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The 5th Fukuoka Asian Art Triennale 2014
아시아의 진짜 모습은?
‘미래세계의 파노라마-새롭게 피어나는 시대 속으로(Panorama of the Nextworld-Breaking out into the Future)’를 주제로 한 <제5회 후쿠오카 아시아미술 트리엔날레 2014>가 9월 6일부터 11월 30일까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및 주변 지역에서 열린다. 미술관이 직접 개최하는 이 트리엔날레는 올해 ‘새로움’을 화두로 삼고 대회의 방향성을 더욱 공고히 하려 했다. 이번 대회가 이야기하고자 한 ‘아시아성’을 직접 보고 들은 필자의 글을 소개한다.
김주원 미학, 일본 CCA 기타큐슈 비지팅 펠로
타자(他者)의 인식은 공간의 구획을 가능하게 한다. 이전까지 추상적 공간 개념으로 여겨지던 ‘아시아’가 후쿠오카 아시아 트리엔날레(The 5th Fukuoka Asian Art Triennale 2014, 이하 ‘FT5’))를 통해 명시화된 것도 어느새 5번째가 되었다. 1999년 이래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담론 형성과 전개를 이끌어온 FT의 이번 주제는 ‘미래세계의 파노라마 -새롭게 피어나는 시대 속으로(Panorama of the Nextworld-Breaking out into the Future)’이다. 아시아 21개국 지역의 젊은 시각미술가 46명의 작품이 초청, 소개되었다.
잘 알다시피 FT는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The Fukuoka Asian Art Museum, 이하 ‘FAAM’)의 지속적인 조사연구, 교류사업의 성과와 축적을 기반으로 한다. 일회성의 블록버스터로 지형 변동을 꾀하는 여타 국제 비엔날레류 전시의 과감함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며,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지금’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아시아 각국의 미술전문가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번 FT5의 예술감독 역시 FAAM 사업관리부장이자 학예과장인 구로다 라이지(黒田雷児)가 맡았다. 그는 FT의 ‘새로움’을 강조한다. 먼저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작가 선정위원회를 폐지하고, 미술관 내부 협의를 통해 작가를 선정했다. 트리엔날레의 방향성과 성격을 보다 확고히 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구로다 라이지의 표현대로 갱신의 의지를 보여준다. 30여 년에 걸쳐 미술관이 축적한 방대한 자료, 정보는 물론 미술관의 지속적인 교류사업을 통해 구축한 전아시아에 걸친 인적 네트워크의 협력도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트리엔날레/비엔날레가 미술관의 미션, 컬렉션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국제적인 스타급 큐레이터나 예술감독 개인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통찰력에 크게 의존하는 여러 비엔날레 등을 비교대상으로 두고 보면, 서구 시각에 종속되는 오리엔탈리즘이 재생산될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 의지일 수도 있다. 또한 정치적, 전략적으로 제국의 시대 이후 아시아에 관한 한 해석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일본의 강한 자신감의 발로인 듯도 하다.
어쨌든 트리엔날레와 미술관의 깊은 관계 속에서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각국에서 전개되는 현대미술의 ‘가치’와 ‘의미’는 미술관적 조사연구와 교류의 지속성 속에서 전시되고 호명됨으로써 그 다양한 변주가 리얼한 무게를 갖게 될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트리엔날레, ‘어느 것이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도
FT5는 ‘열려있는’ 미래를 주목하면서 일상과 밀접한 시각문화예술 전반을 다루고 있다. 열려 있는 미래는 결코 이미지로서의 유토피아가 아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궁 같은 현실의 일상이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대회에 비해 작가성이 두드러지는 작가 개인보다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 등 대중에게 친근한 장르를 다루는 작가이거나 그룹, 또는 교류활동 자체를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예술개념의 정의 불가능성 논제가 ‘어느 것이나 예술이 될 수 있다(an open concept)’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는 미국의 미학자 모리스 와이츠(Morris Weitz)를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전시는 총 5개의 세부 범주로 구성되었다. ‘글로벌리즘의 끝에서(From the Far Corners of Globalism)’, ‘집단이라는 환상(Beyond the Collective Illusion)’, ‘일상 속의 소실점(Into the Dead Zone)’, ‘이미지의 연금술(Through Visual Trans-mutations)’, ‘멋진 신세계로(Towards a Brave World)’가 그것이다.
작품은 구분된 범주와 상관없이 전시 되었고《 트리엔날레 비주얼가이드 북》도 마찬가지로 편집되었다. 기획자들은 작품이 여러 내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자의 상상력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재해석을 기대한다고 하는데, 결국은 작품과 작품, 작품과 전시, 전시와 관객 사이의 해석적/이해적 관계망 구축에는 실패한 감이 없지 않다. 국가별 또는 주제에 따른 범주별 구분방식도 아닌 전시에서 결국 관객이 마주하는 건 작품 개별이거나 전시 전체이다.
국제전시에서 관객에게 작품 개별을 강조하는 경우, 흔히 그렇듯이 21개 국가 개별의 섬세하고 특정한 역사와 그로 인한 현재적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관객에겐 이번 트리엔날레가 선택한 46명의 작품을 대면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다는 인상이었다. 대중적 감각에 호소하는 시각문화 일반이라 하더라도 현실 속 우리의 일상은 그리 녹록하거나 만만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컨대, 국가와 민족, 전쟁과 이데올로기, 난민과 이민, 정치와 종교 등의 역사적, 사회사적 이슈가 이미지와 기억, 자연과 소멸, 관계 등의 일상성과 긴밀한 관계 속에 있는 문경원 전준호의 신작 <묘향산관>(2014), Studio Revolt, Sugano Masahiro, Kosal Khiev의 <Unite Us>(2013), Nguyen Trinh Thi의 <Landscape Series>(2013), Haider Ali Jan의 <Survival>(2010) 등등은 그 예다. 더군다나 이 작품 대부분이 시간을 요하는 영상작업이라는 점도 관람의 어려움을 더했다.
반면, 개별 작품이 아닌 전시 전체를 덩어리로 대면했을 경우, 관람객은 감각적으로 기획자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일본 FT5에서 호명된 각 나라의 시각예술은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관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이해와 오해의 가능성 사이에서 공명한다. 다소 과장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아시아에 관한 셀프-오리엔탈리제이션의 충동을 자극하거나 투어리즘의 변종 등을 생산할 위험도 다분하다. 올해 새롭게 설치한 특별전시에 소개된 <몽골화의 새로운 시대 : 전통에서 현대에로>의 대다수 작업과 Prilla Tania(인도네시아)의 <E(Japan)>(2014), Pema Tshering(부탄)의 <Sound of Time>(2010), The Maw Naing(미얀마)의 <Between the Pages>(2011), Muhammad Alinormin Hj Omarali(부르네이)의 <Life of a Pensioner>(2013), Lu Yang(상하이)의 <UlterusMan>(2013-14), Bu Hua(베이징)의 <The Last Phases of the Future>(2014), PHUNK(무국적)의 트리엔날레 포스터와 월페인팅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작업에도 근대적 이미지 속의 지역성이 강조되거나 일본의 망가나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SF적 요소가 눈에 띄었다. 물론 내용적 측면에서는 상이하지만 감각적으로는 기획자의 시각을 가늠케 하는 하나의 이미지 덩어리로 다가왔다.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질서의 변동과 경제발전을 토대로 아시아는 통합에의 전망을 품게 되었다. 그 통합의 실마리를 ‘미술’에서 찾는 FT5는 올해의 특징으로,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 전혀 소개된 바 없는 각국의 신진작가 소개에 중점을 두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던가. 이제 아시아의 모든 길(미술)이 후쿠오카로 통할 날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국제전람회로서 FT에 전시 이후 출품을 미술관에 컬렉션하는 등의 적극성도 대회와 미술관에 대한 신뢰를 배가된다.
FT나 미술관은 ‘아시아성’을 규정하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적 기제로서의 미술관과 전시라는 형식은 그것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호명, 전시, 출판되는 시스템 안에 배열되는 한 어느새 후쿠오카 초, 후쿠오카 발 ‘아시아다움’은 만들어 질 것이다.
‘몽골화’ 등 일반적인 미술개념의 기준으로는 소재도 기법도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작업과 ‘일본 대표’ 작가가 아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후쿠오카의 일러스트레이터 요시나가 고타쿠의 작업, 그리고 후쿠오카와 부산을 잇는 지역 간 네트워크 그룹인 WATAGATA Arts Network의 활동과 프로그램 등을 비중 있게 다루는 등의 선택은 분명 미술관을 기반한 갱신과 새로움에의 도전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과 활동의 성격들이 미학적 조형적 측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는데 올해 트리엔날레가 다시 되묻고 있는 질문, 즉 ‘예술/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나지 않는 반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계는 국제전으로서 30여년 이상에 걸쳐 지속적으로 아시아 미술을 조사, 연구, 수집, 데이터화해 온 FT가 이미 역사가 되고 있음에서 비롯된다. 어느새 5회 째의 후쿠오카초(初), 후쿠오카발(發) ‘아시아’의 역사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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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제5회 후쿠오카 아시아미술 트리엔날레 2014>예술감독 구로다 라이지(黒田雷児)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FAAM) 학예과장
“ ‘지역’의 문화와 그 사회에 기초한 표현을 주목했다”
FT는 다른 비엔날레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가?
아시아의 21개국・지역에서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작가를 선정한다. 이는 전지구화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 미술관 내부의 지속적인 조사에 기반을 둔 기획과 운영, 작품 수집에 있다. 이와 같은 전시 운영방식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번 FT5의 특징 중 하나는 신진작가를 대거 초청한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FT의 특징이다. 또 이전의 전람회와는 다른, 새로운 경향을 보여야 하는 것이 트리엔날레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FT4에서 FAAM 10주년과 맞물려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도 출품했다. 우리는 철저하게 로컬리즘에 기초한다. 후쿠오카의 지방성도 아시아의 지역성과 같은 무게로 존중한다.
FAAM과 FT가 표방하는 ‘아시아성’은 무엇인가?
공식 정의된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아시아성을 정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실천으로 탐구되고 실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성’이 아니라 ‘아시아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특정 아시아 지역의 문화·사회·역사를 아시아의 작가가 주체적으로 표현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FT5에 대한 내 인상은 상당 부분 팬시하고 망가적이었다.
젊은 작가의 만화적 애니메이션적 혹은 SF적인 작품이 이번 FT5에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주제로 삼지는 않았다. 일본 만화가 세계에서 인기를 모으는 거대 산업인 것은 맞지만, ‘만화=일본문화’ 식의 인식은 동아시아에서만 통용되고 있다. 실제로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미국 만화의 영향이 크다.
당신들 관점에서 ‘아시아’와 서양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구체적으로 어느 작품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흥미로운 의견이다. 왜냐하면, 완전히 정반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FT가 작품의 ‘무국적화’를 진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FT처럼 아시아의 전통예술 양식, 형식, 주제를 다룬 ‘전근대적’ 성격의 작품은 지양하고 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Prilla Tania는 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와 예능을 참조하여 국제미술계에서 평가 받는 작가와는 다르다. 서양과 아시아라는 이분법이 아닌 ‘지역’의 문화와 그 사회에 기초한 표현을 주목했다.
당신들이 보는 한국미술계의 특성은 무엇인가?
‘한국미술’ 아님 ‘한국미술계’? 잘 모르겠다. 다만 일본보다는 미술관 건축, 행정적 지원, 개인 컬렉터 같은 현대미술을 둘러싸고 큰돈이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이고 국제적 경험이 있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부쩍 늘었다.그러나 예술로서의 근원적인 충격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내외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과대평가를 받는 작가가 적지 않은데 특히 서구 경험이 있는 작가가 그렇다고 본다. 후쿠오카=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