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황규태

 

 

사진작가 황규태는 전통적인 사진어법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지난 40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전위적인 작업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7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황규태 개인전-사진 이후의 사진(Photography after Photography)>이 바로 그것. 이 전시에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대표작이 총망라되어 출품됐다.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

박상우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지난 40여 년 동안 제작된 황규태 사진 아카이브는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그의 수많은 이질적 사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인습(因習)과 현재의 안주(安住)를 넘어서려는 끈질긴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이다. 아방가르드는 사상, 예술, 과학, 기술 분야에서 과거의 인습과 단절하고 혁신 혹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혁신’ 혹은 ‘넘어섬’은 그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1960년대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사진예술에서 줄기차게 추구해온 문제의식이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느 범위를 넘으면 사진이 아니라고 할까. 사진은 사진이어야만 되는 것일까. 그 시절의 의문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DNA 분자들이다.”1
황규태도 1960년대에는 다른 사진가들처럼 스트레이트 사진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스타일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사진 스타일의 ‘한계’를 스스로에게 질문했으며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넘어서고자’ 했다. 그에게 기존 사진의 근본적 한계는 사진의 존재론적 특성(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그것이 존재했음’) 자체에서 비롯된다. 사진은 회화 및 언어와 달리 기호가 가리키는 대상(지시체)이 촬영순간에 임의적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카메라 앞에 존재해야 한다.2 사진의 이 같은 피할 수 없는 속성 때문에 사진가는 문학가나 화가와는 다른 예술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사진가는 카메라 앞에 있는 대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 사진은 실재(피사체)에 종속된 매우 독특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황규태는 사진의 이 같은 본질적 속성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부한다. ‘그것이 존재했음’이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매체를 사용하지만 사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 때문에 그는 사진의 근본적 속성을 벗어난 사진, 즉 시공간이 다른 곳에 위치했던 두 피사체를 한 장의 사진에 합성한 몽타주 사진 등 다양한 실험사진 혹은 메이킹(making) 포토를 시작했다: “메이킹 포토는 찍힐 대상이 있어야 하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3 황규태에게 예술은 결국 실재의 ‘복제’가 아니라 실재의 ‘변형’인 셈이다. 황규태의 예술론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사실과 실체를 훼손해놓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 제목인 <사진이후의 사진>은 작가가 기존의 사진 경향(‘앞의’ 사진)과 구별하여 자신의 사진(‘뒤의’ 사진)에 부여한 정체성 혹은 이름이다.
황규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서양미술사에서 시각언어가 가장 풍요롭게 탄생한 1920~3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구축주의)의 정신을 직접 이어받았다. 그 정신이란 기존 전통예술의 극복, 전위적 예술 추구,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허물기, 예술과 삶의 일치 등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당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새로운 미술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실험했던 다양한 사진기법 – 포토몽타주, 이중노출, 필름 태우기(버닝), 차용, 왜곡, 과학사진(현미경사진, 천체사진, 항공사진, 엑스레이사진) 등 – 을 자신의 사진에 도입했다.
컴퓨터 모니터, TV 화면에 사진을 띄워놓고 확대 촬영한 황규태의 ‘픽셀 시리즈’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경탄했던 현미경사진의 일종이다. 무한히 작은 것(혹은 무한히 큰 것)에 다가가려는 황규태의 욕망은 인간 눈의 지각능력을 넘어선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확대 도구(접사렌즈, 포토샵 등)를 이용하여 생리학적 시각도구로는 다다를 수 없는 미시세계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무한히 작은 세계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미적 세계(색, 형태, 패턴)의 비밀을 드러낸다. 황규태의 픽셀 사진은 심오한 철학 얘기 – 사진의 본질은 점 혹은 픽셀이라는 존재론적 담론 – 를 담고 있지 않다. 그는 대신 확대의 즐거움, 즉 가벼운 마음으로 무심코 무언가를 확대했을 때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것은 작가의 표현대로 그냥 ‘비트 놀이’ 혹은 ‘장난’이다. 문방구에서 구입한 점(點) 스티커를 크게 확대한 이미지가 모니터의 픽셀과 유사한 패턴을 보일 때 그는 거기에서 발견의 기쁨을 느낀다. 관객은 자신 앞에 걸려있는 질서정연하고 품격 있는 커다란 추상화가 사실은 작고 하찮은 스티커를 확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작은 충격을 받는다. ‘그냥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지식의 개입)’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가 주는 매력이 황규태가 노리는 점이다.
필름을 태워 만든 버노그래피(burnography)는 황규태가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의 슬라이드 현상소에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실험사진의 하나이다. 이 기법은 미술사에서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인 라울 위박(Raoul Ubac)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위박에 따르면 필름에 열을 가하면 필름이 변형되는데 이 변형은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최종이미지는 초현실주의가 선호하는 우연의 미(위박의 표현대로 ‘신의 우연’)를 달성할 수 있다. 황규태는 위박의 존재를 몰랐다고 필자에게 말했다.4 자신 앞에 누가 있는 줄 모르고 새로운 사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우연히도 미술사, 사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아방가르드 실험사진의 한 기법을 발견했다. 그는 필름 태우기 기법을 초현실주의 맥락과 완전히 다르게 우주적인 묵시록(녹아 흘러내리는 태양), 인류의 재앙과 종말(지진, 원자탄 투하, 비행기 추락) 등 자신의 방식대로 다소 우울한 시선에 연결시킨다.
두 장 이상의 사진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려 한 장의 사진에 붙이거나(포토몽타주), 두 장 이상의 필름을 겹쳐서 인화하는 방법(이중인화, 다중노출)은 황규태 사진에 가장 많이 나타난 기법이다. 이것의 기원 역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사조에서 비롯되었다. 포토몽타주5 기법은 각 아방가르드 사조의 미학적 의도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사용되었다. 다다이즘은 포토몽타주를 기존 예술가치의 비판/전복의 도구로, 구축주의는 건설과 생산의 도구로,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표현적 도구로 사용했다. 황규태의 포토몽타주는 전반적으로 초현실주의적 경향에 가장 가깝다. 1660년대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특히 제리 율스만)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황규태의 초기 몽타주를 보면 초현실주의 사진과 초현실주의 회화(르네 마그리트)의 특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예컨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의 병치(마천루와 인간의 눈, 자동차 안의 두 눈, 대도시와 호모 에렉투스), 사물들의 크기의 역전(마천루보다 더 큰 인간의 눈, 해변에 떠 있는 거대한 입술)은 정확히 1930년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즐겨 쓰던 기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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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후 사진’의 증거
황규태는 사진을 직접 촬영하지만 타인의 사진을 차용한 경우도 많다. 만 레이의 키키 사진(예술사진), 마더 테레사의 임종 사진(보도사진), 태아 사진(과학사진), 바닷속 태아 사진(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진) 등, 그는 소위 예술/비예술 분야에서 나온 모든 영역의 사진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차용, 인용, 모방, 패러디 전략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기법들은 20세기 초 다다이즘의 전형적인 예술 전략이고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다시 사용한 것이다. 예컨대 1919년 이미 존재한 사진(모나리자 엽서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뒤샹의 전략은 차용 기법의 본보기이다. 황규태는 “나의 인용, 레디메이드 기법은 뒤샹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며 다다이즘에 빚지고 있음을 필자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이처럼 아방가르드 사조에 발을 굳게 디디고 있는 그는 “[남의 사진의] 카피와 [내가 직접] 찍음의 차이를 구분함이 무의미하다”6며 자신의 ‘카피’ 전략에 대해 명확히 밝혔다.
황규태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이처럼 그가 전위적인 실험기법을 채택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미술사에서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사회, 시대, 삶과 유리되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항상 발언을 해왔다. 황규태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고 이를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환경 문제(달과 물고기 뼈, 성조기 위의 플라스틱 폐기물), 핵문제(원자탄이 떨어진 도시), 생명공학 문제(공장에서 대량 복제된 아이와 여자, 눈 코 입을 바꿀 수 있는 성형기술,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유전자, 염기서열, 변이생명체) 등 그는 우리 시대의 키워드에 대해 줄곧 작품으로 응답해왔다.
황규태 사진은 이처럼 아방가르드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태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전통적인 미학범주(아름다움, 조화, 질서, 균형)를 전복하고자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반(反)미학적이다. 하지만 황규태 사진은 철저히 ‘탐미적’이다. 그는 다른 아방가르드 작가들처럼 새로운 형식의 사진을 끊임없이 실험해왔지만 그가 진정으로 주목한 것은 사진의 실험보다도 사진이 제공하는 시각적 ‘즐거움’이다. 한 장의 사진이 내용의 관점에서 아무리 새롭고 흥미로울지라도 시각적으로 ‘와 닿지’ 않으면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과학사진/현미경사진의 코드를 이용한 그의 픽셀사진에서 핵심은 미시세계의 들춰냄(이것은 과학자의 욕망)이 아니라 미시세계의 아름다움, 그의 표현대로 ‘컬러의 하모니’7 혹은 ‘컬러의 놀이’이다. 그는 또한 루페(확대경)로 들여다 본 TV 화면에 나타난 픽셀의 현란한 색의 잔치에 감탄하기도 한다.8 세계 만국기 200여장을 섞어 놓은 <멀팅 팟>에서도 작가는 지구촌, 다문화 현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그가 더 관심을 둔 것은 만국기를 섞어놓았을 때 “예상 못했던 현란한 색들의 파편[의] 난무”9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철저한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라 할 수 있다.
환경문제, 인류의 종말, 우주의 묵시록 등 어두운 주제를 다룬 작품들에서도 사진 이미지 자체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이다. 단순한 형태와 두세 가지 색만을 사용한 미니멀리즘적인 경향(검정색 바탕에 녹아내리는 빨간 태양)은 우주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내용과 상관없이 보는 이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 같은 탐미적 경향은 한강을 초망원렌즈로 촬영한 다음 수많은 조각사진으로 몽타주한 <한강컬렉션>, 그리고 꽃들의 잔치를 펼쳐놓은 <꽃 시리즈>에서 더욱 강화된다. 이 작품들은 인류의 재앙을 다뤘던 동일한 작가가 제작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전위적인 동시에 탐미적인 황규태 사진은 더 나아가 ‘감성적’이기도 하다. 해변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키스하는 역광 사진에서 그는 “[당시] 나는 역광사진에 매료되었다.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감성에 빠져있었다”10며 사진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 태도를 밝힌다. 작가는 또한 자신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떠오르거나 지는 거대한 붉은 태양을 마주하면 걷잡을 수 없이 흥분되거나 가슴이 벅차올라 거의 카타르시스 상태에 빠진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심지어 환경유해물 생산 공장과 같은 ‘차가운’ 소재를 마주할 때도 지성보다는 감성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생 전체가 ‘안타까움 자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황규태 사진에 숨어있는 복잡한 의미의 지층들을 드러내려는 작업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그의 사진들 안에는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이질적 범주들 – 과학기술, 실험정신, 미래, 전위, 암울함, 시각적 즐거움, 놀이, 장난, 그리고 감상적 태도 – 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규태의 정체성을 규정하자면 ‘탐미적 아방가르드 작가’ 혹은 ‘유쾌한 아방가르드 작가’이지 않을까. 왜냐면 그의 사진은 언제나 즐거움, 미, 실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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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규태, 《황규태》, 열화당, 2005, p. 18
2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 Note sur la photographie, Gallimard, Seuil, 1980, p. 120
3 황규태, 앞의 책
4 황규태는 자신의 이 독특한 기법이 사진 역사에서 “내가 처음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규태, 앞의 책, p. 30
5 이중인화, 다중노출도 넓은 의미에서 포토몽타주에 속한다
6 황규태, 앞의 책, p. 134
7 <비트 놀이>(1999)에 대한 작가의 작품 해설
8 “나는 궁금증이 많다. 필름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루페로 TV화면을 들여다보니 픽셀이 질서정연한 원자 알갱이처럼 현란한 색을 이루고 있다.” <티 비 픽셀 오-화이트>(2010) 작품 해설
9 <픽셀 픽시>(2010) 작품 해설
10 황규태, 앞의 책, p. 70

황규태는 1938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사진기자(1963~1965), 미주동아일보 대표(1984~1992)를 역임했다. 1973년 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전 이후 15회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한국민속촌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아트선재아트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Artist Review] 김선형

블루수묵화, 감각으로 밀고 나가기

지천명의 나이를 갓 넘긴 작가의 51번째 개인전이라 하면 누구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선형의 푸르디푸른 화면을 직접 본다면 그의 “두서없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심정의 전환에 따라 나타나는 심상”이라는 평가에 동의할 것이고, 그것이 왕성한 작품 제작의 바탕임을 수긍할 것이다. 김선형의 파란 정원에서 동양의 수묵과 서구 현대미술의 조우를 목도한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김선형은 수묵 대신에 청색 안료와 미디엄을 구사해 단색조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린다. 여전히 모필과 물의 농담에 의한 변화를 극대화해서 수묵의 맛을 유지하는데 먹 대신 쓰인 청색 안료는 청화백자 같은 그 푸르른 맛을 가득 껴안고 있다. <Garden Blue>이란 제목이 언급하듯 화면은 자연, 숲의 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결국 그는 수묵화와 산수화, 서예(선) 등을 결합해내고 한편으로는 청화백자의 미감과 선비들의 문기(文氣) 짙은 취향과 격을 끌어안으면서 그러한 전통과의 깊은 교호나 공감을 지향하는 ‘현대적인’ 그림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이전 스승, 선배 작가들과는 다른 문화적 체험을 한 세대다. 그야말로 울트라모던, 포스트모던의 세례를 받은 감각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층이 교접하고 엇갈리면서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기이한 청색 수묵화이자 감각적인 수묵 추상작업이며 기의를 상실한 초서적인 추상에 가깝다. 이른바 한국의 전통미술 혹은 문화를 자기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전통의 정신과 격을 존중하나 그 문화적 실체감은 부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감각적으로 근접하는 전통문화의 오마주에 해당한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예외 없이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현재적 정체성의 의미를 모색해왔다. 이는 현재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전통적 환원이라는 방법론에 기초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과 결합을 매끄럽게 파악하고 있다는 단점이 자리한다. 과연 그러한 만남과 조화는 가능할까? 사실 ‘전통’이란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평가된 과거(전통이란 현재의 산물)이기에 전통과 현재가 만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전통이란 것이 정신이나 영혼, 민족성 같은 허깨비가 아니라 박물관, 교육제도, 평가, 역사기술의 제도 등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현재라는 시간을 메우고 있는 그 제도들 밖에서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전통이란 보존되고 전승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고안된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전통이란 이 시대의 여러 가치관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가 과거에 대해 덧씌운 프레임이다. 과거는 전적으로 현재의 산물이란 얘기다. 따라서 문제는 현재의 관점에서 그 전통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이다. 그간 우리의 동양화는 전통과 서구에서 받아들인 현대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도모해야 하는 운명을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그 사이에서 모종의 틈과 가능성, 균열을 모색했던 것이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초상일 것이다. 김선형의 그림 역시 전통과 현대의 연결, 접목과 해석이란 과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조선 문인들의 멋과 격을 동경하고 고미술에 담긴 절묘함과 소박미도 헤아리고 있다. 동시에 수묵화의 당위성에 타피에스나 황창배, 나아가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경향과 스타일을 두루 체득하면서 이 모두를 결합해낸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Garden Blue>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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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文氣) 흐르는 추상의 시도
그래서 그는 자연/숲(생명)을 소재로 그린다. 청화백자의 꽃문양이나 민화를 차용한다. 그 기운을 어떻게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체험과 물성을 통해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한지와 천, 안료와 물, 붓의 사용은 당연하지만 검정의 먹 대신 감각적인 블루 색을 대신했다. 여기에는 문인화적 멋과 운치, 그리고 한국적인 그림, 전통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Garden Blue>의 경우, 유기체로서의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기운을 푸른 색감과 자유로운 필획으로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숲을 그린 것이 아니라, 숲으로 대변되는 존재를 개념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숲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숲, 그 숲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흐름인데 이는 자기의 뜻을 자연물에 의탁하는 문인화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형태와 닮음을 구하지 않고 생동하는 기운을 찾는다. 만물은 영기(靈氣)의 화신이므로, 만물이 영기를 발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화가의 몫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만의 필법, 골법을 만든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그는 아크릴, 안료와 석채, 미디엄을 섞고 이를 물과 함께 해 인위적으로 마름을 조절한다. 선묘처리를 한 바탕 위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뒤 촉촉한 상태에서 스퀴즈로 물기를 밀어내는 방법 등을 구사하는데 이때 물이 밀려나가면서 다른 부분과 접촉점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톤을 유지하게 된다. 김선형은 동양화의 수묵화를 이루는 재료들, 매재적 속성을 최대한 순리에 따라 화면 위에 얹혀놓았다.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순리와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동양화는 침윤하기 쉬운 먹과 색을 부드러운 모필을 먹여서 침윤하기 좋은 종이 위에다 그리는 것이므로 지극히 우연적인 수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위로, 작위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연히 가져오는 기법을 필연으로 이용해서 그리는 게 동양화 수법의 전통이다. 그림 역시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무위적인 것이다. 그는 한지의 물성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한지는 무엇보다도 그 흡수성 때문에 평면에서도 깊이와 부피를 포용하는 신축성 있는 재료이다. 먹이 번진 한지는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이를테면 소수 차원의 프랙탈 공간이며 생성하고 변화하는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 무척 동양적인 세계관, 우주관을 가시화한다. 물의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그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동양의 먹그림이란 결국 물의 흔적, 자취, 경로, 흐름 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수묵은 필법에 묵법으로, 궁극적으로는 수법(물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몇 가지 안료를 섞어 만든 푸른색의 물감을 장봉에 묻혀 한지 위로 직입하는 그의 작업은 붓을 대는 장력과 화선지의 반발, 그리고 물감의 물성이 순간적인 필획으로 만나 묶여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붓 자체, 선이나 색, 물, 종이의 물성을 만나는 일”(강선학)이다. 무엇보다도 화면은 필획의 흔적들로 이루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그리기, 붓의 놀림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자동기술적인 선은 직관적으로 나아간다. 그는 대충 생각하고 곧바로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한다. “그의 두서없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변화무쌍한 심정의 전환에 따라 나타나는 심상”(김백균)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나 장식적인 선, 몇  가지 도상이 반복해서 출몰한다. 거의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붓놀림의 흔적이고 그것으로 충족한 화면이면서도 유사한 패턴들로 마감되는 장식이 있다. 어떤 것을 그리고 나타내려고 한 것이기보다 순수한 선과 점의 자동적인 기술의 흔적에 불과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선들은 나무와 풀, 꽃과 새, 그리고 상징적인 도상의 꼴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의 붓질은 구상과 추상 사이, 선과 도상 사이에서 진동한다. 붓질, 붓의 놀림들만이 전면적으로 화면에 가득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필력에 의존한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그 붓질, 선은 무척 골법적이다. 골법이란 형체의 기본형 및 그 형체 안에 갖추고 있는 감정을 뜻한다. 그런데 형체의 근원이자 형체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기(氣)다. 이 붓질은 자연풍경을 암시하는 듯하면서도 기의 표출이고 흔적이 된다. 한편 붓질이란 다름 아닌 작가의 신체적 행위의 기록인 셈이다. 붓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신체의 굴곡과 이동, 움직임, 호흡, 떨림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는 수묵화의 뼈대인 필을 통해 수묵의 정신을 육화해내는 조형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서구 현대미술을 동양화 재료와 정신으로 접목하고자 한다.
화면은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종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물과 먹/청색 안료의 운용만이 보일 뿐이다. 여기서 청색의 의미는 아침이 시작될 때의 푸르름으로 여명, 시종의 상징적 색이자 윤회의 색이다. 그리고 어둠과 밤 사이에 있는 색, 공기의 색이기도 하다. 더불어 청색물감은 먹보다는 물성이 적극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청색은 청화백자의 푸른 빛깔을 연상시킨다. 맑고 청아하다.
“슬픔과 희망의 빛을 함축한 푸른색의 선을 긋고 점을 찍어 나가는 나의 그리기는 내 안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나를 정리하는 동시에 나를 정화한다. 기쁨을 채우고 묵은 슬픔을 지워나가며 내 삶을 그려낸다…. 내게 있어서 시공의 경계적이고 인생의 시작이며 끝점의 색…. 생멸 자연의 근본색이며 인간 삶의 운용을 다스리는 기운의 색이다”(작가노트)
김선형은 이른바 문기에서 나오는 추상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는 동양화가 현대회화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 인식 아래 가능하다. 그러한 인식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고암이나 산정, 남천 등이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그는 한국적인 정서, 한국인으로서의 그림을 의식적으로 추구한다. 동양화가 해낼 수 있는 여러 가능성과 매력, 의미를 열어놓고자 한다. 특히나 조선이 가졌던 문인의 소박하고 담백하며 격이 있던 미감, 우아하고 점잖은 문화를 추구하는 그는 문인적 모습을 동경하며 긋고 찍고 툭툭 던지듯이 그린다. 김선형의 그림은 문인화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간결과 절제의 정신적인 격조를 띤 것, 선묘 자체가 생동하는 기능을 지닌 그림의 동경으로 보인다. 동양화 고유의 표현기법을 회복시키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감각’으로 밀고 나가고자 한다. 문제는 그 감각이 얼마만큼 지속적이며 정체되지 않고 밀고 나가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울러 문기 있는 그림의 실현이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점도 문제다. 심정적인 공감이나 코스튬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텐데, 더구나 지금 우리는 그 문화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 있기에 어떠한 체득이 가능할지는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다. 그것을 감각으로 내포하기에는 어림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김선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하여 국내외에서 51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국립경인교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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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Review] 염성순

미로화된 욕망의 회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하는 것들. 그러나 미묘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의 차이.이는 작가 염성순의 작품에 보이는 세계이다. 최근 갤러리 담에서 열린 작가의 전시 〈털〉(7.9~22)은 털끝만큼의 미세한 차이의 경계를 넘는 작가만의 방법을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의 몸을 통해 주체를 탐구하며 반복되는 경계넘기를 시도하는 작가를 지금 만나보자.

이선영  미술비평

염성순의 최근 전시 <털-심층의 표면에서 생긴 일>은 본질과 현상, 내부와 외부, 정신과 물질 등으로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실재로서의 몸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표현한다. 복잡 미묘한 과정에서 생성된 풍부한 색감, 그것에 실린 유동적이고 유기체적인 형태는 염성순 그림의 특징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신체의 일부인 ‘털(hair)’을 특정하고, 남성과 여성의 성기관이 등장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꾀한다. 붓과 자신을 일체화한 삶 이래, 모호하고 추상적이기보다는 더 분명하고 특수한 양상을 띠는 작품에서 진정한 진보를 발견한다. 그것은 선택된 일부에도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역량이며, 반복 속에 차이를 주는 방식이다. 어떤 경계를 뚫고 나오는 털은 유연하면서도 강력하다. 털은 때가 되어 경계를 파열하는 필연적인 힘이지만, 그 목적과 방향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붓의 털끝에서 나오는 이 산물은 생명은 물론 작업의 기제를 알려준다. 작가는 생명을 이루는 이런저런 물질에서 생명체로의 도약, 작업을 이루는 이런저런 요소에서 작품으로의 도약을 촉구하고 그것을 기다린다. 경계란 곧장 경계 넘기를 예기한다. 경계 넘기가 가능한 힘은 말 그대로 털끝만큼의 미세한 차이일 수 있다. 필생의 업으로 그림 그리기를 선택한 이에게도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매순간의 도전과 그 도전의 연속이 바로 작품이다.
작업이란 늘상 작업자를 어떤 경계까지 몰아붙이는 흥미진진하고도 위험한 게임임을 염두에 둘 때, 털은 피상적인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포괄하고 내포하는 바는 풍부하다. 이 전시에서 털은 인간의 특징인 머리털을 제외한 체모로, 인간보다 더 근저에 있는 동물성과 닿아있다. 작품〈   털〉은 방향을 달리하면 대지 안팎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과정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엉덩이 라인은 둔덕이 되고 털은 식물이 되며 그 바깥은 노을 지는 하늘처럼 말이다. 몸은 화면 가득 펼쳐진 풍경(bodyscape)이 된다. 움푹 패이고 텅 빈 부분이 있는 등, 밀도와 강도는 부분마다 다르다. 동식물을 구별할 수 없는 형태에 생기다만 것들, 막 생긴 것들, 밖으로 터져 나가는 것들이 공존하며, 이러한 시간성에 의해 정지된 화면은 잠재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작품〈  털이 좋아〉는 알 속의 상황인데 이미 유동체를 넘어서 털로 뒤덮인 단계에 이르렀지만, 바깥을 두려워하는 표정과 몸짓이 역력하다. 알을 깨고 나갈 두려움 때문에 모체 속의 아이는 이미 폭삭 늙어버렸다. 〈  털이 좋아〉와 같은 크기의 짝으로 제작된 〈   알에서 나오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바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삶은 냉혹하게 시작된다. 〈   알에서 나오다〉는 모호한 형상에 의해 시간과 그에 따른 인과적 순서가 교란된다.
엉덩이로 추정되는 선 사이의 형상은 태아보다는 남근을 닮았다. 화면 왼쪽 아래에 아이 머리를 한 형상이 육체의 심연 속에서 바깥을 향해 떠있으며, 나오는 중인지 들어가는 중인지 불확실한 상황이 그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안과 밖의 경계가 느슨한 채 출렁거리는 모체는 점점이 뿌려진 색채의 입자와 더불어 생명의 율동으로 충전된다. 성(性)은 모호하지만, 비교적 명확한 해부학적 형태 위에 뭉침이나 확산 같은 힘의 분포가 두드러진 작품〈   몸〉과〈  엉덩이〉는 물질과 에너지의 상호교환이 활발하다. 뭉쳐진 피톨이나 예민한 신경망의 밀집은 심신을 동시에 활성화한다. 작품〈   끓는 남자〉, 〈    통증〉, 〈  우는 남자〉, 〈    쓸쓸한 남자〉에는 남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털이 남성에게 좀 더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털 전>은 여성의 관점으로 본 (남성적) 욕망의 모습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여기에서 남성의 곧추 선 욕망에 가득한 고독과 고통은 숨길 수 없다. 그림 속의 남근은 지배적 질서에 군림하는 위풍당당한 기표(Phallus)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거기에는 거듭 좌절될 수밖에 없는 출구 없는 욕망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   숲〉과〈  꽃숲〉으로 나타나는 여성화된 풍경은 하나의 성 기관에 밀집된 욕망이 아니라, 다형적(polymorpho usly)이다. 다형적 성은 성도착자의 성이기보다는 유아에게 보편적이며 여성적인 성욕으로 알려져 있다.
타자가 된 주체
작품〈  여성 속 남자〉는 거세된 존재로서 부재나 결핍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양성을 포괄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이며, 같은 크기의 작품〈  초록색 털〉은 모체 속 개체를 초록빛 자연과 일치시킨다.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전능한 모체 속에서 바깥을 두려워하는 작품〈  털이 좋아〉는 털 자체는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부드러운 보호막으로서의 모체를 연상시킨다. 이 모태적 시공 속에는 생멸하는 존재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자궁으로부터 집까지 여성의 영역은 육체적, 물질적,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소이다. 그러나 모성천국에 대한 생각은 일방적일 수 있다. 품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는 고달프다. 여성은 모성을 단지 아이를 안고 있는 무성(無性)의 천사 같은 존재로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권력관계로 점철된 인간사의 사회적 모순을 편리하게 해결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한쪽 성에 자연적 조화와 통일을 기대하면서 영원한 휴식처를 갈구하는 것이다. 비역사적 타자로서의 그녀는 선천적으로 갖추어야 할 미덕이 기대되지만, 이러한 숭고한 가치는 곧잘 아전인수적으로 왜곡된다. 여성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인류를 낳는 존재이기에 굳이 예술이나 과학을 비롯한 창조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편협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꼭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이에게 적반하장으로 가해지는 불리한 조건은 여성, 예술가, 노동자의 존재에서 선명하다.
그들은 다수이면서도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다수적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창조하고 생산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기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주체 내부의 타자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여전히 성(욕)을 남성 중심적으로 이해했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거세된 듯 보이는 여성의 성 기관, 나아가 여성의 공간으로 간주된 집을 기괴함(unheimliche)의 원천으로 여겼다. (여성적)기괴함은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가장 일상적인 것 속에서 발견되는 비일상적인 감정은 경계 위에 있는 것이며, 금기와 위반, 정상과 이상, 성스러움과 혐오스러움 같은 상반되는 가치를 넘나든다. 그것은 크리스테바가 개념화한 ‘탈중심화된 주체(decentered subject)’와 ‘이행 대상(transi- tional object)’과 밀접하다. 경계를 뚫고 흘러내리는 것들은 육체적 차원에서든 심리적 차원에서든 제어되어야 할 금기지만, 동시에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준다. 한계를 뚫고 터져 나오는 체액들은 오염과 정화를 동시에 야기한다. 가로질러지기 위해서만 설정된 경계 위에서 털은 다양한 은유로 확장된다. ‘어브젝션(abjection)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가진 크리스테바의《  공포의 힘》에 의하면, 비체(abjection, 卑體)는 경계상에 있는 것,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비체는 애매모호하며, 어중간하며, 복합적이다.
비체는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라, 경계와의 관계이며 경계지역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그것은 구분 자체를 위협함으로써 정체성을 교란시킨다. 원형적 비체의 체험은 출생, 즉 염성순의 작품에도 선명한 출산의 이미지이다. 인간은 배설물 사이에서 태어난다. 배설물은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별하는 질서에 의해 분류되고 관리되지만, 여전히 위협적이다. 가령 모성적 용기(容器)는 개체를 다시 빨아들일 수도 있는 두려운 것이다. 주체화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독립되지 못하면 비체에 삼켜진다. 염성순의 작품〈  여성 속의 남자〉에도 욕망과 삼키는 것의 관계가 나타난다. 탄생과 양육과 보호를 암시하는 자궁은 동시에 탐욕스러운 육식성 질(carnivorous vagina)이기도 하다. 욕망과 죽음은 한 몸의 두 얼굴일 것이다. 작품〈   알에서 나오다〉에서 몸의 실루엣과 체내의 상황이 공존하는데, 여기에는 어머니와의 태곳적 관계를 떠오르게 하는 태반의 이미지가 발견된다. 제 몸에 타자를 품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관은 창조활동에 대한 오랜 비유의 터전이었다. 모체로부터의 분리는 육체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상징적) 차원으로 이어진다.
모태로부터의 분리와 부성적 상징의 일체화로 압축될 수 있는 개체화(주체화) 과정은 소외의 연속이며 험난한 과정이다. 막 나온 태아보다는 남근처럼 보이는 모호한 형상은 나온 곳으로 들어가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것은 (성적) 욕망과 죽음의 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예술적 창조 역시 늘 가까이에 있는 죽음과 더불어 채울 수 없는 욕망을 갈구하는 행위일 것이다. 염성순의 작품에 줄곧 나타나는 부글거리고 뭉글거리며 생성 소멸하는 유동적 형태는 경계를 넘기 위해서만 경계를 설정하며, ‘털’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직선적 요소는 2008년에 이상과 서정주의 시(詩)세계를 주제로 한 개인전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가 이번 전시에서도〈  여성 속 남자〉와〈  초록색 털〉에서 발견되지만, 여전히 곡선적 요소가 압도적이다. 곡선적 요소는 계속 출렁거리면서 무엇이 되든 자연발생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염성순을 뛰어난 색채화가라고 규정해도 될 법한 이름붙일 수 없는 색채의 구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작업 과정에서의 이러한 예측불가성은 환희이자 고통이다. 양자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 예술은 자신으로부터 나왔음에도 낯설다. 작품이란 동일자의 복제도 분신도 아니다. 그것은 타자이다.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자신 속에 타자를 품는 모성처럼 그렇게 타자와 조우하는 것이다. 무엇이 생겨날지 가늠할 수 없는 화폭은 타자를 품고 있는 모체에 근접한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자율적 개인이라는 인본주의적 이상만큼 염성순의 작품과 멀리 떨어진 것은 없다. 몸 자체가 동일자적 이성에 의해 타자로 간주되어왔다. 몸은 계층적으로 잘 질서 지워진 조직화된 유기체가 아니다. 그것은 ‘속도와 강도로서의 표면’, 즉 ‘기관 없는 몸’(들뢰즈와 가타리)이다. 염성순의 작품은 발생하는 배아의 이미지로 가득한데, 기관 없는 몸의 대표적인 예는 기능으로 성충이 되기 이전의 알(卵)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  천개의 고원》에서 인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구속하는 세 개의 지층으로 유기체, 의미생성, 주체화를 든다. 저자들에 의하면 기관 없는 몸으로 유기체를 해체하는 것은 탈영토화를 향해 몸체를 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과 예술은 ‘욕망들의 연결접속, 흐름들의 접합접속, 강렬함들의 연속체’로서 진정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이번 전시는 그 어느때보다도 기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비율과 맥락과 의미가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몸체에 충전된 강렬함은 계층화된 모든 형식을 변형시킨다. 유동적인 색채와 형태는 바로 끝없이 변신 중인 주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패임이나 구멍, 흩뿌려짐 등으로 나타난 수수께끼 같은 공간 역시 주체 내부의 거대한 미지의 공간들을 암시한다. 이곳에 타자가 또는 타자와 접속할 수 있는 장이다. 예술이란 결코 변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진실을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없이는 결코 고정시킬 수 없는 끝없는 변화의 흐름을 순간적이나마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

염성순은 1961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베르사유 미대에서 수학했다. 1994년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10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일민미술관, 제주항 여객터미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 담 개인전 광경.  왼쪽·〈알에서 나오다〉 캔버스에 아크릴162×162cm 2014 오른쪽·〈털이 좋아〉 캔버스에 아크릴 162×162cm 2014

갤러리 담 개인전 광경. 왼쪽·〈알에서 나오다〉 캔버스에 아크릴162×162cm 2014 오른쪽·〈털이 좋아〉 캔버스에 아크릴 162×162cm 2014

 

 

[Review]홍승혜 – 회상

홍승혜  __  회상

국제갤러리 7.10~8.17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한 편의 소네트를 썼다. 한 편의 소네트를 쓴 후  “지난번 소네트를 끝내고 나니, 나는 또 시를 쓰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며 다른 한 편을 쓰게 되었고, 이어서 또 한 편을 썼다. 단테가 시를 쓰게 된 애초의 동기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이었다면 그 다음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소재, 적어도 그 일부는, 자신의 시 자체였을 것이다. 홍승혜의 개인전 <회상>이 열리는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발밑에 나지막하게 작은 글자 조각들이 서있다. M.O.R.E. 잠깐 웃음이 터지는데, 일단 ‘미니멀’한 기하학과 상충하는 단어인데다가, 단테 같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채 ‘더, 더’를 조용히 되뇌고 있는 듯해서다.
<회상>은 홍승혜의 과거 개인전들을 모태로 한다. <유기적 기하학> (1997) (2000), <복선을 넘어서>(2004)(2006), <파편>(2008), <온 앤 오프(On & Off)>(2008), <음악의 헌정>(2009), <프레임의 모든 것>(2010) 등의 전시에서 몇 작품씩 뽑아 크기와 재료를 달리하고 그레이스케일로 처리했다. 회고전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고전 형식을 빌린 신작 전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홍승혜는 그동안 자신의 이전 작업에서 모티프를 따오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써왔다. 미술이 아름다움의 재현이란 사명에 치중하지 않게 된 이후 현대미술가들은 줄곧 다른 작가의 작업들 또는 자신의 작업을 새로운 작업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아왔는데, 홍승혜는 이를 의식적인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상이라는 복고적이고 온건한 간판을 내건 그녀의 좀 더 급진적인 제스처다.
이번 전시의 제목 <회상(reminiscence)>을 보자. ‘reminisce’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 recollect(역시 ‘회상하다’라는 의미) + 어떤 정서이다. 예를 들어 미소와 함께, 또는 향수 어린 마음으로 과거를 돌이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시에서 어떤 정서가 느껴진다면 그건 홍승혜가 그런 정서를 표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음악적’ 방법론으로 인한 어떤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은 홍승혜의 오랜 관심의 대상이고, 반복과 변주는 그녀의 조형적 방법론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영상작업 <센티멘탈> 연작 중 6편을 추려 흑백으로 변형한 후 설치한 대규모 영상작업 <6성 리체르카레>는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절정에 해당하는 6성 푸가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홍승혜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돌이켜 보고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인간의 기억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능동적인 것이다. 과거의 일을 변형시키고 삭제하고 수정한다. 그리고 프레임을 부여한다. 즉 회상은 형체가 없는 과거라는 무정형의 덩어리에 프레임을 주어 잠시 고정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현재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 위치시킨 후 응시한다. 결국 회상의 목적과 결과는 모두 응시이다. 홍승혜는 <회상>에서 음악적 방법론으로 변용하고 프레임을 준 이전 작업을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작업으로 위치시킨다. 이 중 몇 작업은 기시감과 낯섦을 사이를 오가게 하며 먹먹한 응시를 낳는데 서랍을 연상시키던 평면작업에서 서랍으로 태어난 한 쌍의 <춤추는 서랍>은 움직이던 뭔가가 얼어붙듯 멈추었을 때의 기이한 정적을 자아내며 시선을 붙든다. 붉은색이 사라져버린, 날개를 단 듯한 <온 앤 오프>는 공중에서 연상과는 무관한 일루전을 자아낸다. 아직 관객이 들지 않은 어느 아침, <6성 리체르카레>에서 군무하는 6개의 영상은 그 사이 어딘가 어둠 속으로의 응시를 낳는다. ‘센티멘탈’의 회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없는 깊고 오랜, 그러나 낯선 풍경 속으로 전치되는 듯하다. 이 느낌은 ‘센티멘탈’이 아니라 ‘서블라임(sublime)’에 가깝다.

박상미・Thomas Park 갤러리 대표

[Review]가면의 고백

가면의 고백

서울대학교미술관 7.10~9.14

“사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차마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살까지 파고든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미시마 유키오
미디어시대에 고백의 의미를 짚어보는 <가면의 고백전>은 시작부터 다소 도발적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내는 ‘나’의 고백은 너무나도 유희적이고 가벼우며 공격적이다.” 혹은 “미디어시대의 고백은 진실한 내면은 감춰두고, 매끈하게 정돈된 모습만을 보여준다”라는 지적은 SNS 유저가 아닐지라도 전시장을 도는 내내 뜨끔거리게 만든다.
전시는 네 개의 섹션(프롤로그,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 ‘고백을 엿보는 자’, 에필로그)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앙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이 걸린 작은 방이 위치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치듯 가운데에 웅크린 채로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거미 형상을 한 그녀의 대표작 <마망>을 떠올리게 한다. “전제군주”와도 같았던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 자신의 상처와 대면한 자전적인 작업은 ‘고백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그녀가 유년기의 상처를 자신의 옷과 사용하던 천을 잘라 아름다운 문양으로 풀어냈다면, 정문경은 누구나 귀엽다고 인정하는 천 인형을 뒤집어서 바느질의 너덜너덜한 부분을 내보인다. 단지 안팎만 뒤집었을 뿐인데 푸우와 도널드 덕은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기괴하다. 만약 누군가의 고백이 아름답지 않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 싶을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해 너무 무겁지 않게 정리된 고백이 꼭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정문경의 인형은 고백의 형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비해 사진을 조합해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보여주는 김아영은 고백을 듣는 자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모래 욕조 속에서 발견된 영국인 교사 2007.3.28>는 2007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맨션의 베란다에는 모래가 담긴 욕조가 놓여 있어 마치 영국인 영어 교사가 살해당한 현장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사진을 잘라 붙이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다시 찍는 과정을 거친 가짜이지만 쉽게 읽고 버려지는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의, 그 소비성의 본질을 묻는다는 고발의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진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시간을 들여 다시 무대 위로 불러온 사건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마주한다.
고백의 미추(美醜), 진위 여부를 다룬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에 이어 ‘고백을 엿보는 자’에서는 인류가 흔히 앓고 있는 질병인 관음증을 다룬다. 잘못 보기만 해도 죄가 되는 시대에 파리 유학시절 맞은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래 찍은 사진을 선보인 예기는 스토커의 형식을 차용한다. 그들에게 ‘쏘피’, ‘쎄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때로는 그들의 패션 감각을 칭찬한다. 그녀를 처음 보던 날을 떠올리는 편지 형식의 글을 읽다보면 스토커에 대한 공포보다는 매일 마주하더라도 단절된  관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왜일까? KKHH(강지윤+장근희)의 영상 작업인 <Chasing K>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는 나흘째 K씨를 쫓고 있다”고 밝히며, SNS상에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따라다닌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짐작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실제로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진심을 털어 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 하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진실게임에서 진심을 가장 잘 전하는 자는 때로 대답을 하지 않고 벌주를 마신다. SNS상에서 드러낸 나의 모습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 편집된 내면이라는 <가면의 고백전>의 지적은 예리하다. 그렇지만 비단 SNS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로 날것 그대로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제되지 않은 형식의 고백이 꼭 추구되어야 하는 것일까.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의 고백을 기하학적인 형태나 추상적인 무늬로 풀어내어 많은 이와 교감했듯이 때로는 직접적이지 않거나 아름다워서 고백은 강해진다.
<가면의 고백전> 입구에 걸린 일본인 소설가의 문구를 읽으면서 처음 떠오른 것은 한국의 시인 황인숙의 말이었다. “솔직이란 옷을 입고 저의 삿됨과 속됨과 추함과 비천함을 발산할 것인가, 아니면 제 한 몸 솔직하기를 희생해서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과 비범함에 봉사할 것인가.” 시인은 라로슈푸코가 후자에 높은 점수를 줬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 역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는 시를 쓰길 원한다. 그냥 가면이 아닌, 살까지 파고든 가면이라면 예술에는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할 그 가면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가면의 고백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고백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하자가 없다.

박현정・미술사

 

[Review]천민정 – 행복한 북한아이들

천민정  __  행복한 북한아이들

트렁크갤러리 6.26~7.29

천민정이 이번 전시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이 시점에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남한의 한 관객으로서 바라보기가 편치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지구화 시대에 북한의 독재정권과 연관된 각종 아이콘들이 흡사 한반도를 대변하는 시각문화의 상징처럼 인지되는 불편한 상황이 존재한다. 북한과 연관된 사진 이미지들이 유수의 국제 사진수상전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고, 김정은이나 김정일은 “황당한”, “미친” 등의 형용사와 동일시되면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이번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배경에도  북한의 건축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호기심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얼마든지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명목에서건 북한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어 축소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부차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북한 독재정권이 지닌 기이함으로 단순화하는 데 따른 논란의 소지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결국 북한을 독특한 방식으로 타자화하고 오히려 신비주의화하는 데에 이러한 이미지들이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이와 연관하여 전시 서문은 천 작가 작품 속 북한 어린이들은 불과 50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우리들이 북한에 대하여 얼마나 상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우리’를 일반화할 수 있을까? 개인 차이가 확연히 존재하지만 국내에 탈북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매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북한의 삶의 모습을 접하는 일이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는 천작가의 사진과 회화에서 ‘김시운’과 ‘김시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가의 아들, 딸들이 완벽히 유형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나치게 활기 차 보이고 오히려 자유분방해 보이는 딸의 모습은 인종적으로나 제스처에 있어서 경직된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완벽히 재생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채꼴의 태양은 마오의 태양보다는 선 메이드(건포도 상표)의 배경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실패한 모방의 결과는 또 다른 미학적인 가능성과 문제점을 던져진다. 뒤쪽의 매스게임과 앞쪽 어린이들, 그리고 단체 유니폼이 어색해 보이는 시점에서 천 작가의 작업은 이것이 더욱더 연극적이며 반어법적인 상황(이들은 행복한가?)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준다. 나아가서 북한 어린이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천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착잡해졌다. 과연 진정으로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란 무엇일까?
과연 예술이 타자에 대한 연민을 그 출발점으로 해서 타자를 재현하고 연기하면서, 그것도 북한 어린이들을 연기하면서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행복한 북한의 어린이들은 북한 어린이들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무지하였던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기서 파생되는 불편함은 단순히 자기비판의 부산물만은 아니다. 이 불편함은 북한 어린이라는 민감한 소재, 그리고 누가 그들을 위하여 종을 울려야 할지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부터 기인했다.

고동연・미술사

[Review]이은우 – 물건방식

이은우  __  물건방식

갤러리 팩토리 7.2~25

이은우의 근래 작업은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 사물의 기능과 형태, 표준화, 재료의 물성 등의 측면에서 논의된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도 작가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는, 그 사물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사물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나 그 관습적인 쓰임새를 원료로 작업한다’고 밝히고 있다. 볕이 유난히 강렬했던 7월의 어느 오후, 팩토리 유리문을 젖히고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맞딱드린 일련의 사물들에 대한 첫인상은, 그곳에 맘먹고 기거하려는 듯 적당하고 자연스러웠다. 언뜻 라디에이터처럼 보이는 그 무엇, 의자인지 다른 가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규칙적인 선반과 주황색 원추가 인상적인 구조물,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채 벽에 붙어버린 그 무엇, 그외에도 프레임, 면, 선으로만 드러나보이는 도형들과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기본 색채들의 유영. 이들은 한눈에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사물들이었으나 공간을 적당히 점유하고 있었으며 그 사이를 오가는 관람자에게도 충분한 여유를 내주었다.
이 사물들, 혹은 그 무엇들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수치, 예컨대 가구가 지닌 인간공학적 수치, 1: 1.618의 황금률, 반복, 대칭, 비례 등의 속성을 지녀서 일상 사물에 대한 기하학적 감각을 자극한다. 또한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의 잉크를 종이에 마블링한 일련의 <제목 없음>은 회화 이전의, 아니 색채 이전의 질료의 물성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다. 재료 역시 거의가 목재, 스테인리스 스틸, 철재 평철, PVC, 페인트 등 산업재료인데, 일부는 작가가 직접 다룰 수 있었겠지만 기술자와 기계에 의해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전문적인 산업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쓰임은 무엇인가. 용도를 지닌 것들인가? 아니면 장식적인 오브제인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말은 20세기 초, 루이스 설리번을 위시한 서구 기능주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의 신념이었다.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 자, 사물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그 근거와 당위성은 곧 사물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루이스 설리번이 설계한 시카고 마천루에 당위성을 제공했고, 아돌프 로스는 한술 더 떠 장식은 죄악이라고 외치며 엄격한 기하학 형태의 건물을 설계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기능주의를 정교하게 이론화하거나 장식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 사회에서 제품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기능을 따른다는 경제적 효율성의 개념을 심어주었고, 이는 제품의 규격화, 표준화 개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기능주의자들 이후에도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꽤 근사한 디자인 선언을 했지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은우가 이번 팩토리 전시에서 제시하는 사물들은 기능주의자들이 당황스러워 할, 기능은 모두 소거되고 형태와 색채만을 가진 것들이다. 이는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전 <근성과 협동전>(2013)에서는 작품명을 통해 기능을 제시한 <인쇄물보관상자>를 만들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물건>, <기둥>, <푸른 사각형>, <녹색 원>, 또는 아예 <제목 없음>과 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제시한다. 심지어 형태 자체가 기능임을 부정할 수 없는 바퀴와 공조차 꼼짝없이 벽면에 고정되어 그 기능을 거세당했다. 이렇듯 기능이 소거되거나 형태, 색채, 재료가 제각기 해체된 이은우의 사물을 통해서 우리는 물건의 합당한 존재 방식이라며 합리화에 능한 도구적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본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동시에 예술로서 사물은 어디까지 기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은 멋스럽게 전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저 사물들이 전시의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Review]양아치 – 뼈와 살이 타는 밤

양아치  __  뼈와 살이 타는 밤

학고재갤러리 6.20~8.10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던 <미들코리아전> 이후, 5년 만에 ‘뼈와 살이 타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양아치 개인전이 열렸다. 이전의 전시가 구체제를 파괴하고 현재를 비판해서 신세계를 창조한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말을 지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는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는 듯하다. 고통이 사그라지다 여전히 반복되는데도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0년 전의 부조리한 사회구조가 현재에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1980년대 중반의 정치적 장려책인 일명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으로 제작된 영화 제목을 불러들였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1980년 부흥한 에로영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열된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실제로 뼈와 살이 타는 것이니 섬뜩한 공포영화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고, 문맥에 따라 그 당시 일어났던 끔찍한 고문과 살육에 대한 기술일 수도 있다. 여하튼, 1980년대를 어떻게 겪었는가에 따라 제목의 의미는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근대화를 뼈아프게 겪은 나라임에도 현재의 사회 흐름은 그렇게 반듯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 간이든, 계층 간이든, 세대 간이든, 신뢰는 약화되었고 충돌은 강화되었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는 대충 20년 전 군부시대를 끝으로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가 요즘 들어 다시 갑갑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자연 훼손과 가정 파탄, 사이비와 어이없는 사고가 도처에서 재발하는 데도, 당한 자와는 별개로 국가는 침묵을 강요한다.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고 진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시가 열렸기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다소 명확해 보인다. 예술가로서 억압과 통제가 한창이던 30년 전의 과거와 현재 상황의 유사함을 당연히 감지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 되는 현실이 동기가 되어 이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전에는 (권력의 통제 등이) 시각적으로 드러났지만, 지금은 교묘한 통제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는 30년 전의 분위기와 현재가 혼재된 듯한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귀곡산장을 연상케 하는 별장의 요소들로서 샹들리에, 촛불, 유리잔, 박제들, 그리고 마치 산장 주변과도 같은 숲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쓴 늑대의 탈이나 닭대가리 같기도 한 새의 머리(무관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숲 속에 놓인 시신의 부분 같은 머리카락 뭉치, 앵두나무, 머리를 축 늘어뜨린 입상 등 모든 요소가 에로틱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때로 현재의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실의 다양한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연출된 장면들은 밤에 조명을 사용하여 촬영함으로써 어둠과 빛의 대비가 극명하여 그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이렇듯 성적인 코드와 공포스러움이 혼재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과 허구, 죽음과 생명, 절망과 헛된 희망이 뒤섞여서 자아내는 불안한 현실과 이를 지탱하는 현재의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작가는 꾸밈없이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의 신작 <뼈와 살이 타는 밤>은 6개월 정도 야간 산행을 반복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어두운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고독한 시간이자 존재와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독은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작가는 고독의 수행을 통해 왜 하필 안 좋은 것이 반복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자신처럼 고독한 시간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제안하는 듯하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view] 노세환 – 학습된 예민함

노세환  __  학습된 예민함

표갤러리 사우스 7.3~24

첫째 항(項): 태생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바나나. 둘째 항: 비슷한 형태일 뿐 똑같을 수 없는 바나나. ‘바나나’라는 동일항이 노세환의 뷰파인더 속 관계에선 대립항(對立項)으로 전환된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니다. 낱개의 사실(fact)과 약간의 차이(difference)가 만들어낸 논리는 꽤 설득력을 지녔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바나나, 사과)에서 온 ‘차이’와 ‘사이’라는 명확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시작한 사진작가는 좀 더 세련된 논법으로 자신의 다음 생각을 피력한다. 자연의 물을 포장만 한 생수 브랜드, 철저히 인공적인 콜라. 모두 ‘차이’와 ‘사이’가 존재하지만 시각적 구분은 매우 힘들다.
오늘의 시각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먼저 발견하거나 진리의 미묘한 ‘사이’에 대한 물음을 먼저 감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동시대(contemporary)라 지칭되는 오늘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수 또한 상당하다. 그 많은 사변-思辨: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생각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는 일-을 한 줄로 정리해서 수반되었을 유사하고 반복적인 사유와 실험이 결과론적 사진 한 장에 담긴다.
그러나 노세환의 사진은 철학적이지도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밝고 유쾌하다. 규칙을 가진 형태들이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색감을 띠고 화면에 안착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이 지루하게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너무나 인위적(혹은 인공적)이어서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사실)을 바라보면서 미니어처(가짜)를 찍은 느낌이 드는 것. 화이트 큐브에 입장하며 가졌던 기대심리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너무나 정직한 작품 제목들. 날카롭지 않지만 무언가 한 방 맞은 듯한 심정이 되는 이유는 바로 현대미술이라는 장치가 우월하게 제대로 작용했다는 반증일 터. 노세환의 노림수. 자신의 시각논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경계심을 낮추는 작품을 진행해 나간다. 학습된 선험에 대항하는 것 보다 현명한 미술인의 자세다. 굳이 바나나와 사과를 만들고, 물감을 붓고, 자신만의 잣대로 허용된 1mm의 규칙을 정한 후 오차 없이 찰나의 순간에 셔터 타이밍을 포착하는 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시각예술가가 정리하는 방식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탁월한 사실에 대한 기대감과 사실이라고 배운 학습에 대한 막연한 근원적 물음을 철학자가 아닌 시각예술가가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여 물어보고 있다. 진리의 기원 따위를 캐묻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자아(自我)라 불리는 ‘나’의 정체성 속에 ‘나’만의 사유가 얼마만큼 포진해 있는지, 그것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되짚어주고 있다.

김최은영・미학

[Review] Hands across the Water

Hands across the Water

갤러리 노리 7.4~8.4

국적이 각기 다른 작가들의 전시는 늘 공통의 관심사로 묶인다. 가령 아시아 작가나 작품을 식민주의 근대의 역사로 엮는다든지 아랍의 정치적 현실을 지리적 접근성으로 범주화하는 따위가 그렇다. 전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언어와 역사를 동급으로 여기게 될 테고, 후자는 컨템포러리아트 시장으로 각광받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와 동급으로 평가되는 오류를 필연으로 범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체성의 범주화는 현대 전시학의 필연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은 나를 규정하는 타자의 시선, 타자를 바라보는 내 안의 시선들이 만나고 결국 돌고돌아 예술이 물어야 할 가장 존재론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Hands across the Water”는 서구와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아픈 현대사를 겪은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는 LA에 기반을 둔 백아트(Baik Art)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2013년 가을 제주에서의 짧은 체류기간을 통해 제주의 역사와 풍경, 사람에 대한 토론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읊은 작품들이다. 전시가 열린 제주 갤러리 노리는 1980년대 초  미술동인회 임술년의 멤버였던 이명복과 그의 부인이 운영한다. 어쩌면 전시의 맥락과도 어울리는 공간이다. 인도네시아의 헤리 도노(Heri Dono), 말레이시아의 자키 안와르(Ahmad Zakii Anwar)와 카우(Kow Leong Kiang), 그리고 한국의 한용진과 최태훈이 참여했다. 1995년, 2006년, 그리고 올해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헤리 도노는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와 전통 인형극인 와왕(wayang), 민담 등을 제주도 해녀와 바다 풍경, 분단 한국의 풍경 속에 버무렸다. 목탄을 이용한 자키의 작품은 화면 가득한 오징어, 게 등이 제주 해녀들의 표정과 어울려 노동의 힘듦을 밝게 표현해낸다. 붓이 아닌 손의 놀라운 소묘가 돋보인다.
한용진의 미니멀한 조각작품은 제주의 현무암,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막돌을 발견하여 최소한의 조각질로 만들어냈다. 80이 넘은 고령의 예술가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서울에서 마주쳤던 젊은 여성들의 표정과 패션을 옅고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한 카우의 도시인물화는 재현의 방식을 재현의 대상과 일치시키려 노력한 흔적으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본 작품은 최태훈의 신작이다. 숟가락을 구부리고 눌러 만든 배의 형상은 세월호를 상징한다. 구체적 삶으로서 숟가락 하나하나는 아우성치는 배의 형상으로 완성되는데 하얀 벽면에 검은 배의 형상이 너무 아프다. 플라스마 기법의 숲과 우주 이미지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최근 일상과 사회적 존재, 그리고 정치적 맥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지던시의 가장 큰 목적은 교류, 즉 만남에 있다. 얼굴과 얼굴, 사람과 풍경의 일대일 만남은 인터넷상의 접속과 차단 같은 차가운 만남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 당혹스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만남이다. 한 시인이 말했듯, 한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것은 늘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자아에 대한 발견 혹은 여행이다. 레지던시의 필요성인 것이다.

정형탁・예술학