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윤상윤
왼손 쓰기를 강제적으로 금지당한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 줄곧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이따금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던 왼손으로 2년 전부터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흥을 견지한 채로. 작가는 현재 두 손의 작업 균형을 맞춰가고 있으며 50세쯤 되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의 경지가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
왼손 쓰기를 강제적으로 금지당한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 줄곧 고전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이따금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던 왼손으로 2년 전부터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흥을 견지한 채로. 작가는 현재 두 손의 작업 균형을 맞춰가고 있으며 50세쯤 되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의 경지가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
‘회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성낙희의 개인전 〈Modulate〉가 페리지갤러리에서 3월 5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린다. 점ㆍ선ㆍ면을 이용해 화면 속에서 리듬과 화음을 만들어내던 작가가 어느 순간부터 더 거대하게 증폭되는 음을 화면에 연주하더니 이번에는 소리가 공간을 구축해내는 듯한 연작 〈Sequence〉를 선보인다.
안경수는 재료의 질감과 성향을 탐구하며 그 흔적을 캔버스에 쌓아 올린다. 얇은 지층들이 아크릴의 물성과 만나 쌓이고, 그 표면은 작가가 조용히 조우해온 시간을 머금고 있다. 작가가 지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섬세하게 쌓아 올린 화면은 작가가 만나는 도시의 불완전한 풍경의 겹과 맞닿아 있다.
전시장은 한마디로 어둠과 그로테스크의 향연이다. 잔혹극의 세트장 같은 심래정의 수상한 수술방은 육체를 절단하고 재봉합하여 변이의 산물을 만들어낸다. 심래정의 개인전 〈 B동 301호 〉는 욕망을 행위로 옮길 수 없는 제약이 제거된 일종의 해방구이자 인간 본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실험실을 닮아 있다.
4.12~5.14 금호미술관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왠지 윤동천의 전시를 다시 보는 리뷰에는 다른 미술사학자나 비평가가 쓴 문장을 끌어오고 싶은 충동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보리스 그로이스 (Boris Groys)가 쓴 ‘예술의 진리(The Truth of Art)’에 적혀 있는, 예술이 삶을 보다 나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오래된 문구를 꺼내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대신 나는 작가가 전시장에 올려놓은 여러 개의 질문과 샘플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축이 ‘질문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본다. 작가는 30년 넘게 현대미술을 하는 자신의 입장을 ‘질문하는 자’로 일관성있게 끌어온다. 동시에 일상의 사물들을 연장 삼아 미술 작품을 가지치기 한다. 거대한 사이즈와 색면 등 현대미술의 외양을 관습적으로 두르는 것으로서 관습을 파기하는 작품, 신발과 밧줄 같은 일상의 사물을 전시장 좌대 안에 결박시킨 작품들은 한 사람이 하지 않은 것 같은 여러 개의 미술적 자아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와 미술이 단일한 주체임을 넘어서 여러 개의, 최대한 많은, 눈앞에 공존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매개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읽힌다. 각종 미술담론에 부합하는 외양 안에 ‘미술적인 것’을 위반하고자 하는 내면을 가진 윤동천의 작업들은 한 작가의 미술보다 ‘일상’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현대미술에 관한 독특한 학습법을 제안하는 텍스트 북이나 도판 같기도 하다.
작가는 먼저 도대체 삶과 부합하는 미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자기회기적이거나 자기반영적이지 않다. 대신 너무 많은 일상의 사물, 삶, 사회적 사건, 개인의 스마트폰에 깃든 기억들이 건조하게, 마치 시치미떼듯 전시장에 등장한다. 정확히 말해 전시장에 있는 그것들은 세속성이 아닌 범속성으로서의 예술이다. 윤동천의 개인전은 여러 개의 질문과 시간을 거닐며 타인들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선언처럼 “일상은 모두에게 공유되어 특별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는, 1987년에 그가 쓴 문장이 붙어있다. 한편 전시장 종착지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Q. 살면서 가장 감동스러웠을 때는?’이라는 질문에 덜 다듬어진 목소리로 내뱉는 이름 모를 이들의 목소리다. 목소리는 어떤 미술 재료보다 날것 상태로 들어와 있다. 작가는 여러 개의 Q를 자신의 작업을 통해 세계에 던진다. 작가가 타인에게 이렇게 난해한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무엇일까. 재기발랄하고 위트 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작가는 지금 세계를 올려다보고 또 내려다보는 악동일까 천사일까, 일상을 믿는 것일까. 배반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노란 방에 있는 노란 리본과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등의 사물, 그리고 〈위대한 퍼포먼스〉라고 명명된 한국 현대사를 구성한 강력한 정치사회적 증거들은 작가 윤동천이 본 집단 이미지이자 일상에서 집단의 삶을 가시화하는 역사가 되었다.
이 역사 앞에서 감각을 동원하려면 관람자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윤동천의 질문이 몸을 갖게 되는 것은 먼저 30년에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작가가 ‘일상’이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한 것에서 획득되는 시간성이다. 미술로 삶에 대해 질문해온 역사가 작가의 작업 안에서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을 채우는 작업들을 보노라면 연쇄 작용처럼 사물과 사물, 질문과 질문, 연결어미와 어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테면 관람자로서 이런 유의 말장난, 미술하는 일상은 일상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작가가 다루는 일상의 바운더리는 거의 모든 것에 가깝다. 윤동천은 의도적으로 작업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은 채 ‘거의 모든 것’으로 확장하고 수용하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지속성과 확장성을 추구한다. 둘째 작업 과정과 선택의 방식을 그대로 작품 표면에 위치시켜 첫 번째 관객인 작가 자신과 관람객, 미술제도에 내보이는 투명성이 돋보인다. 〈길에서??????-????흘리다 연작〉(2016), 〈길에서-껌자국 연작〉(2016)은 작가의 내적 동기와 규칙에 의해 제작되는 추상회화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제목이 이것은 일상에서 ‘생산’되었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흘린 것이고 껌자국인 것이다. 이일상의 단면을 미술로 내건 것은 작가지만, 만든 것은 삶이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아크릴릭은 〈우리-얽히다/고무줄 드로잉 1〉이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어떻게 봐야 할까? 이 두 단어 사이에 놓인 빗금(/)은 작가에게, 미술로 자신을 기만하거나 사기치지 않으려는, 불가능에 대한 군더더기 없고 매우 담백한 선언인 듯하다.
그의 전시에는 질문만큼이나 답변 또한 존재한다. 한 켠에는 작가가 200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연 개인전에서 관람객에게 제공한 설문지가 놓여있다. 설문보다는 선문답에 가까운 내용이 담긴 이 하얀 종이들은 작가가 흑백사진으로 보여준 자신의 작업실(〈산실??-???문호리 54???-????4〉) 틈 어딘가에 자리하였던 것일 테다. 윤동천의 예술하기는 일상의 사물과 사건을 재료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예술 자체가 일상의 재료가 된다. 재료는 일상을 여백없이 꽉 채운다. 계속 질문하고 답하느라 미술을 뺀 다른 일상이 없을 것만 같다. 예술보다 일상이 보다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전시장 지하 1층에서부터 3층까지를 채우고 있다. 전시장 전관을 둘러보는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개개의 작업들이 전관을 꽉 채우고 있으면서도 ‘꽉 찬 텅빔’을 느끼게 하는 힘의 정체다. 대한민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린 각종 사물들이 유기견처럼 좌대 위에 올라와있는데, 여기에는 서정도 서사도 없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그물과 같다. 거대한, 끝없이 물결치는 파도 위에 몸을 튼 그물처럼 계속 이어져 반복된다. 보기에 편한 것만은 아니다. 촛불집회를 위대한 퍼포먼스로 부르는 데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물이 대상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듯, 윤동천의 질문은 관람객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을 질문의 범위 안으로 포섭한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심각한 것들이 아닌, 너덜해진 일상의 겉옷을 입은 여러 가지 샘플들이 작가가 꺼내놓은 “일상(Ordinary)” 제제에 포괄되고 윤동천의 헛되지 않은 기대를 품는다. 미술을 잘 사용한 한 예로 꼬마 아이가 그린 그림 몇 점이 액자에 담겨있다. 종이 편지봉투 안에 가가호호 사람 넷이 손잡고 웃는 얼굴들이 그려진 그림.
위 윤동천 〈염치〉 캔버스에 혼합재료 193.9×259.1cm 2017
4.7~2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오세원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권혁은 사유의 운동 “에너지(기??/???氣)”를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우연과 필연에 응하는 통제와 비통제(controlled and uncontrolled)간 긴장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거대하여 유의미하거나 또는 미세하여 미비하거나 할 것 없이 생명에너지의 움직임 또는 흐름을 비정형의 물로 형상화하고, 자유로운 증식과 무질서의 질서를 재봉노동을 통해 실의 흔적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평면 위의 유동적이며 수용 가능한 물 형상은 퍼짐과 머금음이라는 긴장을, 재봉노동이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는 드로잉 작업으로 물화한다. 이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념산수화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 같기도 하며,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파도의 한복판 같기도 하다. 이렇듯 화면 안의 동적인 붓질과 스티치는 보는 이에게 형상에 대한 몰입감과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실의 겹침·재질감 넘치는 페인팅과 함께 휴먼사이즈를 넘는 화면의 규모 속에, 오랫동안 훈련된 작가는 기술적 완숙이라는 외연에 더해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 만드는 환경, 환경에 영향 받는 생명의 상호작용 원리를 탐색하는 내연적 깊이를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작가가 사용하는 실은 일반적이지 않은, 얇지만 견고한 특수자수 실인데, 이는 엄청난 반복노동에 의해서 미묘한 차이들을 생산해낸다. 외유내강의 바늘과 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존재감과 함께 봉합 과정에서 남겨지는 자수와 실오라기 같은 잔여물의 의미들은 이분법적 긴장으로 통합할 수 없는 주변의 모습과 다시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운동 에너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물을 분리하는 칼과는 달리 꿰매고 봉합하여 세상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이득이 되는 바늘과 실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품에 젠더적 의미를 더해, 소수자를 대변하는 페미니즘적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생대 시리즈나, 한때 성형이라는 폭발적 유행 현상에 대한 부자유함을 고발한 영상에서 작업의 맥락적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상력이 사라진 사회 현실에서 반복의 견고함과 화면의 미세한 흩날림을 통해 영겁의 시간과 봉제노동이 전하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탈소외적 노동이라는 창조적 예술작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소외를 해체하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권혁의 노동집약적 작업은 차이를 통해 생존하는 동시대 미술환경에서“다시 노동”이라는,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디자인하우스, 2012)라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무질서의 질서, 자유로운 구속의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로 사고를 확장하여 살펴본 생명의 본질과 근본에로의 환원은 작가의 오랜 인상주의적 시각실험과 함께 국가·인종·젠더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 실험에 의해서이다. 다양한 사회문화와 개별자 간의 인식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회의는 불변하는 본질 탐구에 나서는 도화선이 된다. 작가는 밀레니엄 초부터 다양한 현상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 작가는 매우 강렬하여 눈이 부신 반짝임에 매료되어 특수 필름지로 유사 햇빛(사람 크기의 둥근 원판)을 만들었다. 휴먼사이즈 원판을 들고 세계 각국의 거리로 나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움직이다 프로젝트〉(2005?~2006)를 진행했다. 또한 우리나라 화려한 전통 문양을 작은 조각보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문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나누다 프로젝트〉(2008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결과물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 언어, 사고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수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에 집착한 행위들은 최근 본질에 대한 물음과 함께 드로잉과 자수페인팅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본질, 삶, 생명에 대한 ‘구도자’(사루비아다방의 이관훈 “2014년 권혁개인전 서문에서”)적 물음은 미술사적 문맥과 함께 역사성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유동적인 물 페인팅과 함께 다양한 숨의 양태를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삼라만상 우주의 원리들을 카오스모스(Chaosmos: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로, 구 천년 역사의 책)와 보이지 않지만 절대성을 가진 진리를 우주 수학의 원전인 천부경에서 속에서 찾아나가고 있다. 작품의 물질화·자본화에 비판적 잣대를 들어대었던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의 맥락과 같이 작가는 풍선과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숨을 물리적으로 잡아두어 다양한 생명의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생명-숨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얇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꿰맴 노동의 미학 속에서 작업을 대하는 중견작가의 진지하고 원숙한 태도와 함께 끊임없는 존재론적 철학적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 권혁 〈카오스모스 R255〉(왼쪽) 천에 아크릴, 실스티치 145×235cm 2016~2017〈숨〉(오른쪽) 실, 혼합재료 (각)20×15×30cm 2016~2017
위 이호억 〈수덕사 대웅전 곁에서〉 2017
명칭부터 논쟁거리인 ‘한국화’는 익숙한 우리 그림을 서구 회화와 비교할 목적으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화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현재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은 아닐까? 이를 환기하는 한국화 공모전 〈광주화루〉(주최 광주은행)가 이목을 끌고 있다. 《월간미술》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 10명의 한국화 작가를 소개한다. 이들의 한국화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은 한국화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알리는 리트머스지일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화에 특화된 이 공모전을 계기로 공모에 대한 일반의 시선을 반성적으로 정리해본다. 작품들은 〈광주화루 10인의 작가전〉 (4.4~23,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ACC))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동시대 한국화의 젊은 보루
〈제1회 광주화루〉 공모전 선전작가 10인
구본아 Koo Bona
1976년 生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박사)
개인전_국내외 상하이, 타이베이 등
기획전 및 그룹전_
〈긍정의 아포리아〉(2015, 모스크바)
<자연으로 들어가다〉(2014, 오사카)
〈한중일 3인전〉(2011, 상하이)
바람난 미술공모(2014)
신진여성문화인상(2011)
송은미술대전(2005)
“폐허를 통해 미완성과 붕괴라는 이중성을 표현하며 일생동안 미완과 붕괴의 과정을 거치는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벽이라는 물(物)을 화두로 삼아 내가 말하려 하는 물은 단순한 사물이나 물성으로서의 물이 아닌 유기적 생명체들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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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Kim Won
1982년 生
전북대 예술대학 미술과,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_서울, 전주 등 4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서울디지털대학교 미술상 수상전〉(2017)
〈전북미술의 현장〉(2016)
〈시대정신과 동양회화의 표현의식〉(2014)
서울디지털대학교 미술상 우수상(2017)
“나는 반복되는 상황과 그 안에서 버티기 위한 몸부림의 일부가 아마도 불안감과 불확실성, 강박과 폭발, 흥분 등과 연관되어 중독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고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순과 내면의 우울과 불안함, 공격성 등을 고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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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묵 Park Kyongmug
1981년 生
동아대 회화과,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_서울, 부산, 양산 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영호남 수묵화교류전〉(2016),
〈나는 무명작가다〉(2015),
〈열림 筆歌墨舞〉(2015)
“내게 예술이란 스스로를 찾아가는 놀이다. 놀이의 도구는 ‘붓’이자 그려진 자국은 캔버스에 담아진 마음의 흔적이며 사고된 작가의 감성이다. 작가는 실경을 근간으로 원경과 근경을 오가며 형상 속에 감춰진 뼈(骨)의 본질과 정서를 스며들게 하려 한다. 무념으로 바라본 자연에서 기존의 의미를 떠나 고정된 형태와 색상에 구애하지 않는 붓놀이로, 옛법을 배우되 머물지 않은 질서로 그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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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Lee Jiyun
1979년 生
홍익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07년부터 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한중 서예교류전〉(2016)
〈바람〉(2015)
〈여백 현대한국화-여성중심〉(2013)
“나는 자연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현상과 형상이 환경에 따라 유기적으로 무한히 변화하고 있으면서도, 소란스럽지 않다. 자연은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이 없다. 가치의 대소(大小)가 없다. 나에게는 구원의 세계이고, 화엄의 바다를 보는듯한 장엄함을 느낀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 헤매는 중에도 자연은 나를 숨 쉴 수 있게 한다. 자연의 변화는 나에게 현실에 대한 표상(表象)이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理想)에 대한 열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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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Lee Chaeyoung
1984년 生
덕성여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 동양화전공 졸업
개인전_2009년부터 4회
기획전 및 그룹전_
〈Sensitive Reality〉(2016)
〈The Great Artist〉(2016, 2014)
〈안견회화정신〉(2014)
제4회 에트로미술대상 금상(2015),
종근당 예술지상(2015),
파이낸셜뉴스 미술공모전 입선(2010)
“이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는 장소들이 있다. 본인은 이러한 도시의 풍경들 즉. 일상에 연관된 장소들, 나 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들, 도시의 주택가와 낡은 건물들의 주변 풍경들에서 느껴지는 비정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고독하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변의 풍경들 사이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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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량 Lee Taeryang
개인전_미국, 프랑스, 중국 등 총 27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인왕산프로젝트_특별전〉(2017)
〈안평의 시간〉(2016)
〈트라이앵글 프로젝트〉(2015) 등 190여 회
“내게 있어 작업은 ‘좋은 작업을 해야 한다’ 라는 명제에 대한 시도가 아니라 ‘좋은 작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이다. 내 그림형식의 명제가 그림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은 본질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려는 것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하나의 논리적 판단이나 근거를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명제는 아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명제를 통해서만 말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명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어떤 것도 말해질 수 없다.” 결국, 내 그림은 중요하지 않으며 정작 중요한 것은 내 그림 밖의 모든 것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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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억 Lee Houk
1985년 生
중앙대 한국화학과 및 동 대학원 예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12년부터 6회
기획전 및 그룹전_
〈불안〉(2017)
〈한국화의 유혹〉(2016)
〈오토픽션-한국화의 유혹과 저항〉(2013)
“현장에서의 모필 사생을 통해 시간성과 감정을 필선에 담아, 작업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여기에 박제된 듯 고정된 동물의 그림자 따위를 분채로 칠해 올린다. 움직이는 식물과 멈춰진 동물. 개체의 속성에 반하여 연출하고 작업의 의도에 따라 숲에서 채집한 식물성안료로 염색하기도 한다.
유한한 삶의 가치를 움직이는 것과 멈춰진 것의 대비로서 드러내고자 한다.
우리는 시간에 속박된 유한한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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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슬 Jang Yeseul
1988년 生
청강문화산업대 및 조선대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과정
기획전 및 그룹전_
〈Asia Young Art Festival〉(2016)
〈온새미로〉(2016)
〈현대한국화 길을 묻다〉(2016)
대한민국한국화대전(2016)
무등미술대전(2016)
행주미술대전 특선(2016)
“우주의 순환과 움직임을 한국화의 가장 기본이자 정신이 되는 지(紙), 필(筆), 묵(墨)을 이용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순환하는 먹의 형상성은 우주를 채우고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기운이 충만한 생기의 근원이다. 묵(墨)의 색(色)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으며, 우주의 색이자 하늘의 색으로 작가의 감성을 재해석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작가는 작품 속의 우주를 통해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본연의 섭리에 따르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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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흡 Ha Sungheub
1962년 生
전남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_1994년부터 총3회
기획전 및 그룹전_
〈김광석 20주기 추모전〉(2016)
〈잊지 않겠습니다〉(2014)
〈5·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전〉(2010)
“전통회화는 물론 전통적 미감을 고수한 진경산수와 인물화를 현대적으로 적용해 1980년 이래의 사회와 삶, 풍경과 자연을 먹을 이용한 간결한 색을 가미해 그려내려 했습니다. 또한 색에 대한 굶주림으로 인해 자유분방한 틀을 깨뜨리는 데 주력하는 동시에 서사적 인물, 우리 산천의 의미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주된 소재로 삼았고, 최근에는 화면공간을 크게 확장한 수묵과 채색의 실험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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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주 Ha Yongjoo
1979년 生
조선대 미술대학 한국화과, 중앙대 대학원 한국화학과(석사) 및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07년부터 총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수묵시각 2016〉(2016)
〈구인전〉(2015)
〈신세계갤러리 선정작가전〉(2013)
“나와 타자, 원활한 소통과 걸러진 소통을 통한 관계의 수많은 레이어의 위장을 부정하면서도 개인과 집단, 구조, 체계 안에서의 익숙하며 필연적인 상황을 인정합니다. 작품의 형식에서 보이는 방식은 화면 안에서 친절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상을 온전히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인지, 사람 모양을 한 것인지, 풍경인지 풍경 같은 느낌인지는 시지각을 통해 1차적으로 판단하고, 작품을 경험하는 자의 정서와 가치관을 통한 주관적 요소로 인식되고 정의됩니다. 보이는 것의 최소 기준입니다.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작품의 화면 속 이미지는 그 무엇의 이미지일 뿐 그 무엇 자체일 수 없습니다.
사회 안에서 당신이 속한 시간, 공간, 상황,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업입니다.”
하트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런데 강영민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하트는 깊이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언뜻 사랑의 의미가 사라지고 기호만 덜렁 남아있는 듯한 그의 작업은 익살스럽지만 예리한 정치적 목적성이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번뜩인다. 그렇다면 강영민의 작업세계는 한 마디로 설명된다. “사랑의 부재를 통해 사랑을 말한다”는.
이택광 | 경희대 교수
팝아티스트 강영민을 정의하는 말은 ‘발칙함’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조롱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발칙하다는 수사학에 걸맞은 작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평가가 다소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강영민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이력을 뽐내지만 지금의 작가를 이해하는 시발점은 <사랑하면 진다>는 네 번째 개인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가 ‘하트 화가’로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의 작품 주제에서 하트는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화가’이다. 하트를 그려서가 아니라, 겉으로 장난스럽게 보일망정 그는 끊임없이 사랑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를 만하다고 본다. <사랑하면 진다>가 개인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면, <만국기전>은 집단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이미지와 구성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언제나 하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하트야말로 사랑 아니냐”고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하트는 하트지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은 휘발되어버리고, 하트만 남는다. 하트는 싸늘히 식어버린 사랑의 화석이다. 강영민은 이 사랑의 흔적을 화폭에 남긴다. 그의 하트는 귀엽게 웃거나 입맛 다시거나 울고 있지만 도형으로 전락해 있다. 도형은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표정마저 기호화되어 있다. 이렇게 표정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 하트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혼란일까.
그의 하트는 사랑의 기호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 말하자면 사랑 자체를 지시한다. 사랑이 지워진 자리에 하트가 온다. 마치 사랑하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상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하트 기호일 뿐이다.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만국기전>이었다. <만국기전>에서 그는 태극기를 비롯한 이른바 국가 상징에 예의 무표정한 하트를 그려 넣고 ‘내셔널 플래그’라고 이름 붙였다.
태극기를 예로 들어보자. 그가 태극기에서 태극문양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트를 채워 넣자 갑자기 태극기는 다른 무엇이 되었다. 태극문양이 없는 태극기는 태극기가 아닌 것이다. 생긴 모양은 태극기처럼 착시를 일으키지만 곧 태극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관객은 깨닫는다. 태극문양의 자리에 하트를 그려 넣으면 하트기라고 불러야 할 터이다. 강영민은 이 작업을 통해 ‘내셔널 플래그’ 또는 ‘국기’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태극기는 태극문양이지 깃발 일반이 아니다. 다른 ‘내셔널 플래그’ 역시 그렇다.
그는 ‘내셔널 플래그’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트로 교체함으로써 ‘내셔널 플래그’의 의미를 드러냈다. 그 의미는 결과적으로 특정한 ‘내셔널 플래그’를 특별한 장소에 고정시키는 특수성의 산물이라는 것이 강영민의 메시지이다. 세상의 반응은 구태의연했다. 발칙하다는 찬사에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그가 건드린 지점은 어디일까. 강영민은 이런 작업을 통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던 국가와 상징의 결합 관계가 허구임을 폭로했다. 무릇 예술이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상성의 범주’를 해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에 도전해서 그 허구성을 드러내야 한다.
강영민의 작업은 이런 전략을 구사한다. 일단 하트라는 기호 자체가 사랑의 물신화에 대한 폭로이다. 왜 사랑은 하트로 표현되어야 하는가. 이 관계는 자명하지 않다. 그의 하트는 사랑을 대체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사랑의 상징에서 정작 빠져 있는 것이 사랑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귀엽고 아름다워야 할 사랑의 기호가 괴이하고 수상쩍은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사랑의 화가’라고 불려야 하는 것일까. 그는 사랑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급진성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사랑의 뿌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하트는 사랑의 신화에 대한 패러디이다. 하트가 무엇인가. 바로 심장, 또는 마음의 상징이다. 심장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신화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의 상징으로 하트를 인준한다. 강영민의 하트를 보면서 관객은 아무 의심 없이 ‘사랑’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 하트의 기호에 없다. 이 공식을 그의 ‘내셔널 플래그’로 옮겨 오면 더 심각해진다. ‘내셔널 플래그’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뀌면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셔널 플래그’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요소가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 상징은 무엇일까.
강영민은 ‘내셔널 플래그’에 하트를 그려 넣음으로써 국가적 상징과 국가의 동일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가 하트를 집어넣은 지점은 이데올로기와 주체가 만나는 접점이다.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이데올로기를 요청한다. 이데올로기는 주체의 쾌락을 취한 필수요소이다. 태극기는 이런 의미에서 주체의 증상을 지속시키는 쾌락의 대상이다. 주체는 이 쾌락의 대상을 사랑한다. 이 주체의 사랑이 곧 증상이다. 강영민은 이 사랑의 대상을 하트로 기호화한다. 태극기의 태극문양이 곧 국가의 정체성이라면, 이 정체성이야말로 사랑의 대상이고 하트다.
광화문에 모인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태극기라는 국가적 상징의 의미이다. 태극기는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애국자’, 다시 말해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태극기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이 상징을 하트로 기호화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이 ‘애국자’에게 이런 화가의 ‘개입’은 불순하게 보이거나 불경하게 받아들여진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이데올로기야말로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체와 특수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모두가 국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의 사랑’만이 특별하다고 ‘애국자’는 믿는다. 그런데 강영민의 하트는 그 사랑이 실제로 일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어야 할 태극기에 대한 사랑이 하트의 일반성으로 환원될 때, ‘애국자’는 국가와 동일시했던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나만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의 사랑은 가짜다라’는 구별짓기가 등장한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 결코 ‘나의 사랑’만일 수 없다는 것, 더 나아가서 그런 국가에 대한 사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영민의 하트는 ‘애국’의 외설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역설적으로 강영민은 이처럼 사랑의 부재를 통해 사랑을 말하는 화가이다. 그에게 사랑은 유토피아적 충동이기도 하다. 사랑을 통해 강영민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허무주의를 넘어선 우리 존재의 지속성이다. ●
강영민은 1972년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4년부터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내외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1999), 거리예술시장 희망시장 전시기획팀장(2002) 등을 지냈으며, 〈팝아트협동조합전〉(2014) 등 다수의 전시에 기획자로 참여했다. 현재 김포에서 작업하고 있다.
자아를 형성하는 다양한 정체성 중 작가 김두진에게 성(性)정체성은 가장 큰 화두이자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초창기 회화작업부터 3D 디지털기법을 활용한 해골 이미지 작업, 그리고 추후 선보일 예정인 집착 시리즈까지 김두진은 인간을 규정하는 사회·역사적 기표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그것들을 해체해왔다. 개별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정신성에 집중하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조명한다.
김원방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과 문화 이론에서 성(性)정치학과 몸정치학의 문제는 전통 미학에 대한 전복, 제도 비평, 급진적인 정치사회적 의제들이 맹렬히 교차하고 충돌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바로 그러한 격변의 전장에서 최전선에 선 담론이었음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의 이성애중심주의나 가족중심주의, 상품문화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주된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게이레즈비언주의, 퀴어이론(Queer Theory)과 제휴하게 됐고 상당 부분 공통된 토대 위에서 진화해 나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본질주의와 분리주의의 습성’, ‘女神페미니즘(Goddess Feminism)’과 같은 환상적 페미니즘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어 왔고, 나아가 페미니즘은 그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의 이성애-가족중심주의 사회체제로의 재흡수’ 에 불과하다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러한 페미니즘사상 자체의 모호성, 혼란, 자기모순, 잡다성이 오히려 여성예술가, 철학자, 급진적 문화행동주의자들로 하여금 상상력과 에너지를 무궁무진 발휘하게 하는 조건이 되었고, 이것에 힘입어 페미니즘사상과 페미니즘미술은 중요한 추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언뜻 페미니즘과는 다른 듯하면서도 개념적 토대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퀴어이론은 그와 동등한 자리를 갖지 못한다. 전통적인 남성중심 사회에서 ‘대드는 여성’이나 ‘깨무는 질(膣)(Vagina Dentata)’ 같은 여성적 괴물 이미지는 비교적 익숙한 공포이고 일정 부분 질서 내부로 재흡수 가능한 대상인 데 반해, 동성애를 상징적 질서 내부로 흡수시키려는 퀴어담론은 사실상 가장 이질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이는 달리 말해 퀴어이론이 그만큼 고도로 첨예하고 급진적인 사상의 가능성을 가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급진성 때문에 퀴어에 대한 담론은 페미니즘을 위한 조연 역할, 심지어 페미니즘의 한 분과 정도로 취급받기도 한다.
아서 단토(Arthur Danto) 이후 이 세계 자체가 모조리 예술이라고 강변해도 더 이상 이상하지 않고, 스위스의 한 여성예술가처럼 미술관에서 나체로 음부를 활짝 열어젖힌 채 앉아 있어도 모두 어쨌든 예술로 봐 주는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한 제도적 압력에 부딪히는 예술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퀴어예술이다. 현대미술사가들과 특히 대표적인 공공미술관과 갤러리들은 그들이 취급하는 전시에서 ‘퀴어’라고 하는 딱지를 떼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대표적 사례는 미술사가 제니퍼 도일도 지적하듯이, 앤디 워홀의 ‘非게이化’이다. 현대미술의 기린아인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를 대중 앞에서 설명할 때 그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첫 번째로 강조하고, 그것을 그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해석하며, 남자들끼리의 과격한 항문성교 장면을 클로즈업 한 그의 〈Sex Parts〉(1978) 같은 작품을 대중 앞에 부각하는 미술관은 찾기 힘들다. 동성애는 그저 작가 개인의 일탈이고 사생활일 뿐, 그의 예술 자체와는 무관한 것처럼 포장된다. ‘퀴어’라는 것은 여전히 반쯤 열리다 만 판도라 상자 같은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부 커밍아웃한 대중문화 종사자, 김두진이나 오인환 같은 작가, 그리고 최근 게이축제에 관련된 논란을 통해 동성애 문제가 조금씩 개방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그것은 일종의 ‘급진좌파적 자기도취’로 비약하기도 한다. “이제 동성애야말로 급진주의의 그다음 의제요, 인권과 해방의 새로운 시금석이다.”라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각의 열광 속에서 게이 예술가의 작품에는 곧 그 게이의 성애적 특성이 녹아 있으리라 섣부르게 추정하고 그렇게 대충 끼워 맞춘다. 이처럼 게이의 성적 특성이나 사회적 정체성이 곧바로 그 예술의 미학과 동일시되는 ‘인간-작품 동형론(anthopomorphism의 한 형태)’이야말로 가장 흔하게 저질러지는 오류이다. 게이와 퀴어는 다른 것이다. 다르다기보다는 다른 분과에 속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개념은 게이가 아니라 ‘퀴어’이다. 후자는 독해의 태도, 상징질서의 해체나 전략적 재구성, 미학적 실천전략을 말한다. 작가가 게이여도 작품은 전혀 퀴어하지 않을 수 있고, 게이가 아니어도 작품이 퀴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두진의 경우, 그는 퀴어 작가인가 아니면 그냥 게이일 뿐인가?
제3의 성을 향한 행보의 시작
김두진은 2000년대 초부터 디즈니 만화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대중문화 또는 포르노 같은 하위문화의 영역에서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이를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이후에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ereau)의 고전회화나 르네상스 명작들을 차용하고 이를 3D 컴퓨터그래픽 기법을 통해 등장인물을 해골로 대체시키는 재현비평적 작업을 하고 있다. 김두진의 작업이 퀴어한 이유는 퀴어미학의 핵심 전략 중 하나, 그러니까 ‘성차(gender)’의 이성애적 재현들을 수집, 차용하고 이것에 대한 공격을 통해 해체에 이르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런 전략은 사실상 멀게는 마르셀 뒤샹, 클로드 카엥, 그리고 가까이는 로버트 메이플소프, 데이비드 워나로빅 같은 게이예술가들도 흔히 활용해 온 전략이다. 하지만 김두진은 단지 여장(女裝, drag)이나 性 역할 바꾸기처럼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그런 방법론이 아니라, 부패, 삭제, 해골 같은 ‘ 죽음의 기표’를 삽입하는 그만의 방법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그는 과거의 회화작업에는 미키마우스나 미니마우스의 얼굴을 삭제하거나, 백설공주의 얼굴을 외눈박이 괴물로 변형시킨 작업이 있다.
순수하게 3D 컴퓨터그래픽 기술로만 이루어지는 명화패러디 작업에서는 해골이 죽음 또는 無의 기표로 등장한다. 이 작업에서 김두진은 패러디를 통해 원작에 내재된 ‘함축적 의미(connotation, 共示)’를 노출시키고 공격한다. 함축적 의미는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소위 “이미지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층위, 또는 신화적 층위”라고 부른 것이기도 하다. 김두진이 차용한 명작들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층위는 대략 두 가지의 상호 연관된 층위들이다. 첫 번째 층위는 ‘남성적’ 관점에서 규정되어 온 미술사, ‘아버지’와 동일한 의미로 정의되어 온 ‘대가(master)’의 개념, ‘걸작(masterpiece)’의 개념이 내포하는 상징적 위계질서 같은 것이고, 두 번째 층위는 명화 속 등장인물들이 지니는 남녀의 성적 차이에 의해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성 정치학 이데올로기’이다. 말하자면 서양의 명화들은 서구문화의 지배적 전제인 ‘남성/여성 간의 절대적 대립과 차이’, ‘생물학적 성차 개념’, ‘이성애주의(heterosexualism)’ 등의 이데올로기를 ‘함축적’으로 재현하면서 자연화(naturalization)해왔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김두진이 노출시키고 공격하려는 또 하나의 ‘신화적 층위’가 된다.
마사치오의 〈낙원에서의 추방〉(1425),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1866),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켄 무디와 로버트 셔먼〉(1984) 등 서양미술사에서 잘 알려진 걸작을 차용하여 그림 속의 등장인물을 해골로 대체한 작품을 보자. 정밀하게 합성된 그 이미지는 문화적 교육수준이 높은 관객이라면 십중팔구 그것이 잘 알려진 명작을 패러디한 것임을 손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러한 ‘알아채기’란 바꿔 말해 작품들이 던져 놓은 미끼, 즉 ‘재현적 코드’ 혹은 ‘서사적 주제’라는 미끼에 관객이 스스로 걸려들었음을 의미한다. 설령 그 원작들에 대한 기억이나 교양이 전혀 없다손 치더라도, 이 해골들이 취하는 연극적인 포즈를 통해 이들이 어떤 진지하고 의미 있는 행위, 즉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음(재현하는 척 하고 있음)을 알아 챌 것이다. 여기서 해골을 통한 패러디는 두 가지의 모순된 작용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첫째는 주제(앞서 말한 함축적 의미와 이데올로기)를 선명히 되살리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되살린 주제를 ‘삭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분열, 긍정/부정의 이중적 글쓰기, ‘함정에 빠진 텍스트’라는 특징은 패러디를 통해 실행되는 ‘해체(deconstruction)’의 본질적인 특징이고 또 그래야 한다(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크 데리다의 해체 개념은 항상 퀴어한 것이었다).
살이 모두 제거된 해골에는 성차적 특징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그들은 성차의 공백 위에서 남녀의 성적 역할을 흉내 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애를 비판한다’는 격한 저항의식에 추진된 나머지 그 어떤 해방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계몽적 메시지를 심어놓은 것도 아니다. 그 해골들은 단지 원작이 포함한 이데올로기적 코드체제를 교란하려는 책략일 뿐, 그 어떤 새로운 주제의식도 고취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게이레즈비어니즘이건 페미니즘이건 간에, 그 어떤 ‘새로운 의미’, ‘새로운 재현’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해골작업에는 어떤 주제(主題)도 없다. ‘재현’하고 ‘이데올로기적 목소리’를 내려는 욕망, 작품을 ‘또 다른 의미의 기표’로 만들려는 지적인 욕망, 바로 그 ‘상징의 권력을 향한 남근적 욕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그 해골들의 과제인 것이다. 성차의 삭제를 재현하기, 그것을 선포하기, 부재를 시각적 형태로 표현하기, 바로 이러한 것들이 다름 아닌 ‘재현의 해체가 다시 빠지기 쉬운 재현주의적 함정’이며,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이미 1980년대 재현비판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이 몰입했던 과제였다.
앞서 말했지만, 김두진의 작업을 방법론에 대한 명확한 통찰 없이 그저 편리하게 커밍아웃, 게이, 이성애 비판 같은 수사적 표현들을 부여하려는 담론들은, 마치 그의 작업이 그런 수사적 내용들을 주제로서 ‘재현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재현 자체에 저항함으로써 남근이성중심주의에 저항하려는 그의 작업의 지향점을 본질적으로 호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핵심은 “성차의 해체는 재현될 수 없다”라는 점이다. ‘脫이성애적 미술’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첫 번째 특징이어야 한다.
김두진의 해골들, 그들은 성차로서의 생물학적 징표가 삭제된 존재들이다. 해골에는 성기나, 젖가슴, 털이 없다. 그렇다면 ‘죽음 자체의 성’은 무엇일까? 그냥 모호하게 중성이라 말해야 하는가? 상징계 질서, 아버지(父權)에의 도전, 부친 살해(patricide) 등이 문화적으로 결정된 ‘이 性(this sex)’에 도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필연적으로 그러한 아버지의 법에 도전하는 타자의 성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즉 ‘김두진 = 타자 = 죽음’이라는 등치의 축이 가능해지면서 그들의 성은 모두 여성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이성애적으로 결정된 의미의 여성이 아님은 당연하다. 바로 라캉이 말했듯이 여자에게조차 여성은 자신의 성이 아닌 타자의 성이다. 우리는 ‘나’가 아닌 ‘타자’인 한에서만, ‘아직 여성으로 결정되지 않은 여성’인 한에서만 진정한 성을 말할 수 있고, 그 진정한 성이란 바로 여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퀴어가 ‘새로운 의미에서의 여성’과 연관되는 이유이다. ●
김 두 진 Kim Doojin
1973년 출생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9년 아트팩토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총 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0년 〈제3회 홍대앞문화예술상〉 ‘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SeMA신진작가 전시지원프로그램, 고양창작스튜디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음색은 색(色)으로, 선율은 선(線)으로, 음률은 형상으로 표현한 전시가 막을 올렸다. 작가 백순실의 〈영혼의 울림, 베토벤과의 대화〉가 바로 그것. 이번에 전시된 신작 14점 중 베토벤을 주제로 한 작품은 10점에 달한다. 작가는 베토벤의 음악을 ‘휴머니티’란 한 단어로 정의한다. 백 작가가 만들어낸 미술과 음악의 앙상블은 8월 28일까지 고려대학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인상의 기보(記譜)
김겸 |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 건국대 겸임교수
백순실의 작품은 기사에서 먼저 이미지를 접했다. 조그맣고 평평한 도판 속의 작품들은 작곡가와 작품명이 제목인 탓에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색면추상화의 일종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입구에서 ‘음악에의 헌정(Ode to music)-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과 마주한 순간,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도판 상에서 밝고 명랑하기만 했던 색면들은 모든 감각을 순식간에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복원가라는 직업병 탓에 작품 표면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단순한 평면 작품이 아니었다. 오돌토돌한 돌기들을 비롯하여 몇 차례 올린 색층은 어스름하게 밑층을 드러내거나 단단하게 쌓여 올라와 깊이감이 느껴졌다. 어떤 색면은 무광택의 단단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 얼핏 파스텔이 두텁게 덮인 것 같았는데 오일스틱이라는 크레용 같은 유화구를 사용한 결과이다. 작가는 어느 때인가부터 유화의 첨가제, 희석제들이 풍기는 기름 냄새를 받아들이기 힘든 체질이 되었고 그 대체물로 유화스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커다란 주제인 클래식 음악과 차(茶)는 작가 아버지의 취미였던 동시에 20대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충격을 벗어나게끔 도와준 오래된 벗이라고 한다.
모두 다른 곡명의 작품은 대지에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보살피며 몇 달을 기다려 무성해진 풍요의 땅이며 정성스럽게 가꾼 음악의 정원이다. 실제로 작가가 200호 캔버스를 바닥에 뉘어 놓고 적게는 3번에서 10번까지 색면을 올리고 문질러내고 다양한 입자의 퍼미스 젤(pumice gel)을 섞어 넓은 평붓으로 펴 발라 만들어 낸 돌기는 드넓은 대지를 연상시킨다. 임옥상이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흙과 대지가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어머니의 그을리고 주름진 손등이라면 백순실의 땅은 정성스럽게 일구고 가꾼 기름진 옥토와도 같다. 이 풍요의 땅 위에 작가는 담고 싶은 작곡가와 음악의 인상을 색면이나 색의 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탕층을 올리는 행위의 즐거움과 결과를 기다리는 설렘은 의도와 우연성이 뒤섞이며 형태에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각각의 작품에 붙여진 음악과 이미지와의 인과성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1번이며 또 다른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일까? 전시 제목이나 미리 접한 리뷰가 주는 오해를 없애고자 머릿속에서 제목을 비우고 무념의 상태로 바라보니 작품에서 음향이 들리기 시작했다. 표면의 작은 돌기들은 마치 오르골처럼 공간을 튕기며 잔향을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돌기는 음표가 되어 선율과 리듬을 만들었고 쌓아올린 색의 단층은 음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화성 같았다. 색상과 펄의 반짝임은 음색, 옅은 붓놀림 자국은 꾸밈음이나 즉흥적 악상을 연상시킨다. 백순실은 한때 모든 자신의 작품을 무제로 두었으나 감상자들과 좀 더 친밀한 소통을 위해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본래 작품 창작의 태도가 서사적이라기보다 창작 동기나 개념을 은유와 함축으로 깊게 숨겨놓고 재구성하는 추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한다.
미술과 음악의 협연
예술사에서 인상주의만큼 미술과 음악이 잘 어울리는 시대는 없었다.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동질성이 느껴진다는 것은 이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소리를 통해 모네의 그림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분명히 선율은 존재하지만 하나하나의 음색에 녹아들어 투명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드뷔시의 음악은 소리로 그린 그림과도 같다. 감각을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대상화했던 인상주의 화가는 영롱하고 찰나의 시간성을 지닌 빛의 물질성을 탐구하고 표현하려 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보면 점차 수련이나 수면을 암시하는 형태들이 사라지고 화면 전체로 퍼지는 빛의 느낌만이 남게 된다. 형태가 대부분 사라진 후기의 수련시리즈는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찬미하는 상징주의나 표현주의를 지나 추상으로까지 나아간 듯 보인다. 클로드 드뷔시의 인상주의 화풍을 닮은 음악도 아주 흡사한 궤적을 그리며 전개되었다. 그의 초기 피아노 모음곡 ‘베르가마스크’(1890)는 명확한 선율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성을 드러낸 반면, 후기의 모음곡 ‘영상’(1905)에서는 선율은 모호해지고 빠른 음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찰나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상징주의 시인으로 모더니즘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보들레르의 ‘조응’ 혹은 ‘교감’이란 개념은 우주만물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감각적 관계를 ‘교감하는 관계’로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감 속에서 인간의 오감 역시 하나의 공감각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미술사 서술방법에서 인상주의를 추상미술의 선구자적 위치에 두는 것이나, 음악사에서 현대음악의 출발점을 드뷔시의 관현악곡법으로 보는 이유는 조형예술의 형상과 음악의 명확한 선율이 사라짐과 연관이 있다.
재현과 서사의 수단으로서 예술이 표현과 추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인상주의 음악이 조형예술의 시각적 감각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나 이후엔 오히려 조형예술이 음악의 추상성을 닮아갔다. 괴테가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한 이래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월터 페이터는 ‘모든 예술은 음악적 상태를 갈망한다’고 할 만큼 점차 음악과 다른 예술장르간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구성’, ‘즉흥’, ‘인상’ 시리즈에서도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03년 멘델스존의 피아노 모음곡을 연상시키는 ‘무언가’라는 타이틀로 122개의 목판화 연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개최된 칸딘스키 추상화전 카탈로그에서 독일 화가 브루노 하스는 ‘칸딘스키의 색은 서로 공명하여 시각적 화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선율을 없애기 위해 조성자체를 해체한 추상음악의 선구자 아놀드 쇤베르크와 칸딘스키가 친구이자 예술적 조력자가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파울 클레의 선율과 음색을 색면의 흐름으로 표현한 작품은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을 연상하게 한다. 클레는 악보 자체에서 조형미를 발견하여 오선지와 음표의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존 케이지는 적극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보와 조형예술로서의 이미지를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흥미롭게도 작곡가 야니스 크네나키스나 피에르 불레즈의 악보는 조형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순실의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캔버스 안에 선율, 음색, 리듬, 화성과 악장 구조를 모두 넣어 굳힌 3차원의 풀 스코어와도 같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악보만 보아서는 어떤 곡인지 알기 힘든 것처럼 백순실이 캔버스 위에 기보(記譜)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들 또한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의 의식 안에서 재해석되고 조형화된 거대한 음향의 인상들이 바탕칠을 올리고 문지르며 색면을 구획하거나 빠르게 올리는 행위를 통해 복기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 말러의 교향곡 1번과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개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말러 교향곡 1번’의 경우 밝고 때때로 경쾌한 선율을 가지고 있지만 이따금씩 들려오는 불안한 화성과 곡의 부제인 ‘거인’을 연상시키는 3, 4 악장의 거대한 울림이 크게 분할된 화면 속에 보였다. 춤의 교향곡이라고도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경쾌함이 넓은 화면에 역동적으로 펼쳐진 가운데 2악장의 조용한 장중함이 화면 가운데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작품은 각 제목의 작곡가나 곡의 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는 내게 ‘황제’로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 속 ‘황제’ 협주곡의 ‘격정’이나 특히 좋아하는 3악장의 ‘승리, 환희’ 같은 인상이 강렬한 색상의 상승하는 이미지가 되어 느린 2악장을 배경으로 치고 올라오는 형상이었다면 금세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익숙한 곡을 익숙한 방법으로 연주한 레코드를 듣는 경험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해석과 파격적인 연주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설렘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연주가와 새 음반을 기다리는 이유이자 감상의 즐거움이 아닐까.
예술가의 삶이 모두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하듯이 모든 예술작품은 다르고 새로울 수 있다. 이론을 공부하며 딴에는 귀명창이 되어 물든 나쁜 버릇이 예술작품을 범주화하여 설명하고 서구의 이론에 끼워 맞추어 재단하는 것이다. 다행히 오랜 시간 복원일을 하며 작가의 붓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 표면을 마주하다 보니 평면 속에 감추어진 물감의 깊이와 함께 창작의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순실은 음악과 차를 즐기며 그리고 창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연스레 담아내고 있으므로 우리가 바라보는 베토벤은 화가 백순실의 베토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