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호상근

“이 모든 장면과 그림과 이야기들은 해석하려 하면 미신이 될 것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인생극장이 되어버리기 십상이고 좀 더 가까이 가면 그 장면을 야기한 사회구조와 삶에 관한 불신과 회의와 분노를 일으킬 테지만 거리를 두고 본 이 모든 것은 ‘영감’이라 일컫는 그 어떤 에너지가 되어 목격자나 재현한 자에게 남거나 때때로 휘발하는 성질의 것으로 변모한다.”
– 윤재원 독립잡지 《칠(Chill)》 전 편집장

혼자만 보기 아까운 풍경

‘호상근재현소’. 작가 호상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면서 자신이 본 것(내가 본 것) 혹은 타인이 본 것(네가 본 것)을 넘나들며 일상에서 경험한 소소한 풍경을 드로잉 형식으로 재현한다. 특별한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작가는 사람들과 시시콜콜 이야기하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을 포착해낸다. 이때 요구 사항은 한 가지다.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본 것이 아닌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본 장면 혹은 특이한 꿈을 되도록 자세히 얘기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눈에 익숙해져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머릿속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구석진 풍경을 끄집어낸다.
손글씨처럼 정감이 넘치는 호상근의 그림은 SNS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호출한다. 손바닥 크기만한 작품이 완성되면 그림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에게 우편으로 전달된다. 그림을 받는 이는 오랜만에 손편지 받을 때의 설렘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요즘 손쉽게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면서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가볍게 대상화해 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를 통해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고, 덕분에 나도 살아있음을 힘들이지 않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가볍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 인터넷, SNS을 통해서 다양한 이미지가 범람하지만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3_끝까지얘기안하는사랑 사본

<끝까지 얘기 안하는 사랑> 관제엽서에 연필과 색연필 10.4×14.8cm 2014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 21×29.7cm 2012

<부드러운 침범>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 21×29.7cm 2012

2011년부터 꾸준히 그린 그림은 어느 새 수 백장이 넘는다.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물어보자 작가는 ‘네가 본 것’ 중에서 한강 둔치에서 운동하는 한 아주머니가 얼굴에 검은 손수건을 얹자마자 빠르게 걸어 나가던 모습을 꼽는다. 천이 얇아서 앞을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햇볕을 가려주는 편의성과 동시에 속도측정도 가능한 손수건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집중하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주머니가 살면서 얻은 노하우가 압축된 장면이다. 자신을 소인배라 부르며 겸손함을 보이는 작가는 탑골공원 할아버지들이 손 안 대고 코푸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타인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자리 주인이 만든 다양한 모양의 주차금지 조형물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의 단면에 매력을 느끼고 사람들이 살면서 축적해놓은 사소한 삶의 내공에 존경을 표한다.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회적 모순, 부조리가 가득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도 있지만 호상근은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수많은 잣대가 교차하는 치열함 속에서 스스로만의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호상근재현소’는 지금까지 하나의 장소에 머물지 않고 서울, 부산, 청주 등지로 이동하며 사람들의 사연을 모았다. 최근에는 한 라디오프로그램 코너에 고정적으로 참여해 선정된 사연을 재현하고 있다. ‘내가 본 것’, ‘네가 본 것’은 혼자만의 풍경으로 간직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호출된다. 그리고 전시로 펼쳐지며 많은 사람과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같은 풍경을 두고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점이 다르다. 그림 원본이 실제 이야기의 주인에게 전달되다보니 작가에게 작품이 남지 않는 특성상 호상근은 이미지를 모아 책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제3자가 그림에 관한 글을 써 이미지와 텍스트의 간극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교차시켜 보여주고 싶단다.
최근 작가는 작은 그림뿐 아니라 대형 캔버스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작은 크기의 작품은 한 화면에 하나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지만 큰 화면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상근재현소는 앞으로도 계속돼 다양한 기억의 재현물을 축적할 계획이다.
이슬비 기자

청주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광경

청주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린 <다시, 그림이다> 전시광경

호상근은 1984년 태어났다. 한성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12년 꿀풀에서 첫 개인전 <내가 본 것, 네가 본 것: 호상근 재현소>를 열었고 <산으로 간 펭귄>(백남준아트센터), <어쩌다 꾼 꿈>(부산시립미술관), <다시, 그림이다>(우민아트센터)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NEW FACE 2015 지희킴

“자화상은 작가 자신의 심리적 전이의 효과들이 기록되는 도상적 기호로, 거기에는 항상 작가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개인적 욕망을 접목시키고 사회의 표준적 경계 내에 포착되지 않은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마두-여성은 그 자체가 자화상이자 작가의 투쟁 장소이며 혼성과 경계 넘기를 실현하는 시대적 표상이다.”
– 배명지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

마스커레이드는 끝났다

12시 종이 울리면 신데렐라의 마법은 사라진다. 화려한 치장은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이 한낮 백일몽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최근 지희킴이 선보인 작업은 12시가 지난 신데렐라 같다. 마스커레이드가 끝나고 베일을 벗은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희킴의 최근 작업은 책에 기반을 둔다. 그녀의 북드로잉 작업은 텍스트에 담긴 논리적 인과관계를 무시한다. 그리고 책 위에 드로잉을 그림으로써 텍스트를 지운다. 이 행위는 단순히 글자를 그림으로 덮어쓰는 것이 아니다. 책 위에 그려진 드로잉의 주제는 텍스트의 서술적 내용을 무력화한다. 드로잉은 철저히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에 의지한다.
북드로잉 작업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책을 펼쳐서 눈에 띄는 한 단어를 포착한다. 그 단어에 뿌리를 두고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간다. 잊고 있었던 내면에 자신을 맡긴 채 생각의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 앞에 발걸음이 멈춘다. 바로 그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장면이 책에 그려지게 된다. 작가는 개인적인 기억의 조각을 책에 활짝 펼쳐 보이지만, 관객이 그 의식의 흐름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데 모르는 언어로 쓰여있어서 해석 불가한 상황 같다. 영국 유학시절,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 지희킴은 유독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흔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다”라는 표현처럼 작가에게 독해가 어려운 영문 텍스트 단락은 이미지 덩어리와 같았다. 이미지화된 텍스트 위에 그려진 그림은 레디메이드(책)를 사용한 작업이다. 검은 덩어리(텍스트)와 조응을 이루는 콜라보레이션이다.
의식의 과정을 생략한 결과물로, 내면을 한 단계 감추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지희킴의 작업에서 꾸준히 나타난다. 책을 지지체로 사용하기 전에는 얼룩말 탈을 쓴 여성이 등장하는 회화를 주로 했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카모플라주다. 얼룩말 모양 탈로 그림 속 인물은 이중으로 자신을 숨긴다. 이를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반항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여성이 등장하는 유학 이전 작업은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있다. 반면 유학 후 작업에 등장한 여성은 훨씬 직접적이다. 풍자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여성은 얼룩말 탈을 벗고 실존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는 너무나 명확하게 규정지진 아름다움의 기준에 염증을 느꼈다. 한국 여성은 큰 눈, 높은 코 등 서구의 아프로디테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몸부림친다. 이러한 기준에서 작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과연 우리의 이러한 미적 기준이 옳은지 질문을 던진다. 잡지에 등장한 서양모델들을 지知의 아이콘인 책과 함께 배치해 문제를 제기한다. 얼룩말 탈로 얼굴을 가리고 다소 폭력적으로 드러내던 반항적 표현과 사뭇 다른 변화다.
지희킴에게 책은 무한한 자유의 창작소다. 도서관에서 기증 받은 책에는 많은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다. 책장 사이에 사람을 찾는 편지가 끼워져 있기도 하고, 압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책 위에 식물도감에서 스캔 받은 꽃을 오려붙여 정원을 만드는 작업도 이러한 타인의 흔적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책을 펼쳐 눈에 띄는 한 단어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의 의식이 닿는 어느 지점을 표현하거나, 또 다른 책에서 차용한 이미지와 부착해 사회를 풍자하거나, 타인의 흔적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는 이전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책이라는 지지체에 의지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작가는 이 위험성을 자각하고 기존의 작업을 확대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앞으로 펼쳐질 지희킴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날 전면에 자신을 드러낼 수도, 혹은 사회나 관객을 드러낼 수도 있다. 자신의 모습을 한 꺼풀씩 드러낼 때마다 우리는 작가와 가까워질 것이다.
임승현 기자

〈불가능한 열망〉 기부 받은 책에 프린트 이미지, 가변크기, 2013~2015

〈불가능한 열망〉 기부 받은 책에 프린트 이미지, 가변크기, 2013~2015

〈Sleepless Night 2〉 캔버스에 아크릴, 마블링 130×162cm 2008

〈Sleepless Night 2〉 캔버스에 아크릴, 마블링 130×162cm 2008

지희킴은 1983년 태어났다. 동국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7년 진흥아트홀에서 열린 〈Finding my other self〉를 시작으로 서울과 런던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골드스미스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인천아트플랫폼 6기 장기 입주작가로 활동한다.

 

SPECIAL ARTIST 강은엽

조각가 강은엽은 형식과 내용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작가다. 전통적 조각어법에 충실한 초기작부터 일상과 자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성찰이 담긴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강은엽의 예술세계는 결국 ‘사랑’과 ‘모성’, ‘생명’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시선은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대상에 대한 애틋한 정서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구체화 된다. 작가 강은엽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만남의 용법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

강은엽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 조각에서 매우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으로부터 새로운 영역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적인 탈출을 시도해왔다. 잘 알려진 <창窓> 연작과 같은 테라코타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입체적 평면을 선보였다. 그는 조각적 표면 위에 선묘線描뿐 아니라, 루치오 폰타나에게서 볼 수 있는 평면의 투과透過를 우의적으로 감행함으로써 조각적 매스에 안과 밖, 혹은 내면과 외양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부여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초기 모더니즘 조각이 뿌리내리던 시기에 여성 조각가로서 그가 확보할 수 있었던 중요한 표현의 가능성들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남성 위주의 당대 조각계에서 그는 자신의 삶, 특히 여성으로서 삶의 경험-사랑, 모성, 신체성, 소수성 등과 같은-이 일으키는 폭넓은 감성의 영역들을 조각을 통해 기록한 것이다. 1979년 공간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이러한 작업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전시다. 이 전시에서 강은엽은 테라코타, 즉 흙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대거 선보였는데, 이 작품들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유기적 형태의 창조’가 어떤 단초에서 출발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유기적 형태’란 단지 형식적인 요소들의 조합이 아닌, 감정적이고 신체적인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성되는 물질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거나 그것에 속하는 형태이며, 삶과 죽음의 순환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여기서 ‘흙’은 단지 재료일 뿐 아니라 이러한 유기적 순환과 생성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며 개념적 질료이다. 그러므로 그가 흙 대신 돌이나 나무를 사용할 때조차 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대표하는 신체적이고 동시에 관념적인 출발점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1987년에 도쿄의 마키眞木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은 ‘Escape’, 즉 ‘탈출’이었다. 작가의 개인사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여성 조각가로서 그가 살아온 시대를 떠올릴 때 그리 의외의 주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작가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육각의 나무 프레임은 흡사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육면체의 틀을 떠올린다. 후자의 틀 안에서는 인간 군상이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가거나 원초적 감정들에 사로잡혀 절규하고 있는 반면, 강은엽의 틀 안에서는 어떤 존재의 파편들이 일어난 사건의 기억을 간직한 채 허공에 떠 있거나 그 안에 쌓여있다. 특기할 것은 기존의 테라코타 작업 이후에 이러한 형태와 재료들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창’ 연작에서 테라코타의 표면을 날카롭게 꿰뚫어 벌려놓음으로써 형태의 안쪽을 암시하고자 하던 제스처는 여기서 파열 혹은 내파內破, implosion의 그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특히 <하늘과 땅 사이>(1987)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전시에서 선보인 <9개의 방>은 이 나무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목에서부터 직접 가리키고 있다. 각각의 틀 안에는 마치 소설의 챕터들처럼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서사적 관계들을 함축하는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 이어진다.
강은엽의 작품 가운데 가장 격정적인 작업은 1989년 갤러리 서미에서 열린 <Embrace전>에서 발표한 돌, 철판, 유리 연작을 들 수 있다. 50대에 접어든 작가의 열정과 통찰이 번뜩이는 이 작품들의 키워드를 떠올리라면 ‘고통’과 ‘연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나무 프레임 작업들과 더불어 새롭게 소개된 돌, 철판, 유리 작업은 신체적 고통과 그것의 항구적인 지속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거칠게 깎이거나 잘린 돌과 철판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깨진 유리 파편과 뾰족한 금속의 봉棒들이다. 제목에서 언급한 ‘embrace’, 즉 ‘포옹’은 이러한 날카로운 관통을 견디고 있는, 그것을 붙잡아 영원히 품고 있는 존재의 단단함을 가리킨다. 이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관객조차 신체적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컨데 1989년 작인 <만남 Encounter>은 세 개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창끝처럼 나란히 돌에 박혀있는 작품으로, 운명적 만남이 야기한 환희와 고통을 더없이 간결하게 표현한 시각적 시詩다. (수정과도 같은 세 개의 유리 파편은 작가 자신의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은엽의 독특한 ‘시적 연결’poetic association에 대해 오병욱은 ‘상대적인 관계항들의 대조적인 배합에서 파생하는 갈등의 부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즉 작가의 방법론 속에서 시각적 형식의 탁마琢磨 대신 시적이고 심리적인 직관적 개입이 부각된다는 의미이다. 작가는 이러한 방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모든 물질이 자체의 경이로움을 가질 만큼 그 물질과의 만남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어떤 재료와의 만남은 적중된 예감처럼 필연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 재료 그리고 또 다른 재료와의 만남이 상대적인 관계로서의 새로운 국면의 창조를 낳게 하는 것이 아닐까…”
1992년에 서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시간의 배후 The Other Side of Time>에서 강은엽은 이러한 ‘경이로움’에 대한 통찰을 독보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이 전시에서 그는 말 그대로 거칠게 깎여진 오석烏石들을 전시장 바닥에 늘어놓았다. 전시 서문을 쓴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는 이 전시의 제목이 ‘시간의 배후’인 것에 대해 “인위의 문명에 때묻지 않은 시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자연다운 자연’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것을 점점 빨라지는 공간이동 수단에 의해 시간이 중요해지는 ‘시간의 공간대체현상’에 대한 반대급부적 대응이라고 보았다. 즉 바닥에 놓인 정적인 사물들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사물 자체의 존재를 지탱하는 공간의 간격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시는 개별적 작품이 아닌 설치작업처럼 보이며, 전시된 바위들은 최소한의 인위적 가공만이 가해진 고대의 거석 집단처럼 보인다. 그중에 한 작품에 붙어 있는 <지금은 고요할 때>라는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돌, 스테인리스 스틸 40×90×30cm 1986

<만남> 돌, 스테인리스 스틸 40×90×30cm 1986

 돌(烏石) 40×210×30cm 2003 당시 작가의 관심사였던 문명과 도구에 관한 연작 가운데 하나

<바늘> 돌(烏石) 40×210×30cm 2003 당시 작가의 관심사였던 문명과 도구에 관한 연작 가운데 하나

생명에 대한 공감능력
1992년에 창설을 주도한 계원예술대학교의 설립 이래로 전력을 다해 몰두해 온 예술교육 활동은 지난 20여 년 간 강은엽의 창작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창작의 핵심 동력인 타자에 대한 사랑과 공감은 교육이라는 광범위한 프로젝트 안에 녹아들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연적 재료들로부터 인공적이고 건축적인 기념비적 구조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조형성의 영역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발견을 전달하고 확산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녹아든 삶과 타자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그의 동물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잘 알려져 있다. 강은엽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동물보호협회 ‘카라’ 회장으로서의 활동은 그 일부에 해당한다. 실제로 그는 10여 마리의 유기견을 거두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물에 대한 그의 관심과 헌신은 일상적 삶에서나 창작에서 생명에 대한 공감능력이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것을 ‘생명 공명life resonance’이라고 부른 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강은엽의 작업이 형식적 조형성의 완성이 아닌 세계와 삶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공명’이란 다름 아닌 다른 존재의 형태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으로, 예술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생명공명’은 최근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타이틀매치>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은엽에게 산책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년 가까이 살아온 청계산 자락 자택에서 인근의 산을 오가는 산책을 통해 그는 버려진 유기견들을 보살피고, 마찬가지로 꺾이거나 죽어버린 나무들을 거두어왔다. 이렇듯 버려진 것들을 거두는 일은 그가 평생 동안 해온 작업들의 의미와도 깊은 연속성을 지닌다. 그에게 작업이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과 ‘모성’, 그리고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던 것들의 ‘몸’과 관련된다. 그리고 버려진 것들 안에 내재하는 ‘작아진’ 생명에 대한 연민 역시 그의 마음과 맞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타자에의 관심과 시선은 그간 해온 작업들 속에서 자연적인 대상들에 대한 애틋한 공감과 공감각적인 시적 몰입으로 발현되었다. 오랜 세월 성장하면서 아름답게 형태를 잡은 나무들이 어느 순간 최후를 맞게 되어 그 형해形骸가 나뒹구는 것을 발견하면, 작가는 그것에 염을 하듯이 작업을 입혀 다시 새로운 시간을 부여한다. 이 전시에서 그는 살아있는 나무들과 쓰러진 나무들이 함께 존재하는 숲의 사진들, 쓰러진 죽은 나무들의 몸을 다룬 조각들(<쉼>)과 나무들의 나이테를 탁본이나 도장처럼 찍어 놓은 판화들(<말과 글>)을 전시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듯이 제목은 강은엽의 작품들에 있어 중요한 조형적 요소가 된다. 전시장 벽에 기대어져 있는, 작가가 산을 오르내릴 때 지팡이 삼아 짚었던 나무 작대기에 그는 <돌아봄_한 그루 나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가 하나의 존재와 생명의 시간을 공명하고 의지하며 그것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인 것이다. 숲 속에 나뒹굴던 나무 껍질을 주워 그대로 ‘레디메이드’로 사용한 <긴 여행에 관한 책>은 작가의 창조적 삶과 익명의 존재 사이에서 오가는 깊은 밀어密語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 원로작가는 어떤 새로운 전환의 에너지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이제까지의 작업들에서 작가가 꾸준히 깊이를 더해 온 것이다. 버려진 것들과 약한 것들, 사라진 것들과 감추어진 것들에 대한 따듯한 공명은 강은엽의 작품세계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일관된 내용이다. 그에게 인간과 사물, 동물과 자연은 모두 동일한 시선의 거리에 놓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보듬고, 말을 걸고, 버려진 것들을 거두어들인다. 삶과 세계의 경험 안에서 그의 작업은 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가 보여주는 반세기에 걸친 창작적 삶은 그 어떤 형식적 완결과도 다른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예시를 열어주고 있다. 그것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숱한 ‘만남’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며, 이는 삶과 세계의 새로운 용법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나갈 것이다. 강은엽의 작품은 그러한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

2014년 1월 7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광경

2014년 1월 7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타이틀매치> 전시광경

판화 12점으로 구성된 과 시멘트로 캐스팅한  연작

판화 12점으로 구성된 <말과 글>과 시멘트로 캐스팅한 <쉼> 연작

강 은 엽 Kang Eunyup
1938년 태어났다.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 Art Students League에서 Jose De Ceieft에게 조각수업, 뉴저지 몽클레어주립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5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93년 제7회 김세중조각상을 수상했고, 계원예술고등학교 예술연구소장(1980~1993),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1993~2005)를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 명예대표, 한국현대문학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ARTIST REVIEW 이수경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여 작업하는 이수경의 개인전 <이수경, 내가 너였을 때>가 2월 10일부터 5월 17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린다. ‘주체에 대한 부정’을 키워드로 하는 이수경의 작업세계는 변화무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유동성이 특징이다. 회화, 영상설치, 드로잉 등 250여 점의 작업을 통해 작가가 펼치는 다채로운 변주를 살펴보자.

임시적인 주체와 전생 퇴행

황인 미술비평

이수경의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회는 개인전이 아닌 그룹전을 보는 듯하다. 한 작가가 짧은 주기에 변덕스러울 정도로 급격한 변신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작업과 작풍을 보여주는 경우는 이수경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작품세계를 분석할 때 맨 먼저 동원되는 것이 환원작업이다. 그리하여 추출된 요체에서 작가의 특징적 성격을 도출한다. 이를 작가적 주체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은 이수경의 작품세계 앞에서는 요령부득이 되고 만다.
모더니즘 이후, 대부분의 작업 행위는 작가 자신의 주체에 대한 확신을 암묵적인 전제로 하고 출발한다. 변화무쌍한 대상을 작가와 같은 장소성에서 현상적으로 다루거나, 대상을 장소성을 초월한 절대적인 균질공간으로 월경시켜 다루더라도 그 이면에는 확고한 주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의 인정에는 강약의 차이가 없다. 그러한 주체가 있어 이와 대립항인 객체 사이의 역학관계를 부여하여 이 둘 사이의 긴장감을 유도한 건 근대주의의 성과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를 부정하고 주체 그 자체에 대해 의심을 내세우는 미술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수경의 작업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와 굴곡이 많은 듯하지만 굳이 첫 개인전 <나와의 결혼>에서부터 이번 전시 <내가 너였을 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업을 한마디의 키워드로 정의하자면 ‘주체에 대한 부정’이라 하겠다.
주체subject 란 ‘아래根底 에 놓인 것’이란 뜻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려는 현상을 담고 있으되 자신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공간을 확보한 그릇이 주체다. 그런 만큼 주체는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 미술가의 작업에는 일관된 작풍으로 암시된다. 작품이 시종일관 일관성을 지닐수록 작가의 주체는 강화된다.
반대로 일관성을 상실한 주체, 변덕스럽게 변신을 거듭하는 주체는 적어도 근대주의에서는 병리적으로 취급된다. 주체와 주어에 대한 강박을 거부하고 술어적 세계를 더 강조했던 모노파에서조차 그 이면을 보면 작가는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주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이들 중 작풍의 변덕스러운 변신을 통해 주체마저 거부한 작가는 스가 기시오가 유일하다).
이수경은 초기작업 <나와의 결혼>(1992)에서 모더니즘 이후 확고하게 자리 잡은 주체의 지위에 반역을 도모했다. 나와 그의 결혼이 그러하듯 주체와 객체라는 대립항으로 분리된 상태가 결합하는 방식이 아닌, 임시적인 나라는 허술한 주체와 또 다른 임시적인 나라는 가상의 객체가 뒤엉켜 합체合體(결혼)하는 경지의 작업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아메바처럼 자웅동체이던 것이 포유류처럼 자웅이 분리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화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자웅을 공간적으로 대응하는 개념으로 분리하여 이를 다시 구조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결혼의 방식이다. 그러나 공간화를 거부하는 퇴행적인 자웅은 분리와 결합의 과정을 거절한다. 이수경의 작업은 초기부터 이런 낌새를 보였다.
신체적 자아, 심리적 자아 과정을 넘어서서 칸트가 언급한 대로 ‘선험적 의식’을 가진 자아는 본질적인 그릇으로서의 주체가 되어 객체와 완벽하게 대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에 의해 수시로 변화하는 주체가 아니라 공간성을 확보한 주체로서 정의되는 과정은 근대주의의 특징인 시간과 장소의 공간화와 맥을 같이한다. 그리하여 주체와 대상Gegenstand, 마주보고 섬 사이의 위치성과 선형적인 방향성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대상이라는 3인칭으로 나아가느냐 주체의 1인칭으로 남느냐는 작가 개인의 몫이고 또 개성의 몫이기도 하다. 근대주의 미술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성립하려 한다.

 연작이 설치된 대구미술관 전시장 광경

<번역된 도자기> 도자기 파편 에폭시 금 가변설치

 연작이 설치된 대구미술관 전시장 광경

<번역된 도자기> 연작이 설치된 대구미술관 전시장 광경

자기동의성의 상실
그런데 이수경은 근대주의의 토대와 기반을 계속 부정하려 한다. 퇴행이라고 할 수도 있고 병리라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주체의 강화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근대주의에 대한 조롱일 수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려는 돌파구이자 가능성일 수도 있다.
<파라다이스 호르몬전>(2008) 이후 나는 그녀의 작업을 1인칭과 3인칭의 관점에서 논한 적이 있다. 영기문靈氣文 을 연상케 하는 <불꽃> 연작을 1인칭 작업으로 그리고 그녀의 대표작처럼 알려진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3인칭 작업으로 분리해 보았다.
이번 전시의 큰 타이틀은 ‘내가 너였을 때’이다. 앞서 열거한 작업들 외에 <눈물>, <달의 이면>, <불꽃변주>, <이동식 사원>, <가장 멋진 조각상>, <순간이동연습용 그림>, <매일 드로잉>, <환상의 섬>, <휘황찬란 교방춤> 등 그동안 해온 다양한 시리즈의 작업이 대거 동원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이수경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은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생퇴행그림> 연작이다.
작가는 최면을 통해 전생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전생을 그림으로써 여기서 종잡을 수 없는 여러 개의 주체가 나타난다. 주체는 자기동일성identity 을 가진 하나여야 하고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불변이어야 하는 것이 근대주의의 입장이다. 그런데 최면을 걸 때마다 다른 주체가 나타난다. 여자였다가 남자였다가, 높은 신분이었다가 비천한 신분으로. 노루가 되었다가 곰이 되었다가 혹은 무생물이 되기도 한다.
전생前生 은 술어적述語的 상태가 주체를 가장하고 드러난 모습이다. 술어적 상태가 주체를 대체하거나 압도할 때 본질적인 그릇으로서 완강한solid 근대주의적 주체는 유동적인liquid 분자 상태로 와해되고 만다. 이런 유동성 속에서는 나는 너가 될 수 있고 너는 내가 될 수 있다. 나라는 주체의 그릇이 깨어지고 그 조각마저 완전히 마모돼버려 허공만이 남은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분자화된 나와 너를 다 안고 있는 광대무변의 우주universe 라는 그릇이다. 우주에는 주체와 객체, 1인칭과 3인칭 혹은 2인칭 사이의 구별과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나의 통uni-verse 으로 함께 존재할 뿐이다. 이는 나라는 주체를 우주의 근원적인 질료로 환원한 종교적인 경지다. 주체의 무한한 확장을 미덕으로 삼은 근대주의와는 반대되는 입장이다.
이수경은 ‘내가 너였을 때’라고 타이틀을 붙였다. 종교의 궁극적인 경지에서는 ‘너’를 나의 은유적인 의미에서의 거울로 여긴다. 너라고 하는 2인칭은 사실은 또 다른 모습을 한 나라고 하는 1인칭일 뿐이다.
여기서 너는 하나의 너가 아닌 무수한 숫자의 너다. 변화무쌍한 빛의 도움을 받아 거울을 통해 드러난 주체는 현상적이며 또한 술어적이다. 거울 속에서 현상적이며 술어적으로 드러난 무수한 너를 나로 받아들일 때 나라는 주체는 근대주의가 구축하려는 자기동일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자기동일성으로서의 주체는 하나여야 하는데 복수의 주체를 받아들이게 되니 전생이 성립한다. 복수의 주체란 다름아닌 주체의 여러 양상 즉 술어적 양태인 것이다. 전생이란 게 술어적 상태가 주체를 가장하여 드러난 모습 혹은 주어와 술어가 역전된 상태라고 한다면 그 전생은 나를 비추는 무수한 거울과 같은 너일 수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너였을 때’라는 타이틀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녀가 ‘전생퇴행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

 영상설치 2004

<환상의 섬> 영상설치 2004

 이 수 경 Yee Sookyung
이수경은 1963년 태어났다.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한국을 비롯, 타이완, 브라질, 벨기에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의 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ARTIST REVIEW 전소정

삶과 예술 사이가 궁금하다. 작가 전소정은 삶 속에 스며든 예술을 다양한 레퍼런스의 융합으로 표현한다. 문학과 미술, 음악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울림을 전달한다. 혼재된 레퍼런스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만들어낸 내러티브를 마주한 관객은 자신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작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볼까.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가 취하는 예술적 태도를 살펴본다.

보물섬〉Inkjet print 262×350cm 2014(왼쪽)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Embroidered on fabric 90×70cm 2014(오른쪽)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광경

〈보물섬〉Inkjet print 262×350cm 2014(왼쪽)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Embroidered on fabric 90×70cm 2014(오른쪽)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광경

예술가와 예술적 태도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초창기 전소정의 관심사 중 하나는 ‘내러티브’이다. 일반적으로 내러티브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건은 어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인데, 소위 내러티브가 되려면 그런 사건들이 시간적 선후관계나 인과관계에 따라 연쇄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술에서도 내러티브는 낯선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역사적 사건, 신화, 전설, 일상적 이야기가 회화, 두루마리 그림, 부조,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시각화한 바 있다. 물론 모더니즘 시기에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이 내러티브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삶을 사는 일이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며, 사람 사는 곳에 이야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자신에게 적용해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이 곧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미술의 내러티브(주로 영상)는 소설이나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다소 다르다. 이미 많은 영상 작업이 논리적 인과관계를 뒤엎거나 시간적 전후관계를 엉클어 놓으며 비선형적이고 파편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영상을 중간부터 봐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전소정은 하나의 비선형적 내러티브가 아니라 복수의 내러티브를 중첩시키고 있다. 즉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는데, 독특한 것은 그중 하나는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내러티브라는 점이다.
우선 전소정이 눈여겨봤던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찍이 그는 <일인극장>을 통해 보통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후 자신이 만든 무대에 그들을 올렸다. 비록 작은 무대였지만 그 무대의 주인공은 그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무대에 올린 이야기는 허구인 듯해도 실제 이야기였으며, 극이 진행되면서 실제 이야기는 허구처럼 보였다. 연극이 주는 극도의 몰입감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지만, 때론 실제의 삶도 그에 못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소정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엘리스’라는 무용수였다. 2006년 핀란드로 여행을 간 작가는 우연히 숲속에 들어갔고, 친구로부터 그곳에 사는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살던 공간을 보면서 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던 무용수는 자신의 이상을 좇아 자신의 삶을 살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설령 남의 눈엔 거지처럼 보여도. 무용수의 삶에 담긴 예술적 측면이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귀국한 그는 숲에서 체험한 것과 무용수에 대한 상상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무대, 소품, 의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금발의 가발을 쓴 무용수를 무대에 올려 숲속에서 헤매다가 헝겊인형과 춤추게 했다.
무용수를 실제로 만나고 싶었던 전소정은 2009년 그를 찾아 핀란드에 다시 가지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어떻게든 그를 알고 싶어 그를 기억하는 3명의 친구를 만난다. 흥미롭게도 무용수에 대한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상당히 엇갈렸다. 첫 번째 인물은 숲에서 무용수의 흔적을 보며 그를 기억했고, 두 번째 인물은 무용수의 출생, 이동, 경력 등 정확한 데이터로 그를 기억했고, 세 번째 인물은 엘리스를 기록한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 가지 내러티브와 자신의 내러티브를 더해 나온 것이 〈Three Ways to Elis〉이다.
엘리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전소정은 삶과 예술이 결합된 사람들 혹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어떤 경지에 이르려는 사람들을 모티프로 삼아, 역으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자문하는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기획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일상의 전문가’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껏 4번에 걸쳐 총 10편이 발표되었다. 이 작업은 인물의 실제 모습을 담은 영상,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극화된 텍스트, 비전문 성우가 읽는 내레이션, 그와 평행하게 볼 수 있는 문학으로 이루어진다.

05_the_twelve_rooms

〈열두 개의 방〉 single channel video, stereo sound, color, HD 7분35초 2014

〈열두 개의 방〉 single channel video, stereo sound, color, HD 7분35초 2014

일상의 전문가
가장 먼저 제작된 것은 〈The Old Man and the Sea〉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낚시하는 노인이다. 핀란드에 체류했던 전소정은 가끔 바닷가에서 낚시를 했지만 물고기를 거의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이 노인이 그에게 여러 조언을 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짧은 순간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기다림은 고기를 잡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가도 가져야 할 덕목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때 그가 연결지은 문학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계속해서 전소정은 김치공장의 아주머니, 변검술사, 줄광대, 기계자수사, 간판장이 등을 만나면서 전통과 현대(개별성과 보편성), 내면과의 싸움, 이상과 현실, 자신만의 호흡, 상업과 순수(작품의 유한성과 초시간성) 등의 문제를 고민했고, 동시에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괴테의 〈파우스트〉, 카프카의 〈최초의 고통〉,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같이 보는 문학으로 각각 제시했다.
한편 당시 전소정은 예술가의 덕목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7채널 비디오를 제작한다. 그는 열정, 성실, 무모함, 우직함, 균형감 등을 염두에 두고 조각 불태우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손에 공을 놓고 움직이기, 성냥개비 쌓기, 물에 비친 달 떠내기, 불 링 통과하기, 평균대 위 걷기 등의 미션을 마련했다. 이것들을 몸소 실현하면서 그는 예술의 생명력과 한계, 주술성과 신기루, 죽음과 불멸, 인정과 부정, 어리석음 등을 느끼게 된다.(이중 2개는 대역)
지난해 말 전소정은 ‘일상의 전문가’ 연작의 일환으로 〈Treasure Island〉와 〈The Twelve Rooms〉를 선보였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명시적인 주인공(해녀, 조율사)과 암시적인 주인공(제주도, 12개의 음)이 함께 등장하며, 하나의 레퍼런스(문학)가 아닌 다수의 레퍼런스(문학, 설화, 인물 등)가 혼재되면서 보다 중층적인 구조를 갖는다. 게다가 이전엔 보통 사람이 가진 예술적 태도로 작가 자신을 되돌아봤다면, 이제는 그 예술적 태도를 재구성하여 예술가가 추구하는 이상을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Treasure Island〉에서 작가는 해녀를 통해 여성, 노동, 기술의 전수 등을 언급했고, 설화에 얽힌 제주도를 신비의 섬으로 상상했으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상의 섬(이어도)을 노래하는 해녀를 예술가에 비유했다. 관련 문학은 차학경의 〈딕테〉와 〈보물섬〉이다. 또 〈The Twelve Rooms〉에서 작가는 무대 뒤 조율사를 무대 중앙으로 옮겼고, 바하, 쇤베르크, 칸딘스키를 통해 12개의 음에 색깔을 입혔으며, 이상적인 음을 찾는 조율사를 궁극의 미를 찾는 예술가에 비유했다. 관련 문학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다.
완성된 작품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은 대부분 작가 자신이다. 그 작품을 보고 작가가 감응을 받지 못하면, 관객이 그 작품을 보고 어떻게 감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작품을 보고 작가가 감동하지 못하면, 관객이 그 작업을 보고 어떻게 감동할 수 있겠는가. 전소정은 예술적 태도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봤다. 필자는 예술적 태도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 작가를 통해 나를 돌아본다. 만약 관객이 전소정의 작업을 보고 자신을 반성한다면, 그의 작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궁극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

전 소 정 Jun Sojung
1982년 출생했다. 서울대 조소과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아트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갤러리 킹에서 첫 개인전 이후 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4년 12월 1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열린 〈송은미술대상전〉에 참여하며 제 14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3월 4일부터 4월 4일까지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린다.

NEW FACE 2015 유은석

“유은석의 작업은,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소한 상상력에서 출발해 차츰 현실로 다가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을 조금씩 들춘다. 때문에 무겁지도 그리 가볍지도 않은 그의 (비)현실적인 상상은 어찌 보면 현실의 이면을 꼭 닮아있는 듯하다.”
– 안소연 미술비평

유쾌함 이면의 냉소

지난해 5월 말, 부산시내 모 백화점 외벽에 설치된 한 작품이 문제가 되었다. 유명 만화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다소 민망한 생리적 현상이 도드라진 작업이었다. 이른바 ‘발기 스파이더맨’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태는 끝내 작품이 철거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일반인이 오고가는 장소에 설치되기에는 부적절했다는 의견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을 코믹한 소스를 첨가해 표현했다는 의견이 맞서고 외설시비도 일었다.
이 작품은 부산 출신 작가 유은석의 손에서 탄생했다. 최근에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일로 주저없이 이 사건을 언급한 유 작가는 최근 다녀온 라오스 여행과 함께 작업활동의 일대 전환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유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이면의 의미를 살펴보는 <건축된 농담>, 영웅캐릭터를 곤충의 형상과 이종교배한 <곤충영웅기>, 그리고 영웅캐릭터의 반전된 행동을 담은 <사적인 시간> 등으로 나뉜다. 대부분 일상성에 근거해 다소 희화화한 요소가 눈에 띄는 작업이다. 유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상황을 항상 작업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항상 유머러스한 상황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두바이의 ‘부르즈 알 아랍’ 호텔에 보수적인 성향의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터번을 씌워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화려하게 건설한 두바이와 보수적인 종교성향의 모순을 표현했습니다.”
유 작가의 작업은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의 면밀한 연구로부터 시작한다. <건축된 농담>의 경우 해당 건축물에 대한 역사, 상징성, 뒷이야기 등을 수집했다. “뭔가 재미있는 이미지가 나오면 사전 조사한 정보에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의미를 부여해봅니다. 그러다보면 신기하게도 퍼즐처럼 잘 맞춰집니다. 간혹 제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에 반해 <곤충영웅기>는 사회적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시작했는데, 거미줄은 우리 법구조를 상징한다고. “<곤충영웅기>는 음주 사고를 일으킨 사회지도층 자녀가 부친의 인맥과 재력으로 풀려났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 시작했어요. 힘없는 곤충들은 거미줄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동물들은 거미줄을 찢고 지나가버립니다. 곤충은 서민, 동물은 사회지배층에 비유했어요.”
그 자신도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고 밝힌 유 작가는 만화의 영웅캐릭터를 소재로 작업한다. 유 작가의 작업에는 우스꽝스러운 영웅이 등장한다. 우락부락 헐크는 스마일맨 트렁크를 입고 쥐를 무서워하고, ‘쫄쫄이’를 입은 스파이더맨은 발기된 상태로 거꾸로 매달려 있다. 웃고 있는 원더우먼은 치아교정 장치를 달고 있다. 단 하나의 장치를 이용해서 관객의 허를 찌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관객을 겨누는 이 뾰족한 반전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거죠. 바로 <사적인 시간>은 방안에서 스스로 완전히 무장해제한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방귀를 손에다 뀌고 냄새를 맡는다든지, 코딱지를 먹어본다든지, 웃긴 춤을 춰본다든지…. 뭐 그런 모습들을 영웅들에게 적용한 겁니다, 영웅의 일반인 같은 모습들이 더 코믹하게 느껴지는 거죠. 아! 그렇다고 제가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하.”
유은석의 작업에 대한 비평문 하나에 눈길이 간다. “그의 쓴웃음에는 세습에 의해 강력한 권력을 획득한 자에 대한 냉소와 인간적인 연민이 동시에 응축되어 있다.”(안소연) 따라서 그의 작품을 대할 때는 그가 은닉한 이면의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올 하반기에 있을 개인전과 얼마 전 다녀온 라오스 기행전을 준비 중이라는 유 작가. 현재 ‘내 청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있다는 그는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황석권 수석기자

유은석은 1986년 태어났다. 부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조소를 전공했다. 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9년부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특선(2011), 부산미술대전 특선(2013), 제5회 맥화랑 미술상(2014) 등을 수상했다.

위  포맥스 레진 자동차도색 90×60×20cm 2013

위 <태권의사당> 포맥스 레진 자동차도색 90×60×20cm 2013

 

NEW FACE 2015 유한숙

“유한숙 작가는 이를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유머러스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병치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나만 좌절하고 불안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다.”
– 김윤영 큐레이터

내겐 너무 뒤늦은 그 말

한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뒷모습의 그녀와 너무나 닮은 한 여인이 마주보고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들 위에 한마디 글귀가 떠오른다. “그래 넌 성공하겠다.”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도로로 흐르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마디의 말이 적혀 있다. “아마 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거야.”
작가 유한숙의 작품은 허를 찌르는 사회 풍자적 한마디와 만화적인 인물 표현, 그리고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번쯤 그려봤을 ‘포스터’형식을 차용해 어수룩한 매력을 뽐낸다. 누군가에게는 공감 가는 한마디로 작용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일상 속 흘러가는 뻔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텍스트의 의미는 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는 힘을 갖는다. 텍스트에 얽힌 스토리와 무관하게 말은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내뱉는 어구와 포스터 형식 덕분일 것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포스터를 차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던 것은 아니다. 유한숙은 작업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고민했다.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쉬쉬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셈이다. “만화의 형식을 취하지 말라”는 한 교수님의 조언은 지극히 만화요소가 다분한 인물 표현과 그의 눈에 욕설을 적은 ‘개년미술’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물의 눈동자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기에는 자리가 부족했다. 보다 긴 텍스트 표현이 가능한 포스터 형식을 택한 이유다.
유한숙은 말수가 적다. 목소리도 작고 유난히 차분하다. 그렇다보니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채 다 풀어내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상황을 되새기며 전했어야 하는 말, 하고 싶었던 말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뒤늦게 떠오른 적절한 표현이 그의 작업에 등장한다. 지인들과의 대화, 인터넷상의 끊없는 대화와 발언 등 일상 속 매 순간 쏟아지는 말들이 그에게는 윌리엄 텔의 화살처럼 대뇌에 꽂혀 잊히지 않는다.
사실 그녀가 적은 가볍지만 풍자적인 문장은 SNS를 뜨겁게 달구며 최근 책으로도 출간된 하상욱의 《서울 시》나 최대호의 《읽어보시집》을 떠올리게 한다. 트위터라는 공간에 두어 줄의 짧은 시를 써 많은 이에게 공감과 웃음을 주는 이들 시의 형식은 문학적 수사가 아름답거나 표현력이 뛰어난 일반적인 시와는 미감이 다르다. 생활 속 툭툭 내뱉는 말을 짧게 압축해 적어 둔 “일상의 말”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 식이다. 이 키치한 방식의 글은 유한숙의 어수룩한 포스터와 묘하게 일치하는 점이 있다. SNS상에서는 무겁고 긴 글 보다는 싫지만 단순하면서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만한 내용이 환영 받는다. 포스터는 최고의 프로파간다 수단이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하나의 캔버스에 압축돼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눈에 내용을 알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한 방”이 필요하다. 유한숙의 작업은 단순히 그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는 많은 이에게 공감을 사는 요소가 있어 주목받고 응원을 받고 있는 듯하다.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작업은 생각 많은 작가의 복잡한 머릿속을 살펴본다는 관음증적 자극을 준다. 하지만 일방적 선언이라기보다 대화를 시도한다. 심각한 내용을 가볍게 표현한 방식은 전시장에서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서서 한참이 지나도 이미지와 텍스트가 머릿속에 맴돈다. 관객과의 간접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서 공감을 찾아낸 작가는 최근 고민이 깊어졌다. 주변에서 만류하던 형식을 취해 하던 작업을 오래하다보니 작업의 형식이 반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또 다른 금기를 찾아낸 작업으로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을까. 말을 곱씹는 작가의 머리에는 오늘도 수많은 말과 고민이 스치운다.
임승현 기자

유한숙은 1982년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2년 조선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총 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월 27일부터 6월 5일까지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리는 〈두렵지만 황홀한전〉에 참여한다.

〈시집이나 갈까〉 캔버스에 아크릴 60×60cm 2012

〈시집이나 갈까〉 캔버스에 아크릴 60×60cm 2012

 

NEW FACE 2015 이은새

“이은새는 프레임(인식의 창) 밖에서 일어나는 현실적 풍경을 대하고 자신만의 감각적 레이어로 그 현상들을 쪼개어 파장이 증폭되는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일상에서 다양한 층위로 몸을 이동하듯 일렁이는 현상을 목격한다. 다른 회화 작가들의 장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풍경은 쉽게 번역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연속성을 띤다.”
– 이관훈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불안정한 순간의 기록

작가 이은새의 회화는 뚜렷한 내러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난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는 것, 구멍이 뚫린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닥에 무엇을 덮은 검은 천을 바라보거나 거대한 구덩이를 지켜본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무기력한 모습이다.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계속 비집고 들어오고, 때로는 가슴 깊숙한 어느 부분이 툭 터져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은새는 변화가 발생하는 불안정한 순간을 탐구한다. 자신의 실제 경험이나 신문기사, 인터넷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분류되지 않은 채 작업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그녀가 탐구하는 변화의 순간은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체적인 의식보다는 현실 속에서 감각적으로 언뜻언뜻 인식하게 되는, 결코 이성적인 순간도 아니다. 이은새는 “변화가 일어나고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흔들리고 뒤집힐 수 있는 파장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다수 심리적인 풍경에 가깝다. 일상에는 이러한 크고 작은 파장이 수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에 곧 무뎌지고 파장이 자신에게 남긴 상처나 타인의 고통에 무심해진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요즘 제가 느끼는 세상은 엉터리로 둘러싸였지만 그것들이 단단한 벽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굳어진 상태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부분들이 결국 금방 다시 굳어 단단해진다고 해도 그때의 작은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의식하고 붙잡아두고 싶습니다.” 이은새는 무력함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보다는 그런 상태를 먼저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굳이 잡아내지 않으면 금방 잊히거나 아예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긴다.
최근 그녀는 첫 번째 개인전을 야심차게 선보였다. 갤러리 조선에서 열린 <틈; 간섭; 목격자>(1.23~2.3)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개최한 <틈; 간섭; 목격자들>(2.1~13)이 그것. 전시 제목에서 미묘하게 드러나지만 작가는 다른 콘셉트로 두 개의 전시를 구성했다. 갤러리 조선에서 전시한 작품이 작가 자신이 일상 체험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파편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설치된 대형작품은 복수의 인물이 등장해 일종의 상황극을 보여준다. 변화하는 순간은 주체적인 관점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 힘에 의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저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런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는 사람들, 같이 경험하고 느끼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기에는 다양한 인물이 존재하고 그들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죠.”
긴장된 순간, 어떤 사건들이 변화하는 순간을 담아낸 작업은 과도한 색상이나 반전된 색상을 통해 실제의 감각을 벗어나 다른 감각이 뒤섞여 나오는 시각적 뒤틀린 효과를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색의 조합과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전혀 다른 색으로, 다른 분위기로 변주된다. 그 순간들이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작가는 그에 대한 회화적인 표현 자체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은새가 표현하는 세계는 불안정하고 무기력한 세계인 동시에 언제 어디서라도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일상에서 정체를 알 수 없게 숨어있던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매체를 회화에 한정해 작업했지만 앞으로는 계속 변화하는 상황을 움직이는 조형물로 구현해보고 싶단다. 한 젊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실험과 탐구가 기대된다.
이슬비 기자

이은새는 1987년 출생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과정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무겁고 깊고 검은>(이목화랑), <오늘의 살롱>(커먼센터), <Unfamiliar air>(스페이스BM)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캔버스에 유채193.9×260.6 2014

<떨어지는 물 앞의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193.9×260.6 2014

 

SPECIAL ARTIST 최병소

작가 최병소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궤적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무한반복되는 선 긋기 방식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은 시간과 노동이 집약된 독창적 표면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은 1970년대 한국의 주류 미술경향이던 단색조회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담은 실험미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다. 지난 40여 년간 최병소가 몰두해온 작품세계는 유의미한 인식과 행위의 결과물이다. 전통적인 회화 영역을 넘어 소멸함으로써 재탄생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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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신문용지 볼펜 54×82×1cm 2009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 그 ‘애매성의 예술’

신혜영 미술비평

여기저기 찢기고 갈라진 새까맣고 얇은 최병소의 평면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정체를 궁금해 하며 한참을 쳐다볼지 모른다. 그것은 캔버스나 종이 위에 검은색 물감을 칠한 여느 색면회화와는 다르며, 오히려 연소된 얇은 나무껍질이나 금속성의 광물질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 둘 모두 아닌 듯하다. 다 타버린 재와 같이 금세 바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련에 더 단단해진 철판과 같은, 섬약纖弱하고도 강건剛健한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뜻밖에 그것은 종이(주로 신문지)가 얇아지다 못해 찢어질 때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 만들어낸 작가의 시간과 노동이 집약된 화면이다. 재현된 어떠한 형상이나 붓 자국도 없는, ‘회화’라는 호칭이 무색하리만큼 새로운 이 인공물artifact은 전체적으로 윤이 나면서 군데군데 비정형으로 갈라지고 찢긴 표면이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고, 어느 회화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차갑고 저릿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최병소의 이러한 검은 화면을 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종이에 볼펜으로 수없이 많은 선을 긋고 그 위에 다시 연필로 더 많은 선을 그어 만들어낸 그것은 “여러 선이나 색채로 평면상에 형상을 그려내는 조형미술”이라는 회화의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침내 전면화되어 묻히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선’, 색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사실상 작가가 선택한 볼펜과 연필의 검은 ‘색’, 미술의 재료는 아니지만 신문지라는 확실한 2차원의 ‘평면’, 의도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선 긋기에 의해 드러나는 갈라지고 찢긴 무정형의 ‘형상’, 그 모두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병소의 회화는 일반적인 색면회화와 구조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얹히는, 지지체와 안료의 고정된 관계를 탈피한 전혀 새로운 구조다. 사실상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최병소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안료가 칠해진 지지체를 ‘찢는’ 루치오 폰타나, 지지체를 완전히 뒤덮도록 안료를 ‘칠하는’ 바넷 뉴먼, 지지체를 안료로 ‘적시는’ 이브 클랭 등의 회화에 관심을 갖던 그는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뒤집어 종이를 사포로 밀어버림으로써 물감덩어리만을 남기는 지지체의 ‘소거’를 시도한 바 있다. 이렇듯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최병소는 마침내 지지체를 소거하지 않으면서도 안료와 일체화하는 방법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면의 축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선의 축적으로서, 지지체 위에 안료가 얹히는 것이 아니라 안료(볼펜과 연필)가 지지체(신문지) 속으로 파고들어 양자가 일체 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지지체와 안료의 일체로부터 본래 재료가 지닌 물성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성을 지닌 화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신문 잉크 볼펜 연필 12×32×41cm 2009

<무제> 신문 잉크 볼펜 연필 12×32×41cm 2009

최병소 작품세계의 차별성과 고유성
이른바 “사라짐으로부터의 탄생”, 즉 “소멸하면서 태어나”1는 이러한 최병소 회화의 근원적인 동력은 주지하다시피 지지체 위에 끊임없이 선을 긋는 작가의 반복적 행위다. 신문지의 전면全面이 까매지다 못해 찢겨질때 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내와 시간을 요구한다. 작가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선을 긋고 또 긋는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긋기’는 그 자체 자율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나가다가 마침내 물질 자체가 한계에 달하는 지점에서 멈춘다. 따라서 최병소의 회화는 어떠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붓을 움직이는 전통적인 회화와 달리 행위 자체가 우선시되고, 결과물로서의 화면이 과정으로서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선을 긋는 손이 멈추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최병소 회화가 지닌 고유함의 또 다른 요인은 재료의 선택과 그 변용에 있다. 작가가 신문지를 본인 작품의 주된 재료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저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일차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신문용지를 구입해 쓰기도 하지만 그가 사용해 온 지지체는 주로 신문지와 잡지, 때로는 비행기표나 지폐 등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고, 그가 사용하는 안료/매체는 물감을 묻힌 붓(화구)이 아니라 책상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과 연필(문구)이다. 물론 미술사 내에서 많은 예술가가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의 소재로 사용했으나, 그것들 대부분은 재료가 가진 ‘물성’에도 불구하고 ‘개념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최병소가 사용하는 일상의 오브제는 단지 용도와 의미를 변경하는 관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극단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선 긋기라는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최병소의 회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 흐리기일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최병소의 일상과 예술의 혼재는 삶과 밀착된 그의 작업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집에 딸린 작은 골방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음악을 들으며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그에게 일상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기 때문이다.
물론 최병소가 사용하는 신문지라는 재료를 단지 일상의 오브제로서만 고찰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그 이면에는 ‘신문’이 지닌 상징적 함의와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가 미대를 졸업하던 1974년은 유신체제가 공포된 지 1년 남짓한 정치사회적 격동기로서, 사회 전반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침체된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미술계도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단색화 사조로 편중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 온 – AG와 ST로 대변되는 – 한국 실험미술 작가들 일부는 현실을 그대로 외면하기보다는 예술 영역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론의 편파성을 비판하고자 신문을 이용해 행위예술을 선보인 성능경과 같은 작가다. 최병소의 신문 작업 역시 1970년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신문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그는 매일 날아드는 신문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침통한 마음을 참다못해 신문의 내용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읽을 수 없도록 지워지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그것은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던 바로 그 신문이었으며, 그는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당시 사회상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 반영했던 셈이다.
이후에도 그는 줄곧 원래 화면을 뒤덮어 지움으로써, 읽을 수 없는 신문, 내용을 알 수 없는 잡지, 탈 수 없는 비행기표, 쓸 수 없는 지폐 등, 의도적으로 용도를 폐기하고 예술적 맥락에서 새롭게 탄생케 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발표했다. 짐작할 수 있듯, 최병소의 작업은 사실상 상당 부분 실험미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초창기 작업들은 그러한 성향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974년 첫 전시 <한국 실험작가전>과 1974년부터 5년간 참여한 <대구 현대미술제> 등의 전시에서 그는 화병에 꽂아놓은 꽃을 쳐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몇 장을 분필로 표시해둔다거나 여름철에 전시장에 생선을 가져와 도마에 난도질하여 냄새가 진동하도록 하는 해프닝작업과 특정 장면의 사진 옆에 단어를 나열해 놓는 개념작업2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최근 신문작업 중에도 평면이 아닌 부서진 조각들은 접시에 담아두거나 책의 모서리 낱장들을 긁어 아크릴 박스 안에 세워놓는 등의 설치작업을 병행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최병소의 주된 작업은 ‘회화’의 범주 안에 있다. 또한 1970년대 당시 그의 회화는 주로 단색화로 분류된 바 있다.3 표면적으로 단색이고 물성이 강조되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을 중성화하는 단색화와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특히 그러한 인식에는 그의 작업이 단색화의 대표 격인 박서보의 묘법과 – 계속해서 ‘연필’을 사선으로 ‘긋는’ – 재료와 행위 측면에서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업은 방법과 개념상 상이하다. 박서보의 묘법에서 연필이 어디까지나 유화물감을 긁어내거나 밀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보조도구 – 손가락, 나무, 쇠붙이 등과 유사한 – 에 해당한다면, 최병소의 신문작업에서 연필/볼펜은 화면을 전면화하는 유일한 도구다. 또한 물감이 얹힌 캔버스 위에 연필이 지나간 자리를 남겨 행위의 궤적을 드러내는 박서보의 묘법과 달리, 최병소의 작업은 신문지에 연필/볼펜의 선을 긋는 극단의 반복적 행위 끝에 결국 행위의 흔적은 사라지고 표면 전체가 균질해진 새로운 물질이 탄생한다. 이렇듯 최병소의 작업을 일정 부분 단색화와 비교할 수는 있을지언정, 온전히 그것을 단색화 사조 안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실험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국 ‘회화’라는 결과물로 귀착돼 온전히 그 안에 머무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이렇듯 최병소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서 일어난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던 중요한 두 사조 사이를 표류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 영역을 구축한 작가다.
작가 스스로 “그리기인 동시에 지우기고, 채우기인 동시에 비우기며, 의미이자 무의미다”고 밝히고 있듯, 최병소의 회화는 ‘애매성’을 본질로 삼는다. 선을 그리지만 결국 그것은 글자를 지우는 일이고, 선을 채우는 동안 작가 자신과 본래의 물질은 비워지며, 신문의 글자를 지움으로써 의미를 무화無化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무의미와는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실질적으로 지지체와 안료, 과정과 결과물, 개념과 노동, 오브제와 회화, 일상과 예술, 실험미술과 단색화 등 수많은 미술사의 대립항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애매성’이 곧 고유함을 담보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유연하게 그만의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논제와 사조를 관통함에도 그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논의가 부재했던 것은 어쩌면 이러한 ‘애매성’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나간 사조의 작가가 아닌 여전히 삶과 밀착해 작업을 지속하는 동시대 작가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남은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이 고유한 ‘애매성의 예술’로서 다시금 평가받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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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신문 볼펜 연필 240×110×1cm 2007의 부분

 신문(《The Time》) 볼펜 연필 230×2250×1cm 2012

<무제> 신문(《The Time》) 볼펜 연필 230×2250×1cm 2012

최 병 소 Choi Byungso
1943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계명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75년 대구 시립도서관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6회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0년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고 현재 대구에서 작업하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3월에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1 <소멸하며 태어나다(Birth from disappearance)>는 2006년 대구 갤러리M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부제였다
2 그것은 허공 위에 두 마리 새가 뒤엉켜 있는 모습의 사진 옆에 ‘sky, cloud, wind, birds, flying, meeting’ 여섯 단어를 나열해 놓은 작품이었다.
3 최병소는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도쿄 센트럴미술관, 1977)과 <에꼴 드 서울>(국립현대미술관, 1976~79) 등 주요 단색화 전시에 참여했다.

 

 

ARTIST REVIEW 이은우

작가 이은우의 작업은 사물의 기능과 형태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 측면에서 이야기된다. 그는 사물에 부여된 관념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그 관계항 속에서 물건을 변형시키면서 일반적인 물건 새로운 의미와 일상의 모습을 교차시켜 나간다. 새로운 세대의 물건 고안자, 이은우를 만나본다.

물건들의 역사

이병희 독립큐레이터

여기 새로 등장한 물건들이 있다. 우선 이들은 미술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등록됐다. 한 물건의 이름은 ‘사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물건은 비록 ‘사각’이라고 하지만, 사각에 고정되지 않으므로, 차라리 사각의 파생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푸른 사각형>, 2014) 또 다른 물건은 원통에서 고안됐지만, ‘반복과 접합 그리고 배치’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여기서 ‘원’이라는 것은 하나의 참조, 혹은 클리셰에 불과하다(〈녹색 원〉, 2014). 재현을 거부하는 듯한 순수-노란색 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일렬로 나열된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의 좌측 중앙에 배치되자 그 재현의 거부라는 추상적 역할은 사라지고, 이 배열이 야기하는 속도감과 시각적 균질감을 방해, 혹은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물건 3〉, 2014). 기존 형태를 참조하는 작업은 또 있다. 수평 균일하게 나열된 철판들은 분해와 조립이라는 반복기능 자체에만 몰두하는 모듈로서 존재할 것 같지만, 이 기능을 방해하는 오렌지 색 원추 때문에 이것은 아마도 잠시 한때, 영원히 버티는 조각으로 존재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물건 2〉, 2014). 이런 반복 배열은 당연히 어떤 속도감을 야기하고, 나아가 물리학적 법칙에 의해서, 당연히 시간성을 환기시킨다. 대부분 3차원에 존재해야 하는 이 물건들은 반복 배열, 분해 조립 운동을 하는 시공간-참조물이다.
재현이냐 아니냐, 쓸모가 있냐, 순수 미적 대상이냐 등의 이분법적 경계를 깨뜨리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략으로 불린 ‘차용’ 혹은 ‘키치’였다. 물론, 이 모더니즘의 아우세대격 물건들은 이런 포스트-행위로써 선배세대의 시도들을 맥락에 ‘등록’시키는 아주 충실한 기호놀이를 했다. 그 기호 놀이가 맥이 빠진 것은 ‘상품’으로서의 물건들이 여기저기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전지구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고, 향유되면서부터다. 대다수의 물건은 현재, 등록과 폐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는 소모전에 처해 있다.
현대 물건들의 짧은 역사를 생각해보자. 신자유주의 시대의 물건들은 1980년대경 전지구적 대량생산의 메커니즘으로 본격 진입했다. 전지구적 대형마트 체인점들에서도 생산라인과 마찬가지로, 넘쳐나는 이 갖가지 대량생산 물건들을 배열하고 판매하기 위하여 규모 있는 배열과 수납, 저장, 배달과 조립 같은 일련의 자동적인 시스템들을 고안해냈다. 소비자의 삶의 패턴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일률성, 자동성은 일정 정도 폭력적이다. 즉, 전지구적 경쟁에서 엘리트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들을 해치워야 하며 여기에서 물건들은 효율성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아니 나아가 나쁜 물건이 된다. 왜냐면 효율적이지 않고, 일을 방해하며, 심지어 사색하게 하므로.
다른 물건들이 있다. 소위 디자인용품, 수공예품, 예술작품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물건들은 일종의 저작권물이다. 전지구적 대량생산 물건들에 비하자면, 대부분은 한정된 수량으로 생산되는 소수의 엘리트 물건, 혹은 소수의 사적인 물건들이다. 이 물건들을 선호하는 자들은 이것을 딱히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서 구매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복합적인 욕망을 교차 투영시킨다. 가령 예쁘다, 오래 간직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제작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뭔가 유일한 것을 갖고 있다는 느낌에 자아가 숭고해지는 것 같다 등 여타의 개인적인 욕망들이 투영될 여지를 반영한다. 이 소수의 저작권, 혹은 엘리트 물건들과 대량생산물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등록된 물건이라는 것이다. 다른 점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취향이 반영된 문화생산물이라는 점이다.
물건의 약사에서, 인간사로 논의를 돌려보자. 얼마 전에 파리에서 한 언론사에 대한 총기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젊은 청년들이 언론인과 노인 삽화가를 죽인 일이었다. 발단은 성스러운 인물에 대한 각기 다른 표현방식과 그것의 소비에 있었다. 하나는 매우 천박하게 조롱함으로써 그 아우라를 발가벗기는 스타일을 대량생산해내는 시스템 속에서의 소비. 다른 하나는 역사적으로 해온 습관 그대로 성스러운 영역을 보존하려는 숭고의 논리. 물론 이런 성스러운 것 혹은 숭고한 어떤 유일성과 천박한 대량의 복제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어왔다.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아트와 상용품(대량생산), 전통과 현대(키치), 남자와 여자(출산이라는 복제) 혹은 이성애중심주의와 LGBTIQ lmnop(성소수자 인권단체) 등의 사이에서처럼.
현대에 이르러 이런 갈등들은, 물론 새롭지 않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 갈등 사이에서 배태된 세대들이 자행하는 폭력의 잔인함 냉소적 강렬함이다. 아주 오래된 역사적인 갈등 속에서 왜 총으로 해당 대상을 매우 잔인하게 일일이 쏴 죽이는 사건을 파생시키기에 이르렀냐는 것에, 그토록 노력한 어떤 휴머니즘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예술적 기타 등등의 노력은 도대체 뭐였냐는 질문에 이르는 것이다. 노력과 애증의 결과로 겨우 낳은 자식세대가, 어째서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를 처단하기에 이른 것인가.

〈물건2〉 철판, 우레탄 페인트, 고무줄, pvc파이프, 목재, 73×40×40cm 2014

〈물건2〉 철판, 우레탄 페인트, 고무줄, pvc파이프, 목재, 73×40×40cm 2014

〈물건 3〉 철판, 우레탄 페인트, 스테인리스 파이프, 크리스탈, 102×212×65cm 2014

〈물건 3〉 철판, 우레탄 페인트, 스테인리스 파이프, 크리스탈, 102×212×65cm 2014

물건들의 위계질서
물건들 사이에도 위계질서와 갈등이 있다. 대량생산물이라는 어떤 천박함과 예술작품이라는 어떤 숭고함 사이에 놓여있는 차이들은 그것의 생산 메커니즘과 소비-소유 메커니즘, 그리고 엘리트주의 속에서의 서술과 단순 사용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그 차이들은 잔인할 만큼 극단적으로 차별화된다. 오늘날의 인간사가 그렇듯이, 그 물건들의 위계질서는 상품들의 위계질서로 대체됐을 뿐 갈등의 메커니즘 자체는 불완전한 역사가 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어떤 물건이 감정이 있거나, 적어도 기억장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물건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애도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획일적인 대량생산물의 글로벌한 유통과 소비, 숭고한 예술작품들의 전지구적인 키치화와 나아가 새로운 특정 예술-상품으로의 재생산. 이 둘 사이 교배에 의해서 태어난 새 세대의 물건들이 적어도 인간계와는 달리 뭔가 극단적인 액팅아웃을 하지 않는 것은 약간 다행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순수 온화한 존재들일 수는 없다. 때로 그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직접적이다. 동시에 때로 방어적이며, 때로 거부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맥락 자체가, 유사-역사, 유사-메커니즘이라는 (가상적인) 현실이기 때문에 이들은 전 세대처럼 ‘그것이 아니오’라는 모더니즘적 히스테리 반응을 모른다. 즉, 히스테리적 증상이 없는 한, 극단적인 액팅아웃도 생기질 않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적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일단, 지금의 물건들이 하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는 ‘소비 혹은 소모’, 다른 하나는 ‘그럴수도 있겠죠’ 라고 하고는 딴 짓 하기.
근-현대에 적어도 한 번쯤 역사는 반복됐다. 1960~1970년대를 거쳐 반성된 움직임은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포스트’ 혹은 ‘유사’ 혹은 ‘차용’의 메커니즘으로 반복됐다. 이제 역사는 그 포스트-역사를 참조하는 듯하다. 참조란 행위는 역사로부터의 어떤 거리감, 즉 객관성이 어느 정도 생겼고, 그것을 다른 차원으로 변형시킬 준비가 됐다는 증상적 행위다. 이 참조란 행위는 쉽게 관심을 돌리는 행위라고 하겠다. 사실 역사에서, 관심의 몰두 혹은 집중과 분산 사이에서 갈등했던 히스테리적인 반응이 사이코패스나 히키코모리와 같은 질병적 상태를 더 많이 잉태했기에, 현시점에서의 관심 돌리기, 환기 역할은 중요하다. 물론 새 세대의 물건들이 새로운 페티시의 재영토화할지, 아니면 거부와 그것의 반복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히스테리적 반응의 반복이 될지, 혹은 실로 취향의 차원에서 관심 밖의 어떤 차원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새로운 미술공간에서 먼저 등록된 물건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모더니즘적 숭고함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키치 사이에서, 순수미술형태와 용도 사이에, 형태와 색깔과 배열 사이에 있다(존재한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이 거부와 동경, 쓸모와 특수성 사이에서 존재하는 어떤 in-between의 존재감을 만끽하는 듯하다. 이들은 단단해보이고, 견고해보이며, 더욱 강해지고, 더욱 날렵해지고, 메커니즘적으로 시스티믹해지려는 듯하다. 물건에도 욕망이 있다면, 이런 in-between적인 상황에서 교배되고 태어나 이 세상이 놓였을 때 그들의 유전자를 무관심하게 대상화시키는 ‘object’가 되려는 게 아닐까. 즉, 이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근친상간적 교배의 산물임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적어도 억압으로부터 일정 정도 거리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물건 고안자의 이름은 이은우. 디자인 툴을 사용하여 오브제를 구상하고, 업체에 프린팅을 맞긴다. 물론 제작을 맞긴다고 해야겠지만, 왠지 지금은 ‘프린팅’이란 말을 쓰고 싶다. 아마도 이 제작자는 앞으로도 어떤 특정 물건들을 참조, 변형시키고 역사적, 일상적 여타의 물건들이 환기시키는 기존의 아우라를 끊임없이 교차-통풍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세한 제작과정이나 전시 장면, 평면작업에서 오브제 작업으로의 변화과정, 레디메이드 설치 과정과 공간작업, 그리고 미술사적인 참조 등은 제작자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나는 최근 이 제작자의 오브제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했다. 나는 변화에 있어서 과거를 소급해서 서술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그보다는 실제로 단절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은우의 최근 작업이 명쾌한 어떤 출발선으로 보인다. 이들은 부모세대와 말끔하게 단절하고, 영리하게 앞으로도 한동안은 반복, 재생산되면서 스스로를 속도감있게 참조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

〈시공사례 1〉〈시공사례 2〉 합판, 타일, 몰딩, 폴리우레탄 바퀴, 조명, 벽지 가변크기 2012 문화역서울284 설치장면

〈시공사례 1〉〈시공사례 2〉 합판, 타일, 몰딩, 폴리우레탄 바퀴, 조명, 벽지 가변크기 2012 문화역서울284 설치장면

 

〈특정물건〉 간유리, 반투명거울, 무늬유리, 색유리, 망입유리, 원목, 2013 아트스페이스풀 설치장면

〈특정물건〉 간유리, 반투명거울, 무늬유리, 색유리, 망입유리, 원목, 2013 아트스페이스풀 설치장면

이 은 우 Lee Eunu
1982년 출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동 대학원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9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부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오는 3월에 아트선재센터 라운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