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인 개인전
1.19~2.22 갤러리초이

도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돌. 작가는 정적이며 거친, 무심하며 온기어린, 그러나 작위적이지 않은 ‘돌’에 대한 감정을 무채색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 문학작품에서 차용한 텍스트는 증류된 기억을 언어화하는, 캔버스 위 캔버스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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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100 Albums 100 Artists
2.10~3.12 롯데백화점 잠실점 애비뉴엘관

국내 작가 100인이 참여한 이 전시는 《롤링스톤》이 선정한 100대 명반(LP)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앨범 이미지와 수록 곡 등을 참고하여 LP앨범커버 사이즈로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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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김주리 개인전
1.24~2.9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작가는 물이 많은 환경에 취약한 ‘백묘국’이라는 식물을 모티프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번 전시는 사루비아다방의 중장기 작가지원 프로그램 〈SO.S(Sarubia Outreach & Support)〉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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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역삼

5인의 High Noon
1.19~3.16 신한갤러리 역삼

〈신한 영아티스트 페스타 그룹공모〉 5주년 기획전. 그 동안 공모에 선정된 작가들 중 허보리(2012), 김유정(2013), 임영주(2014), 이들닙(2015), 최병석(2016)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새벽녘을 지나 정오에 다다른 이들의 발전된 작업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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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도돌이표 – Da CAPO 2017
2.1~12/14~25 갤러리 담

2016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전시 중 다시 살펴봤으면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1부(SINZOW, Toshimatsu Kuremoto, 신나군)와 2부(김성호, 김정은)로 나뉘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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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

노수인 개인전
1.24~2.5 인디아트홀 공

시인 이제니의 〈별 시대의 아움〉에서 비롯한 작가의 개인전은 현장에서 관람객과 함께 완성하는 작품으로 꾸며졌다. 작가는 세계 질서의 해체와 그것의 재조립을 통해 인식의 구조를 이루는 외부 요소를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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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노상호 개인전
1.20~3.8 송은 아트큐브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아크릴 물감이나 수채화로 옮기는 ‘데일리 픽션’ 작업을 선보인 전시. 작가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물성을 넘나드는 작업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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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숙

명정숙 개인전
1.25~31 갤러리 루벤

닭의 해를 맞아 닭과 그것이 낳은 황금알을 주된 소재로 한 작업으로 꾸며졌다. ‘대박’으로 명명된 전시를 준비한 작가는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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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서금

박상천 개인전
1.21~2.3 서울아산병원갤러리

생성, 소멸, 탄생이라는 생명의 순환을 우주 생성의 원리로 풀어낸 ‘아름다운 시간(Lovely Moment)’과 우리 전통놀이인 딱지 문양을 통해 내면을 우주화하여 재현한 ‘Korean Papers Game’ 등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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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선김강

김연선 개인전
2.2~7 한전아트센터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상상 속의 내면과 전생, 현생이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내면을 현실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 매개체가 바로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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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김근태 개인전
2.22~3.1 조선일보미술관

오랜 시간 단색화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20여 점의 작품이 벽면을 메웠다. 단조로움과 다채로움이 공존하는 그의 캔버스는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역사의 질곡을 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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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하미

한승희 개인전
2.1~28 몽갤러리

16회를 맞는 작가의 개인전.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는 그곳에서 취한 소재를 바탕으로 캔버스를 꾸몄다. 이를 위해 수없이 선을 그어 중첩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PRIVIEW

상상적 아시아
3.9~7.2 백남준 아트센터

아시아가 공유하는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을 자기체화적인 개인의 역사로 풀어낸 전시. 기록과 허구,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교란하며, 개인의 상상을 통해 진실을 도출하고 현실 속에서 불일치의 흔적들을 주시하는 이번 전시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공유이미지들의 형식적 변화와 함께 이를 이용한 예술의 발전을 함께 이야기해 본다. 시대의 상황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상상하는 작가인 아이다 마코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하룬 파로키, 호 추 니엔, 문경원&전준호 등 아시아권역 17명(팀)의 영상작가들이 참여해 아시아의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며 백남준에서 시작된 무빙 이미지라는 융합적인 장르를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또한 혼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술과 이미지가 가져오는 사실과 허구, 사적 사유와 공적 사유의 영역 해체 등 매우 유기적이면서도 확장적인 가능성을 알아본다. 호 추 니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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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근민, Matter Cloud, 2016, 캔버스에 유채, 182.9 x 457.2cm

예술만큼 추한
3.7~5.14 서울대학교미술관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추(醜 ugly)’의 감각에 주목하는 이번 전시는 미술에 기대되는 기존의 ‘미(美)’적 기준으로는 쉽게 정의되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강렬한 성향들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이근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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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열이거

오세열
2.22~3.26 학고재갤러리

은유적 메시지들, 익명적인 인물의 형상의 기호와 장시간 덮인 바탕의 화면이 어우러져 독자성을 확보한 오세열의 개인전. 회고전 성격을 띠는 이 전시는 작가의 지난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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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래정_작품_이미지

핑크 포이즌
3.10~6.11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감각적으로 조합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구민정 심래정.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상대를 매혹하는 달콤한 원동력과 속임수, 그리고 욕망의 배신으로 인한 소화불량 상태와 이로 인한 구토를 표현한다. 심래정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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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Albrecht_Fuchs

프레젠테이션/리프레젠테이션
3.17~5.28 성곡미술관

독일 현대사진전으로, 독일 전역에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독일 현대미술 작가들의 최근 경향을 살펴 본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모티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비교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언어’를 공통으로 구사한 작가 개개인의 표현 방식과 예술적 전략을 통해 기록, 문서 역할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예술창작 매체로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번 참여 작가는 컬러사진, 대형 출력, 디지털이미지 제작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화가의 영역이던 자유로운 이미지 구성은 물론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현실을 대하는 작가들의 변화된 태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실재를 재현하기보다는 개념적 사고에 기반을 둔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의 메타포로 세계를 제시한다. 알브레히트 푹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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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_0_and_chair_190x126cm_Inkjet_Print_2016

유현미
3.8~4.7 사비나미술관

공간을 회화로 전환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여 온 유현미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각, 회화, 사진의 장르를 넘나들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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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 시메티

투리 시메티
3.15~4.29 리안갤러리 서울

캔버스 화면에 대한 도전적 실험을 선보이며 새로운 모노크롬 회화의 가능성을 연 투리 시메티의 개인전. 한국의 단색화와는 또 다른 1960년대 이탈리아 모노크롬 회화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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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럭-제이미리

4慮공간
3.9~5.2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김선영 신선주 임승천 제이미리가 창작을 위해 부단히 고민한 흔적을 펼쳐놓는다. 4명 작가의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작업으로 구성된다. 제이미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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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김남표

像.想 상상-환상과 실재의 경계
2.14~3.31 리나갤러리

상상(想像)의 어순을 바꿔 환상이 실재가 되고, 실재가 환상이 되는, 지각과 사유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구이진과 김남표가 참여해 실재인듯한 환상, 환상인 듯한 실제를 화면에 구현했다. 김남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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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named-1

Lappland de 13
3.3~17 라플란드

사회적 약자로 분리되는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요즘 여성예술가가 모여 여성인권에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13명의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여성 권리 신장에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김명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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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

정주하
3.4~5.10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한국사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통합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시작과 시작”의 첫 전시.
일상 속의 은폐된 불안을 드러내고 핵문제에 천착해온 사진가 정주하의 작업으로 테이프 커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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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1503,181x227cm,캔버스에채색,2015

이만수
3.29~4.11 갤러리 그림손

사물과 자연 그리고 사이에 맺힌 일상적 삶의 모습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기억들을 표현하는 이만수의 개인전 〈투명한 회화〉. 작가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숨은 희로애락의 주름들을 감성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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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최한결

그림과 그림
2.23~3.12 누크갤러리

김지원 작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지원 스튜디오’의 김민수 안혜상 임희재 정주원 최한결이 함께하는 전시. 동시대에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겪어온 각자의 경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에 담아 풀어낸다. 최한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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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배윤환
3.1~29 두산갤러리

다양한 서사구조를 갖는 회화, 드로잉, 영상을 만들어 온 배윤환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생산자라는 위치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작품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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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가노미츠오

영상과 물질 – 1970년대 일본의 판화
2.10~3.24 KF갤러리

실크스크린, 옵셋 인쇄 등 새로운 판화기법을 선보인 일본판화 52점을 소개한다. 또한 일본의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강좌 등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 참여 기회를 마련해 일본판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해를 돕는다. 가노 미츠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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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김성호
3.8~4.16 두가헌갤러리

현대인의 소유욕을 책과 장난감이라는 소재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해온 김성호의 개인전. 작가는 신작에서도 책과 장난감으로 캔버스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며 기존의 구조들이 내포하는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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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_손진아,_Inscape_Scape,_acrylic_on_canvas,_60cm(지름),_2016

손진아
3.9~4.1 갤러리 비케이

손진아는 점, 선, 면, 색이 이끌어내는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구조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관심은 화면을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반복적인 행위들로 이어지며, 이 행위들은 유려한 선과 긴장된 선 사이에 무한한 패턴의 바다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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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래

박명래
3.22~27 가나인사아트센터

자연적으로 생성된 암석의 변화를 사진으로 담는 박명래의 개인전, 작가는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사진에 담기는 순간은 한 지점이지만 흐름 속에서 읽히는 사진의 맛을 통해 지속성과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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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0202017-P1

박종하
3.2~29 갤러리 초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도(道)’와 그것을 완성시키는 ‘상대성’. 박종하는 작업 ‘창세기’를 통해 이러한 모든 변화와 운동을 상징적인 붓의 흔적과 생, 그리고 다양한 성격의 선을 이용하여 표현함으로써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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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den blue 101x70cm mixed media on hangi_3

김선형
3.13~4.28 갤러리 마리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를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김선형의 개인전. 응집되고, 풀어지고, 짙어지고 옅어짐을 반복하며 각각 다른 사물들이 결이 다른 호흡을 맞춰가며 부대껴 살아가는 모습에서 단편적이나마 현실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상적인 조화로움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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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lyn Monroe(John F. Kennedy),53 X 45.5 cm, Oil on canvas, 2016

오세열 & 김동유
3.7~4.7 갤러리 조은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다지고 있는 작가 오세열과 김동유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번 전시는 신작과 미발표작 포함 오세열이 15점, 김동유가 10점을 선보인다. 김동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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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구 안숙

Oscillate
3.3~31 갤러리 구

안숙과 김수민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교차점인 〈Oscillate〉, 즉 운동적인 감각, 심리적인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때로는 엇나가고, 때로는 미완으로 남아 있는 고민의 과정들을 펼쳐 보인다. 안숙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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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송재윤
3.7~25 갤러리 다온

먹과 물감을 사용해 전통적인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그려내는 송재윤의 개인전. 현대 사회안에서 여행이 삶의 숨을 틔어준다고 생각하며 그림으로 여행을 떠나는 작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풍경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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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안나

임안나
3.2~21 스페이스22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무기, 전쟁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그것들이 가진 이미지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는 임안나의 개인전 〈차가운 영웅〉. 전시와 같은 제목의 책 출판기념회도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EXHIBITION TOPIC 욕망의 메트로폴리스

디스토피아의 우울한 판타지

이영준 | 김해문화의전당 예술정책팀장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거대 도시를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한 “욕망의 메트로폴리스”전을 선보였다. 부산을 비롯해 서울 일본에서 작가 18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크게 3개의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환영의 도시”, “도시의 이면들”, “아래로부터의 사람들”이라는 소주제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성찰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환경적 요인 중의 하나인 ‘도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과 큐레이터의 시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전시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사실 도시는 세계인구의 절반이 만나는 환경이다.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숭고한 구조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일상적이어서 그 존재를 감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산복도로의 비좁은 골목길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이곳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시의 허울 좋은 욕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얼굴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번 전시는 도시를 거울에 담아 비춰줌으로써 우리의 잃어버린 감각을 상기시켜준다. 그 감각은 잘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지만, 불편한 우리 ‘욕망의 형태’들이다.
욕망은 현실에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이며, 그 부재의 공간에 판타지가 개입한다. 도시의 판타지는 당연히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높이 솟은 건축물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욕망을 수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안세권의 작품은 도시의 수직적 욕망에 대한 일종의 기념비이다. 작가는 일찍부터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극명하게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 중에서 압권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수직적인 건물을 합성한 <해운대파노라마>다. 희미한 안개 너머의 도시와 해변의 인물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묘한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신기루처럼 처리된 도시 이미지는 더는 오를 수 없는 욕망의 임계점이나 순간 사려져버릴 것 같은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세피나 리는 세계의 마천루들을 3D 프린트로 재현해 놓은 <신바벨도시>를 비롯해 진입 금지를 알리는 러버콘 158개로 <금지된 영역 – LCT>를 선보였다. 김태연은 영상작품 <웰컴 투 더 시티>를 통해 장소성이 사라진 특색 없는 근대도시의 미적 획일화를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정혜련의 작품은 일종의 ‘공간 드로잉’이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과 이에 반응하는 작가의 감각이 유일하다. 그리고 이 공간 드로잉은 하나의 선이 새로운 선을 호출하는 연쇄적인 반응의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정혜련의 작품은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도시적 삶에 대한 추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정혜련 〈예상의 경계〉 광확산 PC, LED, 파노라마컨트롤러, 670×1200×485cm

안세권 〈해운대 파노라마〉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750cm 2014

도시 이미지의 페러독스

도시의 이면들이라는 소주제를 통해 압축 성장한 한국 근대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가령 조형섭의 경우 국가가 개인의 수면 시간까지 통제했던 –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매일 새벽 6시에 들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 새마을운동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시각적 상징이었던 “근대화”를 다룬다. 그 시리즈 중의 하나가 바로 <근대화 슈퍼>다. 조형섭은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 뿌리깊게 새겨진 ‘집단적 무의식’을 탁월하게 호출해낸다.
또한, 서평주의 <새천년 생명체조>는 위험으로 가득 찬 도시적 삶에 대한 패러독스다. 위험시설인 고리원자력발전소 앞에서 건강을 위한 체조를 선보이는 상상력은 서평주만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선에서만 가능한 작품이다.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일상적인 삶에서 허술한 구조를 발견해내는 이광기는 모순으로 점철된 우리 삶을 위트있게 비판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라는 3분24초의 싱글채널비디오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수족관 물고기가 횟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 속 물고기는 소모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 외에도 영도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구술을 기록한 김정근의 <그림자들의 섬>, 도시의 생성과 소멸, 계층 간 상반된 이미지를 대비시킨 허병찬의 <기억의 풍경>, 공간에 대한 어긋난 기억을 이야기하는 임봉호의 <콘크리트 맛 솜사탕>, 일상이 된 불안의 풍경을 보여주는 정주하, 시대의 흐름과 미시적인 삶의 관계를 드러낸 김아영, 영상에 대한 메타비평적 의미를 탐구하는 변재규, 재개발의 폐허에서도 남아있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박자현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사람들은 도시의 이미지에서 배제된 ‘말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백현주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촬영장소에서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장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영상을 만든다. 세대와 거주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 영화에 대한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여러 문제를 환기한다. 감윤경은 홍티아트센터에서 진행했던 <A Piece of Cake <달콤한 무지개>>를 통해 개념에 짓눌린 현대미술을 관계의 미학으로 치환한다. 소통과 참여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예술 속에서 지워진 이름 ‘관객’을 호출하는 정성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감윤경과 기타가와 타카요시는 공동 프로젝트로 작품 ‘찾자! 챗!(Chat)!’ 과 ‘차차차 프리즘’을 통해 부산시민들을 만나고 함께 부산을 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정윤선의 <도시 그 욕망의 계보학 ‘Dienamic-K’>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이다. Dynamic에서 착안한 Dienamic은 개발과 동시에 삶에서 멀어져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부산시립미술관 박진희 큐레이터는 도시를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하고, ‘유토피아의 환상이 사라진’ 우울한 공간으로 재현했다. 그 우울의 원천은 도시가 인간이나 생명보다는 이면에 숨은 자본이나 권력의 욕망을 더욱더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의미를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기획자의 선명한 의지는 작가와 작품 선정에서 뚜렷한 맥락을 보여주었고 큐레이터십이 살아있는 의미 있는 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념에 너무 깊이 천착한 나머지 관람객의 생각이 개입할 어떤 여지나 여백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시종일관 진지한 작품의 나열이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 전시의 장점에 비하면 애정 어린 투정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의 “욕망의 메트로폴리스”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디스토피아의 우울한 판타지’로 가득하지만, 우리가 성찰해야 할 도시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

 

PRIVIEW

산책자의 시선
2016.12.15~2.5 경기도미술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 시각예술창작지원 사업 “생생화화”의 기성작가 부문에 선정된 중장년 작가 19인의 신작을 만나는 자리. 작품세계가 원숙기에 접어든 김보중 김지섭 김지은 김현철 민성홍 박영균 박은태 박형근 방&리 방병상 윤사비 이흥덕 임승천 장성은 정재철 조현익 천대광 최경선 한효석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지를 바라본다. 시대의 풍경을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그 시대를 해석하는 작가들은 한국의 동시대를 텍스트 삼아 이 시대의 다양한 속살을 드러내며 2016년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시대의 징후를 드러내며 성찰을 유도하는 작가들의 진중한 시선이 담긴 작품 133점을 통해 예술가가 가져야 할 시선과 태도에 우리가 가져야할 삶의 자세를 비춰본다.
민성홍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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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북서울

서울 포커스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16.12.20~3.19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을 선보여 온 서울포커스는 서울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주목하여 현대미술과 서울의 접점을 살핀다. 1970-80년대를 이끈 상징적 공간들에서 만들어진 산업품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도시의 역사가 현대미술에 투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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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코

노부코 와타나베
1.17~5.7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펼쳐진 천 위에 흐르는 긴장감과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서로 다른 요소 간의 관계를 사유하고 색과 공간 너머의 이면을 주제삼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1990년대 천 작품에서부터 최근 스테인리스 작품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광범위하게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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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AMSUNG MEANS TO DIE(ENG)

장영혜중공업
1.6~3.12 아트선재센터

웹 아티스트 그룹 장영혜중공업의 개인전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이번 전시에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마치 ‘비디오 자습서’ 같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주는 텍스트와 음악이 결합된 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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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하

욕망의 메트로폴리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16.12.22~4.2 부산시립미술관

현대 인류의 삶의 공간인 도시는 기술과 자본의 총체이다. 즉, 도시라는 공간은 물질적, 비물질적인 욕망의 총체 안에서 삶을 구성해나간다. 모두가 원하고 원하는 틀 안에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을까?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된 전시는 욕망을 채우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이해집단이 실은 결핍으로 향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절대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가져오는 끊임없는 결핍을 통해 나타나는 수많은 도시문제를 발견하게하는 이 전시는 ‘환영의 도시’, ‘도시의 이면들’, ‘아래로부터의 사람들’로 나뉘어 구성되어 ‘욕망의 장’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18인의 작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터전의 의미를 되새긴다. 도시를 새롭게 인식하는 인간 주체가 도시공간의 주체이자 욕망의 주인이 될 가능성을 모색하며 화려한 도시의 환영을 즐기기를 잠시 멈추고, 도시 욕망의 구조와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 더불어 도시의 주체성 회복에 대해 성찰을 할 것을 주문한다.
정주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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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권오상
2016.12.16~2.4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미지의 재구성이 공간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선택된 평면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는 동시에 그 평면적 성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구축적 구조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적 성격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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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이호진
1.11~2.24 갤러리 조선

장 그르니에의 소설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보는 풍경 안에 실재의 자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존재가 없는 풍경을 만들어간다.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 인간이 직면한 현실적인 고민과 불안을 넘어서는 사유의 힘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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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왜곡된 틈 3, 36x25cm, 종이에 수채화와 연필, 2016

이삿날
2016.12.23~1.21 인사미술공간

‘공간’에 심리적, 물리적으로 다가가며 그것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두 작가 김다움 김민정의 작품을 소개한다. 영상과 그림자 설치로 선보이는 이 전시는 지난 1년간 진행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김민정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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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_무제_2016_종이에_수묵담채_39x54cm

민재영
1.3~15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중첩된 선을 통해 시대의 한 장면을 나타내는 민재영이 사루비아의 SO.S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지속해온 형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동양화 매체의 속성, 형식에 얽매여있던 작가는 그간의 기법과 주제를 내려놓고 무의식적 자각 능력을 찾는 과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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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김혜나
2016.12.22~2.4 갤러리EM

각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구성된 미적인 순간에 대해 연구하는 김혜나의 7번째 개인전 〈달과 게〉. 이번 전시에는 작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적 요소에만 천착하지 않고 ,음식물 등이 부패하는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을 함께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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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룰즈

룰즈
2016.12.22~1.26 원앤제이갤러리

고근호 김미영 성시경 이상훈 이환희 최수인 에이메이 카네야마가 참여해 1980-1990년대 출생의 젊은 회화 작가들 작품에 나타나는 한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이들 작품은 비재현적 특성이 두드러지며, 자기만의 규칙으로 이뤄진 세계를 탐구한다.
성시경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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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광장-2016 우민극장
2016.12.21~2.4 청주 우민아트센터

고영택 김기라 김동령 김영글 박경근 신정균 유비호 임흥순 전소정이 참여한다. 온전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연동됨을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역이행하며 바라본다.
김기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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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문 통인

순간의 시선
1.11~2.5 통인옥션갤러리

김성호 김인 오흥배 이민혁 정승혜 최경문이 각자의 시선에 포착되어 구체화된 세계를 보여준다. 무상한 시간 속 마주한 일상의 풍경 앞에선 작가들은 잠시 그 흐름에서 비껴서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 세계를 그리고 유희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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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예의 아름다움
2016.12.15~2.5 가나아트센터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기 위해 열리는 전시로 다방면의 공예 소재와 제작기술을 탐닉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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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필-소울아트

An Eye for Art – 예술가의 눈
2016.12.2~2.22 부산 소울아트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념전에는 김경민 김정수 안성하 한성필 황선태 작가가 참여한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작가들의 눈과 감각으로 빚어진 작품 속에 펼쳐진 경이로움과 축복, 역동하는 에너지의 세계를 만나본다.
한성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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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이인
1.19~2.22 갤러리 초이

개관기념으로 열리는 이인의 개인전 〈돌 혹은 인간〉. 작가는 작위적이지 않고 검소하지만 강건한 조형적 질서로 일상과 그 너머를 아우르는 돌에 주목한다. 그것과 닮아 있는 삶, 그리고 인간. 이인은 그의 삶과 소통하고 공명하는 존재로서 돌을 표현한다

EXHIBITION TOPIC

아르코 (7)

위 Klega 〈 The Future Looking at the Past 〉 가변설치 2016 아래 〈뉴 셸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리서치 아카이브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아르코미술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에서 〈뉴 셸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전〉〈홈리스의 도시전(The City of Homeless)〉이 각각 이어진다. 외부적인 영향으로 사회의 소수가 되어버린 ‘난민.’이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한 두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두 전시를 비교함으로써 건축과 미술에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아본다.

모든 난민과 노숙인은 그들만의 애환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류병학 | 미술비평

지난 7월 8일 아르코미술관에서 두 개의 의미 있는 기획전이 오픈했다. 제1전시실에서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한 〈뉴 셸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하 뉴 셸터스)과 제2전시실에서 목홍균 독립큐레이터가 기획한 〈홈리스의 도시(The City of Homeless)〉(이하 홈리스)가 그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처음 시행하는 시각예술창작산실 공모사업 중 ‘전시지원’에 선정된 기획 전시이다.

우수한 전시기획을 위한 제안들
시각예술창작산실 공모사업은 ‘전시지원’ 이외에 ‘공간지원’과 ‘비평지원’이 있다. 그런데 ‘전시’와 ‘공간’의 구분(명칭)이 모호하다. 우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고문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시각예술 전시지원은 “시각예술분야의 우수 전시기획을 지원함으로써 시각예술 창작에서 확산까지 전 단계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언급한 반면, 시각예술 공간지원은 “대안공간 및 사립미술관 지원을 통해 작가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간별 기획 전시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시각예술 ‘전시지원’은 일종의 ‘기획지원’을 뜻하는 셈이다. 그런데 ‘공간지원’도 엄밀한 의미에서 ‘기획지원’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공간지원’ 역시 대안공간 및 사립미술관의 기획안을 가지고 심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지원’이 (특정 전시공간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일종의 독립큐레이터의 기획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공간지원’은 대안공간 및 사립미술관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의 기획을 지원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 공모사업은 지난 2월 5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고문이 올라왔고 공모기간은 공고문이 올라온 2월 5일부터 2월 25일까지였다. 따라서 20일 안에 ‘우수 전시 기획안’을 작성해야만 했다. 2016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 심의위원 일동은 다음과 같이 총평했다. “본 사업의 의도와 목적에 부적절한 신청이 많았던 점, 참신한 기획력을 갖춘 사업이 적었던 점, 전시기획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획안이 많았던 점은 아쉬웠다. 또한 작가 구성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비해 전반적으로 주제에 대한 깊은 문제인식이나 배경에 대한 탐구가 보이질 않거나 아이디어의 신선함에 비해 작가 구성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보다 균형감을 갖춘 탄탄한 기획이 요구된다.”
‘탄탄한 기획’을 바탕으로 하는 ‘우수 전시 기획안’을 마련하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2016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 공모는 처음 시행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충분한 홍보도 없이 공모기간이 (공고문을 올린 당일부터) 20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부적절한 기획안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획안이 많을 수밖에.

아르코미술관, 미술과 건축을 위한 셸터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방문한 아르코미술관의 〈뉴 셸터스〉와 〈홈리스〉는 전반적으로 주제에 대한 깊은 문제인식이나 배경에 대한 탐구가 보이는 기획전이었다. 물론 두 기획전은 독립된 전시회이지만 ‘집/고향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전시라는 점에서 문맥을 이룬다. 이 두 기획전은 일종의 ‘사회적·공익적 기획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노숙인’과 ‘난민’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이슈란 점에서 시의적절한 기획전이다. 따라서 ‘공공미술관’인 아르코미술관에서 그 기획전을 개최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뉴 셸터스〉는 이미 부제에서 감 잡을 수 있듯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다. 따라서 건축적 관점이 중심을 이룬다. 〈뉴 셸터스〉에는 다섯 건축가(팀)가 협업한 프로젝트들이 있고, 두 명의 아티스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섯 건축가(팀)가 협업한 프로젝트는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다.
대규모 탈북민이 발생했을 때 예비군 훈련장을 난민의 ‘중간적 완충지대’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건축가 황두진 & 군사안보 전문가 양욱), 난민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농촌지역 여성 이주자들의 주거와 거주 환경에 대해 묻는 ‘다시-정착’(건축가 SOA & 문화인류학자 김현미), 난민들의 원활한 현지 정착을 위한 모바일을 이용한 ‘빅데이터 셸터링’(건축가 김찬중 & 데이터 전문가 김경옥, 난민인권 활동가 박진숙), 난민에 대한 은유로 새로운 터전에 적응하는 식물난민 프로젝트 ‘난초(難草)’(건축가 박창현 & 조경가 이수학, 정성훈), 난민에 대한 은유로 유기 동물들의 쉼터 프로젝트인 ‘마음 한쪽 마당 한쪽 내어주기’(건축가 레어 콜렉티브&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그렇다면 두 명의 아티스트는? 오재우의 〈나의 조국, 내가 없는〉은 한국에 들어온 난민들과 난민활동가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작업인 반면, 차지량의 〈한국 난민〉은 우리들을 미래의 난민으로 상정한 ‘가상 스토리’로 만든 영상작업이다. 따라서 오재우의 〈나의 조국, 내가 없는〉이 〈뉴 셸터스〉의 시작을 알린다면, 차지량의 〈한국 난민〉은 〈뉴 셸터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하겠다. 특히 차지량의 〈한국 난민〉은 자본이 곧 국가가 된다는 의미심장한 설정을 한다. 문득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된 “근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동 사무

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 언급된 ‘경제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국가)’가 떠오른다.

모든 작품에는 그들만의 애환과 사연이 있다
영어단어 ‘홈리스’는 ‘집이 없는’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흔히 집이 없는 사람, 즉 ‘노숙인’의 의미로 사용된다. (혹자는 ‘노숙자’로 표기하는데, 2003년 복지부가 인권 존중 차원에서 ‘노숙자’라는 용어 대신 ‘노숙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노숙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선 유엔이 정의한 노숙인 기준을 보자. 첫째,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 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둘째, 집이 있으나 유엔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셋째,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 관리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노숙인’을 어떻게 정의할까? 법제처(2011)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는 노숙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상당한 기간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거리 노숙인). 둘째,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시설 노숙인). 셋째,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만화방, 사우나, PC방, 쪽방 생활자 등)
두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노숙인’ 개념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그 범위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숙인’은 일정한 주거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며 생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거주하는 사람, 잠재적 노숙 상태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이 점에 주목한 기획전이 목홍균 독립큐레이터의 〈홈리스〉이다. 〈홈리스〉는 난민을 포함하여 가정폭력으로 가출한 사람(조영주), 건설이 중단된 45층짜리 건물에 불법 거주하는 사람들(U-TT), 베이징 아파트 지하 벙커에 거주하는 사람들(Sim Chi Yin), 더 나은 삶을 위해 타국으로 이주한 사람들(Sherman Ong, Elvis Yip Kin Bon), 백인 엘리트 주변에 존재하는 가정부(Daniela Ortiz), 피난처를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김해민) 등 다양한 ‘홈리스’들을 다룬 9개 국적의 14명의 작가를 초대한 일종의 ‘국제전’이다.
런던과 뉴욕 등 대도시 건물 입구 부분(공공공간)에 노숙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한 스파이크 위에 간이침대와 미니책장을 만든 작품(Leah Borromeo)이 있는가 하면, 뾰족한 쇠 스파이크가 설치된 의자를 만든 작품(Fabian Brusing)도 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물건들로 잠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고안한 노숙자깡통(유목연), 노숙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강의 퍼포먼스 영상(유목연)도 있다.
노숙인을 은유하는 작품들도 있다. 주택분양 광고물을 이용한 작업(이원호)과 집 없는 조형물(안민욱) 그리고 이동식 레고-주택(Jaye Moon)이 그것이다. 물론 노숙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맥을 찾기 쉽지 않은 철거된 공간과 새로 건축된 공간을 촬영한 사진(Klega)이나 고백상자(Van Bo Le-Menzel) 그리고 그리운 고향음식(이주영)에 관한 작품도 ‘홈리스’에 전시되어 있다. 필자는 ‘홈리스’와 ‘뉴 셸터스’를 보고 나오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작품은 노숙인과 난민과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애환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은 절절한 사연을 1시간에 달하는 영상으로 혹은 애틋한 애환을 마치 시(詩)처럼 함축해 놓았기 때문에, 관객이 애정을 갖고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여 그 작품들을 보아야만 한다. 그렇다! 좋은 작품이 깊은 사유와 차이와 반복의 표현 속에서 탄생하듯이, 참신하면서 탄탄한 기획안 역시 깊은 사유와 차이와 반복의 글쓰기 속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EXHIBITION FOCUS 백순실

DF2B9964

위〈 Ode to Music 1402 말러 교향곡 제1번 D장조 ‘거인’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50×270cm 2014 아래 고려대학교박물관 기획전시실 1층 전시장 전경

영혼의 울림, 베토벤과의 대화

음색은 색(色)으로, 선율은 선(線)으로, 음률은 형상으로 표현한 전시가 막을 올렸다. 작가 백순실의 〈영혼의 울림, 베토벤과의 대화〉가 바로 그것. 이번에 전시된 신작 14점 중 베토벤을 주제로 한 작품은 10점에 달한다. 작가는 베토벤의 음악을 ‘휴머니티’란 한 단어로 정의한다. 백 작가가 만들어낸 미술과 음악의 앙상블은 8월 28일까지 고려대학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인상의 기보(記譜)

김겸 |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 건국대 겸임교수

백순실의 작품은 기사에서 먼저 이미지를 접했다. 조그맣고 평평한 도판 속의 작품들은 작곡가와 작품명이 제목인 탓에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색면추상화의 일종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입구에서 ‘음악에의 헌정(Ode to music)-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과 마주한 순간,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도판 상에서 밝고 명랑하기만 했던 색면들은 모든 감각을 순식간에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복원가라는 직업병 탓에 작품 표면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단순한 평면 작품이 아니었다. 오돌토돌한 돌기들을 비롯하여 몇 차례 올린 색층은 어스름하게 밑층을 드러내거나 단단하게 쌓여 올라와 깊이감이 느껴졌다. 어떤 색면은 무광택의 단단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 얼핏 파스텔이 두텁게 덮인 것 같았는데 오일스틱이라는 크레용 같은 유화구를 사용한 결과이다. 작가는 어느 때인가부터 유화의 첨가제, 희석제들이 풍기는 기름 냄새를 받아들이기 힘든 체질이 되었고 그 대체물로 유화스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커다란 주제인 클래식 음악과 차(茶)는 작가 아버지의 취미였던 동시에 20대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충격을 벗어나게끔 도와준 오래된 벗이라고 한다.
모두 다른 곡명의 작품은 대지에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보살피며 몇 달을 기다려 무성해진 풍요의 땅이며 정성스럽게 가꾼 음악의 정원이다. 실제로 작가가 200호 캔버스를 바닥에 뉘어 놓고 적게는 3번에서 10번까지 색면을 올리고 문질러내고 다양한 입자의 퍼미스 젤(pumice gel)을 섞어 넓은 평붓으로 펴 발라 만들어 낸 돌기는 드넓은 대지를 연상시킨다. 임옥상이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흙과 대지가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어머니의 그을리고 주름진 손등이라면 백순실의 땅은 정성스럽게 일구고 가꾼 기름진 옥토와도 같다. 이 풍요의 땅 위에 작가는 담고 싶은 작곡가와 음악의 인상을 색면이나 색의 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탕층을 올리는 행위의 즐거움과 결과를 기다리는 설렘은 의도와 우연성이 뒤섞이며 형태에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각각의 작품에 붙여진 음악과 이미지와의 인과성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1번이며 또 다른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일까? 전시 제목이나 미리 접한 리뷰가 주는 오해를 없애고자 머릿속에서 제목을 비우고 무념의 상태로 바라보니 작품에서 음향이 들리기 시작했다. 표면의 작은 돌기들은 마치 오르골처럼 공간을 튕기며 잔향을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돌기는 음표가 되어 선율과 리듬을 만들었고 쌓아올린 색의 단층은 음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화성 같았다. 색상과 펄의 반짝임은 음색, 옅은 붓놀림 자국은 꾸밈음이나 즉흥적 악상을 연상시킨다. 백순실은 한때 모든 자신의 작품을 무제로 두었으나 감상자들과 좀 더 친밀한 소통을 위해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본래 작품 창작의 태도가 서사적이라기보다 창작 동기나 개념을 은유와 함축으로 깊게 숨겨놓고 재구성하는 추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한다.

〈 Ode to Music 1404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Op.92 〉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50×270cm 2014

〈 Ode to Music 1404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Op.92 〉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50×270cm 2014

미술과 음악의 협연
예술사에서 인상주의만큼 미술과 음악이 잘 어울리는 시대는 없었다.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동질성이 느껴진다는 것은 이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소리를 통해 모네의 그림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분명히 선율은 존재하지만 하나하나의 음색에 녹아들어 투명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드뷔시의 음악은 소리로 그린 그림과도 같다. 감각을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대상화했던 인상주의 화가는 영롱하고 찰나의 시간성을 지닌 빛의 물질성을 탐구하고 표현하려 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보면 점차 수련이나 수면을 암시하는 형태들이 사라지고 화면 전체로 퍼지는 빛의 느낌만이 남게 된다. 형태가 대부분 사라진 후기의 수련시리즈는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찬미하는 상징주의나 표현주의를 지나 추상으로까지 나아간 듯 보인다. 클로드 드뷔시의 인상주의 화풍을 닮은 음악도 아주 흡사한 궤적을 그리며 전개되었다. 그의 초기 피아노 모음곡 ‘베르가마스크’(1890)는 명확한 선율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성을 드러낸 반면, 후기의 모음곡 ‘영상’(1905)에서는 선율은 모호해지고 빠른 음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찰나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상징주의 시인으로 모더니즘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보들레르의 ‘조응’ 혹은 ‘교감’이란 개념은 우주만물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감각적 관계를 ‘교감하는 관계’로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감 속에서 인간의 오감 역시 하나의 공감각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미술사 서술방법에서 인상주의를 추상미술의 선구자적 위치에 두는 것이나, 음악사에서 현대음악의 출발점을 드뷔시의 관현악곡법으로 보는 이유는 조형예술의 형상과 음악의 명확한 선율이 사라짐과 연관이 있다.
재현과 서사의 수단으로서 예술이 표현과 추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인상주의 음악이 조형예술의 시각적 감각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나 이후엔 오히려 조형예술이 음악의 추상성을 닮아갔다. 괴테가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한 이래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월터 페이터는 ‘모든 예술은 음악적 상태를 갈망한다’고 할 만큼 점차 음악과 다른 예술장르간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구성’, ‘즉흥’, ‘인상’ 시리즈에서도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03년 멘델스존의 피아노 모음곡을 연상시키는 ‘무언가’라는 타이틀로 122개의 목판화 연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개최된 칸딘스키 추상화전 카탈로그에서 독일 화가 브루노 하스는 ‘칸딘스키의 색은 서로 공명하여 시각적 화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선율을 없애기 위해 조성자체를 해체한 추상음악의 선구자 아놀드 쇤베르크와 칸딘스키가 친구이자 예술적 조력자가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파울 클레의 선율과 음색을 색면의 흐름으로 표현한 작품은 무반주 바이올린 모음곡을 연상하게 한다. 클레는 악보 자체에서 조형미를 발견하여 오선지와 음표의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존 케이지는 적극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보와 조형예술로서의 이미지를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흥미롭게도 작곡가 야니스 크네나키스나 피에르 불레즈의 악보는 조형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순실의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캔버스 안에 선율, 음색, 리듬, 화성과 악장 구조를 모두 넣어 굳힌 3차원의 풀 스코어와도 같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악보만 보아서는 어떤 곡인지 알기 힘든 것처럼 백순실이 캔버스 위에 기보(記譜)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들 또한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의 의식 안에서 재해석되고 조형화된 거대한 음향의 인상들이 바탕칠을 올리고 문지르며 색면을 구획하거나 빠르게 올리는 행위를 통해 복기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 말러의 교향곡 1번과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개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말러 교향곡 1번’의 경우 밝고 때때로 경쾌한 선율을 가지고 있지만 이따금씩 들려오는 불안한 화성과 곡의 부제인 ‘거인’을 연상시키는 3, 4 악장의 거대한 울림이 크게 분할된 화면 속에 보였다. 춤의 교향곡이라고도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경쾌함이 넓은 화면에 역동적으로 펼쳐진 가운데 2악장의 조용한 장중함이 화면 가운데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작품은 각 제목의 작곡가나 곡의 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는 내게 ‘황제’로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 속 ‘황제’ 협주곡의 ‘격정’이나 특히 좋아하는 3악장의 ‘승리, 환희’ 같은 인상이 강렬한 색상의 상승하는 이미지가 되어 느린 2악장을 배경으로 치고 올라오는 형상이었다면 금세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익숙한 곡을 익숙한 방법으로 연주한 레코드를 듣는 경험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해석과 파격적인 연주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설렘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연주가와 새 음반을 기다리는 이유이자 감상의 즐거움이 아닐까.
예술가의 삶이 모두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하듯이 모든 예술작품은 다르고 새로울 수 있다. 이론을 공부하며 딴에는 귀명창이 되어 물든 나쁜 버릇이 예술작품을 범주화하여 설명하고 서구의 이론에 끼워 맞추어 재단하는 것이다. 다행히 오랜 시간 복원일을 하며 작가의 붓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 표면을 마주하다 보니 평면 속에 감추어진 물감의 깊이와 함께 창작의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순실은 음악과 차를 즐기며 그리고 창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연스레 담아내고 있으므로 우리가 바라보는 베토벤은 화가 백순실의 베토벤인 것이다. ●

CRITIC 퇴폐미술

6.23~8.14 아트스페이스 풀

이채영 | 경기도미술관 책임 학예연구사

“기획전이 하나의 텍스트로 작동하면서 관객에게 적극적이고 전복적인 읽기를 강요하는 방식은 작가와 작품이 지닌 고유한 자율성을 큐레이터라는 개인의 사유의 틀에 근거해 재배열하고 재맥락화하는 위험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는 전시 자체를 해석이 필요한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큐레이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큐레이터의 정치적인 의도 안에 포섭된 작가들의 작품으로 대중을 선동하려는 현대미술의 타락한 의도로 파악될 수 있다. 현재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진행되는 〈퇴폐미술전〉이 그러한데 기획자는 1931년 독일의 나치에 의해 개최되었던 전시를 레퍼런스로 이 시대가 마치 파시즘의 유령이 떠도는 시대인 양 그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여 전시를 만들었으며, 작가들의 불온한 작품들을 기획자의 정밀한 계획 아래 배치해 놓고 작품을 냉소하고 비방하는 글로 전시장을 가득 채워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전시를 해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오해 마시길. 위의 글은 80여 년전 나치가 개최한 〈퇴폐미술전〉에서 모더니즘 작품을 전시하고 비방했던 어법을 차용하여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진행 중인 〈퇴폐미술전〉 작품의 퇴폐성을 조목조목 언급한 안소현 큐레이터의 역설적인 서술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위의 글을 다시 읽자면 이 전시는 큐레이터에 의해 의도된, 그리고 작가들의 지지와 공모로 만들어진,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텍스트다. 관객은 좀 더 적극성을 가지고 작가와 기획자가 장치한 역설의 수사법을 읽어내야 한다.
전시의 해석을 작동시키는 레퍼런스는 1937년 나치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을 게르만 순혈주의에 위배되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그리고 퇴폐적이라 규정하고 전시한 〈퇴폐미술전〉이다. 오토 딕스, 코코슈카, 마크 베크만, 심지어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피카소를 아우르는 이 전시에 걸린 작가들의 작품들은 전시 후 불태워지기도 하고 어딘가에 버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아직도 간혹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2016년 대한민국에서 ‘퇴폐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실 전시를 둘러싼 어떤 설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전시 리플렛에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왜 퇴폐적이며 왜 위험한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의도된 위악적인 설명이다) 옥인콜렉티브의 〈작전명  -  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에 대해 기획자는 이 작품이 포퓰리즘의 속성을 지닌 퍼포먼스이며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예술로 위장한 불온함이 미지근한 잔불로 남아있는 것이다. 예술적 의미는 당장 폭발하지 않더라도 적절한 바람을 만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 수 있다”고 서술한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부패, 경제적 좌절의 기운 속에서 예술이 행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와 교란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역설적으로 설명한 글로 큐레이터는 현대예술이 일상 속에 내재한 권력에 반응하고 정치적 교란을 수행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합니다.” 최근의 박 대통령의 언급이다. ‘비정상’과 ‘불순세력’. 사회에서 그것을 가려내고 배척하면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라는 불합리한 가치관과 “신비주의”로 대중을 선동하여 타자를 배척하도록 종용하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이 파시즘의 기운에 사로잡혀 있다고 걱정하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이 전시의 의도를 읽는다. 전시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정상’과 ‘불순함’에 대한 자기 검열이 상시화된 한국 미술계의 현실에 대한 자가당착의 고백이다.
파시즘을 역사적인 특정 정당의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내재된 행동양식이자 언제든 발현될 수 있는 위험한 삶의 양식으로 파악한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에 대한 분석은 파시즘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괄호치지 않고 현재의 정치문화와 대중심리를 파악하도록 한다. 그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파시즘은 정당이 아니라 인간, 사랑, 그리고 노동에 대한 특정한 태도와 특정한 생활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시즘은 실천적인 삶의 문제에 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왜나하면 파시즘은 이데올로기의 범위 내에서만, 또한 국가 제복의 형상 속에서만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퇴폐미술전〉의 작품들에서 정치, 성, 기계문명, 정신세계에 작동하는 일상의 파시즘에 대한 경계를 발견할 수 있다. 권용주 작가는 ‘새누리당’, ‘음지에서 양지를 지양한다’는 안기부(현 국정원)의 구호가 적힌 조악한 기념비를 전시함으로써 국가기관과 그것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냉소와 권위주의에 대해 경계를 드러낸다. 김웅현 작가는 〈스페인스베다〉에서 9   · 11 테러 당시를 찍은 인터넷 동영상을 마치 게임 이미지처럼 변형한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는 겹쳐지고 흐려지면서 일상화된 테러와 죽음에 대한 불감증, 모든 것이 스펙터클로 전환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이미지 소비 형태를 드러낸다. 오용석과 장파는 인간의 육체에 부여된 사회적 규범에 대한 거부, 패티시에 대한 집착, 관음증을 거부하는 왜곡되고 뒤틀린 여체로 성의 규범화에 문제제기한다. 전시는 작품을 신성시할 의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캔버스는 처박혀 있거나 겹쳐서 매달려 있고 조각들은 시선의 아래에 놓이거나 사각지대에 설치되어 있다. 의도적인 패러디이지만 역설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불순’해 보이는 공간이 우리를 잠식하는 권위의식으로부터의 일탈을 꾀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CRITIC 말 없는 미술

6.24~8.6 하이트컬렉션

박가희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지난해 하이트컬렉션에서는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하 ‘클링조어’)〉을 타이틀로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전시는 작품을 감상하는데 무리하게 개입하는 현학적인 언어와 과도한 개념에서 자유롭게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전시와 작품을 볼 때 마음보다는 머리가 앞서는 필자로서는 전시된 작품들의 섬세한 감각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적잖이 어려웠다. 같은 공간에서 6월 24일부터 진행 중인 전시 〈말 없는 미술〉 역시 일정 부분 앞선 전시와 같은 질문을 공유하는 듯 보였다.
이 글의 목적은 아니지만, 두 전시의 차이를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후자는 기획을 구성하며 조금 더 ‘감각’의 경험을 극대화한 듯 보인다. 이는 〈클링조어〉가 여전히 작품을 독해하는 기획자의 글(일종의 길잡이가 되는 최소한의 텍스트)을 제공하며 작품의 의도와 작품이 드러내는 감각을 기획의 문맥 안에서 제시했다면, 〈말 없는 미술〉은 도록에 수록된 두 편의 글 외에 작품과 전시를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그 어떤 글도 철저히 배제하면서 관객을 작품과 곧장 대면시킨다. 전시에서 주어진 글을 참조하는 것은 관객의 선택 사항이지만, 전시 기획 단계부터 ‘글’의 존재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고, 관객에게 보이지 않기로 한 것은 전시의 의도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이 전시는 학습된 언어와 표현 방식이 아닌 “물질과 기억, 유희적(시적, 음악적)인 운동의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전시의 공기를 관객이 직접 자신의 감각과 지각 경험을 통해 감상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작품과 관객의 사이, 이 거리에서 감지되는 감각과 그 감각을 지각하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신형철은 이런 관계   – 자신과 문학   –   를 ‘너와 나’라는 두 존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느낌의 공유, 사랑으로 이뤄진 ‘느낌의 공동체’로 비유한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미술을 머리로 읽는 것이 익숙한 필자 역시 개념과 논리를 풀어내는 언어로 점철된 미술 감상이 주는 피로감을 모르지 않기에 기획자 의도에 따라 작품을 마주할 때 떠오르는 심상을 좇아 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작품과의 거리에서 감지한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가 만들어낸 ‘느낌의 공동체’를 이 글로 표현해 보았다. 그렇다면 불분명하게 떠오르는 감각과 현상학적 지각을 글로 서술할 때 서정적 서술이나 작품을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표현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표현을 통해 개인의 지각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표현에서도 자유로워지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도록에 수록된 두 편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들은 작품을 위한 설명이 아니다. 기획의도에 따라 필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넓게는 느낌 자체를, 좁게는 이 전시와 그 안의 작품이 품고 있는 현상학적 지각을 다시 글로 표현한 것이다. 미술 사학자 강태희는 미술 글쓰기의 방식에 따라 각 작품이 품은 지각을 섬세하게 읽었다. 장우철 《GQ 코리아》 피처 디렉터는 우리가 뚜렷한 논리 없이 감지하는, 마치 알 것 같은 ‘느낌’과 ‘좋음’을 개인적인 서사를 따라 조각 글로 표현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에 반응하는 이 두 편의 글을 볼 때, 필자는 이 각기 다른 감각을 지닌 작품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전시장의 대기를 어떻게 지각했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이 전시가 주장하는 바를 따라 감각을 이용해 작품과 필자가 감각의 거리에서 마주했던 순간을 추적하고, 순간을 함께한 이들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공동체에 수장이 있다면 그것은 최병소의 〈Untitled〉(2016) 연작이라 하겠다. 신문 위 글자들을 볼펜으로 온 힘을 다해 지워나간 이 작업은 ‘말 없는 미술’이라는 문맥에 놓여 흡사 말 이전의 상태로 모든 것을 비워내려는 듯하다. 하지만 지우려는 강한 힘이 찢어버린 종이에서는 오히려 활자 그 이상의 감각적 에너지가 표출된다. 말이 없어진 침묵의 상태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공성훈과 최수인의 회화가 있다. 하나는 묘사적이고 서사적이며, 다른 하나는 매우 파편적이다. 서로 다른 이 둘은 마주 보며 조응하고 침묵을 깨듯 대화하면서 대기에 이미지와 서사를 더한다. 최병소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른 쪽에는 강한 몸의 감각을 담아 거친 표면을 한 오치균의 〈창문〉(1995)이 오렌지색 벽과 대비를 이루며 자리한다. 이는 다시 공성훈과 최수인의 붓 터치가 전하는 촉각과 상응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오렌지색 벽을 끼고 돌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어둡고 짙은 공기가 감도는 공간이 펼쳐지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반듯한 프레임 안에 펼쳐진 김도균의 회색 하늘 이미지는 맞은편의 흩날리는 눈의 매우 서정적인 동세가 돋보이는 구정아의 〈U Become Snow〉(1998  /  2015)와 대구를 이루면서 풍경을 만들어낸다. 두 이미지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차에 최대진의 〈들숨, 날숨〉(2015)이 마치 소복이 쌓인 눈처럼 툭하고 등장한다. 정적인 이미지의 고요한 회색 하늘과 흩날리는 눈발이 만들어내는 리듬감 있는 동적 이미지 사이에 절묘하게 놓인 최대진의 〈들숨, 날숨〉은 잠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최병소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가 만들어내는 이 공동체는 이미지의 표면에 드러나는 손끝의 촉각과, 빛과 공기의 움직임이 감각적인 대기를 형성하며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이처럼 이 전시는 최병소의 침묵 속에 풍경을 관망하는 가운데 툭 하고 튀어나오는 최대진의 호흡처럼 모호하지만 ‘알 것 같은’ 촉각이 주는 감각에 기대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이 전시가 쉽지 않다. 아마 순전히 머리로만 작품을 읽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며,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라고 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에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작품과의 모호한 교류에 기대어 써내려간 이 표현 역시 석연치 않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전시는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환기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를 전시로 풀어내기 위해 텍스트를 배제하고 모든 것을 관객의 감각으로 돌리는 방식의 유효성에는 의문이든다.

위 최수인〈건〉(오른쪽) 캔버스 위에 유채 112×162cm 2010

CRITIC 권오상 NewStructure and Relief

7.7~8.21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신승오 | 페리지갤러리 디렉터

권오상의 개인전 〈New Structure and Relief〉는 지하 1층 전시장을 〈New Structure〉 시리즈로 꽉 채우고 2층에서는 새로운 부조작업 시리즈인 〈Relief〉를 선보이고 있다. 〈New Structure〉는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다시 사진으로 표현하는 〈The Flat〉 시리즈에서 파생되었다. 〈The Flat〉시리즈는 디자인 잡지의 평면 이미지를 입체로 만든 후 다시 촬영하여 평면 이미지로 보여주는 작업인데, 〈New Structure〉는 이 이미지들을 평면의 판으로 확대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평면을 입체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Relief〉도 같은 〈The Flat〉에서 파생되어 소재는 같지만 이미지가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보이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 조합으로 겹쳐져 나타난다. 물론 이 이미지들은 서로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
이 두 시리즈는 무작위의 이미지, 이미 디자인 되어 잡지에 실려 있는 오브제의 사진 이미지가 기본 재료가 된다. 그가 다루는 이미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나 맥락과 상관없이 색, 형태 그리고 크기만으로 판단하며, 이를 확대하여 실제의 공간에서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 자체의 조형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이는 이전의 〈Deodorant Type〉, 〈Masspatterns〉 시리즈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한, 세상의 모든 물건과 이미지는 그것이 입체적이든 평면적이든 혹은 실제의 것이든 가상의 것이든 모두 어떠한 형태로도 조형적 조합이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작업 〈New Structure〉와 〈Relief〉 시리즈에서 이전 작업과 다르게 눈에 띄는 것은 평면적 이미지가 물성을 획득하면서 가지고 있던 윤곽선이 드러나는 점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먼저 인식하는 것은 물론 이미지의 크기와 색들의 시각적 요소들이지만, 최근 그의 작업에서는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중첩되게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개별 이미지들의 윤곽선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윤곽선은 어떤 맥락으로 작용하는가? 그는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개별 이미지의 물질성을 강조하면서도 전체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윤곽선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이는 다양한 협업을 통해 공동체가 커다란 이념으로 뭉치기보다는 소수의 의견들이 모여 소규모 집단으로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며 다시 새로운 집단이 생성되어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어가는 동시대 현대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그의 작업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가 동시대에 존재하는 최신 유행의 상품 이미지, 자신의 주변에서 찍어낸 인물, 동물, 생활용품, 자신의 공구들 혹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미지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관심은 동시대에 이미지로 생성되는 현상에 고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권오상은 물질화된 이미지를 윤곽선으로 구획지으면서,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끝없이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우리들의 정체성과 사회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한 그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다양한 이미지들 때문에 복잡하게 보이지만, 조합 방식은 단순하여 장난감 블록을 쌓듯이 한계 없이 지속적으로 증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제작 프로세스 또한 이미지는 그 무엇이라도 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에 그 뿌리를 둔다. 결국 이런 방식들은 권오상이 지속적으로 이미지가 물성을 획득하게 해서 입체로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이미지들의 윤곽선들을 통하여 작업의 기본 모듈을 확립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복잡한 이미지 표피를 넘어 본질적인 조형언어를 꾸준히 모색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위 권오상 〈뉴스트럭쳐〉 시리즈 알루미늄에 프린트 2014~2016

CRITIC 김보민 먼 목소리

6.8~29 포스코미술관

정필주 | 예술사회학, 미술평론

라인테이프를 사용해 표현한 현대적 풍경을 주로 수묵 담채 산수를 통해 강조하거나 대비하는 방식은 2006년 개인전 데뷔 이래 작가 김보민이 구축해온 작품세계의 특징이다. 다만, 테이핑을 통한 현대적 공간이든 전통적 세필과 농담 효과에 의한 공간의 기억과 그것을 매개로 하는 전승 설화이든 관계없이, 그 공간은 매번 달라지지만 우리가 느끼는 익숙함을 배반할 정도로 기이하거나 추상적이진 않다. 거의 10여 년간 계속된 작가의 풍경 탐구는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스쳐 보냈을 찰나적 삶의 단편 속에 매우 사적인 친밀함을 쉽게 뿌리내리게 하거나, 목동, 선유도 등 집단적 기억이 굳건한 대도시 속 현실적 공간에 전승 설화나 작가 스스로의 상상적 세계를 무리없이 연결해낼 만큼 능숙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러한 능숙함이 약속하는 현실적 삶과 그 공간이 담아온 기억의 단편 간의 멋들어진 연결 사례 중 마음에 드는 한 쌍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김보민은 단지 자신이 구축한 전지전능한 시점의 날렵하면서도 굳건한 화법을 통해 일련의 작품 리스트를 쉼 없이 갱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가?
포스코미술관 제2기 신진작가 공모전의 일환으로 6월 8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 김보민의 개인전 〈먼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김보민이 단순히 설화적 공간의 갖가지 재림 사례를 ‘발견’했음에 만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더욱 비중이 높아진 전통 산수는 현대적 풍경과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으며 때론, 무채색의 현대적 풍경에 색과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는 분명히 초기작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 공간을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통해 정의하고 발견하려 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의 풍경에 설화적 공간을 풀어낸 작품 ‘개화’나 ‘제차파의’ 등은 그러한 시도의 훌륭한 사례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유채색의 미려한 설화적 산수가 갖는 매력이 곧 모노톤의 테이핑된 콘크리트 도시 속 일상성을 대신하여 김보민 작품세계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다. 전통 산수에 대한 김보민의 접근은 현실적 공간의 존재 이유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엄격하진 않으며, 오히려 그 표현은 의도적으로 다운 그레이드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에 켜켜이 쌓여 있는 선조들의 삶과 그 설화적 전승은 성스러움 대신 친숙함을 갖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친숙함은 현실 공간의 일상적 단조로움과 그 맥을 함께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심정적 지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김포공항에서 남산, 한강에서 재개발 지역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풍경 속에 내려앉은 설화적 공간과 이야기들은, 무채색의 현실적 공간의 일상성 속에 숨은 삶의 기억을 대체하는 대신 그들을 되짚어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실마리 역할을 자처한다.
일상적 단조로움을 그려내는 무채색의 테이핑을 회색의 이상향에 대한 도시민으로서 김보민의 믿음이 실체화한 것으로 본다면, 작가의 작품 하나하나는 전통 산수와 유채색의 설화적 공간에 대한 일관된 수구초심이라기보다 서울이라는 회색 현실 공간 속 우리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질문에 가깝다. 설화적 전승이 갖는 매력과 전통 산수에 대한 작가 본인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김보민은 설화나 먼 과거 속 인물의 ‘먼 목소리’만을 빌려, 회색의 이상향에 거주하는 우리들에게 대화를 권하고 있다. 모든 답을 내놓는 대신, 대화의 상대를 비워둘 줄 아는 작가를 만나기 힘든 현대미술계에서 김보민과 같은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다.

위 김보민 〈곰달래〉(왼쪽) 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 금분 145.5×97cm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