를 1680년대 후반~1712년 이전으로 짐작게 한다. <천하지도>가 백두산정계비를 표시한 녹우당의 <동국여지지도>보다 앞서 그려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산맥의 흐름보다 농담으로 주요 산들을 독립해 강조한 표현이나 바다의 파도형 물결무늬는 고식으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인촌기념관 소장)를 비롯한 16~17세기 중국지도의 유형이 잔존한 증거이다. 윤두서는 1712~15년경 <동국여지지도>를 그리면서, 왜곡이 심하던 <천하지도>의 조선 영토 남쪽과 제주도·대마도를 상당히 수정하게 된다.
<천하지도>를 포함한 윤두서의 조선지도나 일본지도에 대하여, 한국지리학 연구의 중추이자 권위인 이기봉 박사는 “창조적이지는 않지만, 앞 시기의 사례를 정성스레 베낀 지도들이다. <천하지도>의 경우 중국 간행본을 모사하면서 제작자의 식견에 따라 조선 부분에 당시 지명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윤두서는 자화상을 치밀하게 그렸듯, 땅의 초상 또한 세세하게 지도로 제작했다. 그가 지도를 베낀 큰 이유는 병법을 연구하고 무기를 제작하는 등 병류兵流, 곧 군사학에 관심이 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장수나 호걸형의 자화상 이미지에 걸맞는, 사내다운 취미이다. 동시에 그는 천문학이나 수학에도 전문성을 지녔다. 1706년 12월에 송나라 수학자 양휘의 《양휘산법楊輝算法》을 필사했다고 본다. 청나라 황정黃鼎이 저술한 백과전서 《관규집요管竅輯要》(80권 25책)를 여럿이 필사하면서 직접 삽도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윤두서가 중국의 과학서적을 모사하던 이 시절, 1706년경 전후에 중국지도인 <천하지도>도 제작했을 법하다.

이태호 (8)

윤덕희 〈도담절경도島潭絶景圖〉 비단에 수묵 27.8×17.1cm 1763 녹우당 소장

윤덕희의 단양 바위글씨와 <도담절경도>
이번에 윤덕희의 <도담절경도>를 대하면서, 언젠가 충청북도 단양을 답사할 때 발견한 하선암의 바위글씨가 떠올랐다. 단양팔경의 시작인 제1곡 하선암下仙巖
큰 바위 아래의 조각바위에 오른쪽부터 ‘윤덕희尹德熙’, ‘윤덕후尹德煦’, ‘윤덕염尹德廉’, ‘권엄權儼’이라고 새긴 네 사람의 이름이 나란하다. 바위글씨들은 약간 비뚤하고 고졸한 행서체이다. 윤덕희의 서풍은 아니니, 나머지 셋 중의 한 명이 썼겠다. 이렇게 명승고적에 새져진 바위글씨는 훌륭한 사료가 된다. 포항 내연산 폭포의 ‘겸재 정선’, 삼척 무릉계곡 용추폭포의 ‘정선과 이병연’, 단양 사인암의 ‘이인상과 이윤영’, 양산 통도사의 ‘김홍도와 김응환’ 예처럼, 바위글씨에서 유명인사의 이름이나 시같은 필치를 만날 때 반갑기 그지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옹連翁 윤덕희(1685~1766)는 윤두서의 9남3녀 중 장남으로, 아버지를 따라 문인화가의 길을 걸었다. 82세로 장수하면서 집안을 건사했다. 윤두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막내인 윤덕증(1714~1778)이 돌 지난 해였으니 윤덕희는 대가족의 맏형으로 아버지의 역할마저 해야 했다. 윤덕희의 단양 유람에 동참한 윤덕후(1696~1750)는 윤두서의 넷째 아들이고, 윤덕염(1702~1754)은 여섯째이다. 윤덕희는 1746년 6월 남쪽으로 가는 윤덕후에게 애정이 서린 이별의 징표로 <선면산수도>(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그림부채를 선물한 적도 있었다.
섭서葉西 권엄(1729~1801)은 관찰사, 대사간, 판서 등을 두루 지낸 문신文臣이다. 세 형제의 여행에 나이 어린 권엄이 왜 참가했는지 궁금해서 해남 윤씨 족보를 뒤지니, 윤두서의 둘째인 윤덕겸(1687~1733)의 사위로 나온다. 권엄은 나이로 보아 윤덕겸의 늦둥이 딸과 결혼했다. 윤덕겸의 사후인 1745년 전후에 맏형 윤덕희가 챙겼을 혼사이다. 이들 네 명의 생졸년과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윤덕희가 1747년 3~4월 금강산을 여행(《금강유상록》)하기 이전인 1745년 전후에 단양팔경을 다녀간 듯하다.
윤덕희의 노년 필치로 어눌하게 그린 비단그림 <도담절경도>는 1763년에 그린 <송월농현도松月弄鉉圖>와 마주하여 서화첩 《보장寶藏》(녹우당 소장)에 들어 있다. 단양을 유람한 지 근 20년 뒤 실경을 추억해서 그렸을 수묵화이다. 중경에 도담島潭 세 봉우리를 우뚝하게 과장해 배치하고, 멀리는 치악산경이다. 화면의 왼편 구멍이 뚫린 봉우리는 도담삼봉의 맞은편 북쪽 강언덕의 석문石門이다. 이 그림처럼 석문과 삼봉이 한 화면에 담길 시점을 실제 현장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윤덕희가 단양의 명소 도담 풍광을 그렇게 기억해 구성했을 것 같다. 또 윤덕후에게 그려준 <선면산수도> 역시 강변의 험준한 벼랑과 산세에서 단양풍경을 연상케 한다. 윤덕희의 기억에 따른 합성과 변형방식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형식을 완성한 겸재 정선(1676~1759)의 화법과도 유사하여 흥미롭다.

이태호 (11)

윤위 〈구택규 초상〉 비단에 수묵채색 58.7×42.3cm 18세기 중엽 서울옥션 125회 출품작

윤두서의 손자, 윤위의 <구택규 초상>
윤위의 <구택규 초상>은 관복차림의 문신 흉상이다. 2012년 가을, 프랑스에서 국내로 반입돼 옥션에 출품되었다.(제125회 서울옥션 미술품경매 도록, Lot.414, 2012, 9) 족자로 꾸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림에는 이름이 없으나, 초상화의 아랫단에 ‘1760년 7월(음력) 피눈물을 흘리며 썼다’는 단정한 예서체의 글에서 초상화의 주인공이 확인된다. 글쓴이는 병조판서를 지낸 구윤옥具允鈺 (1720~1792)이다. 그가 떠올린 ‘중년 이후의 아버지’, 곧 초상인물은 한성부판윤을 지낸 존재存齋 구택규具宅奎(1693~1754)이다. 1750년경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범재泛齋 윤위尹愇(1725~56)라고 밝혀 놓았다.
윤위는 윤두서의 일곱째 아들인 윤덕현尹德顯 (1705~72)의 장남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시와 문장으로 유명했다. 32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범재집》이 전하고, 서문을 윤두서의 외증손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지었다. 윤위의 아들 남고南皐 윤규범尹奎範(1752~1821)이 요청한 서문에서, 정약용은 절친인 윤규범의 천재성 못지않은 윤위의 문학세계를 서성書聖 왕휘지·왕헌지 부자에 빗대서 칭송했을 정도이다. 윤위가 그린 초상화의 출현으로, 윤두서 집안에서 삼대에 걸쳐 배출된 문인화가는 3명에서 4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구택규 초상>은 50대 사대부 문관의 고집스러운 품위가 가득한 비단그림이다. 오사모에 분홍색 단령포 차림으로 전형적인 조선후기 관복 초상화 방식을 보여준다. 구불구불 세심한 선묘의 희끗희끗한 수염이나 붉은색 입술, 음영을 살짝 넣은 기법은 <윤두서 자화상>에서 배웠을 법하다. 이마와 눈가 주름, 코와 안면의 검버섯 같은 피부병 묘사까지 사실감이 서늘하다. 어깨선의 수정 흔적이나 몇 가닥 옷주름에 보이는 조심스러운 붓자욱은 문인화가의 담백한 감성을 물씬 풍긴다. <구택규 초상>은 소품의 흉상이지만 단아한 명작이다. 윤두서의 뛰어난 소묘력 유전인자가 기존에 알려진 연옹 윤덕희-청고 윤용 부자보다 윤위에게 내려진 모양이다. ●
 

[Special Feature]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연탄(11.3%), 삐삐(9.3%), 공중전화(7.3%), 버스 안내양(5.3%), 시내버스 토근·회수권(5.1%). 이상은 2007년 갤럽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지난 20년간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들, 즉, 오래전에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잘 볼 수 없거나 잊혀진 것들로 어떤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나십니까?’를 물은 조사에서 상위 5위를 차지한 답변이다. 새로운 상품, 건물이 사회를 언제나 진보시킨다는 이상 아래 우리의 일상 속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개발은 무엇의 소멸 위에 존재한다. 최근 새로 생긴 것만큼이나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고 있다. 1980년대에 유행하던 가요의 리메이크앨범,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와 그 당시를 주름잡던 가수들의 컴백이 자연스러워졌다. 도시 속 네모반듯한 빌딩숲보다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동네가 관광지가 되고, 인터넷에는 ‘00년대 생 공감’이란 키워드로 1980~1990년대 출생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졌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소멸된 것에 대해 회고하는 자세는 단순히 나이 지긋한 이들의 ‘추억 팔이’에 그치지 않는다. 어제를 지나온 모두가 사라진 것을 곱씹는다.
미술은 익숙했으나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혹은 잊혀진 것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월간미술》은 사라진 것을 작업의 소재나 주제로 취하는 작가 7인(팀)의 작품을 만나본다. 이들의 작업은 관객에게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한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개발논리의 산물인 폐허라는 도시 속 공간에 대해 미술계에서 다양하게 시도되는 대처법, 최근 열린 일련의 전시에서 잊혀진 과거를 회고하는 성격을 띠는 전시도 짚어본다. 모든 것이 빨리 변화하고 쉽게 잊혀지는 지금, 생성되는것 보다는 없어진 것, 그리고 그 사라진 것들을 포착한 미술 속 기억의 책장을 열어본다. 2014년 끝에 서서, 지금 우리 곁에서 아련해져가는 것들에 대한 미술의 마주하는 법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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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추억

오브제의 발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도구가 어느새 오래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새로운 무엇인가로 대체된다. 정재호의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익숙한 형태의 생활 속 물건을 보여준다.

정재호-대화_ 사본

<대화> 한지에 아크릴 135×200cm 2013

정재호-트랜지스터_ 사본

<트랜지스터> 한지에 아크릴 88×104cm 2014

“오래된 구형 전화기를 그린다면 그 이유는 전화기라는 쓰임에 있지 않다. 쓰임보다는 오히려 그 생김새에 있다. 투박한 외형은 그것이 다름 아닌 ‘전화기’라는 물건임을 강하게 보여준다. ‘전화기’라는 물건의 대명사에 요즘의 핸드폰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핸드폰은 존재감이 없다. 핸드폰뿐인가, 요즘의 사물은 모두 존재감이 없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커다란 TV를 보았는데 TV는 없고 화면만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러니까 사물의 기능이 형태가 되는 꼴이다. 나는 그런 사물을 보고 도무지 그릴 욕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림에 대한 욕구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와는 다르다. 그것은 순전히 생김새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붓질을 지속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림은 매우 지루한 붓질의 과정이다. 그걸 지속시켜 주는 것은 역시 그 사물의 형태이다. 붓질은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다시 만지는 행위이다. 저기 있는 저것은 만질/그릴 만한가? 다소 에로틱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 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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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하는 풍경

우리의 주거환경은 짧은 시간에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했다. 당대의 생활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주거의 변화를 작가 김주리는 예민하게 드러낸다. 동네에서 사라져가는 근대주택은 흙과 물로 재현한 그의 작품에 의해 전시장에서도 서서히 무너져간다.

김주리 (3)

<휘경;揮景-h07> 흙, 물 70×36cm, 2012

김주리 (1)

< landscape-scence01(부분) > 흙 물 245×245×40cm 2014

“<휘경:揮景>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한국의 근대주택 시리즈는 1970~1980년대에 대량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의 곳곳에서 서민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고 있는 가옥들에 관한 작업이다. 근대건축물이 지어진 초기에 서구에서 들어온 붉은 벽돌과 시멘트 기와의 조합과 더불어 여러 형태의 문화와 욕구들이 혼합된 한국형 근대 주택의 모습이다.
실제 존재하는 집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해 흙으로 재현해낸 다음 물을 부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 집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 죽음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사회의 건축물은 당대의 정신과 문화, 재료, 시대적 상황이 혼합된 시대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건축물을 흙으로 빚어 물로 녹이는 작업들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알고리즘으로 이는 삶에 대한 관심, 자기 반성적 존재성의 인식에 대한 고찰일 것이다.”
–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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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공간

사진작가 김지연은 동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을 작품에 담는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발소, 정미소는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아련한 추억을 회상시키는 그의 사진은 세대를 막론하고 복합적 감성을 자극한다.

김지연-이용원

<귀빈 이용원> 사진 2004

김지연 책-1

왼쪽에서부터 진안골 졸업사진첩, 근대화상회, 정미소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사진집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억을 찍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뒤처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감정을 사진을 빌려 말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정미소라든지 이발소 등…
물론 여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향수지만 모두와 공유하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그러나 나는 한 이발소, 한 이발사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이들의 직업, 이들의 인생을 직시하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을 기억한다는 일에 이미 감상적인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고 본다. 나는 그 감상을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떠있는 찌꺼기인 거품을 제하고 정제된 감정을 껴안고 싶다. 그렇다! 역사에 남을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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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전시장

새로 생기는 갤러리만큼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져가는 전시공간도 많다. 젊은 작가 오희원은 지난 몇 년간 생성, 소멸되는 전시장을 리서치해 지도에 표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캔버스에 텅 빈 전시장을 담았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전시공간이 그의 그림에 남아있다.

Blind Site 4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했던 브레인팩토리 전시장을 그렸다. < Blind Site : A dry atmosphere >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130.3×89.4cm 2012

Blind Site 2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했던 PKM Trinity Gallery의 전시장을 그렸다. < Blind Site : Natural >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145.5×97cm 2011

“회화 연작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기념한다거나 혹은, 묘사에 집중한 그림이나 제도 비판을 의도한바 또한 아닌 불명확한 상태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전시장이란 특수한 공간에 내재하는 양상을 관찰하면서 재현된 회화는 익명의, 개별성을 함축한 공간으로 관망되면서 범주화된 전시장들의 축약된 세계로서 가시화돼왔다. 실공간의 기록을 단서 삼아 다층화된 시선 아래, 작업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시간의 연속성과 단절 같은 상반된 흔적을 기록하는 매개체로서 그려졌고, 의도의 개입 여부를 떠나 현재를 관찰하는 재현의 도구로 읽히면서 시간의 동반 아래 의미가 생성되고 있었다. 재현하는 대상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자 한 회화는 강화된 과거와 망각돼가는 오늘 그리고 흐릿한 미래를 암시하는 정조를 드리우며 그려진 대상을 표지하는 상징으로 대리되었고, 과거의 미술이 설정했던 배경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재편되는 사태를 기록해 나가는 과정을 취하면서 변모된 오늘의 이미지를 그려 나가고 있다.”
– 오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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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갈색의 마찰

요즘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지만 예전에 성냥은 식당, 다방, 레스토랑 등에서 계산을 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물품이다. 이기일은 전시 리플렛을 성냥으로 제작하고, 성냥의 주재료인 유황을 사용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기일 (1)

<성냥그림> 캔버스에 발화제 232×160cm 2005

이기일 (2)

2005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광경

“한때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 성냥공장이 있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지금 단 한곳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경북 의성에 위치한 국내 유일한 성냥공장 성광사의 협조를 받아 제작된 이 작업은 손의 움직임과 마찰에 의해 발화하는 구체적인 물질을 선택하였다. 격동기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군인의 형상을 성냥 재료인 유황으로 만들고 전시 마지막 날 돋보기로 점화하였다.”
– 이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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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쟁이의 리얼리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관 앞에는 상영 영화를 소개하는 간판이 있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담아 지나가는 이의 눈을 사로잡던 영화간판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시각매체 중 하나다.

박태규 (2)

박태규 <추억 Memory1>합판위에 페인트 180×90cm 2002

“어느 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극장 간판. 박태규는 유일하게 수제간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 시대 마지막 영화 간판쟁이다. 극장 간판하면 상업적인 것이 전면에 드러나 있어 순수미술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박태규는 아카데미즘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미지와 매체적 특성을 무기로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으며,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며 인생의 기쁨, 슬픔 등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끄럽지 않고 다소 투박한 붓질은 의도적으로 사진과 같은 느낌을 피하고 우리네 인생사의 고단함을 화폭에 담아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은 작가의 속내가 묻어 있다. 그리하여 박태규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각자의 삶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그 속에 살아 숨쉬었던 추억과 향수에 젖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한때는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던 간판을 자신만의 독자적 미술세계로 승화시킨 작품을 통해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의 매력을 경험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생에서 아름다웠던 한때를 추억해 볼 수 있게 한다.”
– 나민환 (큐레이터)

그림1

김.강.박 씨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캔버스 위에 유화 100×65cm 2008

“물질주의에 의한 사회의 변질은 ‘인간을 위한 도구’에서 ‘도구를 위한 인간’의 형태로 삶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 디지털 프린트나 화려한 컴퓨터 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기계적 조형이 아닌, 직접 손으로 차곡차곡 그려 올린 영화간판을 통해 위트 있는 언어로 묵직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냄으로써 잊혀가는 휴머니즘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간판 제작 형식을 통해(지워내고~그리는) 대상을 탐구하는데 있어 표면적 시각 요소보다 내포된 역사성이 주는 가치에 더욱 접근하는 탐구 방법을 취하고 있다.”
– 김.강.박 씨(김현승, 강천식,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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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타임캡슐 봉인해제

잡지, 신문, 포스터를 포함한 다양한 디자인 소품은 세월이 지나면 당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사료 구실을 한다. 최근 과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다양한 시각매체가 전시장에 등장했다. 단순히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넘어 다양한 오브제들이 전시의 중요한 아카이브로서 함께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기증유물특별전 <응답하라 1994 그후 20년>(10.29~2015.2.22)은 역사의 흐름을 생활 문물로 보여주는 전시다. 서울 수도 탄생 600주년이던 1994년 서울의 생활, 풍습, 인물, 문화예술 등을 상징하는 문물을 선정해 남산골 한옥마을에 매설한 타임캡슐과 1994년 어느 날을 영화, 비디오, 사진, 소리 등으로 기록한 이재용 감독의 기록물 <한 도시 이야기> 등을 전시했다.
이 기록물은 작가 최정화, 오형근을 비롯해 각 분야의 예술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 일상의 기록을 다각도의 시선으로 남겼다. 현재는 슬라이드 필름과 기록영상, 그 기록이 담긴 테이프와 필름이 전시되어 있다.
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은 다양한 시각자료로 한국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게 전시했다. 반공, 유신, 산아제한 등을 다룬 포스터는 사회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60~1980년대 한국의 성장을 주제로 한 제3전시실은 영화, 음악, 스포츠, 패션 등 당시의 대중문화 아이템을 실물자료와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전시가 더 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린 한국근현대 체험전시 <노 모어 아트전>(7.3~9.28)이다. 이 전시는 복고주의적 시점에서 과거의 거리를 재현하고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관객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이중섭, 박수근, 구본웅, 이인성, 나혜석이 살았던 공간을 재구성하고 이상의 제비다방, 국제시장 같은 곳을 재현해 관객이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중심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생활 속 물품들이 전시장으로 들어와 우리의 향수와 기억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를 그리는 중요한 자료 구실을 하고 있다. 전시라는 방식을 통해 단순히 과거의 문화나 공간을 박제화하는 위험성도 있지만, 당시를 경험한 많은 이에게 추억을 떠올리고, 그 시대가 생소한 이들에게는 사료로서 읽힐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복고문화는 단순히 세대간의 차이로 구별짓기보다 그 간극을 좁히는 소통의 무대가 될 수 있다. 지금 너무나 익숙한 물건도 자료로서 또 사료로서 탈바꿈할 순간이 머지않았다.
– 임승현 기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3전시장에 전시된 포스터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물품들.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와 간판도 전시되어 있다.

더페이지 (9)

더페이지 (4)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노 모어 아트전> 전시장 광경. 건물의 겉모습뿐 아니라 실내까지 재현했다.

응답하라 (6)
서울 6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타임캡슐을 포함해 1994년의 생활상을 당시의 물품을 통해 살펴보는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장 광경

[Special Feature]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화단의 과거사가 때늦게 정리된 까닭은 …

반이정 미술비평

1981년 국내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를 지난 11월 극장에서 관람했다. 칸영화제 클래식 복원 프로젝트에 따라 감독이 보관 중이던 필름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을 통해 HD급 화질로 복원한 덕에 33년 만에 재개봉되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의 고전 명화 복원 사업과는 무관하게, 2000년 전후에 개봉한 영화들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으로 화질과 음질을 보강한 버전으로 잇따라 재개봉되고 있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에 힘입어선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 히트작 <메멘토>(2000)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으로 13년 만에 재개봉됐고,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1991)도 22년 만에 재개봉한다.
새 영화를 셀 수 없이 쏟아내는 오늘날 극장가에, 굳이 지난 시절 고전을 복원하는 후대의 오마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재개봉한 <테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복원을 통해 HD급 화질을 확보했다고는 하나, 오늘날 수준의 고화질을 기대하고 보면 안 된다. 상업예술계의 과거 복원 사업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일 듯싶다. <테스>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나스타샤 킨스키의 나이는 18세다. 관객은 1980년 전후로 여배우의 얼굴을 인쇄한 영화 포스터를 아른아른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의 자신을 환기하면서 향수에 젖을지도 모른다. 제도 예술계의 생존은 주목을 끄는 스타에 의존하기 마련이니, 지난날 스타들을 이상화하는 생존 전략은 이상한 것도 아닐 게다.
과거를 복원하는 또 다른 사정은 원작의 품질과는 무관하게, 복원 사업이 후대의 독자적인 성과물로 기록되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을 정교하게 복구하는 디지털 세대의 기술력은 아날로그 세대의 유산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서, 디지털 세대의 독자적인 성과물로 등록한다.
연말을 전후로 한국 화단의 과거사를 복원하는 전시가 3편 이상 개막했다. 아르코미술관은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에서 지난 40년의 기록물 열람으로 아르코가 걸어온 40주년을 기념했다. 소마미술관의 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추진력을 1986~1988년에 출현한 특정 전시장과 기획전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 시기에 출현한 일부 전시를 부분적으로 복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도 국내 작가의 국제 비엔날레 참가 기록을 살펴보는 특별전 <한국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 50년>을 마련했다. 모두 전시된 출품작보다 과거 자료의 열거와 자료집 출간에 집중한 아카이브형 전시였다. 우리 화단 역사의 지난 순간을 불완전하게 복원한 예는 드물게 있었다. ‘현실과 발언’동인 창립 30돌을 기린 <현실과 발언 30년>(2010) 같은 전시가 그런 경우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개막 즈음 열린 (이하 )는 1969년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린 문제적 전시 (이하)을 44년이 지난 2013년 베니스로 옮겨놓은 과거 복원 전시의 대표적 국외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44년의 시차를 타임머신도 극복할 순 없었다. “1969년 당시로선 일상적 오브제들로 채워진 전시장의 충격적인 풍경이, 오늘날 전시장에서 목격되는 다만 상식적인 풍경과 같아진 사정도 있다.”(필자의 글《 월간미술》 2013년 11월호) 이처럼 전설을 복원한 전시회는 세간의 주목을 받긴 쉬우나, 전설이 된 전시 앞에서 감동을 주문하는 관객들의 플라시보 효과로 과대평가받은 부분이 분명 있을 게다.
과거사를 복원하는 동력은 또 무엇이 있을까? 손쉬운 해답은 과거를 소홀히 다룬 우리의 부실한 기록문화에 대한 자성의 결과로 보는 거다. 그렇지만 아르코미술관이 소박한 이번 자료전을 마련하려고 개관 40주년까지 손놓고 있던 정황이나, 정권이 수차례 바뀐 연후에 ‘현실과 발언’의 30주년 전시가 마련된 점 등을 볼 때, 10년 단위 기념행사에 내면화 된 타성적인 대응 같기도 하다. 장소 이전과 두 차례 명칭 개정까지 무려 40년의 역사를 아르코미술관이 이제서 중간 정리한다는 것도 늦은 감이 있다. 국가 기관인 아르코의 뒤늦은 자기 역사 정리는 과거보다 현재의 성과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의 부실한 기록문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제 원로작가로 분류되는 김구림, 성능경, 이건용, 민정기, 윤석남 등이 전성기를 한참 지난 2000년대에 와서야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미술관에서 때늦은 회고전을 여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1990년대 이전까지 화단 헤게모니가 형식주의 미술가들에게 편중된 데에 따른, 후대의 뒤늦은 구조조정일 게다. 1세대 원로 실험미술가 회고전에서 그들을 평가하는 ‘국내 최초의’라는 수식어의 잦은 등장이나, 작가 연보와 세계미술사 연보를 나란히 배치하는 무리수나, 서정추상부터 실험영화와 대지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실험이 작가 1인의 연보 안에 압축적으로 담긴 사정이나, 원로 작가가 여전히 자기과시형 작업을 내놓는 이유 등도, 형식주의 미술과 실험미술 사이의 비대칭적 평가에 대한 실험미술가들의 서운함의 표시처럼 보인다.
화단의 과거사를 정리하거나 재평가하는 작업이 근래에 자주 관찰되는 까닭은, 형식주의 미술과 실험미술 모두 자생적이기보다 후기식민주의적 조건이 초래한 결과여서일 것이다. 그건 한국 미술계가 자생적인 동시대성을 1980년대 전후에야 뒤늦게 확보했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우리 화단의 과거사 복원 배후에는 당장의 성과에 집중하고, 압축 성장과 시대의 유행에 집중하는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을 향한 자성이 작용해서일 게다. 지난 시절 기록물을 한자리에 모은다한들, 그 당시의 현장을 가감 없이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사자들의 회고와 기록물에 의존한 과거 복원은 불완전하기 십상이다. 기억에 의존한 평가는 왜곡되고 윤색되기 쉽다.
근래 과거사 복원 움직임은, 동시대미술의 불안정에 대응하는 미술계의 고립감의 표현 같기도 하다. 아르코미술관의 <미술을 위한 캐비닛>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중견미술인의 인터뷰 영상을 보자. (근래 화단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아) 전시장을 찾지 않게 된다는 윤석남의 고백, 새로운 시각예술 조류에 익숙하지 않다고 털어놓는 전-현직 문예진흥위원장들의 진술, 미술관들이 복합문화공간화하는 현상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미술의 정체성을 살린 차별화된 미술관을 주문하는 안규철의 요청, 아카데미즘과 단색화가 지배한 1980년대 화단에서 ‘현실과 발언’이 주력한 대중과의 소통에 자부심을 드러낸 윤범모의 회고 등은, 손쉬운 키워드로는 포착되지 않는, 동시대 다변화된 한국 미술을 향한 중견 미술인들의 부적응처럼 느껴졌다. 매체 변화가 초래한 오늘날 미술의 다변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미술 전문가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려울 게다. 때문에 수십 년 전 우리 미술의 과거를 재정리하고 재평가하는 일련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키워드와 미술운동과 유대감만으로 존립할 수 있었던 구세대 미술인들이 비선형적인 동시대미술의 정체성을 견제하는 장치처럼 읽히기도 했다.
작년 베니스에서 을 복원한 이 열린 배경도 개별 작품이 관객과 1:1로 마주하며 감상가치를 지녔던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다종의 출품작들이 한자리에 뒤엉켜 ‘어떤 느낌’을 연출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후대의 동시대미술인들이 기리기 위한 것일 게다. 선명한 쟁점을 잡기 어려운 오늘날 미술계의 종잡기 힘든 풍경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을 어쩌면 포스트미니멀리즘, 아르테포베라, 개념미술, 대지미술이 뒤엉킨 <WABF69> 으로 보고, 그 미학적 전환기에 보내는 후대의 예우 같기도 했다.

아르코 (4)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전>(아르코미술관 10.24~11.30) 전시장 광경

송동 (2)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 설치된 쑹둥의 <버릴것 없는(Waste Not)>

미술관 건축의 복원
이제까지 과거 미술사를 복원한 전시 기획의 생리만 다뤘는데, 미술관은 그 스스로 용도를 다한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적인 갱신을 꾀했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혁명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왕족의 소장품을 모아둔 궁궐이었던 사실이나, 철도역과 호텔을 겸한 건물을 허물지 않고 프랑스 인상주의미술의 성지로 전용한 오르세 미술관이나, 2차 대전 직후 지어진 화력발전소가 수명을 다하자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테이트 모던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도 있다. 구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형한 ‘문화역서울 284’나, 군사정권의 잔재인 기무사를 미술관으로 전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나, 전성기를 지나 퇴락하는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다종의 대안공간들로 만든 ‘문래동 예술촌’처럼, 복원을 통해 공간성을 갱신해서 뇌리에 각인된 전시장이 적지 않다.
과거사를 손질한 기획전 프로젝트나 복원을 통해 갱신을 거듭한 미술관의 역사처럼 창작 행위 중에도 폐기된 과거를 손질해서 전에 없는 감동을 만든 시도가 있다. 폐목재를 모아 근대 여성의 인물 계보로 재구성한 윤석남의 설치작업은 버려진 사물과 여성의 일반적인 형편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해석의 지평을 넓혔다. 쇠락한 구식 아파트의 파사드를 연달아 기록한 정재호의 동양화는 제도권 화단에서 동양화의 구태의연한 존재감에 대한 자기고백처럼 읽히기도 한다. 철지난 사물을 집대성한 것만으로 고유한 미적 성취를 구현한 예는 올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최정화의 개인전 <총, 천연색>을 들 수 있다. 조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정화 스타일의 인공 설치물 외에, 출품작 중 절대다수는 그저 수집된 기성품들을 수북이 쌓고 나열한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 폐간된 잡지와 장난감, 영세하고 볼품없는 의자들의 컬렉션으로부터 관객은 전에 없는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방대한 수집품목에서 창작의 발상을 얻은 예술가는 많다. 앤디 워홀이 사망할 때까지 수집한 물건이 담긴 상자에 날짜와 색인을 붙인 결과, 무려 612개의 상자가 나왔는데 <타임캡슐>이라 명명된 이 보관 상자에는 범죄사진과 치아 틀까지 보관되어 있었다. 저장강박증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한 어머니의 1만점이 넘는 소지품들로 초대형 설치물을 구성한 중국 예술가 쑹둥도 있다.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소지품들로 완성된 쑹둥의 설치물 <버릴 것 없는>은 쑹둥의 어머니의 일생을 대리 증언하기도 하며, 자신의 지난 추억을 환기시키는 물건을 발견한 관객에겐 감정이입의 감동을 줄 것이다.
복원하려는 욕구와 향수를 이끄는 동력은 어디서 올까? 서구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 유행했으나 현재 더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소비자에게 향수어린 구매욕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자기 선택권이 있는 20대 초반에는 자신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물과 정서적으로도 강하게 결합하게 된단다. 그 무렵 호감을 일으킨 사물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향수와 애착을 일으키는 사물로 남는단다.
과거 복원을 통해, 한국 동시대미술의 출발점을 1980년대로 귀결시킨, 아카이브형 전시 두 편(아르코미술관, 소마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모순된 감정도 느꼈다. 국내 미술이 가까스로 자발적인 동시대성을 확보한 시기가 신군부 집권기와 우연히 일치했고, 신군부 때 요직을 맡은 박세직이나 전두환 같은 인물이 주요 전시 개막식에 요인으로 얼굴을 비춘 영상 자료들을 반복적으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화단의 과거사를 정리할 때마저 정치적 트라우마에 직면해야 한다. ●

노순택·백승우가 서울관 건립 과정을 담은 영상·사진전시 의 모습

노순택·백승우가 서울관 건립 과정을 담은 영상·사진전시 <미술관의 탄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기록>의 모습

 

 

[Special Feature]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폐허뿐인 세상의 미술

함영준  커먼센터 멤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용어가 새삼 각광을 받는 모양이다. 도심재활성화라고 곧잘 번역되는 이 단어는 한 도시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던 산업의 양상이 바뀜에 따라 도시를 구성하는 인간의 생태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예전에는 필수적이었던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은 버려지게 된다. 그러면 작업실로 쓰기 위해 집세가 저렴한 큰 공간을 찾던 예술가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새로운 생태계가 일궈진다. 그리고 결국 새로운 상업지구로 변모해서 집세가 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수학공식과도 같은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기 위해 굳이 뉴욕이나 런던 같은 서구의 대도시를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뒤늦게 맞은 근대를 스쳐 보내버린 제3세계의 기형적인 도시들에서 이러한 현상은 보다 압축적이고 흥미롭게 재현되는 듯하다. 바로 서울말이다.
600년이 넘은 도시라고 하지만, 서울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역사가 단절돼 있다. 이것은 20세기 중반에 큰 전쟁을 겪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보통 눈부시다고 수식되는 경제 발전의 기반을 여전히 건설업에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2011년 직전까지
서울
은 수많은 대규모 공사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몇 개의 동 단위 면적이 넘는 지구를 송두리째 철거하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아파트 건설과 연관된 경제적 역학 관계에 대해서 이 글에서 깊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꽤 오랜 시간, 아니 6.25전쟁이 끝난 서울의 시민들은 단 한 번도 안정된 주거 환경 속에서 인생 전체를 설계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서울을 규정짓는 이미지 역시 쉽게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목동에 큰 아파트 단지가 생긴 직후였을거다. 내가 유년을 보낸 서울의 서북부는 한창 연립주택 공사 붐이 일었다. 원래 나의 동네에는 마당이 있는 1층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언덕이 많아 수박 크기의 각진 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고정시켜 둔 축대가 곳곳에 있던 동네였다. 이런 동네에 소규모 건설업자들과 복덕방 주인들과 집주인들이 다같이 합세해서 오래된 집을 헐고 연립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아마도 보다 많은 가구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 정책과 맞물린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는 새집을 분양받아 재산을 늘리려고 했던 서민의 풋풋한 재테크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환경은 나에게 공사장에 대한 특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공사가 시작되면 인부들은 모래를 쌓아뒀는데 큰 무덤 크기였다. 바다에서 퍼왔는지 모래에는 작은 조개껍데기가 섞여 있었고, 놀이터가 없던 변두리의 아이들이 그 위에 올라 놀았다. 인부들은 옆에 세워 둔 체에 모래를 걸러내고 시멘트와 섞은 뒤에 등에 지고 일일이 ‘공구리’를 쳤다. 수평에 맞춰 실을 묶고 거기에 따라 벽돌을 쌓았다. 동네 전봇대마다 세로로 된 작은 현수막이 붙었는데, 어쩌구 빌라, 저쩌구 맨션이라는 이름의 새집을 20평 남짓의 크기로 분양하고 실입주금은 얼마라는 내용이었다. 그 빨갛고 노란 현수막과 모래의 밝은 황토색, 벽돌의 붉은색과 시멘트의 회색, 내가 겪은 유년의 이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러한 색깔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울 (10)

강북지역의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잊혀진 풍경과 삶의 모습을 살펴보는 <강북의 달>(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10.7~11.23)의 전시장 광경.

구슬모아당구장

대림미술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안공간, ‘구슬모아 당구장’의 건물 외관

세월이 흘러 그렇게 지어진 연립주택이 평균 20년 정도 되었을 시점이 되자 마지막으로 아파트 단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강남을 중심으로 해서 잠실, 노원구, 양천구 등 아파트로 특징적인 주거 형태를 구성했던, 서울의 전통적인 동네가 아닌 동네들도 아파트를 원했다. 이러한 재개발은 잠실과 반포에 대규모로 계획된 야트막한 주공아파트를 새로 짓는 것과는 좀 달랐다. 붉은색 벽돌, 초록색 옥상, 노란색 물탱크로 대표되던 서민들의 언덕은 힐스테이트 같은 이름으로 새단장되었다. 이러한 난리통을 거쳐 결과적으로 궁극의 목표였던 시세 차익을 얻은 서민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2000년대에 유년을 보낸 청년 작가들에게 동 단위로 철거되어 엉성한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폐허의 이미지는 내가 동네에서 보았던 작은 공사장에 비해 훨씬 거대하고 막막하며 또한 쓸쓸한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스프레이 래커로 ‘철거’라고 쓴 집들은 한동안 철거되지 않았고, ‘원주민 부동산’ 같은 맞춤형 상호를 양산했다. 모든 경제지표는 경쟁하듯 우울한 전망을 암시했고, 계급투쟁의 원리를 전지구적으로 공유하게 된 스마트폰을 맞이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마치 공적처럼 일상화되었다.
올해 초에 나는 회화를 중심으로 하는 살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시는 총 69명의 작가가 150여 점의 작품을 낸 기형적으로 큰 규모의 전시였고, 참여한 작가의 대부분은 20대에서 30대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이러한 규모는 처음 생각보다 좀 더 커진 것인데, 이는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예상보다 그다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의 풍경화는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자연과 맞물리는 풍경이 아니라, 도시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그것도 도시의 틈새, 무너진 콘크리트와 그 주변을 담은 작업이 두드러졌다. 특히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주변을 들러 작가들을 만났을 때, 나는 꽤 많은 작가가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쉽고 진정성 있는 접근법으로 일컬어지는 ‘제 주변에서 소재 찾는 법’을 시전했을 때, 그들이 계속해서 버려진 현대적 건축물에 집착하듯 달라붙는 장면은 꽤 신기했다.
신기함의 원인은 이러했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겪어야 할 유년은 대강 예측이 가능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사교육을 통해야만 입학이 가능한 정도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과, 미술문화를 가깝게 여기기 위한 배경 부모의 문화적 취향은 한국에서라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소위 중산층의 선택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마 현재 젊은 작가의 대부분은 폐허로 이루어진 환경과는 먼 공간에서 성장하며 그 이미지에 영향을 받고 미술가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폐허는 무엇일까? 우선 그들에게 폐허란 존재하지 않은 과거를 향수하기 위한 관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과거, 즉,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 대신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물리적 공간에 미술가로서 본인의 처지를 대입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마치 사회운동처럼 실천을 담보로 하는 미술이 폐허를 집중적으로 리서치해 온 이유는 파괴의 스펙터클 자체가 주는 묘한 쾌감이 그릇된 현실을 폭로하는 이미지로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그러한 운동은 자칫 완벽한 논리적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에 오히려 작품 속의 미적 흐름이 가능한 공간을 차단하는, 때문에 굳이 미술작품으로 호명해야 할 이유가 없는 콘텐츠 덩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오히려 폐허는 젊은 작가들에게 앞서 제시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그럴싸한 영단어가 주는 어감대로, 전지구적으로 공유된 지역-생태-재활-자생 등의 비교적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서울의 수많은 지역은 미술가들에 의해 ‘공공 리서치’라는 작업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리서치 과정의 대부분은 커뮤니티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감상적 인식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우선 서울에만 500개가 넘는다는 지역 축제의 과잉 현상이 낳은 콘텐츠의 혼종교배 때문이기도 하다. 대중이라는 별명을 얻은 시민과 ‘쉬운’ 예술의 만남을 주선하는 수많은 행사에서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조형 설치물을 한 지역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미술적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 ‘공공 리서치 미술작업’과 변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다 깊은 운명적인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은 이제 더는 폐허나 오래된 커뮤니티가 현대적 도시의 보편적 경향을 드러내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뉴욕의 PS1과 런던의 테이트모던이 헌 건물을 미술공간으로 전용한 사실에 대한 수많은 연구 자료가 존재하며, 그렇게 폐허를 의도한 인테리어 디자인은 이미 쇼핑몰 디자인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나간 유행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태와는 다른 상황을 제시해서 각을 세우려는 태도가 더 이상 ‘대안공간’이라 불리는 전시장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옛 기무사 건물을 존중하는 방식이나, 대림미술관 등의 대형 전시장에서 구슬모아 당구장 같은 (대안의) 대안공간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다시 이야기해보자. 폐허가 지칭하는 문화적 지형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논의를 계속해서 진행해야 할까? 그럴 수 있을까? 2014년까지 서울의 미술계에 던져졌던 ‘폐허’라는 공간, ‘도시’라는 화두는 이미 살점이 다 뜯긴 채로 다시 어딘가에 버려질 운명에 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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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명의 젊은 작가가 참여한 커먼센터 개관전 <오늘의 살롱>전시광경

커먼센터_청춘잉여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동시대미술을 두 세대의 작가군으로 묶은 10쌍의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 <청춘과 잉여>(커먼센터, 11.21~12.31)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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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케이크갤러리와 팀황학동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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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의 일부 되기”

케이크갤러리는 2010년부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솔로몬 아티스트 스튜디오’가 그 이름을 바꾼 전시 공간이다. 처음 이름이 입주건물명인 솔로몬빌딩에서 딴 것이라면, 이번 이름은 이 건물의 독특한 구조에서 땄다. 부채꼴 모양의 건물에는 마치 케이크를 잘라 놓은 듯 켜켜이 작은 공간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한 모양새를 한 것은 황학동 중고품시장이라는 특성상 작은 공간에 많은 상점이 들어 설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황학동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제작·유통되어 누군가의 소유물로 쓰이다가 그 기능을 다한 후 거리에 나온 것들로 이곳에서 말끔히 단장하고 다시 진열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까 시장의 제도적인 단계를 지나거나 (어떤 이유로든) 그 효력을 잃은 물건들이 제도와 무관한 방식으로 상품으로 재출현하는 ‘최후의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어느 호시절에는 건물에 빈 공간 하나 없이 상점과 작업장이 입주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임대가 되지 않는 건물의 일부 빈 공간에 미술인들이 찾아오면서 전시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문화인류학이나 도시계획학 등 연구를 위해 황학동을 찾던 발걸음이 사라져갔다. 모두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이곳 시장도 싹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이 지역을 가리는데 급급했고, 서울의 근대화와 도시화를 거론할 때 황학동이란 이름을 배제했다. 하지만 지금도 황학동 시장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고 그것을 목도한 이상, 미술을 매개로 기록하고 전시로 드러내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 황학동’은 리서처 5명(노해나 안성은 윤민화 이소라 장한별)과 작가 5명(손준호 오진욱 이호인 최기창 최우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다. 황학동 솔로몬빌딩 104호를 거점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 동안 황학동 중고품시장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오늘의 황학동 시장을 기록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술을,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이 반드시 지역성이나 장소성에 기반을 둔 당위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학동 시장의 중앙상가 건물인 솔로몬빌딩의 일부를 점유하고 ‘그곳에서’ 미술을 한다는 것은 묘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한 때는 자신들의 거처이자, 상점이 있었던 솔로몬빌딩에 낯선 젊은이들이 찾아들어서 예술을 한다며 전시회를 열고, 그들끼리 어떤 행사들을 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런 일은, 청계천변의 노점상들을 싹 갈아엎고 그럴싸한 상가 건물들을 일렬로 세워둔 일이나, 텃밭을 가꾸던 곳에 들어선 롯데캐슬과도 같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생소한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드는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을 거듭한 끝에 ‘팀 황학동’을 기획하게 되었다. 황학동 시장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처럼 섞이지 못하는 미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황학동과 함께 ‘팀’을 이루고 싶었다.
윤민화・독립큐레이터

팀황학동 (12)

케이크갤러리가 위치한 건물 외관

팀황학동 (15)

팀황학동의 전시장면

 

 

[Special Feature] This is not a tour

10년 전 예술계에서 ‘이동’의 개념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노마딕한 예술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이주, 이산의 경험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장소를 이동하는 물리적 한계가 없어진 오늘날 공간의 이동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예술에서 ‘이동’의 개념 역시 새롭게 변화된 지점이 주목된다.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적인 장소를 방문해 장소의 구체적인 감각을 경험하는 작업 혹은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장소를 이동하며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전시 형태도 이동을 콘셉트로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현지와 긴밀한 협업 속에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전시의 강조점이나 맥락이 유동적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중심의 이동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향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이동의 개념이 작가 개인적 측면에서 상징적인 장소의 변화로 작용했다면 최근에는 구체적인 장소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작품 내용, 전시 형태뿐 아니라 프로젝트, 포럼, 리서치 등의 방식에서 읽을 수 있다. 《월간미술》은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와 교감을 이끌어내는 ‘이동’의 문제를 변화된 지점에서 살펴보길 제안한다.

작가기획 ‘투어(Tour)’와 최근 국내미술

고동연  미술사

“나는 관광행위 그 자체를 일종의 기획자적인(curatorial) 행위라고 본다. 그것은 장소(Site), 그리고 관광(Sight-Seeing)을 일종의 변화, 문화적인 기억과 경험의 매개제로 위치시키는 행위적이고 통합적인 액션이다.1) – 셸리 혼스타인, <장소를 잃다>(2011) 중에서”

*  Shelley Hornstein, 《Losing Site:Architecture, Memory and Place》(Surrey: Ashagate, 2011), p.105.
현대미술에서 오래된 용어나 개념들이 재활용되어 유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현대미술에서 등장하는 도시 투어, 관광을 통한 국제교류 등의 개념 또한 이미 19세기에 등장한 복합적인 개념이자 사회적 현상인 관광이라는 방식을 차용해 새롭게 현대미술에서 변형시킨 예이다. 리슨투더시티의 최근 프로젝트     <전환도시>(2014~)나 전세계 각지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예술가이 다양한 작업과 경험을 프리젠테이션하는 페차쿠차. 혹은 서울, 제주, 경주, 실크로드 등 국내외 작가들이 함께 여행하는 <로드쇼> 등은 도시나 자연환경을 예술가들이 관광자의 눈으로 해석하거나 직접 관광하면서 파생된 작업이나 문화적 이벤트이다.
물론 편의적으로 말해서 ‘관광’을 주제로 최근의 프로젝트, 작업, 전시 등이 전통적인 의미의 관광과 동일한 의도를 지니지는 않는다. 원래 관광이라는 단어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을 가진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여행지를 신기하게 둘러보는 관광이든지 ‘우수한’ 문화를 배우고 모방하기 위하여 탐방하는 관광이든지 간에 제대로 된 국제교류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문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반하여 비판적인 의미에서 도시 속, 혹은 거대 도시들 간의 진보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려는 리슨투더시티의 <서울 투어>(2009~)나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관광지로 변모시킨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2005~)등은 보다 비판적이고 때로는 실험적인 측면에서 관광의 개념을 규정한다. 또한 <로드쇼>(2011~)는 진보적인 이슈들로 전 세계 예술가들을 엮는다. 전통적으로 기득권층을 위하여 봉사해온 국제교류 대신에 진보적인 사회적 이슈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이 만나게 되는 초국가적인 진보의 연대를 달성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관광이 어떻게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전략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또한 최근의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일반화된 국제교류의 유형으로부터 벗어나서 전통적인 의미의 장소성, 개인, 공동체, 커뮤니티, 정체성의 문제를 아우르게 될 것인가? 필자는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개념이 방대하고 복합적인 것이기에 이와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그 발전 방향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투어리즘 예술과 국제교류
최근 한국 현대미술에 등장한 관광과 연관된 프로젝트들은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숭앙하는 현대미술과 보수화된 한국의 정치현실 사이의 충돌로부터 파생됐다. 청계천 복원사업과 이명박(MB) 정권 당시 강행된 4대강 사업,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구축된 제주 해군기지를 복원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MB 정권은 식민시대나 군사독재 시대의 각종 역사적, 건축적 기억이나 방식을 재생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현대미술계는 재개발과 연관된 작업에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할 장소, 대상, 건축물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관광의 개념은 이러한 과정에서 반어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볼만한 관광지, 관광지와 관광자의 정체성, 관광의 경로 등에 대한 통념을 뒤엎고,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관객들이 장소와 장소의 정체성, 기억을 보고(sight-seeing)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표적으로 리슨투더시티 프로젝트들은 1970~1980년대에 세워져 점차로 철거나 재개발 상황에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거나 파괴되기 직전에 놓인 각종 도시의 건축물과 그것들을 둘러싼 기억을 근대화, 자본주의 비판론의 입장에서 끄집어낸다.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주된 소재는 청계천 개발을 둘러싼 건축가, 건축물, 그로부터 파생된 잉여 물건들이 남아있는 세운상가의 특정한 장소들, 황학시장에 집중돼 있다. 물론 이러한 지역들이 각종 국공립기관들의 발빠른 문화정책을 통해 도시재생사업의 부분으로 수렴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투어 형태를 택한 최근의 프로젝트들은 공통적으로 국제교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서울-리버풀’ 도시교환 프로젝트를 필두로 올해 광주비엔날레 강연에 포함된 리슨투더시티의 워크숍 시리즈에는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어서 유사한 이슈를 다루는 작가공동체, 대안공간, 협동조합의 대표들이 참여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로드쇼는 국내 작가들과 외국 작가들이 함께 4대강, 제주 강정마을 등을 돌고 이를 작업화한다. 개발독재시대의 환영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음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관광이 전지구화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면 작가들의 투어는 돈이나 자본화된 문화가 아니라 비평적인 사고가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도시 속으로
‘관광’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최근 프로젝트들이 국제적인 연대를 확고히 해 나가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면 필자는 ‘작가가 기획한 투어’ 자체가 더 흥미롭고 독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물론 작가들이나 그들의 공동체가 기획한 투어가 일반 대중을 끌어들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일반 대중을 끌어들이는 경우에도 과연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기한 것을 감상하고 구경거리에 감탄하는 일반적인 관광객들의 행태나 목적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시 간섭, 장소에 대한 실험적인 작가 공동체들이 벌이는 프로젝트나 전시들이 ‘국내에서 국외로’라는 정형화된 틀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교류를 일종의 그 다음 발전단계쯤으로 여기는 기금 시스템이나 문화정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작가 투어가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미학적, 비평적 가능성을 덜 고민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특정한 이슈를 중심으로 초국가적인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독창적으로 장소를 재해석하고 관광객과 관광지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 더 많은 리서치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몇 가지 작가 투어의 예를 살펴보면서 작가투어의 재연방식이나 가능성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최근 시작된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를 보게 되면 작가 투어야말로 오랜 시간 참여 관객들과 정해진 투어장소간의 상호소통과 변화의 과정을 실험할 수 있는 적합한 방식이며 이를 위해서 다양한 새로운 기술적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는 강서구 등촌3동 아파트를 커뮤니티이자 관광지로 만들고 참여자가 경비아저씨한테서 배포 받은 매뉴얼을 가지고 동네의 일상성을 ‘재발견’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이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며 더 많은 일반인의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에 따르면 웹사이트, 홈페이지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의 파급력 덕택에 작가투어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960년대 관객참여 형태의 작업이 작가와 관객의 관계를 규정하고 얼마만큼 자율적으로 관객이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한 바 있는데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는 이와 연관된 다양한 가능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가 투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작가투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여온 황학동이나 청계천 등은 오랫동안 버려진 공간이었으나 이미 많은 작가의 레지던시, 투어, 심지어 대안공간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투어의 다양한 목적은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스쳐가는 수많은 이에 의해 끝없이 재생산되고 변화되는 곳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외부인이 관람하듯이 투어하는 몇몇 노마딕 타입의 여행 레지던시나 국제교류가 한계를 지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황학동의 중앙시장 내에 5월부터 11월까지 예술가들과 미술이론가들이 모인      ‘팀 황학동’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는데 작가 투어 또한 지속성을 가지고 작가와 지역이 서로 영향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젊은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지만 작가 투어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지역이나 시대에 대한 보다 다양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작가 공동체 ETC는 인천의 구시가지에 자신들이 리서치한 가상의 인물을 따라서 진행되는 투어를 기획한 바 있고 이어 서울역에서 후암동에 이르는 지역의 투어 <If you dreamt it●□★△×>로 발전시킨바 있다. 그들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면서도 다양한 사료, 분석,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동일한 공간과 인물을 가상으로 설정하기도 하는데 철저한 준비기간을 통해서 장소성에 대한 보다 독창적인 해석의 폭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포대에 오래된 질문을 담기
장소성과 개인적, 공동체적인 정체성의 문제는 현대미술사와 인문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였다. 뿐만 아니라 투어와 같은 예술형태는 장소성과 관계미학, 그리고 사회참여의 주된 현대미술의 전략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흥미로운 한 예술적 성향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낯선 타지인들이 볼만한 것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관광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광개념을 패러디하면서 결국 일상성, 새로운 장소, 관계, 장소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발견하고 동시에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개념적이고 비평적인 예술 형태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인 통념, 즉 관광과 자본주의, 새로운 것을 보는 것과 새로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관광을 주제로 한 예술작업, 프로젝트, 문화적 이벤트 등이 함께 떠안고 가야 하는 문제이며 오히려 쉽게 대중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대신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도시 비판이나 국제교류와 같은 축약된 주제나 목적이 아닌 매우 소소하고 다양한 주제와 어우러져서 발전되어야 한다. 새로운 예술형태나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일종의 유행병처럼 전체 미술계를 휩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질문들- 장소, 정체성, 소통, 대화-이 계속 새로운 형태와 만나고 결합되면서 더 독창적인 예술 실험들로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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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씨
etc

도시의 현상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며 리서치/프로젝트 기반의 작업을 하는 ETC는 2097년 정부의 신도시 건설 중 발굴된 도시 유적을 탐험한다는 설정으로 인천 투어 <Back to the Future: ○□★△×>, 서울투어 <If you dream it: ○□★△×>를 진행했다. 과거 도시의 유적지들을 둘러보며 도시의 흥망성쇠를 여러 연극적인 장치들과 함께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 소설가 박태원의 <구보씨의 일일>에 등장하는 구보씨와 연결시켜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펼치는 프로젝트 <도시신사 A씨의 일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게릴라 피크닉인 <황금광 시대: 서울역 롯데마트 야유회>, 영상 상영회인 <멋진 신세계: 세운상가 스크리닝>, 지하철 퍼포먼스 <어느 곳에 행복은 나를: 2호선 순환열차 투어>, 허상을 파는 <다방의 오후 2시: 미네랄 워터 팝업 바>, 그리고 사회군무 워크숍 <신사화와 숙녀화>로 구성된다.

 투어장면 2012

Back to the Future: ○□★△× 투어장면 2012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는 2012년 설립됐으며 이샘, 전보경, 진나래로 이루어진 작가그룹이다. 리서치 기반으로 다양한 상상의 내러티브를 개발하고 안내관광, 대인대행 서비스 등 기존 사회시스템을 패러디하거나 이용하는 작업을 퍼포먼스, 전시, 출판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스페이스빔, 문래예술공장 M3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 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 <기억>(경기창작센터) 등에 참여했다.  theetc.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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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차쿠차 서울
Pecha Kucha Seoul

건축, 디자인,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신인과 기성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는 네트워킹 파티다. ‘페차쿠차(pechakucha)’ 는 일본말로 의성어 ‘재잘재잘’에서 파생한 단어. 이 행사는 2003년 영국 출신의 건축가들이 작품을 공유하고자 도쿄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후 런던, 뉴욕, 서울 등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되어 현재 600여 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2007년부터 비영리단체 어반 파자마(urban Pajama)가 주최하는 ‘페차쿠차 서울’은 다른 도시의 행사와 달리 매회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 것이 특징이다. 관객과 함께 서울의 다양한 장소성을 형성하고 스스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도입된 방식이다. 페차쿠차의 매력은 발표자들이 각자 20개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해 하나의 슬라이드를 20초씩 설명하고 총 6분40초 안에 발표를 끝내는 흥미로운 규칙이다. 이를 통해 현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영역의 벽을 허물며 작업에 공감하고 피드백을 하며 소통한다. 지난 10월 1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는 관객 400~500명이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내년에는 지난 8년간 ‘페차쿠차 서울’에 참가한 150여 명의 작가 아카이브가 출판될 예정이다.  pechakucha.kr

 ‘페차쿠차 서울’ 13번째 행사에서 야마시타 트윅스터  퍼포먼스 공연 광경

‘페차쿠차 서울’ 13번째 행사에서 야마시타 트윅스터 퍼포먼스 공연 광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서 미디어아티스트 에브리웨어 발표 광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서 미디어아티스트 에브리웨어 발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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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슨투더시티
Listen to the city

리슨투더시티는 지난 5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왔지만 이들 활동의 주요 키워드는 ‘도시’다. 2009년부터 시작한 <서울 투어>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탈기념비적 여행 프로그램으로 청계천 복원 현장, 황학동 롯데캐슬베네치아, 동대문 홈플러스 등을 찾아가 스펙터클 이면에 개발주의와 소시민의 삶과 문화가 충돌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이후 4대강 사업이 본격화 하면서 <내성천 투어>를 조직하고 많은 사람이 직접 4대강 현장을 목격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각종 퍼포먼스와 전시를 진행했다. 이는 도시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연을 희생시키는 우리 사회의  잔인함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은 이들 투어는 “도시가 만들어낸 수많은 시뮬라크르를 해체시켜 도시의 차이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하는 실재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최근 이들은 ‘점거’, ‘자립’을 키워드로 내세워 포럼과 공연이 결합된 프로젝트 <전환도시 : 해킹더시티>(10.9,18,19)를 기획해,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도시를 어떻게 공공의 장소로 돌릴 것인가,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장을 마련했다.

리슨투더시티 개발관광여행상품 홍보 포스터

리슨투더시티 개발관광여행상품 홍보 포스터

 페스티벌 광경. 10월 19일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진행된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광경

<전환도시:해킹더시티> 페스티벌 광경. 10월 19일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진행된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광경

리슨투더시티는 미술가 박은선, 디자이너 권아주 정영훈, 영화감독 김준호로 구성된 시각예술가 집단으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2009년 결성됐다.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예술가보다 실재 감각의 회복자로서 예술의 역할에 고민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념비적 여행>(스페이스C), <폐허프로젝트>(경남도립미술관), <식물사회>(팩토리)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독립 건축잡지 《어반드로잉스》를 발간하고 있다. listentothec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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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선
Shin Jisun

<아파트 투어 프로젝트>는 2005년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빌라, 세운상가, 황학동으로 이어졌으며, 작가는 현재 <뉴타운 투어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현지 주민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관광 안내 리플렛에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현지의 볼거리, 유적지, 놀이, 식물원, 예술, 쇼핑, 체험장, 야경 등을 소개한다. 관광지가 될 수 없는 일상적인 공간이 ‘관광’의 형식으로 풍자되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www.apt-tour.co.kr

신지선 apt-tour

아파트 투어 여행사 설치 장면, 퍼포먼스

신지선은 성균관대 예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브레인팩토리에서 연 <아파트 관광>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www.shinj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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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Park Hyemin

작가는 (주)HPARK여행사를 운영하며 ‘쑤이’(중국), ‘씨올라’(인도), ‘씨엘루르’(아프리카)라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고, 한국 안에서 중국, 인도, 아프리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개발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HPARK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여행상품을 실제 해외여행 상품으로 착각한다. 작가는 공동 집필자들과 함께 한국 안에서 접할 수 있는 다문화적 요소를 탐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이드북과 여행사 홍보영상을 제작한다. 현재 영상은 중국, 인도편이 완성됐고 아프리카편을 제작 중이다. 여행을 통하여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다문화도시의 한 이면을 유희적으로 체험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hparktravel.com

HPARK 여행사 투어 장면

HPARK 여행사 투어 장면

 싱글채널비디오 스틸 컷 2013

<걸어서 세계로 : 중국 ‘쑤이’ 편> 싱글채널비디오 스틸 컷 2013

박혜민은 이화여대 회화・판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에서 순수예술 석사를 마쳤다. 5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 부산비엔날레 특별전_두 개의 문>, <움직이는 좌표>(스톤앤워터, 2012)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hparktrav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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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Lee Minho

이민호는 현대 도시를 유영하는 휴대용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여기저기 뚫린 공간으로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 기억과 기억이 연결되는 일상과 그곳으로부터의 일탈이 연결되는 곳. 그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업을 설명한다. 그녀의 사진은 디지털 합성이 아니라 가방에 잔디를 키우고 사진을 붙인 후 이것을 특정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다양한 풍경과 익명의 도시공간이 충돌하는 이미지는 불안하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C-Print 100×150cm 2011

Portable Landscape n.20 C-Print 100×150cm 2011

이민호는 성신여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느 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5년 데까레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www.minho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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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Lee Jungyoon

구두 신은 코끼리를 통해 일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2012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왕복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유의 일련번호가 매겨진 코끼리 봉제인형을 원하는 사람에게 분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되돌려받는 과정을 겪는다. 코끼리 인형은 현재까지 총 10여 개 국가에 360점 이상이 분양되어 여행을 하고 있다. 타인의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난 코끼리들은 단순한 인형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다. 특별한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등 다양한 외적 변화와 함께 여행기간 동안의 각종 기록(사진, 영상, 녹음 등) 등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다.

 돌아온 봉제인형과 소포상자, 가일미술관 설치광경 2013

<왕복여행 프로젝트> 돌아온 봉제인형과 소포상자 가일미술관 설치광경 2013

이정윤은 이화여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9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 부산국제바다미술제>, <2012 창원아시아미술제>, <2014 국제조각페스타>등 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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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애즈 폼
Living as Form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공원도서관 사업 일환으로 해외교류전 <리빙 애즈 폼(더 노마딕 버전)>(2013.10.26.~5.15)이 안양파빌리온에서 열렸다. 이 순회전은 네이토 톰슨과 독립큐레이터 그룹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지난 20여 년간 벌어졌던 ‘사회 참여적 예술’ 가운데 100점을 선정하고 2011년 뉴욕에서 선보인 전시에서 시작한다.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초청한 기관과 큐레이터가 재량에 따라 기존 작업 중에서 골라 전시하며 각자 지역의 활동이나 현지 작가의 작업을 보탤 수 있다. 4회 APAP 노마딕 버전을 기획한 김진주는 기존의 작업 아카이브를 분석해 ‘풀뿌리’, ‘이웃’, ‘참여’ 등의 키워드를 뽑아 대표작 48점을 선정하고 김대남의 사진 아카이브, 박찬경의 영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구민자와 김월식의 신작을 전시에 포함시켰다. 이 전시는 전세계의 다양한 큐레이터의 참여로 사회 참여적 예술에 대한 아카이브를 계속 축적하며 삶의 형태 자체를 누구나 연관된 공적인 삶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www.apap.or.kr/ko/living_as_form

김월식  2014 작가 콜렉티브 ‘무늬만 커뮤니티’의 활동 기록물 복합 설치 (사진: 홍철기, 제공: 4회 APAP)

김월식 <무늬만 아카이브> 2014 작가 콜렉티브 ‘무늬만 커뮤니티’의 활동 기록물 복합 설치 (사진: 홍철기, 제공: 4회 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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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가방 프로젝트 : 쇼 머스트 고우 온
The Show Must Go On

2012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기획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뒤샹의 <여행가방 속 상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담은 가방을 제작하여 운송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큐레이터가 관심이 가는 작가의 포트폴리오 가방을 한 달 동안 가지고 있다가 다른 큐레이터에게 전달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쇼는 계속된다. 이 프로젝트의 장점은 전시의 형태보다 작가의 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작가와 큐레이터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방을 건네받은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 대한 300자 내외의 간단한 평을 작가에게 전달한다. 현재 권순관 김구림 김종구 노순택 서효정 이동재 이창원 장지아 지니서 최수앙 등 작가 26명의 가방이 세계 각지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최수앙의 포트폴리오 가방

최수앙의 포트폴리오 가방

포트폴리오 가방을 받은 큐레이터들의 인증사진

포트폴리오 가방을 받은 큐레이터들의 인증사진

 

 

 

[Special Feature] This is not a tour

 

<로드쇼>의 뒷이야기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길 떠나는 큐레이터 & 작가
큐레이터 18년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쇼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럴싸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고르고. 어김없이 아티스트 비용을 제대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오프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도록을 만들고, 못내 아쉬움을 내비치며 철수하는 사이클. 주제와 작가들은 바뀌지만 전시장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은 언제나 비슷했고 마음은 점점 느슨해졌다. 생각해보니 작가들과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작업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오랜 시간 토론하고, (가끔은) 언성을 높이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털어놓던 기억도 가물하다. 예술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면, 작업실에만 있는 작가와 사무실에만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는 큐레이터가 보여주는 세상은 별로 매력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로드쇼>의 시작이었다.

내성천에서 시작된 첫걸음
2011년 4대강 개발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어찌 되었던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거라며 밀어붙이려는 세력과 허무맹랑한 기획들을 낱낱이 밝혀내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맞부딪쳤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은 알았지만, 현장을 보지 않고, 섣불리 의견을 더하기는 조심스러웠다. 마침 뉴욕 아이빔에 있던 최태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접 가서 상황을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4대강을 모두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적, 재정적인 여유가 없으니 하나의 강이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첫 번째 <로드쇼: 대한민국> 낙동강 여행이 시작되었다.
최태윤 작가는 아이빔에서 Mary Mattingly, Fran Ilich, Nova Jiang, Jon chors 이렇게 4명의 작가를 초대했고, 박은선, 김화용, 이정민, 노순택, 연미, 최빛나 등 일군의 한국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함께 했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관광버스 한 대에 몸을 싣고 여행을 시작했다. 일주일로 예정된 그 여행은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에서 시작하여, 하구에 있는 을숙도까지 계속되었다.
로드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 무엇을 하는 프로젝트냐고 묻는다. 딱히 우리가 뭘 해야겠다는 의지보다는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것이 목적인 우리로서는 ‘여행을 한다’는 것 외에 딱히 그럴듯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액티비스트도 아니고, 저항이나 캠패인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여행이 상황을 바꾸기 위한 도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꼭 뭔가를 해야 하나.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하는 여행의 결과물이 당장 새로운 작업으로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빠듯한 일상에서 일주일가량 일탈하여 함께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경험은 언젠가 좋은 작업으로 나오리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면, 여행에 집중하고, 우리가 만난 것과 생각했던 것들, 이야기 나눈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후반 작업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의 끝에 전시가 아닌 책을 만들기로 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함께 여행하자고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과 함께 한 낙동강 여행은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특히 4대강 이슈에 열정적이었던 리슨 투 더 시티의 박은선 작가, 그리고 내성천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지율스님이 있기 때문에 그저 그런 여행일 수 없었다. 지율스님은 내성천에 왜 오게 됐는지, 낙동강의 모래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강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4대강 계획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도 빼놓지 않았다. 해질 무렵 내성천 모래톱에 앉아 넓디넓은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을 보며 들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물론 많은 여행이 그렇듯 불편함과 갈등도 있었다. 외국작가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어 매끼 메뉴를 고르느라 애먹은 순간도 있었고, 폐교를 개조한 숙소에서, 그것도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단체로 취침하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왜 인터넷이 안되느냐며 매일 인터넷 타령을 하던 외국작가도 있었다. 챙겨야 할 것,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내가 발디디고 있는 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로드쇼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다시는 <로드쇼>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차라리 전시가 낫다고.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이미 다음 해의 <로드쇼>를 기획하고 있었다. 서로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일주일은 포기하기에 얻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드쇼의 몇 가지 규칙들
두 번째 <로드쇼>를 기획하면서 첫 번째 <로드쇼: 대한민국>를 돌아보았다.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지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외국에서 초대하는 손님으로는 작가보다 큐레이터가 더 좋을 듯했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도 소개한다면 여행과 홍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큰 차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단체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4~5명 단위로 나눠 그룹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여행의 경로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고, 같은 그룹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여행 기간 뭔가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과제는 여행도 부담스럽게 하고, 정작 작품도 제대로 나오기 어려우니, 여행이 진행되는 과정에 더욱 집중하자고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아쉬움을 보완하면서 두 번째 로드쇼의 새로운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첫째, 여행지는 기획팀과 이전 참여 작가들의 추천에 의해서 선정한다.
둘째, 해외 초청의 경우 가급적 큐레이터를 초청하되, 작가를 초청하는 경우 전시기획이 가능하거나 혹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다.
셋째, 여행 중 작업에 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신작을 해도 좋고, 퍼포먼스를 해도 좋다. 작업과 관련된 사항은 작가에게 맡긴다. 기존 작업을 가져오는 경우, 10분 안에 설치하고, 10분 안에 철수할 수 있는 게릴라형 전시를 준비한다.
넷째, 작가-기획자-해외 초청자가 골고루 섞이도록 그룹을 재구성한다.
다섯째, 여행지는 기획팀에서 설정하지만, 개별 여행 계획은 그룹 내에서 상의하여 조정할 수 있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로드쇼를 자연스럽게 ‘제주’로 이끌었다. 독일, 인도, 스페인에서 온 해외 참가자들은 서울이 아닌 제주도, 그것도 한국 작가와 기획자와 함께 하는 여행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로드쇼 기간 동안 세 차례 태풍이 오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태풍으로 인해 더 많은 추억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낙동강 여행과는 달리 제주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한 채 빌려 베이스 캠프로 삼았다. 강정마을과 4・3 제주평화공원 등은 함께 방문했지만, 팀별로 한라산을 오르거나 아름다운 제주의 해변을 찾기도 했다.그리고 여행 중간중간에 버스 정거장에서, 둑방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게릴라식 전시도 했다. 그리고 밤이면 다시 베이스 캠프에 모여 번갈아가면서 식사도 준비하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긴 토론을 하기도 했다.

로드쇼는 계속된다
세 번째 로드쇼는 백령도에서 진행되었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곳이다. 북한이 바라다보이고, 연평도 포격사건 현장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 천안함 피격사건 등 백령도는 여느 섬과는 다른 히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루마니아, 스페인, 인도 등지에서 온 기획자(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섬을 여행하고, 바닷가와 심청각에서 퍼포먼스도 하는가 하면, 가지고 간 사진으로 설치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전시장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작가와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로드쇼:경주>를 마쳤다. 경주,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이자 단골 수학여행지인 불국사와 석굴암, 왕릉으로 대변되는 경주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사운드 장비를 가지고 재래시장에서 소시를 채집하는가 하면, 방폐장 앞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문무대왕 수중릉 앞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이름 없는 사찰을 찾아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었다.
함께 여행하고, 작업하고, 이야기하면서 <로드쇼>에 중독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로 마주하는 큐레이터와 작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함께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다음 번 로드쇼를 기대하게 한다. 2015년 로드쇼는 강릉에서 강릉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해보려 한다. 정해진 포맷이 없기에 매번 조금씩 변화하는 로드쇼. 그렇게 로드쇼는 계속된다.

로드쇼, 해외를 가다
최근 해외에서 <로드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마도 전시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 직접적인 홍보효과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해외여행의 경우는 국내여행과 많이 다르다. 국내여행은 우리가 사전 답사도 하고, 여행지에 대한 내용을 사전 미팅과 스터디를 통해서 준비하여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입장이지만, 해외여행은 자칫하면 정말 관광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 현지에서 제대로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큐레이터와 작가 없이는 진행이 힘들다.
올여름, 로드쇼의 첫 해외편인 <로드쇼: 북동부 인도>편을 진행했다. 델리나 뭄바이와 같이 잘 알려진 도시가 아닌 방글라데시 위쪽의 북동부 인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크리스천 커뮤니티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부족도 있었고, 말로만 듣던 헤드헌터 부족이 살고 있는 곳도 있었다. 매일이 문화적 충격이었다. 다행히 현지 큐레이터가 있었기에 그저 관광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현지 작가들과 조인해서 짧은 피크닉도 진행할 수 있었다.     <로드쇼: 북동부 인도>의 경우, 작가들 외에 로드쇼 이후의 다양한 프로덕션을 전담할 팀을 초청했다. 영상 촬영팀과 디자인팀이 함께 여행을 함으로써 작가와 큐레이터가 여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문화원의 후원으로 <로드쇼: 실크로드>도 진행했다. 란저우에서 둔황까지. 서북 중국 역시 베이징이나 상하이와는 전혀 다른 사회이자 문화권이었다. 중국에서 만나는 이슬람 문화권, 말로만 듣던 황하. 함께 한 작가들은 부지런히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 로드쇼와 달리 <로드쇼: 실크로드>는 여행의 결과를 작은 전시로 풀어낼 계획이다.
이외에도 <로드쇼>에 대한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로드쇼: 니스에서 마르세유까지>(프랑스),     <로드쇼: 뭄바이에서 고아까지>(인도), <로드쇼: 히말라야에서 바라나시까지>(인도), <로드쇼: LA>   (미국) 등. 큐레이터와 작가가 함께 하는 여행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드쇼, 남은 이야기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에즈라 파운드는 예술가를 세상의 안테나라고 했다”고 언급한다. 촉각을 세워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 그런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는 큐레이터 역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나 전시가 일이 되고, 작업이 일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안테나에는 녹이 슬고, 촉각은 무뎌진다. <로드쇼>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예술가들의 안테나가 다시 예민하게 작동하길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장 작업으로 나오는 성과보다는 예술가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여행이나 같이 해볼까 하고 시작한 로드쇼는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다시, 또, 짐을 싼다.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니라, 알찬 우리들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들의 이런 경험은 또 다른 작업으로, 전시로 보여질 것임을 믿는다. ●

 안동병산서원 앞에 설치되었던 작가 연미의  작품 관람

<로드쇼 2011 : 대한민국>안동병산서원 앞에 설치되었던 작가 연미의 <뉴스 스탠드> 작품 관람

강정마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이리스 드레슬러, 한스 D. 크리스트,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 권순관 그리고 촬영 중인 노순택

강정마을 앞에서 퍼포먼스 중인 이리스 드레슬러, 한스 D. 크리스트, 다니엘 가르시아 앙두하르, 권순관 그리고 촬영 중인 노순택

 

<로드쇼 2014 : 경주> 재래시장 골목에서 사운드를 채집하고 있는 파스칼 브로콜리키

로드쇼
Road Show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가 기획한 <로드쇼>는 국내외 작가와 기획자들이 여행을 매개로 만나 서로의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다. 2011년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낙동강 일대를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해 제주, 백령도, 경주를 여행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하고, 서로의 시각을 확장시키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올해부터 대상지를 확장해 인도, 실크로드 등 해외 지역을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권 지역과 현지 작가들과의 교류를 도모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함께 여행하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장기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roadshow2014-gyeongju.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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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예술가와 기획자의 ‘이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예술은 움직이는거야”

창작자와 기획자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뚜렷한 성과보다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여행을 지원하는 제도가 눈에 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정재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 지원금 제도가 ‘작품’, ‘전시’와 같은 결과물 지원 일변도에서 벗어나 예술 활동을 육성하는 보다 근본적인 조건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이 높아진 현상을 반영한다.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2008년 몽골 노마딕 사업으로 시작해 이란, 남극, 인도,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등 작가가 개인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 이상으로 작가 개개인의 삶과 작업에 큰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새로운 문화와 낯선 환경에서 현지 작가와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는 측면도 주목된다.
참여 작가의 경우 1회성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레지던스 팀은 기획자와 참여 작가로 구성되며 팀 구성은 기획자 재량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비해 전시, 출판 등 특정한 성과물을 보고하는 방식이 아니며 참여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세계에 반영하고 있다.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3회 참여한 작가 김승영은 “기존 레지던스가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도시로부터 떨어진 장소에서 자연과의 대면을 통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성찰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개념에 좀 더 깊이 몰두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자칫 잘못하면 예술가들의 오지체험으로 그칠 수 있는데, 사업 담당자인 시각예술팀 이동석 씨는 “예술가들이 처음에는 오지에 매료되어 참여했지만 사업이 성숙하면서 작가들 스스로 오지를 타자화하는 것을 분명히 경계하는데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리고 “아르코 측에서도 해외 기관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 교류를 진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호주 파트너 기관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국 작가들이 호주 중심부 사막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올해에는 호주 원주민 예술가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지금까지는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앞으로 음악, 영상,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에게 문을 열 예정이다. 2015년에는 몽골, 호주를 중심으로 진행될 계획이며 나머지 지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노마딕 레지던스 Nomadic Residence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 작가 안경수가 하루에 한 점씩 완성한 작품 이미지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 작가 안경수가 하루에 한 점씩 완성한 작품 이미지

2014년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니마 모랄리아’ 단체사진 (기획 김현주, 작가 김승영, 안경수, 정재철, 홍진훤, 황연주)

2014년 바이칼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니마 모랄리아’ 단체사진
(기획 김현주, 작가 김승영, 안경수, 정재철, 홍진훤, 황연주)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프로그램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는 2013년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과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시각예술 기획자 육성 프로그램, ‘프로젝트 비아’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획자들의 장-단기 리서치 지원, 워크숍 참가 지원, 파일럿 프로젝트 지원으로 구성되며 지금까지 총 78명, 3개 단체가 참여했다. 큐레이터를 비롯해 갤러리스트, 평론가, 기자 등 실무경력 5년 이상의 시각예술 및 시각예술 기반 다원예술 기획자(에듀케이터 제외)는 누구나 지원가능하다.
개별 리서치의 경우 주제・권역에 제한 없으며 작가 리서치, 미술계 현장 확인, 워크숍 참가, 심포지엄 발표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그룹 리서치의 경우에는 센터가 사전에 해외 협력기관과 기획한 리서치 프로그램을 현장에 가서 수행하는 방식이다. 단기 리서치가 주로 10일 내외의 일정이라면 장기 리서치(펠로십 지원)는 권역 제한 없이 3~6개월간 진행할 수 있다. 큐레토리얼 워크숍 참가지원의 경우 센터가 해외 기관과 공동으로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고, 국내 기획자들의 참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2년간 센터는 영국의 테이트 아시아태평양미술연구소와 공동 기획해 해외 이벤트가 많은 홀수연도에는 외국에서 개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국내 이벤트가 많은 짝수연도에는 해외 미술 전문가들을 불러들여서 국내에서 워크숍을 개최해 강연, 토론, 현장리서치, 네트워킹 세션 등을 구성했다.
현재까지 참가자들이 진행하는 리서치 트립 비중을 보면 80%가 유럽과 북미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획자들이 활발한 예술 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해외 교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내 기획자들이 선진국을 방문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사업 담당자인 인력개발팀 안현숙 씨는 “센터 측에서는 다양한 협력기관을 개발해 대등한 관계에서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며 “해외 기획자들에게 국내 신을 소개하는 역할도 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센터는 네덜란드 몬드리안재단과 협력해 올해 국내 참가자들이 유럽을 방문하고 유럽 지역의 기획자들이 자체 예산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센터는 앞으로 남미, 중동, 아시아 등 그룹 리서치 위주로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국제무대를 활발히 소개하고 국내 신을 해외에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비아’는 기존 지원제도가 작가 중심으로 운영되고, 전시나 출판 등 결과물에 치중한 반면 기획자들을 위한 지원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호응을 받고 있다. 사업 담당자인 심지언 씨는 “기획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극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그만큼 동기부여가 된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이 사업의 경우 중복 지원이 가능하다. 한 번의 리서치 트립으로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전시, 출판, 심포지엄, 워크숍 등 형식의 제한없이 파일럿 프로젝트 실행을 지원한다. 이 사업은 현장에 맞는 방식으로 조정하기로 해 일부 변화가 있을 예정이지만 기본 틀은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2015년에는 중동, 아시아, 프랑스에서 그룹 리서치 프로그램과 큐레토리얼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

프로젝트 비아 Project Via

프로젝트 비아 2014년 영국-그룹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

프로젝트 비아 2014년 영국-그룹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터전을 불태우라

터전을 불태우라

베일에 가려졌던 <제10회 광주비엔날레>(9.5~11.9)의 진면목이 드디어 공개됐다. 총감독 제시카 모건이 제시한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화두는 파괴와 생성. 그녀는 창조적인 생성을 위해선 기존의 제도와 관념, 체제, 규범을 과감히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습화된 모든 가치와 낡은 이념을 활활 불태워 없애버려야만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다.
이런 의도에 걸맞게 출품작 90% 이상이 광주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물량공세를 통한 이미지의 과잉과 무미건조한 스펙터클이 범람했던 과거 비엔날레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미학적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과 사명감에서 한발 비켜 나 있는 듯하다. 대신 관람객의 순수한 감정에 호소하며 진지한 시각으로 작품 읽기를 유도한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비엔날레가 전시 주제처럼 원점으로 돌아가 미술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는지 그 여부는 단언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존 제도에 저항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적인 장으로 그 기능과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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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골드스타인 <불타는 창문> 혼합재료 1977

어두운 방 안 창문 속 붉은빛은 집이 불타거나 창밖으로 불길이 번지는 인상을 준다. 이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보는 경험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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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 물지<분실물 취급소> 섬유유리 버팔로 가죽 방적사 2012

작가는 박제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형상에 가까운 몸을 만들어냈다. 정권의 억압 하에 실종되었다가 훗날 사체로 발견된 사람들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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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리아 파커 <어둠의 심장> 숯, 철사 2004

삼림 관리를 위한 불 놓기가 오히려 산불로 번져 숲을 태운 미국 플로리다의 사건 현장에서 가져온 나무 잔해로 설치작업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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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알렉산더 <심포지엄> 설치 2014

기존의 개별 작품 56점이 모여 연출된 거대한 장면은 다양한 권력구조에 의해 국가통제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처한 풍경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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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다 파하르도 <교차로>(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2003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반추한 작품으로 미국이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타협하지 않은 필리핀의 대안적 역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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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바수알도 <섬>(내부 모습) 혼합재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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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바수알도 <섬>(외부모습) 혼합재료 2009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적 지역인 산 텔모에서 불탄 한 건물의 잔해물을 추려서 작은 규모로 구축한 집이다.
집 안에는 작가가 발견하거나 만든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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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키엔홀츠 & 낸시 레딘 키엔홀츠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 혼합재료 1985

국가권력에 관한 알레고리로서 이 작품은 공포와 선동의 잠식 효과를 역설하며 거꾸로 뒤집힌 혼돈의 세계를 묘사한다.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냉정과 열정 사이, 차갑고도 뜨거운

정현  미술비평

한 해 걸러 비엔날레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기억에 취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비엔날레를 떠올리면 마음이 심란해지기 일쑤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 비엔날레를 관람한다는 것이 특권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고 한국에서 세계적 작가들의 작업을 보는 쾌감도 남달랐다. 세계화를 표방한 문화 정책에 의해 설립된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을 넘어 다른 세계, 문화,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가 문화 제도화의 밑그림을 그리던 시기였다면 2000년 이후 미술계는 본격적인 세계화의 좌표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양적으로 팽창한 미술계는 금융자본 붕괴 이후 정체기를 맞이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권 국가들이 경쟁하듯 비엔날레를 창설한 이후부터 비엔날레는 세계 문화지형도를 움직이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고 이른바 ‘미학적 정치학’이 전개되는 거점이 되었다. 이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주는 긍정적인 긴장감은 나를 여전히 흥분시키지만, 언제부턴가 비엔날레를 통해 ‘미술’을 감상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되어버렸다. 2014년 가을, 또다시 비엔날레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하기 전부터 호기심만큼이나 피로함도 함께 찾아왔다. 비평가는 늘 현장에 있지만 제대로 즐기기는 어려운 직업이다. 이해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예술감독 제시카 모건의 말을 빌리자면,   <터전을 불태우라>는 1980년대 초 미국 팝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으로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담은 송가처럼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   ‘불태우다’의 의미를 활활 타오르는 환희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은유한다고 설명한다. 막상 전시의 문을 열자 의견이 엇갈린다. 전시 주제를 일차원적으로 재현했다는 의견과 역대 최고의 비엔날레였다는 평가가 오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에게 <터전을 불태우라>는 오랜만에 비평가의 입장이 아닌 전시를 즐기는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 포만감을 느낀 전시였다. 무엇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이해하기가 쉽다. 이해의 용이함이 깊이의 부족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동시대를 사는 다수가 이미 전제된 전시의 의미 혹은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작품들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의미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것은 사유의 특별함보다 공통점에 무게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올해 비엔날레는 웅장한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도 않고 미술제도나 사회문제를 개념적으로 비틀지도 않는다.
전시는 장편 소설을 공간 안에 옮겨놓은 듯 사건을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개막 식전 행사에 선보인 임민욱의 퍼포먼스는 전시의 프롤로그가 되어 잊힌 역사적 사건을 현재로 이동시켜 기억의 반대편으로 우리의 의식을 이동시킨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불타오르는 빨간 창(잭 골드스타인, <불타는 창문>(1977)이 놓여 있고, 곧바로 이불의 초기 퍼포먼스 영상과 오브제 작업이 관객을 기다린다. 혹자는 전시 주제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재현한다고 비판하지만,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전문인과 대중 사이를 가로막는 지식이나 경험의 장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상태다. ‘빨간 창’이 주제에 대한 직접적 재현일 수 있으나, 입구에서 맞닥뜨린 강렬한 이미지의 충격은 관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만들기도 하고 폭력에 의한 사회적 불안을 은유하기도 한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이야기의 시작은 이처럼 불이 타오르고 있는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서 출발하지만 도입부를 지나면 사건 이후의 외상, 폭력의 전조, 터전을 잃어버린 이후의 잔해가 놓인 공간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이상이 1부(제1, 2전시실)의 이야기라면 2부(제 3, 4전시실)는 마치 초현실주의 소설처럼 실재와 환상, 재현된 현실과 개념적으로 설정된 예술작업이 기이하게 조우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모든 게 소진된 곳에서 음악이 흐르고 폐허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윤곽을 그린다(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 <M.2062(피츠카랄도)>(2014)) 희망을 향한 기대는 미약하게 나타나지만 그 공명은 깊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오직 한 방향으로만 페이지를 넘기듯 <터전을 불태우라>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동선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다원성을 지향하는 최근의 전시 공간 디자인 경향과 달리 복고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방식이 되레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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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지날리니 무케르지 <수목생성> 대마 금속 프레임 1991~1992 작가는 인도의 전통 조각에 뿌리를 두고 금속 프레임에 대마 섬유를 공들여 엮으면서도 인도 안팍에서 논의되고 있는 예술, 공예, 모더니즘의 적용 방식을 해체한다.

사건을 목격하는 관객
남겨진 주검의 잔해들로 채워진 컨테이너 박스 두 개가 비엔날레 광장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말이 없다. 임민욱의 <내비게이션 ID>   (2014)는 한국전의 비극이 만들어낸 악몽 같은 현실의 일부를 꺼낸 작업이다. 사건은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사 등 인민군 부역혐의를 받은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그중 진주와 경산에 거주하는 민간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유해와 유골은 오늘까지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돼 있고, 학살된 사람들의 가족은 죽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현실이라 믿기엔 너무도 초현실적인 현장이 우리의 일상 안에 버젓이 버티고 서 있지만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은 그저 강 건너 불 구경꾼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주검을 보관한 컨테이너 박스를 광주로 옮기는 과정을 헬리콥터에서 촬영해 생방송으로 전송하고 희생자 가족들은 비엔날레 광장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내비게이션 ID>는 폭력의 희생자들을 현재형 시점으로 호출해 비극적 오디세이의 상황을 제시하는데, 이는 과거를 현재로 전환하는 통과의례가 된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선동적 표제가 지시하듯 전시는 희망이 소진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외상을 건드린다. 비엔날레 전시관 내외부에 설치된 스털링 루비의 <난로>(2014)에서 나오는 연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폭력, 학살,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제1, 2전시장은 국가, 자본, 산업화, 물질주의 등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의 현장을 재연하는 대신 일상 속에 은밀하게 배어있는 폭력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폭력이 자행되는 장면보다 증상, 징후, 잔해같이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일상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큰 공포로 다가온다. 파키스탄 작가 후마 물지의 조각 <분실물 취급소>(2012)는 국가 폭력에 의해 실종된 사람을 연상시키고 데쓰야 이시다는 기계나 부속품들로 결합된 인간의 형상을 통해 폭력에 의한 외상의 징후를 시각화한다. 회화 속 인물들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채플린과 다르지 않다. 터키 작가 바누 제네토글루는 한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증류주인 소주의 인류학적 궤적을 추적한 후 그가 직접 모은 다양한 소주를 시음할 수 있는 바를 제공한다. 이른바 한국 소주 지도를 그린 셈인데 바슐라르가 언급한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성질을 갖고 있는 술을 통해 초국가적 사유를 펼친다. 브라질 작가 레나타 루카스의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2014)는 비엔날레 전시관 벽을 부숴 건너편 아파트를 향한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비엔날레 제도 안에 개입한다. 전시장 초입의 <불타는 창문>과 대칭을 이루는 작업이다.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는 자신의 뉴욕 아파트 내부를 1:1 사진으로 재현한 공간 내부에 피에르 위그, 조지 콘도, 도모코 요네다 등의 작업을 개입시켰다. 이러한 개입의 방식은 이중적으로 표출된다. 우선 재현된 피셔의 아파트 내부, 다시 재현된 아파트 내부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 실재를 재현한 공간 안을 점유하고 있는 타인의 작업들은 삶, 일상, 진짜와 가짜 등이 혼재한다. 이처럼 제3전시장은 피셔의 아파트 공간 내부와 외부로 분리되는데, 외부는 사회적 비평을 내포한 작업들로, 내부는 팝적인 요소로 가득 찬 유쾌하고도 괴상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전시장은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영이 교차하고 성정체성의 질서를 묻는 다소 원론적인 젠더 이슈와 게이 운동에 관한 작업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벨기에 작가 카르슈텐 휠러의 <미닫이 문>(2003)은 미래주의 영화에 등장할 것같은 자동 거울 문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제시한다. 복도이자 방인 정체성이 모호한 이 공간은 브루스 나우만의 복도 작업과 댄 그레이엄의 거울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김성환의 <게이조의 여름-1937의 기록>(2007), 올라퍼 엘리아슨의     <밤 없는 여름, 낮 없는 겨울>(1994), 특히 므리날리니 무케르지의 <수목생성>(1991~1992)은 금속 프레임에 대마 섬유를 엮어 만든 공예적 조각으로 남녀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식물을 형상화한다. 젠더 정치학의 시선은 이데올로기의 견고함을 부수기 위한 큐레이팅의 묘수로 보인다. 전시의 끝부분이 되자 타오르던 불꽃도 소진된다. 전시장 전체를 횡단하던 엘 울티모 그리토의 벽지 <미장센>(2014) 속 불꽃과 연기 패턴도 사라진다. 곤잘레스 포에스터는 축음기를 들고 있는 홀로그램 환영이 되어 어둠 속에 서있다. 이미지는 죽음을 대신하는데,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엘레지처럼 들린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극단적인 작업들과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대하는 따스함이 전시를 관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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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스털링 루비 <난로> 청동 주물 2014 파괴와 부활에 대해 개념적으로 다가가는 이 작품은 ‘터전을 불태우라’는 비엔날레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4개의 대형 난로가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터전을 불태우라, 살아있는 무대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  

<터전을 불태우라>는 문자 그대로 불태움과 변형, 말소와 혁신, 구속과 투쟁, 소비와 소외, 상실과 회복, 젠더와 성정치, 실재와 가상, 도시와 이민 등 사회적 규범들과 예술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저항과 도약의 이미지들로 꽉 차있다. ‘불’과 ‘집’, 그리고 ‘태우다’라는 반복되는 주제를 통해 부각되는 문화 정체성, 다양한 문화권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의 반복과 재구성, 과거 작품의 재생과 기존 작품의 해체와 재조합, 그리고 미술관 전체를 관통하는 안무적 디스플레이는 개별 작품이 수행하는 각각의 욕망과 욕구를 ‘재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가능성의 지평’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전시 맥락 안에서 퍼포먼스는 과거와 현재, 정립과 반정립, 체제와 반체제의 혁명적 잠재력을 체화(體化)하면서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해 사회적 정치적 역동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5개의 전시 공간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상호 소통하면서 터전을 불태우라는 대주제 아래에서 통합된다. 각 전시장의 입구와 출구에는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를 확장시키는 설치, 사운드 혹은 퍼포먼스와 같은 장치가 배치되는데, 이들은 관객의 기존 관람방식에 개입하면서 몸의 물리적 자극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성에 집중하도록 한다. 알로라 & 칼사디야의 <음계(기질)와 늑대>는 정렬된 20인의 인위적인 환대의 제스처를 통해 전시장 입구를 차단함과 동시에 경계를 넘어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영역을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한다. 우르스 피셔의 아파트를 재현한 건축물 <38 E. 1st St.>의 입구에 배치된 피에르 위그의 <네임 아나운서>는 입장하는 관객의 이름을 실내로 호명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확장한다. 호명된 이름은 건축물 내부를 뒤덮은 3D 디지털 프린트 벽지의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와 그 안에 애매하게 배치된 뜬금없는 예술작품들과 어색한 혹은 불편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수행력(performativity)은 퍼포먼스가 아닌 조각과 설치, 회화를 통해서도 획득된다. 제1 전시장 출구에 설치된 구정아의 <그것의 영혼>은 흔들리는 벽을 통해 출구의 위태로움을 경험하게 하며, 제2 전시장 입구의 피오트르 우클란스키의 <무제(크게 벌려)>는 마치 목젖을 통해 인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을 느끼게 한다. 제4 전시장의 출구에 설치된 카르슈텐 횔러의 <일곱 개의 미닫이문>은 입구의 <음계(늑대)와 기질>에 대한 답변으로 무한 반복되는 출구와 입구의 운동성과 함께 유년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본전시에서 퍼포먼스는 역사의 허구성을 표출하고 사회적 규범을 비판하면서 과거의 순간과 운동, 작품,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일본작가 에이 아라카와와 한국 공연기획자 임인자는 아스팔트라는 가상의 광주지역 극단을 창립하고 1980년대 독재정권의 억압 시대에 활동한 연극 집단의 인물들을 재조명한다. 레나타 루카스의 아파트 창문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앞 횡 한 광장에서 펼쳐지는 홍영인의 <5100:     >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물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동시대의 움직임으로 안무한다. 로만 온닥의 <시계태엽장치>는 시간과 관객의 관계를 공간 속에 육화(肉化)하고 그 흔적을 축적한다. 관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시간의 감옥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감금된 채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자의 억압된 삶을 떠올린다. 미술관의 구조적 개입을 통해 완성되는 옥인콜렉티브의 <작전명: 님과 노래를 위하여>는 미술관 방송시스템을 점유하며 비상사태의 순간에 폐체조(肺體操)를 준비하는 역설적인 작전을 제시한다.
개막 기간에 선보인 세실리아 벵골레아 & 프랑수아 세뇨와 정금형의 도발적인 안무는 본전시가 꿈꾸는 쾌락적이고 유희적이면서 급진적인 사건의 소용돌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댄 플레빈의 붉은 네온 라이트 <매복으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기념비(내게 죽음을 상기시켜준 P. K.에게> 앞에서 공연된 벵골레아 & 세뇨의 <실피데스>는 신화 속 공기의 요정을 연기한다. 검정 라텍스 주머니에서 잉태된 요정들은 삶과 죽음, 환상과 실재,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성의 관계를 재구성하면서 몸이 가지고 있는 현전성을 부각시킨다. 정금형의 <심폐소생술 연습>은 바닥에 누워있는 연습용 마네킹과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움직임을 통해 사물에 존재성을 부여하고, 죽음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성을 획득하는 역학관계를 드러낸다.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퍼포먼스는 전시 디스플레이의 새로운 방법론 그리고 시각예술의 한 매체로서 몸과 정체성, 움직임과 정치성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는 더 이상 스스로의 정체성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의 것들과 관계하면서 오히려 이를 전복하고자 한다. 퍼포먼스를 포함한 400여 점의 작품은 전시장을 감싸는 검붉은 연기, 꿈틀꿈틀 앞으로 기어 나오는 문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난로, 그리고 쉴 곳을 잃은 유골들의 컨테이너와 함께 살아있는 무대를 연출한다. 문화사가 하비 파커슨이 말했듯이 근대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경직된 사고와 고정된 관점을 불태우고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 속에 사라진 저항정신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이 모험이 지금 여기에서 다시 출발한다. ●

2 (3)

로버트 하이네켄 <뉴스 아메리카에서 깨어나다> 복합재료 1986

작은 방으로 꾸며진 전시장 안에는 뉴스 이미지가 모든 면에 도배되어 있다. 마네킹은 뉴스를 보면서 보이고 들리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미국 시민을 의인화한다.

2 (21)

겅지안이 <쓸모없는> 혼합재료 2004

지인들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받아 그 이유를 메모로 붙이고 물건들을 기능별로 분류해서 체계적으로 배치했다. 중국의 물질문화에 대해 사회적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3 (9)

레나타 루카스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2014

비엔날레 전시관 남측 파사드에 맞은 편에 보이는 아파트 창문을 재현했다. 한국 사회의 획일화된 주거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4 (5)

에이 아라카와 & 임인자 <비영웅극장(극회 광대, 놀이패 신명, 극단 토박이, 가상극단 아스팔트의 극중인물 연구> 설치 2014

두 작가는 1980년대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키는 극을 상영한 극단들을 토대로 제3의 가상 극단을 만들고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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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협력큐레이터 에밀리아노 발데스(Emiliano Valdes)

  “이번 비엔날레의 도전은 젊은 작가,  새로운 작업”

EMILIANO 2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개인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과테말라 출신으로 런던과 메데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5년 넘게 과테말라 소재 스페인문화센터(Centro Cultural de España)에서 비주얼아트의 큐레이터이자 책임자로 일했으며, <도큐멘터 13(dOCUMENTA13)>와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현재 《컨템포러리 매거진》을 발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식의 형태, 공공 프로그램 생산, 예술과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에서 예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소감을 말해달라.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전시에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며, 전문적인 팀과 같이 일하게 된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비엔날레가 해마다 성장하고 전문적으로 변화해갈 뿐만 아니라, 이전에 행해졌던 비엔날레와 같이 획기적인 전시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제시카 모건과 함께 일하면서 일하는 스타일, 전시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제시카는 매우 기민하고, 영특하며, 철저한 큐레이터다. 그녀와 함께 일한 것은 영광이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이번 비엔날레의 도전은 대규모의 연구, 제작 지원, 향후 설치가 요구되는 많은 수의 새로운 커미션 작업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놀랍도록 전문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작품들이 최고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힘써야 했다.
이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이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시에 참가한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들은 (비록 이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진 않을지라도) 개인으로서 또는 그룹으로서, 모두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다시 쓰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예리하며, 사려 깊고, 유능한 작가들이다. 그들을 알게 되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리서치 과정 역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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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큐레이터 파토스 우스텍(Fatos Usteck) 

 “동시대 한국미술의 토대를 들여다본 보기 드문 기회”

FatosUstek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개인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이스탄불 출신으로 현재 런던을 중심으로 독립큐레이터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웨덴의 린코핑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작가   퍼 휴트너(Per Hüttner)와 함께 2015년 봄 개관하는 스톡홀름 노벨 뮤지엄(Nobel Museum)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16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열릴 그룹전 준비를 하고 있다. AICA Tr의 멤버이며, 국제적인 미술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현대미술잡지 《Nowiswere》을 창간해 필진으로 일했다.
협렵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이번 전시에서 당신이 진행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한다.
나와 에밀리아노 발데스는 전시 준비 초기단계부터 협력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배은아 씨는 올해 초 진행 도중에 합류했다. 우리의 역할은 다양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었는데, 작가 리서치를 하는 것부터 제작 과정을 확인하고 기금 지원서를 작성하고, 예산 범위를 설정하고 대출 목록을 작성하는 일 등이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전시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 작가 리서치 기간을 여유있게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자료에 접근하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왜냐하면 영어로 번역된 출판물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좀 더 심도 있는  정보를 얻고 리서치를 풍부하게 하기위해 많은 큐레이터와 역사학자와 대화도 많이 나눴다.
이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이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한국 예술신이 젊고, 드라마틱하며,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상에 대한 개념적인 관찰뿐 아니라 미디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예술적인 흐름이 존재한다. 동시대 한국미술의 토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한국내의 미술흐름과 공예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큐레이팅 리서치 내내, 세대 구분없이 다양한 예술가들을 탐험하고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이러한 예술신도 미술시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시장의 요구안에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가 많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나는 비엔날레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이들 대부분이 1970~1980년대를 관통하는 역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슬비기자

[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교감

Beyond and Between

交感

올해는 삼성미술관 Leeum(이하 리움)이 개관한 지 10주년 되는 해다. 2004년 10월 13일 공식 개관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선보인 리움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개관 당시 리움은 세계적인 건축가 3명이 참여해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미술관 건축으로 먼저 이목을 끌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20회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총회’ 기간 CIMAM(ICOM의 현대미술분과위원회) 총회가 리움에서 열리면서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수준 높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상설전과 기획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이처럼 리움은 개관 이후 현재까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으로서 그 명성과 권위를 굳건히 지켜왔다.
리움의 시원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 창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문화재단은 1982년 경기도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건립해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30년 넘게 수집해 온 한국미술품을 정리했고, 이후 서울 서소문에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현 플라토)를 운영하면서 국내외 미술품 전시를 끊임없이 개최해왔다. 이와 같이 국보급 고미술품과 세계적 수준의 근현대미술이 총망라된 삼성문화재단의 컬렉션이 2004년부터 한남동 리움에서 한데 모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리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교감(交感, Beyond and Between)전>이 8월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리움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월간미술》은 리움 10주년의 의미와 미래를 조망하는 특집 기사를 마련했다. 먼저 이번호에서는 리움 전관에서 펼쳐지는 <교감전>을 집중 조명한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그리고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는 <교감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사진・박홍순 조영하

시대교감 – Beyond time – 時代交感

“고미술 전시실 Museum1은 장르적인 특성과 시대를 반영한 4층 청자, 3층 백자・분청사기, 2층 고서화, 1층 불교 및 금속공예의 현재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미술과 교감할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는다.”

DF2B4100

고려시대 청자가 전시된 4층 비디오실에서 작가 김수자의 영상작품 시리즈 <대지, 물, 불, 공기>(2009~2010> 중에서 <대지의 공기>가 상영된다.

DF2B4098

<청자양각운룡문매병> 고려 12세기 고려청자(보물 제1385호)와 고려의 비색을 소재로 한 바이런 김(Byron Kim)의 회화작품 <고려청자 유약 #1, #2> (캔버스에 유채 213×152.4cm(각) 1995~1996)이 함께 전시됐다.

_MG_2809

이수경 <달의 이면> 도자파편, 에폭시, 스테인리스 스틸, 동분, 금분, 24K 금박 135×135×135cm 2014
오른쪽 뒤에 <백자 달항아리>(국보 제309호)가 보인다. 이수경은 함경도 회령지역에서 만들어진 흑자와 옹기 파편을 이어 붙여 이 작품을 제작했다.

_MG_2963

겸재 정선의 걸작 <금강전도>(왼쪽)와 <인왕제색도>를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최초다. 세로 79.2cm
가로 138.2cm인 <인왕제색도>는 국보 제216호, 세로 130.7cm 가로 94.1cm 크기의 <금강전도>는 국보 제217호로 지정되어 있다.

DF2B4115

작가 서도호의 조각 <우리나라>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 2층 고서화실 전시광경. 오른쪽에 보물 제1394호로 지정된 작자미상의 <경기감영도 12곡병> (135.8×442.2cm 조선 19세기)이 보인다

_MG_2938

작가 서도호의 부조작품 <우리나라> 청동 137×194.3×8cm 2014는 한반도 지도 형태 위에 서 있는 수많은 인물상을 통해 역사 속에 명멸한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표현했다.

 

동서교감 – Beyond Space – 東西交感

“한국 근현대미술부터 동시대 세계 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현대미술 상설실은 ‘동서교감’을 큰 틀로 하여 현대미술의 표현적 경향의 흐름, 예술의 근원적 요소에대한 탐구, 최근 확장적이고 혼성적인 미술의 특성을 담는 세 개의 전시로 구성된다.”

_MG_3269

이불 <심연> 폴리우레탄 주물, 아크릴 릭, 거울, 쌍방향 거울, 유리, LED 조명, 목재, 에나멜 페인트 370×360×330cm 2014

DF2B4158

왼쪽부터 윤형근 <청다> 캔버스에 유채 259×182cm 1976, 김환기 <하늘과 땅 24-IX-73 #320> 캔버스에 유채 263.5×2.6.5cm 1973, 하종현 <접합 75-1> 캔버스에 유채 1975

DF2B4154

왼쪽에 이응노 <인간> 한지에 먹 265×182cm 1988과 오른쪽에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조각 <거대한 여인 Ⅲ> 청동 235×29.5×54cm 1960이 보인다

_MG_3305

바닥에 설치된 로니 혼 <열 개의 액체 사건>(표면 가공하지 않은 유리 주물 2010)과 벽에 걸린 아그네스 마틴 <무제#9>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83×183cm 1980

DF2B4156

아래·루이즈 부르주아 <밀실 XI(초상)>(왼쪽)(177.8×109.2×109.2cm 2000)과 세실리 브라운 <무제> 캔버스에 유채 246.4×195.6cm 2012

DF2B4181

데미안 허스트 <피할 수 없는 진실> 유리, 강철, 비둘기, 해골, 포름알데히드 용액 222×176×74cm 2005
작가는 기독교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와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을 영구적인 보존을 가능케 하는 방부액 속에 설치함으로써, 종교나 과학이 결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진실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객교감 – Beyond Art and People – 觀客交感

“예술에서의 관람객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서 이제 예술 작품을 담는 그릇인 미술관의 중심은 사람이며 사람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획전시실은 두 개의 상설전시실의 주제, 즉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교감을 포괄하면서, 관객의 능동적 참여가 중요시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리움_Panorama2

아이웨이웨이 <나무> 2009~2010 중국 남부지방에서 수집한 고목을 절단하고 재조합한 이 작품은 중국 역사의 비극적 이면을 은유함과 동시에 예술과 인류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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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경 <카페트 위의 머리카락> 2014
리움 로비에서 기획전시실로 이어지는 경사면 바닥 전체를 뒤덮은 카페트에 수놓아진 문양은 머리카락을 강력 접착제로 붙여서 만든 것이다. 때론 불결하고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머리카락을 의도적으로 점잖은 미술관 공간 속으로 끌어 들인 작가는 예술과 삶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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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네토 <심비오인테스튜브타임-향기는 향꽃의 자궁집에서 피어난다> 합판, 폴리아미드 망, 강황, 정향, 커민, 프리아미드 천, 발포고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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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재닛 카디프 & 조지 뷰어스 밀러 <F# 단조 실험> 2013
관람객이 72개의 스피커가 설치된 테이블에 가까이 다가가 주변을 거닐면 신비로운 선율이 흘러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